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산 기슭 소답동서 어린시절 보내
시작부터 끝까지 연분홍 물결 장관
상봉 오르면 거칠 것 없는 사방 조망
하산길 마금산 온천 피로 풀기 그만

  천주산 용지봉 북사면의 진달래 군락지.


 도심은 오래 전 봄이 왔건만 산 속은 아직 앙상한 나무가지가 즐비한 잿빛이다. 물론 발밑에는 바람꽃 노루귀 산자고 제비꽃 등 어여쁜 야생화가 이미 봄의 도래를 알리고 있지만 카키색 낙엽군락을 뚫고 고개를 쏙 내민 불과 2~3㎝의 길이로는 중과부적일 뿐이다. 희소성으로 상징되는 이들 야생화는 낯가림이 심해 모든 산에 그 얼굴을 내밀질 않는다. 한적함을 즐기는 유유자적일까 도도한 자태의 우월감일까. 하여튼 야생화는 봄을 알리는 하나의 징후일 뿐 대표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통설이다.

우리 산천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봄의 전령은 누가 뭐래도 진달래다. 겨우내 움츠렸던 잿빛 산천을 일순간 화사하게 변모시키는 참꽃 진달래는 그래서 산꾼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진달래는 편견이 없다. 고국산천 양지바른 야산이나 구릉지부터 정상 부근에 이르기까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소박하고 은은하며 되바라진 데 한 곳 없는 순종의 미덕이 몸에 밴 진달래. 소월이 노래한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란 시구가 이심전심으로 체화된다.

이 땅에 진달래가 지천인 것은 생태적 특성이 한 몫 했다. 알고보니 진달래는 메마르고 척박한 산성토양에 내성이 강한 품종. 소나무로 인해 황폐해진 우리 산야에 적응이 가장 쉬웠다. 활엽수가 거의 없는 송림이나 골산에서 인내의 미덕을 보이는 모습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이번주 산행지는 진달래산으로 꽤나 유명한 창원의 '하늘 기둥' 천주산(天柱山). 하지만 산행시간이 3시간 안팎으로 짧아 이웃한 무명의 구룡산을 하나 더 끼웠다.

산행은 창원 북면 고암마을 새마을회관~감나무 과수원길~지능선~(지도상)구룡산 정상~헬기장~구룡산 정상석 봉우리~남해고속도로 용강터널 위 철탑~삼각점봉(284봉)~굴현고개~공동묘지~바위전망대~천주봉~팔각정~헬기장~산불무인감시카메라~헬기장~천주산 용지봉~임도고개(쉼터)~달천계곡 순. 순수 걷는 시간은 4시간10분 안팎이며 길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천주봉으로 향하는 이른바 '깔딱고개' 하나 정도 힘이 들지만 전체적으로 산길은 여유롭다.

들머리는 창원 북면 고암마을, 날머리는 진달래 축제가 열리는 외감리 달천계곡. 축제 참가에 이은 마금산 온천욕을 위해서다.

고암마을 버스정류장에서 고암새마을회관까지는 걸어서 5분. 회관 왼쪽 공터를 따라 간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두 번의 갈림길. 한번은 오른쪽, 다른 한번은 왼쪽으로 간다. 우측 고사목이 눈길을 끈다. 시멘트길 끝나는 지점에선 눈 앞이 온통 감나무밭. 과수원길로 직진하면 길 끝나는 지점이 바로 산길. 본격 들머리인 셈이다.

 완만한 송림 오르막이지만 연분홍 진달래가 만개해 있다. 무덤을 지나면서 너덜길이 이어진다. 진달래 또한 산꾼들과 보조를 계속 맞추며 고도를 높인다. 천주산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구룡산도 진달래가 만만찮다. 이렇게 20여분. 칡 넝쿨을 통과하면서 급경사 된비알. 10여분 땀깨나 흘리면 지능선. 이곳까지 오면 길찾기 우려는 사실상 끝. 우측으로 간다. 50m쯤 뒤 갈림길. 왼쪽은 주남저수지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 간다. 곧 시야가 트인다. 다시 30m쯤 오르면 지형도 상의 봉우리 정상. 남해고속도로 우측으로 작대산 무릉산 마금산 천마산 백월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당시엔 구룡산 상봉으로 여겼지만 10여분 뒤 비슷한 고도의 봉우리에 구룡산 정상석이 서 있었다.

