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섬 아닌 섬, 국내 물돌이마을 둘러보다

곤이 2008. 7. 18. 17:28

 강물은 마술사다. 그저 말없이 조용히 흐르는 줄 알았던 강물이 멀쩡한 육지를 서서히 갉아먹으며 종국에는 섬 아닌 섬을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보름달을 닮은 둥그스름한 이 섬 아닌 섬은 주변을 거의 한바퀴 휘감아 흐르는 물굽이와 금빛 모래톱에 의해 빼어난 절승으로 거듭났다.
 호사가들은 이 섬 아닌 섬에게 물돌이마을 또는 물돌이동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예쁜 이름을 안겼다.
 현재 국내에 널리 알려진 물돌이마을로는 예천 회룡포, 안동 하회마을, 영주 무섬마을, 무주 내도리, 밀양 삼문동이 있다. 신기하게도 밀양 삼문동을 제외하고는 각각의 이름에서 그곳이 물돌이마을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묻어난다.
 회룡포(回龍浦)는 용이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는 의미인 것 같고, 내 하(河 ), 돌 회(回) 자를 쓰는 하회(河回)는 글자 그대로 물돌이이고, 무섬마을의 무섬은 물섬에서 연유된 듯하며, 내도리(內島理)는 글자 그대로 내륙의 섬으로 풀이된다.

 #예천 회룡포

회룡대에서 본 회룡포와 '뽕뽕다리'라 불리는 200m 길이의 철다리. 구멍이 숭숭 뚫린 건축용 철판(일명 아르방)을 두 줄로 깔아놓은 이 다리는 비가 내리면 물속에 잠겨 현대판 외나무 잠수교로 불리기도 한다.


 회룡포는 봉화에서 서서히 강폭을 넓혀온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비룡산과 맞닥뜨리면서 태극무늬 모양으로 원을 그리며 350도 휘감아 돌아나가면서 만든 마을이다.
 회룡포를 우선 한눈에 보려면 신라 천년고찰 장안사에 주차한 후 전망대인 회룡대(해발 199m)에 올라야 한다. 신라가 삼국통일 후 국태민안을 염원하며 전국 세 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는데, 그 하나가 비룡산이며 나머지 둘은 금강산과 기장 불광산이다.
 회룡대에서 바라본 회룡포는 규모 면에선 안동 하회마을에 미치지 못하지만 물이 돌아나가는 정도나 풍광만은 한 수 위라는 것이 중론이다.
 회룡포의 원래 이름은 의성포. 의성포에서 회룡포로 개명한 사연은 이렇다.
 구한 말 예천의 아랫고을인 의성에 살던 경주 김씨들이 이곳으로 이주, 논밭을 개간하면서 자연스레 의성포라 불렸다. 하지만 이 의성포가 유명세를 타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의성군에 가서 물돌이마을을 찾는 웃지 못할 일이 잦아지자 예천군이 9년 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고즈넉한 강마을인 회룡포는 오래 전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인근의 경북선 철길과 함께 주인공인 은서와 준서의 어린 시절 고향으로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젊은 연인들의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박용성 문화관광해설사는 "지금도 드라마 '가을동화'에 나왔던 주인공의 거주지가 그대로 남아 있어 회룡대를 찾는 관광객들이 묻는다며, 그 집은 회룡대에서 가장 멀리 위치한 오렌지색 지붕의 2층집"이라고 말했다.
 회룡포에는 지금도 경주 김씨 집성촌으로 10가구 25명이 살고 있다. 회룡포의 면적은 대략 6만 평. 이 땅은 억겁의 세월 동안 강의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배수 잘 되고 보습력도 뛰어난 충적토라 흉년 한 번 든 적이 없는 천혜의 땅이라 주민 모두 고소득 농민이다.
 회룡대에서 20분 정도 능선을 따라 걸으면 삼한시대부터 격전지로 유명한 원상성에 닿는다. 이곳에선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물이 만나는 그 유명한 삼강(三江) 나룻터도 볼 수 있다.
 회룡포로 직접 들어가려면 이웃 개포면에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차를 이용하든지, 차로 2, 3분 걸리는 강변으로 이동해 '뽕뽕다리'라 불리는 200m 길이의 철다리를 건너야 한다. 구멍이 숭숭 뚫린 건축용 철판(일명 아르방)을 두 줄로 깔아놓은 이 다리는 큰 비가 내리면 물속에 잠겨 현대판 외나무 잠수교로 불리기도 한다.

