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메기는 자타가 공인하는 명실상부한 1위

"대게는 영덕, 오징어는 울릉도에 지명도에 밀리지만 
생산량은 압도적으로 1위랍니다"

구룡포항 전경. 웬만한 어항 하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각도를 달리해서 본 구룡포항.

장삼이사들은 구룡포 하면 십중팔구 과메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구룡포에는 과메기 이외에 국내 최대를 자랑하는 두 가지 수산물이 더 있다. 다름아닌 대게와 오징어이다. 혹자들은 대게는 영덕, 오징어는 울릉도를 떠올리겠지만 이건 와전이고 편견이다.

대게와 오징어의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생산지는 바로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항이다. 결국 구룡포는 대게 오징어 과메기의 전국 최대 생산지이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동해안 최대 어업전진기지라 불릴 만큼 구룡포는 어항이라 부르면 미안할 정도로 항구가 자체가 아주 크다. 한눈에 봐도 영덕이나 울진 후포항, 울산 정자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규모가 상당하다.

해서, 구룡포는 겨울바다의 낭만 보다는 갈매기의 호위를 받아 뱃고동을 울리며 쉴새없이 드나드는 비릿한 고깃배의 모습이 더 살갑게 다가오는 거대 어항이다.

우선 과메기를 살펴보자. 일출 명소로 유명한 호미곶이 위치한 북쪽의 대보면 등과 함께 과메기 특구로 지정된 구룡포는 국내 전체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구룡포가 과메기 최대 집산지로 자리매김한 데는 지정학적 위치 덕분. 포항은 낙동정맥이 고도를 낮추는 지점이라 북서풍과 염분을 머금은 영일만의 해풍이 뒤섞이며 과메기를 숙성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과메기는 구룡포항을 살짝 벗어나면 해안가에 덕장이 이어진다.

대게와 관련해선 땅을 치고 통곡할 정도. 구룡포수협에 따르면 국내 생산량의 60%가 이곳 구룡포항에서 위판된다고 한다. 하지만 브랜드가 영덕에 밀리다 보니 여기서 잡은 대게의 상당 부분이 영덕으로 올라가 영덕대게로 옷을 갈아 입니다. 마치 전남 고흥 녹동항에서 위판된 세발낙지가 목포 세발낙지로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구룡포수협 관계자도 "브랜드 인지도에서 차이가 나는 건 현실이지만 분명히 생산량은 구룡포가 훨씬 앞선다는 것은 자명하다"고 강조했다.
구룡포항 대게 위판장.

오징어 또한 국내 최대 생산을 자랑한다. 흔히 오징어 하면 울릉도를 연상시키는데 실제로는 울릉도 보다 오징어를 많이 잡는 곳이 이곳 구룡포다. 구룡포수협에 따르면 오징어 생산의 절반 가량이 구룡포에 모여든다고 한다.

 오징어의 경우 워낙 많이 위판되다 보니 오징어 채낚기배에 잡히는 오징어(활어) 위판장과 그물에 의해 잡히는 (트롤)오징어 위판장 두 군데가 있다. 이렇게 오징어가 많이 생산되는데도 필부들은 오징어 하면 울릉도를 떠올리니 구룡포 사람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밤에 등불을 밝혀 오징어를 불어모은 후 긴 낚시줄로 잡아올리는 오징어채낚이배.
구룡포항을 벗어나면 과메기와 함께 해풍에서 건조되는 오징어를 만날 수 있다. 반건조 오징어인 일명 피데기이다.

한마디로 구룡포는 대게는 영덕, 오징어는 울릉도에게 밀리면서 그야말로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국에서 가장 싱싱한 대게와 오징어, 과메기를 가장 싸고 맛있게 맛볼 수 있는 곳이 다름아닌 구룡포항인 것이다.

여기서 국내 유일 등대박물관과 유명 일출 명소로 '상생의 손'이 반기는 호미곶이 불과 30㎞에 불과해 해안드라이브 코스로 일품이다.

동해안 최대 어업전진기지인 구룡포항을 벗어나면 과메기 덕장과 함께 아름다운 해변이 줄곧 이어진다. 해안드라이브길로 일품이다.

 서인만 구룡포 미래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동해안 최대 어장인 구룡포가 어업 생산량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것은 일차적으로 구룡포 사람들 책임이 크다"며 "앞으로는 브랜드 인지도를 올리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계유정란 때 살해된 황보인 손자 노비가 구해
후손들이 서원 세운 후 뒷마당 양지에 비 세워 

바깥에서 본 광남서원. 제법 규모가 크다.

서원(書院)은 조선 중기 이후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자 동시에 유교의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조선 중종 37년인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경북 순흥에서 고려 학자 안향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백운동서원이라 부른 것이 조선 최초의 서원이다. 회재 이언재를 모신 경주 옥산서원, 퇴계 이황을 기리기 위한 안동 도산서원 등이 대표적인 예.

 하지만 양반과 상놈의 서열이 분명했던 조선시대 때 노비의 비(碑)가 존재하는 서원이 있어 눈길을 끈다. 과메기로 유명한 구룡포에 위치한 광남서원(廣南書院)이 바로 그것이다. 서인만 구룡포 미래사회연구소 부소장은 "국내에서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행정구역상으로 포항시 구룡포읍 성동3리.

 문무대왕 수중왕릉인 경주 양북면 용당리 앞바다에서 31번 해안국도를 따라 가다 구포휴게소를 지나자마자 도로 좌측에 '성동 메뚜기마을', '광남서원'이란 팻말이 서 있고 서원 앞 너른 주차장에는 포항 대형 지도가 눈에 띈다.
                 광남서원 입구의 대형 지도. 지도 아래 현위치라 적힌 표기된 글도 보인다. 

 광남서원은 계유정란 때 수양대군에게 살해된 충정공 지봉 황보인과 그 장자인 참판공 황보석, 그 차자인 직장공 황보흠을 기리기 위해 지방유림과 그 후손들이 세웠다.

 황보인(1387~1453)은 조선 태종 14년 1414년에 천시문과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세종 18년 1436년 병조판서에 올랐다. 이후 1440년엔 평안 성길도 관찰사가 돼 약 10년간 김종서와 함께 6진을 개척했고 문종 2년 1451년 영의정이 되어 단종을 보좌하다 결국 1453년 수양대군에게 살해됐다.

 황보인을 기리기 위한 광남서원에 그렇다면 왜 노비의 비가 세워져 있단 말인가. 사연은 이랬다.

 원래 역적은 3대를 멸하지 않는가. 계유정란 때 역적으로 몰린 황보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들도 살해를 당했지만 손자가 충직한 노비 덕택에 살아났다.
 다름아닌 단량이라는 노비가 어린 손자를 물동이에 숨겨 일출 명소로 유명한 호미곶이 위치한 포항 대보면의 오지 중 오지인 집신골에 피난을 내려와 거주하다 이보다 남쪽인 지금의 구룡포읍 성동으로 이주하여 대를 이어가게 됐다.

 세월이 흘러흘러 황보인과 그의 아들도 복관되자 정조 15년 1791년에 후손들이 '세덕사'라는 서원을 지었고, 순조 31년 1831년 나라로부터 '광남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

 서원을 들어서면 좌측에 '영의정 충정공 지봉선생 신도비'라 새겨진 신도비가 있으며 강당인 숭의당과 제당인 충종묘와 사우삼간 등이 있다.

       서원 입구에 위치한 황보인의 신도비. '영의정 충정공 지봉선생 신도비'라 새겨져 있다.

광남서원의 본 건물.

'광남서원'이라 적혀 있다.



 충비(忠婢) 단량을 기리는 비(碑)인, '충비단량지비(忠婢丹良之碑)'라고 적혀 있는 비가 경내 뒷쪽 한켠에 세워져 있다. 무심코 왔다간 놓치지 쉬운 곳에 있지만 서원에 노비의 비(碑)가 세워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계급사회인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이었다는 것이 서인만 구룡포 미래사회연구소 부소장의 설명이다.

         '충비단량지비(忠婢丹良之碑)'라' 적힌 노비 단량의 진짜 비석.
          단량의 비.
 
안타까운 점이 하나 있다. '진짜' 단량의 비는 담벼락 아래 양지바른 지점에 서 있지만 이후에 만든 '가짜' 단량의 비는 반듯한 전각 안에 소중히 모셔져 있다. 세월의 풍파를 겪고, 앞으로도 겪을 진짜 화강암 비는 여견히 바깥에 놓여 있고, 반들반들한 까만 대리석에 말끔하게 음각된 가짜 비는 전각 내에 서 있으니 정말 통탄할 노릇이다.

 어찌된 사연인지 서인만 부소장에게 물어보니 "이게 바로 우리 공무원의 수준이자 현실"이라고 자탄했다.

                
                진짜 단량의 비는 담벼락 아래 비바람 등 대자연에 노출돼 있고(사진 위) 바로 옆에는
                최근에 만들어진 듯한 가짜 비(사진 아래)는 보물단지마냥 전각 안에 고히 보관돼 있다. 이 어찌
                운명의 장난인가. 이게 바로 우리 공무원들의 현실이다.

 겨울 산사. 왠지 마음이 숙연해지고 그만큼 다가오는 느낌이 자뭇 엄숙하다. '느림과 비움'도 절로 떠오른다. 각박한 도시생활에 찌던 현대인들이 한 번쯤 자신을 되돌아 보기에 제격이다.
 기축년의 새해가 밝은 지 벌써 6일. 뭔가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하는 계기를 만들어보자. 영남
알프스 산군 속의 사찰은 어떨까. 이곳에는 정감 넘치는 산사들이 모여 있다.
 재약산(수미봉) 기슭의 표충사, 가지산 아래 석남사, 운문산 품안의 운문사. 적막하고도 고요한 절집은 늘 있는 그대로 말없이 서있다.

