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드CC의 유일한 아일랜드 홀인 벨리 6번.


 지난 2012년 7월 초 허남식 당시 부산시장은 김헌수 신임 아시아드CC 사장을 따로 불러 변화와 개혁을 주문했다. 시가 최대 주주인 아시아드CC는 그간 시 간부나 정치권 인사가 대표를 맡다 보니 전문성이 결여돼 '고인 물'로 치부됐다.

 그는 제일모직에 입사한 삼성맨이었다. 국내 골프장의 사관학교로 불리는 삼성 계열의 안양베네스트CC 총무과장으로 발령나면서 골프장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후 32년간 골프장 밥만 먹었다. 그중 절반은 5곳의 국내외 골프장의 CEO로 보냈다.

 부임 직후 회원들의 주말 부킹 현황부터 체크했다. 월 2회 주말 부킹 보장 원칙 준수를 위해서였다. 수십 명의 회원이 특혜를 받고 있어 담당 직원 교체와 함께 공평한 원칙 준수를 지시했다.

 보고 체계는 현안을 바깥에서 먼저 알 정도로 심각했다. 조직도 엉망이었다. 전용 운전기사인 60대 후반의 계약직 직원은 타 시·도 출장운행을 거부했고, 특정 부서 장기 근무자는 텃세가 심했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에 무자격자들도 있었다. 인사를 단행했지만 언론에선 '인사 잡음'이라 지적했다. 심지어 모 팀장의 인사 문제와 관련, 오전 상황만을 묶어 그 다음 날 바로 '끝없는 잡음'으로 오보가 나오는 촌극이 일기도 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주인공처럼 빅브라더에 의해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다. 또 다른 팀장은 지시 불이행에 잇단 거짓말, 그리고 출근 후 잠적까지 일삼아 징계위 소집을 했지만 이번엔 시의 간부들이 압력을 넣었다. 위에선 개혁을 주문했고, 아래와 주변에선 흔들었다. 

 재임 기간 내내 첫 티오프 최소 30분 전에 출근하고 평소 직원식당에서 식사를 한 그는 일도 참 많이 했다. 골프장의 필수인 장비창고가 없어 고가 장비들이 노천에 방치된 것을 보곤 1년 6개월에 걸쳐 허가를 받아 지난해 5월 5억 원을 들여 지었다. 그간 인근 골프장에서 빌려 쓰던 대형 장비들도 20대(12억 원)나 구입했다. 비만 오면 질퍽거렸던 페어웨이의 배수공사도 90% 정도 해결했다. 파보니 날림공사였다. 페어웨이 옆 굳이 잔디가 필요없는 공간 60여 곳엔 억새와 영산홍을 심어 조경 변화도 주며 관리비를 대폭 줄였다. 카트 도로(12㎞)도 새로 포장했다. 조용히 있다 떠난 전임 낙하산 대표들과는 달랐다. 

 여자 프로골프대회 무산은 부산의 자존심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대회 주최 측은 영업 보상금을 시가보다 무려 수천만 원이나 후려치고 개최일을 하루 더 달라고 요구했다. 당연히 결렬됐고, 주최 측은 인근 B, H 골프장도 찾았지만 역시 거절당했다. 대회 주최 관련 금품 요구 루머는 결단코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구매, 공사 관련 계약은 담당 팀장에게 일임하고, 외부에서 회원들을 절대 만나지 않는 원칙이 그간 백 없는 촌놈의 생존법이라고 했다.

 무단 벌목에 대해선 사과했다. 허가된 체육시설에서의 벌목은 가능한 줄 알았단다. 빽빽하게 웃자란 소나무와 잡목이 햇빛과 통풍을 막아 그린 잔디를 죽게 해 단행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조경업을 하는 회원의 권유가 계기였다. 비록 벌금을 맞았지만 덕분에 그린이 좋아졌다고 웃는다. 하지만 두 번째 무단 벌목은 억울하다고 했다. 군의 허가를 받았으며 단지 착공 5일 전 고지 의무라는 단순 행정절차 미비였는데 언론에선 또다시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대형 오보를 냈다. 벌목으로 인해 그토록 시달렸으면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을 법한데 그는 이후 조경을 위해 숲 속의 제법 큰 관목을 홀과 홀 사이에 250그루나 옮겨심었다. 이식은 허가 안 받아도 된다며 또 웃는다.

 소회를 물었다. 페어웨이는 이제 정리됐고, 앞으로 숲 속의 관목을 페어웨이 쪽으로 좀 더 이식하면 진정 명문 골프장이 될 거라며 후임자에게 전해야겠다고 했다. 주가가 회사의 자산가치를 반영하듯 골프장 회원권 가격은 곧 경영평가의 척도다. 그가 떠날 때인 지난 연말 가격이 부임할 때보다 30%나 올랐다. 같은 기간 타 골프장의 가격은 보합권이었다. '고인 물'이 2년 6개월 뒤 '청정수'로 인증받은 셈이다.


 지난해 7월 중순 아시아드 회원 중 절반인 350명이 그의 임기를 보장하라고 서명한 탄원서를 서병수 시장에게 직접 전달했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였다. 그는 갖은 오해와 수모를 받으며 떠났다. 그 자리엔 서 시장 선거 캠프 출신의 골프 문외한이 앉아 있다. 유임된 허 전 시장의 정무특보 출신의 낙하산 이사와 함께.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종용 논란에서 봤듯이 부산은 왜 전문가 예우에 인색할까.


아시아드CC에서 까다로운 홀 중 하나인 파인 7번 홀의 세컨 샷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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