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의 산치곤 덜 알려졌지만 산세·조망은 그야말로 '환상'
이장한 듯한 묘지터인 539봉을 지나 만나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용암봉(왼쪽)과 소천봉이 '한 일(一)' 자 능선을 그으며 내달리고 있다. 소천봉 아래 하산길인 음지마을이 우측 하단 소나무 뒤로 보인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도심에서 받았던 온갖 스트레스를 풀러 산을 찾았건만 왜 이리 사람들이 많은지. 한적해야 될 산이 시골 5일장처럼 북적인다. 진정한 산꾼들이라면 이심전심으로 서로 배려를 해 별 문제는 없을 터이지만 문제는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깎아지른 기암절벽과 장쾌한 조망에 반해 잔잔한 미소 같은 내적 희열로 만족해야 될 상황이 과잉 액션으로 발산돼 주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법. 그렇다고 산을 끊을 수야 없지 않은가. 하여, 애오라지 산꾼들은 또다시 오염이 덜 된 한적한 오지의 산을 갈구하며 찾아 나선다.

대간이나 정맥 종주를 끝낸 산꾼들이 여기서 한 번 더 갈래를 치고 나온, 상대적으로 덜 붐비는 기맥이나 지맥을 찾아 나서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주 산행지는 영남알프스의 서쪽 언저리에 똬리를 틀고 앉은 밀양 용암봉~소천봉.
낙동정맥 가지산에서 갈라져 나와 운문 억산 구만 중산 낙화 보두 비학산을 거쳐 밀양강으로 떨어지는 이른바 운문지맥의 중간쯤 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밀양의 산임에도 지명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굴곡과 수려한 산세 그리고 곳곳에서 펼쳐지는 환상적 조망은 겨우내 움추렸던 근교산꾼들을 다시 산으로 불러모으는 데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


산행은 상동면 신곡리 양지마을~인동장씨묘~김해김씨묘~539봉(종지봉·이장한 묘지 터)~암릉길~오치령 육화산 갈림길~신(新)오치고개~밀성박씨·경주최씨묘~통천문(침니바위)~용암봉(686m)~소천봉(632m)~잇단 무덤~신곡리 교회(음지마을)~양지마을. 걷는 시간만 4시40분 정도이며 난이도는 보통이다.

신곡리 마을회관과 ‘신곡리 양지마을' 이정석을 잇따라 지나 다리(신곡천)를 건너면 갈림길. 왼쪽으로 가면 또 갈림길. 역시 왼쪽으로 100m쯤 가면 다시 갈림길.

 이번엔 ‘산림조합현장'이라 적힌 이정표가 가르키는 우측으로 간다. 마을 당산나무를 지나자마자 다시 갈림길. 왼쪽으로 간다. 대숲을 지나면 이내 갈림길. 차량 차단기가 보이는 정면 대신 석축을 따라 왼쪽으로 가면 들머리로 향하는 능선 갈림길. 이제 본격 우측 산으로 향한다. 등로는 약간 희미하지만 그렇다고 일일이 확인하고 오를 만큼 방치돼 있지는 않다. 나아가 거의 외길이라 걱정할 염려는 전혀 없다.

산행 초입대추밭 사이를 걸어가는 산행팀. 그 뒤로 산행팀이 걸어야 할 산행지인 용암봉(왼쪽)과 소천봉이 한눈에 보인다.

처음부터 된비알. 인동 장씨묘쯤 한 번 주춤하더니 15분 정도 거의 사람의 혼을 뺄 정도로 오르막이 심하다. 이후부턴 경사가 덜할 뿐 여전히 오름길이다. 그 정점은 양지바른 곳의 김해 김씨묘.

이제 송림길이 이어진다. 우측으로 향후 오를 용암~소천봉이 보인다. 크게 봐서 시계 방향으로 걷고 있는 셈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산행팀이 걷고 있는 산길과 용암~소천봉으로 이어지며 신곡리를 감싸고 있는 산세가 여성의 성기를 빼닮아 일종의 '여근곡(女根谷)'으로 불러도 될 성싶다.

