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삶이 침체에 빠졌거나 우울할 때 전통시장에 가면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이를 패러디해 '주말&엔'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입맛이 없을 땐 부평시장에 가보라. 맛의 진수를 느끼면서 생기가 돌 것이라고. 부평시장에선 유부전골과 단팥죽 포장마차들만 깡통골목 쪽에 있을 뿐 대부분의 유명 맛집은 옛 사거리시장 쪽에 몰려 있다.
 
 ■ 부평시장에서만 먹을 수 있다

50년 전통의 '원조비빔당면'

고명은 적지만 생각보다 맛있다.


 매콤한 양념과 당면의 즉석 만남, 비빔당면이 먼저 떠오른다. 50년 전통의 '원조비빔당면'(051-254-4240)이 독보적이다. 시어머니에 이어 며느리 서성자(46, 아래 사진) 씨가 9년 전부터 맡고 있다. 먹을거리가 귀했던 한국전쟁 시절 고구마나 감자의 전분으로 국수처럼 먹은 데서 유래한 비빔당면은 지금은 일본 관광객과 타지 사람들이 맛봐야 할 필수 음식으로 손꼽힌다.

 비빔당면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고명이라곤 시금치와 오뎅, 단무지 그리고 양념장이 전부다. 주인 서 씨는 갖은 야채와 고춧가루 간장 12가지가 들어가는 양념장 맛의 비밀이라고 했다. 육수는 야채, 띠포리와 멸치, 무 새우 다시마 등 3가지를 따로 만든다. 오묘한 맛의 비밀이었다. 겉보기와 달리 손이 많이 가고 원가 또한 상당하다고. 오래전 모 먹자골목에서 한두 번 경험한 그 맛을 떠올렸던 기자는 깜짝 놀랐다. 매콤하면서 생각보다 너무 맛이 있어서. 4000원.



 '유부전골'(1599-9828) 또한 부평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 이 역시 타지 사람이나 일본인들이 먹어봐야 할 부산만의 필수 먹을거리로 알려져 있다. 깡통골목의 수입1길과 수입2길 사이에 숨어 있다. 간판에는 뜻밖에 '우진도기'로 적혀 있다. 워낙 장사가 잘된다는 자신감의 표출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손님들에 대한 예의는 아닌 것 같다.
 당면과 각종 야채를 가득 넣은 유부가 터져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미나리로 묶은 덕분에 미나리의 상큼한 향이 일품이다. 1인분(3000원)을 시키면 유부와 어묵이 한가득 섞여 나온다. 개운한 맛이 입안에 감돌 정도로 인상적이다. 국물 맛의 비결을 물어보니 1급 비밀이라며 일체 함구한다. 전화 주문도 받지만 워낙 주문량이 밀려 약 2달쯤 걸린다고 한다.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이다.

'유부전골' 할머니.

유부 위에 오뎅이 가득.


유부들 퍼뜨리면 이렇게.

미나리로 싼 유부.



 유부전골 가게 인근에는 사람들이 쭉 서서 뭔가를 먹고 있다. 단팥죽 포장마차 6개가 나란히 붙어 있기 때문. 이 또한 시장의 명물 중 명물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 대부분의 고객이 한 그릇을 달랑 비운다. 36년째 이곳을 지키는 김복순(71·051-244-2657) 씨는 올해부터 며느리와 함께 손님을 맞고 있다. 조각낸 인절미를 넣고 금방 끓인 단팥죽(2500원)은 어머니의 손맛 그대로다. 무한 리필되며 입가심으로 식혜도 서비스로 준다. 포장도 해주고 택배주문도 받는다.

단팥죽 포장마차 6개가 나란히.

36년째 단팥죽을 쑤는 김복순 할머니.


토종호박을 써 깊은 맛이 난다고.

'2대째 소문낙 죽집'의 강춘자 대표.


 옛 사거리시장 쪽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골목도 빠뜨리지 말자. 먹을 것이 변변찮던 피란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준 부평시장의 산 역사가 아니던가. 한때 일곱 집까지 있었지만 지금은 두 집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대째 소문난 죽집'(051-244-7485)이 원조다. 한국전쟁 때부터 운영하던 윤경순 할머니의 며느리 강춘자(56) 씨가 26년째 죽을 끓이고 있다. 윤 할머니는 2년 전 96세로 작고했다 한다.
 강 씨는 "죽도 시류에 따라 밀려나고 있지만 힘닿는 데까지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호박죽은 토종을 써 색깔만 좋은 단호박보다 향기도 좋고 깊은 맛이 있다"며 "죽의 진수를 맛보려면 이곳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호박 녹두 팥 깨죽(이상 3000원)이 있으며 전복죽(3만 원)은 주문받으면 바로 끓여준다.

'밀양집'의 주방장 할머니.

올해 89세인 박재쇠 할아버지.


'밀양집'의 돼지국밥.


 죽골목 인근에는 죽집 못지않게 오래된 돼지국밥집이 4개 모여 있다. 원조집은 '밀양집'(051-245-5137). 한국전쟁 때부터 지금까지 박재쇠(89) 할아버지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마 부산서 오래된 돼지국밥일 듯싶다.
 20년 전 작고한 할머니 대신 김순분(60) 주방장이 주방을 책임지고 있다. 사골을 끓인 비교적 맑은 국물은 오랜 전통을 말없이 대변하고 있다. 평범함 속의 위대함이랄까. 수십 년 단골이 멀리서 찾아오는 이유이다. 인근의 남해집 양산집 명산집도 20~40년 된 돼지국밥집이다.

 40년 전통의 '원조 소문난 김밥집'(051-246-0443)도 아주 유명하다. '김밥이 맛있어봤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우엉 유부 시금치(여름엔 부추) 당근 단무지 등 5가지 재료의 오묘한 조합은 기대 이상이다. 1줄 1500원.
 
 ■ 부평시장의 알려지지 않은 맛집

고기가 쫄깃하고 잡내도 없다.

국물까지 맛있는 냉채족발.



 부평시장에는 맛은 천하일미지만 유명세에 밀려 있는 숨은 맛집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13년 된 '장수 왕 족발전문집'(051-247-3100). 냉채족발(대 3만2000, 특 3만7000원)이 아주 맛있다. 부평동에는 한성족발 한양족발 오륙도족발 등으로 대표되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족발골목이 있다. 하지만 맛이 더 좋고 가격이 절반이라면 어딜 가겠는가. 이미 일본인들 사이에선 소문이 나 쇼핑 후 단체로 찾는다고 한다.

 우선 고기 자체가 씹으면 씹을수록 쫄깃하고 고소하다. 돼지 냄새도 없다. 냉채족발 소스의 경우 과일 야채 해파리 겨자 와사비 등 17가지가 골고루 들어가 뒷맛이 깔끔하다. 해서 손님들은 국물을 다 마시거나 밥도 말아먹을 정도. 단점이라면 포장이나 배달만 된다는 점. 대신 단체 모임의 경우 출장도 가능하다.

생닭으로 즉석에서 반죽.

양은 많고, 가격은 싸고.


프라이드 치킨과 생맥주 한 잔.

양념 통닭. 양도 아주 많다.


 30년 전통의 '거인통닭'(051-246-6079)은 튀김 닭이 얼마만큼 맛있는지를 보여주며 20, 30대 젊은층을 시장으로 유인하는 효자 가게. 맛의 비결을 묻는 말에 이원재(62) 대표는 "생닭을 쓰며, 옥수수 전분 등 7가지로 직접 만든 파우더와 양파 마늘 등 8가지가 들어가는 액체양념으로 즉석에서 반죽한 후 2번 튀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닭 따로 튀김 옷 따로 놀지 않고 육즙이 살아 있다. 창원 김해 등지에서 일부러 찾아오며 심지어 그 맛을 못 잊어 서울서 택배로 보내달라는 괴짜손님도 있다고. 양은 기존 프렌차이즈 닭보다 1.4배쯤 많고 가격은 저렴하다. 프라이드 1만4000, 양념 1만5000원.

 부평시장에는 부산서 유일하게 가자미식해를 파는 노점 두 곳이 나란히 있다. '원조 함흥식해 전문점'(010-9338-7705)의 김기연(아래 오른쪽) 할머니와 '전통 함흥식해'(010-5023-6269)의 김정수(아래 왼쪽) 할머니가 바로 그들. 두 분은 이북 출신의 시어머니에게 전수받은 며느리와 이북에서 피란온 사람에게 각각 배웠단다. 맛은 실향민들이 인정, 부산을 비롯하여 전국에 각각 있다. 1㎏ 1만5000원. 택배도 한다.

 이밖에 선식과 어묵도 부평시장이 원조다. 대보선식(051-246-6784)은 전국 최초로 선식을 개발해 보급했으며, 어묵공장도 해방 후 부평시장에서 가장 먼저 생산했다. 환공, 부산, 미도어묵 등이 대표 선수다.

어묵 대표선수 환공어묵.

국내 선식의 원조 대보선식.


김종열 부평시장상인회장
  
"독특한 전통 먹을거리 널리 알려야죠" 


부산 최초의 전통시장인 부평시장은 최근 시장 이름 앞에 또 하나의 '최초'라는 기록을 만들었다. 상인회가 최근 전국 1572개의 전통시장 중 최초로 전체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직선제를 통해 상인회장을 선출했기 때문이다. 통상 상인회 또는 번영회 회장은 이사들의 호선으로 결정된다.


 상인회 방기원 사무국장은 "상인들의 시장에 대한 소속감을 높이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며 "투표율이 예상보다 높은 76%에 달했다"고 전했다.

 신임 김종열(사진) 상인회장은 올해 46세로 역대 최연소 상인회장. 이를 의식한 듯 김 회장은 "앞으로의 시장 정책은 상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투명하게 운영할 것이며, 이에 따르는 외풍은 회장이 책임지고 막아내겠다"고 의욕을 불태웠다. 김 회장은 "부평시장에는 우리 시장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먹을거리, 예를 들면 비빔당면이나 유부전골 어묵 가자미식해 선식 등이 특히 많다"며 "재임 동안 이를 널리 알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부평시장에서 카펫점을 운영하는 김 회장은 외할머니에 이어 지금도 어머니가 이불점을 운영하고 있는 전형적인 부평시장 가족이다.