 #안동 하회마을

마을 뒷산에서 본 하회마을. 강 건너 보이는 기암절벽이 하회마을의 전망대인 부용대다.


 낙동강이 태극 모양으로 돌아 흐르는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여 년간 거주해온 풍산 류씨 집성촌.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지리적 여건 덕분에 외침을 한 번도 겪지 않아 상류층 기와에서부터 초가토담집에 이르기까지 잘 보존돼 마을 자체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지난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문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또 매년 10월이면 열리는 문화관광부 선정 최우수 축제인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이 열릴 땐 특히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하외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보려면 마을과 마주보고 있는 강 건너편 부용대에 올라야 한다. 병풍처럼 우뚝 선 암벽인 해발 64m의 부용대는 화천서원 주차장에서 250m 정도 송림길을 산책하듯 걸으면 된다.
 이곳에 서면 낙동강 물줄기에 포근하게 감싸인 마을과 하얀 백사장, 그리고 류성룡 선생이 하회마을의 기를 보호하기 위고 북서풍을 타고 날아오는 모래를 막기 위해 1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는 만송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용대를 찾으면 놓쳐선 안 될 두 곳이 있다. 입구 화천서원 뒤 옥연정사와 부용대를 기준으로 반대편에 위치한 겸연정사가 바로 그것. 옥연정사는 류성룡 선생이 만년에 기거하면서 임진왜란 전란사인 징비록(국보 132호)을 저술한 곳이며 겸연정사는 류성룡 선생의 형인 류운룡 선생이 학문을 하던 곳이다. 겸연정사는 화천서원 바로 뒤에 위치해 있고, 옥연정사는 부용대에서 산길로 10여 분 걸으면 만난다.
 하회마을보존회는 지금보다 유량이 늘면 전통 나룻배를 띄워 만송정과 부용대 사이를 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주 무섬마을

마을 건너편 야산에서 본 수도리 무섬마을. 무섬마을은 다른 물돌이마을과 달리 마땅히 사진찍을 포인트가 없다.

 
 회룡포를 휘감아 도는 내성천이 이보다 상류 쪽인 영주 동남쪽 문수면 수도리에 일궈놓은 물돌이동이 무섬마을이다. 수도교를 건너 마을에 들어서면 유유히 흐르는 내성천 강물과 드넓은 금빛 백사장, 고색창연한 고가와 초가들이 조화를 이뤄 마치 어린시절 외갓집에 놀러온 듯한 정겨운 느낌이다. 초가에는 부엌의 연기를 빼내기 위해 까치구멍집이라는 경북 북부 산간벽촌의 가옥형태가 눈길을 끈다.
 하회마을처럼 풍수지리상 연화부수형으로 길지인 이곳에는 17세기 반남 박 씨들이 난을 피해 안동에서 영주로 피신을 오면서 정착했고, 그 뒤 선성 김 씨가 시집을 오면서 지금까지 두 성 씨의 집성촌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무섬마을은 수 년 전 전통마을로 지정돼 지금도 일부 보수 중이라 약간은 어수선하지만 찬찬히 둘러보면 옛 선비고을의 운치를 흠씬 느낄 수 있다.
 전체 45가구 중 100년 이상 된 고택만 16동인데 경북 중요민속자료인 해우당을 비롯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것만 9채나 된다. 수도교를 건너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해우당은 고종 때 의금부 도사를 지낸 김낙풍이 기거한 곳으로, 한때 대원군이 이곳에 머물기도 했다. 해우당(海愚堂)이라 적힌 편액은 대원군의 친필이다.
 문화재 자료인 김뢰진 가옥은 조지훈 시인의 처가로 그의 시 '별리'는 이곳과 무섬마을을 무대로 쓴 것이다.
 놓쳐선 안 될 명물이 하나 있다.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외나무 다리가 그것. 예부터 이 다리가 외지로 나가는 유일한 통행로였지만 지난 1980년 수도교가 놓인 이후부터 거의 방치되다 2년 전 마을주민과 출향인들이 성금을 모아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다리를 복원했다. 이를 계기로 매년 10월이면 외나무 다리 체험행사를 개최한다.