솔가리와 낙엽이 반복되는 오름길은 한동안 이어지다 첫 봉우리인 539봉에서 숨고르기를 한다. 들머리에서 65분. 이장한 묘지터인 이곳은 하산 후 마을주민들로부터 ‘종지봉'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올라온 방향으로 보면 동창천 뒤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그 뒤로 옥교산 종남산 우령산 등 밀양의 산이, 소나무 우측으로 화악산 남산 오례산성 원정산 대남바위산 용당산 비룡산 통례산 등 청도 쪽 산이 손에 잡힌다. 20m쯤 더 가면 우측 시야가 트인 곳에서 더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좌측엔 코 앞의 육화산을 비롯 그 뒤로 구만산, 그 우측으로 운문산 백운산 정승봉 천황산 재약산 향로산이 펼쳐진다. 발 아래 산기슭의 계단식 논은 마치 깊게 파인 촌로의 주름을 연상시킨다.

영남알프스 주봉과 언저리봉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제부턴 능선길. 낙엽길과 송림터널이 반복된다. 20분 뒤 암릉길에선 발길 닿는 곳이 모두 전망대다. 10여 분 뒤 집채만한 바위가 앞을 막는다. 우회하는 길도 있지만 잠시 올라보니 사방팔방 훤히 펼쳐지는 최고의 전망대가 아닌가. 그간 숨어 있던 북암산 억산 범봉 사자봉 수리봉 구천산 정각산 가지산 그리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오치령 고갯길 등 영남알프스 주봉과 언저리 봉우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창우 대장도 “이처럼 완벽한 전망대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고 한마디 거든다.

전망대를 향해 근육질의 암릉을 오르는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은 "이 전망대를 두고 영남알프스를 이처럼 완벽하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은 극히 드물다"고 평했다. 

 정면 눈앞의 봉우리는 이름없는 무명봉이지만 산세로 봐서 구만산 육화산을 거쳐 운문지맥과 만나는 의미있는 지점이다. 실제로 봉우리를 내려서면 ‘오치령 육화산'이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이를 알려주듯 주변엔 리본이 많이 걸려 있고 산길 또한 뚜렷하다. 또 하나의 낮은 봉우리(536봉)를 넘으면 등로 좌우에 임도가 눈에 띄고 이내 고개에 닿는다. 오치령과 상동면 신곡리를 잇는 임도가 생기면서 생긴 고개로 흔히 오치고개라 부르고 있지만 기존의 오치령과 구분하기 위해선 ‘신(新)오치고개'라 부르는 것이 합당할 듯 싶다.

산행 중 전망대에서 바라본 용암봉(왼쪽)과 소천봉(오른쪽). 

임도를 건너 바로 산으로 오른다. 작은 봉우리를 살짝 넘고 밀성 박씨 및 경주 최씨묘를 잇따라 지난다. 이때부터 크고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오치령으로 가는 꼬불꼬불한 임도.
산행 중엔 밀양과 이웃한 청도의 봉우리들도 시원하게 펼쳐진다. 맨 뒤 능선 좌측으로부터 대남바위산 용당산 시루봉 비룡산 효양산 통례산 학일산이 보인다.

구만산 운문산 백운산 천황산 재약산 등 영남알프스 산군과 언저리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용암봉 정상 직전 만나는 통천문. 일명 침니바위라고 불린다.
용암봉 정상. 이 팻말은 이창우 산행대장 바로 앞, 국제신문 제2대 산행대장 최남준 씨가 사비를 들여 달아 놓은 것이다.  