- 부평시장 맛집 관련 글
부평시장 (1)편 입맛 살려주는 '맛집 천국' 부평시장 http://hung.kookje.co.kr/539

 내 친구 현수의 옛날 집 주소는 부산 중구 부평동 1가 1번지 1통1반.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않는 이유는 숫자의 마력 때문이리라. 주소가 재밌어 위치를 물었더니 그는 부평동시장 입구라고 했다. 감이 안 잡힌 친구들이 재차 묻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국제시장 근처라고 했다. 그제야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초등학생 시절 기자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부평시장엘 이따금 갔다. 당시 어머니는 이곳을 사거리시장이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버스 타는 재미와 함께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전통시장이 겉으론 오십보백보지만 이곳을 떠올리면 그래도 오롯이 기억에 남는 곳이 한 곳 있다. 바로 깡통골목이다. 정말 신기했다. 지금과 달리 점포는 좁았지만 진열된 물건들이 죄다 영어나 일어로 적혀 있었다. 지금은 지천으로 널린 캔 콜라나 바나나도 이곳 아니면 살 수 없는 시기였다. 운이 좋아 그날 미제 단추초콜릿이라도 하나 얻었을 땐 얼마나 기뻤던지.

깡통시장.

온통 외제물건이다.

 
 부평시장은 1910년 부산에 가장 먼저 들어선 전통시장이다. 전국에선 두 번째라 당시 제2호 시장이라 불렸다. 한일병합 직후 일본은 그들의 생활근거지 주변이었던 중구 부평동에 생필품 시장을 한일합작으로 열었다. 그게 부평시장의 시초였다. 5년 뒤엔 부평정(町)시장으로 개명해 시설도 확충했다. 참고로 부산진시장은 1914년, 부전시장은 1941년에야 생겼다. 국제시장은 해방 직후 일본인들이 철수하면서 비축 전시물자를 한꺼번에 내놓으며 형성된 일종의 '도떼기시장'이다.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부평시장을 부평동시장이나  깡통시장 혹은 사거리시장이라 부른다. 이는 그나마 사정이 좀 나은 편. 일부는 길 하나 사이에 두고 위치한 국제시장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알고 보니 그렇게 된 연유가 있었다. 부평시장은 비록 부산 최초의 전통시장이나 등록일을 기준으로 보면 막내다. 2005년 10월에야 부평동 1가의 깡통시장과 먹을거리 위주의 2가의 사거리시장을 합쳐 부평시장으로 중구청에 정식 등록했기 때문이다. '부평동시장'이 아닌 '부평시장'이라고 '동(洞)' 자를 뺀 것은 동네시장 이미지를 없애기 위함이란다.


 부평시장 상인회 김종열 회장은 "역설적이게도 상인들이 번영회나 상인회를 만들어 이름을 널리 알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오랫동안 장사가 잘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전만 못하지만 지금도 목 좋은 점포의 권리금은 억대를 호가한다.
 "부평시장은 제수용 과일이나 생선도 최상품만 팔았어요. 콩나물도 다듬어 팔았으니까요. 주 고객이 옛 법원 주변의 수준 높은 손님이었거든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장을 찾는 고객의 객단가도 백화점의 그것과 맞먹었어요."
 
 부평시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먹을거리, 맛집이다.

 주요 품목이 어묵 해산물 육고기류 청과물 등 생필품 위주다 보니 이곳 아니면 먹을 수 없는, 부산만의 독특한 먹을거리가 적지 않다. 비빔당면 유부전골 냉채족발이 그렇고 돼지국밥과 죽집은 부산서 가장 오래됐다. 어묵과 선식은 이곳이 전국 원조이고 치킨집은 떠오르는 신흥 강호이다. '길거리아' 단팥죽은 사시사철 맛볼 수 있다. 고객의 상당수가 사실은 이런 먹을거리 때문에 찾는다고 고백할 정도다. 통상 다른 전통시장에서 유명 맛집은 많아야 두세 곳에 불과하지만 부평시장은 열 손가락을 꼽아도 모자란다. 이쯤 되면 가히 '맛집 천국'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부평시장으로 달려가 숨은 맛집을 둘러봤다.

           부산 부평시장이 원조인 비빔당면. 보는 거와 달리 아주 맛있다.
           당면과 갖은 야채를 넣고 미나리로 싼 유부전골. 역시 부평시장이 원조다.

          인근 부평동 족발골목의 냉채족발보다 훨씬 맛있고 가격은 절반인 부평시장의 냉채족발.


- 부평시장 맛집 관련 글
부평시장 (2)편 "뜨끈뜨끈한 부평시장통 인심 한 그릇 하시구려" http://hung.kookje.co.kr/540

         


국내 유일 클럽 완제품 생산, 부산 하나산업사
R&D에서부터 설계 제조 검수 등 원스톱 생산
자체 브랜드 '브라마' 갖고 외국 클럽과 승부
전국 골프장 돌며 '사용후 구입하라' 전략적중
작년 서울 신세계백화점과 전국 15개 숍 납품
퍼터, 외국 클럽보다 인기 높고 맞춤제작 가능

사례1.
 부산외대 사회체육학부 김창욱 골프담당 교수는 최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골프강좌에서 씁쓸한 기분을 안고 돌아왔다. 강의 도중 우연히 클럽 이야기가 나와 50명의 참가자에게 국산 클럽 사용 여부를 물었더니 놀랍게도 사용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문제는 브랜드가 아니라 골퍼들의 실력인데도 그들은 클럽 탓을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감이 좋지 않다, 비거리가 적다, 정확하게 안 맞는다 등등. 한마디로 외국 클럽에는 국산품에 대한 이 같은 왜곡된 편견을 커버하는 첨단 과학과 소재가 숨어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감이 여전히 저변에 깔려있더라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준비한 주제를 잠시 뒤로한 채 시간을 할애해 달라진 국산 클럽의 현재 위상을 설명했다. "한국의 철강 제련 단조기술은 세계적이어서 소재 탓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단조 아이언도 국내에서 만든 지 오래됐습니다. 클럽 제작은 첨단 기술이 필수지만 이미 국내엔 그만한 기술이 축적돼 있습니다. 현재 일본 클럽의 일부는 국내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돼 기술력은 한국이 세계적입니다. 단지 골프가 국내에서 고급 스포츠로 출발하다 보니 귀족마케팅이 지금까지 먹혀들어 외제 선호 사상이 여태 남아 있는 거지요. 과거 한국인들이 선호하던 일본의 코끼리밥솥을 지금 한국인들이 씁니까. 아마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될 겁니다."

사례2.
 고려대 물리학과 김선웅 명예교수의 2년 전 경험담. 김 교수는 드라이버샷의 최적 공격 각도와 비거리 등 골프와 물리학의 상관관계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연구하는 노학자. 체육과학연구원의 연구비로 미국 유명 제조사의 최고급 아이언 세트를 구입한 그는 3번 아이언부터 샌드웨지까지 클럽 진동수를 측정했다. 클럽 진동수는 클럽 샤프트의 강도를 측정하는 척도로서 탄도의 방향이나 비거리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고가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달리 들쑥날쑥한 결과가 나오자 김 교수는 해당 업체의 매장과 한국지사에 항의했지만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해 미국 본사로 연락을 취했다. "내부규정상 클럽의 진동수를 알려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오자 김 교수가 담당자의 이메일로 '체육과학연구원의 연구비로 클럽을 구입했기 때문에 이 자료를 보고서에 그대로 인용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하자 금세 교체한 샤프트와 진동수 데이터를 미국 본사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이후 김 교수는 "미국 유명 클럽의 상당수가 지금은 중국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된다는 사실을 듣고나서야 당시의 해프닝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내 유일 골프클럽 제조사인 하나산업사 김길선 대표는 "국산 클럽의 기술은 이미 세계적"이라며 "문제는
  골퍼들의 국산품에 대한 믿음"이라고 말했다.

국내 완제품 클럽 제조사 부산에 유일

현재 국산 클럽 제조사는 몇 개쯤 있을까. 샤프트만 만들거나 헤드 등 클럽 부품을 수입해 조립하는 회사는 제법 있지만 클럽의 R&D에서부터 설계, 제조, 검수단계에 이르기까지 원스톱으로 자체 브랜드를 갖고 완제품을 만드는 업체는 단 한 곳뿐이다. 부산 강서구 대저2동에 있는 하나산업사(브라마골프)가 바로 그곳이다.

 이 회사 김길선(60) 대표는 1978년부터 국내 한 방위산업체에서 정밀주조에 종사해온 엔지니어. 이곳에서 그는 골프클럽 헤드를 OEM 방식으로 생산, 수출하게 되면서 클럽에 대한 전문성을 습득한 후 가능성 하나만을 믿고 1995년 하나산업사를 설립해 클럽을 만들기 시작했다.

 "국내 및 일본 클럽의 OEM 생산부터 시작했지요. 그러다 3년 뒤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서 자체 브랜드 제품을 출시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일본 클럽의 OEM 생산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국산품에 대한 편견의 벽이 무척 높았다고 했다. 전국 65개 골프샵에 납품을 했지만 인지도가 너무 낮아 수억 원의 손해를 감수하며 결국 클럽을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부터 제법 유명세를 떨쳤던 국산 골프클럽 제조업체인 팬텀이나 드라코가 결국 수백 억을 날리며 2000년대 초반 두 손을 든 것도 모두 국산품에 대한 편견과 불신 때문이었다는 것.

 "최첨단 소재 사용, 컴퓨터 설계, CNC 가공, 연마 단계에선 수십 년 장인의 손을 거치고, 검수단계에선 샤프트의 강도와 뒤틀림, 헤드의 관성모멘트와 무게중심, 클럽 밸런스 측정 등을 거치는 기술력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지만 국내 골퍼들이 알아주질 않잖아요."

CNC(컴퓨터 수치제어)방식으로 클럽을 제조하는 모습.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기계를 세웠다.


 김 대표는 2000년대부터 발로 뛰기 시작했다. 전국 골프장을 돌며 클럽을 설명한 뒤 골퍼들에게 라운드에서 직접 쳐보게 한 후 마음에 들면 구매하라는 전략을 폈다. 품질은 좋으니까 길게 내다보면 결국 알아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작전이 주효해 차츰 입에서 입을 통해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지난해부터 서울 신세계백화점을 비롯해 전국 15개 골프숍에 진출했으며 올해부턴 영업망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수입 제품의 경우 대부분 중국에서 OEM 방식으로 헤드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지난해부터 알려지면서 국산품에 대한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좋아진 것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 브라마의 퍼터는 외국 제품보다 인기가 있어요. 30만~135만 원대까지 가격대가 높지만 잘 팔리고 있어요. 공이 맞는 페이스 부분에 단차가공을 한 번 더해 공이 일정하게 굴러가게끔 했거든요. 그게 주효했어요. 4년 전부터 만들기 시작한 단조아이언도 반응이 좋아요. 단조아이언은 일반적으로 니켈이나 크롬 도금을 하지만 저희 제품은 여기에 미세 동 도금을 해 터치감과 반발력을 높였지요. 이런 공정은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안 해요. 이런 아이언이나 드라이브, 클럽 세트는 외국 제품의 70% 가격에 판매되고 있지요."

에이밍 하기에 좋은 T자형 퍼터는 곧 출시될 예정이다.

클럽 페이스에 단차가공을 한 브라마의 자랑 퍼터.


