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가라쿠니다케의 한자 표기 韓國岳에서 '국'자는 원래 약자(口+玉)를 사용하는데 이 놈의 티스토리에서 약자를 카피해서 앉혀보니 엉뚱하게 깨져 어쩔 수 없이 韓國岳을 사용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산 이름은 가라쿠니다케(1700m)지만 한자 표기는 신기하게도 '韓國岳(한국악)'입니다."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이국땅 일본 남규슈 미야자키에서였습니다. 정상적이라면 한국을 의미하는 '강고쿠'를 붙여 '강고쿠다케'라 불러야 하지만 이 산은 '가락국'을 의미한다며 '가라(가야)/ 쿠니(국)/ 다케(산)'로 풀이하더군요. 

 
고대 일본과 한반도와의 연관성을 고려해볼 때 충분히 개연성을 지닌 가설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호기심이 발동해 좀 더 물어봤지만, 현지에서는 아쉽게도 더 나올 게 없었습니다.

  가라쿠니다케 정상 바로 아래에서 본 기리시마 산군. 가운데 푹 꺼진 곳이 지난 7월 화산 폭발을 일으킨 
  신모에다케이고 맨 뒤 높은 봉우리가 일본인들이 신성시하는 다카치호미네이다.


 일본 땅, 그중에서 규슈 남단의 미야자키에서 '韓國岳'이 '가라쿠니다케'로 불리게 된 배경이 무엇이었을까요.

 '일본서기'에 따르면 4세기 한반도에서는 거듭된 전쟁 때문에 새로운 생활 무대로 일본 열도가 대두하자 가야 백제 신라 유민들이 집단 이주를 하기 시작했답니다. 당시 열도에는 통일된 국가라기보다 호족이 지배하는 소국이 산재해 언어 관습 등이 지역마다 달랐다고 합니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을 '멀리서 온 사람'이라는 의미의 '도래인'(渡來人)으로 불렀답니다. '도래인'은 토목 양잠 등 당시로선 선진기술을 사용했고, 한문으로 외교 문서를 작성하는 등 일본인의 생활 향상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고향을 떠나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미야자키에 정착한 '도래인'도 예외가 아니었겠지요. 보름달이 뜨면 그들은 미야자키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가라쿠니다케에 올라 고향인 한반도 방향을 바라보며 수구초심의 마음을 느끼며 흐느꼈겠지요.
하지만 일본의 건국 신화를 다룬 '고사기'에 적혀 있는 내용과 달리 가라쿠니다케에서 한국은 아예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고 싶다는 열망의 우회적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라쿠니다케는 미야자키의 서쪽 끝 가고시마와의 경계에 솟아 있습니다. 행정구역으론 미야자키현 고바야시市에 똬리를 틀고 있는 셈이지요.

 앉은 터로 봐선 결코 평범한 산이 아닙니다. 일본 국립공원 1호의 일부인 기리시마 산 군의 시·종점이자 최고봉입니다. 곳곳에 분화구와 칼데라가 산재해 이국적 풍광을 선사하는 기리시마 산군은 일본의 대표적 활화산 지대입니다. 주요 봉우리는 가라쿠니다케(1700m) 시시고다케(1428m) 신모에다케(1421m) 나카다케(1345m) 다카치호미네(1574m) 등 5개. 한국인들은 가라쿠니다케를 주로 찾지만, 일본인들은 일본국을 세운 신들이 내려왔다는 전설을 간직한 다카치호미네를 선호합니다.

에비노고원에서 가라쿠니다케로 오르는 들머리.

30~40m쯤 올라 내려다본 들머리.


들어리 입구에는 신모에다케의 출입을 금한다는 문구가 한글로 적혀 있다.

해발 1200m로 올라오는 에비노고원의 꼬부랑길. 경남 함양 마천으로 가는 지안재길이 연상된다.

기리시마 산군의 5개 봉우리를 잇는 종주 거리는 13.7㎞로 5시간쯤 걸립니다. 하지만 맨 가운데 신모에다케가 지난 7월 화산 폭발을 일으켜 지금은 종주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은 산행 들머리에 한글로 적혀 있지만, 한국인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용감하게 종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행한 기리시마 네이처가이드클럽 후루조노(63) 씨는 그래서 "한국인들은 매너가 좋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순간 얼굴이 후큰 달아올라 표정 관리하느라 애간장 좀 탔습니다.

          지난 7월 화산 폭발 당시의 신모에다케. 이 사진은 후루노조 씨의 친구가 위험을 무릅쓰고 찍었다.
           들머리에서 약간 오르면 건너편에 구릉이 하나 보인다. 이오야마라는 휴화산으로 242년 전에
              화산 폭발로 인해 만들어진 산이란다. 30년 전 연기는 났지만 폭발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라쿠니다케만 올라 허전하다면 기리시마 산군에서 가장 큰 칼데라호인 오나미이케(大浪池)를 다녀오는 코스를 택한다면 좋을 듯 합니다. 에비노고원에서 오르는 데 1시간20분, 오나미이케까지 1시간, 지름 1㎞인 오나미이케를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30분, 다시 가라쿠니다케까지 1시간, 하산하는 데 1시간 등 모두 5시50분쯤 걸립니다. 

  가라쿠니다케에서 기리시마 산군에서 가장 큰 칼데라호(지름 1 ㎞)인 오나미이케(大浪池)로 가는 길이 무척 아름답다.
  한자 표기로 봐선 큰 파도가 일렁이는 못이라는 의미의, 지름이 1 ㎞인 오나미이케(大浪池).

 미야자키 고바야시 출신으로 평생 이곳을 떠나지 않고 고향을 지켜온 토박이인 후루조노(오른쪽 사진) 씨는 "가라쿠니다케는 아마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눈을 감고도 오를 수 있을 정도랍니다.


그는 이번 주도 5일을 올랐다고 합니다. 하산 후 헤어지기 전 우연히 본 그의 차 트렁크에는 텐트부터 코펠 등 온갖 등산용품이 가득했습니다. 전형적인 산꾼이었습니다.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보이자 그는 웃으면서 마누라에게 오늘 밤 당장 쫒겨나도 견디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예의 사람 좋은 표정으로 농담을 던지더군요.

 가라쿠니다케만 오르려면 차가 올라가는 에비노고원(1200m)에서 왕복 4.2㎞만 걸으면 가볍게 다녀올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의 보통 걸음으로 통상 오를 땐 1시간20분, 정상에서 20분, 하산 때 1시간 정도 잡으면 됩니다. 화산 폭발에 의해 생성된 이 산 정상부에는 온통 붉은빛의 화산암과 흙이 눈길을 끕니다.

 가라쿠니다케 정상에선 기리시마 연봉이 한눈에 보이는 데다 날이 맑을 땐 이웃한 가고시마현의 대표적 활화산인 사쿠라지마가 뿜어내는 하얀 연기까지 보입니다. '韓國岳'이라 적힌 정상 이정표 너머에는 300m쯤 되는 낭떠러지 아래 한라산 백록담의 5배쯤 되는 거대한 분화구가 등산객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먼발치에는 기리시마 산군에서 가장 큰 칼데라호인 지름 1㎞가 넘는 오나미노이케(大浪池)도 시야에 들어온다.

 후루조노 씨는 "5~6월이면 키 작은 산철쭉인 미야마 기리시마가 온 산을 불태워 한국에서도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고 말했다.

 참 한 가지 더 소개할 것이 있습니다. 후루노조 씨는 가라쿠니다케에만 있는 한국 나무가 있답니다. '탐라나무'가 바로 그것입니다. 일본어로는 사외후다기(받아 적긴 적었는데 바로 적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합디다. 다른 산에는 보이지 않고 유독 가라쿠니다케에만 발견된다고 합니다. 매년 8월이면 하얀 꽃을 피운답니다.

탐라나무.

당겨서 찍어봤다.


  전체적으로 생각해볼 때 후루노조 씨의 설명은 앞뒤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상머리에 앉아 10년쯤 된 강의노트 한 권 달랑 들고 강의하는, 공부 안 하는 학자보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사람들이 더 정확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 내용은 발로 뛰며 제대로 공부하는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 두겠습니다. 행여나 이 글을 읽는 분 중 자세한 내용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설명을 좀 해주세요.

처음엔 가파른 길이 계속된다.

무엇일까요. 무인 사람 수 측정기.