 10분쯤 뒤 뜸하던 바위군. 처음엔 농짝 크기에서 점차 집채만한 바위로 변모한다. 한 전망대에선 산내면소재지 송백과 앞서 봤던 밀양 쪽 봉우리 외에 승학산 금오산 구천산과 원동 토곡산도 확인된다. 잇단 암릉과 암봉을 지나 일명 통천문이라 불리는 바위틈새길을 통과하면 이내 용암봉 정상. 오래 전엔 헬기장이었지만 지금은 송림에 막혀 조망이 없다. 발 아래 보도블록만이 이를 확인해줄 뿐이다.
직진하면 백암봉 중산 낙화 보두 비학산으로 이어지는 운문지맥길, 산행팀은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정면 바로 보이는 봉우리가 소천봉이다. 40분 걸린다. 조그만 돌탑 이외에는 정상이라고 인식할 어떠한 지형지물이 없다. 조망 역시 없다.
하산길은 좁다란 비탈길. 오랫동안 간벌을 하지 않은 죽음의 송림길이다. 이를 대변하듯 소나무마다 무수히 많은 솔방울이 매달려 있다.
뚜렷한 길은 없지만 크게 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서자. 국제신문 리본을 촘촘히 묶어놨다. 40분 뒤 길다운 길이 비로소 눈에 띄고, 여기서 5분이면 산을 벗어나 신곡리교회가 위치한 음지마을에 닿는다. 저 멀리 건너편이 들머리 양지마을이다. 두 마을은 10분 거리이다. 산행대장=이창우.

# 떠나기 전에 - 정상 안내판, 노장 산꾼의 열정

용암봉 정상에는 정상석 대신 '운문지맥/용암봉 686m/준·희'라고 적힌 조그만 스테인리스판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명산이건 근교산이건 산깨나 탄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겠지만 이처럼 고마운 일을 한 주인공은 국제신문 제2대 산행대장을 역임한 최남준(68) 씨. 그는 '그대와 가고 싶은 산, 준·희'라는 오렌지색 리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최 대장은 한창 땐 건건산악회를 이끌고 1대간 9정맥을 주파하며 지역 산악계에 종주 산행의 붐을 불러 일으켰고 최근 타개한 후배 산악인과 함께 사비를 들여 금정산과 백두대간길의 조령산 깃대봉 등 10여 곳에 약수터를 조성한 산사나이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는 법. 그도 오랜 산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무릎이 안좋아져 장시간 산행을 할 수 없다. 대신 3, 4시간 걸리는 정상석이 없는 근교산을 찾아 이정석 대신 이처럼 조그만 팻말형 안내판을 걸어두고 있다.

현재 600여 개 달았으며 이 작업은 다리에 힘이 소진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맛집 하나 소개한다. 22년 전통의 아랑장어구이(055-355-3895). 밀양IC에서 들머리로 가는 도중 국도변에 위치해 있다. 밀양IC에서 정확히 3.7㎞ 떨어져 있다. 주메뉴는 장어정식. 수수전 게장 등 무려 28가지의 반찬에 놀라고 입안에서 살살 녹는 장어맛에 감탄한다. 초벌구이로 기름을 뺀 후 양념을 무려 4번이나 발라 특유의 맛을 낸다. 김해 마산 양산 대구 청도 등의 단골들만 주로 찾으며 주말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을 정도다.


# 교통편 - 밀양터미널에서 신곡리행 버스 이용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IC~밀양 청도 24번~긴늪사거리에서 대구 청도 25번 우회전~상동면 안내판~상동면사무소 지나~신곡 고정 1077번 직진~매화 신곡 1077번 직진~신곡리 마을회관 지나자마자~신곡리 양지마을 이정석 순. 마을회관이나 다리 근처에 주차가능.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밀양행 버스는 오전 7시부터 매시 정각에 출발한다. 55분 소요. 3800원. 밀양터미널에서 신곡리행 버스는 오전 8시50분, 10시50분에 있다. 부산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상동역(옛 유천역)에서 내린다. 오전 7시50분 단 한 차례 있다. 상동역 도착 시각은 8시47분. 4200원. 상동역 건너편 상동파출소 앞에서 신곡리행 버스는 오전 9시5분, 10시55분에 출발한다.

