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의 훈훈한 설 - "우리 가족 설 이렇게 보내요"
3대가 오순도순… 부모님과 일본여행… 외국인도 설문화 배워야죠
설이 코앞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설 기분이 나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하다. 신문이며 방송이며 할 것 없이 사상 최악의 불황에 구조조정 명예퇴직 실업난 등 전혀 반갑지 않은 단어가 도배를 하고 있는데 어찌 명절 분위기가 나겠는가.
705호 김 부장 아저씨도,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 대오에 들어갈 판인 305호 막내딸도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고, 늘 자상한 웃음을 보이던 자영업 하시는 윗집 아주머니도 요즘 표정이 영 신통치 않다. 이는 비단 그들만의 사연은 아닐 터. 그들은 단지 표본 추출된 우리네 서민들의 자화상일 뿐이다.
하지만 살림살이가 팍팍하고 고단하고 춥더라도 설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 아니겠는가. 지금 2500만 명이 마치 귀소본능을 지닌 연어 떼처럼 고향을 찾는 '민족의 대이동'이 재연된다. 매년 반복되는 현상이지만 그들은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는 홍역을 치르면서도 길게는 10시간 이상 걸리는 여정을 무던하게 버티며 애오라지 고향으로 향한다.
차 안에서 장삼이사들의 생각 또한 천태만상일 듯. 학수고대하던 취업이나 시험에 붙은 사람들이야 발걸음이 무척 가볍겠지만 대다수의 필부들은 그다지 밝은 표정은 아닐 듯 싶다. 혼기를 놓친 노처녀 노총각들은 여전히 부모님의 등쌀을 부담스러워 할 테고 아직까지 많은 우리네 며느리들은 벌써부터 설 음식준비 및 손님맞이가 머릿속을 맴돌아 마음이 편치 못하다. 대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뵙는다는 들뜬 기분에 자녀들은 차 안에서 내내 즐겁기만 하다.
시대가 바뀌고 설에 대한 인식이 유연해지면서 풍속도도 달라지고 있다. 설음식과 차례상을 주문하는 것은 이제 고전이 돼 버렸다. 호텔이나 유명 스키장 리조트에선 설날 아침 차례상을 제공하는 패키지 상품을 내놓았고 아예 설 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나는 가족들도 늘고 있다.
이번 설 연휴를 앞두고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다양한 가정들이 어떻게 설을 보내는지 한번 들여다봤다.
여전히 3대가 함께 거주하며 우리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충렬사 안락서원 김부갑 중경원장댁. 그들도 변하고 있었다. 며느리가 힘들다며 아들과 손자가 상을 차리는 것은 물론 설거지를 도맡아 한다. 그런 모습을 부모들은 당연시하고 있었다.
4대째 모태신앙으로 내려오는 개신교 집안 김경숙 씨네. 비록 종교 때문에 명절제사는 지내지 않지만 음식은 똑같이 한다. 2남4녀인 이 집은 이번 설날 아침 시집간 네 딸이 친정부모를 모시고 일본으로 온천여행을 떠난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잘 올리는 제사보다 살아계실 때 잘하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한국인 부인과 함께 사는 일본인 도미타 씨 가정도 찾아봤다. 설 연휴면 해외여행을 떠나는 여느 외국인 가정과 달리 그들은 한국 설음식을 직접 만들어볼 계획이다. 처음 입어본 한복도 너무 맘에 들어 이참에 장만할 거란다.
자, 이들 세 가족의 설날을 미리 들여다보자.
■ 충렬사 안락서원 김부갑 중경원장댁
"명절증후군이요? 우린 그런거 몰라요"
5대째 명장동 거주, 강릉김씨 종가-사촌 등 친척 20여 명 찾아와 시끌벅적
명절증후군은 유대감 결여에서 나와-아들 손자 등 남자들이 설거지 등 도와
설을 쇠기 위해 키가 2m인 동국대 농구선수인 손자 김동량(맨 오른쪽)이 집을 찾아오자 가족들이 웃음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설 풍속도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가정도 있다. 바로 종손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종가이다.
