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미술 대중화 나선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박은경 교수

-전문성·대중성 갖춘 연구로
- 전국서 초청1순위 스타학자
- '불화 연구'로 국내외서 명성
- 한일문화교류에 물꼬 트기도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박은경(53) 교수를 소개할 땐 별도의 수식어가 붙는다. '부산지역 1호 불교미술 전공자', '지역의 숨은 스타급 인문학자' 등이 바로 그것. 후자를 두고 그는 과찬이라 손사래를 치지만 그를 아는 지인들은 예외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빛바랜 강의노트 하나로 버티는 공부와 담싼 교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교수 평가의 잣대가 되는 논문이나 저서, 강의에 있어 단연 돋보인다.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적당한 재미를 겸비한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특강을 한 번이라도 들은 사람들은 단번에 감흥을 받아 그의 팬이 되고 만다. 강연 후 주최 측의 선호도 앙케트에 최상위에 랭크됨은 물론이다. 

 

이렇다 보니 그는 실력이 신통찮으면 좀처럼 초청되지 않는 삼성리움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전국의 불교미술 관련 특강에는 초청 대상 1호로 분류돼 있다. 올 상반기에 특강만 20건. 강의하랴, 연구하랴, 저술하랴, 한 학기가 보통 15~16주임을 감안할 때 분명 강행군임에 틀림없다.

 인문학자가 왜 이토록 바깥나들이를 자주 할까. 박 교수는 불교미술학자답게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는 대승불교의 교육이념을 빗대 설명했다.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위로는 깨달음을 구한다'는 '상구보리'는 잘해요. 하지만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하화중생'을 소홀히 해요. 인문학이 뇌사상태에 빠진 것은 학자들의 책임이 아주 큰 것 같아요."

 그는 외부 특강을 다니면서 '왜 이전에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고 했다. 뭐든 하나를 잡으면 끝을 봐야 하는 독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그간 준비한 특강 원고를 중심으로 '쉬운' 인문한 교양서적을 내겠다고 했다.

 지난 2월 펴낸 '범어사의 불교미술'(선인)이란 책도 같은 맥락으로 봐달라고 했다. 동아대 석당학술총서 제19호인 이 책은 범어사의 역사와 건축, 조각, 불화, 자료 편으로 구성돼 있다. 같은 학과 정은우 교수 등 4명의 전문가가 주제별로 공동 집필했지만 기획부터 출간까지 박 교수가 주도했다.

 "범어사와 관련된 책은 지금까지 사찰의 역사에 관한 자료집 몇 권 정도가 전부였지만 이 책은 전문성과 함께 대중성도 갖춘 책이지요. 특히 범어사처럼 역사의 굴곡에 따라 중건과 중수를 반복한 사찰은 기초사료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지역 불교미술 연구에도 상당히 의미있는 책이지요."

 박 교수의 세부 전공은 불교회화, 그중에서도 조선전기 불화이다. 2008년 펴낸 '조선전기불화연구'와 '서일본 지역 한국의 불상과 불화'는 그가 학자로서의 존재감을 국내외에 널리 알린 역작. 현재까지 알려진 조선전기 불화는 140여 점. 이 중 일본에만 100여 점이 있다. 당시 국내에는 조선후기 불화 연구자는 많았지만 조선전기 불화 연구는 전무한 상태였다.

 일본 규슈대에서 한국불화로 박사학위를 받고 1994년 모교로 부임한 이래 방학 때마다 조선전기 불화가 산재한 일본 미국과 국내 곳곳을 발로 뛰며 현존하는 불화를 모두 체계적으로 집대성해 펴낸 것이 '조선전기불화연구'이다.

 이 책은 고려불화에서 조선후기 불화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고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 높이 평가 받아 박 교수는 이듬해 미술사학자로서 최대 영예인 우현 고유섭 선생을 기리는 우현학술상을 수상했다.

 2002년 학술진흥재단에서 당시로는 파격적인 2억 원의 연구비를 받아 펴낸 '서일본 지역 한국의 불상과 불화'는 한국의 고·중세 불상과 불화를 집대성한 자료집. 이 책 출판을 계기로 그는 한일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열어 한일 문화교류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특히 이 책 저술을 위한 조사과정에서 교토 모 사찰의 노승이 박 교수의 열의에 감동, 조선전기 불화인 '영산회상도'를 기증해 박 교수는 이를 우리나라 보물(1522호)로 지정되게 했다.

