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 팔각산, 전남 고흥 팔영산, 전북 진안 구봉산의 공통점은.
 산이름 앞의 숫자만큼 근육질의 기암괴봉이 한 줄기 능선 위에 병풍처럼 우뚝 솟아 비경을 연출하고 있다. 하나같이 험준하고 변화무쌍한 암봉이 발산하는 아름다움이 상상을 초월한다. 산깨나 탄다는 전국 산꾼들의 목록에 반드시 들어있지 않나 싶다.
 조망의 시원함도 갖췄다. 험난한 날등 위를 걷노라면 파도치는 바다와 금빛물결의 호수를 원없이 볼 수 있다. 팔영산에선 다도해 국립공원을, 구봉산에선 바다에 버금가는 용담호의 금빛물결을, 팔각산에선 망망대해 동해바다의 출렁이는 파도를 각각 감상할 수 있다.
 산행 만족도 면에선 거의 100%. 거친 암봉을 오르내리다 보면 무척 고되지만 힘든 만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했던가. 재능이 뛰어나거나 빼어나면 저절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법. 이제 세 봉우리는 입소문을 통해 그야말로 명산 중의 명산으로 거듭났다.

 #팔영산(八影山), 다도해가 그리운 여덟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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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봉인 깃대봉에서 바라본 팔영산 암봉. 이름이 말해주듯 다도해를 향해 길게 드리워진
      8개의 선명한 그림자가 아주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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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깃대봉으로 가는 도중의 암릉에선 다도해 국립공원이 한눈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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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산의 자원 봉사 안내견인 흰둥이. 들머리인 능가사에서부터 암봉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친절하게 안내하는 기특한 놈이다.


 도립공원 팔영산(609m)은 전남 고흥군 고흥반도의 최고봉이다. 이름에서 짐작이 가듯 여덟 개의 암봉과 주봉인 깃대봉이 병풍처럼 나란히 이어져 있다. 해서, 팔영산은 암릉 종주산행의 고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발고도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험준하고 변화무쌍한 기암괴석이 산행 내내 기다리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말아야 할 정도다.
 이 같은 산세는 전북 진안의 구봉산(九峯山·1002m)과 곧잘 비교된다. 아홉 개의 암봉과 주봉인 천황봉으로 구성된 구봉산이 큰 덩치에 비해 비교적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운 반면 팔영산은 낮지만 구봉산에 비해 봉우리가 힘차고 매서워 흔히 남성에 비유된다.
 그렇다고 초보 산행자들이 감히 범접하지 못할 그런 산은 절대 아니다.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는데다 위험한 지점에선 쇠밧줄이나 쇠발판 쇠손잡이 등 안전시설이 친절하게 산행을 안내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팔영산이 특히 돋보이는 점은 산행 내내 아름답고 환상적인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는 것. 짜릿하면서도 넉넉한 산의 정감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의 광활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산! 그 점이 바로 팔영산의 매력이다.
 산행 도중 산행팀은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산 이름에 왜 '그림자 영(影)' 자가 들어가 있을까. 산의 그림자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기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산의 그림자가 한양까지 드리워져서, 또는 중국 위왕의 세숫대야에 비친 그림자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그렇게 불리게 됐다고 전해온다. 그야말로 설에 불과한 '믿거나 말거나'.
 정답으로 추정되는 장면이 산행 말미 예상치 않은 곳에서 잡혔다. 여덟 개의 암봉은 그침없이 이어져 있지만 주봉인 깃대봉은 마지막 8봉인 적취봉에서 1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 때쯤이면 산행 말미로 해가 뉘엿뉘엿 그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깃대봉에 닿은 산행팀은 다도해를 바라보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방금 지나온 8개의 봉우리로 이어진다.
 일순간 바다를 향해 길게 드리워진 8개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아! 바로 이거야'. 동시에 터져 나온 탄성.
 산이 바다를 그리워해 매일매일 그림자로 다가가는것일까. 그래서 바다로 가고자 했던 산의 꿈을 조금이라도 달래려고 이름을 팔영산으로 지은 것일까


 #구봉산(九峯山), 설악과 견줘도 손색없는 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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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봉산 정상인 천황봉에서 바라본 아홉 봉우리. 마치 엄한 아버지 앞에 앉은 아홉 명의
    자식을 연상시킨다. 변화무쌍한 암봉 주변에 운무가 드리워지자 신선의 세계인 양
    신비롭게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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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보고 있는 서 있는 진안 명도봉 정상에서 바라본 구봉산. 상어이빨처럼 날카롭게
      돌기된 아봉 봉우리와 이웃한 삼각뿔 모양의 주봉인 천황봉(1002m)이 마치 엄한 아버지
      앞에 앉은 아홉 명의 자식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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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은 위 사진의 반대 방향 도로변에서 찍었다.