‘집착을 떨쳐라’ ‘스스로 행하라’….

 지극히 당연한 경구이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두툼한 방한복을 꼭 껴입고 겨울 산사를 찾아 올 한해 자신의 화두를 가슴속에 각인시켜 돌아보자.

#대덕스님 배출 산실 표충사

표충사 경내에서 바라 본 영남알프스전경. 왼쪽 처마 밑 천황산(사자봉)에서부터 천황재 재약산(수미봉) 문수봉이 잇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표충사 경내 영정약수.

매표소를 지나면 앙상한 가지를 고스란히 간직한 아름드리 나무들이 하늘에 닿을 듯 쭉쭉 뻗어 있다. 경내는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달된다.

표충사는 사명 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승병 3000여명을 이끌고 조국을 구한 구국성지. 때문에 표충사 내 유물전시관과 표충서원에는 사명 대사와 관련된 많은 유품이 보관돼 있다. 임란때 사명 대사가 입은 금란가사와 장삼, 임란 후 대사가 강화사절(講和使節)로 일본에 가서 조선 포로의 송환문제를 다룬 문서 등 16건 79점이 소장돼 있다. 또 임란때 승려로 큰 공을 세운 서산 사명 기허 등 세 대사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표충서원에는 그들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역임했던 현대의 마지막 고승 효봉 스님이 말년을 보내고 열반한 곳도 이곳이며, 고려땐 일연 선사가 삼국유사를 탈고한 곳도 이 곳 표충사다. 당시 충렬왕은 이 곳을 찾아 동방제일의 선찰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온다.
   
 신라 무열왕 원년(654년) 원효 대사가 창건한 이 절의 원래 이름은 죽림사(竹林寺). 재약산 기슭의 대밭 속에서 오색의 상서로운 구름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하산, 곧바로 절을 세운 후 죽림사라 불렀다. 그 후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요양을 와 이 곳의 신비스런 우물(靈井藥水)을 마시고 나아 영정사(靈井寺)로 바뀐 뒤 조선 헌종 5년(1839년) 표충서원이 자리를 잡으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로 고쳐졌다. 아직도 신비의 물인 영정약수가 경내에 있으니 꼭 맛을 보자. 절내 유일한 국보(75호)인 청동함은향완도 빠뜨리지 말자.

표충사에는 특히 등산객이 많이 보인다.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재약산(수미봉)과 천황산(사자봉)을 오르기 위해서다. 경내에서도 아름다운 산세가 한 눈에 보인다.

 절 못미처 오른쪽으로 난 옥류동천을 따라 흥룡폭포~층층폭포를 지나서 만나는 옛 고사리분교가 그 유명한 100만여평의 사자평 시점. 사명 대사가 임란때 승병을 훈련시킨 곳이기도 하다. 억새가 한창인 가을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다. 천황산(사자봉)에 오르려면 절 왼쪽 내원암 방향으로 출발, 한계암~시상암을 거쳐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종주는 6시간 걸리며 중간 천황재에서 내원암으로 내려오면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비구니 특별선원 석남사

석남사 일주문.

                   

보물인 석남사 부도.   

수십개의 공덕탑.

평온한 석남사엔 가지산에서 하산하는 등산객이 자주 눈에 띈다.



울산 울주군 언양에서 밀양으로 넘어가는 24번 국도 중간에 위치해 있는 통도사의 말사이자 조계종 종립 특별수련도량으로 가지산 기슭에 터를 잡고 있다. 가지산의 옛 이름인 석안산(石眼山)의 남쪽에 있다하여 석남사(石南寺)라 불리었다고 전해진다.

일주문에서 절집까지 오르는 숲길은 포근하기 그지없다. 주변엔 잘 생긴 홍송과 각종 활엽수가 적당한 간격으로 첩첩이 늘어섰다. 5~6분 거리인 이 숲길을 걷노라면 마치 도심 속 깔끔한 소공원을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오가는 사람 중 절반은 등산객들. 숲길이 끝날 때 쯤이면 등산객들은 오른쪽 청운교를 건너 가지산으로 향하고, 나머지는 계곡을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계곡 암반 위에는 수 십개의 작은 공덕탑(돌탑)이 정성스럽게 서있다. 비구니 참선수좌들의 기원인지 속인들의 바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석남사는 신라 헌덕왕 16년(824년) 도의국사가 호국기도를 위해 창건한 이래 수 차례 부침을 거듭했다. 한국전쟁 땐 폐허가 되다시피하기도 했다. 이후 1957년 비구니 인홍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비로소 비구니 사찰로 일신했다. 대웅전 앞 삼층석가사리탑과 대웅전 뒤 대밭 주위에 도도히 선 석남사 부도가 볼만한 문화재다.

#언제나 포근하게 다가오는 운문사

어른 가슴 높이의 정갈한 운문사 돌담.
학인스님들의 책상과 물품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천연기념물인 처진소나무.

석남사가 비구니 특별선원이라면 운문산 기슭의 운문사는 비구니 교육도량. 김천 청암사, 대전 동학사, 수원 봉녕사에도 승가대학이 있지만 전통과 규모 면에서는 운문사가 국내 최고.

이 때문에 운문사를 구경하는 도중에는 흔히 머릿속에 그려지는 지엄한 스님보다는 20대 초반의 예비 비구니 스님들의 발빠른 움직임을 목격할 수 있는 점이 다른 절집과의 차이라면 차이.

가냘픈 이들 학인스님들이 조석으로 행하는 불전사물(佛典四物)은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진 유명 의식. 무엇보다 60여명의 동료 학인스님들도 장삼과 가사로 예를 갖추고 동참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보통 절집은 산을 등지고 있는데 반해 운문사는 운문산과 마주앉은 형태다. 실제로 옛 비로전인 대웅보전 앞에 서면 운문산 정상이 올려다 보인다.

 뭐니뭐니해도 운문사의 자랑은 그 짜여진 정갈함에 있다. 절 입구까지 올라가는 1㎞ 남짓한 해묵은 노송의 푸름, 뒤꿈치만 살짝 들어도 안이 들여다 보이는 돌담, 천연기념물인 처진 소나무를 중심으로 마치 짜맞추듯 놓여진 당우. 500여년 성상의 처진 소나무는 푸름을 간직한 채 마치 세속의 짐을 내려놓으려는 듯 대부분의 가지를 내리고 있다.

 신라 진흥왕 21년(560년)에 창건된 운문사에는 문화유적들도 많다. 신라때의 삼층석탑과 금당 앞 석등, 가장 작은 당우인 작압전 내 석조여래좌상과 사천왕 석주 등 보물만 7점이 있다.
 
◇ 산사주변 가볼만한 곳

영남알프스 내 산사 주변에는 유명 온천과 자연휴양림, 예술촌, 눈썰매장 등이 곳곳에 있어 하루 내지 1박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특히 온천은 등산로 들머리나 날머리에 위치해 있어 천혜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우선 부산서 가장 가까운 등억온천단지. 경부고속도로 서울산(삼남)IC에서 나와 양산 방향 35번 국도를 타고 10분을 채 못가 작천정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입구에는 ‘작천정 1.2㎞, 등억온천단지 4㎞, 자수정 동굴나라 3.3㎞, 신불산 군립공원’ 이정표가 보인다.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 신불산 중턱에 자리한 등억온천단지에는 현재 3개의 대중탕이 있다. 가장 먼저 생긴 언양온천과 신불산온천, 자수정온천 등이 있다.

 신불산 인근에 위치한 등억리는 예부터 ‘내를 뚫으면 불이 나온다’는 천화천(穿火川)이라는 이름이 전해내려오는 곳. 등억온천단지는 약알칼리성 온천수로 신경통 소화기질환 피부병에 탁월한 효험이 있다. 신불산온천은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는 옥을 10여t이나 사용해서 만들었다.

 등억온천단지 내 진입로에는 ‘도깨비 도로’가 있어 눈길을 모은다. 오르막길로 보이지만 착시로 인해 실제로는 내리막길인 도깨비 도로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찾기도 쉽다.

등억온천단지를 나오면 차로 2~3분 거리에 ‘자수정 동굴나라’가 있다. 원래는 자수정 광산이었지만 관광자원으로 개발했다. 놀이공원과 함께 지금은 눈썰매장이 개장돼 있어 어린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온천단지 내에는 간월사 터와 보물인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도 있으니 빠뜨리지 말자. 간월사지에서 보이는 눈덮인 신불, 간월능선은 이 곳이 왜 영남알프스라불리우는지 실감할 수 있다.

 등억온천단지 인근에는 간월자연휴양림이 있다. 겨울 산에 들어가 대자연 속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듯하다.

간월자연휴양림.

간월자연휴양림에서 본 눈덮인 간월산 공룡능선.

언양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석남사에 못미쳐 청도 방향 985번 지방도를 타면 곧 가지산탄산유황온천이 나온다. 탄산이 다량 함유된 탄산온천인 이 곳에는 수영장 시설까지 갖춰 특히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985번 지방도를 타고 운문령을 넘으면 운문산자연휴양림이 기다린다. 산림청이 운영하는 이 곳에서는 심산계곡의 고요한 자연미와 용미폭포의 빙벽을 감상할 수 있다.
운문사를 구경한 뒤에는 왔던 길을 되돌아와도 되고 청도에서 온천을 한 후 건천이나 경산IC를 거쳐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

운문사에서 청도방향으로 45㎞ 정도 달리면 용암온천이 나온다. 유황성분이 많고 특히 게르마늄은 일반 온천에 비해 30배 정도. 인근 삼신마을에 장수노인이 많은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한다. 남성과 여성용 노천탕이 별도로 있다.

