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본·기사보며 산행하는 문화 만들어

서울·대전서도 "산행지 결정에 영향"
無名山 문헌·증언 통해 이름 찾아줘
몸 담은 기자만 7명·산행대장도 3명


인기리에 연재 중인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가 13일(2006년 10월) 자로 500회를 맞았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을 어느새 훌쩍 넘겨버린 것이다. 돌이켜 보면 정말 곡절이 많았다. 내부적으론 너무 오래됐으니 이제 막을 내리자는 고비를 두어 번이나 넘겼고, 외부적으론 질시의 대상이 돼 한동안 산행 안내 리본이 난도질 당하는 아픔도 수 차례 겪었다. 정말 앞뒤 안 보고 쉼없이 달려왔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지나온 길을 반추해보고 향후 갈 길을 짚어본다.


#부울경을 넘어 이제 전국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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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 보성 일림산 철쭉.  
 
 
지난 7월 국제신문 주말레저팀은 '올빼미 산꾼들'을 주제로 야간산행을 특집기사로 다룬 적이 있다. 당시 취재대상이었던 야간산행 동호회 '달빛 따라 산길 따라(cafe.daum.net/msms2)'의 카페에는 보도가 나간 뒤 놀랄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회원 가입자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부산·울산·경남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신문에 보도된 이후 가입한 신입 회원의 3분의 1 정도가 서울 경기 충청 전라 경북 등 국제신문이 배달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동호회 권헌영 회장과 김삼문 산행대장은 이러한 사실이 너무 궁금해 신입 회원들의 가입동기를 일일이 확인해 본 결과 부산·울산·경남지역은 물론 타 지역의 모든 신입 회원들이 가입동기로 국제신문의 '달빛 따라 산길 따라'의 기사를 보고 야간산행에 관심이 생겨서라고 적어놨다고 밝혔다.

때문에 권 회장과 김 대장은 "시중에 회자되고 있는 '산을 좀 타는 산꾼이라면 이제 지역을 불문하고 국제신문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김 대장은 한가위 명절 때 국제신문의 위력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했다.

대전의 모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친동생이 최근 등산하는 재미에 빠져 주말이면 거의 거창이나 함양의 산을 찾는다고 말해 꼼꼼히 물어봤다. 그도 그럴 것이 동생은 몇 년 전만 해도 산과 담을 쌓고 지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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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夏 구만산 구만폭포
 
김 대장에 따르면 동생은 40이 넘으면서 격무로 차츰 건강에 적신호가 오자 연구소 등산모임에 가입했다. 그러던 중 산행대장을 비롯한 모든 회원들이 국제신문의 근교산 시리즈를 매주 보면서 산행지를 정하고 있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것. 그러면서 "동생은 국제신문이 소개한 거창 함양의 근교산은 이제 연구소 등산모임의 바이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김 대장은 전했다.

대전뿐만 아니다. 국제신문 취재팀은 산이라는 매개로 전국의 산꾼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

영남알프스 종주를 하다가 길을 잃은 광주의 한 의사 산꾼은 캄캄한 밤에 우연히 국제신문의 노란 리본을 보고 연락, 이창우 산행대장의 도움으로 무사히 하산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취재팀의 무등산 산행 때 그의 도움을 받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기자는 우연히 서울의 한 아마추어 산꾼으로부터 책 한 권을 우편으로 받았다. 일면식이 없는 그였기에 기자는 직접 전화를 해 사연을 물어봤다.

그는 영남알프스를 홀로 산행하다 길을 잃었는데 우연히 발견한 국제신문의 리본을 보고 겨우 산행을 마쳤다. 이후 그는 국제신문이 '근교산'이라는 보석같은 방대한 자료를 갖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고는 산행 때마다 국제신문 홈페이지에서 얻은 많은 자료를 활용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만일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가 없었다면 책 저술기간이 훨씬 길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팀은 또 우리 마을의 숨은 산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도 거절할 수 없었다. 대표적인 곳이 진주의 광제산~집현산. 제보자는 진주시 명석면의 면장이었다.