신곡리에서 밀양행 시내버스는 오후 4시, 5시40분, 7시20분에 있다. 이 버스는 도중 상동역 앞에서도 정차한다. 상동역에서 부산행 열차는 오후 4시53분, 7시57분에 있다. 밀양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매시 정각 출발하며 막차는 오후 8시.

 





 

'악!'소리나게 헉헉 오르면 그림같은 합천호 풍광 '아~'
다소 낮지만 옹골찬 바위산, 가파른 암릉길… 빼어난 경관 자랑

악견산 정상에서 바라본 합천호 전경. 그 뒤론 뾰족봉인 금귀봉 등 거창의 고봉준령이 한눈에 들어온다.

합천땅 서쪽에는 국내에서 다섯 번째 규모인 내륙의 바다 합천호가 사시사철 관광객을 유혹한다. 특히 벚꽃이 절정을 이루는 4월이면 백리 벚꽃길이 나라땅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는 산과 무관한 장삼이사들의 생각.

그럼 산꾼들에게 합천호는 어떻게 비칠까. 대략 이렇게 시작되지 않나 싶다.
합천군 서부에 위치한 합천호 주변에는 철쭉산으로 유명한 황매산을 비롯, 소룡 의룡 악견 금성(봉화) 허굴 인덕 논덕 강덕산 등과 거창 쪽의 월여 감악 숙성산 등 크고 작은 아름다운 산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이중 대병면에 위치한 황매 의룡 악견 금성 허굴산은 이른바 ‘대병 5악(惡)'이라 불린다. 암팡지면서도 옹골찬 암봉을 자랑하는 이들 ‘대병 5악’은 합천호의 푸른 물결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대병 5악’은 해발 1108m의 황매산을 제외하곤 의룡 악견 금성 허굴산 모두 400~600m대의 고만고만한 봉우리. 해서, 혹자는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황매산 대신 황강 북쪽의, 대병면과 이웃한 용주면의 또 다른 암봉인 소룡산을 넣어 합천호반 동쪽의 옹골찬 다섯 암봉이라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물좋고 정자좋은 명당은 없는 법.
‘악!'소리 나는 이들 산은 덩치가 왜소해 대부분 3시간이면 너끈히 산행을 끝낼 수 있어 건각들에겐 허전함마저 느껴진다. 참다못한 산꾼들이 인접 봉우리를 이어보려고 해도 능선이 도로 등 개발의 여파로 끊겨 있어 아쉬움만 남는다.

이에 산행팀은 무명에 가까운 의룡산을 악견산과 새롭게 묶어 이어 보았다. 의룡산(485m)은 해발고도로만 보면 동네 뒷산으로 분류되지만 들머리가 거의 해발 50m 정도에 불과한 데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이 연상될 정도로 아주 거칠고 옹골차다. 정상에서 합천호의 일부밖에 볼 수 없지만 대신 합천댐에서 흘러내려온 황강물을 막아 만든 조정지(調整池)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지로 유명한 합천영상테마파크를 바라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악견산(岳堅山·620m)은 이름 그대로 바위덩어리로 이뤄진 악산.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막기 위해 쌓은 악견산성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의룡산과 마찬가지로 천길단애를 이루는 곳이 많으며 무엇보다 산행 내내 늘푸른 합천호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산행은 용주면 용문유원지(용문정)~V자 홈통바윗길~돛대바위~의룡산 정상~사거리 임도~밤나무밭~평학마을 갈림길(삼각점)~통천문(구멍바위)~악견산 정상~철계단~동광가든 입구 순. 걷는 시간만 4시간10분 안팎이지만 주변 경관이 빼어나 이곳저곳 구경하다 보면 예상보다 전체 산행시간이 길어진다.


