- 불기 2554년 부처님 오신 날 맞아 창녕 불교문화재 순례

창녕 관룡사 용선대는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가는 상상의 배 반야용선을 의미해 매년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전국에서 수많은 불자들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유홍준 교수는 문화재와 자연경관이 어우러지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라고 치켜 세웠다.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는 말이 있지요. 의역하자면 '진리를 깨닫는 지혜(반야)의 세계로 향하는, 용이 이끄는 배(용선)'쯤 되겠지요. 불가에서 반야용선은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가는 상상의 배를 의미하지요.

절집 법당은 사부대중이 부처님과 함께 타고 가는 배의 선실과 같은 곳이지요. 법당 건물이나 축대 및 계단 등에 조각해 놓은 용머리와 용꼬리, 거북 게 등은 이 법당이 반야용선임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법당에서의 여러 행위들은 바로 피안의 극락정토에 다다르기 위한 작은 정성인 셈이죠.

우리나라 절집은 표현 양식은 다르지만 피안의 세계를 향하는 반야용선의 형상을 한 곳이 상당수 있습니다.   
 
영축산 통도사나 월악산 신륵사 극락전에는 중생의 간절한 염원을 그린 반야용선 벽화가 있고,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천장에는 용모양의 나무 배에 인형 하나가 줄에 의지해 대롱대롱 매달려 있지요. 반야용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매달린 이 동자를 악착동자라고 부르지요. 혼자 도 닦아선 극락정토로 갈 능력은 안 되고, 하지만 가고는 싶은 동자의 갸륵하고도 솔직한 노력의 외적 표현이라 보는 이의 마음을 새삼 다잡게 해주고 있지요.

경남 청도 와인터널 바로 위에 위치한 조그만 천년고찰 대적사 극락전 화강암 기단부에는 거북과 게 문양이 돋을새김돼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거북 한 마리가 있는 힘을 다해 기둥의 모서리를 꽉 잡고 법당을 향해 기어오르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이는 기단부가 바다를, 법당이 중생을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지혜의 반야용선임을 의미하고 있지요.

전남 해남 달마산 미황사 대웅전은 그 자체가 바다 위에 떠 있는 아름다운 반야용선으로 알려져 있지요. 대웅전을 떠받치고 있는 주춧돌에는 고해를 헤치고 나아가는 반야용선이란 의미로 게와 거북이 새겨져 있지요. 인도에서 경전과 부처상을 실은 배 한 척이 달마산 포구 아래 닿았다는 창건 설화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합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땅에서 반야용선의 백미는 창녕 화왕산 관룡사 용선대를 으뜸으로 치지요. 용선대는 용의 등줄기 같은 관룡산의 화강암 줄기가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다 문득 멈춘 절벽으로, 멀리서 보면 마치 용 모양의 뱃머리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지요. 이 용선대의 펑퍼짐한 자리에 3m 높이의 석조여래좌상이 사바세계를 굽어보며 미소를 머금고 앉아 있지요. 벼랑 끝에 세워진 불상과 그 앞에서 예불을 드리는 한 부부의 간절한 기도 모습을 바라보면 큰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는 불가의 반야용선에 다름 아님을 확인할 수 있지요. 1300년 전 용선대의 이 돌부처를 조각한 불심 가득한 이름 없는 석공의 안목에 경의감마저 들더군요.

용선대와 관련, 우스갯소리 하나 할까요. 용선대가 극락 가는 배, 다시 말해 반야용선의 형상이라는 말을 들은 한 학생이 용선대 난간 앞에서 영화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가 뱃머리에서 두 팔을 벌리는 장면을 따라하면서 용선대 돌부처는 졸지에 새로운 별명을 하나 얻었다네요. '타이타닉 부처님'으로.

오늘은 불기 2554년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산서 차로 80분가량 걸리는 관룡사를 찾아보면 어떨는지요. 용선대는 절에서 불과 480m, 20분 정도 걸려 노인뿐 아니라 아이들도 쉽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용선대 한 번 오르고 극락정토행 '입장권'을 마음속으로 예약할 수 있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성불하십시요.

경남 창원서 온 불자들이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앞에서 간절하게 기도를 하고 있다.