 피팅기술사인 김 대표는 "퍼터는 우리 공장을 찾을 경우 체형이나 선호도에 맞는 맞춤형도 제작 가능하다"고 말했다. 헤드 모양 및 무게, 그립 굵기는 물론 퍼터 길이, 라이각, 로프트각을 퍼터측정기로 직접 퍼팅을 해보며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시를 기다리는 퍼터의 헤드.

검수단계 측정기. 왼쪽은 헤드의 무게중심, 오른쪽은 헤드의 관성모멘트 측정기.


샤프트 강도 및 동심도 측정기.

샤프트 토크(뒤틀림) 측정기,


퍼터측정기를 퍼팅을 해보는 김길선 대표.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퍼터측정기.

라이각과 로프트각을 조절할 수 있다.


"주말골퍼, 국산품에 대한 인식 이제는 달라져야"

부산외대 김창욱 교수는 5년 전부터 국산 브라마 클럽을 사용한다. 예전에 쓰던 애장품인 피팅한 일본 클럽은 아예 후배에게 줘버렸다. 그만큼 믿음이 간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선수용이 아니라 주말골퍼를 겨냥한 제품이라 로프트가 약간 닫혀 있어 거리가 좀 더 나가는 점 이외에는 터치감이나 성능 디자인 면에서 미국이나 일본의 유명 제품과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부터 도유나 프로(부산외대)와 국가대표 상비군인 도유지 자매에게 브라마 맞춤형 퍼터를 제작해 사용케 했는데 두 선수 모두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 출신의 임진한 프로는 아예 국산 브라마 클럽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공장을 찾아 둘러본 후 골프장에서 직접 사용해본 임 프로는 "저도 사실 클럽을 수입하지만 토종 브라마 클럽이 감이나 헤드모델 등에서 이토록 좋은 줄 몰랐다"며 "앞으로 나설 골프강좌에서 국산 클럽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임 프로는 "문제는 국내 주말골퍼들의 국산품에 대한 믿음"이라며 "첨단 기술력으로 원스톱 제작된 브라마 클럽이 널리 알려져 골퍼들이 보다 저렴하게 클럽을 구입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 연제구 연산2동 '신사동 숯불갈비'



부산에는 돼지갈비집이 유난히 많다. 지역 맛집을 소개하는 음식 블로그를 살짝 들여다봐도 돼지갈비집은 춘추전국시대다. 우열이 확실하게 갈리는 특정 메뉴와는 달리 지역 맹주를 자처하는 집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보니 선택의 폭이 넓은 반면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부드러움과 쫄깃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돼지갈비.

 돼지갈비집이 부산에 왜 많을까. 잠시 짚고 넘어가자. 한국전쟁 이후 외국의 원조물자가 부산항으로 들어오면서 항구에는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몸뚱이 하나로 버티는 노동자들에겐 당연히 그 힘을 지탱해줄 음식이 필요했다. 싸고 양 많은 돼지갈비가 그 대안이었다. 부산항에서 멀지 않은, 지금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초량돼지갈비 골목이 당시 부두 노동자들이 퇴근길에 허기진 배를 채운 곳이었다. 이후 6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돼지갈비집이 지역 곳곳으로 흩어졌고, 그게 부산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연유이다.

 사실 삼겹살집은 질 좋은 고기에 깔끔함을 더하면 어렵지 않게 유명세를 탈 수 있다. 반면 돼지갈비집은 그 가게만의 영업비밀이 필요하다. 고기의 질도 중요하지만 양념의 노하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만 손님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연제구 연산2동 신사동 숯불갈비(051-863-6772~3)는 여기에 서민들의 호주머니 사정까지 감안하는 사려 깊음이 숨어 있다.

 이 집의 돼지갈비 1인분(200g)은 4500원. 구제역 파동으로 인해 돼지고기값이 폭등할 때 단골손님들이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미안해서 못 온다고 엄포를 놓아 마지못해 지난 설날 며칠 전에 1000원을 올린 것이다. 1인분에 8000원까지 치솟고 있는 식당에 비하면 절반 정도의 대단히 착한 가격이다.

 김영균(57) 송금옥(52, 아래 사진) 부부에게 이렇게 해도 유지되느냐고 물었다.
"마리째 들여와 제가 직접 포를 뜨고 아내가 양념과 모든 음식을 준비합니다. 주방장 몫을 저희 부부가 직접 하는 셈이죠. 인건비 절감에 따른 박리다매 전략이라고 보면 됩니다."


 맛은 어떨까. 부드러움과 쫄깃함이 동시에 느껴지면서 적당히 달다. 그래서 은근히 맛있다. 추가 주문이 특히 많은 이유이다.

 "국산 좋은 고기에 양념을 위한 간장도 A급을 쓰고, 돼지 잡내를 없애기 위해 산초와 키위 배를 넣고 반드시 24시간 숙성을 시킵니다. 맛이 없을 수가 없지요." 맛에 관해선 자신감이 넘쳐 흐른다.

 원래 이 집은 부산시청 맞은편 버스정류장 앞 대로변에 있었다. 가게가 좁아 금요일 저녁때나 주말이면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가게를 옮기면 안 좋다는 속설 때문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8년 전 넓은 이곳으로 옮겼지만 당시 단골들이 입소문을 잘 내주는 바람에 금세 제 궤도에 올랐다고 한다. 지금은 1층 68석, 2층 90석.

양념이 고루 배인 돼지갈비.

잘 익은 돼지갈비.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아 가족 외식이나 계모임, 직장 회식에 안성맞춤이다. 근처 연제구청, 담배인삼공사, 다비다웨딩홀 등이 있어 주말이면 결혼 피로연 장소로도 널리 애용된다. 소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 집만의 자랑. 여느 집의 간장 소스와 달리 고춧가루 물엿 정종 등을 넣은 붉은색의 소스는 맵지 않으면서 갈비를 물리지 않게 하는 감초 역할을 한다. 

이 집만의 자랑 돼지갈비 소스.

상추쌈을 싸서 한 입!


 새콤달콤한 파무침도 맛있다. 고춧가루 몇 점 뿌린 것과 달리 영락없이 집에서 먹는 그 맛이다.

 멸치와 띠포리(밴댕이 말린 것), 표고버섯 등으로 국물을 낸 된장찌개 또한 맛이 깔끔해 의외로 포장 손님이 많다. 나들이객을 위해 돼지갈비도 포장해 준다. 예약할 경우 누룽지 주문도 가능하다. 연산2 치안센터 맞은편. 식당 인근에 주차장도 두 곳 있다.

 

 
 국내에서 신비의 바닷길이 가장 먼저 알려진 곳은 전남 진도. 그 사연이 무척 아주 재밌다. 지난 1975년 당시 주한 프랑스 대사 피에르 랑드가 우연히 보고 프랑스 신문에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소개한 뒤 그 기사가 역수입된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갈라진 바다에서 일용할 양식 줍기에 바빴던 주민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 관광명소라 생각했을 리는 만무했을 터. 현재 전국에는 크고 작은 20여 곳에서 바다 갈라짐 현상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 신비의 바닷길이 가장 먼저 알려진 곳은 전남 진도. 그 사연이 무척 재밌다. 지난 1975년 당시 주한 프랑스 대사 피에르 랑드가 우연히 보고 프랑스 신문에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소개한 뒤 그 기사가 역수입된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갈라진 바다에서 일용할 양식 줍기에 바빴던 주민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 관광명소라 생각했을 리는 만무했을 터. 현재 전국에는 크고 작은 20여 곳에서 바다 갈라짐 현상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동해안 진하해수욕장에도 신비의 바닷길이

 
진하해수욕장과 명선도를 잇는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기 직전이다. 정확히 말해 이 해변은 해수욕 금지구역이고,
   해양구조대 건물 너머가 진짜 진하해수욕장이다. 바닷길 뒤로 보이는, 바다로 고개를 쭉 내민 곳이 간절곶이다.

명선교에서 내려다본 신비의 바닷길.

건물 7층 높이의 인도교인 명선교.


 
바다 갈라짐 현상은 통상 조차(潮差)가 심한 서해안이나 남해안에 잘 드러나지만 예외도 있다. 울산 울주군 서생면 진하해수욕장과 명선도 사이 200m에 이르는 바닷길이 바로 그것이다. 국립해양조사원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돌아온 대답이 놀랍다. "동해안에도 바다 갈라짐 현상이 있다고요? 설사 있다 해도 동해안은 파도의 영향이 커 예보는 불가능합니다."

 김치권(58) 서생면 주민자치위원장은 "진하해수욕장이 북향으로 살짝 비켜앉은 덕분에 큰 파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40년 전쯤 지금의 명선교가 놓인 자리에서 약간 더 바다 쪽으로 3일 정도 갈라진 적이 있어요. 그땐 '대한뉴스'에도 소개됐지요. 극장에서 제가 봤으니까. 이후 위치를 옮겨 진하해수욕장과 명선도 사이에 바닷길이 조금씩 열리곤 하다 지난 2003년 크리스마스 때 예기치 않게 완전히 열렸죠. 성탄절이라 모세의 기적에 비유하며 주민들이 길조라며 기뻐했지요. 이후 2005년에 한 번 열리며 뜸하다가 2009년부터 매년 음력 정월이나 영등철 즈음이면 물때에 맞춰 열리고 있어요. 이달엔 사리 때인 오는 18~21일 오후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곳 바닷길은 다른 곳과 달리 모랫길이며 폭이 넓을 땐 50m는 족히 된다.

 이곳에선 신비의 바닷길 조망 포인트가 하나 있다. 지난해 준공된 길이 145m, 건물 7층 높이(17.5m)의 보행 전용 다리 명선교다. 신비의 바닷길과 해송이 운치를 더해주는 거북 모양의 명선도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그 유명한 간절곶도 그 뒤 바다 쪽으로 고개를 쑥 내밀고 있다. 간절곶은 이곳에서 차로 3분 거리. 필부들은 일출 하면 간절곶을 떠올리지만 섬의 해송과 일출을 한 화면에 담을 수 있는 명선도가 훨씬 더 아름다워 작가들은 되레 이곳에서 장사진을 친다.

 자녀와 함께라면 인근 서생포왜성도 빠뜨리지 말자. 우리 한국의 성이 수직으로 쌓여 있다면 왜성은 비스듬하게 쌓인 것이 특징이다. 이곳은 보존이 잘 돼 있다. 광활한 동해를 배경으로 명선교와 명선도가 한눈에 조망된다. 부산서 대변항을 거쳐 31번 해안 국도를 타면 간절곶~진하해수욕장~서생포왜성 순으로 만나지만 부산울산 고속도로 온산나들목으로 나오면 역순으로 만난다.

입구의 서생포왜성 안내도.


주차 후 급경사길을 올라야 한다.

서생포왜성에서 본 명선도와 명선교.