 전북 진안에는 금강 남쪽으로 뻗은 금남정맥의 최고봉인 운장산(1126m)과 암수 두 개의 봉우리로 유명한 마이산(685m) 그리고 구봉산(1002m)이 있다.
 구봉산은 운장산과 마이산에 비해 지명도가 다소 떨어지지만 최근 산꾼들에게 '괜찮은' 산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전국 산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덕유산 등 호남의 웬만한 봉우리를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장쾌한 조망에다 암벽등반을 연상케 하는 봉우리들의 위용과 기세는 왜 산꾼들이 이 산을 찾게 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산할 때 만나는 산죽과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융단길은 초겨울 산행의 묘미를 배가시킨다.
 구봉산(九峰山)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아홉 개의 바위봉과 주봉인 천황봉으로 대표된다. 아홉 개의 바위봉은 한 능선에 나란히 이어져 마치 엄한 아버지 앞에 앉은 아홉 명의 자식을 연상시킨다.
 험준하고 변화무쌍한 아홉 개의 기묘한 암봉이 연출하는 자연미는 설악의 그것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고 웅장하면서도 산세가 살아 숨쉰다는 평을 받고 있다.
 동행한 한 산꾼은 전남 고흥의 최고봉으로, 여덟 개의 바위봉우리가 아치형으로 나란히 이어져 있는 팔영산(八影山)과 산세가 흡사하다고 한마디 거든다.
 구봉산은 제법 산을 탄다는 산꾼들도 곤욕을 치를 만큼 무척 힘이 든다. 자신의 체력을 테스트하고자 하는 산꾼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팔각산(八角山), 암봉 조망 계곡 숲 그리고 야생화 갖춘 팔방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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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각산은 암봉을 잇는 주능선이 휘어져 있어 모든 암봉을 한눈에 넣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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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주보고 서 있는 구리봉으로 오르는 도중 바라본 팔각산.

 팔각산(628m)은 산행의 모든 재미를 갖춘 팔방미인이다.
 흔히 바위산이 다리품을 팔며 암릉을 오르내리다 그냥 하산하는 반면 팔각산은 산행 도중 산성골이라는 멋진 계곡이 기다리고 있다. 엷은 그린색의 특이한 반석 사이로 수정같이 맑은 계류가 흘러 발걸음을 곧잘 멈추게 한다.
 또 있다. 숲이 일품이고 발밑엔 야생화 천국이다.
 여덟개의 암봉을 넘으면 삼림욕장을 방불케 하는 길이 2.9㎞ 구간의 울창한 숲이 이어진다. 소중한 수목으로 대접받는 운치있는 홍송이 군락을 이루고, 때론 발목까지 빠지는 카키색 낙엽길도 덤으로 아직 남아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발에 차이는 게 야생화라 할 만큼 가지 수와 수량이 풍부하거니와 오동나무꽃과 쪽동백꽃 등 평소 보기 힘든 꽃들도 손쉽게 감상할 수 있다.
 결국 팔각산 산행은 암봉과 조망 계곡 숲 그리고 야생화로 이어지는 흔치 않은 명산으로 꼭 한번 등반하길 강력 추천한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그의 명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에서 강진 월출산 동남쪽 자락의 무위사를 소개하면서 '변함없는 것은 무위사의 늙은 개 누렁이뿐'이라고 적고 있다. 능력있는(?) 스님들이 새로 불사를 하면서 고색창연한 옛 것들이 사라진데 대한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 게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송아지 만한 그 누렁이는 답사객이 와도 꿈쩍도 하지 않고 양지 바른 벽쪽에 길게 엎드려 고개를 앞발에 푹 묻고는 눈꺼풀만 잠시 들었다가 이내 감아버려 답사객들의 웃음을 사곤 했다.
 흔히 답사나 산행을 하면서 덤으로 갖게 되는 기쁨이 이 처럼 그 곳의 명물이 돼 버린 견공들을 만나는 것이다.

 #초행산꾼 안내하는 '흰둥이'-고흥 팔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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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늠름한 흰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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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팀이 쉴 때도 다소곳이 기다리는 흰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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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줄이 걸려 있는 암봉으로 오르는 지점까지 안내한 후 하산하는 흰둥이.

 
 이번 팔영산 산행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굴이 역삼각형이고 꼬리가 등쪽으로 말려 올라가 있어 진돗개로 추정되는 이 흰둥이를 처음 본 곳은 산행 들머리인 능가사(楞伽寺) 입구.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지만 7~8분 지나면서 이 개가 어쩌면 우리를 안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산행팀이 도중에 멈춰 산세를 얘기하고 있으면 흰둥이도 앞서 기다리고, 다시 출발하면 그도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그러다 말겠지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제법 경사진 곳을 오를 때도 역시 같은 간격으로 앞서 가고 속도를 일부러 늦춰봐도 역시 같은 간격을 유지한다. 능가사에서 출발한 지 어언 50분. 마침내 주능선에 올라 휴식을 취할 땐 다가와 바로 옆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 먹을 것을 주면 그것만 다소곳이 받아 먹을 뿐 여느 개처럼 더 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비범함 그 자체였다. 너무 오래 쉬니까 산행을 계속 하자고 몸짓을 보낸다.
 뒤늦게 올라온 한 산꾼은 이 "이 개가 이젠 다른 팀을 안내하고 있네"라고 말한다. 그는 팔영산이 좋아 수차례나 찾은 적이 있으며 그 때마다 이 개를 봤다고 말했다.
 알고보니 그는 팔영산의 '자원 봉사 안내견'이었다. 다시 산길을 재촉, 흰둥이가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쇠줄이 걸려 있는 암봉에 다다르자 그 놈은 임무를 완성한 듯 아쉬움을 표하며 재빨리 내려갔다.
 하산 후 능가사 주변을 둘러보며 흰둥이를 찾았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또 다른 팀을 안내하러 산으로 올라 갔을까.


