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디즈니월드와 장애인

곤이 2014. 2. 21. 17:27

올란도 디즈니월드/ 휠체어 타고 탑승

장애인 의외로 많아 / 국내선 언제 그럴까

 

 지난해 말 미국 남부 플로리다를 취재차 다녀왔다. 뉴욕 시카고 등 미국 땅 동부와 중서부가 영하 20도 안팎을 기록할 때 플로리다는 긴소매 셔츠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따뜻했고 사방은 온통 푸르렀다. 이곳이 왜 미국 부자들의 겨울 휴양지인지 그간의 궁금증이 확 풀렸다. 그야말로 축복의 땅이었다.

 취재가 잘 돼 하루 반나절 정도 일정이 비었다. 비행만 20시간인 이곳 플로리다를 언제 또 찾겠느냐며 주변에서 올란드행을 권했다. 차로 3시간쯤 걸린다기에 잠시 망설이자 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다. 이 정도 거리면 한국에서 집 앞 반찬가게에 두부 사러가는 거나 진배 없다나.

 올란도의 '디즈니월드'는 상상을 초월했다. 매직킹덤, 애니멀킹덤, 할리우드 스튜디오, 앱콧 등 4개의 테마파크 각각이 LA나 도쿄, 홍콩의 '디즈니랜드'보다 규모가 크다. 개장 때 서둘러 입장, 두 끼를 대충 떼우고 쉼 없이 좇아다녀도 테마파크 하나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한마디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첨단 놀이기구를 가장 과학적으로 잘 구현해낸 신세계였다. 

진짜 상상을 초월한 장면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였다. 온종일 본 휠체어를 탄 사람들만 족히 100명은 넘었다. 휠체어와 테마파크. 얼핏 궁합이 안 맞는 듯 했지만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휠체어를 탄 채 장애인(노약자 포함)들이 놀이기구 탑승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대충 본 후 가방 속에 쑤셔놓았던 브로슈어를 열어봤다. 안내지도에는 장애인과 ATM(현금자동입출금기) 표시가 먼저 눈에 띄었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우면서도 약자들의 배려를 잊지 않는 미국의 건강함이 새삼 느껴졌다. 장애인 탑승 가능 놀이기구가 그림과 함께 네 가지 범례로 꼼꼼하게 설명돼 있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용, 휠체어를 옮겨타야 하는 경우, 전동휠체어 대신 스탠다드 휠체어로 바꿔 타야 하는 경우 등등. 부러우면서 존경심마저 들었다. 어린 장애아들이 왜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는지 이해할 만했다.

 귀국 후 기자는 발목을 접질러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보름 입원 후 깁스를 한 채 퇴원, 목발에 의지해 출퇴근을 했다. 며칠간은 택시로 출퇴근했지만 이후 대중교통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본의 아닌 생계형 장애인 체험이었다. 깁스한 채 보름, 깁스 풀고 보조기를 착용한 채 보름여 간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했다. 지하철엔 노약석이 있어 그럭저럭 앉아갔다. 홈페이지에 엘리베이트 위치 표시가 안 돼 있는 것이 옥에 티였다. 수천억 원을 들여 잘 만들어놓고 화룡점정을 하지 못한 격이다. 공직에 장애인이 부족하니 아마 장애인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시민들의 장애인에 대한 배려도 무척 부족했다. 이는 정말 예상 밖이어서 실망스러웠다. 버스가 도착하자 목발을 짚고 있는데도 부딪힐 듯 서둘러 앞질러 가거나, 뻔히 보고도 자리 양보는 거의 없었다. 

 깁스를 푼 후 천천히 운전도 시작했다. 문제는 주차였다. 아파트 지상주차장엔 멀쩡한 차량들이 장애인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장애인스티커'에서 '주차불가' 부분을 아파트 스티커로 가린 얌체족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지하 3층에 주차한 후 힘겹게 올라올 땐 씁쓸하기까지 했다. 시대 흐름에 따라 관(官)은 지하철 엘리베이트나 저상버스 도입 등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을 점차 늘리고 있지만 정작 이를 주도해야 할 시민의식은 되레 낙제에 가까웠다.

 보행이 불편하면 심적으로 무척 위축된다. 기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렇다 보니 장애인의 인간승리는 더 한층 우르러 보인다. 10여년 전 만난 미국 오하이오라이트주립대 차인홍 교수가 생각난다.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고, 집안 사정도 어려워 9세 때 재활원에서 맡겨진 후 1990년 24세 때 모 재단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 2000년 83대 1의 경쟁을 뚫고 바이올린 교수 겸 대학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됐다. 당시 그는 "장애인은 강인한 정신력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어쩌면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 우리사회가 그를 혹독하게 키워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오는 4월이면 부산 어린이대공원에 동물원 '더 파크'가 문을 연다. 기장에도 동부산관광단지에 테마파크가 들어설 예정이다. 올란도의 '디즈니월드'만큼은 아니더라도 장애인들이 불편하지 않게 지금부터라도 좀 더 배려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