 
진해 명동에 가면 두 개의 신비의 바닷길이 열린다

 
진해 명동과 동섬을 잇는 신비의 바닷길. 이곳은 마을과 너무 가까워 예외적으로 물때만 맞추면 거의 매달 볼 수
   있다. 우측 뒤로 보이는 곳이 퇴역 군함이 전시된 옛 진해해양공원이다. 이곳 또한 음지도라는 섬이다.

옛 진해해양공원(음지도)은 다리로 연결돼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본 바닷길과 음지도.


해양공원에서 본 해녀.

최근 기와를 얹은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잠시 들여다본 해양공원.


 통합 창원시에 포함된 옛 진해시 명동에서도 바닷길을 볼 수 있다. 퇴역한 군함이 전시된 옛 진해해양공원(창원해양공원)이 있는 곳이라면 쉽게 떠올릴 수 있으리라. 명동은 크게 3개 마을로 구성돼 있다. 부산서 출발했다면 삼포, 신명, 명동마을 순으로 만난다. 

 삼포마을 입구에선 놓쳐선 안 될 볼거리가 하나 있다.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다. 1970년대 후반 고교생이던 이혜민이 여행 중 이곳 삼포마을의 풍경을 못 잊어 만든 노래가 바로 '삼포로 가는 길'. 강은철이 1983년 불러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2008년 노래비 제막식 땐 이혜민과 강은철도 참석했단다. 노래비 옆엔 작은 스위치가 있다. 누르면 '삼포로 가는 길'이 흘러나온다. 가사 속 삼포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가운데 듣는 '삼포로 가는 길'. 뜻밖의 작은 기쁨이다.

   삼포마을이 보이는 지점에 '삼포로 가는 날'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삼포마을은 신흥 회타운으로 변모했지만 포구의 한적한 정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서 한 굽이를 살짝 넘으면 소쿠리섬 및 우도 가는 도선선착장과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동섬이 바로 보이는 신명마을. 동섬까진 100m 정도 바닷길이 열린다. 입구 도로변에 '신비의 바닷길 동섬'이란 기와지붕을 얹은 안내판이 서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바로 옆 다리는 해양공원을 품은 음지도 가는 길.

 명동마을 이성수(52) 통장은 "1980년대 초반까진 지금의 해안도로 또한 바다여서 바닷길이 열리면 갯벌에서 바지락 등을 많이 캤지만 도로를 위해 매립을 강행하면서 모래가 차츰 퇴적돼 예전만 못하다"고 말했다.

소쿠리섬 가는 도선선착장 입구.

소쿠리섬에서 출발 전의 도선.


도선은 유인도 우도(사진)을 거쳐 소쿠리섬으로 간다.

도선에서 본 웅도(왼쪽)와 소쿠리섬.


도선에서 본 우도.

바닷길은 가운데 언덕을 넘으면 만난다.


  옛 진해 명동 소쿠리섬과 웅도(곰섬) 사이의 바닷길이 열리기 직전이다. 우측 저멀리 거가대교가 보인다.


 또 하나의 바닷길은 소쿠리섬과 180m 떨어진 웅도(곰섬) 사이에 열린다. 육지와 섬이 아닌 섬과 섬 사이의 바닷길이다. 선착장에서 8분쯤 배를 탄다. 무인도인 소쿠리섬에는 척박한 여느 무인도와 달리 아주 넓은 백사장이 눈에 띈다. 수년 전부터 고 이재복 옛 진해시장이 해수욕장 조성을 위해 뭍에서 실어온 모래를 뿌리고 전기와 수도를 넣었지만 해군의 반대로 유야무야된 상태란다.

 백사장을 가로질러 야트막한 고개를 살짝 넘으면 가덕도와 거가대교를 배경으로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웅도까지 바닷길이 열려 있다. 부산서 왔다는 김철수(58) 씨는 아예 방수 고무 옷과 장화를 신고 해삼과 바지락 미역을 줍고 있었다.

방수 고무 옷과 장비를 신비 한 관광객.

소쿠리섬과 웅도 사이 바닷길에서 잡은 해삼과 미역.



 신명마을에서 해양공원을 지나면 명동마을. 이곳에선 방금 본 여러 섬 즉, 음지도와 우도 웅도 소쿠리섬 초리도와 그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거제도 대금산 등 주변 지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물질하는 해녀들과 화창한 봄볕 아래 통통배를 탄 봄도다리 낚시꾼들의 모습이 평화롭게 다가온다. 바닷물이 갈리는 날은 동섬은 18~24일, 수심이 깊은 소쿠리섬은 20~23일. 문의 명동유람선 선착장 011-577-6445

거제 칠천도에도 바닷길이 열린다

 
거제 칠천도 옥계마을과 씨름도를 잇는 바닷길이 열렸다.

방파제 쪽에서 본 물 빠지기 전 모습.

물 빠지기 전 모습.


조개류 줍는 주민들과 관광객.


푸짐한 조개류.



거가대로가 개통되면서 훨씬 가까워진 거제의 가장 큰 부속섬인 하청면 칠천도에도 두 군데의 바닷길이 오는 21~23일 오후께 열린다. 2000년 연륙교가 개통된 칠천도는 해안 일주도로도 뚫려 있어 최근 자전거나 마라톤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다.

연륙교 아래 칠천량 바다는 정유재란 때 우리 해전사에 씻을 수 없는 패배의 아픔을 간직한 전장(戰場). 원균이 이끌던 우리 수군은 이곳에서 거북선 등 160여 척의 전선을 잃어 조선 수군의 존립마저 흔들리게 됐다.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급히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계기가 바로 칠천량 해전이었다. 섬 진입 전 연륙교 입구에는 이를 알리는 거북선 모양의 기념비가 서 있다.

 연륙교를 건너 칠천출장소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3개 리 10개 마을 중 가장 큰 옥계마을. 그 앞에 바닷길이 열려 있다. 코앞의 조그만 섬은 씨름도(실능도)이며, 바닷길은 길이 100m, 폭은 50m 정도. 옥계마을 바닷길은 여느 바닷길과 달리 보석 같은 갯벌이다.

 지난 5~7일은 마을 어촌체험 행사날. 하청면 이영실 총무계장은 "이 갯벌에는 원래 대합이 많은 데다 마을사람들이 미리 바지락 종패를 뿌려 장화와 호미를 준비하면 적지 않은 조개류를 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송포마을과 수야방도 사이의 물 빠지기 전 모습.

바닷길이 열린 모습.


 옥계마을을 지나 섬 북단 송포마을과 수야방도 사이에도 같은 시기에 비슷한 규모의 바닷길이 열린다. 이곳은 마을주민들이 어장을 공동 관리해 외지인들이 조개류를 채취할 수 없지만 섬 인근 홍합 및 굴 양식장의 정렬된 부이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진해 명동에서 칠천도까지는 차로 40분밖에 걸리지 않아 하루 두 곳 체험도 가능하다.
 
전국 유명 바닷길 어디서 열리나

 전남 진도 고군면 회동리와 모도 사이 2.8㎞의 바닷길이 19~21일 열린다. 매년 진도군은 이를 기념해 축제를 열었지만 34번째인 올해는 구제역 사태 때문에 공식 행사는 취소했다.

  무창포 바닷길. 끝없이 펼쳐져 있다.

길고 폭도 아주 넓다.



충남 보령 무창포 앞바다엔 바닷길로는 드물게 석대도까지 S자 형태의 1.5㎞ 바닷길이 열린다. 물때로 봐서 19~21일 오전에만 열린다.

  7개의 섬으로 이뤄진 전남 여수 사도 본섬과 추도를 잇는 780m쯤 되는 신비의 바닷길이 열린다. 추도에는
   84
m나 되는 세계 최장 공룡 보행 발자국이 있다.
   물 빠지기 전의 바닷길. 바닷길의 윤곽은 바닷길 돌에 걸려 있는 해초들 때문에 나타난다.

장군바위.

반대편에서 본 장군바위.


용미암. 이 용미암은 제주도의 용두암과 연결돼 있다 한다.

용미암 위에서 본 모습.


거북바위.

전남 여수 사도에도 본섬과 세계 최대 길이인 84m의 공룡 보행 발자국이 이어져 있는 추도 사이에 780m 길이의 바닷길이 열린다. 7개의 섬으로 이뤄진 사도에는 장군바위 용미암 거북바위 등 기암과 양면해수욕장 등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마침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051-463-9009)은 오는 19일 사도로 답사여행을 떠난다.


한편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
www.khoa.go.kr)에선 전남 진도, 여수 사도, 충남 보령 무창포 등 11곳에 대한 바닷길 갈림 시각을 예보하고 있다.

맛집 두 곳

왼쪽 아래가 낚시로 잡은 도다리다.


봄도다리 세꼬시. 앞부분과 가운데 부분이다. 나머지는 잡어.

명동횟집의 회비빔밥.


진해 명동마을에선 봄도다리를 빠뜨리지 말자. 마을 앞 바다는 해녀들과 배 낚시꾼들이 공존하는 청정해역. 눈앞에 보이는 낚시꾼들이 갓 잡은 손바닥만 한 도다리를 뼈째 썬(세꼬시) 회는 경남에선 이곳 진해 명동의 것을 최고로 알아준다. 명동횟집(055-545-9060)이 잘한다. 봄기운을 가득 느끼려면 도다리 쑥국도 맛보자. 2인 기준 3만 원. 안주인 정옥순 씨의 손맛이 일품이다.
울산 울주군 진하해수욕장 인근에는 앙장구밥을 맛보자. 명선교 바로 아래 153해물횟집(052-238-7457)이 유명하다. 앙장구는 말똥성게의 경상도 사투리. 노르스름하면서도 주황빛의 성게알에다 참기름과 김, 각종 양념을 넣은 것으로 바다 향기가 입안으로 가득하다. 1만 원. 이 집의 해산물은 모두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자연산이다.

앙장구밥.

말똥성게의 껍질을 깐 것.



- 신비의 바닷길 관련 글

(1)편 영등철(음력 2월)은 '신비의 바닷길' 대목 http://hung.kookje.co.kr/535







음력 2월에도 춥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대면 지금도 촌로들은 영등할매 치맛바람이 매섭다고들 합니다. 영등할매는 어업과 농사를 관장하는 일종의 바람신(神)이지요.

 영등할매는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 내려와 스무날쯤 하늘로 올라간다고 해서 예부터 민가에선 이달을 영등달 혹은 영등철이라 불렀습니다. 영등할매가 지상에 머무는 이 기간에는 바람이 드세 가정에선 정화수를 떠놓고 빌거나 마을에선 공동으로 영등제를 올리며 평안을 기원했습니다. 이러한 풍속은 1970년대 산업화가 대세를 이루면서 차츰 아련한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지요.

 필부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인 영등철 혹은 영등달. 이 추억의 단어가 여전히 일상화돼 있는 분야가 아직 몇몇 있답니다.