예부터 양반고을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밀양 안동 등지에선 아직도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전통방식의 제사를 모시는 종가가 더러 있지만 도심에선 거의 찾기 어렵다. 이번 취재를 위해 그럴 가능성이 있을 법한 가정이 부산에 아직 있는지 동래향교 유림들에게 여쭤봤지만 찾기 어려웠다.
대신 3대가 함께 살며 제사를 모시는 가정을 소개받았다. 바로 충렬사 안락서원 김부갑(77) 중경원장 댁이다. 그는 부산시 지정 무형문화재 5호(대축) 기능 보유자이자 충렬사 전통 제향무형문화보존회 회장이다. 부산을 대표하는 유림의 어른인 셈.
강릉 김 씨 시조 연원세계 제39대 손인 김 원장은 현재 동래구 명장1동 주택에 외아들 부부와 손자 손녀 등 3대가 함께 살고 있는 소위 종손 집안이다.
과연 이 종가는 설을 어떻게 쇨까. "우리 집안은 5대째 이곳 명장동 주변에서 살고 있어요. 아직도 주변에 사촌 등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어 설 명절이나 기제사 때면 20여 명이 찾아 마루가 꽉 차서 시끌벅적하답니다. 손자들까지 포함하면 정말 정신이 없어요." 전통 제례의 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궁금했다. 그럼 차례 음식들은 어떻게 준비하는지. 옆에 있던 부인 정영수(77) 씨가 한마디 거든다. 그 또한 동래향교 여성유도회 회장을 역임한 후 지금은 고문으로 있다. "설 제수용품은 제가 시간 나는 대로 재래시장을 찾아 하나씩 장만하지요. 차례 음식은 수년 전부터 제가 건강이 좋지 않아 거의 며느리가 다해요. 수고가 너무 많아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며느리 최영순(48) 씨는 손사래를 친다. "저희 친정도 종가여서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어요. 음식은 모두 시어머니가 친정엄마처럼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지요. 매년 반복되는 일인 데다 남편과 아이들이 잘 도와줘 전혀 힘들지 않아요. 무엇보다 요즘은 조리기구들이 편리하잖아요."
항간에 들리는 며느리들의 '명절 증후군'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육체적 고통보다 저는 오히려 인간적인 유대감의 결여에서 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더 드는데요. 오랜만에 만나는 친적들을 보면 반갑지 않나요." 이 말이 대견한 듯 시부모는 딸이 부럽지 않은 며느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게 옛날 방식대로만 있지 않았다. 종가도 변화하고 있었다. '남자가 어디 부모 있는 데서 설거지를…'이라는 고리타분한 생각은 발붙일 데가 없었다. 며느리에 대한 배려인 듯 제사 후 설거지 등 뒷정리는 아들과 손자가 도맡아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밤 12시에 지내던 기제사도 10시30분으로 앞당기고,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한번에 몰아서 올린단다.
시어머니 정영수 씨는 "사실 일이야 많지 않습니까. 저도 해봐서 알잖아요. 시대가 변하고 있지만 내색않고 묵묵히 해주는 며느리가 없으면 지금까지 지켜온 전통은 사라지잖아요."
정 씨는 한마디만 더 하자고 했다. 부산 농구의 명문 동아고를 졸업하고 지금은 서울 동국대 농구부에 있는 손자 김동량 자랑이었다. 키가 무려 2m라고 했다. 알고 보니 한국 농구를 이끌 차세대 기대주였다. 들어올 땐 몰랐는데 나올 때 이 종가의 모두가 장신이었다.