들머리는 용문유원지. 영상테마파크에서 차로 2분 거리에 위치한 송림. 이곳은 진양 유 씨 문중땅으로 조선 후기 세워진 용문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주차장도 넓다. 도로를 기준으로 우측에 있으며, 좌측은 황강 물줄기를 뒤로 하고 의룡산이 우뚝 서 있다.

용문정슈퍼 맞은 편으로 도로와 계류를 잇따라 건너면 지계곡의 큰 바위가 앞을 막고 있다. 오른쪽으로 돌면 암반길이다. 곧 갈림길. 왼쪽 급경사 오름길로 바로 치고 오른다. 길은 다행히 또렷하다. 곧이어 이번엔 오른쪽으로 치고 오른다. 주변 바위 규모로 봐선 지리와 설악이 연상될 정도다. 발 아랜 방금 달려온 15번 군도와 황강이 나란히 달리고, 용문정 수자원공사 영상테마파크가 한눈에 들어온다. 용문정 뒤 봉우리는 소룡산이다.

처음부터 바위산의 연속이다.

두 손도 이용해야 겨우 오를 수 있다.


           집채만한 바위 사이로 열린 V자 홈통길로 오르는 산행팀. 저 멀리 황강이 확인된다.
황매산의 황포돛대바위를 쏙 빼닮은 돛대바위(왼쪽), 정면의 봉우리는 앞에서부터 악견산 금성산 황매산이다.

 
잠시 뒤돌아보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장소로 유명한 합천영상테마파크가 발아래 펼쳐진다
당겨보면 맨 우측 기차도 보인다. 이 물은 황강호에서 조정지댐으로 흘러내려오는 물이다.

처음부터 혼을 쏙 빼놓는다. 홀로 오르기엔 다소 벅차다.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오른다. 잠시 호흡 조절용 송림길이 이어지다 다시 바위 오름길이 반복된다. 밧줄은 아쉽게도 끊겨 있다. 이렇게 엉금엉금 55분. 점차 시야가 넓어지며 합천 주변의 산이 조망되기 시작한다.

집채만한 바위 사이 V자 홈통길로 50m쯤 오르면 왼쪽엔 전망대, 오른쪽엔 황매산의 황포 돛대바위를 연상케 하는 돛대바위가 눈길을 끈다. 이어 송림길을 2, 3분 살짝 우회하면 정면에 의룡산 정상이 근접해 있다. 의룡산 우측 악견산과 그 뒤 금성산, 그 왼쪽 허굴산, 악견산과 금성산 사이 저 멀리 황매산도 보인다.

이제부턴 발길 닿는 곳이 전망대다. 부부묘를 지나면 우측으로 천길단애인 암릉. 비로소 합천호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자연스럽게 상봉에 닿는다. 들머리에서 대략 1시간30분. 가깝게는 방금 올라온 암릉과 향후 악견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그리고 악견산이 저 멀리 한눈에 가늠되고 멀게는 거창의 산들도 확인된다. 영상테마파크 뒤 탑이 서 있는 오두산과 우측의 두무산, 그 사이 매화산이 보인다. 두무산 오른쪽으로 가야산, 오두산 왼쪽으로 미녀봉 숙성산, 그 왼쪽 뒤 양각산 흰대미산 보해산 금귀봉도 보인다. 합천호 뒤 저 멀리 덕유산도 확인된다.

하산은 암릉길로 직진한다. 4분 뒤 갈림길. 우측으로 내려선다. 10분 뒤 사거리. 왼쪽은 산골마을 오동골, 산행팀은 직진한다. 잠시 송림길로 호흡을 가다듬으면 이내 암릉길. 그리 힘들지는 않다. 십자바위 삼층바위를 잇따라 지나 집채만한 암봉 앞에서 왼쪽으로 에돌아 내려서면 임도 사거리. 의룡산 끝, 악견산 시점이다. 정상에서 45분.

악견산으로 직진한다. 주변이 온통 밤나무밭이다. 소문과 달리 부드러운 육산으로 시작된다. 20분 뒤 갈림길. 오른쪽은 평학마을 하산길, 왼쪽 급경사길로 오른다. 평학마을 가는 10m지점에 삼각점이 있다. 참고하길.