운문사에서 경산 대구방향으로 35㎞ 지점에는 유화수소온천인 학일온천이 있지만 얼마전 문을 닫았다. 참고하길.

 표충사에서 언양 방향으로 가다 보면 가인예술촌이 나온다. 폐교된 가인초등학교를 지난 1997년 지역 화가들이 합심해 집단창작촌을 일군 곳이다.

또 24번 국도를 타고 석남사를 지나 밀양 방향으로 가다 좌회전해 69번 국도를 타면 배내골 방향. 배내재를 지나면 파래소폭포를 구경할 수 있고 폭포를 기준으로 위 아래에 각각 신불산자연휴양림 상단과 하단이 위치해 있다. 숲속 통나무집에서 온가족이 함께 겨울밤의 낭만을 즐길 수 있다.



 또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벌써 저만치 와 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은 태곳적부터 반복되는 일상사이지만 유독 세밑에 각별하게 부산을 떨며 의미를 두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기 위한 다짐의 발로이리라.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지난 1년간의 묵은 때를 털어내고 밝아오는 새해를 보며 향후 1년 간의 새로운 삶을 설계해보자. 점점이 떠 있는 섬들 사이로 붉은 기운을 토해내는 일출도 좋고, 어둠을 헤치며 숨가쁘게 오른 후 맞이하는 산상 일출도 기가 막히다.

◆아쉬운 일년, 해넘이 명소

해남 땅끝마을=일출 못지않게 일몰 또한 아름다워 세밑이면 국토의 최남단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명소이다. 오는 31일부터 이틀간 송지면 땅끝마을에서 '땅끝 해넘이 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달집태우기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묵은 짐을 날려보내고, 소원을 띠배에 실어 바다로 보내는 띠배놀이도 펼쳐진다. 천년고찰 두륜산 대흥사와 미황사도 둘러보자. 숙소는 대흥사 입구 400년 된 전통 한옥 유선관(061-534-3692)을 추천한다.


태안군 안면도 꽃지해변=최근 국제꽃박람회 덕분에 유명세를 타고 있는 안면도 꽃지해변은 안면도 일몰의 제1경으로 손꼽힌다. 길이 3.2㎞, 폭 300m인 해변의 오른쪽 끄트머리와 방포포구 사이에 터를 잡은 할아비바위와 할미바위가 멋진 세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밀물일 때는 모두 물에 잠기지만 물이 빠지면 밑둥까지 드러나 다시 손을 잡는다. 기둥처럼 우뚝 솟은 두 바위의 벼랑과 거기에 걸쳐 있는 노송들이 지는 해와 함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통영 달아공원=미륵도 남단 해안가에 위치한 소공원이다. 남해안에서 손꼽히는 멋진 해안 드라이브 코스 중의 하나인 산양일주도로(23㎞)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그림같이 아름다운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풍광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전문가들로부터 나라 땅 최고의 일몰 명소로 손꼽힌다. 달아공원에는 한산대첩의 전승을 기리기 위해 세운 관아정과 정자 양편으로 꽃망울을 터뜨린 빨간 동백꽃이 또한 눈길을 끈다. 시간이 허락되면 용화사 입구의 '전혁림 미술관'도 둘러보고 통영대교 바로 아래에 위치한 십오야 숯불장어구이(055-649-9292)에서 바다 장어 구이도 맛보자. 기가 막히게 맛있다.

부안군 변산반도=낙조가 워낙 유명해 예부터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다녀갔을 만큼 서해안의 보석으로 알려져 있다. 해안가의 외변산이나 내륙 산악지대인 내변산 모두 일몰 명소로 유명하다. 외변산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채석강이 있는 격포해변. 환상적인 일몰에다 책을 쌓아놓은 듯한 모습의 거대한 해안절벽의 경관 때문이다. 내변산의 명소는 낙조대. 들머리인 남여치에서 월명암으로 넘어가는 쌍선봉 옆에 위치해 있다. 왕복 2시간이면 충분하다. 일몰 전 전나무숲이 아름다운 천년고찰 내소사와 개암사 곰소염전 등도 둘러볼 만하다.    

충남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 왜목마을=왜목마을은 충남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당진군에서도 가장 북쪽해안에 위치한 마을로 최근 일출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동쪽을 향해 튀어나온 포구의 독특한 지형 때문에 서해안인데도 충남 서천 마량포구, 전남 무안군 도리포와 함께 일출과 일몰 모두를 감상할 수 있다.
  동해안의 일출이 장엄하고 화려하다면 이 곳의 일출은 일순간에 바다가 짙은 황토빛으로 변하면서 바다를 길게 가로지르는 불기둥을 만들어 소박하면서도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일출을 볼 수 있는 해안 동쪽엔 횟집과 여관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실내에서도 쉽게 해돋이를 즐길 수 있다. 반면 일몰은 해발 200m 정도의 야트막한 산에 올라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오는 31일 오후 5시 국악공연 등 다채로운 일몰행사가 열리고 다음날인 1월1일 오전 7시30분에는 다양한 민속놀이 등 일출행사가 성대하게 열린다.

희망찬 새해, 해돋이 명소

동해 추암해변=동해안 최고의 일출명소 가운데 하나로, 경관이 빼어나 '삼척의 해금강'이라 불린다. 추암 일출은 TV에서 애국가의 배경화면으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일부러 꽂아 놓기라도 한 듯 뾰족한 촛대바위들이 솟아있는 모습만 봐도 멋진데, 그 뒤로 붉은 빛을 토해내며 태양까지 가세하면 천하절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사진작가들이 전날 밤부터 장사진을 치고 있다. 동해시는 어둠 속에서도 촛대바위의 위용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밤에 오렌지빛 조명을 밝혀놓고 있다.



사천 창선·삼천포대교=국립공원 한려수도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창선·삼천포대교 일대는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대상을 받은 곳. 인근 '실안 일몰'은 예부터 알아주는 해넘이 명소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일출의 아름다움은 '두 말 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황홀하다. 한마디로 그림같은 창선·삼천포대교에서 아름다운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명소인 것이다. 축제는 내년 1월 1일 창선·삼천포대교 일대에서 열린다. 참가자들에겐 소망 떡국도 나눠준다.

포항 호미곶 해맞이축전=경북 포항 호미곶에서 '한민족 해맞이축전'을 연다. 이름에 걸맞게 규모는 나라 땅 최고라 할 만하다. 우선 우리 고대신화에 나오는 삼족오를 형상화한 가로 20m, 세로 50m 크기의 초대형 연을 새해 일출 시간에 맞춰 띄운다. 관광객들의 새해소망을 담은 종이를 달아 국내 연 기술자와 동호인 등 500여 명이 지상 100m 상공으로 띄울 계획이다. 이와 함께 꽁치 1만2000마리로 꾸민 높이 9m의 과메기 홍보탑이 설치되고 1만 명분의 떡국만들기, 2008개의 연날리기, 어선 50척의 해상 퍼레이드 등이 마련된다.

여수 향일암 일출제=올해 2012년 세계 엑스포를 유치한 여수의 돌산도 맨끝인 금오산 중턱에 자리잡은 향일암에서도 일출제가 열린다. 향일암은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으로 이른 새벽 바다에서 떠오르는 붉은 해와 주변의 동백나무 숲이 어우러져 황홀경을 연출한다. 바닷가 150m 높이의 절벽 위 기암괴석에 자리한 향일암에서 바라보는 해돋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한 마음을 갖게 한다. 향일암을 찾았다면 금오산 정상까지 올라가보자. 30분이면 올라선다. 비록 해발 323m로 낮지만 다도해 국립공원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향일암 주변의 특산물은 뭐니뭐니해도 돌산갓김치. 돌산도의 비옥한 토양과 해풍 때문에 타 지방에서 흉내낼 수 없는 고유의 향과 맛이 있다. 초원횟집(061-644-7287)이 잘 한다.


대게 원조 영덕 해맞이=경북 영덕 강구면 삼사해상공원에서는 영덕 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새해 전야인 31일 오후부터 농악단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음악회 등 송년행사가 열리고 새해 오전에는 해맞이 축하비행, 연날리기 등이 펼쳐진다. 삼사해상공원 내 새로 생긴 영덕어촌민속전시관도 꼭 챙기자. 영덕을 찾으면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빼놓을 수 없다. 강구항에서 고래불해수욕장까지 30여 ㎞의 구간이 무척 아름답다. 워낙 바다와 근접해 있어 차장 밖으로 파도소리까지 들린다. 간혹 보이는 차들도 모두 드라이브 나선 타지 차량이라 쉬엄쉬엄 간다. 도중 만나는 두 곳의 해맞이 공원 역시 빠뜨리지 말자. 지난 1월 새로 조성한 20m 높이의 '대게등대'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해맞이공원 맞은편 둔덕 쪽엔 풍력발전단지도 멋있다. 영덕 대게 맛보기도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의 기쁨이다. 영덕대게협동조합직매장(054-734-0691). 전국을 대상으로 대게 택배를 전문으로 하며 강구항 내 대게집보다 가격이 20%쯤 싸다. 경보화석박물관을 지나 삼사해상공원에서 300m쯤 못 미친 7번 국도 대로변에 있다. 맞은편엔 오션뷰CC.    