■ 김경숙 씨 네 자매와 친정 부모
"훌륭한 제사보다 살아계실때 잘해야죠"
4대째 모태신앙 개신교 집안 네 자매, 친정부모와 첫 해외여행 위해 돈 모아
친척들 목회자만 5명 거의 당회 수준, 제수음식·절만 안할 뿐 다른 집과 비슷
시집간 네 자매와 부산을 찾은 친정부모님이 한복을 곱게 입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시집간 네 자매가 설날 아침 고향인 경남 통영 한산도에 계신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일본으로 2박3일 일정의 온천 여행을 떠나는 가족이 있다.
4대째 모태신앙으로 내려오는 개신교 집안의 네 자매는 김은순(54) 경숙(51) 임숙(48) 인숙(40) 씨. 원래 2남6녀로 오빠 상문(57), 다섯째 상덕(46) 씨가 있지만 이번 설에는 출가한 자매만의 행사로 치르기로 했다.
네 자매는 10여 년 전부터 십시일반으로 매월 돈을 모았다. 집안 대소사 때 남자 형제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그중 일부는 자녀 교육을 위해 1970년대 부산으로 이주한 친정 부모들이 8년 전 늘그막에 고향 한산도로 귀향할 때 살림살이 비용으로 쓰였다.
이후 네 자매는 평생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다 보니 그 흔한 해외여행조차 못해 본 부모님을 위해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계획했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아버지 김기정(84) 씨는 장로, 어머니 박다순(81) 씨는 권사를 역임했다. 하지만 최근 건강이 악화돼 장거리 여행이 불가능해 일본 온천여행으로 바꿨다. 공교롭게도 이들 네 자매의 시댁 어른들은 돌아가셨거나, 여건이 허락돼 여행을 떠나는 데는 아무 장벽이 없다.
흔히들 개신교인들은 명절 때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네 자매는 단지 차례상을 차리고 절만 하지 않을 뿐 떡이나 전 등 명절음식은 똑같이 한다고 한다. 차례 음식이라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아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 등을 되레 더 많이 한다.
김기정 씨 가족은 알고 보니 통영에서 가장 먼저 개신교를 받아들인 가정이었다. 기정 씨의 선친, 다시 말해 경숙 씨 자매의 할아버지가 100여 년 전 선교를 위해 한산도를 찾은 호주 선교사가 마을사람들에게 박대받는 것을 보고 애처러워 식사라도 대접하기 위해 집으로 모셨다. 그것이 인연이 돼 하나님을 믿게 된 것. 이후 마당 한 쪽에 조그만 교회가 세워지고 마을주민들은 경숙 씨의 집을 '예배당집'이라고 불렀다.
설날 온 가족이 모이면 경숙 씨네는 예배문을 드리고 찬송과 기도를 올린다. 돌아가신 분의 유언을 떠올리고 후손들이 부끄럽지 않은 알찬 삶을 영위하도록 맹세를 한다. 그리곤 고스톱도 치고, 노래방도 가는 등 여느 가족과 큰 차이가 없다.
경숙 씨 가족 구성원은 모두 교회에서 직무를 맡고 있다. 큰언니인 은순 씨는 권사, 둘째 경숙 넷째 인숙 씨는 집사, 셋째인 마산 사는 임숙 씨는 부군이 목사로 사모를 맡고 있다. 사위 등 일가 친척들까지 포함하면 목회자만 5명이다. 모두 모이면 웬만한 교회의 당회 수준이다.
이번 설을 앞두고 경숙 씨 등 네 자매와 남자형제들은 미리 성묘를 다녀와 장남인 오빠 상문 씨 댁에 모여 설을 며칠 앞당겨 미리 예배를 드린다. 큰언니인 은순 씨는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위해 당신들의 삶을 희생해가며 반듯하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진작 이런 자리를 마련해 드렸어야 했는데 여든이 넘은 지금에서야 하게 돼 정말 몸들 바를 모르겠다"며 "앞으로도 부모님의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자주 이런 행사를 가질 계획"이라며 활짝 웃었다.
친정 부모님과 함께하는 이번 설은 은순 경숙 임숙 인숙 네 자매에게는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듯하다.