  건물 7층 높이인 명선교에서 바라본 울산 울주군 진하해수욕장과 명선도를 잇는 바닷길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동
   해안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이 바닷길에는 음력 2월 영등철이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물빠지기 전 가까이선 본 명선도. 신비의 바닷길을 보는 일은 기다림의 작업이다.

 우선 바다 낚시꾼들입니다. 마니아층인 이들은 음력 2월 영등철만 되면 바빠집니다. 대물과의 한 판 승부를 위해서죠. 바다 수온이 연중 최저점을 기록하는 시점이 바로 음력 2월 영등철입니다. 이때 잔챙이들은 수온이 안정적인 깊은 곳으로 내려가 움직이지 않는 반면 저수온을 이겨낼 수 있는 대물 감성돔들은 어슬렁거리며 갯바위 근처까지 배회합니다.

 일 년 중 자신의 대물 감성돔 기록을 경신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영등철이어서 낚시꾼들이 추운 날씨도 마다하지 않고 특급 포인트를 찾아 나서는 것이지요.

 신비의 바닷길을 찾는 사람들도 영등달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혹자들은 바닷길이 갈리는 이 현상을 두고 구약 출애굽기의 한 장면인 모세의 기적을 떠올리겠지요. 이집트 파라오군에게 쫓기던 모세 일행이 홍해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바닷물이 갈라지면서 모세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사히 바다를 건넜다는, 현실에선 좀 믿기 어려운 그 장면 말입니다. 이는 성탄절 단골 영화인 '십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자연과학적 관점으로 볼 때 이 신비의 바닷길 현상은 주위보다 높은 해저 지형이 바닷물이 빠질 때 드러나는 것으로, 바닷물이 갈라지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이 현상은 보름과 그믐을 주기로 갈리는 조차(潮差)에 의해 한 달에 두 번은 열려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않습니다. 일 년 중 가장 물이 많이 빠진다는 음력 7월 백중사리에는 이론적으로 가장 많은 바닷길이 열려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조차뿐 아니라 해저지형과 수심 등 변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기존 신비의 바닷길이 열린다고 알려진 곳의 경우 음력 2월 영등철엔 반드시 열립니다. 밀물·썰물 현상의 원인이 되는 지구에 대한 달의 인력이 이때 가장 크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니까 지금이 바다 갈라짐 현상의 대목인 셈이죠.

 현재 우리 땅에서 제법 알려진 '현대판 모세의 기적' 신비의 바닷길은 전남 진도, 여수 사도, 충남 보령 무창포, 변산반도(하섬) 정도입니다. 갈라지는 바닷길도 길고 폭도 넓어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습니다.

 부산 인근에도 신비의 바닷길이 열립니다. 아십니까. 울산 울주 서생면 진하해수욕장, 거제 칠천도, 옛 진해해양공원 근처가 바로 그곳입니다. 반나절이면 주변 관광지와 향토 맛집을 가볍게 다녀올 수 있습니다. 참, 언제냐고요. 사리 때인 음력 2월 보름 전후, 즉 이달 18, 19, 20, 21, 22일 즈음입니다. 이때 아니면 일부 지역은 음력 7월 백중사리까지 당분간 바닷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바다를 걷는 이 기분, 누가 알겠습니까. 봄 햇살도 이제 따사롭답니다.


- 신비의 바닷길 관련 글

(2)편 '한국판 모세의 기적' 신비의 바닷길 음력 2월 전국에서 열린다 http://hung.kookje.co.kr/536



 


 골프장에 도착하는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클럽하우스가 상상을 초월한 궁궐 규모의 전통 한옥이기 때문이다. 국내 400여 개의 골프장 중 클럽하우스가 전통 한옥인 곳은 이곳이 유일하단다. 이달 중순께 문을 여는 경남 사천의 삼부 타니CC 이야기다.

 삼부 타니 장두원 대표이사는 "국내를 넘어 전 세계 골퍼들을 겨냥, 클럽하우스로 왕궁을 재현한다는 타니의 야심 찬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광고 문구가 이처럼 설득력 있게 다가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경주 한옥 호텔 라궁(羅宮) 지은 삼부토건이 설계 시공
36홀 회원제…이달 중 27홀 우선 오픈
여성 골퍼 배려 라커룸에 개인 파우더 룸 설치


 한옥 클럽하우스 공사비는 220억 원 정도. 36홀 기준 서양식 클럽하우스 공사비에 비해 50, 60억이  더 들어간 셈이다. 골프장도 결국 이문을 남기기 위한 경제 행위임을 감안하면 타니의 한옥 클럽하우스는 국내 골프장이 향후 나아갈 길을 제시한 선구자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무 1번 홀 티잉그라운드에서 본 클럽하우스.
     클럽하우스 입구. 부산 범어사 일주문처럼 화강암 주춧돌 위에 기둥을 얹은 아름다운 솟을대문을 통해
     들어간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범어사 일주문이 전국에서 유일하다.

클럽하우스 내 레스토랑.

클럽하우스 내부.



클럽하우스의 설계는 경주의 한옥호텔 라궁(羅宮)을 지은 삼부토건. 16개 객실이 독채로 이뤄진 라궁은 객실마다 노천온천탕을 갖춰 완공 후 한옥의 진화라는 호평을 받았다. 타니의 한옥 클럽하우스는 결국 전통 건축양식의 장점을 현대적 시선으로 재해석, 건축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범어사 일주문처럼 화강암 주춧돌 위에 기둥을 얹은 아름다운 솟을대문을 거쳐 들어가면 그리스신전을 떠오르게 하는 큰 기둥들이 실내를 떠받치고 있어 어느 왕궁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골프장 이름인 '타니'의 의미도 궁금했다. 알고 보니 한자 이름이었다. '아름다울 타' 자에 '당신 니'를 조합해 '아름다운 당신'이라는 의미란다. 운치 있는 건물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이름이다.

현란한 코스 설계, 얕잡아보면 큰코다친다

경남 사천시 곤양면 가화리에 위치한 삼부 타니CC는 36홀 회원제 골프장. 풍수지리적으로 이곳은 금거북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금구입수형(金龜入水形)의 길지. 코스 이름과 위치도 풍수지리에 따라 북쪽 클럽하우스를 기준으로 청룡(동)-백호(서)-주작(남)-현무(북)로 정했다.

 청룡과 현무 등 3개 코스 27홀을 우선 개방하고,   잔디가 제대로 뿌리를 내릴 5월 중 나머지 9홀을 선보일 예정이다.

 코스 또한 인상적이다. 36홀을 전체적으로 먼저 살펴보면 청룡(3050m) 현무(3110m) 코스는 거리보다 정교함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두 코스는 전장이 6150m로 부산의 동래베네스트CC(6194m)와 비슷하다.

 백호(3255m) 주작(3235m) 코스는 언듈레이션이 심하고 워터해저드가 많은 데다 오르막 내리막 홀이 잊을만 하면 나타나 플레이하기에 만만치 않을 정도로 남성적이다. 전장(6490m)은 동부산(6472m)과 아시아드CC(6518m)의 중간쯤이다.

 여성적이라는, 얼핏 쉽게 느껴지는 청룡·현무 코스는 얕잡아봤다간 큰코다친다. 경기팀 이상철 프로는 "대부분의 회원들이 평소 자기 스코어보다 2~3개는 더 많이 나온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프로도 챔피언 티에선 3, 4개까지 더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매홀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매력적인 코스다.

홀마다 공략법 달리해야

전체적으로 볼 때 페어웨이에는 물결치듯 언듈레이션이 심하고, 페어웨이에선 안 보이는 좁다란 실개천이 숨어 있다. 그린은 기존의 것과 달리 횡으로 혹은 종으로 길어 세컨 샷에 유의해야 한다. 벙커는 턱이 높아 한번에 빠져나오기도 어렵다. 워터해저드와 비치벙커 등 샷을 주저하게 하는 장애물도 만만찮다. 티잉그라운드에 서면 공략법이 뻔히 보이는 기존의 골프장과 달리 캐디의 설명을 듣지 않거나 정신줄을 잠시 놨다간 지갑이 홀랑 비는 건 시간문제일 듯.

    경관이 아름다우면서도 위협적인 현무 6번 홀. 파4 우 도그레그홀인 이곳은 좌우의 워터해저드와 넓은 
     비치벙커, 그리고 극심한 2단 그린으로 골퍼들을 주눅 들게 한다.


 파4, 우 도그레그형 현무 6번 홀은 아름다우면서 위협적인 홀. 챔피언티 335m, 레귤러티 320, 299m. 좌우에 워터해저드가 있고, 우측 해저드와 페어웨이 사이에 드넓은 비치벙커가 그린을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라 고수들도 주눅이 들게 한다. 200m쯤 날린 후 8, 9번으로 투 온이 가능할 것 같지만 기울어진 계란형 그린은 극심한 2단이어서 세컨 샷의 정확도가 절실하다.

  파4 핸디캡 1인 현무 7번 홀. 길어 투 온이 불가능하다. 그린 앞 160m 지점엔 실개천이 숨어 있다.

 챔피언티 415m, 레귤러티 395, 370m인 파4, 핸디캡 1인 현무 7번 홀은 맞바람도 자주 불고 거리도 멀어 투 온이 불가능한 홀. 좌우 OB가 있고, 페어웨이는 좌에서 우로 흐른다. 그린 앞 160m 지점엔 실개천이 숨어 있고, 그린 좌·우·뒤 모두 워터해저드여서 백핀일 경우 특히 조심해야 한다. 현무 6번 홀과 함께 파가 버디나 다름없는 홀이다.

    좌우 암릉이 페어웨이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그랜드캐니언 홀로 불리는 파5 현무 4번 홀.
     청룡 2번 홀서 본 현무 4번 홀.
      현무 4번 홀의 서드 샷 지점에서 본 그린.
      현무 4번 홀의 그린 옆 워터해저드. 가만히 보니 한반도의 모습과 쏘옥 빼닮았다.
      현무 4번 홀의 그린.

 좌우 암릉이 페어웨이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일명 그랜드캐니언 홀로 불리는 좌 도그레그 파5, 현무 4번 홀은 그린 좌측에 워터해저드가 길게 포진해 있어 서드샷의 정확성이 절실하다. 서드샷 지점에서 본 해저드는 한반도를 빼닮아 눈길을 붙잡는다. 2단 그린에 착시현상까지 보여 만만치 않은 홀이다.

  아주 깊은 죽음의 벙커가 입을 벌리고 있는 파3 현무 8번 홀. 

 파3, 현무 8번 홀(챔피언티 180m, 레귤러티 151m)은 무조건 길게 쳐야 한다. 그린 앞 길게 입을 벌리고 있는 일명 죽음의 벙커가 워낙 깊어 한 번에 탈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삼부 타니CC의 시그니처 홀인, 파5 핸디캡1 청룡 5번 홀.

