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 미야자키현의 신모에다케 화산폭발을 보면서 뜬금없게도 '용감한' 한국인을 떠올렸습니다.

  본격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전에 먼저 보충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라쿠니다케 등산로 입구의 입간판. 화산 폭발 위험 때문에 신모에다케의 등산을 금한다고 적혀 있다.

조금 더 넓게 본 들머리.

약간 올라와서 내려다본 들머리.


   가라쿠니다케 정상 바로 아래에서 본 기리시마 산군. 가운데 푹 꺼진 곳이 지난해 7월과 올 1월 말 화산 폭발을
   일으킨 신모에다케이고 맨 뒤 높은 봉우리가 일본인들이 신성시하는 다카치호미네이다.
  가라쿠니다케에서 기리시마 산군에서 가장 큰 칼데라호(지름 1 ㎞)인 오나미이케(大浪池)로 가는 길이 아름답다.
   한자 표기로 봐선 큰 파도가 일렁이는 못이라는 의미의, 지름이 1 ㎞인 오나미이케(大浪池).


 지난해 11월 초 미야자키현을 다녀왔습니다. 이곳에는 가라쿠니다케라는 산이 있는데 한자 표기가 '韓國岳'이랍니다. 정상적이라면 한국을 의미하는 '강고쿠'를 붙여 '강고쿠다케'라 불러야 하지만 이 산은 '가락국'을 의미한다며 '가라(가야)/ 쿠니(국)/ 다케(산)'로 풀이하더군요.

 '일본서기'에 따르면 4세기 한반도에서는 거듭된 전쟁 때문에 새로운 생활 무대로 일본 열도가 대두하자 가야 백제 신라 유민들이 집단 이주를 하기 시작했답니다. 당시 열도에는 통일된 국가라기보다 호족이 지배하는 소국이 산재해 언어 관습 등이 지역마다 달랐다고 합니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을 '멀리서 온 사람'이라는 의미의 '도래인'(渡來人)으로 불렀답니다. '도래인'은 토목 양잠 등 당시로선 선진기술을 사용했고, 한문으로 외교 문서를 작성하는 등 일본인의 생활 향상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고향을 떠나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미야자키에 정착한 '도래인'도 예외가 아니었겠지요. 보름달이 뜨면 그들은 미야자키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가라쿠니다케에 올라 고향인 한반도 방향을 바라보며 수구초심의 마음을 느끼며 흐느꼈겠지요.

 실제론 가라쿠니다케에서 한국은 아예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고 싶다는 열망의 우회적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라쿠니다케는 미야자키의 서쪽 끝 가고시마와의 경계에 솟아 있습니다. 행정구역으론 미야자키현 고바야市에 똬리를 틀고 있는 셈이지요.

 서론이 너무 길었지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가라쿠니다케는 이번에 화산 폭발이 일어난 신모에다케와 함께 기리시마 연봉이라는 큰 산군에 같이 포함돼 있습니다. 두 봉우리는 걸어서 3시간쯤 걸립니다. 아주 가깝지요.

 기리시마 연봉은 이곳에서 남쪽 60㎞ 해상에 떠있는 섬 야쿠시마와 함께 '기리시마 야쿠시마'라 불리며 일본 국립공원 1호입니다. 각각 화산지형과 울울창창한 삼나무 숲이라는 독특한 자연환경을 보유한 일본의 명승지이지요.

 곳곳에 분화구와 칼데라가 산재해 이국적 풍광을 선사하는 기리시마 산군은 이웃한 가고시마현의 사쿠라지마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 활화산 지대입니다.

 기리시마 연봉에는 크고 작은 봉우리가 많습니다. 주요 봉우리로는 가라쿠니다케(1700m) 시시고다케(1428m) 신모에다케(1421m) 나카다케(1345m) 다카치호미네(1574m) 등 5개. 거리는 13.7㎞로 산행 시간은 넉넉잡아 6시30분이면 충분합니다.

 일본인들은 일본국을 세운 신들이 내려왔다는 전설을 간직한 다카치호미네를 주로 찾지만 한국인들은 가라쿠니다케를 선호합니다.

 해서, 한국인들은 기리시마 연봉 산행 때 들머리를 가라쿠니다케로 잡습니다.
 필자도 한국인인지라 가라쿠니다케의 들머리인 에비노고원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가이드는 '기리시마 네이처가이드클럽' 후루조노(64) 씨였습니다.