 "현재 조선전기 불화라고 추정되는 자료에 대한 문의가 20점 정도 요청이 와 있어요. 본업은 하던 대로 할 생각입니다. 여기에 인문학이 딱딱하지 않고 재밌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특강과 저술로 꾸준히 실천할 생각입니다."

- 한반도 산줄기 체계 뒤집는 주장 제기, 산경표연구소 박의석 소장

 

해서임진북예성남정맥 추가

26년만에 13정맥서 한 단계 진일보

산줄기에 대한 인식 한계 넓혀

발품, 고서탐독 아마 산꾼 성과

 

<사진설명 : 박의석 씨가 부산의 한 등산학교 산경표 강의에서 직접 만든 대동여지도를 가리키며 특강을 하고 있다. 가로 3.5m, 세로 7m로 실제 대동여지도 크기와 비슷한 이 지도는 한지를 구해 우선 4번 정도 발라 빳빳하게 만든 후 전문 지도제작업체인 '고산자의 후예들'에서 구한 첩식 대동여지도를 모자이크 맞추듯 그 위에 붙여 만들었다.>

 

"우리나라 산줄기는 1대간 1정간 13정맥이 아니라 1대간 1정간 14정맥이 맞습니다. 앞으로 산서나 산행 관련 잡지 등의 표기는 모두 이렇게 바꾸어야 합니다."


 부산의 아마추어 산꾼이자 산경표연구소 박의석(57) 소장이 우리나라 산줄기의 체계를 뒤집는 새로운 주장을 제기해 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아마추어 고지도연구가 고 이우형이 서울 인사동 헌책방에서 '산경표'를 발견한 뒤 6년 만인 1986년 한반도의 산줄기가 1대간 1정간 13정맥이라는 사실을 제기한 후 26년 만에 산줄기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한 단계 뛰어넘은 의미있는 주장이다. 국내의 산줄기는 1903년 도쿄대 고토 분지로 교수가 한반도 광물 수탈을 목적으로 도입한 지질구조선 개념을 지도에 들여앉힌 산맥체계가 지금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리 전공 교수나 교사들이 고토 분지로의 산맥체계를 관성적으로 '받아 쓰고 베끼기'를 반복해온 반면 두 번의 지리인식 체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의한 값진 성과는 공교롭게도 아마추어 산꾼들에 의해 나와 무척 이채롭다.


 25년 지독한 산꾼인 박 소장이 주장하는 하나의 새로운 정맥은 북한 땅 백두대간 두류산에서 해서정맥과 임진북예성남정맥이 만나는 개련산까지의 산줄기. 박 소장은 이를 "해서임진북예성남정맥이라 명명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정맥은 산경표의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즉 산은 스스로 물과 고개를 가른다는 지침을 정확히 충족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정맥은 대동강의 지류인 능성강과 임진강의 상류를 가르며 백두대간과 만난다.

 

 

 박 소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비슷한 사례는 남한 땅에서도 찾을 수 있다.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이 만나는 주화산에서 백두대간 영취산을 잇는 산줄기를 금남호남정맥이라 부르고,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이 만나는 칠현산에서 속리산 말티재까지를 한남금북정맥이라 명명한 것이 북한의 사례와 아주 흡사하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산경표의 산줄기를 한반도 지형도에 옮겨놓은 기존의 지도만 꼼꼼하게 살펴봐도 의문점이 들지만 해서임진북예성남정맥이 북한 땅에 있어 학자들이나 산꾼들이 관심을 덜 가진 탓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박 소장이 새 정맥을 주장하는 근거는 또 있다. 한문에 능통한 그는 '동국문헌비고 여지고'와 '산경표'를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동국문헌비고는 조선 영조 때 홍봉한 등 26인이 예(禮) 병(兵) 형(刑) 등 13개 분야(考)를 집대성한 일종의 종합백과사전. 이 중 여암 신경준이 지리분야를 정리한 것이 여지고(輿地考)이다. 여지고가 순차적으로 표기돼 한눈에 보기 힘든 반면, 이 여지고를 산의 위치, 흐름, 갈래 등을 신경준이 다시 계보적으로 편집한 것이 바로 산경표이다. 현재 신경준의 산경표는 아직 발견된 것이 없고, 이우형 등이 손에 쥔 산경표는 일제 때 조선광문회의 육당 최남선이 편수한 영인본이다.