- 불심 넘치는 자비의 땅 '경남의 경주'

시대별로 다양한 불교문화재 산재
생태 보고 우포늪과 함께 수만 년 공존한 역사의 땅
천년고찰 관룡사 소박하지만 독특한 기품
용선대 돌부처 사바세계 굽어보며 중생들 인도
비구니승의 집념으로 국보로 빛 본 술정리 동삼층석탑
매일 오후 7시 지역 주민들과 매일 밤 탑돌이



우포늪과 화왕산 그리고 부곡온천이 우선 떠오르는 경남 창녕은 흔히 '제2의 경주'라 불린다. 문화재와 유적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역사의 땅'이기 때문이다. 술정리 동삼층석탑과 신라 진흥왕 척경비 등 국보 2점,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등 보물 9점 등 국가지정문화재 21점과 도지정문화재 53점, 향토문화재 32점에 천연기념물 5점까지 포함하면 전국 230개 지방자치단체 중 '톱10'에 들 만큼 '문화재의 보고'이다.
창녕향토사연구회 김량한 부회장은 시대적 스펙트럼의 다양성을 예로 들며 창녕이 '제2의 경주'에 비유된다는 사실에 손사래를 쳤다. 신라에 거의 한정된 경주보다 낙동강이 굽이쳐 기름진 평화를 자양분으로 선사시대부터 가야 신라 고려 조선 근세에 이르기까지 독창적인 문화재와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창녕이 오히려 흥미롭고 역사적으로 가치가 더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남의 경주'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듯하다는 것이 김 부회장의 주장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창녕의 수많은 문화재 중 놓쳐서는 안 될 불교문화재를 둘러봤다.

동쪽으로 돌아앉은 관룡사 용선대 돌부처

관룡사 석장승. 창녕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천년고찰 관룡사 탐방은 명물 석장승부터 시작된다. 이웃한 화왕산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광경을 보고 원효대사가 명명한 관룡사 어귀에는 2m쯤 되는 석장승 2기가 서 있다. 조선의 대표적 석장승으로 지금은 창녕의 아이콘 역할을 하고 있다. 왕방울 눈, 주먹 코, 튀어나온 송곳니 등 그 표정이 우스꽝스럽지만 성스러운 공간임을 일러주는 절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지난 2003년 태풍 '매미' 때 유실 후 도난당했지만 한 달 만에 충남 홍성에서 발견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일주문 역할을 하는 돌문(바로 아래 사진)도 놓치지 말자. 돌을 쌓아 기둥으로 삼고 그 위에 장대석 두 장을 얹은 뒤 기와를 올린사람 하나 드나들 수 있는 조그만 문이다.

관룡사만의 독특한 산문이다. 이 문을 들어서면 노란 염주괴불주머니와 스님의 머리를 빼닮은 불두화라 불리는 수국이 반긴다.
 절집은 소박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팔작지붕 대웅전과 그 너머로 보이는 병풍바위 구룡산의 조화는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그 기품은 반야용선의 전형 미황사 대웅전을 품은 해남 달마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반면 처마가 낮은 약사전 안의 석불은 눈높이가 탐방객과 맞다. 약사전 앞마당의 삼층석탑도 손을 뻗으면 탑 머리를 만질 수 있을 만큼 앙증맞다. 그래서 정감이 더 간다. 약사전은 임진왜란 때도 소실되지 않아 이 절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를 간직한 전각이다. 관룡사를 품은 관룡산의 참혈이 이곳에 수렴됐기 때문이란다. 그만큼 앉은 터가 좋다는 의미이다.
 관룡사를 찾으면 빠뜨려선 안 될 곳이 바로 용선대다. 사진으로 보면 까마득한 절벽 위에 부처님이 앉아 있어 꽤 멀 것 같지만 절에서 480m만 걸으면 만날 수 있다.
 용선대가 반야용선의 형상임을 확인하려면 용선대 바로 위 바위에 오르자. 암반 전체가 하나의 배로 보인다. 용선대가 불국토로 향하는 배이고, 벼랑 끝에서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석조여래좌상이 선장인 셈이다. 유홍준(명지대) 교수는 구룡산 병풍바위를 광배로 한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의 모습을 두고 황매산을 배경으로 한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과 함께 문화재와 자연경관이 어우러지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치켜세웠다.