 파5, 청룡 5번 홀은 타니의 시그니처 홀. 핸디캡 1, 챔피언티 545m, 레귤러티 518, 440m. 티박스에선 내리막이지만 두 번째 IP 근처 실개천부턴 언듈레이션이 심한 좌 도그레그 오르막으로 변해 마치 다른 홀에서 플레이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3단 그린이라 서드샷과 퍼팅이 아주 중요하다.

  파4 청룡 3번 홀. 
  파4 청룡 4번 홀.

 파4, 청룡 3번 홀은 좌우 OB가 있는 데다 그린이 횡으로 길게 누워 있어 세컨 샷은 가급적 짧게 쳐야 한다. 특히 그린 좌측 뒤는 공간이 거의 없어 좌 핀일 때 까다롭다. 반면 파4, 청룡 4번 홀은 그린이 긴 세로형이지만 앞쪽으로 경사가 있어 길게 치면 내리막 퍼팅을 해야 되기 때문에 세컨 샷은 그린 앞쪽에 떨어뜨려야 한다.

  파4 청룡 7번 홀. IP 지점에 벙커 4개가 다이아몬드형으로 배치돼 있어 티샷을 망설이게 한다. 
  청룡 7번 홀의 2단 그린.

 파4, 청룡 7번 홀은 IP 지점에 벙커 4개가 다이아몬드형으로 배치돼 있어 티샷을 망설이게 한다. 맨 앞 벙커는 레귤러티 기준 180m. 그린 또한 2단인 데다 앞쪽으로는 이른바 혓바닥 그린이어서 역시 세컨 샷의 정확성이 필요하다.

주작 9번, 백호 9번은 마의 홀

 경기과 이상철 프로는 주작과 백호 코스의 현란한 몇 개 홀도 소개했다.

   타니의 36홀 중 가장 어려운 파5, 좌 도그레그 주작 9번 홀. 
 
 파5 좌 도그레그 주작 9번 홀은 36홀 중 가장 어려운 홀. 챔피언티 560m, 레귤러티 537, 494m. 앞쪽으로 좁은 페어웨이, 좌·우측에 워터해저드가 있고, 페어웨이와 해저드 사이엔 대형 비치벙커가 포진해 있다. 레귤러티 기준 최소 200m의 티 샷이 필요하다. 만일 슬라이스성으로 맞으면 세컨 샷 때 장애물인 실개천을 넘기기 위해선 200m 정도를 더 날려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럽다. 티 샷을 잘못 치면 확실하게 응징을 받는 홀이다. 실개천 뒤로는 언듈레이션이 심한 오르막인 데다 포대그린 앞 벙커가 꽤 부담스럽다. 2단 그린이어서 퍼팅도 쉽지 않다.

 백호 9번 홀은 페어웨이 중간에 실개천이 있는 데다 페어웨이도 좁아 프로들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파4 홀. 주말 골퍼는 드라이브 잡기가 두려울 정도다. 챔피언티 390m, 레귤러티 355, 322m로 현무 7번 홀보다 거리는 짧지만 투 온은 되레 어렵다. 그린 앞의 항아리 벙커도 부담스럽다. 

  왼쪽 주작 5번 홀, 오른쪽 백호 6번 홀. 각각 파3 홀. 비치벙커가 인상적이면서 장애물이다.

 독특한 지형의 홀도 있다. 백호 6번 홀(챔피언티 200m, 레귤러티 180m)과 주작 5번 홀(챔피언티 170m, 레귤러티 151m)은 대형 워터해저드를 양쪽에 끼고 반대 방향으로 티샷을 날리는 파3 홀. 모두 거리도 만만치 않은 데다 해저드와 그린 사이에 대형 비치벙커가 각각 터를 잡고 있어 시각적으로 위축된다. 풍경은 그림 같이 아름답다.

 삼부 타니CC에는 코스마다 연습 그린이 있다. 여성 골퍼를 위해 여성 라커룸엔 개인 파우더 룸이 설치돼 있다. 남해고속도로 축동IC에서 차로 5분, 사천공항에선 15분 걸린다.

소개안 된 나머지 홀은 다음과 같다.

  파4 현무 1번 홀.
  파4 현무 2번 홀.
  현무 2번 홀에서 본 클럽하우스.
  좌 워터해저드, 우 OB, 파4 현무 3번 홀.
  파3, 현무 5번 홀.
  한옥 클럽하우스가 훤히 보이는 현무 9번 홀.
  파4, 청룡 1번 홀.
  파4 청룡 2번 홀.
  파3 청룡 6번 홀.
   파4 청룡 8번 홀.
  파4 청룡 9번 홀.

 

 


오니기리 전문점
부산 금정구 부산대 앞 '카모메'



 일본인들이 가장 간편하게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가 오니기리이다. 이 음식은 꼬들꼬들하게 지은 밥에 소금과 참기름 등으로 간단하게 간을 한 후 우메보시나 단무지를 넣어 먹는 주먹밥.

 원래 오니기리는 사무라이들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 고안된 일종의 전투 식량이었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배우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오니기리를 먹는 장면이 흔히 나온다. 

 오니기리를 소재로 만든 음식 영화도 있다. 지난 2006년 국내에서도 개봉된 '카모메 식당'이 바로 그것. 카모메는 일본어로 기러기. 이 영화는 오니기리를 만드는 일본 여인이 핀란드에서 가게를 열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소하게 그려 제법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 이런 점을 보더라도 오니기리는 일본인들에게 단순한 음식 그 이상의 존재로 뿌리 깊이 각인된 듯싶다.

 그 오니기리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속재료를 다양화해 젊은 층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 인근에 지난 1월 문을 연 '카모메'(051-933-9523)가 대표적 진원지. 가게 이름은 당연히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따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로 조그만 카페에 온 듯하다. 테이블은 2인용 7개와 바 3자리. 정원이 17명인 셈이다.



 메뉴는 크게 오니기리와 누들. 오니기리는 18가지로 다양해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 가장 인기가 높은 치즈 날치알, 여성들이 좋아하는 참치 마요네즈(오른쪽 사진), 매우면서도 은근히 중독성이 강한 불닭, 어린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구운 스팸, 중년 남성들이 선호하는 명란젓과 부추청어알 오니기리 등등. 메뉴에 표시된 빨간 별표는 매운맛을 의미한단다. 가격은 대부분 1500~2000원. 하나만 먹어도 간단히 요기는 되지만 보통 오니기리 하나에 누들류 하나를 곁들인다. 물과 장국 그리고 락교와 단무지는 셀프.
(아래 사진)

 치즈 날치알과 참치 마요네즈, 불닭 오니기리를 시식했다. 오니기리 위에는 속내용물이 약간 토핑돼 나온다. 부드럽고 고소한 크림치즈와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날치알의 조화가 일품인 치즈 날치알 오니기리는 왜 최고 인기품목인지를 맛으로 웅변한다. 검은 깨와 단무지가 속속 박혀 있는 밥은 약간 차지면서도 쫀득하며 내용물 또한 푸짐하다. 사실 편의점의 삼각김밥과 별 차이가 있겠나 싶었지만 큰 오산이었다. 참치 마요네즈 오니기리는 새콤달콤, 불닭 오니기리는 알싸하게 맵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 젊은 층의 입맛을 잘 아는 이대정(29) 주방장의 솜씨 덕분이다.

가쓰오부시가 팔락팔락 춤을 추는 볶음우동. 아주 맵다.

일본 현지 맛보다 맛있는 나가사키 우동.


 누들류는 볶음우동(5000원)과 나가사키 짬뽕(5500원)을 맛봤다. 토핑한 가쓰오부시가 팔락팔락 춤을 추는 볶음우동은 별미지만 예상보다 매웠고, 사골 육수를 쓴 하얀 국물의 나가사키 짬뽕은 일본 현지 것보다 맛있다. 세트 메뉴는 연인들이 주로 찾는다. 누들 하나에 오니기리 두 개가 나와 실속 있다.

       이대정 주방장과 허진아 대표(오른쪽).

 허진아 대표는 "호기심으로 들어왔다 일단 맛만 보면 바로 단골이 된다"며 "인근 아파트촌의 학원 다니는 아이 엄마들이나 여학생들이 테이크아웃하는 비율이 30%에 달한다"고 말했다.

 패스트푸드와 슬로푸드의 경계에 있는 듯한 오니기리, 바쁘고 호주머니 가벼운 현대인의 생활 패턴에 딱 맞는 음식인 듯하다.

'카모메' 입구.

진열된 오니기리.




 

스테레오스코프(stereoscope)라는, 입체경(立體鏡)으로 번역되는 광학기계가 있습니다. 안경처럼 생긴 이 문명의 이기(利器) 아래 동시에 찍은 항공사진 2장을 놓고 보면 처음엔 잘 보이지 않다가 초점이 맞춰지는 순간 사진 속의 마천루나 수목들이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눈앞에 나타나지요.

 그 숱한 발길로 친숙한 동네 뒷산을 오르내려도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남근석 여근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걷기만 한다면 평생 지척에 두고도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겠지만 스테레오스코프를 보듯 꼼꼼히 살펴보면 영락없는 성기(性器)의 형상을 한 '거시기'가 한눈에 쏘옥 들어오지요.

 남근석은 흔히 양근석 입석 선돌 장군석 낭군석 좆바위 불알바위 등으로 불리고, 여근석은 밑바위 여궁 처녀바위 샅바위 등의 닉네임을 갖고 있지요. 또 남근과 여근이 함께 있으면 부부암, 비슷한 남근이 그 밑에 있으면 자식바위라 칭하고 이 모든 것을 뭉뚱그려 관련 전문가들은 성석(性石)이라 표현하지요.

 성석을 닮은 바위나 폭포 구릉 등의 지형을 보면 점잖은 사람들은 애써 고개를 돌립니다. 평범한 장삼이사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냥 웃지요. 하지만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기원을 드립니다.

 예부터 성석은 숭배 대상이었습니다. 그냥 웃고 넘길 피사체가 아니라 존재의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지요.

 우선 성이 지닌 생산력이 곧 성기 숭배의 형태로 나타나 마을의 안녕과 풍년 및 풍어를 기원하는 토속신앙의 대상이 됐지요. 다랑이논으로 유명한 남해 가천마을 주민들이 매년 암수바위 앞에서 마을의 평화와 풍어를 기원하며 제를 지내는 것이 좋은 예가 되겠지요. 득남을 기원하는 성석인 기자석(祈子石)은 새끼줄에 둘린 채 곳곳에 널려 있어 두말하면 잔소리겠지요.