 진실을 향한 박 소장의 발품 노력은 눈물겹다. 박 소장은 문헌을 통해 신경준이 신숙주의 셋째 동생인 신말주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신말주는 당시 신숙주의 반대 편에 몸을 담아 결국 전북 순창을 유배를 떠났다.


 순창문화원를 통해 여암의 묘는 8대 손인 순창고 신장호 교장이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박 소장은 순창을 찾아 신 교장을 만났지만 돌아온 대답은 일제 때 정인보 선생이 여암에 관한 자료를 빌려간 후 함흥차사였던 것. 대신 신 교장으로부터 그의 먼 친적이 산경표를 갖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수소문 끝에 만났지만 그것 또한 자신이 소유한 조선광문회의 산경표 영인본과 같은 것이었다. 얻은 점도 있었다. 산경표가 동국문헌비고 여지고를 참고해 만들었다는 사실이었다.


 박 소장은 다시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아 사정 끝에 '동국문헌비고 여지고'를 복사한 후 조선광문회의 산경표와 대조해가며 직접 산을 타며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5, 6년 전엔 본사 근교산 취재팀과도 수차례 함께했다. 10년 간 답사를 병행하며 조선광문회의 산경표와 여지고, 그리고 실제 산줄기를 비교한 결과 무려 270군데나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자료를 모아 박 소장은 육당의 산경표를 재편수한 '산경표'를 2009년 가을에 펴냈고, 최근 동국문헌비고 여지고도 거의 국역을 끝낸 상태이다.


 "사실 해서임진북예성남정맥의 발견은 여암 신경준의 발자취와 국내 산줄기를 발품 팔아 추적하다 부수적으로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입니다."


 박 소장은 "현재 여암 선생의 산경표 필사본이나 영인본은 국내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며 "만일 이게 발견된다면 새로운 사실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 여담. 만일 여암의 산경표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면 마땅히 박 소장에게 우선 인계돼야 한다고 기자는 생각한다. 산과 한자에 동시에 능통하고 열정까지 갖춘 이는 아마 국내에선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올해 47세인 이 사람, (주)화목건설 김용완 회장의 장남이다. 세칭 'SKY'대학을 나왔으니 요셋말로 스펙도 괜찮다. 지금쯤 경영 일선에 나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야 될 그가 지난해 12월 월간 '더 골프'가 선정한 '한국을 대표하는 티칭 프로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임진한 고덕호 등 국내 내로라하는 스타급 프로들과 함께. 부산에선 두 사람이 뽑혔다. KPGA 중앙경기위원이자 연산골프연습장 대표인 최재철 프로야 자타가 공인해 이견이 없지만 사실 이 사람은 무명에 가깝다.

 부산 해운대구 좌동 화목데파트 2층 '하모니 더 골프'에서 365일 골프와 씨름하는 김규동(부산외대 사회체육학부 겸임교수) 대표 이야기다. 보장된 탄탄대로를 뒤로한 채 골프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그를 만나 '별난 삶'을 들어봤다.

 대학시절 그는 공부에 별 뜻이 없었다. 친구들이 진로를 두고 고민할 때 아버지 사업만 물려받으면 되는 그로서는 먼나라 이야기였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일종의 특혜였다.


 골프와의 인연은 대학 졸업 후 운명처럼 다가왔다. "곧바로 아버지 회사에 출근하기 좀 뭣 해서 미국서 공부하는 친구들을 만나러 갔지요. 아버지도 바람 한 번 쐬고 오라고 허락하셨지요."

 당시 유학생 친구들은 예외 없이 골프를 하고 있었다.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는 현지에서 미국인 코치에게 레슨을 받았다. 