강원도 강릉 정동진='한양의 광화문에서 정동쪽에 위치한 부락'이라 명명된 정동진은 수년 전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세를 탄 곳이다. 해안과 인접한 정동진역은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북에 올라있으며, 역 철길 건너편이 그 유명한 해돋이 감상 명소이다.
 31일 오후 정동진 모래시계공원 등에서 전야제가 열리고 새해 첫날에는 모래무게만 8t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모래시계를 돌려 세우는 행사가 열린다.

동해안 그밖의 일출 명소=부산서 거리상으로 먼 것이 흠이지만 일출 하나만을 놓고 볼 땐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명소가 널려 있다. 경포해수욕장과 최북단인 고성의 통일전망대와 화진포에선 통일기원 해맞이 축제가 마련되고, 속초해수욕장과 양양 낙산해수욕장에서도 해넘이 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부산지역 해맞이 명소 사진
오륙도 일출.
태종대 등대 일출.
해운대 일출.
              해운대와 이웃한 기장 일출.

◆산상 해맞이=산행과 함께 시작되는 태백산 해맞이는 정상 천제단에서 소원빌기 등을 통해 새해 출발을 기원한다. 일출 행사 후에는 당골광장에서 등산객들과 떡국을 나눠 먹는다. 양산 천성산에서도 일출 행사가 열린다. 군부대가 주둔해 정상이 통제돼 있지만 이날 오전 5~9시 개방된다. 부산의 진산 금정산 고당봉에서도 일출 행사가 마련된다.

◆선상 해맞이=부산에선 항내를 운항하는 크루즈와 해운대 미포유람선착장에서 해맞이를 위한 동백호를 띄운다. 태종대에선 곤포유람선, 등대유람선, 수연유람선, 태종유람선이 새해 첫날 출발한다..
 또 통영에선 오전 6시 가왕도~매물도를 일주하는 유람선이, 거제에선 장승포 와현 구조라 학동 해금강 도장포 등 6개 선착장에서 해맞이 유람선이 출발한다. 사천에선 삼천포유람선협회가 선상 해맞이 유람선을, 남해에선 상주해수욕장에서 '러브 크루즈호'를 운행한다.

 


정선 하이원스키장을 다녀와서
국내 유일 내국인 출입 카지노도

바야흐로 살을 에는 동장군의 심술이 시작됐다. 장삼이사들의 대응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일 터. 주로 장년층 부류는 따뜻하게 몸을 녹일 수 있는 온천탕을 그리워할 게고 젊은층은 파란 하늘 아래 하얀 슬로프를 질주하는 '쌈박한' 시추에이션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을 게다.

특히 최근 스키장이 몰려 있는 강원도와 호남지역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마니아층 스키어나 보더들은 표정관리를 하며 내심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지난 1년 동안 애오라지 이 시기만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린 그들이 아니던가.

지금까지 부산에선 강원도에 버금갈 정도로 눈이 무진장 온다는 한수 이남의 최고 설국인 무주스키장이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지만 지난해 부산서 가까운 양산에 에덴밸리스키장이 문을 열어 선택의 폭을 넓혀 주었다. 올해는 강원도 정선의 하이원 스키장이 부산을 비롯한 영남지역의 마니아층을 겨냥해 최근 영남영업소를 열었다.

'아우라지의 고장' 정선은 강원도 남부지역. 부·울·경 관광객들에겐 심리적으로 아주 멀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3시간30분~4시간 정도에 불과해 새벽에 출발할 경우 당일치기도 가능하다. 스키장만 있는 게 아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내국인의 출입이 가능한 강원랜드 카지노도 있어 외국영화에서 봄 직한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다.

      마운틴탑으로 올라가는 곤돌라에서 내려다본 초보자 코스인 제우스2 슬로프가 S라인처럼 펼쳐져 있다.


#상전벽해의 땅, 버려진 탄광에서 사계절 관광지로

 1980년대 중반까지 정선을 비롯한 영월 태백 일대의 강원도 남부지역은 석탄산업의 메카로 '지나가는 개도 입에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한 예로 1980년대 초 7급 공무원 월급이 11만 원 정도일 때 광부들의 평균 월급은 25만 원을 상회했다. 덕분에 이 지역의 가전 대리점은 곧잘 전국 판매 1위를 석권하곤 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승승장구하던 석탄산업은 1980년대 후반 에너지 소비구조가 바뀌면서 급속도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정부가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을 추진했고, 탄광들은 눈물을 머금고 서둘러 폐광했다. 지역경제도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극에 달한 탄광촌 주민들의 상경 투쟁이 시작됐다. 정부도 상황 인식은 했지만 이곳이 워낙 오지여서 제조업 유치는 어려웠고 핵폐기물처리장은 환경문제에 부딪혔다. 우여곡절 끝에 카지노 사업허가 등이 담긴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폐광 후 카지노 사업을 유치한 미국 덴버시나 펜실베이니아의 사례가 참고가 됐다.

문제는 위치 선정. 당초엔 태백 영월 정선의 접경지역인 함백산 만항지역이 유력했으나 이 지역 토지의 70% 이상을 소유한 정암사에서 딴죽을 걸어 자연스럽게 바로 이웃한 정선 고한 사북땅 백운산 지역으로 마침내 확정됐다.

지난 1998년 입사, 이곳에 온 하이원 리조트 박은희 대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주변은 온통 폐광의 흔적이 역력했고 탄광촌의 사택은 성냥갑처럼 오밀조밀 붙어 있었지만 폐가로 변한 빈집이 절반이 넘었죠. 읍내의 가게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지금은 카지노가 가까운 사북은 숙박시설과 유흥가로, 스키장과 인접한 고한은 스키숍과 펜션이 들어서 웬만한 대도시의 번화가를 방불케 한다. 1998년 당시 평당 30만 원 하던 버려진 땅이 이제는 1000만 원을 넘었고, 그 중 금싸라기땅은 1500만 원을 호가한다.

하이원 스키장에서 가장 높은 마운틴탑. 3층이 45분만에 360도 돌아가는 회전식 레스토랑인 '탑 오브 더 탑'.
마운틴탑의 회전식 레스토랑인 '탑 오브 더 탑'의 실내 모습.


#국내 스키장 선호도 2년 연속 1위    
 
지난 2006년 문을 연 하이원 스키장은 최근 한국갤럽조사 결과 스키장 선호도에서 2007, 2008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인지도 또한 개장 2년 만에 5위로 선정될 만큼 성장했다. 카지노를 거느린 모기업인 (주)강원랜드의 풍부한 자금력으로 젊은층의 취향에 맞게 설계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백운산(해발 1426m) 자락의 하이원 스키장은 슬로프 면적과 총길이 등이 모두 국내 최정상급을 자랑한다. 500여만 ㎡의 광활한 부지에 18면인 슬로프의 총길이는 21㎞에 달하고 슬로프 평균 너비 또한 40m(10차선 도로)를 자랑한다. 특히 슬로프 18면 가운데 11면은 국제스키연맹으로부터 국제 공인을 받았고, 월드컵 스키대회 개최가 가능한 공인슬로프도 3면이나 된다.

무엇보다 4.2㎞나 되는 초급자용 슬로프는 하이원의 가장 큰 자랑거리. 타 스키장의 경우 초급자 코스는 스키장 하단부에 짧게 마련된 것과 달리 이 코스는 곤돌라를 타고 스키장 최정상인 마운틴탑에서 밸리허브를 경유, 밸리콘도까지 완만한 경사로 이어진다.

또 하나의 자랑은 베이스가 두 개라는 점. 국내에선 베이스가 두 곳인 스키장도 있지만 별개로 운영된다. 하지만 하이원의 베이스는 곤돌라로 연결돼 누구나 손쉽게 이곳저곳을 오갈 수 있다. 여기에 베이스가 아닌 하이원호텔에서도 스키장 정상인 마운틴탑까지 곤돌라가 운행돼 그야말로 곤돌라로 스키장을 포함한 리조트 전체를 오갈 수 있다. 마운틴탑 정상의 회전식 전망 레스토랑은 홀의 중심부와 창문은 그대로 있으면서 바닥만 45분마다 한 바퀴 돈다. 앉은 자리에서 태백산 함백산 등 백두대간 주능선과 지장산 두위봉 등 주변 산들을 감상할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백운산 정상인 마천봉에도 가보자. 40~50분 걸린다.

아이들을 위한 눈썰매장은 기존의 하이원호텔 옆 외에도 올해부턴 마운틴콘도 잔디광장에도 또 하나 마련됐다. 피로는 마운틴콘도 앞 노천탕인 '하늘샘'과 밸리콘도 내 사우나에서 풀면 된다.


#강원랜드 카지노- 스키만 타면 섭섭, "오늘은 나도 갬블러"

카지노가 있는 강원랜트 호텔 야경. 4층에 있으며 5층에는 VIP용 카지노가 있다. 

 '오늘 밤은 나도 갬블러!'
하이원 리조트를 찾아 강원랜드 카지노를 가지 않았다면 '앙코 빠진 찐빵'. 잠을 약간 줄이더라도 반드시 가보길 권한다. 국내에서 내국인이 출입 가능한 유일한 카지노이기 때문이다. 강원랜드호텔 4층에 위치해 있으며 5층은 VIP 고객용이다. 인근에는 성벽 모양의 '루미나리에'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입장료는 5000원. 신분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공항검색대처럼 보안문을 통과해야 한다. 사진은 절대 찍지 못한다. 첫 인상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차림새가 척도가 돼선 안 되지만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장삼이사들이 몰려 있는 시골 5일장이 연상된다.

