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물

함양 거주 두 외국인 이주여성의 따뜻한 가족사랑 이야기(2)

곤이 2009. 5. 7. 23:27

■ 임신 3개월의 필리핀 데시에엠 베티 "좋은 며느리 아내 엄마 될래요"

주변 우려 불구 한식조리기능사 시험 당당히 합격
이론 및 실기 선생님과 남편 외조 덕분이라며 겸손
"이번엔 반드시 아늘 낳아야" 한국인 거의 다 돼
"직업도 갖고 싶고 온 가족과 함께 여행도 가고파"

현재 임신 3개월인 베티네 가족이 모처럼 집 근처 함양 상림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함양군 요리강좌에서 동료 수강생 아주머니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베티(가운데).

마냥 신이 난 막내 노미(4).

요리하는 베티.

 

베티(오른쪽)와 미요코.
오른쪽부터 베티, 박경숙 실기 선생님, 미요코.

 데시에엠 베티(32)의 첫인상은 사랑스럽다. 쌍꺼풀진 왕방울만 한 눈, 수줍은 듯하면서도 늘 떠나지 않는 미소. 그녀와 단 5분만 대화하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갖게 된다. 필리핀 민다나오섬 출신인 베티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 아래 9남매 중 맏이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도 고등학교까지 마친 그는 낮에는 조그만 마트에서 일하고 밤이면 여덟 동생을 돌봐야 하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

 한국과는 6년 전인 지난 2003년 인연을 맺었다. 신랑은 먼저 한국으로 시집간 같은 마을의 아는 언니 남편의 소개로 만났다.
 "사진을 봤는데 첫 인상이 좋았어요. 만나보니 괜찮았어요. 가족들과 헤어지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제가 잘 돼 고향의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결심을 굳혔어요."

 전문대를 나온 남편과의 의사소통은 영어와 보디랭귀지였고 이마저 막히면 사전에 의지했다. 요리는 남편에게서 배웠다. 거창서 농사를 짓는 시부모님은 한 달에 두 번 찾아뵙지만 외국서 온 며느리가 뭘 하겠냐며 직접 요리를 다해 배울 기회가 없었다.

 낯선 땅 한국에서의 삶도 버겁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타일 기술자인 남편을 따라다니며 일을 도왔다. 힘들었다. 하지만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나아 계속 따라다녔다. 임신이 되면서 일은 그만 뒀다. 약간 무료했지만 조국 필리핀에서 온 여성들과의 모임에 나가면서 차츰 한국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시민연대'라는 단체에서 주최하는 한글공부방에도 나갔다. 당시엔 한글공부보다 필리핀 등 외국인 결혼이민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좀체 빠지지 않았다. 염불보단 잿밥이었다.

 한국 국적은 뒤늦게 취득했다. 결혼 후 2년이 지나면 취득 가능했지만 베티는 스스로 연기했다. 필리핀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베티는 딸 노미(4)를 낳고 비로소 한국인이 됐다.

 이후 베티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 계기가 찾아왔다. 집 근처 성민보육원에서 외국인 이주여성들을 위한 한국어 및 한국요리 강좌에 우연히 나가면서부터였다. 보육원에서 이주여성을 담당하는 이휘숙 씨가 베티의 밝은 성격과 총명함을 알아보고 군에서 실시하는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반을 권했던 것.

 "처음엔 제가 어떻게 그런 시험을 칠 수 있을까 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곧 생각을 바꿨어요. 한국요리를 많이 배워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시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맛있는 요리를 대접할 수 있으면 좋지 않겠어요." 수업료 14만 원은 성민보육원에서 제공했다. 일반 요리학원의 경우 수업료(이론 실기 포함)는 대개 100만 원 안팎이다.

 올 1월부터 베티는 한식조리기능사 시험 수험생으로 변신했다. 하지만 너무 어려웠다. 한글도 서툰 상태에서 시작한 이론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만무했다. 포기하려고 했지만 이론 선생님인 이현지(창원전문대 외래교수) 씨가 큰 도움을 줬다.

 "생각해 보세요. 식품학 영양학 조리원리 등 준비해야 할 과목만 5개예요. 일반인들이 한두 달 공부해도 벅찬데 베티가 제대로 따라올 수 없는 것은 당연했지요. 여기에 군에서 배당된 이론 수업은 2시간씩 10번밖에 없었어요."

 이 교수는 시쳇말로 쪽집게식 문제풀이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다. 베티의 경우 수업을 마친 후 별도로 과외를 하다시피 했다. 워낙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해 이 교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시험이 임박했을 땐 최후의 수단으로 기출문제를 통째로 외우도록 했다.

 남편의 도움도 컸다. 어려운 단어가 나올 땐 일일히 도와줬고 집안일과 아기 보는 일도 거의 도맡아 했다. 이와 관련, 남편 임영노(39) 씨는 "뭐든 스스로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어서 제가 특별히 한 것은 없다"며 부인을 치켜세웠다.

 부산에서 본 첫 시험에선 합격선인 60점에서 7점이 모라자 쓴 잔을 마셨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 교수도 첫 결과를 보고 자신감을 가졌다. 보름 뒤 창원에서 본 두 번째 시험에선 당당히 합격했다. 이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의 '기적'이었다.

 이젠 실기 차례. 예시된 51가지의 한식요리 중 2가지를 주어진 시간 안에 완성해야 되는 시험이다. 역시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일정상 하루에 두 가지 이상을 소화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실기 강사 박경숙(뉴영남요리직업전문학교 원장) 씨는 베티를 이렇게 떠올렸다. "항상 '선생님 못 알아듣겠어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어요. 그래서 가까운 자리에 두고 특별지도를 했지요. 임신 중이라 오래 서 있지도 못하고, 아기도 가끔씩 데리고 와 요리하느라 아기보느라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최악의 조건이었지요. 동료들이 번갈아 도와주지 않았으면 아마 중도에 포기했을 거예요."

 실습 시험의 과제는 돼지갈비찜과 무쑥장아찌. 양념순서 요리과정 맛 색깔 위생 등 감독관이 까다롭게 채점을 했지만 베티는 덜컥 그것도 한 번만에 합격했다. 두 번이나 '기적'이 찾아온 것이었다.

 지난해 베티는 가정에 식구가 한명 더 늘었다. 그간 할머니집에 살던 전 부인의 딸 연정(12)이가 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말도 잘 듣고 동생 희정(6)이와 노미(4)를 잘 돌봐줘 무척 고맙다고 했다.

 베티는 이번 어버이날 즈음 해서 거창에 계신 시부모님을 찾아 한국요리를 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좋은 며느리,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돼 따뜻한 가정을 꾸미고 싶어요. 직업도 갖고 싶어요. 그리고 항상 바쁜 남편과도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도 가보고 싶어요."

 그리곤 약간 나온 배를 만지며 "이번엔 아들을 낳아야 할 텐데"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문득 한국인이 다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티가 만든 잡채

베티가 만든 잡채(오른쪽)와 미요코가 만든 쇠고기 불고기.

 궁금했다. 사실 요리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래서 즉석에서 요리를 부탁했다.
잡채였다. "필리핀도 한국의 잡채와 비슷한 요리가 있어요."
 차이점은 우리가 흔히 쇠고기를 사용하는 데 반해 필리핀은 돼지고기와 양배추를 많이 넣는 것이 특징이다. 오이나 당근을 채 써는 솜씨나 당면을 삶고 찬물에 헹궈 양념해서 볶는 솜씨가 너무나 자연스럽다. 맛은 우리나라 잡채와 큰 차이가 없다. 양배추가 많이 들어가 오히려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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