 풍수지리상의 음양조화를 이루기 위해 비보압승(裨補壓勝)의 대상으로도 성석이 이용됐답니다. 풍수지리상의 허한 곳이나 부정한 지형에 성석을 세워 마을의 평온을 바라는 형태지요. 혹은 애초부터 음양의 조화에 맞게 위치한 남근석과 여근석을 확인함으로써 누리게 되는 심적 평온함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숭배로 봐도 무난하지요. 경주 오봉산 여근곡이나 거제 둔덕면 산방산 남자바위와 작은 여근곡이 단적인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성석 순례를 떠났습니다. 취재 도중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제아무리 첨단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성석 숭배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소박할지라도 인간의 욕망은 영원하니까요.

 첨언 하나. 취재 대상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행여 외설로 낙인 찍히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사실 고민 아닌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성석은 낯뜨거울 것도 숨겨야 할 것도 아닙니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하고많은 소중한 문화유산 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 거제 둔덕면 애바위와 애애등

거제 둔덕면 산방산.

5,6부 능선쯤의 튀어나온 바위가 애바위다.


         거제 산방위 애바위와 마주보고 있는 애애등. 민둥산이었을 땐 선명했지만 지금은 자세히 관찰해야 
         확인할 수 있다. 산의 가운데 부분, 활엽수가 소나무를 동그랗게 감싸고 있는 곳이 애애등이다.

거가대로가 뚫리면서 한층 가까워진 거제 둔덕면에는 청마 유치환의 부부 묘와 선영 그리고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청마기념관이 있다. 이곳에는 또 고려 의종이 정중부의 난 때 파천해 3년간 머물렀다는 둔덕기성(폐왕성)도 있다. 해서 마을사람들은 왕이 살았기 때문에 이곳 둔덕 땅만을 구분해 '전하도'라고도 부른다.

 둔덕면 방하리 둔덕들 한가운데 서면 우락부락한 바위산이 양팔을 벌려 마을을 감싸고 있다. 거제 11대 명산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산방산이다. 산 5, 6부 능선쯤에 한눈에 봐도 힘이 넘치는 바위 하나가 툭 튀어나와 눈길을 끈다.

 둔덕골 출신이자 청마기념관 명예관장 겸 자원봉사자인 김화순(63) 씨는 "어릴 때 할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어르신들이 '사랑 애(愛)' 자를 써 애바위라 불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주보는 우두봉 자락의 작은 둔덕을 가리키며 "저곳은 여성의 음부를 닮아 '사랑 애' 자 두 개를 붙여 애애등이라 했다"고 덧붙였다. 쉽게 말해 남근석과 여근곡이 마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습은 청마기념관 2층 전망대에서 보면 대략 확인된다.

 동행한 산경표연구소 박의석(57) 소장은 "남성을 상징하는 정동쪽 좌청룡 자리에 애바위가 있고, 반대쪽 우백호 자리에 여근곡인 애애등이 마주 보고 있으며, '흙 토(土)'를 상징하는 그 사이 너른 둔덕 들녘이 비옥해 음양오행에 따른 풍수지리가 이보다 좋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애애등이 애바위보다 미미한 데다 방향 또한 약간 틀어져 있어 아쉽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명예관장은 "수십 년 전엔 민둥산이어서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여근 그 자체였지만 지금은 숲이 울창해 그 흔적이 미미할 뿐이며, 음부를 닮은 애애등에는 예부터 물이 끊이질 않아 어릴 때 소먹이던 일종의 우마장 역할을 했지만 이후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지금은 산길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자세히 보려면 애애등 아래 비닐하우스 인근으로 다가가야 된다. 잎을 떨군 활엽수가 여근 부분을 동그랗게 비보하며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다. 마을사람들은 음양오행에 따른 풍수지리가 좋아 마을 전체가 지금까지 평온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경주 여근곡

   경주 오봉산 여근곡 겨울. 가운데 부분이다.
   가을엔 여근곡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여근곡 여름.

경부고속도로서 본 여근곡.

고속도로에서 당겨서 본 모습.


우리 땅 대부분의 여근이 쪼개진 바위나 폭포이지만 경주 건천읍 여근곡은 산 전체를 통째로 여근이라 봐도 무난할 정도로 우선 크다. 오봉산이라는 멀쩡한 산 이름이 있지만 생긴 모습이 워낙 여성의 성기와 닮아 여근곡이 대표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성(性) 관련 민간신앙 대상물인 여근곡은 삼국유사 지기삼사(知幾三事) 편에서 신라 선덕여왕의 뛰어난 예지력을 보여주는 대목에 언급될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드라마 '선덕여왕' 마지막회 때 여왕이 깎아지른 너른 절벽 위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여근곡이 위치한 오봉산 정상 바로 밑의 마당바위(지맥석)이다.

'선덕여왕' 마지막회 때 나온 마당바위.

드라마 '동이' 때도 마당바위가 나왔단다.



 건천읍 신평2리에 위치한 여근곡은 경부고속도로 건천나들목과 경주터널 사이, 상행선일 경우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로 보인다. 위압감을 주지는 않지만 병풍처럼 남북으로 길게 뻗은 오봉산 한가운데 위치한 여근곡은 둥근 모양의 두둑과 골이 절묘하게 조합돼 누가 보더라도 음문 형상임을 알 수 있다. 그 음문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까지 고려한다면 벌거숭이 여인의 하체를 적나라하게 보고 있는 듯해 민망할 정도다. 이 모습은 신평2리 마을회관 옆 여근곡 성 테마 박물관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가장 뚜렷하게 확인된다. 사계절 만추의 여근곡(오른쪽 사진)이 제일 선명하다.


 여근곡과 관련된 구전도 재밌다. 옛날 새로 부임하는 경주 부윤은 그 음탕한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건천보다 먼 길인 동쪽의 안강 땅을 통해 경주로 들어왔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은 애써 고개를 돌려 지나갔다고 한다. 한국전쟁 땐 이동하던 미군들이 여근곡을 보며 탄성과 야유를 질렀다고 한다.

 숲(오봉산)을 봤으면 이제 나무(여근곡)를 볼 차례. 오봉산 여근곡 등산로의 들머리는 유학사. 절에서 300m만 걸으면 여근곡 샘터를 만난다. 바로 옆엔 '옥문지'라는 팻말이 서 있다. 호스를 묻어 대웅전 옆 샘터로 뽑아 쓰고 있지만 샘터 주변은 늘 축축하게 젖어 있다.15년 전 오봉산에 불이 나 산이 홀랑 다 탔을 때도 샘터가 위치한 음부 주위는 화마를 피했다고 한다.

 샘터를 중심으로 한 수목 대비도 뚜렷하다. 샘터 주위에는 잎을 떨어낸 활엽수가 있지만 그 경계에는 소나무가 동그랗게 감싸고 있다. 멀리서 봤을 때 음부가 식별되는 이유이다.                      
   

여근곡 옥문지.

오봉산 여근곡 산행 들머리.

          
 신평2리 촌로들에 따르면 예부터 여근곡 샘을 작대기로 휘저으면 마을 여자들이 바람이 나기 때문에 마을에선 청년들이 샘을 지키기도 했다. 이런 차원에서 지난 1970년대 초까지 마을에선 여근곡을 신성시하며 동제를 지냈다고 전해온다.

 여성이 있으면 남성이 있기 마련. 여근곡 쪽에서 맞은편 신평리 쪽 너른 들판을 바라본다. 신평리 원신마을을 기점으로 앞으론 경부고속도로, 뒤론 중앙선 철로와 영천과 포항을 잇는 4번 국도가 횡으로 나란히 내달린다.

 여근곡 성 테마 박물관 박용(76) 관장은 "옛날에는 여근곡 맞은편 봉우리가 남근 모양을 하며 여근곡을 향하는 형상이었지만 철도와 국도가 뚫리면서 그 모습이 사라져 지금은 흉물스런 산사면이 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곳 또한 우백호(서쪽) 자리에 여근곡이, 비록 잘려나갔지만 좌청룡(동쪽) 자리에 남근 형상, 그리고 그 사이 '흙 土'를 상징하는 신평리엔 너른 벌판이 있어 음양오행에 따른 풍수지리가 완벽하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여근곡 자리에 지화곡(只火谷), 맞은편 남근 형상 봉우리엔 접포산(蝶布山)이라 표기돼 있다. 지화곡과 접포산은 각각 꿀과 나비를 의미하므로 음양의 조화가 딱 맞음을 보여준다.

어휴! 망측해라, 곳곳의 남근석 여근석

  경북 의성 비봉산의 암릉 우측 끝단 소나무 아래 절묘한 위치에 숨어 있는 남근석. 남근 그 자체다.

경북 의성 비봉산의 암릉 끝자락에 남근석이 숨어 있다. 산꾼들은 흔히 금성산~비봉산 코스를 산행한다. 금성산과 비봉산 정상을 잇따라 지나 급경사 사면을 밧줄에 의지해 내려와 고개를 돌리면 암릉 맨 우측 끝단 소나무 아래 절묘한 위치에 남근석이 숨어 있다. 선명한 귀두 모양이 영락없는 남근 그 자체다.

 억새로 유명한 장흥 천관산에는 양근석과 금수굴이 마주보고 있다. 높이 4m쯤 되는 양근석은 발기한 모습이며 그 아래에는 불알 모양의 동그란 바위 두 개가 붙어 있다. 자연석이 이처럼 비례에 맞춰 완벽한 형상을 갖춘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와 마주 보는 능선에는 여성의 음부를 닮은 금수굴이 있어 자연의 오묘한 조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천관산 금수굴.

천관산 양근석. 둘은 마주본다.


 문경 주흘산의 여궁폭포는 여근을 떠오르게 한다. 제1관문인 주흘관을 지나 우측 곡충골 방면으로 1㎞쯤 오르면 만난다. 높이 20m인 이 폭포는 옛날 하늘에서 내려온 일곱 선녀가 노닐었다고 전해온다.

 기암괴석이 지천이라 '천구만별'(千龜萬鼈·천 마리의 거북이와 만 마리의 자라)이라 불리는 금정산에도 최근 남근바위와 여근바위가 발견됐다. 남근석은 금샘 동쪽 아래, 여근석은 상계봉 아래 수박샘 바로 위에 숨어 있다. 둘 다 등산로를 벗어나 있어 찾기는 쉽지 않다.

부산 금정산 남근바위.

부산 금정산 여근바위.


 음양의 조화를 위한 남근석도 있다. 거창 미녀봉은 임신한 여인이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누워있는 형상. 산아래 가조면 사병리 생초마을 벌판에는 선돌인 남근석이 마주 보고 서 있다. 마을사람들은 과도한 음기를 벌충하기 위한 비보 성격의 남근으로 풀이하고 있다.
   임신한 여인이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누워있는 형상인 미녀봉과 남근석이 마주보고 있다. 거창군청 제공

 월악산에도 남근석이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이 산은 음기가 왕성한 산이다. 덕주사 뒤편인 제천시 덕산면에서 보면 월악산은 누워있는 여인의 얼굴을 닮았다. 선조들은 월악의 음(陰)의 지기(地氣)를 누르고 음양의 조화를 위해 덕주산 입구에 남근석을 세웠다.
           월악산 남근석.