 고향이 이곳인 그는 가라쿠니다케만 아마도 수천 번을 올랐답니다. 눈 감고도 오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날은 마침 서울서 왔다는 단체 산행팀 등 한국팀도 두세 팀 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기리시마 연봉은 그야말로 화산지대였습니다. 들머리 건너편의 이오야마라는 화산은 243년 전에 폭발했다가 30년 전쯤에 연기는 났지만 폭발은 하지 않았답니다. 회색빛 화산재가 넘쳐가는 둔덕이었습니다.

 기리사마 연봉 주변에는 화산 폭발의 흔적인 칼데라호가 보였습니다. 지름 1㎞가 넘는 오나미노이케(大浪池)를 비롯 후도이케, 롯칸논미이케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가라쿠니다케 정상 못 미친 지점에선 앞서 말한 5개의 봉우리가 모두 보였습니다. 이번에 폭발을 일으킨 신모에다케는 가운데 푹 꺼진 분화구가 있었습니다. 거의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신성시한다는 다카치호미네도 멀지만 선명하게 확인됐습니다.

 사단은 가라쿠니다케 정상에서 발생했습니다. 동행한 서울팀이 가라쿠니다케에서 이웃 봉우리인 시시고다케로 갈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저희는 여기까지만 보고 하산할 계획입니다. 잘 다녀오십시요."
 "비싼 돈주고 왔는데 끝까지 종주는 해야죠. 그럼 안녕히 가세요."

 이렇게 인사를 하자 옆에 있던 가이드 후루조노 씨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신모에다케는 지난해 5월 초부터 폭발 징후가 보여 입산이 금지돼 있습니다. 결국 지난해 7월 화산 폭발이 있었습니다. 에비노고원에서 출발할 때 입간판을 못 보셨습니까. 이곳에서 지금까지 산행하는 사람들은 한국인밖에 없습니다. 한국인들은 매너가 좋지 않아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모두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후루조노 씨는 자신이 말을 심하게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농담이다"라고 말한 후 밝은 표정을 지으며 딴청을 피웠지만 그 순간의 어색함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 정말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좀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의 입에서 '한국인의 산행 매너 문제'가 바로 나왔다는 사실은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법을 어기는 모습을 봐왔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며 그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지난 7월 화산 폭발 당시의 신모에다케. 이 사진은 후루노조 씨의 친구가 위험을 무릅쓰고 찍었다.
  지난달 27일 폭발을 일으킨 신모에다케.

 그로부터 6개월 뒤 신모에다케는 엄청한 파괴력으로 폭발을 일으켰지요.

 만일 일본인 가이드가 동행하지 않고 아무 정보 없이 한국인들이 산행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하산하면서 에비노고원의 들머리를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입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
 더군요.

 "신모에다케는 분화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등산할 수 없습니다." 평성 22년 5월 6일이니까 지난해 즉 2010년이었습니다. 물론 영어 중국어로도 적혀 있었습니다.

 하산 후 차 안에서 후루조노 씨는 지난해 7월 신모에다케가 폭발했을 당시의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와서 그 사진을 꺼내 비교해보니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귀국한 지 석 달도 채 안 된 지금 신모에다케의 화산 폭발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래서 '화산 폭발 위험을 무시하고 용감하게 달려나간 부끄러운 한국인의 등산 매너'였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가라쿠니다케의 한자 표기 韓國岳에서 '국'자는 원래 약자(口+玉)를 사용하는데 이 놈의 티스토리에서 약자를 카피해서 앉혀보니 엉뚱하게 깨져 어쩔 수 없이 韓國岳을 사용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산 이름은 가라쿠니다케(1700m)지만 한자 표기는 신기하게도 '韓國岳(한국악)'입니다."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이국땅 일본 남규슈 미야자키에서였습니다. 정상적이라면 한국을 의미하는 '강고쿠'를 붙여 '강고쿠다케'라 불러야 하지만 이 산은 '가락국'을 의미한다며 '가라(가야)/ 쿠니(국)/ 다케(산)'로 풀이하더군요. 

