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도 봄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리산 10경 중 하나로 겨우내 꽁꽁 얼어 있던 불일폭포가 녹기 시작했습니다. 불일폭포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유명한 하동 화개골 쌍계사에서 오르는 길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쌍계사의 유일한 산내암자인 국사암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쌍계사에선 2.4㎞로 상대적으로 먼 데다 오름길의 연속이어서 꽤 힘이 들지요. 해서 국사암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비교적 쉽고 길이 부드러워 이곳을 들머리로 잡았습니다.

 이 길은 지리산 남부능선 삼신봉으로 이어지지만 가파르기만 하고 조망이 좋지 않아 눈밝은 산꾼들은 들머리로 애용하지 않고 날머리로 이용합니다.

하지만 불일폭포까지의 이 길은 부드럽고 봄이면 진달래가 지천이어서 아주아주 환상적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매년 4월말이면 이 길은 화엄세계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국사암은 신라 흥덕왕 때 진감 선사가 창건했습니다. 진감의 출생은 다소 독특합니다. 원래 어부 출신으로 그의 나이 36세 때 노를 젓는 고꾼으로 우연히 중국으로 갔다가 중국 승 마조 문하에 늦깎이로 출가, 동방 성인 혹은 얼굴이 검다 하여 흑두타, 즉 검은 얼굴의 부처로 존경받는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참고하시길.

               눈에 봐도 겨울은 가고, 산꾼들의 복장도 그렇고 봄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산행
초입부분입니다.

고운 최치원과 관련된 전설이 내려오는 바위로 환학대라고 합니다.





산길을 걷기 시작한 지 어언 45분. 일순간 뜻밖에도 너른 평지가 기다립니다. 세석평전 돼지평전처럼 지리산에서 몇 안되는 산중 너른 터인 불일평전입니다. 이곳에는 재작년 작고한 변규화 옹이 30여 년간 머문 일명 '봉명산방'이라 불리는 불일평전 오두막이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불일폭포휴게소'입니다. 해발은 600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이 오두막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노고단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봉명산방에는 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고 변규화 옹은 1967년 성균관대 졸업 후 바로 출가했습니다. 4년 뒤인 1971년 환속해서 1978년 이곳 불일평전에 조그만 초막을 하여 짓고 결혼해서 살았지만 1986년 상처한 후 작고하기 전까지 홀로 외롭게 지내셨지요.

변성배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불일평전 봉명산방의 이 시선 같은 사람은 텁수룩하게 길게 자란 수염으로 지리산에서도 이름난 털보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지난해 5월 지리산 종주 200회를 하신 부산 산꾼 이광전 씨는 그의 저서 '지금도 지리산과 연애중'에서 고 변규화 옹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수염으로 보면 70대 노인 같았으나 맑고 해맑은 웃음과 잔잔한 목소리를 들으면 30대로도 보인다'.

봉명산방이란 이름은 절친하게 지내셨던 소설가 정비석 선생이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잠시 짬을 내 봉명산방과 그 주변을 둘러보겠습니다.

커다란 나무는 야생감나무인 고욤나무입니다.

연못 속의 개구리 알인 듯 합니다.

불일평전 한쪽에는 옛 야영장 옆 수돗가 내지 세면장 인듯합니다.

옛 세면장의 외형입니다.


봉명산방 옆 휴게소. 산꾼들의 쉼터인듯 합니다.

고욤나무와 쉼터.


무인판매대.

고로쇠물도 맛볼 수 있답니다.


봉명산방 좌측, 다시말해 불일평전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는 소망탑이 있습니다. 소망탑이란 글은 봉명산방을 지을 때 참여한 젊은 사람들이 바위에 음각해 만든 것이며 그 주변의 돌탑들은 땅을 고르다 나온 돌을 하나 둘씩 쌓아 올린 것입니다.

요즘에는 해빙기라 그런지 소망탑이 간혹 쓰러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곳은 홍인수 씨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요가와 기(氣) 공부를 하는 분들입니다.

소망탑 아래에는 샘터가 있습니다. 물맛 또한 아주 좋습니다.

독일산 롯드와일러입니다. 이제 4개월 정도 됐답니다.

사람이 다가가도 깨지 않고 팔자좋게 자는 이 개는 히틀러의 경비견으로 유명하답니다. 개 역시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일평전에서 이제 불일폭포로 가는 길입니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봄 분위기가 나지 않습니까. 봉명산방에서 불일암까지는 6, 7분이면 충분합니다.

고로쇠 파이프도 보입니다.

불일암. 1980년대 초에 화재로 인해 완전 소실돼 사라졌으나 지난 2005년 4월 다시 신축됐습니다.

불일암 대웅전.
불일암에서 바라본 풍광입니다.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산줄기가 섬진강 너머 백운산입니다.