고향에 부임한 그는 어릴 때 놀던 토종 소나무숲인 광제산이 현 시점에서 볼 때 최적의 산행지라 확신, 취재를 요청해 소개한 결과 많은 산꾼들이 찾아왔다고 고마움을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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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설악산 단풍
 


#신문의 시리즈 기사로는 전국 최장수

지난 1996년 1월 4일 '기장 달음산~철마산 종주산행(상)'을 시작으로 첫발을 내디딘 뒤 장장 10년9개월 만인 2006년 10월 13일 500회의 위업을 달성했다.

사실 근교산 시리즈는 이보다 3년 앞선 1993년 1월 '가볼 만한 근교산'이라는 타이틀로 부산의 진산 '금정산' 편을 소개한 후 이듬해 11월 87회 '밀양 정각산' 편을 마지막으로 1년10개월 간 연재됐다. 만일 '가볼 만한 근교산' 87회를 포함한다면 지금의 근교산 시리즈는 600회를 바라보는 셈이 된다.

이런 연유로 3년 뒤 재출발한 시리즈의 제목은 '다시 찾는 근교산'으로 변했고, 2003년 10월부터는 전국의 모든 산을 취재산행 대상지로 한다는 취지에서 '근교산&그 너머'로 새롭게 변신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서, 근교산 시리즈는 횟수만으로 볼 때 전국의 모든 신문에서 연재되고 있는 시리즈 중 최장수를 달리고 있으며, 따라서 근교산 기사가 매주 한번씩 게재될 때마다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것이다.

근교산 시리즈가 전국의 독자들에게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비결은 현지 취재에 따른 철저한 현장답사와 산행 후 미비점을 자료분석과 함께 전화로 재차 확인하는 취재의 기본을 한결같이 유지한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숨은 계곡과 능선이 지면을 통해 새로운 등산로로 등장하면 산행에 나서고 싶어도 산길을 몰라 감히 떠나지 못했던 초보 산꾼들도 누구나 쉽게 국제신문 리본을 보고 산행을 할 수 있게 된다.

초보 산꾼은 물론 베테랑 산꾼들도 '이곳에 이런 코스도 있었나'라며 감탄을 잊지 않는다.

최근에는 등산 인구가 증가하면서 가족산행이 늘어 대중교통편 대신 승용차를 타고 손쉽게 다녀올 수 있는 원점회귀 코스를 집중적으로 개발해 산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산정산악회 김홍수 산행대장은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가 외풍에 흔들림없이 꾸준하게 산행인구의 저변을 넓히는 데 적지않은 공헌을 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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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冬 괘관산 설경
 


#'용장 밑에 약졸 없다' 최강의 산행대장

   
10여 년 간 근교산 시리즈에 몸을 실은 기자만 해도 배병주 박명도(퇴직) 조해훈 조봉권 박병률 김용호 기자 등 6명. 기자를 포함하면 7명인 셈이다.

하지만 근교산 취재팀을 실제로 이끈 숨은 공로자는 바로 산행대장들이다. 사실 취재기자들은 산행대장의 진두지휘 아래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할 뿐 근교산이라는 작품의 연출자는 산행대장이다.

국제신문의 역대 산행대장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부산을 대표하는 산악인이다. 용장 밑에 약졸 없듯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근교산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대 산행대장은 부산 산악계의 원로인 성산(75) 씨, 2대 산행대장은 건건산악회의 고문이자 베테랑 산악인 최남준(67) 씨, 3대 산행대장은 대학산악부 출신으로 독도법으로 부산 최고를 자랑하는 이창우(47) 현 산행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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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성산 초대 산행대장, 최남준 2대 산행대장, 이창우 현 산행대장.


성산 씨가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의 토대를 닦았다면, 최남준 씨는 주춧돌을 세웠고, 지금의 이창우 산행대장이 '근교산'이라는 멋진 건물을 올린 셈이다.

초대 근교산 취재기자였던 배병주 현 논설위원은 "당시로선 생소했던 산행안내 기사인 근교산 시리즈를 준비하다 보니 산행대장이 필요해 부산 산악계를 수소문한 결과 성산 씨가 적임자로 추천돼 직접 대륙산악회 사무실을 찾아가 모셨다"고 회고했다.