이제부턴 조망의 산행이다. 눈 앞에 거칠 것이 없다. 남해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내달리고, 저 멀리 창원 시가지도 펼쳐진다. 뒤로는 철새들의 낙원 주남저수지도 보인다. 헬기장을 지나면 곧 정상석이 서 있는 구룡산 상봉. 정면에 흙길이 보이는 천주봉과 그 뒤로 천주산 주봉인 용지봉도 확인된다. 내리막길엔 노란 생강나무꽃이 활짝 펴 있다. 무덤 앞 갈림길은 곧 만나니 아무 길로 가도 된다.
 
한 굽이 오르면 김녕 김씨묘. 할미꽃 한 송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곳에서 구룡산을 봐도 고만고만한 봉우리 셋 중 정상석이 위치한 세 번째보다 첫 번째가 더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할미꽃.

솜나물.


이후부턴 내달린다. 철탑이 서 있는 남해고속도로 용강터널 위도 지난다. 길찾기에 유의해야 할 지점을 만난다. 철탑을 지나 첫 번째 만나는 갈림길이다. 왼쪽은 동문고개를 거쳐 정병산으로 가는 길, 산행팀은 오른쪽으로 간다. 낙남정맥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10분쯤 뒤 상수원보호구역 팻말을 지나 계속 내려서면 1045번 지방도인 굴현고개. 도로 건너 바로 천주산으로 향한다. 공동묘지를 지나면서 살인적 오르막이 기다린다. 불과 20여 분이지만 이번 산행에서 가장 난코스이다. 오르막이 끝날 무렵, 우측 바위전망대에 서면 왼쪽 남해고속도로, 오른쪽은 마산 가는 옛 남해고속도로, 발 아래는 마금산온천 가는 1045번 지방도와 창원 시가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깔딱고개'를 지나 다다른 천주봉과 그 뒤로 구룡산이 훤히 보이는 가운데 천주산 산사면에 진달래가 활짝 폈다.

 이제 천주봉으로 향한다. 본격 진달래 산행이다. 7분 뒤 천주봉(484m). 정상석이 서 있다. 이어 팔각정과 잇단 돌탑, 그리고 그늘 아래 벤치, 운동기구, 산림도서함도 있다. 천주산 산림욕장이다. 진달래도 감상할 겸 잠시 쉬었다 가도 좋다. 고즈넉한 구룡산과 달리 약간은 부산하다. 이내 사거리 천주암고개. 이른바 만남의 장소이다. 친절하게 이정표가 서 있다. 왼쪽 천주암, 오른쪽 달천계곡, 직진하면 정상. 1.44㎞, 45분 걸린다고 돼 있다.

잠시 뜸하던 진달래가 다시 불붙기 시작한다. 오르막길 좌우가 온통 진달래 군락지다. 힘든 줄 모르고 오른다. 역시 소문대로 장관이다. 등로는 방화선인지 거의 임도 수준이다. 어른보다 키가 큰 진달래가 그야말로 온 산에 가득하다.   

구룡산 정상.

천주산.

천주산 용지봉.



 
잇단 헬기장과 산불무인감시카메라를 지나면 마침내 천주산 용지봉(639m). 거칠 것 없는 전망이 일순간 넋을 놓게 한다. 정상석 뒤로 농바위 작대산 무릉산, 파헤쳐진 광산 뒤 마금산과 천마산이, 남해고속도로 건너 우측 백월산 주남저수지 구룡산 정병산 (김해)용지봉 불모산이, 창원공단 뒤 장복산이, 마산 앞바다 뒤로 월미도 무학산 광려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산은 오른쪽 농바위 방향으로 내려선다. 10분이면 삼거리 임도 쉼터. 왼쪽 함안, 직진하면 농바위를 거쳐 작대산, 오른쪽 달천계곡 방향으로 간다. 다행히 50m쯤 뒤 커브길에서 왼쪽으로 산길이 열려있다. '달천동 1.1㎞'라고 적힌 작은 팻말이 보인다. 단순 내리막길이 아니라 중간중간 낮은 무명봉도 넘고 집채만한 바위도 에돈다. 달천계곡까지는 30분. 여기서 '외감 입구' 버스정류장까지는 15분 더 걸어야 한다.