불일암 입구의 돌배나무.

불일폭는 불임암에서 2, 3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폭포수 소리와 함께 나무 사이로 폭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내려옵니다.
            겨우내 얼어 있던 폭포가 드디어 얼음이 녹으면서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봄이 온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폭포 쪽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놓았습니다.


불일폭포 최상류의 모습을 당겨서 봤습니다. 얼음이 거의 다 녹아 있습니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에도 바야흐로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폭포의 가운데 부분입니다. 역시 얼음이 녹고 있습니다.

불일폭포는 고려시대의 승려인 보조국사 지눌(1158~1210년)이 폭포 입구에 있는 암자에서 수도를 했답니다. 이에 고려 21대 왕인 희종(1181~1237년)이 지눌의 덕망과 불심에 감동하여 불일보조라는 시호를 내렸답니다.
그 시호를 따라 이 폭포를 불일폭포라 하였고 그가 수도하였던 암자를 불임암이라 불렀답니다.

불일폭포는 좌측의 청학봉, 우측의 백학봉 사이의 협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60m에 이르며 주변의 기암괴석이 잘 어울어져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하산은 쌍계사로 했습니다.

쌍계사 일주문입니다. '삼신사 쌍계사'라 적힌 편액은 근대의 명필로 이름을 떨친 해강 김규진이 단정한 예서체로 썼습니다.

한쪽편에는 산꾼들을 위한 이정표가 보입니다. 불일폭포까지는 2.4㎞.
대웅전입니다.
                        쌍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물인 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 대공탑비입니다.

대웅전 앞마당에 서 있는 이 진감선사 대공탑비는 진감선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신라 정강왕 2년(887년)에 세워진 것입니다. 고운 최치원이 쓴 사산비 중 하나입니다. 진감선사의 치열했던 생애가 최치원의 문장을 만나서 아름답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쌍계사 마애여래좌상.

쌍계사 마애여래좌상으로 일명 마애불로 불립니다. 대중전에서 명부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바위에 조각된 이 마애불은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선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쌍계사 구층석탑.

쌍계사 구층석탑으로 고산스님이 인도성지 순례 후 스리랑카에서 직접 갖고온 석가여해 진신사리 삼과와 산내암자인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 진신사리 이과 그리고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김제 모악산- 연리지(連理枝), 함양 상림-연리목(連理木) 눈길 끌어


 연리지(連理枝)와 연리목(連理木)을 아시나요.
두 나무가 따로다로 자라다가 가지가 맞닿아 하나로 합쳐진 것을 연리지(連理枝)라 하고, 줄기가 합쳐진 것을 연리목(連理木)이라고 합니다. 연리지가 연리목보다 희귀하지요.
 연리지 나무는 두 가지가 만나면서 서로 문질러 껍질이 터지고 생살이 뜯기면서 점차 상처가 아물어 같은 나이테를 갖게 되지요. 남녀간에 사랑의 결실을 이루기 위해선 적지 않은 장벽을 넘어야 완성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나무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죠. 해서, 세간에선 이를 '사랑나무'라고 부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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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 연리지 안내판. 독특하고 아주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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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김제 모악산(母岳山)에 가면 연리지(連理枝)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산 정상 남쪽 아래 천길 낭떠러지를 이루 길게 솟은 쉰길바위의 모습이 마치 어미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형상이라 이 같이 명명된 모악산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한이 서려 있으며, 동시에 증산도의 창시자 강일순이 깨달음을 완성한 곳이기도 하다.
 국내 유일의 목탑형 전각인 미륵전(국보 제62호)을 보유한 금산사 부도전을 지나 정상으로 가기 전 등산로에서 20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모악산 연리지는 이웃한 소나무의 가지가 만나 H자 모양을 하고 있다. 한 나무가 죽어도 이웃 나무에서 영양을 공급받아 연명이 가능해 예부터 귀하고 상서로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관계자는 이 나무 앞에서 남녀가 기도를 하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한다.
 김제시는 친절하게 안내판을 설치하고 나무 주변에 덱을 설치, 이를 관광상품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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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숲인 함양 상림(천연기념물 제154호)에는 100년 된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가 한 몸이 된 연리목이 자라고 있다. 상림은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 이곳 태수로 부임했던 고운 최치원 선생이 여름마다 위천이 범람해 농경지와 가옥들이 피해를 입자 이를 줄이기 위해 조성한 숲. 즉 고운의 애민사상이 곁들여 있는 숲이다.
 뿌리 윗부분부터 마치 포옹을 하듯 서로 붙은 채 함께 자라고 있는 연리목 앞에는 언제나 부부나 연인이 손을 잡고 함께 바라보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이 연리목 역시 남녀가 함께 기도를 올리면 애정이 두터워지고 사랑이 깊어진다고 전해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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