- 미야자키현 관련 글

미야자키 (1)편 인간에게 무관심한 남쪽나라 미야자키 고지마섬 원숭이들 http://hung.kookje.co.kr/518
미야자키 (3)편 '골프 천국' 미야자키에서 여유있게 즐기는 꿈의 라운드 http://hung.kookje.co.kr/519


 

어둠 뚫고 오르면 헉! 화강암 천지

4095.2m 동남아 최고봉…세계자연유산
남중국해 일출…발아래 운무 감탄 연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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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내려 키나발루봉 쪽으로 가는 도중 바라본 키나발루봉(왼쪽). 우측은 키나발루봉 관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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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890m의 팀폰게이트(왼쪽). 이 문을 통과해야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우측은 산행 중 만나는 무인 대피소. 1시간 간격으로 있으며 물과 화장실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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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길의 연속. 196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체계적인 산림 보호로 훼손이 거의 없다. 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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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 7~8시간의 산행은 끊임없는 오름길의 연속. 때문에 고도를 높일수록 쉬는 횟수가 점차 늘어난다.(왼쪽) 우측은 식충식물 네펜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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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을 하게 될 라반라타 산장(해발 3353m).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결코 잘 수 없다. 침대는 모두 136개. 결국 하루에 최대 136명만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셈이m다. 그 만큼 관리를 엄격하게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려면 최소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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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반라타 산장에서 다음날 등정을 대비해 휴식을 취하며 망중한을 즐기는 산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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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발 4095.2m로 동남아 최고봉인 말레이시아 키나발루봉 정상. 첫 등정은 1899년에야 영국인 식물학자
    화이트 헤드에 의해 이뤄졌다. 그는 봉우리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 대신 40여 년 전에 두 번이나 등정을
    시도해 실패한 헉 로우의 이름을 따 로스픽(Low's Peak)이라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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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각도에서 본 키나발루봉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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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꾼들은 새벽 3시에 출발, 어둠 속에서 3시간 정도 모진 추위와 고행의 급경사길을 극복하고 오전 6시께 남중국해에서 떠오르는 아름다운 일출을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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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4095.2m의 키나발루 정상 인근에 서면 산 전체가 하나의 화강암 덩어리로 이뤄져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사진은 정상에서 바라 본 사우스픽(남봉·왼쪽)과 우측으로 세인트 존스봉의 일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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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봉으로 불리는 사우스픽(왼쪽). 사우스픽은 등정 가능해 하산할 때 잠시 올라봐도 된다. 우측은 세인트 존스봉. 자세히 보면 오랑우탄의 웃는 얼굴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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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각도에서 본 사우스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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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픽 맞은편, 즉 하산길 왼쪽에 위치한, 두 봉우리가 나란히 솟은 못생긴 자매봉(왼쪽). 우측은 화강암 암반 위에 해발 4008m임을 알려주는 팻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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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타키나발루市의 석양과 키나발루봉에서 본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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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왼쪽)과 하산 후 라반라타 산장에서 아침식사를 하기 전 기자와 기자의 동료가 지친 나머지 산장 식당 앞에서 햇볕을 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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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 다음날 자리를 옮겨 인근 마누깐섬에서 해양스포츠와 시푸드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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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면적은 754㎢로 대략 지리산의 1.5배. 믿기 어렵겠지만 산 전체가 하나의 화강암 덩어리로 이뤄져 있다.

196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체계적인 산림 보호로 훼손이 거의 없다. 해발고도는 4095.2m. 동남아 최고봉이다.

덕분에 열대 아열대 온대 고산지대의 다양한 식물군이 분포, 생태학적 가치가 뛰어나 2000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야생난 및 야생화 각각 100여 종, 양서류 70여 확인돼 당시 유네스코 관계자는 "이처럼 좁은 지역에 집결된 완벽한 생태계는 전 세계에 유례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평했다 한다.

이쯤 되면 웬만한 산꾼들은 감을 잡았을 게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시(市)에 우뚝 솟은 키나발루산이다. '코타'는 말레이어로 도시라는 뜻으로 그 만큼 키나발루가 이 도시를 대표하는 산임을 의미한다.

'동토의 제국' 히말라야처럼 인간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오지속의 오지에 위치한 것도 아닌데 키나발루는 오랫동안 미답의 산으로 남아 있었다.

야심찬 등반가들의 도전이 있었을 법도 한데 이처럼 미답봉으로 남았던 이유는 순전히 현지 고산족 원주민인 두순족이나 카다잔족이 키나발루를 '죽은 영혼의 안식처'라 여기며 신성시한 때문이다. 그들은 이승을 마감하면 그 영혼이 키나발루 산꼭대기에 머무르며, 정상 부근의 바위에 자라는 이끼는 영혼들의 식량이라고 믿어 왔다. 지금도 고산족들은 매년 정상 부근에서 조상들의 혼을 달래는 의식을 열고 있다.

첫 등정은 1899년에야 영국인 식물학자 화이트 헤드에 의해 이뤄졌다. 그는 봉우리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 대신 40여 년 전에 두 번이나 등정을 시도해 실패한 헉 로우의 이름을 따 로스픽(Low's Peak)이라 명명했다.

산행 시간은 대략 10~11시간. 4000m가 넘는 거봉치고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고 오를 정도로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얼핏 당일 산행도 가능할 것 같지만 현지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는 고소 등 안전을 고려해 1박 2일 코스로 못을 박고 있다.

첫날은 7시간 내지 8시간 정도 비교적 여유있게 걷고, 해발 3353m에 위치한 산장에서 1박한다. 다음날은 새벽 3시에 출발, 어둠 속에서 3시간 정도 모진 추위와 고행의 급경사길을 극복하고 오전 6시께 남중국해에서 떠오르는 아름다운 일출을 감상한다. 그리고 왔던 길로 하산한다.

들머리는 해발 1890m의 팀폰게이트. 동화속의 작은 오두막을 연상되는 키나발루의 관문을 통과, 통나무 계단으로 내려선다. 산 정상에 오르기까지 유일한 내리막길이 1분 정도 지속되다 폭포라 부르기에 다소 민망한 카슨폭포를 지나면서 오르막이 시작된다. 정상까지 쭈욱.

   
야생 난과 양치류 이끼류, 그리고 잎이 큼직한 열대림이 우거진 밀림 숲속을 걷는다. 그렇다고 외화 '타잔'에서 본 것처럼 한 치 앞이 안보여 연신 칼로 장애물을 제거하며 나아가는 그런 산행은 결코 아니다. 되레 등로 주변을 벗어날 수 없을 만큼 너무 정비가 잘 된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25분 뒤 첫 쉼터. 이런 쉼터는 숙박지인 라반라타 산장까지 7개가 기다린다. 간격은 0.5~1.3㎞, 시간은 각각 20~40분 정도 걸린다. 각 쉼터마다 시원한 계곡물을 파이프로 끌어들인 물탱크가 있고, 청결한 간이 화장실도 있다.

이끼가 가득한 고색창연한 아름드리 고목에 야생난이 자라고 있고, 운이 좋으면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식물인 네펜시스도 볼 수 있다. 빨간색의 컵 모양을 한 네펜시스는 커다란 입 주변의 숨겨진 꿀에 방심한 곤충이 미끄러지면 안으로 잡아들여 가시로 차단한다.

셋째 쉼터를 지나면서 수목이 장대해지고, 맑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하얀 운무가 순식간에 밀려 올라온다. 넷째 쉼터까지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지만 점심을 먹는 다섯번째 쉼터부터는 여간 고행길이 아니다. 동시에 바람도 차가워 진다. 이쯤 되면 대략 2800m대. 비로소 정상 인근의 회백색 화강암 덩어리의 위용을 볼 수 있다. 등로 또한 화강암반이 지면으로 노출돼 울퉁불퉁하다. 수종 또한 분재를 빼닮은 키작은 나무들과 고사목들이 눈에 띈다.


1박할 산장엔 오후 4시를 전후해 닿는다. 한국 일본 중국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세계 각국의 등산객들로 붐빈다. 2~8인 1실의 이층침대로 잠자리는 그리 불편하지 않다.

다음날 오전 3시께 일출을 보기 위해 급경사 통나무 계단을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춥고 숨이 찬 데다 일부는 고소 증세까지 보인다. 여기에 칠흑같은 어둠속이다. 확률 50%인 비가 내리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반면 보온 장비를 제대로 갖춘, 컨디션이 좋은 사람들은 쏟아질 듯한 별들을 바라보며 게으른 소걸음으로 여유있게 오른다.