‘악견 본색'은 이때부터 드러난다. 밧줄에 온 몸을 맡겨야 하는 암릉길의 연속이다. 동시에 합천호의 맑은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W자 합천호 사이 뒤로 뾰족봉인 금귀봉이 확인된다.
악견상 정상.
악견산에서 바라본 황천보. 다도해가 연상된다.

집채만한 바위들이 길을 대신한다. 이 놈들은 서로 쌓이고 엉켜 좁은 틈을 형성하기도 하고 아예 너른 굴을 만들어 놓았다. 마침내 정상. 평학마을 갈림길에서 28분. 정상석은 제법 너른 제단 같은 바위 위에 기대어 있다.
하산길에선 합천탬 수문도 보인다.

직진한다. 5분쯤 뒤 갈림길. 어느 길을 택해도 15번 군도와 만난다. 우측길은 군도 입구에 ‘악견산 등산로'라 적힌 안내도가 서 있는 익히 알려진 길. 해서, 왼쪽길로 내려선다. 발 아래로 합천댐과 창의기념관이, 머리 위론 금성산이 점차 가까워 온다. 암릉절벽의 요소요소에 악견산성의 흔적도 남아 있다. 급경사 철계단도 지난다.
40분쯤이면 산을 벗어나 소로를 거쳐 동광가든 앞 15번 군도에 닿는다.

◇ 떠나기전에 - 인근 임란의병 충절 기린 창의기념관

악견산성은 임진왜란때 권양 박사겸 등 합천의 선비들이 의병을 모아 축성, 왜적과 싸웠던 역사의 현장이다. 또 날머리 동광가든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엔 역시 임란때 정인홍 의병장을 비롯한 의병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합천임란 창의기념관(창의사)이 있다.

악견산과 금성산이 관련된 전설도 전해온다. 내용은 이렇다. 당시 왜적들이 장기전을 꾀하자 이웃한 금성산 바위에 구멍을 뚫어 악견산과 줄을 이은 다음 그 줄에 홍의(紅衣)를 입힌 허수아비를 매달아 달밤에 당겼다. 이를 본 왜적들은 신장(神將)이 하늘에서 내려온줄 알고 혼비백산하여 패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악견산에서 금성산으로 가기 위해선 도로를 따라 30분정도 걸어야 한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합천호반 회양관광지 내 선착장 인근 황강호식당(055-933-7018). 일명 합천 똥돼지라 불리는 토종 흑돼지(사진) 전문점이다. 맛으로 승부하기 때문에 참기름이나 파무침 대신 소금과 된장 새우젓, 그리고 묵은 김치만 나온다. 이 흑돼지는 수육으로 먹으면 더 맛있다.
황강호식당 인근에는 지난해 12월 문을 연 합천호 청정사우나가 있다. 워낙 물이 좋아 합천읍에서 군민들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다.

황강호식당 옆에는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101호인 광암정이 합천호를 배경으로 서 있다.

◇ 교통편 - 합천서 대병행 버스타고 용문정 하차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합천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 7시50분, 8시30분, 9시10분에 출발한다. 2시간20분 걸린다. 9000원. 합천터미널에선 평학 대병(용주 대병행은 아님)행 완행버스를 타고 들머리인 용문정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9시30분, 10시, 10시30분에 있다. 1400원.날머리 동광가든 인근에서 합천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시20분, 5시20분, 5시40분에 있다. 합천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 4시30분, 5시10분, 5시50분, 6시20분, 7시(막차)에 출발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군북IC~의령 79번 국도 우회전~합천 의령~의령군 의령읍 안내판~의령 관문 통과~합천 대의~진주 단성~가례 합동주차장 우회전~합천 가례~진주 단성~합천 대의~대의고개쉼터~대의교차로서 고령 합천 33번국도 우회전~합천군 삼가면~쌍백터널 통과~로터리 지나~다리(제2남강교) 지나자마자 좌회전~합천호~합천영상테마파크~수자원공사~용문정 주차장 순으로 가면 된다.