# 떠나기전에 - 이원수 선생 '고향의 봄' 무대

남해고속도로 창원과 마산 사이 도로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천주산은 외모로는 그리 눈길을 끌 만한 구석이 많지 않다. 사실 바위산의 아기자기함도, 육산의 웅장함도 갖추지 못한 하고 많은 산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 산을 외면할 수 없게 하는 이유는 품속의 진달래 때문이다.

특히 이곳 천주산은 이원수의 동시 '고향의 봄'의 배경이 되는 곳. 양산이 고향인 그는 2세때 창원으로 이주, 어린시절을 천주산 기슭 소답동에서 보냈다. 마산으로 다시 이주한 그는 소파 방정환을 처음 만나 15세의 나이로 '고향의 봄'을 지어 '어린이'지에 투고해 이듬해 실렸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의 진달래는 어쩌면 천주산 진달래였으리라.

피로는 물좋기로 소문난 북면 마금산온천에서 풀자. 차로 10분 정도 걸린다. 온천과 함께 이곳의 자랑거리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북면 막걸리. 달짝지근하면서도 아주 부드러워 술술 넘어간다.

올해 천주산 진달래축제는 지난 5일 이번 산행의 날머리인 북면 외감리 달천계곡에서 열린다.

# 교통편 - 마산서 고암리행 버스 하루 1회 뿐

부산서는 마산(합성동)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것이 편리하지만 연계 버스시간이 맞지 않아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마산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40분 버스를 첫 차로 7~8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0분 걸린다.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도 시외버스가 출발한다. 오전 5시5분부터 10~15분 간격으로 있다. 70분 걸린다.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들머리인 고암리행 버스는 24번 버스를 타면 되지만 낮 12시에 있다. 대신 20, 21, 22, 23번 버스를 타고 인근 굴현고개에서 내려 북면택시(055-298-2332, 299-9000)를 이용한다. 8000~9000원.

날머리 달천계곡에서 15분 거리인 '외감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마금산 온천행 버스는 수시로 다닌다. 마금산 온천 버스정류장에서 마산행 버스는 20, 21, 24번이 출발한다. 20~30분 간격으로 밤 10시40분(막차)까지 있다.
마산에서 서부터미널행 시외버스는 밤 9시30분까지 10분 간격으로, 노포동터미널행 시외버스는 밤 9시10분까지 15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노포동행 버스는 지하철 1호선 동래역에도 정차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북창원IC~북면 마금산온천 좌회전~창원 좌회전~외감 오일뱅크 지나~시청 창원역~승산 대한 방면 좌회전~대한마을회관 지나~고암마을(고암교)~고암새마을회관(고암리경로당) 순. 또 한가지. 차를 달천계곡(북창원IC~창원 방향 좌회전~외감 달천계곡)에서 주차한 후 택시를 불러 고암에서 산행을 시작해도 된다.

 

억새군무 감상하며 성벽따라 걸어볼까 
 


  물 건너고, 바위도 오르고


 도착한 화왕산성

 화왕산성 십리억새밭 한가운데 위치한 용지.

 창녕 조씨 득성비.
                    화왕산성 남문에서 배바위로 오른다.



 마침내 배바위.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화왕산 정상(우측).

 배바위 위에 홈이 파인 이곳은 곽재우 장군이 세숫대야로 사용했다 전해온다.

 이제 화왕산 정상을 향해 오른다(왼쪽). 도중 보이는 창녕읍내.

 남쪽은 험준한 자연성벽(왼쪽), 배바위 정상.

 화왕산 정상과 하산길.

화왕산 정상에서 동문을 향해 억새밭은 가로지른다.
화왕산 정상에서 성벽과 나란히 걸으며 동문으로 내려선다. 저 멀리 보이는 암봉은 배바위. 사실상 거의 한 바퀴를 돌았다.
성벽을 따라 금빛 억새가 눈부시게 하늘거린다.
동문 쪽에서 내려서는 도중 바라본 용지와 배바위.

 드라마 허준 세트장과 멀리서 본 화왕산 정상.

 동문을 나와(왼쪽), 하산 도중 관룡사가 보인다.

