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이었다. 일주일 만인데도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을까. 통상 산 정상 부근에는 냉기가 아직도 남아 있으련만 신기하리 만큼 칼로 무 자르듯 동장군의 흔적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산에게 ‘변신의 왕’이라고 닉네임을 붙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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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단장면의 정각산(859.5m)에도 봄은 이미 찾아와 있었다. 다람쥐 메뚜기 나비 산수유 진달래 그리고 시원한 계곡수…. 전형적인 봄 산인 정각산은 겨우내 품속에 간직한 봄의 징후들을 하나씩 보따리에서 끄집어내고 있었다.

정각산은 무엇보다 능선이나 계곡 어디든지 절벽이나 암릉 암벽 등 볼거리가 많아 산행의 묘미를 더해준다. 폐금광은 인도의 석굴 만큼이나 정교했고, 바위 틈새 자연스럽게 생긴 박쥐굴은 한동안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정각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40여분 동안의 능선에서 만나는 암릉길을 걷노라면 마치 천하를 다 거느린 황제가 된 듯한 기분이 들며, 하산길 말미에 만나는 잇단 묘지는 정각산의 지세가 얼마나 좋은가를 방증해주고 있다.

이번 산행은 계곡으로 올라 능선길로 바꿔타고 정상에 오른 후 다시 반대편 능선길로 하산하는 코스다. 삼거버스정류장~구천마을~버섯재배장~폭포~박쥐굴~폭포~전망대~폐금광굴~정각산 정상~전망대~암릉길~김녕김씨 묘~밤나무밭~대나무숲~사연교~동화버스정류장. 대략 5시간 정도 걸린다.

밀양버스터미널에서 표충사행 시외버스를 타고 삼거버스정류장에 내린다. 작지만 ‘구천마을’이라고 적힌 표지석을 보고 마을로 20여분 걷는다. 길옆에는 구천리에서 남명리 얼음골로 넘어가는 도로 공사가 한창이고 주변은 온통 대추나무 뿐이다. 마을사람들은 “대추하면 전국에서 밀양 단장면이 최고”라며 “특히 구천리 대추는 잘지만 맛이 뛰어나다”고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마을로 접어들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길을 택한다. 오른편 구천마을회관을 지나고 구천슈퍼에서 왼쪽 마을길로 들어서면 또 갈림길. 왼쪽길로 내려선다. 복개천을 지나 다시 왼쪽으로 틀어 개울따라 직진한다. 6m쯤 가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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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 보이는 깔끔한 전원주택을 지나 구천천을 끼고 100여m 넓은 길을 따라간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바로 왼쪽 산길로 올라선다. 오르자마자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길을 택한다. 길 좌우편 모두 대추나무 뿐이다.
   
   
 

오른쪽에 무덤이 보인다. 산행 초입부터 길이 가파르다. 올라서면 임도와 만난다. 오른쪽으로 5분쯤 걸으면 검은 천으로 덮인 버섯재배장이 나타난다. 가지런히 쌓아놓은 나무들이 새 생명을 기다리고 있다. 제일 위에 있는 버섯재배장 뒤로 올라선다. 임도는 가파르게 이어진다. 길 옆에 노란색 산수유꽃이 피어있고 다람쥐가 봄구경 나왔다.

임도가 끝나고 좁은 오솔길이 나오면 왼쪽 경사진 길로 오른다. 5분 뒤 길은 나무들에 의해 막혀 오른쪽 계곡쪽으로 길을 바꾼다. 계곡을 건너 오솔길로 올라선다. 10여분쯤 오르면 왼쪽에 커다란 바위들이 계곡을 막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암벽의 일부가 떨어진 것이다. 아래쪽에 작은 폭포가 보인다.

폭포를 왼쪽에 두고 다시 5분 정도 오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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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정면에 암벽이 턱 막고 있다. 자세히 보면 바위들 틈 사이를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막은 흔적이 보인다. 좁은 틈새로 몸을 움츠려 밑으로 들어가 보면 의외로 공간이 넓다. 통로는 건너편 계곡과 연결돼 있으며 지도상에는 ‘박쥐굴’로 표기돼 있다.

암벽을 왼쪽으로 돌아 계곡을 건너니 이번에는 가파른 산사면이 가로막고 서있다. 할 수 없이 왼쪽으로 올라 산길은 오른쪽으로 크게 에둘러 올라 간다. 폭포 위에 오르면 오른편에 전망대가 나온다. 발밑에는 마을서부터 올라온 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다시 산길로 들어서 길을 재촉하면 돌담의 흔적과 너덜을 지난다. 계곡을 다시 건너서면 능선길은 가파르게 올라선다. 전망대에서 15분이면 또 다시 폭포가 나타난다. 높이 30m, 폭 40m로 병풍처럼 펼쳐진 오버형 폭포다. 청도 지룡산 나선폭포와 생김새가 비슷하다. 되돌아 나오면 지그재그 오르막이다. 이제 본격 능선을 향해 오른다. 15분 정도 땀을 바짝 내고 오르면 정면에 전망대가 떡 버티고 있다. 바위를 타고 올라서면 오른쪽에서부터 백마산 향로산 재약봉 문수봉 관음봉 재약산 수미봉 사자봉 상투봉이 눈앞에 연이어 펼쳐진다.