 

 

한 번쯤 봤을 법한 '준·희' 리본 주인공 최남준 2대 산행대장
부인과 함께 올랐던 산에 리본 달아… 자비로 약수터 10여곳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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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준 대장(왼쪽)과 그가 사용하는 오렌지색 리본.
 

명산이건 근교산이건 산깨나 탄 분이라면 산행 도중 '준·희, 그대와 가고 싶은 산'이라고 적힌 주황색 리본을 한 번쯤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한번에 여러 장 걸린 나뭇가지가 아닌 아주 호젓한 산길 제법 높은 가지 위에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이 리본을 단 주인공은 바로 국제신문 제2대 산행대장을 역임한 최남준(66) 씨.

지금은 건건산악회의 고문으로 물러나 있지만 한창 땐 건건산악회를 이끌며 1대간 9정맥을 주파하며 지역 산악계에 종주산행의 붐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다. 개인적으로 그는 1대간 9정맥 중 금남정맥과 금북정맥만 빼고 아마추어 산꾼들을 이끌고 2번씩이나 종주를 한 건각이기도 하다.

그의 산사랑과 가족사랑은 지역 산악계에서도 훈훈한 사례로 회자된다.

리본에 적힌 '준·희'는 최 씨와 10여 년 전 유명을 달리한 그의 부인 이름의 이니셜. 최 씨는 부인이 지병으로 세상을 뜬 후 크게 낙심한 나머지 한동안 산을 끊었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1년 정도 부인의 유품을 치우지 않아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어느날 홀연히 산에 다시 나타났다. '준·희'라고 적힌 리본을 들고서. 데이트도 산에서, 신혼여행도 한라산에 갔을 만큼 산을 사랑했던 그는 부인과 함께 했던 산을 찾으면서 리본을 하나씩 달고 또 달았다.

그의 산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그는 후배 산악인인 조병주 김무길 씨 그리고 최근 타계한 김희조 씨와 함께 사비를 들여 지금까지 10여 곳에 약수터를 조성했다. 백두대간길의 깃대봉 약수터와 조령산 조령샘, 금정산 남문 인근 수박샘, 동문 인근 북바위샘, 장군봉 인근 옹달샘 등이 그가 만든 대표적 샘터이다.

최 씨를 잘 아는 한 지인은 "약수터 조성을 위해선 돈은 물론이고 장마철 평상시 갈수기 가뭄 때 등 적어도 네다섯 번 정도를 가야 하는 성의가 있어야 된다"며 "산을 사랑하지 않으면 엄두도 못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산을 좋아하면서 미장 기술을 가진 사람이 가까이 있다면 계속해서 능선길에 물줄기를 찾아 샘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 씨는 최근 오랜 산행으로 인해 다리가 안 좋아져 정상적인 산행을 할 수 없다. 많이 걸어봐야 3, 4시간이 임계치다. 해서 그는 또 다른 과업에 착수했다. 2만5000분의 1 지형도에 이름이 없거나 정상석이 없는 부산근교의 봉우리에 가로 7㎝, 세로 20㎝ 되는 나무팻말을 달기 시작했다. 현재 500여 개 달았으며 다리에 힘을 남아 있을 때까지 이 작업은 계속될 거라고 했다.

무엇보다 최 씨는 영원한 '국제신문맨'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년여의 국제신문 산행팀과의 인연 때문에 타 신문의 산행대장 제의나 타 방송의 산행 관련 프로그램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사실 최 씨는 기자가 근황을 꼼꼼히 묻자 "니 기사 쓸라고 하나. 사람 우습게 만들지 마라"며 중간에 말문을 닫았다. 그때 기자는 절대 기사화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래도 썼다. 꾸지람 들을 각오를 하면서.


글=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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