일단 한번 둘러보자. 한쪽에선 게임테이블마다 6, 7명과 여성 딜러가 카드를 주고받으며 게임을 하고 있고, 그 뒤로 10여 명이 에워싸 테이블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무슨 게임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들었지만 바카라 블랙잭이란다. 게임테이블을 둘러싼 기기들은 모두 파친코로 불리는 슬롯머신이다.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 계속 돌아봤다. 흡연실도 보이고, 음료는 무한정 제공되고, 현금인출기도 곳곳에 눈에 띈다. 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시계가 없다. 이번엔 사람들을 유심히 봤다. 돈을 다 잃었는지 슬롯머신 의자에 앉아 허공을 보며 한숨을 쉬는 아주머니, 무표정으로 일관한 채 창구에 앉아 돈을 세는 여직원, 돈독이 올랐는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남자….

온 김에 그냥 갈 수 없지 않은가. 가장 만만한 슬롯머신 앞에 앉아 1만 원을 넣었다. 한 동료는 눈깜박할 사이에 1만 원이 날아갔고, 기자는 하나가 맞아 4만 원 정도 땄지만 결국 잃고 말았다. 1만 원 갖고 조금 더 놀았을 뿐이었다. 개장시간 오전 10시~다음날 오전 6시. 

#스키장 주변 맛집   

황태구이.
황태찜.
오삼불고기.
 
스키장 내 음식점은 아주 비싸다. 해서, 주변 맛집을 소개한다.

황태요리 전문점 황태명가(033-591-5288). 원래 황태요리 하면 용평이 원조다. 황태 덕장 또한 대부분 용평에 몰려 있다. 하이원 리조트 입구의 황태명가는 최근 용평에서 식당을 접고 이곳 정선으로 옮겼다. 주인과 주방장 서빙아줌마까지 그야말로 세트로 움직였다. 용평에서 직접 덕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최상의 재료로 용평에서의 그 맛 그대로라고 보면 된다. 황태구이(1만 원) 황태찜(2만5000~3만5000원) 황태불고기(〃) 황태해장국(6000원) 황태미역국 등 하나같이 별미다. 오삼불고기(8000원)도 맛있다. (033)591-5288

태백 초막 칼국수(033-553-7388). 상호는 칼국수집이지만 간판 메뉴는 고등어찜(5000원). 무, 시래기와 매운 양념이 어우러지는 그 맛은 가히 환상적이다. 두부찜(4000원)도 일품이다. 사북에서 태백 방향으로 가다 만나는 태백운전면허시험장 직전 대로변에 위치해 있다. 30분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부산서 하이원 스키장 가는 길- 관광버스·열차 당일치기 운행   
 
하이원 리조트의 경우 자가운전이 부담스럽다면 여행사의 당일치기 패키지 상품(교통편 리프트 렌털 강습)을 이용하면 20% 정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스키 8만2000원(주중)~9만1000원(주말), 보드 8만4000원(주중)~9만4000원(주말). 강습 비용 제외. 강습의 경우 4시간 기준 주중 1만9000원, 주말 2만4000원. 새부산관광(051-851-0600) 뉴부산관광(051-806-8811) 은성관광(051-808-2211).

부산서 하이원 리조트로 떠나는 당일치기 스키열차도 있다. 부산역 출발, 1월 1, 3, 4, 10, 11, 17, 18일, 2월 3~8일, 14일 총 14회 왕복. 오전 5시30분 출발, 밤 11시30분 도착. 5만5000원(어린이 5만 원). (051)440-2513

마산역 출발, 12월 26~28일, 1월 30, 31일, 2월 1일 총 6회 왕복. 5만5000원(어린이 5만4000원). (055)294-7788

# 교통편 - 중앙고속도로 제천IC서 내려 38번 국도 타야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제천IC~영월 제천~영월 단양(하이원) 38번~영월 38번~영월 쌍용~느릅재터널~강원도 영월군~영월 38번~영월 단양~평창 영월 38번~태백 영월 38번~태백 석항~태백~태백 석항~정선군 신동읍~태백 사북 38번~태백 고한 하이원리조트(스키장)~사북 하이원 방향.

 

이 땅에서 가장 예쁜 절집으로 손꼽히는 만추의 부석사. 단풍이 봉홧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는 가운데 범종루 안양루 무량수전에 이르는 선이 무척 아름답다.

 만추의 부석사는 뭇사람들의 이상향이다. 여느 가을 산사가 그렇지 않겠냐만 부석사가 이 가을 유독 두드러 지는 것은 그 만의 독특한 빛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석사로 향하는 길 주변은 온통 빠알간 늦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햇빛에 반사된 노오란 은행잎은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한동안 붙잡는다.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가을하늘에 빠알간 사과, 노오란 은행잎 그리고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는 오색단풍의 강렬한 원색 대비는 과연 이 곳이 동화 속의 세상인지 엄숙함과 경건함을 요하는 절집가는 길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조선땅 최고의 명상로로 칭송받는 아름다운 은행나무 숲길을 따라 바랑을 지고 만행을 떠나는 한 선승.
부석사 입구의 뜬바우골 사과농장에서 활짝 웃는 어린이들.

 경북 영주시 부석면에 위치한 부석사는 소백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지만 실은 백두대간인 태백산에서 남서쪽으로 살짝 뻗어나온 야트막한 봉황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일주문 현판에는 ‘태백산 부석사’라 적혀있다. 소백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것은 소백산 주변에는 눈에 띄는 사찰이 없어 구색맞추기로 포함됐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길 양편엔 노란 은행나무 가로수가 뭇사람들을 맞는다. 천왕문까지 1㎞도 채 안되는 부담없는 완경사의 흙길인데다 길 양편의 은행나무 가지가 서로 만나 하늘을 살짝 가릴 정도로 길 폭이 적당해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이 깃든다. ‘조선땅 최고의 명상로’라고 했던 유홍준 교수의 평도 과장은 아닌 듯하다.

한편으론 순례자를 맞이하는 부처의 자비로운 배려라는 생각이 들고, 극락으로 향하는 통과의례의 진입로 같은 착각도 든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이같은 깊은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저마다 사진을 찍으며 추억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처음 눈길을 끄는 유물은 천왕문 입구의 높이 4.3m의 당간지주(보물 255호). 곧게 뻗어오르면서 위쪽이 좁아져 선의 긴장과 멋이 살아있어 명작중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천왕문을 통과하면 여기서부터 부석사 경내로 인도된다. 하지만 석축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어 이내 부처를 만날 수 없다. 공간이 협소하고 가팔라 높은 석축과 누각을 이용, 계단식으로 가람을 배치한 부석사의 독특한 건축양식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부석사는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한국전통건축의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천왕문을 지나면 좌우에 요사채와 유물전시관이 서있고 그 위로 범종루 안양루 무량수전이 이어진다. 무량수전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아홉 단의 석축을 넘어야 하는데, 이는 극락세계에 이르는 9품 만다라의 이미지를 건축적 구조로 구현시킨 것이다. 석축을 오르는 계단도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108계단으로 이뤄졌고,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데 이는 안정감으로 인한 미적인 면을 고려한 것.

범종루를 지날 땐 계단 입구에서 반드시 멈춰 고개를 들어보자. 네모난 액자 속에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비스듬한 각도에서 우러러 보인다. 동행한 당시 도륜 총무스님(현 영주 유석사 주지)은 이 장면이 부석사 내에서 변치않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강조한다.

극락이란 뜻이 담긴 안양루(安養樓) 밑 계단을 올라서면 무량수전에 앞서 정면에 아름다운 자태의 석등(국보 17호)과 마주한다. 현존하는 석등 중 가장 화려한 조각솜씨를 자랑한다.

석등에 이어 부석사의 절정인 무량수전(국보 18호). 고려 현종 7년(1043년) 원융국사가 부석사를 중창할 때 지은 집으로 극락세계인 서방정토를 주재하는 소조불인 아미타여래(국보 45호)를 모시고 있다. 때문에 정면이 아니라 왼쪽인 서쪽에 모셔져 있다.

일직선이 아닌 정사각 모양에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 적힌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축물인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주심포집으로 늠름한 기품과 조용한 멋이 일품이다. 특히 34-49-44㎝의 배흘림기둥은 규모에 비해 훤칠한 느낌을 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은 외관 뿐만 아니라 내관에서도 뿜어져 나온다. 건물 안의 천장을 막지 않고 기둥 들보 등 모든 부재들을 노출시킴으로써 탁 트인 공간 속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범종루 계단 입구에서 바라본 안양루와 무량수전. 네모난 액자 속에 나타나는 한 폭의 그림같은 이 장면은 부석사 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듣고 있다.
 

경북 영주 부석사의 노란 은행나무도 뭇사람들의 눈길을 끌지만 안양루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내려다보는 경관도 압권이다. 경내의 도열된 당우들도 그렇고 저 멀리 펼쳐지는 소백산줄기의 크고 작은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는 오랫동안 뇌리에서 잊히지 않을 것이다.

 부석사에서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무량수전과 안양루에서 내려다보는 경관. 바로 이 장쾌한 경관을 한 눈에 보기 위해 무량수전과 그 앞마당에 안양루를 다른 누각에 앞서 세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안양루와 무량수전 뜰에 서면 발아래 엎드려 모여 있는 경내 당우들의 지붕이 도열해 있는 듯 하고, 저 멀리 소백산맥의 크고 작은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범종루에서 바라본 안양루와 무량수전의 모습이 가람 내의 최고 경관이라면, 안양루와 무량수전에서 펼쳐지는 소백산 연봉의 조망은 절에서 보이는 바깥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시인 묵객들은 안양루에 오르면 끓어오르는 시심을 참지 못하고 적잖은 시문을 남겼다. 부석사에서 고개 하나만 넘으면 나타나는 영월이 고향인 김삿갓도 말년에야 뒤늦게 이곳 안양루에 올라 읊은 시구가 지금도 누각 안에 걸려있다.