 관룡사와 이어지는 능선은 병풍바위가 서 있고(왼쪽) 멋진 전망대도 만난다.

 산들 부는 가을 바람에 억새가 길게 드러누웠다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언제 느림의 미학을 익혔는지 그렇게 여유로워 보일 수가 없다. 일견 우아하기까지 하다. 가을 한철 뭇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봄 여름 동안 많은 설움을 받아온 가을의 전령 억새.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의 아름다움에 가려 눈길 한 번 받지 못했고, 한여름에는 작열하는 뙤약볕 아래 목말라 했지만 결국 대자연의 섭리대로 화려한 백조의 날갯짓마냥 눈이 부실 정도로 화사하게 태어났다.    
  
만추의 단풍에 앞서 초가을 산행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억새. 이름에서 풍기는 거친 뉘앙스와 달리 솜털처럼 부드럽다.

재약산 사자평, 천성산 화엄벌, 신불산 신불평원, 간월산 간월재, 부산의 승학산도 억새 산행지로 유명하지만 창녕 화왕산처럼 억새와 더불어 볼거리가 많은 곳은 드물 듯하다.

산정을 둥그스럼하게 감싸고 있는,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큰 공을 세운 화왕산성과 그 산성에 에워싸인 18만4800㎡(5만6000평) 산상분지인 억새평원 그리고 억새밭 한가운데 위치한 3개의 못 용지와 '창녕 조(曹) 씨 득성비' 등이 바로 그것.

일반인들이 산행하기에 편안해 하는 700m대의 해발고도에 역사와 전설이라는 콘텐츠, 그리고 산 아래 송이요리 맛집까지 갖추고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에 기암괴석과 암봉으로 뒤덮인 산세는 산행의 재미를 배가시켜주기에 충분하다.

 산행은 화왕산 주차장~임도(제1등산로)~차량 차단시설~이동통신 기지국~화왕산성 남문~헬기장~배바위~화왕산 정상~동문~허준세트장~옥천삼거리~관룡산 정상~용선대~관룡사~화왕산 주차장 순. 걷는 시간만 4시간10분 정도지만 이곳저곳 살펴보다 보면 2, 3시간은 더 걸린다.



 화왕산 주차장에서 계단을 올라서면 등산안내도를 중심으로 갈림길. 오른쪽 관룡사(1.2㎞) 가는 길은 하산길로 남겨두고 왼쪽 임도를 따라간다. 곧 이정표. 이 길은 화왕산 제1등산로이며 정상까지는 3.8㎞라고 안내한다. 정면 저 멀리 관룡산과 그 우측으로 병풍바위가 보인다.

산성교를 지나면 임도 좌측으로 대형 돌탑이 잇따라 서 있고 우측 숲속에는 투박한 자연석을 그대로 쌓아올린, 화순 운주사의 일명 거지탑을 연상시키는 작은 돌탑도 시선을 붙잡는다. 조금 더 오르면 임도 우측은 계곡. 최근 정비를 했는지 깔끔하다. 10분 뒤 차량통행 제한을 위한 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등산객들은 그 틈새로 통과하면 된다.

  
이동통신 기지국을 지나면 임도 왼쪽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본격 들머리다. 입구엔 '정상 2.6㎞'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주차장에서 35분.

산길은 줄곧 계곡과 나란히 내달린다. 상류로 갈수록 계곡 주변은 태풍 탓인지 망가져 있다. 나무가 이곳저곳 쓰러져 있고 바닥은 덩어리째 끊겨 있다. 심한 곳은 마치 전쟁의 참상을 보는 듯하다. 주 토양인 마사토는 귀족버섯인 송이를 인간에게 안겨주는 반면 지력이 약해 주변 경관을 보호하는 역할은 미미할 뿐이다.

20m쯤 되는 완경사 슬랩을 오르면서 계곡은 사실상 사라진다. 잠시 뒤돌아 보면 왼쪽 관룡산과 그 우측 영취산이 확인된다.

   
이어지는 오름길. 슬랩에서 7, 8분이면 화왕산성 남문 입구에 닿고 여기서 3분이면 화왕산성에 선다. 주변엔 보랏빛 쑥부쟁이가 지천이다.

