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물

'꽃보다 포즈'-야생화꾼들의 다양한 포즈 감상하세요-'꽃과 사람'(2)

곤이 2010. 5. 10. 09:03

- '꽃과 사람' 8명 완연한 봄 맞아 경주 토함산으로 번개출사
- 대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아름다운 자태 렌즈에 담아

- 노란 꽃다지와 첫인사 후 멸종위기 노랑무늬붓꽃 감상
- 각개전투하듯 다양한 자세로 자기만의 촬영모드 돌입

- 야생화 특성·꽃말 등 꿰뚫어 회원 모두 움직이는 식물도감
- 영남알프스·무룡산·노자산 등 부울경 대표적 출사지도 섭렵













번개 출사지는 경주 토함산(745m)이었다. 일반적으로 불국사와 석굴암을 품고 있고 하늘에 제를 지내던 신라 5대 영산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토함산은 산꾼들에게는 단석산 남산과 함께 경주의 3대 명산이자 동해바다를 굽어보는 해맞이 명소로 인식돼 있다.

반면 야생화 마니아들에게 토함산은 산나물과 함께 야생화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오랜 친구와도 같은 푸근한 육산으로 사랑받고 있다. 같은 산이라도 이처럼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종족 보존 위해 더욱 많이 핀 야생화
 
부산 근교의 대표적 야생화 출사지로는 정자항을 품은 울산 무룡산, 양산 천성산 상리천, 고성 문수산 늘앗골, 거제 노자산과 영남알프스 가지산 신불산 등이 있다. 이 중 왜 토함산이냐고 물었더니 "지금 이 시기에 가장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가 도처에 고개를 내밀고 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완연한 봄이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떠오를 정도로 봄바람 속에 새치름함이 남아있었다. 자연스럽게 날씨와 야생화의 관계가 화두로 먼저 떠올랐다.

'꽃과 사람' 김병권 회장은 "올해는 날씨 덕분에 되레 일부 야생화는 더 많이 피었다"고 운을 뗐다. 약간 귀를 의심했다. 분명 올해는 이상 저온과 잦은 강수에 따른 일조량 부족 등으로 농작물 피해가 발생하고 있어 야생화 또한 예외가 아닐텐데.

김 회장은 오래전 김영삼 정부 집권 첫해를 회상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엔 이른 봄부터 7월까지 가물었어요. 야생화 마니아들은 아마도 거의 꽃이 피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신불산에 올랐는데 예년과 달리 키 작은 철쭉이 신불산 평원을 가득 메우고 있지 않겠어요. 그것도 아주 화려하게. 생명의 위협을 느낀 철쭉이 종족 보존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 꽃을 피운 거지요. 죽기 전 소나무가 가지마다 솔방울을 가득 달리게 하는 것과 같은 원리지요."

올해 야생화도 당시와 유사한 상황에 직면했다. 그는 "올봄의 경우 이상 저온 등으로 야생화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각시붓꽃이나 반디지치 같은 일부 야생화는 급증했다"고 말했다. 통상 야생화는 한 해 걸러 많이 피고 적게 피고를 반복하는 해걸이를 한다. 지난해 많이 핀 각시붓꽃이 상대적으로 적어야 하지만 역시 종족 보존을 위해 많이 핀 것이라고 한다. 비록 예년에 비해 일주일 정도 늦게 만개했지만, 덕분에 마니아들은 신이 났다. 손톱만 한 크기의 조그만 야생화가 지구 이상 기온의 중요한 지표가 될 줄이야. 야생화 보존. 더 나아가 생물종 다양성 보존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경주 토함산은 야생화의 보고  
 
이날 번개 출사에 나선 회원은 8명. 여자 셋, 남자 다섯. 얼핏 적은 듯하지만 야생화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인터넷 동호회가 늘 그렇듯 그들은 남녀노소 관계없이 '님' 자를 붙여가며 닉네임을 사용했다. 근교인 범의귀 큰바우 천지 지음 그림자 해피맘 그리고 모만호가 그들. 맨 후자는 닉네임 같지만 본명이다. 그는 동래원예고 교사다. 오래전 가입했지만 출사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전문가 수준의 회원들이 잘 모르는 야생화를 해박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선생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금 토함산의 모습은 파스텔톤으로 분칠한 화사한 신부 같다. 수종에 따라 연두색 잎이 농담을 달리하며 푸름을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연중 이때의 신록이 가장 예쁘다. 그 모습에 반해 한동안 멍하니 서 있자 야생화꾼들이 한마디 던진다. "이 기자, 오늘은 허리를 숙여야 큰 성과가 있다구."