관룡산 용선대 전경. 건너편에 보이는 산이 영취산이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될 한 가지. 석조여래좌상은 관룡사 방향, 다시 말해 동쪽으로 돌아앉아 있다. 창녕향토사연구회 김량한 부회장은 "중생을 위한다는 의미의 반야용선의 돌부처는 (옥천리) 마을이 위치한 남쪽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배산임수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것.
 이를 설명하기 위해 김 부회장은 현재 석불의 좌대와 좌대를 놓기 위해 깎은 바닥의 길이가 일치하지 않는다며(우측 사진), 석불의 좌대를 남쪽으로 90도 돌리면

 석불의 좌대와 깎인 부분이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돌부처 목 부분의 시멘트로 덧씌운 흔적도 결국 불두를 돌리는 과정에서 야기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럼 누가 돌부처를 동쪽으로 돌려 놓았을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소행이란 설도 있고, 오래전 관룡사에서 절쪽으로 돌려놓았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 하나 아직 확인된 것이 없다고 김 부회장은 말했다.
 중요한 것은 용선대에 오르면 극락세계로 가는 반야용선에 승선하는 의미이고, 또 용선대에서 기도하면 반드시 한 가지의 소원은 들어준다는 데 있지 않을까.

용선대로 가는 산길에서 올려다본 석조여래좌상.

관룡산 사천왕문 옆에서 본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용선대에서 본 병풍바위라 불리는 구룡산 전경.

용선대에서 본 화왕산 배바위(왼쪽)과 화왕산(정상은 아니다).



국보 34호 술정리 동삼층석탑 지킴이 일선 혜일 스님
국보 제34호 술정리 동삼층석탑 지킴이 일선 혜일 스님(맨 앞)이 지난해 부처님 오신 날 때 전국의 불자들과 함께 탑돌이를 하고 있다. 스님은 또 지역 주민들과 매일 오후 7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탑돌이를 한다.

불국사 석가탑과 비교될 만큼 아름다운 국보 34호 술정리 동삼층석탑(이하 동탑)은 오래전 국보로 지정됐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 담요와 시레기 등이 널려 있었고 주변에는 개똥과 술병 담배꽁초 등이 쌓인 방치된 탑이었다. 국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 비구니 스님과의 운명적 만남으로 이제 창녕을 넘어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탑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사연은 이랬다. 제주에서 출가한 일선 스님(아래 사진)은 요양차 창녕으로 와 수행하던 중 지난 1998년 부처님이 꿈에 나타나 스님에게 법명을 혜일로 바꾸라 명하고 인도한 곳이 동탑이었다. 새벽에 잠을 깬 스님이 꿈에서 부처님이 인도한 곳으로 찾아가보니 실제로 동탑이 있었다.

 그때부터 스님은 동탑 앞의 조그만 임시거처인 '국제 제34호 동탑관리소'(055-533-9921)에 머물면서 방치된 탑을 관리하며 주민들을 설득하는 등 동탑 지킴이를 자임했다. 주민들로부터 '이상한 스님'이란 말을 들으며 2년 정도 묵묵히 동탑을 관리하던 스님은 2001년 우연히 동탑 옆 비석에 새겨진 희미한 '국보'라는 한자를 우연히 발견했다. 이후 스님은 창녕문화원과 군청 등에서 동탑에 대한 문헌을 수집하던 중 동탑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용구가 발견됐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에 문의했지만 '발견 기록은 있지만 보관 기록은 없다'는 성의없는 답변만 받았다. 참다 못한 스님은 발로 뛰었다. 문화재청의 문화재지킴이 교육에 참여, 국보인 동탑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며 열변을 토하는 한편 청와대에 민원을 넣고, 국립박물관을 찾아 10일간 아예 박물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자료를 뒤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박물관과 문화재청이 본격 수소문했고, 그 결과 박물관 수장고에서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사리용구가 발견됐다. 1965년 동탑을 해체 복원한 후 38년 만인 2003년 불사리장엄구(부처님 사리를 넣은 함) 등 탑 안의 유물이 비로소 햇빛을 본 것이다.
 이때부터 동탑 보존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문화재 보호비로 6억8000만 원이 내려오고 예산 타령만 하던 군도 뒤늦게 발벗고 나섰다. 주변 부지도 매입, 지금까지 탑 주변의 100여 가구를 이주시켰다. 차량 통행을 우회시키고 탑 주변의 보기 흉한 전깃줄도 말끔하게 정리했다. 1300년간 방치됐던 동탑이 한 스님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엄청난 성과를 일궈낸 것이다.
 혜일 스님은 아직도 할 일이 남았다고 했다. 석가탑에서 발견된 사리함 등이 석가탑과 함께 진작 국보로 지정됐지만 동탑에서 뒤늦게 햇빛을 본 사리병 등 유물의 문화재 지정에는 문화재청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스님은 이를 위해 창녕향토사연구회 측과 함께 지금도 문화재 지정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편조대사 신돈의 발자취와 삼성암 보광전 내 석간수샘