1시간쯤 뒤 무인대피소를 지나면 식물이 자라지 않는 완만한 경사의 광대한 화강암 평원이 펼쳐진다. '산 넘어 산'이라고. 급경사가 사라지니 이번엔 차디찬 바람이 휘몰아친다. 광야에서 목놓아 울고 싶을 정도로 처참하다.

참다 못한 무리들은 일순간 오르는 것은 잠시 제쳐두고 바위 틈새를 찾아 삼삼오오 남녀노소 불구하고 서로 부대껴안고 추위를 피한다.

일출은 대략 오전 6시. 서두르면 정상에서 휘몰아치는 찬바람에 오들오들 떨어야 하고, 뒤처지면 일출을 놓친다.

마침내 동쪽 저 멀리 남중국해에서 여명이 밝아온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시나브로 붉은 핏덩이가 주변을 붉게 물들이며 온 누리를 밝혀준다.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고통을 감내해 왔는가.

동시에 맞은편 코타키나발루 쪽 발아래는 운무가 융단처럼 깔려 있고 그 사이사이로 봉우리들이 산의 물결을 이룬 실루엣이 그림같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황홀하기까지한 대장관을 볼 수 있는 산, 키나발루. 전 세계의 많은 등산객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를 이제야 알 듯 싶다.

날이 밝아오자 정상 주변의 봉우리들 또한 선명하게 확인된다. 정상인 로스픽 뒤로 알렉산드라봉과 빅토리아봉, 우측으로 오랑우탄의 웃는 얼굴을 한 세인트 존스봉과 뾰족한 사우스픽(남봉)이 또렷하다. 특히 사우스픽은 등정 가능해 하산할 때 잠시 올라봐도 된다. 등로 왼쪽으로 두 봉우리가 나란히 솟은 못생긴 자매봉, 당나귀 귀를 닮은 덩키이어봉, 손바닥 모양의 퉁구압둘라만봉도 보인다. 라반라타 산장 등 산 아래에서도 확인되던 봉우리들이 알고 보니 등로 좌측의 봉우리들이다.

어둠속에서 무작정 오를 때와 달리 하산할 땐 비로소 키나발루가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지점에선 차가 다닐 수 있을 포장로로 착각할 정도로 편평하다.


# 떠나기전에-보르네오섬 최북단 코타키나발루市에 우뚝


보르네오섬 하면 우리나라 사람의 절반 이상이 아마도 목재가구를 떠올린다. '보르네오 가구' 때문일 게다. 같은 나무에서 절대 잠을 자지 않는다는 오랑우탄의 유일한 서식지가 바로 이곳이다. 말레이어로 '오랑'은 인간, '우탄'은 숲이다. 그 만큼 숲이 울창하다는 의미이다.

키나발루는 이 보르네오섬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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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보르네오섬을 살펴보자. 북쪽은 말레이시아 땅이고 남쪽은 인도네시아 땅이다. 인도네시아는 보르네오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칼리만탄'이라 부른다. 잠시 우스갯소리 하나. 보르네오섬의 영어 스펠링은 'Borneo'. 영어권에서는 모두 '보니오'라고 발음한다. 보르네오는 일본인의 발음을 그대로 우리나라가 따라한 것. 해서, 영어권 화자에게 '보르네오'라고 하면 절대 알아듣지 못한다.

말레이시아 땅인 섬 북쪽은 두 개의 주(州)로 구성돼 있다. 칼리만탄과 인접한 아래쪽은 수백만 마리의 박쥐가 서식하는 물루동굴로 유명한 사라왁주와 그 위쪽 사바주가 그것. 부자나라 브루나이는 남중국해와 인접한 사라왁주에 둘러싸여 있다.

키나발루가 위치한 코타키나발루는 사바주의 주도(州都)이자 연중 23~29도의 기온을 유지하는 관광 휴양도시이다. 보트로 10분 거리에는 사피 마누깐 마무띡 등 5개의 섬이 퉁쿠압둘라만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스노클링 등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산과 바다가 있는 우리의 속초시가 대비된다. 코타키나발루는 여기에 시파단섬 등 세계 최고의 다이빙 포인트가 있어 스킨스쿠버들의 낙원이며 골퍼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키나발루는 출발 전 라반라타 산장을 예약하지 않으면 결코 산행을 할 수 없다. 침대는 모두 136개. 결국 하루에 최대 136명만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셈이다. 그 만큼 관리를 엄격하게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려면 최소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키나발루행 상품은 통상 4박5일. 첫날은 공항 도착 후 2시간 버스로 이동, 둘째 셋째날은 산행, 넷째날은 인근 마누깐섬에서 시푸드와 해양스포츠를 즐긴 후 밤 11시에 인천행 비행기를 타고 다섯째날 아침에 도착한다. 부산서 출발하는 말레이 항공 비행기는 없다. 시차는 1시간.

최근에는 새로운 루트가 하나 열렸다. 라반라타 산장에서 1시간 거리의 무인대피소인 사왓사왓까지는 기존 루트와 동일하지만 이후 정상까지의 2시간 정도 걸리는 암벽 루트는 지난해 11월초 개방한 개척루트로 안전벨트와 제반 장비가 별도로 필요하다. 암벽에 안전 발판과 와이어선이 고정돼 있어 전혀 위험하지 않다. 일반인도 이 루트로 등정 가능하다. 어린 아이도 가능하다. 대신 장비 렌탈비 등 경비가 약간 더 든다.

다음은 개척루트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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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트레킹 전문사인 카일라스 투어(02-322-8811)
 

'일본의 지붕' 북알프스를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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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북알프스 호다카 연봉의 최정상 오쿠호다카다케(3190m)에서 마에호다카다케(3090m·왼쪽 봉우리)로 내려서는 해발 3000m쯤 되는 능선길에서 바라본 장쾌한 조망. 그 뒤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산의 물결이 중앙알프스와 남알프스이고, 다시 그 뒤로 일본의 최고봉 후지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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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 부분을 당겨 본 모습. 구름과 조화를 이룬 산그리메의 풍광이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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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보다 더 당겨 잡은 후지산 모습.
 

 


일본 근대화의 시발점인 메이지 유신 이후 1860년대 후반
영국의 월터 웨스턴이 일본에 발을 내디뎠다.
선교사인 그는 이미 유럽의 알프스를 모두 정복할 정도로
전문 산악인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만년설로 뒤덮인 3000m급의 고봉준령을 하나씩 오르내리면서
그는 이 산군들이 유럽의 알프스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일본알프스'라 명명했다.
귀국 후 그는 일본알프스의 등반을 주내용으로 하는
'일본의 등반과 탐험'이라는 책을 펴냈다.
비로소 일본알프스가 전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근교산 시리즈 500회를 맞은 국제신문 산행 취재팀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애독자 산꾼과 함께
1998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나가노현의 북알프스를 올랐다.
일본알프스의 최북단에 위치한 북알프스에는
3000m가 넘는 일본의 26개 봉우리 중 12개가
집중돼 있어 흔히 '일본의 지붕'으로 불린다.
전형적 육산인 남알프스와 조그만 중앙알프스에 비해
험하기론 일본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악명 높은 곳.
세계적 산악인 박영석의 등정 프로필에도 등재돼 있다.


부산을 비롯해 밀양 대구 심지어 구미에서 온 산꾼 35명은
발 아래가 천리 낭떠러지인 수직 쇠사다리를 잇따라 오르내리고
쇠사슬에 의지해 숱한 험난한 고비를 넘기고 또 넘겼다.
2300m 이상의 고지대에서만 자라는 형형색색의 희귀 고산식물,
만년설과 빙하의 침식으로 생성된 반원형 U자 계곡, 카르
3000m대의 고도감을 느끼면서 바라보는 장쾌한 조망은
국내에선 전혀 느낄 수 없는 색다른 체험이다.


마침내 후지산(3776m)과 남알프스의 키타다케(3192m)에 이어
일본서는 세 번째로 높은 오쿠호다카다케(3190m)에 올랐다.
하늘도 500회를 맞아 찾은 취재팀을 도와 산행 내내 쾌청해서
일년 중 10일 정도 모습을 보인다는 후지산도 볼 수 있었다.


고희를 한 해 앞둔 할머니도, 정년 퇴임한 교장선생님도
예순을 넘은 '젊은 오빠' 산꾼들도
애오라지 남편만 믿고 산행에 가담한 아줌마 산꾼들도
믿음직한 산행대장의 지휘 아래 한 사람의 낙오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근교산 시리즈를 매주 보면서 꾸준히 산에 오른
덕분이라고 감히 생각하고 싶다.