지금도 매일 아침 2시간씩 조기 등산을 한다는 성산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근교산 시리즈가 500회를 맞았다니 감회가 새롭다"며 "앞으로도 1000회, 2000회로 꾸준히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가볼 만한 근교산'을 성산 씨가 거의 맡았다면 최남준 씨는 '다시 찾는 근교산'의 산행대장으로 사실상 근교산 시리즈의 틀을 닦은 숨은 공로자였다. 최남준 씨는 바쁜 생업의 와중에서도 산행 전 반드시 답사를 하는 성실함을 보여 취재기자의 짐을 덜어줬다. 지금의 이창우 산행대장이 최남준 씨와 산행을 함께 하면서 (물론 결과론이지만) 산행대장 수업을 받은 것도 그때였다.

최남준 씨는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등산로가 없어 100%가 개척산행이었다"며 "등산로가 없는데다 웃자란 잡목이나 억새에 가려 동행한 기자와 산꾼들이 전혀 보이지 않아 고생깨나 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최 씨는 "국제신문은 전국의 어떤 언론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산행 부문에선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며 앞으로의 건승을 빌었다.

현 국제신문 산행대장인 이창우 씨는 설명이 필요없는 부산을 대표하는 산꾼. 정확히 1998년 1월 22일 90회 대운산 편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예의 성실성으로 근교산 시리즈를 이끌고 있다.

일년 중 추석이나 설날 등을 제외하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주도 빠지지 않고 근교산 시리즈를 이끈 그는 산길 찾기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 그리고 빼어난 독도법 등 산행대장으로서의 3대 덕목을 모두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그의 머릿속에는 대운산 천성산 등 부산근교의 산과 영남알프스의 모든 계곡과 능선이 입력돼 있어 '살아있는 GPS'라 불린다.

실제로 최근 기자는 그동안 연재했던 천성산 산행기사를 정리하다가 제2봉에서 내원사로 내려오는 도중 만나는 수 차례의 갈림길을 얘기하면서 이 대장의 머릿속에 그 길이 정확히 입력돼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남알프스 또한 함께 산행하는 도중 여러 차례 독자들의 전화를 받아 막힘없이 답하는 사실을 보면서 역시 산길을 꿰고 있음을 실감했다.


#근교산 취재팀의 성과 및 향후 과제

신문 기사와 안내 리본을 보면서 산행하는 독특한 등산문화를 선도한 취재팀은 그동안 국토지리정보원이 발간하는 지형도에도 없는 산 이름을 현지 마을의 어르신이나 산속 암자의 노승, 그리고 문헌 등을 통해 상당수 발굴했다. 경주 정족산을 비롯해 양산 채바우골만당, 밀양 구천산 정승봉 북암산, 청도 개물방산, 언양 배내봉, 간월공룡, 가지산 북릉, 천성산 중앙능선 등 얼핏 헤아려봐도 30여 개는 될 법하다. 이 명칭들은 국내 주요 산 전문 사이트에도 하나씩 등재돼 전국의 산꾼들에게 널리 통용되고 있다.

대한산악연맹 부산광역시연맹 김정민 회장은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가 등산인구의 저변 확대에 기여한 공로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어마어마한 성과"라며 "앞으로도 근교산 시리즈가 국제신문과 함께 영원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창우 산행대장은 "근교산 시리즈에 대한 산꾼들의 호응이 분에 넘칠 정도로 커 사실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며 "향후에도 산꾼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글 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 500회 특집
-국제신문 홈페이지 '산행기' 게시판 스타 산꾼 좌담

"山에 대한 신문의 애정 계속 이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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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대에서 만난 산꾼들. 좌로부터 박수연 이재수 공남신 박경희 씨.


국제신문 홈페이지 초기 화면 하단에 위치한 '근교산&그 너머' 창을 클릭하면 왼쪽 아래에 '산행기' 게시판이 있다. 이곳은 일반 산꾼들이 산행기를 올리는 코너이다.

근교산 취재팀이 연재한 산행지를 다녀와서 냉철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모처럼 떠난 해외 산행지를 폼나게 소개하기도 한다. 달빛 따라 산행하는 올빼미족이 있는가 하면 대간이나 정맥꾼들의 연재도 신바람나게 읽힌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보석 같은 숨은 길을 동료 산꾼들에게 알려주는 넉넉함도 묻어난다.

최근에는 글 위주의 무미건조할 수도 있는 산행기에 상세한 지도와 시원한 사진이 첨부돼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산행기를 올리는 산꾼들과 접속지역은 이제 부산·경남을 넘어 전국을 대상으로 한다.