안양루에 기대서서 한동안 말없이 정면을 주시하던 도륜 스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부석사의 뛰어난 경관을 설명한다.

“노란 은행잎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부석사에 오면 세 개의 바다를 보고 가야 합니다.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연출되는 소백산 연봉의 산의 바다, 이른 아침이면 안양루에서 펼쳐지는 구름의 바다, 해질 무렵 소백산자락에 가라앉는 노을의 바다입니다.”

부석사라는 절 이름의 단초가 되는 부석.

글, 사진 일부=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사진 제공=도륜 스님(영주 유석사 주지)


 

 흔히 전북 고창 선운산 하면 열에 아홉은 동백꽃을 떠올린다. 대웅보전 뒤편에 수령 500년된 이 절집의 동백숲은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돼 있을 정도로 노목의 기품을 자랑한다.
 밝은 햇살 사이로 만개했을 때의 붉은빛의 싱싱함과 송이째 부러지며 쓰러지는, 그래서 잔인스럽기까지 한 질 때의 안타까움으로 매년 4, 5월이면 전국에서 마치 성지순례 마냥 범부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로 시작되는 이 고장 출신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를 되뇌이면서.
 수년 전부터는 9월에도 4월 못지 않게 장삼이사들이 이 절집으로 몰려든다. 선홍빛 꽃무릇을 보러.

지천에 널린 선홍빛 꽃무릇
선운사는 9월 중순부터 마치 열병처럼 또 한 번의 순례로 홍역을 앓고 있다. 아직 울긋불긋한 색의 마술사 단풍이 제 모습을 드러낼려면 보름 이상 남았는데도.

       선운사 입구 도솔천.
       도솔천 건너편에 위치한 꽃무릇 군락지. 끝물이다.


 바로 석산(石蒜)이라 불리는 꽃무릇 때문이다. 꽃무릇은 햇살 기울고 소슬 바람이 다가오면 피어나는 전형적인 가을꽃. 하지만 고개를 숙이며 누렇게 익어가는 벼에서 풍기는 '결실' '성숙'과 같은 가을 뉘앙스와는 달리 오히려 정열을 상징하는 선홍빛이다. 생기발랄한 봄기운을 느낀다면 되레 역설적일까.
 선운사로 들어가는 길은 천년 고찰이 말해주듯 느티나무와 단풍나무 등 울창하고 빽빽한 수림에 압도된다.
 하지만 시선은 이내 왼쪽으로 이끌린다. 길 옆을 흐르는 도솔천의 시원한 물소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울 건너편에 무리지어 한꺼번에 꽃부리를 펼쳐 낸 선홍빛의 꽃무릇 군락지 때문이다. 선연한 핏빛으로 뒤덮였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약속이나 한듯 너나 할 것 없이 발걸음을 멈춘다. 군락지가 워낙 넓어 삼삼오오 무리 지은 곳이 여러 곳이다. 아직도 초록빛을 고이 간직한 숲속의 활엽수와 묘한 색채대비를 이룬다.
 '출입금지'라고 적힌 금줄이 매어 있지만 전국의 내로라 하는 사진작가들은 개울을 건너 금줄을 넘어 연신 셔트를 눌러댄다. 또 하나의 볼꺼리다.
 꽃무릇은 예부터 독특한 생태적 특성과 서식 장소 때문에 많은 이름을 갖고 있다.
 수선화과에 속하는 꽃무릇은 잎과 꽃이 따로 핀다. 9월말이나 10월초 꽃이 완전히 지면 비로소 잎이 자라나 눈 속에서 겨울을 보낸 후 이듬해 여름이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후 찬바람이 부는 9월이 되면 매끈한 30㎝ 정도의 초록빛 꽃대가 자라나 다시 꽃을 피운다.
 이 처럼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한다는 애달픈 사연을 가져 상사화(相思花) 혹은 이별초(離別草)라 불리며 예부터 절집에 많이 심어졌다. 이 때문에 중꽃, 중무릇으로도 지칭된다.
 절집에선 한편으론 이러한 생태가 현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열반의 세계에 드는 것 같다 하여 피안화(彼岸花)라 불린다. 영광 불갑사 주변도 지금 한창이다.
 유의해야 할 점 하나. 원래 상사화는 꽃무릇보다 먼저인 8월께까지 피는 연분홍빛의 여름꽃이다. 하지만 꽃무릇과 같은 속이면서 꽃색만 다를 뿐 생태습성이 유사해 상사화 부류에 포함시킨다.
 꽃모양은 상사화가 나리꽃과 비슷한데 반해 꽃무릇은 꽃송이가 갈기갈기 갈라진 갈고리처럼 생겼다.
 경내에 들어서도 꽃무릇의 행렬은 이어진다. 개울 건너편처럼 대규모 군락은 아니지만 시선 돌리는 곳마다 석산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절집 입구에서 도솔암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꽃무릇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쭈욱 서 있다.

         보물인 선운사 대웅보전.
                  조그만 전각인 산신당 바로 옆에도 꽃무릇이 피어 있다.

 발걸음을 대웅전 뒤편 동백숲으로 옮겼다. 비록 동백꽃은 진지 오래지만 그래도 선운사를 대표하는 동백숲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5000여 평이나 되는 산비탈에 군락을 이룬 동백숲은 여전히 웅장했지만 이곳에서도 꽃무릇은 예의 선홍빛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일행을 맞고 있다. 터줏대감격인 동백 앞에서도 전혀 어색함이 없이 조화를 이룬다. 대웅전 왼쪽에 위치한 아주 조그만 전각인 산신당 바로 옆에도 꽃을 피워 이채롭다.
 경내에서 만난 한 스님은 "7, 8년 전부터 사찰 차원에서 꽃무릇을 심기 시작했다"며 "이제 9월이면 선운사 전체가 꽃무릇으로 붉게 물들 것"이라고 일러줬다.
 동백꽃 단풍과 함께 꽃무릇은 이제 선운사를 대표하는 명물 '트로이카'로 자리매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꽃무릇은 일부분, 볼 것 많은 선운산 도립공원
전각이 모여있는 선운사 경내는 화려하지도, 작지도 않은 조용한 절집의 아늑한 정취가 살아있다. 보물인 대웅보전과 금동보살좌상 등을 구경한 후 도솔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물려주고 머물렀다고 전해오는 진흥굴.
        여덟개의 긴 가지가 우산처럼 뻗어있는 천년기념물 제354호인 장사송. 진흥굴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아직도 푸름을 간직한 숲길을 10여 분 걸으면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물려주고 머물렀다는 진흥굴이 나온다. 인위적으로 판 흔적이 보이는 진흥굴에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진흥굴 바로 옆에는 천연기념물 제354호인 장사송이 위풍당당 서 있다. 수령이 600년이며 키가 무려 23m인 장사송은 17m나 되는 여덟개의 긴 가지가 우산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간 모습이 인상적이다.

         기도효험이 빼어나다는 도솔암.
       도솔암 내원궁에서 바라본 선운산 천마봉. 입을 벌리고 하늘을 향해 포효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천마를 닮아 명명됐다고 전해온다. 이 모습은 수 년전 손창민 주연의 MBC 드라마 '신돈'에 자주
       등장하곤 했다.
         사진 상의 기와 지붕이 선운산 도솔암이다. 이 도솔암 뒤에서 바라보면 천마봉이 선명하게 보인다.
         보물 제1200호인 도솔암 마애불상.


 장상송에서 10여 분쯤 더 가면 깎아 지른 기암절벽 옆에 자리잡은 도솔암이 나온다. 지장보살을 모신 도솔암 내원궁은 기도 효험이 빼어나다고 일찌기 유명세를 타 기도객이 전국에서 줄을 잇는 곳.
 도솔암 바로 옆에는 절벽 한면에 17m에 달하는 거대한 마애불이 눈길을 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 양 옆에는 멋들어진 소나무가 각각 협시불처럼 자리하고 있어 운치가 있다.
 선운사를 품고 있는 산은 '호남의 내금강'이라고 불리는 도립공원 선운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선운사에 오면 경내만 둘러볼 뿐 선운산의 진가를 찾으려 하질 않는다.
 도솔암에서 산길로 조금만 올라가면 영화 '남부군'의 촬영지로 유명한 용문굴과 서해안의 지는 해가 환상적인 낙조대, 선운산 최고봉인 천마봉이 차례로 이어져 멋진 산행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1시간이면 넉넉하게 둘러볼 수 있다.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도솔암 뒤편 바위로 올라가면 정면의 천마봉과 그 우측의 낙조대 등 선운산의 수려한 산세를 조망할 수도 있다.

#추천 맛집
 고창 선운사에 오면 반드시 맛봐야 하는 음식은 이곳 특산물인 풍천장어와 복분자술. 선운산 입구에 들어서면 길 양편에 저마다 '원조'라는 이름을 앞세운 커다란 간판이 눈에 띈다.
선운사 입구의 인천강에서 잡히는 풍천장어는 특히 뛰어난 영양식품으로 각광받아 왔다.
 하지만 요즘 식당에서 내놓는 장어는 대부분 양식 장어. 손님이 자연산을 원할 경우에만 특별히 내놓는다. 양식장어의 경우 ㎏당 4만원인데 반해 자연산 장어는 ㎏당 20만 원으로 가격차가 제법 난다.