그랬다. 수줍은 듯 고개를 내민 야생화와 눈을 맞추기 위해서는 허리를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다가서야 비로소 야생화는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나눠주기 때문이다.

이날 찾은 토함산 시부걸 코스는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2월 말이면 변산바람꽃을 비롯 복수초 가지복수초 노루귀(청색 분홍색 흰색) 올괴불나무 등을 볼 수 있는 데다 특히 이 시기에는 노랑무늬붓꽃 애기송이풀 등 멸종위기 및 희귀식물이 적지 않아 봄 야생화 순례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 또한 부드러워 야생화 산행지로 금상첨화다.

노란 꽃다지가 봄바람에 하늘거리며 첫인사를 한다. 농부의 눈에는 한낱 잡초에 불과하지만 군락을 이룬 자태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산괴불주머니도 지천이다. 오랑캐꽃이라고도 불리는 제비꽃도 반갑게 인사한다. 흔히 보리고개 때인 4월 북방 오랑캐가 쳐들어올 때 한참 펴 오랑캐꽃이라 명명됐다 전해오지만 모 선생이 꽃을 따 보여주며 꽃잎 뒤의 꿀주머니가 오랑캐의 뒤통수를 닮아 오랑캐꽃이라고 설명했다. 하찮아 보이는 풀꽃 하나에도 생김새에 따라 그럴듯한 전설이 숨어 있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노랑무늬붓꽃 앞에서 모 선생의 설명이 이어진다. "우리나라 식물은 크게 환경부의 멸종 위기 식물 1급(8종) 2급(56종), 산림청의 희귀식물(217종) 후보종(44종)으로 지정돼 있어요. 노랑무늬붓꽃은 멸종 위기 2급에 해당되지요."

산중 회의도 잠시 열렸다. 회원 '지음' 씨가 늘 보는 모습과 약간 달라 어떤 천남성인지 화두를 던졌기 때문이었다. 장희빈의 사약 원료로 알려진 천남성은 쉬운 것 같지만 종류가 많아 의외로 어렵다고 한다. 다음 날 '지음' 씨는 홈페이지에 문제의 사진을 올리면서 둥근잎천남성(아래 사진)이라고 못을 박았다. 잠시 농담 하나. 여성들은 가급적 천남성을 홈페이지에 올리지 말지어다. 발음이 '첫남성'이라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란다.

회원 '범의귀'는 비록 꽃은 피지 않았지만 가늘게 자란 잎만 보고 애기나리라고 했다. '야생화 하는' 사람들은 꽃이 피기 전과 지고 난 후의 잎을 봐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각개전투하던 회원들이 모처럼 한곳으로 모여든다.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 애기송이풀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기 때문. 중부 이남에서는 보기 힘든 '귀하신 몸'이라 다들 배낭을 내려놓고 본격 촬영 모드에 들어갔다. 새를 닮은 진분홍빛 꽃도 앙증맞지만 애기송이풀을 완벽하게 담으려는 회원들의 다양한 자세가 가관이다. 앉아 쏴, 엎드러 쏴, 쪼그려 쏴는 기본이고 요가를 응용한 이상야릇한 폼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사바세계에서는 내외할 법도 한 관계지만 산속 야생화 앞에선 몸이 밀착되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등이나 엉덩이 무릎에 흙이 묻는 것은 보통이었다. 야생화의 힘이었다.

"회원들의 몸이 어쩌면 저렇게 유연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40분쯤 뒤 누군가 '갑시다'라고 외치자 아쉬운 듯 자리를 뜬다. 애기송이풀을 두고 회원 '근교인'은 홈페이지에 사진을 올린 후 진분홍빛의 정열적인 새를 닮았다며 '불새꽃'(아래 사진)이라 부르길 강력히 주장한다고 적어 놓았다.