2003년 1월 문을 연 산행기 게시판은 월 평균 50건 정도가 올라오며 접속 건수는 편당 수백 건에서 많게는 수천 건에 이른다. 이렇다 보니 얼굴은 모르지만 서로의 산행기를 읽으며 정보 교환을 하는 이른바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을 정도다.

이재수(51·KT 동래지사) 공남신(52·부산시청) 박경희(45·필명 오월에) 박수연(45·교사·필명 박시). 이들은 국제신문에만 산행기를 올리는 열렬 산꾼으로 사실상 산행기 게시판을 주도하고 있다.

근교산 취재팀은 이들을 국제신문 편집국 회의실에서 만나 매주 연재되고 있는 '근교산 시리즈'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이재수 씨는 국제신문 산행기 게시판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최고의 스타 산꾼이며, 공남신 씨는 야생화 사진과 한층 세련된 편집으로 최근 들어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오월에'라는 필명의 홍일점 박경희 씨는 화려한 글솜씨로 산행기의 새 지평을 열고 있으며, '박시'라는 필명을 쓰는 박수연 씨는 간결한 산행기에다 거의 모든 산행기를 읽고 댓글을 다는 부지런함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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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국제신문 산행기 게시판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이재수=그 전부터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를 계속 애독한 독자였어요. 하지만 산행기 중에 간혹 잘못된 점이 발견됐죠. 때마침 2003년부터 게시판이 오픈돼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지적하다 보니 지금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면을 많이 올려 타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이에 아랑곳않고 뚝심을 가지고 임한 결과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알아봐 상당히 부담스럽기까지 합니다. 낙남정맥과 현재 하고 있는 백두대간 종주 등 지금까지 260편 정도 산행기를 올렸어요.

▲공남신=산행 경력은 20년 정도 됐지만 그 전까진 산행기는 쓰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6월 지리산 종주를 해보고 싶은 직장 동료들이 많아 그들을 위해 종주 후 시청 홈피 게시판에 올렸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죠. 이후 산행 부문은 당연히 국제신문이 앞선다는 사실을 알고 게시판에 우연히 한 번 들어가봤는데 예상 외로 수준이 높았어요. 이재수 씨가 선도자 역할을 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글 위주여서 제가 야생화 등의 사진을 추가해 산행기를 작성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더군요.

▲오월에=조금만 가게를 15년쯤 하다보니 살림, 가게, 교회에 매여 정말 뒷산 약수터에도 못가 봤었죠. 어느 순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가게를 접고 산을 타보라는 지인의 권유를 받았죠. 첫 산행이 2003년 5월 계룡산이었어요. 5월에 산을 처음 갔기에 필명이 '오월에'입니다. 가고 싶은 산을 온라인 상에서 검색하다 보니 국제신문이 안 나오는 데가 없었어요. 해서 홈피에 들어가보니 역시나 산행기 게시판이 활성화돼 있더군요. 80여 차례 산행기를 올렸는데 반응이 좋아 기분이 좋습니다. 이에 자신감을 얻어 지금은 포항의 모교에도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박시=오랫동안 개인 홈피에 산행기를 올렸지만 대외적으로는 글을 남기지 않았어요. 물론 오래 전부터 국제신문 산행기 게시판은 열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꾸준히 올라오는 이재수 씨의 열정적인 산행기를 보고 감동을 받았죠. 나도 이재수 씨처럼 다른 산꾼들에게 미력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 산행기를 올리게 됐죠.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국제신문에 올린 첫 산행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재수 씨의 산행기에 감명을 받아 올린다고.

▲기자=500회를 맞은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에 대해서 한 마디씩 해주시죠.

▲이재수=10년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산꾼들을 위해 지면을 할애한 신문은 없었습니다. 간혹 산 소개 기사가 등장했지만 그건 개략적이거나 단편적인 내용일 뿐 실제로 산행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국제신문의 산에 대한 애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산깨나 탄다는 산꾼들이라면 100%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취재팀에게 한 가지 주문을 하려고 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1995년에서 2001년까지 소개한 산을 다시 한 번 리바이벌해 소개했으면 합니다. 당시 소개한 산들은 밀양 청도 경주 등의 보석 같은 곳이었죠. 이제는 들머리 날머리만 맞을 뿐 길이 거의 없습니다. 해서 저는 겨울에만 그 산들을 찾는 실정입니다. 그때 국제신문이 소개한 산들을 최근 타 언론에서 기사화해 히트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공남신=사실 부산에서 산 좀 탄다는 사람들이 국제신문을 구독하지 않으면 간첩이죠. 누가 뭐래도 근교산 시리즈가 국제신문의 간판입니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산행기의 눈높이는 중간쯤 되는 지금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산행지도를 좀 더 상세히 하고 계절적 부분을 좀 더 강조했으면 합니다.