강산도 변한다는 십 년의 세월동안 '근교산'을 사랑해준
애독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하면서
처음과 같은 기분으로 매주 변함없이 찾아뵙겠다고
머리 숙여 약속드립니다.



◆산행기

화산·빙하가 빚은 열도 산행 1번지

이틀간 27㎞ 16시간 걸어
너른 잔디밭에서 아찔한 빙식 지형까지
몸은 힘들어도 눈은 황홀
산장에선 생맥주 한잔의 낭만
보기 어렵다는 후지산 조망 행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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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발 2450m에 위치한 가라사와 산장 테라스에서 바라 본 호다카 연봉. 왼쪽이 마에호다카다케,
        오른쪽이 최고봉 오쿠호다카다케. 빙하침식으로 생성된 U자형의 가라사와 계곡에는 아직도
        만년설이 남아 있다.


 
 섬나라 일본의 최고봉은 원추형의 후지산(富士山·3776m). 이 산은 온통 조그만 부석(浮石)으로 깔려 있어 한 걸음 오르면 반 걸음 미끄러지는 등 산행지로서의 매력은 사실상 전무하다. 천황과 마찬가지로 그저 상징성만 존재할 뿐이다.

산행지로서 일본이 자랑하는 명소는 일본알프스의 북단에 위치한 북알프스. 중부산악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일본 최고의 비경지대로 손꼽히는 북알프스는 일본열도의 중앙부에 거의 남북으로 뻗어 있는데다 3000m가 넘는 일본의 26개 봉우리 중 12개가 집중돼 있어 '일본의 지붕'으로 불린다.

1998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나가노현, 동해와 맞닿은 도야마현, 기후현 등 3개 현에 걸쳐 있는 북알프스는 위도 상으론 한반도보다 아래지만 대륙의 찬 시베리아 기단이 동해를 건너며 수분을 흡수, 연간 30m 가까운 폭설로 설국을 이룬다.

이 때문에 3000m급 산군으로는 흔치 않게 빙하가 사시사철 목격된다. 특히 눈이 녹기 시작하는 초여름이면 산 아래에는 설경을 배경으로 활짝 핀 야생화가, 산허리쯤에는 울창한 원시림이, 정상 부근에는 설원이 각각 장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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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가미코지에서 몸도 풀고, 기념 사진도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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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원숭이도 휙휙 지나가고(왼쪽) 흔들다리고 건넌다.



근교산 시리즈 500회를 맞는 국제신문 취재팀은 부산 및 경남북 산꾼 35명과 함께 이 북알프스를 올랐다.

산행은 가미코지~갓파바시~묘우진 산장~도쿠사와 산장~요오코 산장~혼타니바시~가라사와 산장(1박)~자이텐구~호다카 산장~오쿠호다카다케(3190m)~기미코 다이라~주타로 신도~다케사와(휘테)~가미코지 순. 도상거리 27㎞를 이틀에 걸쳐 각각 7, 9시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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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는 일본 근대 알피니즘의 발상지인 가미코지(上高地·1523m).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명소로 최근 일본 NHK가 선정한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명승지 100선 중 7위를 차지할 만큼 경관이 빼어나다.

주차장을 벗어나 우리나라의 내소사 전나무터널을 연상케 하는 숲길을 걸으면 가미코지의 관문인 현수교 갓파바시. 3000m급의 호다카 연봉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왼쪽은 니시호다카다케, 오른쪽은 묘우진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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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쿠사와 산장. 이곳은 북알프스를 배경으로 한 한 등산연애부문 베스트셀러 소설 '빙벽'의
      주무대로, 너른 잔디밭이 펼쳐져 잇어 마치 대학 캠퍼스를 연상케 한다.

이번 산행은 이 연봉의 우측으로 열린 기나긴 계곡길을 에돌아 연봉의 뒤쪽에서 치고 오른 뒤 정면에 보이는 봉우리로 하산, 갓파바시를 건너 원점회귀한다.

첫 11㎞ 정도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임도 수준의 숲터널. 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빙하가 녹아 흐르는 계류에는 일본 천연기념물인 이와나(岩魚)가 물살을 가르고, 새끼를 등에 태운 일본원숭이가 이리저리 뛰어논다. 지칠 때쯤이면 묘우진, 도쿠사와, 요오코 산장이 45분 간격으로 잇따라 나타나 이방인들을 맞는다. 특히 도쿠사와 산장은 북알프스를 배경으로 한 등산연애소설 '빙벽'의 주무대로, 너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어 대학 캠퍼스가 연상된다. 동행한 조대제 산행가이드는 "일본의 산장은 한국과 달리 개인이 운영해 주인의 의지가 반영될 수 있다"고 말한다.

3시간에 걸쳐 요오코 산장에 도달했지만 겨우 해발 100m 정도 올랐을 뿐이다. 이날 묵어야 할 가라사와 산장(2450m)까지는 800m 정도 더 올라야 한다.

여기서 직진하면 2박3일 코스의 야리가다케 가는 길, 취재팀은 다리를 건넌다.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등로는 좁아지고 가팔라진다. 병풍암이라 불리는 뵤부이와의 위용을 감상하며 1시간쯤 걸으면 가라사와 계곡의 관문인 혼타니바시(本谷橋). 흔들림이 심해 한 사람씩 건너야 한다. 이때 처음으로 계류를 접할 수 있지만 빙하 녹은 물이라 10초 이상 손을 담그지 못할 정도로 아주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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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을 하게 될 가라사와 산장 앞 텐트촌(왼쪽). 일본의 젊은이들은 돈 문제를 떠나 이처럼 텐트에서 주로 잠을 잔다. 우측은 산장과 텐트촌.

계속되는 오름길. 돌밭길과 너덜길을 번갈아 지나면 만년설과 산행팀이 묵을 가라사와 산장과 이웃한 또 다른 산장인 가라사와 휘테가 시야에 들어온다. 동시에 그 뒤로 푹 꺼진 능선 우측에 다음날 잠시 들를 호다카 산장도 보인다. 이제 등로 옆에는 멀리서 봐 온 만년설이 있지만 까만 먼지가 뒤덮여 그리 반갑지는 않다.

산장 코앞은 오랜 기간 쌓인 만년설이 그 무게를 지탱치 못해 흘러내리면서 산을 깎아 만든 반원형 계곡으로 일명 '카르'이며, 동시에 병풍처럼 우뚝 선 3000m급 뾰족 봉우리는 빙식 첨봉이다. 학창시절 지구과학시간에 배운 빙하침식 지형인 셈이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는 못 미치지만 완경사의 너른 너덜지대에는 한눈에 봐도 비박을 위한 70여 개의 형형색색 텐트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산행팀이 묵은 가라사와 산장의 테라스는 북알프스의 그 어디보다도 정취가 있다. 병풍처럼 펼쳐진 호다카 연봉을 바라보며 생맥주 한잔을 들이킬 수 있는 이 기분, 이번 산행의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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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와 산장 테라스에서 산꾼들은 북알프스를 감상하며 생맥주를 즐긴다(왼쪽). 우측은 산장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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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다카 산장. 1박을 한 가라사와 산장에서 2시간 거리(왼쪽). 이때부터 쇠사슬을 잡고 올라 20m쯤 되는 무시무시한 직벽을 쇠다리에 의지해 오른다(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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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m급으로 올라오면서 발아래로 1박을 한 가라사와 산장이 보이고(왼쪽) 구름과 운무가 펼쳐는 멋진 풍광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온다.

조대제 가이드는 "한겨울 눈이 한창 내릴 땐 발 밑의 가라사와 휘테는 완전히 덮일 뿐 아니라 이곳 가라사와 산장의 테라스까지도 눈이 쌓여 모든 인력이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다음날은 대개 오전 6시에 출발한다. 일정상 오후 4시쯤 산행을 끝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산장의 공중화장실 뒤로 난 돌계단으로 오른다. 크게 보면 정상 우측 너덜로 올라 산사면을 타고 좌측으로 서서히 정상을 향해 접근하는 셈이다.

전날의 등로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가파르고 험하다. 자이텐구라는 꽤 험한 둔덕을 오르면서 가이드가 스틱을 접으라고 한다. 쇠사슬을 잡고 사다리를 타야 되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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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알프스 최고봉 오쿠호다카다케. 정상에는 산악신앙의 징표인 조그만 신사가 서 있다.
 

