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물

향긋 쪽파, 쫄깃 해물, 동동주를 부르는 동래파전

곤이 2010. 5. 17. 18:57

부산의 맛 - 동래파전

싱싱한 파·해산물 주재료…농·어업 동시에 가능한 부산 지리적 특성이 낳아
유래 밝힌 문헌 없어…조선시대 고관 술안주에서 장터 등 서민 음식된 듯
부산 동래구청 주자창 인근 '동래할매파전'집 4대째 70여 년 전통 이어
봉사단체 동래파전연구회…표준화된 조리법 연구 등 관광자원·브랜드화 앞장

4대째 7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온 부산 동래구청 인근 '동래할매파전'.
 
"이 전의 이름이 뭐죠. 밀가루로 얇게 부쳐내는 일반 파전과는 달리 파가 엄청 많이 들어 있어 두툼하고 푸짐하네요. 간장이 아니라 독특하게 초장 소스를 찍어 먹네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게 계란 등이 약간 더 바삭하게 구워지면 더 좋을 듯 하네요."-충북 충주시 거주 이경진(여·87)

"대개 전 종류는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지만 동래파전은 막걸리 등 우리나라 전통주와 궁합이 잘 맞아 남자들도 아주 선호할 것 같은데요."-경남 창원시 거주 최정석(57)

"굴 홍합 새우 등 싱싱한 해물과 야채가 들어가는 동래파전은 영양가가 풍부하고 양도 푸짐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인천 거주 김선미(여·58)

동래파전의 상품화 마케팅 이젠 절실   
 
 지난해 12월 말 부산시와 부산시관광협회가 남해안 관광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전국의 3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남해안 크루즈 선상 팸 투어에서 부산의 대표 향토 음식인 동래파전을 시식한 후 나온 다른 지역 참가자들의 반응이다.

당시 동행했던 동래구청 문화공보과 김선희 씨와 부산시청 관광진흥과 김귀옥 씨는 "동래파전이 부산의 대표 음식이긴 하지만 전국적인 지명도가 약해 신통찮은 반응이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예상 외로 좋은 반응이 쏟아져 관광상품으로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역시 크루즈 팸 투어에 함께 참석한 부산발전연구원 우석봉 박사는 "흔히 관광의 3대 요소라 불리는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만으로 볼 때 부산은 먹을거리 부문에서 가장 취약해 하루빨리 시 차원에서 부산의 대표 먹을거리를 선정해 국내외를 대상으로 홍보마케팅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남해안 관광 활성화 방안을 위한 부산·경남·전남 등 3개 시·도 공동 용역을 맡고 있는 우 박사는 경남 전남 지역의 연구원들과의 정기적인 만남에서 부산의 먹을거리의 빈약함을 이렇게 토로했다.

"전남도의 경우 기본적으로 시·군을 대표하는 음식이 너무 많아 어떤 음식을 대표 음식으로 선정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으며, 경남도는 지난해 난중일기 등 옛 문헌을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 작업을 거쳐 '이순신 밥상'을 복원해 관광상품으로 대히트를 치고 있어요. 하지만 부산은 동래파전이라는 괜찮은 콘텐츠가 있어도 이를 응용해 상품화하는 전략조차 아직 없어요."

향토성을 가장 잘 간직한 음식

파가 주재료인 동래파전은 부산의 음식 중 가장 지역성과 향토성을 잘 간직한 음식이다. 이는 재료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파 미나리 대합 홍합 굴 새우 쇠고기 계란 멥쌀 및 찹쌀가루 등과 맛국물을 내는 재료인 멸치 다시마 띠포리 등은 하나같이 부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결국 동래파전은 어업과 농업이 동시에 가능했던 부산지역의 지리적 특성이 낳은 자연발생적인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동래파전은 언제부터 먹어온 음식일까. 아쉽게도 이에 대한 대답을 흔쾌히 해주는 문헌도 없을 뿐아니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도 거의 없다. 동래파전의 유래가 일부 알려져 있는 이유는 구전이나 당시의 시대적 정황으로 추측했을 뿐이다.

원로 소설가 최해군 선생은 "동래가 조선시대 도호부 때 대일 외교와 군사상의 요지로 조정 고관들의 왕래가 잦아 그들을 접대하기 위한 술자리에서 안주로 나오던 파전이 점차 발달해 지금의 동래파전으로 정착된 것이 아닐까 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고관들의 술자리에 동석했던 동래 관기들이 나이가 들어 은퇴하면서 점차 여염집에서도 동래파전이 재현되고, 이것이 다시 널리 퍼져 동래장터에서 서민들의 음식으로 변모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못했던 시대를 거치면서 동래파전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동래 기생들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동래할매파전'이 동래파전의 원조
   
부산에서 동래파전을 설명하기 위해선 동래구청 앞에 위치한 '동래할매파전'을 빼놓을 수 없다. 380년 된 아름드리 팽나무가 바로 옆에 기품있게 서 있는 이 집은 김정희(47) 대표의 시증조할머니가 동래파전집을 연 1930년대 이후 시할머니(1986년 타계), 시어머니(1995년 타계)를 거쳐 지금까지 4대째 70여 년간 전통 방식으로 고스란히 대물림해오고 있다. 김 대표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1970대 초까지 '제일식당'이란 상호를 사용하다 이후 지금의 '동래할매파전'으로 바뀐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부산의 민속음식점 1호점답게 인테리어가 고풍스럽다. 한지를 바른 여닫이 문에 그릇 하나 수저 하나까지 세세한 신경을 써 정감이 간다. 맛은 어떨까. 물기가 없이 부치는 일반 파전과 달리 쌀가루(멥쌀 및 찹쌀)를 갈아서 사용해 찰진 맛을 우선 느낄 수 있다. 해산물의 시원한 맛과 파의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맛이 어울려 한마디로 '봄맛'이다. 조리 과정에서 두꺼운 파를 골고루 익히기 위해 뚜껑을 덮어놓은 덕분에 파의 향기까지 은은하게 배어난다. 노란 호박동동주와 분홍빛의 오미자동동주를 한 잔씩 걸치니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다.