■ 일본인 도미타 씨 가족의 설날
"일본인 남편도 한국 설문화 배워야죠"
2003년 항만IT회사 설립 부산 정착, 1929~45년 선친 군산서 교육자 역임 인연
"올핸 한국 차례음식 만들 계획", 취재위해 협찬받은 한복에 매료, 구입 예정
한국인 부인과 함께 사는 일본인 도미타 씨 가족이 부산여자대학 다촌관 마당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복협찬=김현숙 한복연구소 '홍단'.
일본인 도미타 씨 가족이 부산여대 다촌관에서 운치있는 자수장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가오는 이번 설에는 온 가족이 모여 한국인들의 설날 음식인 산적과 전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사실 설이라 해서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시장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을 사서 먹었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남편, 아이들과 함께 시장에 가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들어 볼 거예요."
일본인 도미타 히라쿠(56) 씨네는 부산에 사는 다문화 가정이다. 부인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부인 구명희(46) 씨는 남편과 아들 도미타 데이빗(21·부산외대 컴퓨터공학과), 늦둥이 도미타 다니엘(10)을 두고 있다.
경북 대구가 고향인 부인은 일본으로 유학 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짖궂게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자 남편이 일본어 어학원 선생님의 친구였단다.
알고 보니 도미타 씨 가족은 한국과의 인연이 꽤 깊었다. 선친인 도미타 도시미츠 씨가 1929년부터 해방이 되던 1945년까지 16년간 군산에서 교장선생님과 교육감을 역임했다.
해서, 8남매(4남4녀) 중 막내인 그와 바로 위의 형만 고향인 규슈 구마모토에서 태어났고 나머지 형과 누나는 모두 전라도립병원에서 출생했다.
도미타 씨가 떠올리는 돌아가신 부모님과의 추억 한 대목.
"어렸을 때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울 땐 선친께선 항상 교육열이 높은 한국인들을 예로 드셨죠. 낮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일을 해야만 하는 한국 아이들은 밤이면 저희 집을 찾아 선친께 공부를 배웠어요. 한국인 부모들은 그들이 농사 지은 무 배추 감 등 농산물을 학비 대신 갖고 왔어요. 선친께선 그 농산물은 그들이 안 먹고 갖고온 것이라 절대 받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한국에서 배운 김장을 구마모토에서도 직접 담가 구마모토에 김장 문화 전도사 역할을 했어요. 해서 일본에서도 김치를 먹었지요."
이런 한국과의 인연으로 대학 졸업 후 도미타 씨는 옛 조양상선 일본지사에 취업, 17년간 근무한 후 지난 1994년 항만물류 및 선박자동화시스템 회사인 (주)토탈소프트뱅크로 스카우트됐다. 영어, 선박회사 근무 경력, 컴퓨터라는 3박자를 갖춘 덕분이었다. 부산과의 첫 인연이 시작된 셈이다. 여기서 도미타 씨는 이집트 두바이 말레이시아 등의 업무를 전담하며 9년간 근무하다 2003년 항만IT 외국인투자회사인 (주)IPS를 설립해 줄곧 부산서 생활하고 있다.
"예전엔 명절 때 주로 남편의 고향인 구마모토에 다녀왔어요. 하지만 최근 들어 생각이 좀 바뀌었죠. 한국에 살면서 한국을 잘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남편 생각도 마찬가지였어요."
도미타 씨네는 올 설 연휴땐 한국 차례 음식을 해먹고, 아이들 외가가 있는 경북 의성을 찾을 생각이다. 도중 신라 천년고도 경주도 들를 계획이다. 명절 때 교통 체증이야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크게 두려울 게 없단다.
6년 전부터 국제신문 애독자인 도미타 씨네는 사실 취재 때 처음으로 한복을 입어본다고 했다. 한복은 취재용으로 협찬받았다.
자녀들은 물론 도미타 씨도, 부인 구명희 씨도 "한복이 이렇게 예쁘고 좋은 줄 몰랐다"며 "가족들 모두 한복을 구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설이 유난히 의미있게 다가오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