십리억새밭을 에워싸고 있는 화왕산성(사적 제64호)은 총 길이 1.8㎞. 이때부터 억새탐승이 시작된다. 어느 방향으로 돌아도 상관없지만 산행팀은 왼쪽 배바위를 거쳐 서문 격인 환장고개, 화왕산 정상을 거쳐 동문에서 관룡산으로 가기 위해 왼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산성을 돌기 전에 남문 입구 이정표 뒤쪽에 위치한 세 개의 연못인 용지(龍池)와 이정표 우측의 '창녕 조 씨 득성비'를 둘러보자. 산성을 따라 돌다 보면 억새밭 한 가운데 위치한 이 두 곳을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배바위는 10여 분이면 올라선다.주변에는 억새군락이 온통 바람에 몸을 맡겨 흐느적거리고 있고 발아래는 쑥부쟁이와 여뀌 며느리밑씻개 마타리가 눈길을 끈다. 가까이서 본 억새의 솜털은 보는 위치에 따라 쉼없이 그 모양과 빛깔을 바꾸며 장관을 이룬다. 과거 배를 묶어두었다는 전설이 얽힌 배바위는 지형도상으로 화왕산(756.6m)보다 20㎝ 더 높다. 제일 높은 곳에는 곽재우 장군이 세숫대야로 사용했다는 홈이 패여 있다. 주변 조망도 탁월해 서쪽으론 창녕읍내와 우포늪 그리고 낙동강과 광활한 평야지대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동쪽, 다시말해 정상을 보고 우측 뒤로 관룡산과 그 유명한 병풍바위, 영취산이 보인다. 한마디로 창녕의 지형이 동고서저(東高西低)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배바위에서 산불초소가 보이는 좌측은 옥천저수지 뒷산인 구현산 삼성산 방향, 산행팀은 정상을 향해 정면으로 내려선다. 저 멀리 두 개의 높은 봉우리 중 정상은 왼쪽.

난전이 펼쳐진 환장고개(이곳 사람들은 이곳을 서문이라 한다)를 지나 정상까지는 20분이면 충분하다. 이곳에 서면 남쪽 배바위와 북쪽의 정상 인근은 험준한 자연암벽이 성을 대신하고 있고, 동문과 남문 일대가 능선을 따라 성벽이 높이 쌓여 있어 이곳이 과거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실제로 화왕산성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이곳을 근거로 의병활동을 하며 왜군과 싸워 공을 세운 전승지로 전해오며 억새밭 내 위치한 3개의 못은 당시 식수원으로 추정된다. 정북으로 비슬산, 동쪽으로 천왕산, 발 아래 서쪽 자하곡 매표소 쪽엔 도성사가 보인다.

정상에서 직진하면 목마산성을 거쳐 창녕읍으로 하산하기에 산행팀은 왔던 길로 약간 내려가 왼쪽 능선길을 타고 동문으로 향한다. 이정표가 서 있어 길찾기는 별 문제없다.

동문은 정상에서 20여 분. 동문을 나서면 임도가 기다린다. 10분 뒤 드라마 '허준'세트장. 너와집 굴피집 등 다 쓰러져 가는 옛 가옥이 애처롭다. 보수를 해야 될 시점이 온 것 같다. 세트장 맞은편에는 샘터가 있다.

13분 뒤 고갯마루에 닿는다. 세 갈래 임도가 만나 흔히 옥천삼거리라 불린다. 물론 이정표가 서 있다. 왼쪽은 고암면 감리, 오른쪽은 제1등산로 시점, 산행팀은 쉼터인 '번지없는 주막' 왼쪽길로 향한다. 관룡산 가는 길이다. 오름길이지만 그리 힘들지 않다. 20여 분 뒤 삼거리. 왼쪽은 병풍바위를 거쳐 구룡산~종암산~~부곡온천으로 이어지는 종줏길, 오른쪽으로 50m 떨어진 헬기장이 정상(754m)이다. 전망이 없고 별 특징이 없다.

헬기장을 가로질러 침목계단으로 내려선다. 쏟아지는 급경사길이지만 중간에 만나는 잇단 전망대에선 병풍바위를 감상할 수 있다. 명불허전이라 했던가. 가까이서 본 거대 암벽들의 위용은 기대 이상이다. 병풍바위 아래 조그만 절집은 청룡암이다.