고도를 점차 높이자 일순간 연봉 사이로 북알프스의 최고봉 오쿠호다카다케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 산장인 호다카(2983m)는 가라사와에서 2시간 남짓.

이때부터 쇠사슬을 잡고 올라 20m쯤 되는 무시무시한 직벽 쇠다리를 잇따라 오른다. 올라서자마자 뒤로 '일본의 마테호른'이라 불리는 야리가다케가, 우측으론 운무의 바다와 더불어 니시호다카다케가 보인다. 야리가다케는 손에 잡힐 듯 하지만 꼬박 하루가 걸린단다. 야리가다케는 매년 일본 산악잡지에서 선정하는 일본 산 인기순위에서 최고봉인 오쿠호다카다케와 1, 2위를 다툴 만큼 인기가 높다.

또 다시 쇠사슬에 의지해 암벽을 타고 암릉을 힘겹게 오르면 마침내 오쿠호다카다케 정상. 일본의 산이 그렇듯 산악신앙의 증표로 신사가 서 있다. 우측 발아래는 저 멀리 들머리 가미코지와 그 우측 활화산인 야케다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본 최고봉 후지산도 선명히 보인다. 이와 관련, 가이드는 "7년 동안 70여 번 이곳에 올랐지만 두 번째 본다"고 감격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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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지나 하산하는 길. 여전히 북알프스의 근육질 암릉은 위용이 있다.


이제부턴 하산길로 급경사 내리막길. 쇠사슬과 쇠사다리가 곳곳에 있어 아주 위험하다. 정면엔 마에호다카다케. 암릉길 옆 산사면 곳곳에는 오랜 기간 눈에 묻혀서인지 누운잣나무가 옆으로 가지를 뻗어 군락을 이룬다.

50분 뒤 뜻밖의 너른 터. 일명 기미코 다이라(紀美子平)다. 마에호다카다케는 여기서 400m 거리지만 왕복 80분 정도는 잡아야 할 정도로 아주 험하다. 건각들은 대개 배낭을 두고 다녀온다.

오래 전 호다카 산장의 이마다 주타로 부부가 등로 개설을 위해 능선상의 유일한 평지인 이곳에 텐트를 친 후 어린 딸 기미코를 눕혀 놓고 칼등인 하산길을 개척했다 해서 각각 '기미코 다이라' '주타로 신도'라 불린다. 안타깝게도 기미코는 20세때 불치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주타로는 지금의 호다카 산장 주인의 조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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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나오는 풍혈과 하산길의 마지막 산장인 다케사와. 눈사태로 주저앉아 공사중이다.

마지막 하산로인 주타로 신도 또한 방심해선 안될 험로 중의 험로. 잇단 쇠사슬과 쇠사다리가 없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주황색 지붕의 다케사와 산장이 발밑에 있지만 90분 정도 걸린다. 다케사와 산장은 지난해 눈사태로 주저앉아 지금은 간이 매점에 불과하다.

이때부터 가미코지까지는 5㎞ 정도의 평범한 산길. 대략 2시간은 잡아야 한다.


# 떠나기전에-완전 종주는 무려 15일 소요 …한국인 운영 산장도 있어  
 
일본알프스는 크게 북알프스 중앙알프스 남알프스로 구분된다. 원시림으로 덮인 남알프스는 전형적 육산인 우리의 지리산과 비슷한 반면 북알프스는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으로 대변되는 설악에 비유된다. 두 산군 사이에 위치한 중앙알프스는 조그마해 당일치기 산행지이다.

북알프스의 도상거리는 최남단인 야케다케(2455m)에서 니시호다카다케(2909m) 쿠호다카다케(3190m) 야리가다케(3180m)를 거쳐 동해와 맞닿은 도야마현과 설국의 배경이 되는 니가타현의 경계인 오야시라츠 해변까지 무려 150㎞. 15일 종주 코스다.

이번에 오른 호다카 연봉은 북알프스의 남부에 위치한다. 가라사와 산장에서 1박을 하며 최고봉인 오쿠호다카다케를 반시계 방향으로 작게 한 바퀴 돈다. 1박을 더 한다면 요오코 산장에서 다리를 건너지 않고 직진, '일본의 마테호른' 야리가다케를 거쳐 각각 야리가다케 산장과 호다카 산장에서 1박을 한 후 오쿠호다카다케와 마에호다카다케(3090m)를 거쳐 다케사와 산장으로 크게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셈이 된다. 이 경우 도상거리가 12㎞가 더 늘어 39㎞가 된다.

문의 등산 트레킹 전문 카일라스 투어 (02)322-8811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o.co.kr
 


 

 불경이 적힌 오색찬란한 깃발인 룽다가 펄럭이는 티베트의 관문이자 수도인 라싸.
해발 3600m 지점에 위치한 라싸 공가공항에 내려도 벌써 고소를 느껴 머리가 깨지듯 아프다고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방법은 단 하나. '낮은데로 임하소서'. 해서 여행사들은 고소 적응을 위해 라싸보다 해발고도가 300m쯤 낮은 티베트 문화의 발원지 체탕으로 이동, 하룻밤을 묵은 뒤 라싸로 이동한다.

 라싸의 대표적 볼거리는 조캉사원과 포탈라궁.
 조캉사원은 티베트이면 평생 한 번 순례하는 게 소원인 티베트 불교의 총본산이며, 라싸 시내 한 가운데 포탈라 언덕에 우뚝 솟은 포탈라궁은 달라이 라마가 주로 겨울에 머물던 겨울 궁전. 현재 티베트의 유일한 세계문화유산이다.

 포탈라궁과 조캉사원을 비롯한 라싸의 사원들은 실내에서 사진촬영 금지 구역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몰래 촬영을 하기도 한다. 물론 벌금을 매기지만 한국사람들은 '그까짓 푼돈쯤이야'라며 벌금을 감수하며 사진촬영을 강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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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티베트 승려들은 휴대폰에 디지털 카메라를 갖고 있다. 특히 디카는
                    능수능란하게 사용해 몰래 사진을 찍었다간 강제로 삭제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요즘엔 그것도 안 통한다. 티베트 승려들이 작전을 바꿔 벌금은 벌금대로 받고 디지털 카메라 작동법까지 익혀 직접 사진을 지우기 때문이다.

 포탈라궁에서 사진을 찍다가 들킨 한국의 한 관광객은 벌금은 물론 포탈라궁 이외에서 몰래 찍은 사진까지 모두 삭제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지켜야 하는 법.
 앞으로 티베트에서 몰래 촬영은 절대 하지 말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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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싸 시내 포탈라 언덕에 우뚝 솟은 포탈라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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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미코지(上高地)로 하산하는 도중 만나는 풍혈. 등산로 상의 작은 돌틈 사이에서 찬바람이
            나오는 데다 안내판까지 있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일본이 자랑하는 북알프스에도 풍혈이 있습니다. 중부산악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일본 최고의 비경지대로 손꼽히는 북알프스는 일본열도의 중앙부에 거의 남북으로 뻗어 있는데다 3000m가 넘는 일본의 26개 봉우리 중 12개가 집중돼 있어 '일본의 지붕'으로 불립니다.
 북알프스의 일반적인 들머리는가미코지(上高地,1523m). 일본근대 알피니즘의 발상지인 가미코지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명소로 최근 일본 NHK가 선정한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명승지 100선 중 7위를 차지할 만큼 경관이 빼어난 곳입니다.

 북알프스의 풍혈은 최고봉인 오쿠호다카다케(3190m)를 지나 주타로신도와 다케시와 산장을 거쳐 가미코지로 하산하는 도중에 만날 수 있다. 풍혈에서 가미코지까진 대략 1시간 정도 걸립니다.
 
 하산 도중의 숲길의 작은 돌틈 사이에 찬바람이 나와 산꾼들은 반드시 여기서 땀을 식히고 내려갑니다. 한자로 '風穴'이라 적힌 안내판이 있어 놓치기도 어렵습니다.
 
 풍혈로 유명한 경북 의성의 빙계계곡의 풍혈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찬바람이 아주 시원하답니다.
 
 화산섬, 지진지대 그래서 온천이 떠오르는 일본에서의 풍혈은 한마디로 예상밖이었습니다.

아!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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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문봉에서 철벽봉을 지나 가파른 화구벽으로 내려서는 국제신문 근교산 산행팀. 화구벽을 지나면 등산화를 벗고 승사하를 건너 천지물가인 달문에 닿는다. 사진 우측 상단에는 녹명봉 백운봉 청석봉 줄기가 차례로 보이며 왼쪽 상단 구름 사이로 쑥 들어간 부분이 5호 경계비가 있는 곳이다.