식사 중 김 대표의 희망 섞인 한 마디가 귀에 꽂힌다. 최근 외국인과 젊은층이 많이 찾는 등 손님이 예전에 비해 약간 늘고 있다고 한다. 동래파전이 슬로푸드이며 웰빙 음식인 것을 뒤늦게 알았던 것일까. 하지만 이들은 전통 방식인 초장 대신 간장을 찍어 먹는다고 한다. 여기에 외국인은 한 입 크기로 잘라달라고 요구하고, 일본인은 4등분 정도로 미리 잘라 나왔으면 좋겠다고 주문한다.

1995년부터 '동래할매파전'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김 대표는 "전통은 전통대로 고수해야 겠지만 새로운 수요자들의 요구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고민이 많다"며 "앞으로 동래파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매년 열리는 '동래읍성축제' 때 봉사단체인 동래파전연구회가 동래파전을 재료값 정도로 판매하고 있다.
'동래파전연구회'는 동래읍성축제 때 동래파전 시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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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파전연구회를 아시나요   
 
2004년 11월 동래구청은 '동래파전연구회'라는 단체를 발족시켰다. 동래파전의 맛을 널리 알리기 위해 표준화된 조리법은 물론 역사적 유래와 영양학적 가치 등을 연구해 동래파전을 관광자원 및 브랜드화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일종의 자원봉사단체이다.

현재 회원은 30명. 대부분 사회봉사에 적극적인 전업 주부로 구성된 이 단체는 지금까지 매월 1~2회 동래문화회관에 모여 직접 재료를 구입해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동래파전을 연구한 끝에 2006년 나름대로 표준화된 조리법을 완성했다.

회원들은 이를 바탕으로 매년 개최되는 동래읍성역사축제와 대한민국 축제박람회 때 난전을 펼친다. 이들은 전국의 관광객들이 보는 앞에서 동래파전을 부쳐 재료비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도 하는 한편 관광객들이 직접 동래파전을 부쳐보도록 하는 등 동래파전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뿐만 아니라 관내 무의탁 노인들에게 식사 대신 동래파전을 직접 부쳐 대접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절미 김치 청양초를 곁들인 퓨전 동래파전을 개발해 널리 알리고 있다. 이런 연유로 회원들 중 김정숙 씨가 동래구청 인근에 '초암'이라는 동래파전집을 열어 전통 동래파전과 함께 퓨전 동래파전을 판매하고 있다.

동래파전연구회 회장인 동부산대학 김소미 호텔외식조리과 교수는 "앞으로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동래파전을 연구해 브랜드화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로 소설가 최해군 선생과 동래파전

- "동래고보 입학식땐 학교 앞에 아낙네 모여 솥뚜껑으로 파전 지져대"
   
취재 당일 '동래할매파전'집에 원로 소설가이자 '부산 역사 지킴이'로 불리는 최해군(85·아래 사진 오른쪽, 왼쪽은 '동래할매파전' 김정희 대표) 선생이 동행했다. 누구보다도 동래파전과 관련된 일화를 많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펴낸 회고록 '문단 이야기'(해성)에서도 그는 동래파전 이야기로 일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오래전부터 동래 일대에는 파전이 널리 지져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동래고의 전신인 동래고등보통학교 입학식 때는 학교 앞에 솥뚜껑을 거꾸로 해서 파전을 붙이는 아낙네들이 난전을 펼쳐 입학식에 오는 손님은 파전 한 넙떼기와 막걸리 한사발이면 점심 없이 배부름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동래고보의 입학식은 4월 1일. 이 즈음이면 동래파전의 주재료인 조선파의 맵싸한 맛이 오르고 미나리꽝에도 새순이 돋아 근처 바다에서 나온 싱싱한 홍합 굴 등과 알맞게 버무려 지지면 1년 중 최고의 맛을 보였다고 한다. 최 선생이 동래고 교사로 재직하던 1960년대 후반기의 회식 땐 주로 파전집으로 갔다. 당시 파전집으로 유명한 곳은 '용각' '수정집' '이화장'과 일명 '할매집'으로 불리던 '제일식당'.

최 선생은 "당시 '제일식당'의 할매는 추강(秋江) 여사로 불리는 60대였는데 깔끔하면서도 교양이 있어 문인들과 교수 등 지식인층이 단골로 자주 찾았다. 그 추강 여사가 지금의 '동래할매파전' 김정희 대표의 시할머니"라고 말했다. '동래할매파전' 집이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식당임을 최 선생이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그때 단골들의 면면을 보면 전 국회의장 곽상훈, 전 부산교육대학장 김하득, 수필가 박문화 , 향파 이주홍, 전 부산대 교수 박지홍, 전 부산교육대학 교수 이주호 씨 등이었다. 특히 추강 여사는 향파 선생과 죽이 맞아 향파 선생이 오면 '아이고 향파 선생님'하고 온후한 기품으로 환대를 했다. 이어 동래파전과 막걸리를 상으로 차린 뒤 나머지 일은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자리를 함께했다. 그 자리에서는 향파의 해학과 추강의 응수가 어우러져 밤새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최 선생은 '동래할매파전'집에서 추강 여사의 손자며느리인 김정희 대표가 만든 동래파전을 맛보면서 당시의 맛과 약간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월의 더께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어 입맛이 변했는지 하여튼 당시 추강 여사의 파전은 산뜻한 맛이었다"며 잠시 40여 년 전으로 기억을 되돌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