하산길 좌우에는 송이 채취를 위해 출입을 금한다는 경계줄이 처져 있고, 송이채취관리소도 있으니 유의하길. 하산길의 하이라이트인 용선대는 정상에서 30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이 산중에 앉아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장엄한 모습에 자뭇 고개가 숙여진다. 여기서 천년고찰 관룡사는 불과 400m로 10분 걸리며 절에서 주차장까지는 15분 소요된다.

#떠나기전에- 창녕 배바우산악회 매년 갈대제 개최… 올해는 오는 27일

날머리 관룡사는 원효대사와 관련이 깊다. 원효는 제자 1000명에게 화엄경을 설파했으며 화왕산 정상의 3개의 못인 용지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관룡사(觀龍寺)라 명명했다 전해온다. 관룡산 병풍바위를 지나 만나는 구룡산(九龍山)이란 이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관룡사는 절 규모는 작지만 보물이 4점이나 된다. 이 중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은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고 알려져 많은 참배객들이 찾는다. 관룡사의 명물 석장승도 꼭 찾아보자. 절과 대형 주차장의 중간쯤 계곡 옆에 위치해 있다. 왕방울 눈, 주먹 코, 튀어나온 송곳니 등의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절의 수호신으로 비보(裨補) 역할을 한다. 지난 2003년 9월 태풍 '매미' 때 유실됐다가 복구를 위해 위장 보관하던 중 도난당한 후 2005년 2월 대전에서 회수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축제도 열린다. 창녕군과 배바우산악회는 오는 27일 제37회 화왕산 갈대제를 연다. 갈대는 억새밭 한가운데 위치한 3개의 용지 인근에 약간 있을 뿐 대부분 억새지만 전통 고수 차원에서 당초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오후 1시 산신제를 시작으로 오후 2시 산상음악회에 이어 오후 6시30분부터 참가자들이 500개의 횃불을 들고 화왕산성을 돈다.

들머리 부분의 잇단 대형 돌탑은 인근 정평부락의 김수부 씨가 올 봄부터 농사를 짓다 짬이 날 때 순수 만든 것이다. 돌은 모두 옥천저수지에서 갖고 왔단다. "하나라도 볼거리가 있어야 관광객들이 찾을 것 아닙니까"라는 것이 돌탑을 만든 김 씨의 설명이다. 고마운 일이다.

송이밥.
자연산 송이.

 
지금 전국은 송이버섯이 한창이다. 경북 울진 봉화를 비롯 청송 주왕산, 대구 팔공산 등지가 주요 산지로 알려져 있지만 창녕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송이 산지 중 하나. 관룡사 가는 길 옥천저수지 바로 위 도로변에는 송이밥을 잘 하는 식당이 하나 있다. 고향보리밥(055-521-2516)이다. 화왕산과 관룡산에서 방금 캔 송이를 무쇠솥에 넣어 내는 송이밥(사진)은 우선 향이 진해 군침을 돌게 한다. 찹쌀 참기름을 곁들인 송이밥에 이 집만의 양념장과 각종 나물을 곁들이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1만5000원. 보리밥도 별미이다. 투박한 양은그릇에 뚝배기된장 열무겉저리 부추겉저리 열무김치 등을 곁들여 먹는다. 5000원.   
 
#교통편- 창녕터미널서 옥천행 버스 오전 9시40분 단 한 차례 뿐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창녕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부터 40~5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시간10분 걸리며 요금은 5800원. 창녕터미널 인근에서 옥천(관룡사)행 영신버스를 타면 된다. 30분 걸린다. 오전 6시50분, 9시40분, 낮 12시. 1400원. 정류장은 터미널에서 200m쯤 떨어져 있다. 옥천정류장에서 창녕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2시40분, 4시20분, 6시30분(막차)에 있다. 창녕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 4시50분, 5시30분, 6시10분, 6시50분, 7시40분, 8시30분(막차)에 출발한다. 옥천정류장에서 산성교 직전 화왕산 주자장까지는 10분쯤 걸린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 영산IC~영산 방향 좌회전~대구 창녕 5번 국도~화왕산 우회전 1070번 군도~옥천~화왕산 군립공원, 관룡사 좌회전~화왕산 주차장 순. 대중교통편은 현지 사정상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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