부산에서 심양, 심양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연길까지
연길에서 백두산 서파 입구까지 또다시 버스로 8시간
주차장에 내려 2200개의 계단을 올라 다다른 5호 경계비

불과 1m 높이의 초라한 표지석이지만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이다
얼마전까지 경비초소와 녹슨 철사줄 한가닥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사라져 국경같은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중국쪽은 빨간 글씨로 '中國'
북한쪽은 파란 글씨로 '조선'이라 적혀 있다

한발 건너면 북한 땅, 한발 당기면 중국 땅
감격도 감격이지만 왠지 서글픈 마음이 앞선다

내 땅을 지척에 두고
중국 관광객의 자격으로 올라야 하는 서글픈 현실
전후세대가 이토록 회한이 뒤섞여 눈물이 날 정도인데
이북 출신으로 한국전쟁을 겪은 어르신들의 감회는 어떠랴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천지
단순 비교하면 각각 전라북도의 면적과 여의도의 크기
한라산과 백록담을 상상했다면 상상의 나래를 더 펼치자
노란만병초 애기금매화 큰오이풀 왕자붓꽃 두메양귀비…
고산화원 천상화원으로 불리는 세계 최대의 야생화 군락지

1980년 유네스코 자연보호구로 지정된 인류 공동의 자연유산
6월까지 잔설이 있고 7, 8월에는 야생화가 수를 놓지만
9월이면 첫 눈이 내려 산행 가능 기간은 1년 겨우 3개월 남짓
최고 수심 384m, 평균 수심 213m, 해발 2257m의 천지

세계 최대 산정호수로
2500m급 이상 16개 연봉의 호위를 받는다
물은 맑고 차가워 맨발을 1분 이상 담그기 힘들고
시시각각 변하는 괴팍한 날씨로 베일 속에 자주 가린다
조선족 산행가이드가 들려주는 우스갯소리 하나
'천지에 올라 천지를 못보는 사람이 천지라서 천지'란다

뭐니뭐니해도 백두산 탐승의 하이라이트는 서파(西坡) 종주
한 산꾼은 서파종주 후 이렇게 말했다
"통일이 될 때까지 다신 백두산 산행을 하지 않으리라"고
5호 경계비에서 천지 물가인 달문에 이르는 13㎞의 종주길은
통일 이후 북녘땅을 통해 새로운 코스가 열리기 전까지
이보다 더 황홀한 코스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그랬다
휘몰아치는 비바람과 뿌연 안개 탓으로
눈 앞의 천지와 수백종의 야생화를 눈여겨 살펴보지 못했지만
한걸음씩 옮기면서 펼쳐지는 푸른 대평원과 능선길만으로
백두의 비범함을 온 몸으로 느꼈다
장엄하면서도 수려하고, 투박하면서도 곱디고운
그 자태에 그만 넋을 잃은 것이 여러 차례
꿈엔들 잊힐리야 백두산 천지

근교산 산꾼들은 한 몸되어 기원했다
통일되어 우리 땅에서 백두산 천지를 보는 날이 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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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봉에서 철벽봉쪽으로 가는 지점에서 그간 가려져 있던 천지의 자태와 주변 봉우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이 걷히면서 16연봉중 하나인 용문봉(2596m 가운데 상단 뾰족한 봉우리)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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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 전경. '천지에 올라 천지를 못보는 사람이 천지라서 천지'란다. 최근 '강호동의 1박2일'에서 천지를 볼 수 있는 날이 일년이 10일 정도라고 하는데 이는 약간 과장된 것이다. 북한땅과 중국의 경계인 5호경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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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땅과 중국의 경계인 5호경계비.


민족의 영산 백두산 서파 종주 산행기

발아래 우뚝 솟은 북녘땅, 광활한 만주벌판 호령
고행의 계단 지나 5호경계비서 시작, 6시간 소요
안개·구름 걷히니 16연봉 호위속 신천지가 활짝
천상화원 야생화에 '야~' 장백폭포 위용에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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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쪽 화구벽으로 내려가기 전 철벽봉 안부에서 바라본 백두산의 또다른 산줄기. 오른쪽 능선은 흑풍구에서 이어지는 고래등 능선이며 왼쪽 줄기는 소천지로 내려서는 능선이다.
 
 
시인 고은은 백두산 천지를 본 순간 아무 말없이 천지를 향해 큰 절을 올렸다고 한다.

한국인이라면 북받쳐 끓어 오르는 감정의 표현 방법만 다를 뿐 누구나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우리 민족의 영산이자 태(胎)자리인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굽어보는 이 순간을.

사실 천지는 애초부터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정면은 온통 뿌연 회색천국이었다. 동행한 조선족 가이드 조남철씨의 설명에 따르면 천지를 확연히 볼 수 있는 날은 한달 중 많아야 4, 5일 정도.

발만 동동 굴리며 무작정 기다리기를 30여 분.

'이야, 아!' 정말 한순간이었다. 흥분과 감탄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퍼런 천지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다 삼키고도 남을 만한 자태로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동시에 천지를 둘러싼 16연봉의 웅장한 모습도 손짓을 하며 다가온다. 왼쪽 북한쪽으론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2749m)을 위시해 비류봉(2580m) 쌍무지개봉(2626m) 등이, 오른쪽 중국쪽으로 백운봉(2691m)을 비롯한 마천우(2459m) 청석봉(2662m) 녹명봉(2603m) 차일봉(2595m)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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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백운봉으로 향하는 산행팀.  
 
하지만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딛고 있는 땅이 바로 중국의 영역이라는 점. 조선족이 대다수 살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연길이라지만 그래도 엄연한 중국땅이 아닌가.

국제신문 산행팀이 근교산 시리즈 400회를 맞아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찾았다. 이번 산행에는 부산경남지역의 마니아 산꾼 70여 명도 동행했다.

첫날 쏟아지는 비 때문에 서파 종주산행 내내 천지를 보지 못한 산꾼들은 다음날 북파코스 철벽봉 안부 부근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천지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평했다. 전율이 느껴질 만큼 감동 그 자체라고.

산 정상 부분에 흰 부석이 덮여 있어 이름 붙여진 백두산(白頭山)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가른다. 서쪽과 북쪽은 중국 길림성, 동쪽과 남쪽은 북한의 양강도에 속한다. 서쪽의 5호 경계비와 동쪽의 6호 경계비가 국경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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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서 승사하를 거쳐 장백폭포로 내려가는 도중 전망대에서 바라본 산줄기와 대평원.

현재 백두산 등정길은 크게 네가지. 서파 북파 동파 남파가 그것. 파(坡)는 중국말로 언덕이란 뜻으로 가령 서파 코스는 백두산 서쪽에서 오르는 길을 의미한다.

북파는 가장 일찍 열린 길이요 가장 널리 알려진 길. 흔히 어르신들이 떠나는 백두산 관광의 99%가 이 코스다. 지프를 타고 천문봉 턱밑까지 오른 다음 5분 정도 오르면 천문봉 정상. 여기서 천지를 감상한다. 산행이 아니라 그야말로 관광이다.

서파는 지난 1990년대 후반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코스로 산꾼들이 주로 찾는다. 천지를 오른쪽에 끼고 백두산의 장대한 고원지대를 걷는다. 수백여종의 야생화가 만발한 천상화원이 바로 이 길을 따라 펼쳐진다. 동파와 남파는 북한에서 오르는 코스로 현재로선 그림의 떡.

이번에 산행팀이 완주한 코스는 서파. 산행은 조중경계선인 5호 경계비에서 시작되지만 주차장에서 5호 경계비까지 2200개의 '고행'의 계단을 우선 올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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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 산행은 5호 경계비에서 마천우로 향하면서 시작된다. 반대방향은 북한땅. 출발전부터 비와 안개, 그리고 강풍이 만만찮다. 굵은 빗줄기는 몰아치는 칼바람을 타고 연신 뺨을 후려친다. 제대로 갖춘 복장과 장비도 무력감을 느낄 정도. 확 트인 능선길에서 강풍을 만나면 몸이 날려갈까봐 모두들 움츠린다. 이런 악천후가 하산 때까지 지속됐다.