▲오월에=최근 등산 인구가 부쩍 는 사실을 몸으로 느낍니다. 저는 사무실 동생이나 교회 동지, 그리고 군에 간 아들의 여자친구 등 산에 문외한인 주변사람들을 주로 꼬드겨 산엘 갑니다. 그러다 보니 초보자들을 배려해, 지금도 잘 하고 있지만 가급적이면 원점회귀 코스를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박시=왕초보 때 국제신문에서 소개한 일광산을 보고 가족과 함께 산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당시엔 5분 가다 스크랩한 신문 한 번 보고, 다시 또 한 번 보고, 그러다 여의치 않으면 되돌아가보기도 하고 하여튼 불안감 속에서 산행을 했습니다. 산행기가 얼마나 정확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 강조되는 대목이죠. 지금도 초보자들이 교과서 같이 여기는 국제신문의 산행기가 한 자의 오·탈자도 없는 완벽함을 추구했으면 합니다.

▲기자=서로의 산행기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나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재수=오월에 씨가 처음 산행기를 올렸을 때부터 글이 워낙 빼어나 쭉 눈여겨 봤습니다. 저와 함께 산행을 하는 현인두 씨는 오월에 씨의 완전한 팬입니다. 그는 산행 내내 오월에 씨의 감동적인 문장을 외고 또 외웁니다. 그는 국제신문 산행기 게시판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칭찬을 합니다.

▲오월에=말씀드리기 뭣 하지만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글을 써 상깨나 받았습니다. 중학교 땐 글이 너무 좋아 모르는 선배 오빠가 교실로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결혼도 제가 남편에게 무려 16장의 장문의 편지를 쓴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죠.(웃음) 사실 전 산꾼이 아니라 어설픈 글쟁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재수 씨의 산행기는 한 마디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그런 글 속에는 자기 과신이 은연 중에 내포돼 있지만 이재수 씨의 산행기에는 희생과 겸손, 그리고 성실함이 묻어납니다. 덕분에 국제신문의 산행기가 더욱 빛을 발합니다.

▲박시=전 이재수 씨의 열정을 한번 더 강조할까 합니다. 그와는 가이드 산악회에서 한 번 만났습니다. 아니, 제가 이재수 씨의 이름을 참가자 명단에서 우연히 발견해 인사를 했죠. 그날 저는 이재수 씨를 근거리에서 지켜봤습니다. 메모를 거의 하지 않던데 산행기에서는 그야말로 완벽한 글이 올라옵니다. 비결이 있나요.

▲이재수=간단한 메모는 합니다. 전 하루에 제가 찾아놓은 '즐겨찾기'의 사이트에서 산행기를 평균 대여섯 편 정도 봅니다. 일주일이면 30편쯤 됩니다. 산행 전에 준비를 많이 하면 메모가 적어도 많이 보고 꼼꼼하게 적을 수 있습니다.

▲공남신=이재수 씨가 화제로 떠오르니 이재수 씨의 산행기에 대해 한 마디 할까 합니다. 지금도 완벽합니다만 사진을 좀 더 추가하면 더욱 더 관심을 끌지 않을까 합니다. 사진도 용량을 크게 하면 속도가 느려져 네티즌들이 짜증을 냅니다. 이럴 경우 용량을 줄여 편집하면 그야말로 100점짜리 산행기가 될 것 같습니다.

오후 5시30분 시작한 좌담회는 어느덧 8시가 돼서야 끝을 맺었다. 못다한 말이 남았는지 그들은 저녁식사를 하면서도, 몇 순배 술잔이 돌면서도 계속 산행 이야기를 계속했다. 밤 10시40분. 그냥 두면 밤을 샐 것 같아 기자가 냉정하게 '쫑'을 냈다.


정리=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사진=강덕철 기자
dcka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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