 식당마다 메뉴와 가격은 대부분 같다. 장어구이(1인분) 1만8000원, 장어쌈밥정식 1만9000원, 복분자주(360mℓ) 1만원. 담백하고도 달콤한 장어에 복분자술을 한 잔 곁들이면 술맛까지 달 정도로 궁합이 맞다.
 선운사 입구의 풍천가든(063-562-7520)은 대파를 깔고 그 위에 장어를 얹어져 맛이 깔끔하다. 야외 불판에서 먹으면 장어도 안타고 더 맛이 있다. 청원가든(063-564-0414), 유신식당(063-562-1566)도 제법 유명하다.


◆지원 사유
 현재 〈다음〉에서 산행 여행 관련 티스토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산행 여행 쪽에서 밥을 먹고 있는 셈입니다. 수년간 이쪽 파트에서 일을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여행을 하고 있지만 제대로 준비해서, 알고 떠나는 경우가 실제로 많지 않다는 사실을 늘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여행지를 알리려고 합니다. 여행은 여행지 한 곳 한 곳이 중요하지만 여행할 때 어떻게 동선을 짜느냐고 더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무식하게 차를 이리 운전하고 저리 운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조금이나마 알리고, 그 지역에서 놓쳐선 안 될 볼거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행지역-전남 순천시
◆여행날짜-10월 3~4일
◆여행컨셉-순천 속속들이 넓게 보기-순천까지는 차로, 이후 여행지에서 발품으로
◆여행일정
 순천은 호남에서도 볼거리가 많은 관광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필부들은 자가 승용차를 이용, 낙안읍성 선암사 송광사 순천만 등을 잠깐 둘러볼 뿐 정말로 발품을 팔면서 순천땅의 숨은 대자연을 속속들이 보려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건 잘 알지 못해서 그럴 겁니다.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듯 순천에선 조금만 더 발품을 팔면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만한 여정이 숨어 있습니다.

 제1일-남해고속도로 승주IC~선암사(절구경)~선암사-송광사 잇는 동서횡단로(걸어서), 중간지점 보리밥집서 식사,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조계산 쌍향수 구경~송광사(절구경)-대중교통편으로 차량회수~낙안온천욕 후 낙안읍성 민속마을에서 1박
 제2일-낙안읍성 민속마을~순천만(순천만 자연생태관~대대포구 탐사선 타고 조류 탐사~갈대밭 걷기)~용(머리)산 전망대서 낙조 구경(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순천만 가기 전에 벌교(꼬막 맛보기, 소설 '태백산맥' 배경) 둘러보기)




 한겨울에도 피는 동백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봄꽃의 시기적 계보는 대략 이럴 게다. 매화 벚꽃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철쭉 영산홍 정도.
 요즘은 누가 뭐래도 배롱나무꽃이 가장 자주 눈에 띈다. 절집 묘소 재실 가로수 심지어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에서도 거의 우점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히 배롱나무 천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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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래 정씨 2세조 정문도 공 묘지 좌우에 위치한 800년된 천연기념물인 배롱나무. 부산진구
       양정동에 위치한 화지공원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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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운데 하얀 아파트 좌측 뒤 회색빛 높은 서면 롯데호텔이다. 왼쪽 낮은 건물은 롯데백화점.


 주로 7~9월에 꽃이 피며, 100일 동안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목백일홍(木百日紅)이라 불리는 배롱나무. 국화과의 1년생 초(草)인 백일홍과 전혀 다른 식물이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최고령 배롱나무는 어디 있을까.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 화지공원에 수령이 800년 된 배롱나무 노거수(老巨樹) 두 그루가 있다.
 정묘사라고도 불리는 화지공원은 동래 정씨 2세조(二世祖)로 고려 중기 안일호장(安逸戶長-동래군 향직의 우두머리)을 지낸 정문도 공의 묘지와 재실이 있는 곳. 해발 142m의 구릉지 수준에 불과한 화지산(華池山) 기슭에 위치한 이곳을 동래 정씨 후손들이 공원화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800년 된 두 그루의 배롱나무는 정묘사 내 정문도 공의 묘를 봉분할 때 묘 좌우에 심겨져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이 배롱나무는 원 줄기는 죽고 주변의 가지들이 별개의 나무처럼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렀다고 전해온다. 한마디로 800년을 대이어 버텨온 묘지기 나무인 셈이다.
 배롱나무가 부귀영화를 안겨다주는 나무로 예부터 알려져 동래 정씨 후손들이 배롱나무를 자신들의 2세조(二世祖) 묘 옆에 각각 1그루씩 심었다고 한다.
 가까이 다가가 꼼꼼히 살펴보면 실제로 원 줄기는 죽고 그 주변에서 돋은 줄기가 자라 지금의 형태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 줄기도 방부처리돼 남아 있다.
 네 그루가 모여 있는 동쪽의 나무는 높이가 8.3m이며 세 그루의 모여 있는 서쪽의 나무의 높이는 동쪽의 그것보다 약간 커 8.6m이다. 모두 진분홍의 꽃을 피우고 있으나 수령이 오래돼 껍질이 벗겨지는 등 생장 상태는 그리 양호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 기품만은 고고하면서도 우아해 보는 이의 감동의 자아내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두 그루 모두 지난 1965년 천연기념물 제168호로 지정돼 있다.

 화지공원을 품은 화지산은 30분이면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마을의 노인들이 즐겨 찾는다. 일반인들에겐 아침 산책로로 적합하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체육공원도 있다.
 화지산은 산세로도 의미있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비록 구릉지 수준의 야산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반대편 어린이대공원이 위치한 초읍 쪽으로 내려가 도로(초읍고개)를 건너면 쇠미산(금용산)으로 바로 이어져 한쪽으론 어린이대공원 만남의 광장과 백양산으로, 또 다른 방향으론 만덕고개를 지나 금정산으로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

 부산의 지도를 펴놓고 보면 한가운데 위치한 부산진구 양정동에 위치한 화지공원만큼 알토란같은 도심의 공원은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

 참고로 화지공원에서 50m 거리엔 부산광역시 교육청이, 차로 3분 거리엔 부산시청, 6분 거리엔 법원 및 검찰청이 위치해 있다. 공항은 20분, 해운대는 25분, 부산역은 20분, 남포동 및 자갈치도 25분 정도면 충분하다. 지하철 1호선 양정역에선 몇 번 출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교육청, 백조아파트' 쪽으로 걸어서 5분쯤 올라오면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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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래 정씨 시조와 윗대 할아버지를 모시는 사당 추원사. 아래 사진은 추원사 입구 추원사기(追遠祠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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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원사 뒷쪽에는 동래 정씨 시조묘가 위치해 있다. 한창 벌초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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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지공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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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에 들어서면 동래정씨회관 겸 화지문화회관을 만난다. 결혼식도 하고 문화강좌도 열린다. 문중에서
       정묘 관리를 위한 일종의 수익사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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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이면 주민들이 배드민턴을 한다. 아쉽게도 이들은 운동을 마치면 무심하게도 네트를 되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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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경문. 정문인 이 문을 통과하면 경치가 보인다는 의미이다. 이름이 아주 운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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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경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우측으로 바로 등산로가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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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을 하지 않으려면 조경이 잘 된 길을 따라 직진하면 천연기념물인 배롱나무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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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는 특히 노인들이 많이 눈에 띈다. 여기서 좌측으로 조금만 가면 배롱나무가 보인다.

  ◆국제신문 산행팀 추천 국내 유명 얼음골

  절기 상으로 봐서 더위가 한 풀 꺾여야 하는데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쉴 새 없이 흐르는 땀방울. 찬물로 샤워를 해도 잠시 뿐. 바깥 나들이 하기가 두려울 정도다. 이쯤되면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그리워질 만하다. 에어컨 바람 말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이 어디 없을까.
 한여름속 겨울, 이한치열(以寒治熱)로 제격인 곳이 있다. 경북 의성 빙계계곡, 경남 밀양 얼음골, 경북 청송 얼음골, 충북 제천 금수산 능강계곡, 전북 진안 대두산 풍혈냉천 등이 바로 그곳.
 찬 공기로 인해 온몸이 금새 얼어붙는 곳, 발 담그기 무섭게 한기가 온몸에 퍼지는 차가운 계곡수들. 여름 휴가지로 이만한 데가 또 있을까. '여름과 겨울이 뒤바뀐 세상'에서 더위를 한번 식혀보자.

 #경북8승 중 하나-의성 빙계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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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계계곡 입구에 서 있는 빙계계곡 안내판(왼쪽)과 빙혈 및 풍혈. 빙혈을 보고 계단을 오르면 풍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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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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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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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계계곡을 따라 빙혈과 풍혈을 보러 가는 길 주변에도 찬바람이 나온다.