암봉 마천우는 험해 봉우리 왼쪽길로 에돌아 내려선다. 청석봉까지는 천지를 우측에 두고 비교적 평탄한 능선길로 가지만 천지는 안개에 가려 부옇기만 하다. 대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연상케 하는 눈앞의 푸른 대평원과 뾰족한 암봉, 그리고 낭떠러지는 백두산의 넉넉함과 위엄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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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문봉에서 운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천지가 철벽봉으로 가는 도중에 그 모습을 드러내자 산행팀이 천지를 향해 만세를 부르고 있다.

 
화산암 너덜지대를 지나면 평평한 청석봉 정상. 이곳에서 능선길로 1시간쯤 가면 송강하. 천지물이 화산암 계열의 바위틈새로 나와 형성된 물줄기로 주변은 야생화가 만발하는 고산화원. 대개 여기서 밥을 먹고 쉬지만 산행팀은 악천후로 인해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어 그냥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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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구벽을 내려와 승사하를 건너는 산행팀.


백운봉 가는 길은 서파코스 중 가장 힘든 길. 오르막의 연속. 노란 두메양귀비 등 방긋 웃는 야생화가 그래도 힘을 덜어준다. 8부 능선쯤 가면 두 갈래길. 직진하면 정상, 왼쪽 길은 에돌아 가는 길. 평원인 능선길로 사슴이 많다는 녹명봉으로 이어진다. 녹명봉 정상에선 바위길인 일부 하산구간을 제외하고는 평원길의 연속. 차일봉을 지나면 두 갈래길. 말그대로 작은 천지인 소천지로 가는 길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가파른 하구벽을 내려와 천지물가인 달문을 보고 장백폭포를 구경하는 방법이 있다.

여기선 대개 서파산행 시간을 고려해 결정한다. 백두산의 날씨는 1시간 뒤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남을 경우 달문~승사하~장백폭포 코스를, 예상보다 지연됐을 경우 장백폭포 코스는 다음날로 미루고 소천지로 하산한다. 산행팀도 곧장 소천지로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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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68m의 장엄한 장백폭포(비룡폭포). 겨울에도 얼지 않는 어마어마한 수량이 뿜어내는 굉음은 휴화산인 백두산의 살아있는 숨소리라 불린다. 천지로 향하는 우측 상단의 터널은 마치 유럽의 옛 성벽을 닮았다.
 
 
장백폭포(비룡폭포)는 백두산에서 가장 웅장하면서도 아름답다. 높이 68m인 폭포는 여름은 물론이고 겨울에도 얼음과 눈 속에서 얼지 않고 있는 모습이 장관 그 자체다. 어마어마한 수량과 굉음은 백두산의 숨소리라 불리운다. 장백폭포를 돌아 천지로 오르내리는 계단은 멀리서 볼 경우 유럽의 옛 성벽을 보는 것처럼 운치가 있다.

장백폭포 아래에는 온천지대가 형성돼 있다. 장백폭포에서 주차장으로 오는 도중 온천수에 계란이나 옥수수를 삶아 판매하고 있고, 여기서 좀더 내려오면 호텔에서 유황온천욕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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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온천수에 삶아 파는 계란과 옥수수.

◆산행 뒷이야기

 부산 산꾼 38명 악천후속 완주
 산행 속도에 현지 가이드·중국인 감탄
 저체온증으로 탈진 우황청심환 먹기도

"이처럼 대부대가 이런 최악의 날씨 속에서 10~12시간 걸리는 백두산 서파종주를 6시간 만에 끝낸 것은 아마 오랫동안 기록에 남을 겁니다."

백두산 서파종주 현지가이드 조남철 씨는 산행을 마친 후 "지난해 한국의 한 팀이 5시간30분 만에 완주했지만 그들은 젊은 장정 5명인데다 날씨마저 쾌청해 오늘의 이 기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초 백두산 서파 종주에는 50여명이 도전했다.

  
하지만 산행기점인 5호 경계비 앞에서 휘몰아치는 비바람 때문에 10여 명이 돌연 기권, 기자를 포함한 38명이 참여했다. 연령층도 남녀노소 다양했고 평균 연령 또한 40대 중반 이상으로 봐도 무난한 노인군단(?)이었다. 이들은 국제신문 '근교산' 기사를 보면서 매주 산행을 다닌 마니아들이어서 하나같이 자신있다고 말했다. 부부 4팀도 포함됐다.

산행은 날씨 등 최악의 조건 속에서 진행됐다.

38명의 대부대임에도 불구하고 현지 가이드는 우여곡절 끝에 한명밖에 동행하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서파 종주에 도전키로 한 산꾼 한명이 출발전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또다른 현지 가이드가 사라진 그 산꾼을 수소문하느라 결국 대오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

결국 선두는 조선족 현지가이드인 조남철 씨, 후미는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이 맡았다.

출발시간은 지난달 28일 오전 10시45분. 통상 서파종주는 새벽 5시께 5호 경계비에 올라 일출을 본후 출발하지만 빡빡한 일정에 비행기마저 연착돼 예정보다 5시간 이상 지연됐다.

이날 5호 경계비까지는 중국인들을 포함한 많은 산꾼들이 올랐지만 산행도전팀은 국제신문팀이 유일했다.

앞서 출발한 중국인 젊은이 3명은 산행 중간쯤인 청석봉 부근에서 되돌아가며 산행팀에게 대단하다는듯 엄지손가락을 내보이기도 했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50대 중반의 한 여성이 저체온증으로 탈진하자 동료가 배낭에서 우황청심환을 꺼내 먹였다. 이창우 대장은 이 여성의 배낭을 대신 멨고 동료들이 번갈아가며 부축했다.

워낙 비바람이 거세 밥먹을 엄두도 못냈다.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벌어져 본의 아니게 휴식을 취할 땐 하나같이 사시나무 떨듯 추위와 싸워야만 했다.

천지라도 잠시 얼굴을 내밀면 힘이 날텐데 이날따라 천지는 심통을 부렸다.

산행 후 가이드 조씨는 "어릴 때부터 300년 묵은 장뇌삼을 깍두기로 먹은 30살의 저도 몹시 춥고 힘들었다"며 "이런 악조건 속에서 사고없이 완주한 대원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에 맞장구를 치기라도 하듯 종주를 마친 이상득(46)씨는 "좌우가 확 트인 능선길에서 일순간 거센 비바람이 몰아칠 땐 몸이 날려가는 줄 알았다"며 "그래도 지금은 큰 일을 해낸 것처럼 뿌듯하다"고 밝혔다.

백두산 서파종주는 이렇게 끝났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산행팀은 그 다음날 북파코스에서 천지와 그 주변의 16연봉, 그리고 아름다운 장백폭포를 원없이 보고 또 봤다.

부산서 출발하는 백두산 산행상품은 대개 4박5일. 하지만 국제신문 산행팀은 백두산 등정을 원하는 산꾼들을 위해 산행을 위주로 한 3박4일 코스를 명문여행사와 공동으로 마련, 이번 산행이 이뤄졌다.


글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사진 = 박수현기자 parksh@kookje.co.kr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아! 저 멀리 부산이 보인다"

대마도 중앙 위치, 능선따라 8시간 코스
울창한 산림·환상적 조망 금정산과 비슷
정상 오르면 아름다운 아소만이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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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명산 시라다케 정상 세이간보에서 바로 옆 암봉인 토간보와 아소만을 내려다보면 마치 선경의 세계에 온듯한 느낌을 받는다.

 
최근 부산항 국제여객선터미널에는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바로 대마도로 산행을 떠나는 마니아 산꾼들이다. 경부고속철이 개통되면서 생겨난 새 풍속도다.

낚시꾼들의 대마도행은 수년전부터 보편화됐지만 바야흐로 산꾼들도 이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차이라면 낚시의 경우 부산경남 중심의 꾼들이 다수인 반면 산행은 전국의 꾼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

산행팀이 찾은 대마도의 산은 대마도가 자랑하는 시라다케(白嶽山·519m)와 아리아케(有名山·558m). 남북으로 놓인 대마도의 아랫섬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다.

두 산은 별개의 산이지만 능선으로 연결돼 7~8시간이면 종주산행이 가능하다.

시라다케 아리아케 두 산의 자랑은 울창한 숲과 환상적인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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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다케 정상에서 선 필자(왼쪽)와 이창우 산행대장.


대마도 전체 면적의 88%가 산림지대인 만큼 우선 두 산은 우리나라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 정도로 숲이 빼어나다. 이를 입증하듯 등산로 안내판에는 '시라다케 원생림(原生林)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어 갖고 갈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섬인데도 불구하고 대륙 계통의 수종이 많아 빙하기 전 우리나라와 육지로 연결돼 있었음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조망 또한 일본서 가장 아름답다는 아소만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하다. 동행한 부산산정산악회 김홍수 산행대장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풍광"이라고 평했다.   
 