 #승복 입어야 짖지 않아요-고성 와룡산 향로봉 운흥사 '먹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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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은 심술궂게 생긴 먹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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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늑한 분위기의 운흥사 전경(왼쪽)과 경내 위치한 운치있는 장독대.

 경남 고성 와룡산 향로봉 기슭에 위치한 운흥사(雲興寺). 공룡발자국 화석이 즐비한 '공룡의 무도장'인 상족암과 그리 멀지 않다. 임진왜란 땐 사명 대사가 승병을 지휘했고 이순신 장군은 수륙양면 작전을 꾀하기 위해 세 번이나 다녀간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는 화원양성소로 유명해 영조 때 불화의 대가였던 김의겸 스님을 배출한 곳도 바로 이 운흥사이다. 지금 이 절에는 김의겸 스님이 대표가 돼 제작된 대형 괘불이 보존돼 있다. 운흥사는 괘불재가 열리는 날이면 전국의 신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온다. 살아 생전 괘불재를 세 번만 보면 죽어서 극락에 간다는 말이 전해오기 때문이다.
 이 운흥사를 찾으면 주의 깊게 봐야 할 견공이 세 마리나 된다.
 우선 16살로 추정되는 삽살개 '먹쇠'. 이름 그대로 식성이 아주 빼어나다. 주지인 경담 스님은 "먹쇠는 주지 스님을 세 분이나 모셨을 정도로 워낙 연로(?)하다 보니 정확한 나이를 알지 못하지만 주지 스님이 계시다가 떠난 햇수를 역으로 꼽아보면 대략 그렇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 나이로 치자면 아마도 80살쯤은 되지 않았나 싶다.
 숫컷으로 100% 삽살개 순혈인 '먹쇠'는 오랫 동안 절밥을 먹다 보니 승복을 입지 않으면 일단 경계를 한다. 특히 모자를 쓰고 화려한 등산복을 입고 있으면 예의주시하다 이상한 행동을 할 경우 짖는다. 아주 순하고 영리한 데다 그날그날 주인의 심기까지 살피는 노련함마저 갖춰 손될 데 하나 없는, 절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한다. 가끔 짖으며 물려고도 하지만 절대 물지 않아 유일하게 자유로운 몸이다.
 주지 스님도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옷매무새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암컷으로 네 살인 삽살개 '혜순'이도 있다. 지혜롭고 순해라는 의미로 명명된 '혜순'이는 이름 그대로 잘 안 짖는다. '먹쇠'와 달리 혜순이는 순혈 삽살개가 아니라고 한다.
 
 역시 암컷으로 세 살인 막내 '운수'는 갈색의 진돗개다. 낯선 사람들이 오면 특히 신경이 날카로와져 많이 짖는단다. 해서 이름도 '운흥사 운, 지킬 수'를 가져와 '운수'라고 지었단다.

'혜순'이와 '운수'는 아직 어려 사람들을 물 수도 있어 묶여 있다.


 #앞 발 하나 없어도 집은 잘 지켜요-영천 작은보현산 거동사 '진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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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우수에 젖어 있는 듯한 진돌이와 거동사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초입.

 평균 연령 70세인 경북 영천군 자양면 보현골 주민들이 등산로를 개척해 유명세를 탄 작은보현산~갈미봉 코스의 들머리는 거동사(巨洞寺). 이 절집에는 '진돌이'라는 하얀 진돗개가 한 마리 있다. 안타깝게도 왼쪽 앞 발이 하나 없다. 마을 뒷산에 멧돼지가 너무 많아 이를 잡기 위해 설치한 올무에 진돌이가 걸렸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당시 진돌이의 울음 소리에 달려가 보니 올무에 걸려 빠져나오기 위해 발악을 하다가 거의 발이 잘린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는 것.
 이후 진돌이는 주위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몸조리를 잘 해 비록 지금은 움직이는 데 불편하지만 본연의 임무인 절 지키기는 완벽하다고 한다. 원래부터 아주 온순한 진돌이는 절집에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도 짖지 않고 그냥 물끄러미 보다가 엉뚱한 행동을 할 경우에만 짖는 현명한 지킴이라고 한다.
 작은보현산과 관련 참고 하나. 작은보현산은 글자 그대로 천문대가 위치한 보현산과 이웃해 있다. 하지만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나 잘못된 등산지도에는 같은 산으로 표기해 혼선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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