 귀국 후 그는 가족들의 변화에 깜짝 놀았다. 그가 집을 비운 6개월 사이 골프를 전혀 하지 않던 아버지, 자형, 동생이 모두 골프를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레슨에 동행한 그는 미국과 한국의 티칭 방법이 크게 달라 놀랐다. 임펙트 이후까지 오른발을 지면에서 떨어뜨리지 말라는 한국 코치의 설명에 이의를 제기하니 무조건 따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때부터 의문을 품기 시작했어요." 골프 관련 서적을 뒤지며 독학을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였다. 하지만 기술적 분석을 기술한 책은 많았지만 운동 역학과 인체의 바이오메카닉을 접목시킨 책이 없었다. 요즘 부쩍 부각되는 멘탈 부분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었다.

 "미국의 후배에게 골프 관련 책을 부탁했지만 이 또한 운동 역학적인 측면에서 설명한 부분이 태부족해 도움이 안 됐어요. 대학 체육과에서 배우는 운동 역학 교재가 그나마 나았어요."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뒤늦게 발견한 'Search for the perfect swing'과 'The physics of golf'라는 두 원서가 큰 도움이 되었다. 미국서 1968년도에 출간된 전자는 2002년에야 '완벽한 골프스윙'으로 번역됐고, 후자는 1998년 '물리를 알면 골프가 보인다'로 국내에 번역돼 나왔지만 '물리학'으로 분류돼 있어 찾지 못해 모두 원서로 봤다. 기자에게 원서와 번역서를 모두 보여주며 김 대표는 "전자가 본격 골프 공부의 계기가 됐다면 후자는 골프를 생업으로 해야겠다는 결정타를 날렸다"고 말했다.

 스윙 연습과 이론 공부는 오랫 동안 지속됐다. 2001년 한 지인이 영상스윙분석프로그램인 'C스윙'을 미국서 보내와 연습장에서 노트북으로 지인들의 시윙을 분석해줬다. "당시로선 첨단이었고, 10년간의 제 골프 공부가 작은 절실을 맺을 때였죠. 반면 아버지는 절더러 '미친 놈'이라며 경제적 지원을 끊어버렸죠."

 지도자의 길도 우연히 다가왔다. "해박한 이론과 스윙분석프로그램이 입소문을 타면서 주니어선수 부친이 아이를 가르쳐달라고 하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모 골프연습장 텅빈 3층 한 켠에서 레슨이 시작되자 금세 학생이 8명으로 늘었다. 차츰 수입이 늘자 전문 지도자가 될려면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2002년 미국골프지도연맹(USGTF) 마스터 티칭프로도 됐다. 2004년에는 부산외대 사회체육 골프전공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그는 7년만인 지난해 8월 스포츠 심리학 박사학위도 땄다. '문무'를 겸비한 것이다.

 지금의 실내골프연습장은 2009년 열었다. "아버지 도움 없이 은행 대출을 받았어요. 임대료 또한 꼬박꼬박 냅니다. 늦을 땐 회사에서 독촉전화가 올 정도입니다." 

 9개 타석에 트레이닝실, 스윙분석실, 재활치료실, 피팅룸, 샤워실, 심리상담실도 갖췄다. 프로 및 주니어선술들을 위해 스윙뱅크 3D 스윙분석(1000만 원), 타구 분석을 위한 플라이트 스코우프(1400만 원), 퍼팅분석을 위한 SAM Puttlab(1350만 원), 일종의 트레이닝기구인 파워 플레이트(1000만 원), 발의 압력 검사기기인 풋 스캐너 밸런스(990만 원) 등도 갖췄다. 이 정도면 국내 최고 시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수들 위주지만 아마추어들도 사용 가능하다.

 그를 거쳐간 주니어선수는 지금까지 50여 명. KLPGA투어 프로는 4명, KPGA프로는 2명이다. 지금은 6명의 학생 선수가 배우고 있다. 2010년 아시안게임 단체 개인 2관왕인 김현수 프로와 지난해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박유나 프로가 가시적 성과를 낸 제자들이다.

 언제 보람을 느끼느냐는 물음에 그는 "제자들이 우승했을 때보다 선수로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찾아와 연습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겠다며 눈물을 흘릴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주니어선수들의 부모와 아마추어 골프들을 위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선수로 성공하는 확률은 1%입니다. 나머지 99%는 실패 이후 가야할 길을 미리 대비해야 합니다. 일반인들은 즐겁게 운동을 하세요. 프로도 아닌 데 왜 그렇게 우거지상을 하며 운동을 하는 지 모르겠어요." (051)703-7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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