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정신 못차린 경주의 관광정책
제주도지사가 지난 25일 해양수산국장을 전격 직위 해제했다. 해수욕장의 바가지 요금을 잡지 못한 책임을 물어서다. 이 같은 결정은 올해초부터 제주도가 강력 추진하고 있는 '고비용 제주관광 거품빼기' 정책에 저항하는 세력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이기도 했다.
약발이 통했던지 문제가 됐던 해수욕장 파라솔 임대 가격은 그 다음날부터 절반으로 떨어졌다. 이어 한 병 당 최고 3300원까지 받던 특급호텔의 생수도 객실당 1~2병씩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고 한다.
제주도는 그간 '바가지 천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지만 관광업계는 '썩어도 준치' 운운하며 그래도 '국내 관광 1번지'라고 버텼다. 그 베짱이 결국 관광객들의 발길을 일본이나 중국으로 돌리게 했고, 그 후유증이 지역 경제의 침체에 이은 위기로 되돌아왔다.
제주 관광업계에서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개혁에 나서야 제주를 국제적 관광지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뉴스를 접한 필자는순간 경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경주 또한 제주도와 비슷한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제주도와 달리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싼 입장료와 주차비, 관리인들의 고압적인 자세 그리고 맛없는 비싼 음식 등은 점차 관광객들의 뇌리에서 멀어져 가고 있음을 몸소 느꼈다.
대표적인 곳이 아이러니하게도 경주를 대표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불국사와 석굴암이다.
우선 비싼 입장료와 주차비. 둘 다 공히 성인 4000원, 청소년 3000원, 소인 2000원이며 주차료는 승용차의 경우 불국사는 3000원, 석굴암은 2000원이었다.
중고생 자녀를 둔 4인 가족이 만일 불국사와 석굴암을 모두 구경하려면 주차비를 포함해 불국사 1만7000원, 석굴암 1만6000원 합계 3만3000원이 나온다.
그렇다고 신용카드를 받아주나 현금영수증을 끊어주나, ;유리 지갑' 월급쟁이 관점에선 사실 총만 안 들었지 날강도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불국사는 그나마 경주시 및 사찰 소속 해설사가 있어 조금만 신경쓰몀 설명을 들을 수 있지만 석굴암은 이러한 서비스조차 없다.
불국사 입구에서 만난 한 관광객은 단체일 경우 입장료가 적지 않아 신용카드로 계산하고 싶었지만 직원들의 '아니면 말고' 식의 고압적인 자세에 분통을 터뜨렸다.
사실 이런 불만은 오래 전부터 불거져 나왔다. 불국사 입구의 한 상인조차도 석굴암과 불국사의 입장료는 둘 중 한 곳에 입장하면 다른 한 곳은 1000원만 내게 한다든지 하는 묘수가 있을텐데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자만심 하나로 '비싸면 안 보면 되고' 하는 식으로 관광객들을 내쫓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정을 아는 지 경주시청에 문의를 해봤다. 담당 공무원은 비싼 입장료, 신용카드 사용 여부 등의 불만이 자주 민원으로 발생하지만 결국 두 곳은 조계종 관할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수수방관하면 안 되지 않느냐고 묻자 '관광객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달라', '입장료를 신용카드로 받아달라'는 내용의 협조 공문을 보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시다시피 조계종은 경주시로서는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물론 이 점의 일부는 인정한다. 그렇다고 공무원들이 거의 손을 놓다시피 하면 관광도시 경주로서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게 경주의 한계다. 변화의 바람을 기대할 수 없는 무풍지대인 곳이 바로 경주의 참 모습인 것이다.
한때 국내 최고의 관광지로, 신혼여행지로 각광받았던 신라 천년고도 경주. 첨성대 천마총 석가탑 다보탑 남산 등 발길 닿는 그 어느 곳도 문화재가 산재해 도시 자체가 노천박물관으로 국내 어느 도시와 견줘도 관광 컨텐츠만큼은 최고인 경주가 이렇게 고인 물 수준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옛 영화를 찾을려는 의지조차 없다는 점이다.
누가 뭐래도 경주의 관광 1번지는 불국사와 석굴암이다. 여기서 좋지 못한 인상을 받으면 그날 경주 관광은 '말짱 도루묵'이 된다는 사실은 불보듯 뻔한 사실 아니겠는가. 삼척동자다 다 아는 사실인데 왜 불국사와 석굴암의 조계종과 경주시는 이를 모르고 있단 말인가.
하루빨리 민관학 및 종교계가 머리를 맞대 제주도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전국의 관광객을 다시 불러 모으려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