짐승들이 파헤쳐 놓은 듯한 무덤을 지난다. 오른편 능선쪽에 폐금광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솔길 주변에는 온통 단풍나무 일색이다. 가을에 와도 운치있는 산일듯 하다. 전망대에서 20여분 계속 오르면 폐금광으로 향하는 임도 수준의 길과 만난다. 10분 정도면 폐금광에 도착한다. 이 폐광은 일제시대때 일본사람들에 의해 개발됐다. 인도의 석굴 같기도 하고 대형 고인돌 같기도 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정교하게 기둥을 만들어 여러 갈래의 통로가 보인다. 폐광 왼쪽길로 15분 정도 오르면 정각산으로 향하는 주능선에 오르고 왼쪽으로 7분 뒤에 정각산 정상에 닿는다. 그러나 정상에선 잡목숲에 가려 주변의 경관이 잘 보이지 않는다.

큰 소나무가 보이는 반대방향의 능선으로 하산한다. 5분쯤 후엔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한다. 왼쪽으로 가면 전망대가 있다. 발밑 물길이 크게 휘어 나가는 단장천과 사연천 사이로 뻗은 능선이 보인다. 취재팀이 내려갈 능선이다. 갈림길이 또 나온다. 오른쪽은 산내면으로 내려가는 길. 암반의 멋진 전망대를 밟고 지나간다. 20분이면 능선 길은 크게 갈라진다. 오른쪽 주능선으로 직진하면 승학산 방향이다. 왼쪽길을 택한다. 지금부터 40, 50여분간 암릉길이다. 암릉길 자체가 모두 전망대다. 위험하지만 재미있다.

암릉길이 끝나면 경사가 완만한 오솔길이다. 김녕김씨 묘를 지나면서 길 주변에 무덤이 잇따라 나온다. 이후 1시간 정도 깨끗한 길을 재촉, 밤나무밭 대추나무밭을 지나 대나무숲에 이르면 사연리마을이다. 난간없는 사연교를 건너 동화버스정류장에서 밀양행 시외버스를 탄다.

/ 글·사진=이흥곤기자

/ 산행문의=다시 찾는 근교산 취재팀 (051)500-5150, 245-7005


[떠나기전에]

 정각산(正覺山)은 정각산(鼎角山)이라고도 한다. 산봉우리의 모양이 마치 쇠뿔(牛角)과 같이 생겼다 하여 솥뿔(鼎角)로 쓰여졌다 한다. 그 능선에 기대어 삶을 영위하는 고향 같은 마을이 특히 많다.

 우선 버스에서 내리면 만나게되는 삼거. 구천 아불 표충사로 갈라지는 삼거리라는 뜻이며 세 계곡이 서로 만난다는 뜻에서 삼계로도 불린다. 들머리에 있는 구천리는 재약산(載藥山)에서 동서 골짜기를 중심으로 흘러내리는 아홉 계천(溪川)이 합쳐지는 마을이라 하였고, 고사구곡(姑射九曲)의 상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날머리의 사연리는 모래와 연못이 많은 아름다운 마을로 옛날에 신선이 학을 타고 내려 왔다는 승학동을 품고 있다. 기존의 산길인 아불(阿佛)은 그전에 아화(阿火)라 했는데 큰 불이 난다는 뜻. 마을에 큰 화재가 났으므로 지명이 불길하다하여 부처님의 가호를 빈다는 아불로 불려지게 되었다 한다.

 정각산 자락엔 문화재자료 제216호인 반계정이 있다. 영조때 산림처사로 이름이 높았던 반계 이숙의 별장으로 1775년 창건됐다. 그 외 곰이 물을 먹는 모양의 곰소는 구연 호박소와 전설을 같이하고 있으며 대추와 사과, 노지 깻잎 농사를 하는 산골 마을이다. 대추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정각산 산행을 시원한 봄 산행지로 적극 추천한다. / 이창우(만어산장) 산행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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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편]
 부산역에서 밀양행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는 오전 7시15분, 30분, 8시15분, 30분에 출발한다. 주말 5천2백원, 화 수 목 4천4백원, 월 금 4천9백원. 45분 걸린다. 밀양역 앞에서 밀양버스터미널까지는 시내버스를 탄다. 800원. 15분 소요. 밀양버스터미널에서 표충사행 시외버스를 타 삼거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오전 8시20분, 10시, 10시30분, 11시30분 출발. 1천8백원. 25분 걸린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동화버스정류장에서 밀양버스터미널행 시외버스를 탄다. 오후 4시10분, 40분, 5시, 5시40분, 6시10분, 40분, 7시10분, 8시5분 출발. 1천4백원. 밀양버스터미널에서 밀양역까지는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밀양역에서 부산행 무궁화호는 오후 5시25분, 55분, 6시10분, 23분, 47분, 7시16분, 49분, 8시3분, 18분에 있다.
hung@kookje.co.kr  입력: 2003.03.26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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