 의성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석탑 박물관'. 지명 중 '탑리'가 있을 정도로 수려한 풍광 속에 우뚝 선 탑들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무더위가 찾아오면 어김없이 각광받는 곳이 한 곳 있다. 이름에서부터 시원하게 느껴지는 빙계계곡이다.
 예부터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계곡이라 하여 붙여진 빙계계곡에는 유난히 '얼음 빙(氷)' 자가 들어가는 이름이 많다. 빙계계곡을 둘러싼 산이 빙산, 계곡이 있는 마을이 빙계리, 계곡 내 위치한 절터는 빙산사터.
 의성문화원 이종우 원장은 "이곳 빙계리가 속한 의성군 춘산면도 과거에는 빙산면이었는데 조선 철종 때 마을에 '빙' 자가 너무 많으면 인재가 나오지 않는다 해 봄 춘(春)로 바꿨다"고 말했다.
 군립공원인 빙계계곡은 빙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기암절벽을 돌아 굽이쳐 한 폭의 동양화처럼 멋스런 풍광을 이뤄내 예부터 경북8승 중 하나로 손꼽힌다.
 계곡 입구는 현재 빙계서원. 도산서원보다 17년 앞선 이 서원에는 이언적 유성룡 김안국 등 5현이 모셔져 있다.
 빙계서원을 지나 다리 건너 계곡과 나란히 내달리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우측에 시원한 계류와 함께 거무죽죽한 운치있는 바위들이 펼쳐진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굽이치는 개울물에 물고기가 헤엄치고 떨어질 듯 매달린 바위 틈에 꽃이 피어 드리워졌구나"며 이곳을 노래했다.
 도로 좌측의 바위 틈에는 소문대로 찬 기운이 느껴지고 관광객들은 신기한듯 다가가 바위 주변을 둘러본다.
 빙계계곡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빙혈(氷穴)과 풍혈(風穴). 입구의 빙계상회 안주인 김향숙 씨는 "초복 때쯤부터 하루종일 찬 기운이 바위 틈새로 뿜어져 나와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장관을 이룬다"고 설명했다.
 빙혈과 풍혈까지는 3분도 채 안되는 거리. 아름다운 숲과 조화를 이루는 빙산사지 오층석탑을 지나면 갑자기 냉기와 함께 뿌연 김이 앞을 가린다. 이구동성으로 '와~아'.
 원래 빙혈은 빙산 기슭 바위에 뚫린 굴이지만 입구에 작은 건물로 단장해 안으로 들어가 구경하도록 설계돼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벽돌과 유리문으로 막아 놓은 곳에서 서늘한 기운이 나와 온몸에서 오싹 한기가 돋는다. 입에선 하얀 입김도 나온다.
 빙혈에서 나와 계단을 오르면 풍혈이 있다. 바위와 바위 사이의 작은 굴이다. 어른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공간이다. 빙혈에 비하면 좀 떨어지지만 차고 뿌연 냉기를 발산한다.
 빙계계곡 입구에서 1㎞쯤 떨어진 곳에는 더운 물이 나오는 빙계온천이 있다. 찬바람이 불고 얼음이 어는 계곡 근처에 온천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흥미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곳은 또 원효 대사와 요석 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전설로 내려온다. 요석 공주가 젖먹이 아들 설총을 데리고 원효 대사를 찾아왔는데, 원효대사가 수도 중이었던 곳이 바로 빙산사 빙혈 속이었다는 것이다.

 #원조 얼음골-밀양 얼음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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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천황산 기슭 해발 700m에 위치한 골짜기. 정식 이름은 시례빙곡(詩禮氷谷)으로 천연기념물 제224호이다.
 삼복 더위에 얼음이 얼고 겨울에는 얼음이 녹아 더운 김이 올라 오래 전부터 영남지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피서지로 자리매김해왔다. 접근성이 뛰어난 의성 빙계계곡에 비해 밀양 얼음골은 주차장에서 넉넉잡아 25분 정도는 올라야 한다. 경사가 다소 급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 동네 약수터 가는 정도이니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은 인파가 다녀갔고, 그에 따른 개발이 진행돼 최근에는 얼음을 보기가 무척 힘들어졌지만 바위 틈 사이로 불어 나오는 시원한 냉기와 차가운 계곡물은 예전과 별 차이가 없어 피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게 얼음골 관리인의 설명이다. 관리인에 따르면 현재 결빙이 외관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바위 밑에는 얼어 있으며 평균 기온은 0~1도를 오르내린다고 덧붙였다.
 얼음골에서 좌측으로 200m 정도 산길을 따라 꺾어지면 협곡 내 수십m 높이의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가마불 폭포다. 바위와 바위가 맞붙어 있고 그 틈새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비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더위를 앗아간다.

 #청송 얼음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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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얼음골 약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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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에 바라본 얼음골 인공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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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본 인공폭포와 겨울철 빙벽대회 모습.


 밀양 얼음골에 비해 지명도는 한참 떨어지지만 경북 내륙지방에선 꽤나 유명한 여름철 관광지이다. 밀양 얼음골이 천연기념물인 데 반해 청송 얼음골은 그 흔한 지방기념물로도 지정돼 있지 않다.
 울타리를 쳐서 접근을 막고 있는 밀양 얼음골과 달리 이곳은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얼음물이 나오는 지점에 굴을 조성해 찬바람이 쌩쌩 부는 가운데 물을 뜰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유량도 많아 여름철이면 항상 물을 뜨려는 사람들로 북적된다. 이 굴 윗쪽에도 찬바람이 나와 많은 사람들이 한여름 피서지로 애용하고 있다.
 청송 얼음골에는 명물이 하나 있다. 바로 청송군이 지난 1999년 밀레니엄 기념사업으로 1억3000여 만원을 들여 천연 암벽에 계곡수를 끌어올려 만든 인공폭포. 처음보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귀띔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높이 62m로 국내 최대 규모인 이곳에서는 매년 1월이면 폭 100m의 얼음벽을 조성해 청송 주왕산 빙벽대회가 열린다.

 #진안 풍혈냉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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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4도를 유지하는, 물 좋기로 소문난 진안 냉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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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서늘한 바람이 불어대는 풍혈.

 전북 진안 성수면 대두산(일명 말궁굴이산) 기슭에는 풍혈냉천이 있다. 청송 얼음골과 마찬가지로 찬바람과 함께 얼음처럼 찬 샘물도 함께 솟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시대 명의 허준이 이곳 냉천의 물로 약재를 달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항상 4도를 유지하는 냉천의 물은 맛도 일품일 뿐더러 이 물에 목욕을 하면 피부병과 무좀이 치료되고 장복할 경우에는 위장병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전해져 자연보호중앙협의회에 의해 한국의 명수로 지정됐다.
 얼기설기 얽힌 바위 사이로 검게 뚫린 구멍에서는 냉장고의 냉동실을 열었을 때와 흡사한 느낌의 서늘한 바람이 나온다. 여름이면 사람들은 이 구멍들을 찾아 마치 혹한에 모닥불 쬐듯 옹송그리고 앉아 감탄사를 연발한다. 대두산 풍혈냉천 바로 인근에는 마이산이 있어 관광객들은 이 두 곳을 연계해 둘러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천 금수산 능강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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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그 위력을 발하는 금수천 능강계곡 얼음골.

 충주호와 마주보고 있는 제천 금수산 자락의 능강계곡 얼음골의 옛 이름은 '한양지(寒陽地)'. 그 이름만큼이나 삼복염천에 얼음이 얼어 이곳의 고드름을 먹으면 기침이 멎는다고 해서 멀리서 일부러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금수산 중턱에 자리한 얼음골에는 연중 차가운 기운이 흐른다. 이곳 역시 얼기설기 쌓인 돌무더기에서 삼복 무렵이면 가장 많은 얼음이 발견된다.

 ◆얼음골 그 원리는.
 여름에 얼음이 얼고 겨울에 온기가 발하는 얼음골은 대자연의 우연한 산물일까.
 정답은 그렇지 않다. 그 속에는 바로 과학의 원리가 숨어있다.
 지형적 지질학적 요건이 우선 필요조건이다.
 밀양 얼음골, 청송 얼음골, 의성의 빙계계곡 등지의 유명 얼음골은 예외없이 근처 산에서 무너져 내린 수십㎝에서 수m 크기의 돌들이 비교적 겹겹이 쌓여 있으며, 암석은 대부분이 화산폭발로 한번 불에 구워져 단열효과가 높은 화산암 계열의 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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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구리봉 2부 능선쯤의 너덜(왼쪽)과 밀양 천황산 6분 능선쯤의 너덜. 이 너덜 속에 얼음골의 비밀이 숨어 있다.

 바로 이런 구조가 한여름에 얼음이 어는 얼음골의 신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기본적 원리는 간단하다. 겨우내 찬바람이 돌틈으로 들어가 돌들을 차갑게 식혀 놓는다. 봄이 되면 얼음골에는 온기가 들어가면서 돌틈에 있던 무거운 찬공기를 아래쪽으로 내몬다. 차가워진 바위는 쉽사리 데워지지 않고 여름에도 영하의 온도를 유지한다. 이 때문에 골짜기의 제일 아래쪽 얼음골에서는 영하의 찬바람이 불어나와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것이다.
 최근에는 얼음골에 신비가 한꺼풀씩 벗져지고 있다.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변희룡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부터 거의 매주 밀양 얼음골을 찾아 얼음골의 비밀을 밝히는 연구를 한 결과, 최근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지금까지 한 구멍에서 계절을 달리해 냉혈과 온혈이 나온다고 믿었는데 연구결과 지금의 냉혈보다 약 400m 위인 해발 800m 지점에서 온혈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변 교수팀이 밝힌 밀양 얼음골의 비밀은 지하에 유입된 찬 공기와 지하수 때문. 돌 틈새로 들어온 차가운 공기는 지하수를 얼리고 이때 열은 방출된다. 이 열이 공기를 데워 위로 올라가게 해 습도가 높은 따뜻한 공기를 온혈로 뿜어져 나오게 한다. 이 과정이 되풀이 되면서 열과 수증기는 고지대로, 물과 냉기는 저지대로 이동한다. 따라서 냉혈은 저지대에, 온혈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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