 #무주 내도리

내도리 전경(왼쪽)과 앞섬 및 뒷섬.

 금강의 대표적 물놀이 장소인 무주 내도리는 말 그대로 사방이 강물이 휘감긴 '내륙속의 섬'. 혹자들은 금강 천리길 수변구역 중 경관이 가장 빼어나다고 한다. 휘어지는 강의 자태도 뛰어난 데다 강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 또한 수려하다. 무엇보다 200여 m에 이르는 하천 폭에 담긴 수만 평의 하상초원은 그야말로 생태계의 보고이다.
 크게 보면 무주읍 대차리를 돌고 나온 금강 물줄기가 앞섬마을에 닿아 크게 휘감아 돈 후, 뒷섬마을을 지나 하류로 흘려가는 형국이다.
 내도리에는 다양한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어 천렵에 그저그만이다. 해서, 무주의 향토음식으로 어죽이 유명하다. 맑은 강물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국물을 내고 된장과 고추장, 수제비와 쌀을 넣어 푹 끓여낸 어죽은 부드러우면서도 구수한 맛으로 전국 미식가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내도리는 또 소설가 박범신의 문학적 토대이다. 스물셋의 젊음을 무주에서 교사로 보낸 박범신은 종종 무주 내도리를 자신의 문학적 자궁이라 말한다. 그만큼 내도리의 자연풍광과 생태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밀양 삼문동

밀양의 안산 종남산 정상에서 본 삼문동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밀양강에 둘러싸여 있는 삼문동 좌측에는 영남루를 위시한 밀양시가지가, 맨 뒤로는 영남알프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앞선 네 개의 마을과 달리 삼문동은 밀양강에 의해 침식을 많이 받아 진짜 섬이다. 이는 밀양의 안산인 종남산 정상에 오르면 오롯이 확인된다. 규모나 주변 산세와의 조화를 고려한다면 경북 북부의 물돌이마을보다 한 수 위다.
 하지만 현재의 삼문동에는 아파트촌이 들어서 고풍스러운 옛 맛이 남아있지 않다. 되레 삭막하다.
 흔히 장삼이사들이 품속의 보석의 진가를 잘 알지 못하듯 밀양시는 아직도 물돌이마을인 삼문동의 소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다.
 종남산에 서면 밀양강과 그 좌측으로 영남루 등 밀양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펼쳐지고 물돌이마을 뒤로는 저 멀리 가지 운문 천황 재약산 등 영남알프스 주요 산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한 폭의 한국화를 그려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풍광이 소위 밀양 10경에 왜 포함되지 않았는지 의아심이 들 정도이다.
 만일 이 삼문동을 회룡포나 하회마을처럼 개발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남겨두고, 이 풍광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종남산의 한 지점에 접근성이 빼어난 전망대를 조성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도심 속 섬마을로 유명세를 타면서 밀양을 넘어 전국의 볼거리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관광이라는 측면에서 백년대계를 세우지 못한 밀양고을 옛 원님들의 단견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영남알프스라는 천혜의 경관을 지닌 '산의 도시' 밀양시가 한번쯤 곱씹어야 할 대목인 듯 싶다.

글·사진 일부=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사진제공=예천군 안동시 영주시 무주군 밀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