이름 그대로 족도리를 닮은 족도리풀은 누군가 촬영을 위해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해놓았다. 잠시 헤어졌던 모 선생이 "이거 한번 드셔 보세요"라며 뭔가를 하나 건네준다. 입에 넣었더니 약간 새콤한 맛이 났다. 큰괭이밥으로, 강원도 태백에서는 '새콤이'라고 부른다며 우리 산야에선 알고 보면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고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었다.

날개현호색도 만났다. 소박하고 은은한 존재감.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런 것이 아닐까. 모 선생은 "자세히 보세요. 꽃자루 뒤에 붙은 턱잎이 애기 손을 닮았지요. 현호색은 제비꽃처럼 변종이 많아요. 그래서 어려워요"라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회원 '큰바우' 씨는 "공부를 안 하면 여기서는 왕따가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25년간 골프도 치고 등산도 해봤지만 야생화만큼 재미있는 취미가 없다"며 "나이 육십이 넘어 뒤늦게 야생화를 알게 된 것이 내 인생의 큰 기쁨"이라고 덧붙였다.

그들의 야생화 사랑은 끝이 없었다. 고양이 눈을 닮은 선괭이눈과 상괭이눈, 산자고와 앵초, 각사붓꽃, 털제비꽃 등등. 그들은 예외 없이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일일이 렌즈에 담고 또 담았다. 여전히 등이나 엉덩이에 흙을 묻혀 가면서.

각시붓꽃.

선괭이눈.


덩굴꽃말이.

산자고.



'꽃과 사람' 번개 출사 회원들은 간단한 점심 식사 후 오전 작업이 성에 안 찼던지 귀향길에 울주군 연화산을 찾았다. 분꽃나무가 향기를 뿜고 있고 앵초의 대규모 군락지가 있어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곳은 또 북쪽에만 있는 걸로 알려져 있는 홀아비꽃대와 남쪽에만 서식하는 걸로 알려진 옥녀꽃대가 동일 장소에서 서식하고 있는, 아마도 전국에서 유일한 곳이다. 그들의 정열과 애착에 경의감마저 느껴진다.


야생화는 정보 싸움, 화무십일홍을 잊지 마라

'꽃과 사람' 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야생화는 정보와의 전쟁이라고 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가장 뼈에 사무치는 사람이 바로 야생화꾼들이기 때문이다.

"10여 일 정도 바쁘거나 어떤 이유에서든 특정 꽃을 못 보고 지나가면 꼬박 일 년을 기다려야 되지요. 또 귀한 꽃이 피는 장소와 시기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동호회 활동을 통해 정보를 알 수 있지요."

야생화꾼들은 또 아주 부지런해야 한다. 풍경도 그렇지만 야생화도 통상 해 뜨고 1시간, 해 지기 전 1시간 즈음, 촬영하기 가장 좋다고 한다. 해서 시간을 맞추려고 무진장 노력한다. 하지만 모든 야생화가 그러한 룰에 맞게 피고 지고를 하는 것은 아니다.

 복수초와 변산바람꽃은 햇빛을 제법 받은 오전 10~11시쯤 만개하고, 산자고나 깽깽이풀 만주바람꽃은 날씨가 화창한 오전 11시~오후 2시 꽃을 피운다. 그래서 야생화꾼들은 그 같은 부단한 작업을 두고 '운팔기이'의 외로운 작업이라고 한다.

야생화를 알게 되면서 회원들은 자연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대자연 속에서 그 가치를 몸으로 깨닫는 작업이야말로 진정 자연친화적 삶이 무엇인지, 나아가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해주는 것 같아요."

한 회원은 이렇게 덧붙였다. "수년 전 할미꽃 한 송이가 5000원쯤 한 적이 있었어요. 할미꽃이 돈이 된다고 하니 무덤 위의 모든 할미꽃이 일순간 사라져 버리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지요. 지금은 할미꽃이 많아요. 할미꽃을 화분에 옮겨놓아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나아가 산에 피는 야생화는 아파트 화분 속에 오면 금방 죽는다는 사실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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