관룡사 팻말 건너편이 옥천사진 입구다.

깨진 흔적을 보면 인위적으로 훼손했음을 알 수 있다.


창녕은 고려 공민왕 때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 개혁에 앞장섰던 편조대사 신돈이 태어나 출가한 곳. 관룡사 입구 도로 우측 편에 출가한 곳인 옥천사지가 있다. 절 입구 간이매점 옆 '관룡사 1.2㎞' 팻말 우측 숲 속으로 들어서면 절 기초석과 탑의 면석, 부도 하대석 등이 널브러져 있어 신돈의 실각과 함께 인위적으로 훼손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돈이 태어난 일미사지는 옥천저수지 아래 일매교를 건너 배롱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문암정을 지나 구현산 기슭 죽림에 둘러싸여 있다. 일미사지 아래에는 펜션이 한창 공사 중이다. 이곳 대나무 숲 주변에는 석축과 두터운 기와편들이 발견된다. 또 커다란 석조와 멧돌이 있었지만 3개월 전 창녕박물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일미사지 기와 파편.

일미사지서 발견된 석조(왼쪽)와 멧돌(오른쪽). 창녕박물관에 있다.

일미사지.


통도사의 말사로서, 울산의 문수암 미타암과 함께 기도 효험이 빼어난 도량으로 알려져 있는 삼성암은 법당인 보광전 아래 특이하게 석간수샘이 있다. 가뭄 때도 절대 마르지 않는 이 샘은 실제 바닥 일부를 걷으면 3m쯤 아래 있다. 절에선 샘을 깨끗이 청소한 후 대리석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보광전 앞 수도꼭지는 이 물을 빼올린 것으로 신비의 석간수로 알려져 탐방객들은 빠뜨리지 않고 찾는다.

삼성암 보광전 내 석간수샘. 마루바닥 일부를 걷으면 볼 수 있다.

석간수샘을 빼올린 수도꼭지.


이 밖에 송현동 고분군 옆에 위치한 송현동 석불좌상과 고암면 창녕자연휴양림 내 감리 마애여래입상 또한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를 간직하고 있다.


창녕 맛집 둘

'화왕산 된장 청국장마을'-각종 나물에 된장 넣은 비빔밥 일품
'가현한우생고기'- 우포늪 인동초 먹인 한우 가격도 맛도 그저그만

'금강산도 식후경'. 창녕만의 맛은 창녕 불교문화재 순례의 화룡점정이다. 관룡사 입구 옥천저수지 인근에 위치한 '화왕산 된장·청국장마을'(055-521-3337)은 직접 메주를 띄워 담근 청국장과 된장 등을 맛볼 수 있다. 주변의 많은 청국장집 중 원조가 바로 이 집이다. 보글보글 뚝배기에 끓여내온 청국장과 고사리 취나무 시레기 등을 넣고 밥을 비벼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가격은 5000원. 정구지와 팽이버섯을 곁들인 오리불고기 또한 별미 중 별미이다. 2만~3만 원.

창녕읍에서는 또 우포 인동초를 먹인 한우가 유명하다. '가현한우생고기(055-532-9259)는 창녕지역 도축장((주)영남엘피시)과 함께 있어 싱싱한 1등급 한우를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양 많고 싸고 맛있는' 집이다. 한우 모둠(600g)이 3만5000원. 10명이 찾아 고기와 함께 식사를 해도 13만 원 안팎으로 부담없이 한우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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