 제주도에도 성석이 발견된다.
 산방산 중턱 산방굴사 우측 벼랑에 남근석이 서 있으며, 라온GC 클럽하우스 입구의 자연동굴에도 남근석과 여근석이 마주 보고 있다. 타이거 우즈도 이곳을 방문했을 때 남근석과 여근석을 만지고 갔다 한다.

제주 라온골프클럽의 동굴 속 남근.

동굴 속 여근.둘은 마주보고 있다.


        제주 산방산 중턱 산방굴사 우측 벼랑에 서 있는 남근석.

"경주 오봉산 여근곡 성(性) 테마박물관 놓치면 후회"
-개인 수집가 박용(사진 오른쪽) 관장 370여 점 전시


경주 건천읍 신평2리 오봉산 여근곡 입구 원신마을에는 빠뜨려선 안 될 명소가 한 곳 있다. '여근곡 성 테마 박물관'(054-751-2229)이 바로 그것이다. 박용(76) 관장이 40여 년 동안 발품을 팔아 모은 남근과 여근을 닮은 희귀 수석 등을 비롯하여 전 세계 어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다양한
문양석이 370여 점 전시돼 있다.

 고향이 경주인 박 관장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여근곡을 본 후 이곳이 세계적으로 드문 자연예술품이라는 사실을 인식, 지난 2004년 여근곡이 가장 잘 보이는 지금의 터를 사들여 건물을 짓고 이듬해 4월 문을 열었다. 여근곡과 여근곡 성 테마 박물관이 세트로 입소문을 타면서 명소화돼 지금은 경주시가 적극 나서 마을 진입로를 넓히고 있으며, 주차장도 이후 건립할 계획이다.

 박 관장은 "개인적으로 석복(石福)이 있어 적지 않은 희귀 성석(性石)을 많이 모았다"며 "수석에 관심이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무료로 개방하던 여근곡 성 테마 박물관은 내달부터 입장료를 받는다. 대인 3000원, 학생(초중고) 및 단체(20인 이상) 2000원.
           여근곡 성(性) 테마 박물관 내 성석(性石).

박물관 내


박물관 내 성석(性石)들.

문경 주흘산 여궁폭포.



맛집 둘
금강산도 식후경. 맛집 두 곳 소개한다.
여근곡이 위치한 건천읍에는 흑염소 불고기(아래 사진)가 아주 유명하다. 23년 전통의 '당나무식당'(054-751-0975)이 잘한다. 흔히 여성을 위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농본초경과 동의보감에 따르면 흑염소 수놈은 남성강화 식품이다. 1인분 1만 3000원. 육개장이 아주 맛있다. 건천IC에서 차로 1분 거리.


 거제 둔덕면에선 '88횟집'(055-634-1626)을 권한다. 겨울철 별미인 밀치(참숭어긿 3만, 4만, 5만 원)를 주문하면 뼈째 썬 것과 포를 뜬 것으로 나눠 올라온다. 주인장의 칼 솜씨가 빼어나 밀치의 진면목을 알게 해준다. 국물이 시원한 물메기탕(7000원)도 별미이다.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의 신모에다케 화산폭발을 보면서 뜬금없게도 '용감한' 한국인을 떠올렸습니다.

  본격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전에 먼저 보충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라쿠니다케 등산로 입구의 입간판. 화산 폭발 위험 때문에 신모에다케의 등산을 금한다고 적혀 있다.

조금 더 넓게 본 들머리.

약간 올라와서 내려다본 들머리.


   가라쿠니다케 정상 바로 아래에서 본 기리시마 산군. 가운데 푹 꺼진 곳이 지난해 7월과 올 1월 말 화산 폭발을
   일으킨 신모에다케이고 맨 뒤 높은 봉우리가 일본인들이 신성시하는 다카치호미네이다.
  가라쿠니다케에서 기리시마 산군에서 가장 큰 칼데라호(지름 1 ㎞)인 오나미이케(大浪池)로 가는 길이 아름답다.
   한자 표기로 봐선 큰 파도가 일렁이는 못이라는 의미의, 지름이 1 ㎞인 오나미이케(大浪池).


 지난해 11월 초 미야자키현을 다녀왔습니다. 이곳에는 가라쿠니다케라는 산이 있는데 한자 표기가 '韓國岳'이랍니다. 정상적이라면 한국을 의미하는 '강고쿠'를 붙여 '강고쿠다케'라 불러야 하지만 이 산은 '가락국'을 의미한다며 '가라(가야)/ 쿠니(국)/ 다케(산)'로 풀이하더군요.

 '일본서기'에 따르면 4세기 한반도에서는 거듭된 전쟁 때문에 새로운 생활 무대로 일본 열도가 대두하자 가야 백제 신라 유민들이 집단 이주를 하기 시작했답니다. 당시 열도에는 통일된 국가라기보다 호족이 지배하는 소국이 산재해 언어 관습 등이 지역마다 달랐다고 합니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을 '멀리서 온 사람'이라는 의미의 '도래인'(渡來人)으로 불렀답니다. '도래인'은 토목 양잠 등 당시로선 선진기술을 사용했고, 한문으로 외교 문서를 작성하는 등 일본인의 생활 향상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고향을 떠나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미야자키에 정착한 '도래인'도 예외가 아니었겠지요. 보름달이 뜨면 그들은 미야자키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가라쿠니다케에 올라 고향인 한반도 방향을 바라보며 수구초심의 마음을 느끼며 흐느꼈겠지요.

 실제론 가라쿠니다케에서 한국은 아예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고 싶다는 열망의 우회적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라쿠니다케는 미야자키의 서쪽 끝 가고시마와의 경계에 솟아 있습니다. 행정구역으론 미야자키현 고바야市에 똬리를 틀고 있는 셈이지요.

 서론이 너무 길었지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가라쿠니다케는 이번에 화산 폭발이 일어난 신모에다케와 함께 기리시마 연봉이라는 큰 산군에 같이 포함돼 있습니다. 두 봉우리는 걸어서 3시간쯤 걸립니다. 아주 가깝지요.

 기리시마 연봉은 이곳에서 남쪽 60㎞ 해상에 떠있는 섬 야쿠시마와 함께 '기리시마 야쿠시마'라 불리며 일본 국립공원 1호입니다. 각각 화산지형과 울울창창한 삼나무 숲이라는 독특한 자연환경을 보유한 일본의 명승지이지요.

 곳곳에 분화구와 칼데라가 산재해 이국적 풍광을 선사하는 기리시마 산군은 이웃한 가고시마현의 사쿠라지마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 활화산 지대입니다.

 기리시마 연봉에는 크고 작은 봉우리가 많습니다. 주요 봉우리로는 가라쿠니다케(1700m) 시시고다케(1428m) 신모에다케(1421m) 나카다케(1345m) 다카치호미네(1574m) 등 5개. 거리는 13.7㎞로 산행 시간은 넉넉잡아 6시30분이면 충분합니다.

 일본인들은 일본국을 세운 신들이 내려왔다는 전설을 간직한 다카치호미네를 주로 찾지만 한국인들은 가라쿠니다케를 선호합니다.

 해서, 한국인들은 기리시마 연봉 산행 때 들머리를 가라쿠니다케로 잡습니다.
 필자도 한국인인지라 가라쿠니다케의 들머리인 에비노고원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가이드는 '기리시마 네이처가이드클럽' 후루조노(64) 씨였습니다.

 고향이 이곳인 그는 가라쿠니다케만 아마도 수천 번을 올랐답니다. 눈 감고도 오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날은 마침 서울서 왔다는 단체 산행팀 등 한국팀도 두세 팀 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기리시마 연봉은 그야말로 화산지대였습니다. 들머리 건너편의 이오야마라는 화산은 243년 전에 폭발했다가 30년 전쯤에 연기는 났지만 폭발은 하지 않았답니다. 회색빛 화산재가 넘쳐가는 둔덕이었습니다.

 기리사마 연봉 주변에는 화산 폭발의 흔적인 칼데라호가 보였습니다. 지름 1㎞가 넘는 오나미노이케(大浪池)를 비롯 후도이케, 롯칸논미이케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가라쿠니다케 정상 못 미친 지점에선 앞서 말한 5개의 봉우리가 모두 보였습니다. 이번에 폭발을 일으킨 신모에다케는 가운데 푹 꺼진 분화구가 있었습니다. 거의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신성시한다는 다카치호미네도 멀지만 선명하게 확인됐습니다.

 사단은 가라쿠니다케 정상에서 발생했습니다. 동행한 서울팀이 가라쿠니다케에서 이웃 봉우리인 시시고다케로 갈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저희는 여기까지만 보고 하산할 계획입니다. 잘 다녀오십시요."
 "비싼 돈주고 왔는데 끝까지 종주는 해야죠. 그럼 안녕히 가세요."

 이렇게 인사를 하자 옆에 있던 가이드 후루조노 씨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신모에다케는 지난해 5월 초부터 폭발 징후가 보여 입산이 금지돼 있습니다. 결국 지난해 7월 화산 폭발이 있었습니다. 에비노고원에서 출발할 때 입간판을 못 보셨습니까. 이곳에서 지금까지 산행하는 사람들은 한국인밖에 없습니다. 한국인들은 매너가 좋지 않아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모두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후루조노 씨는 자신이 말을 심하게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농담이다"라고 말한 후 밝은 표정을 지으며 딴청을 피웠지만 그 순간의 어색함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 정말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좀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의 입에서 '한국인의 산행 매너 문제'가 바로 나왔다는 사실은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법을 어기는 모습을 봐왔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며 그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지난 7월 화산 폭발 당시의 신모에다케. 이 사진은 후루노조 씨의 친구가 위험을 무릅쓰고 찍었다.
  지난달 27일 폭발을 일으킨 신모에다케.

 그로부터 6개월 뒤 신모에다케는 엄청한 파괴력으로 폭발을 일으켰지요.

 만일 일본인 가이드가 동행하지 않고 아무 정보 없이 한국인들이 산행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하산하면서 에비노고원의 들머리를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입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
 더군요.

 "신모에다케는 분화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등산할 수 없습니다." 평성 22년 5월 6일이니까 지난해 즉 2010년이었습니다. 물론 영어 중국어로도 적혀 있었습니다.

 하산 후 차 안에서 후루조노 씨는 지난해 7월 신모에다케가 폭발했을 당시의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와서 그 사진을 꺼내 비교해보니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귀국한 지 석 달도 채 안 된 지금 신모에다케의 화산 폭발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래서 '화산 폭발 위험을 무시하고 용감하게 달려나간 부끄러운 한국인의 등산 매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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