들머리는 풍요로운 축복의 땅이란 의미의 스모마을. 정면에 보이는 커다란 두 암봉이 시라다케 정상. 기암괴석이 여기저기 박힌 모습은 부산의 금정산과 흡사하다. 산줄기의 색상도 연두 초록 등 녹색 계열의 물감을 조금씩 흩뿌려놓은 것처럼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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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 들머리에서 본 시라다케와 산행 안내판.

산행로는 차가 다니는 포장로지만 길옆으로 시냇물이 흐르는데다 수목이 하늘을 거의 가려줄 정도여서 포근하다. 본격 들머리는 30여분 뒤 닿는다.

굵은 통나무로 가장자리를 장식한 등산안내도 뒤로 작지만 옹골찬 폭포수가 더위를 식혀준다.

침목계단을 오르며 산행은 시작된다. 울창한 삼나무 숲과 시원한 계류, 동굴 속에서나 느낄 수 있는 시원한 바람이 마치 삼림욕장 같다. 얼핏 전남 순천 조계산 기슭의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어가는 길에 만나는 편백 숲이 떠오른다. 거기에다 새소리, 개울 주변의 이끼 낀 암석, 마삭줄과 산딸나무 등 희귀 야생화, 지그재그로 오르는 산길은 한결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이렇게 삼나무 숲을 쉬엄쉬엄 1시간가량 걸으면 백악신사(白嶽神뾧). 붉은 깃발과 신사 입구의 표시문인 3개의 토리이가 나란히 서있다.

이 곳은 산행 길찾기의 주요 포인트. 정상으로 가기 위해선 이 신사를 통과해야 된다. 계속 직진하면 아리아케 또는 카미자카(上見坂) 공원 방향. 산행은 신사를 통과, 정상에 오른 후 왔던 길로 되돌아와 아리아케 방향으로 이어진다.

신사문을 지나면서 길은 급해지면서 좁아진다. 수종 또한 삼나무는 줄고 활엽수림이 우점종으로 변한다.

숨이 턱에 찰 즈음인 7~8분 뒤 밧줄이 구세주 처럼 다가온다. 이후 작은 신사와 좁은 통로의 암벽을 힘들게 오르면 좁은 안부. 우측 암벽을 타면 양대 암봉 중 하나인 토간보. 얼핏 힘들 것 같지만 등정이 가능하다.

정상인 세이간보(519m)에 도달하기 위해선 왼쪽으로 에돌아 간다. 안부에서 10분 거리이며, 들머리 스모마을에선 1시간50분~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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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다케 등산로 입구에 위치한 작지만 옹골찬 폭포. 바로 앞에 벤치가 있어 쉼터역할을 한다(왼쪽). 백악신사(白嶽神뾧). 붉은 깃발과 신사 입구의 표시문인 3개의 토리이가 나란히 서있다. 이 곳은 산행 길찾기의 주요 포인트로 정상으로 가기 위해선 이 신사를 통과해야 된다.  


  시라다케 등산로 입구에 위치한 작지만 옹골찬 폭포. 바로 앞에 벤치가 있어 쉼터역할을 한다.
 
약속이나 한 듯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일본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아소만 전경이 펼쳐진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이나 다도해국립공원에서 느낄 수 없는 감흥이 다가온다. 무인도 하나하나가 모두 울창한 숲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정상에선 휴대전화가 터진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몇몇이 시도해 보지만 신호만 갈뿐 통화가 되지 않는다. 대신 문자메시지는 들어오는 것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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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다케의 날머리이자 또 다른 들머리(왼쪽). 우측은 시라다케에서 아리아케로 가는 도중의 오솔길.


하산은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 백악신사에서 우측 카미자카 쪽으로 간다. 너무나도 편안한 오솔길. 비록 샘터는 없지만 이따금 계류가 흘러 목을 축일 수 있다.

삼나무가 울창한 산책로지만 1시간 이상 변화없이 계속돼 약간 따분하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 시라다케 날머리는 정상에서 1시간40분 후 닿는다.

종주할 경우 통상 날머리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은 후 아리아케로 향한다. 국도를 따라 왼쪽으로 10분 정도 걸어야 산행로로 들어선다. 제법 넓은 임도다. 30분쯤 걸으면 저 멀리 정면에 방금 올랐던 시라다케가 시야에 들어오고 여기서 약 20분 더 가면 임도 왼쪽에 본격 산행로가 열려있다. 정상까지는 고작 1.5㎞ 거리인데다 길 마저 편안해 30분이면 닿는다. 울창한 숲길로 걷다가 단 한번 확 트인 공간으로 나와 풀밭과 억새밭을 지나면 곧바로 정상인지라 대부분의 산꾼들은 약간 허탈해하는 표정이다.

시라다케가 암봉으로 이뤄져 남성적이라면 정상을 비롯, 산 전체가 육산인 아리아케는 어머니의 품같은 포근함에 비유된다. 한 산꾼은 암봉이 아닌 펑퍼짐한 정상에서 대마도의 가장 번화가인 이즈하라항을 바라보는 느낌이 아주 감동적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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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케 정상(왼쪽)과 정상에서 내려서는 편안한 하산길.


하산은 뜻밖에도 낙엽산행. 한낮 인데도 어두울 정도로 울창한 신록을 자랑하지만 길바닥은 온통 낙엽. 사각사각 낙엽밟는 소리가 느껴지며 이 소리가 하산 내내 이어진다. 고개를 들면 초록, 숙이면 카키색 낙엽, 이 무슨 부조화의 조화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조한 조선정벌 기원 성터를 지나 날머리격인 대마도 역사자료관까지 2시간40분이면 닿는다. 역사자료관 근처에는 조선통신사 일행이 묵었던 객관인 서산사(西山寺), 고종의 외동딸인 비운의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 등이 있으니 시간이 날 경우 둘러보자.

#떠나기전에

단체·개인 전문여행사 이용하면 편리
일본 전통 '신화의 마을' 숙박 인상적
   
 
대마도는 현재 관광 인프라가 구축이 덜 돼 있어 아직까지 자율여행이나 배낭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택시비가 엄청 비싼데다 렌트카를 이용할 경우 길 찾기가 만만치 않기도 하다.

부산서 대마도의 시라다케·아리아케 종주산행을 하기 위해서는 대마도 전문 여행사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대마도 전문 여행사인 대마도투어(051-465-3114) 여행마을(051-464-5553) 용문여행(051-811-2588) 다운여행(051-462-6745).

현재 산행 상품으로 당일, 1박2일, 2박3일의 두 가지가 있다.

당일 관광 및 등산은 매주 목요일만 출발하며 비용은 12만5000원.
1박2일의 경우 일요일 22만9000원, 주중(수 목 금) 24만9000원, 토요일 28만9000원. 이 경우 시간 제약 때문에 시라다케 산행만 가능하다.

2박3일의 월요일 32만9000원, 주중(수 목) 33만9000원, 주말(금 토) 37만9000원. 단 성수기 땐 요금이 조금씩 올라간다. 참고하길.

단체로 산행을 할 경우에는 여행사와 계약시 협의, 호텔 대신 일종의 콘도식 시립 자연공원인 '신화의 마을'에 묵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비용은 호텔에 비해 30% 저렴하다.   

신화의 마을은 대마도시가 한국 등 단체관광객들을 위해 건립한 전형적인 일본 가옥으로, 이곳을 한 번 찾은 관광객들은 시설 좋은 호텔을 마다하고 반드시 이곳에서만 숙박하는 것을 고집한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야외에서 캠파이어를 할 수 있는 시설과 통나무로 만든 야외 놀이터, 전통 일본식 정원과 가옥, 방갈로, 가족 연인과 함께 거닐 수 있는 산책로가 잘 꾸며져 있다.

잔디밭인 정원 곳곳에는 한 번에 대여섯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목재 테이블이 놓여 있어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특히 방갈로는 2층 침대와 샤워장, 취사시설을 모두 갖춰 한 가족이 보내기에 제격이다.

최대 80명까지 묵을 수 있는 이곳은 한국에서 노래방 기기를 갖고 와 밤새 음주가무를 해도 될 만큼 외딴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단점이라면 TV나 라디오가 없다는 점.

아소만을 조망할 수 있는 에보시타케 전망대가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점은 덤이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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