 
고대 일본과 한반도와의 연관성을 고려해볼 때 충분히 개연성을 지닌 가설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호기심이 발동해 좀 더 물어봤지만, 현지에서는 아쉽게도 더 나올 게 없었습니다.

  가라쿠니다케 정상 바로 아래에서 본 기리시마 산군. 가운데 푹 꺼진 곳이 지난 7월 화산 폭발을 일으킨 
  신모에다케이고 맨 뒤 높은 봉우리가 일본인들이 신성시하는 다카치호미네이다.


 일본 땅, 그중에서 규슈 남단의 미야자키에서 '韓國岳'이 '가라쿠니다케'로 불리게 된 배경이 무엇이었을까요.

 '일본서기'에 따르면 4세기 한반도에서는 거듭된 전쟁 때문에 새로운 생활 무대로 일본 열도가 대두하자 가야 백제 신라 유민들이 집단 이주를 하기 시작했답니다. 당시 열도에는 통일된 국가라기보다 호족이 지배하는 소국이 산재해 언어 관습 등이 지역마다 달랐다고 합니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을 '멀리서 온 사람'이라는 의미의 '도래인'(渡來人)으로 불렀답니다. '도래인'은 토목 양잠 등 당시로선 선진기술을 사용했고, 한문으로 외교 문서를 작성하는 등 일본인의 생활 향상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고향을 떠나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미야자키에 정착한 '도래인'도 예외가 아니었겠지요. 보름달이 뜨면 그들은 미야자키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가라쿠니다케에 올라 고향인 한반도 방향을 바라보며 수구초심의 마음을 느끼며 흐느꼈겠지요.
하지만 일본의 건국 신화를 다룬 '고사기'에 적혀 있는 내용과 달리 가라쿠니다케에서 한국은 아예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고 싶다는 열망의 우회적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라쿠니다케는 미야자키의 서쪽 끝 가고시마와의 경계에 솟아 있습니다. 행정구역으론 미야자키현 고바야시市에 똬리를 틀고 있는 셈이지요.

 앉은 터로 봐선 결코 평범한 산이 아닙니다. 일본 국립공원 1호의 일부인 기리시마 산 군의 시·종점이자 최고봉입니다. 곳곳에 분화구와 칼데라가 산재해 이국적 풍광을 선사하는 기리시마 산군은 일본의 대표적 활화산 지대입니다. 주요 봉우리는 가라쿠니다케(1700m) 시시고다케(1428m) 신모에다케(1421m) 나카다케(1345m) 다카치호미네(1574m) 등 5개. 한국인들은 가라쿠니다케를 주로 찾지만, 일본인들은 일본국을 세운 신들이 내려왔다는 전설을 간직한 다카치호미네를 선호합니다.

에비노고원에서 가라쿠니다케로 오르는 들머리.

30~40m쯤 올라 내려다본 들머리.


들어리 입구에는 신모에다케의 출입을 금한다는 문구가 한글로 적혀 있다.

해발 1200m로 올라오는 에비노고원의 꼬부랑길. 경남 함양 마천으로 가는 지안재길이 연상된다.

기리시마 산군의 5개 봉우리를 잇는 종주 거리는 13.7㎞로 5시간쯤 걸립니다. 하지만 맨 가운데 신모에다케가 지난 7월 화산 폭발을 일으켜 지금은 종주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은 산행 들머리에 한글로 적혀 있지만, 한국인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용감하게 종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행한 기리시마 네이처가이드클럽 후루조노(63) 씨는 그래서 "한국인들은 매너가 좋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순간 얼굴이 후큰 달아올라 표정 관리하느라 애간장 좀 탔습니다.

          지난 7월 화산 폭발 당시의 신모에다케. 이 사진은 후루노조 씨의 친구가 위험을 무릅쓰고 찍었다.
           들머리에서 약간 오르면 건너편에 구릉이 하나 보인다. 이오야마라는 휴화산으로 242년 전에
              화산 폭발로 인해 만들어진 산이란다. 30년 전 연기는 났지만 폭발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라쿠니다케만 올라 허전하다면 기리시마 산군에서 가장 큰 칼데라호인 오나미이케(大浪池)를 다녀오는 코스를 택한다면 좋을 듯 합니다. 에비노고원에서 오르는 데 1시간20분, 오나미이케까지 1시간, 지름 1㎞인 오나미이케를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30분, 다시 가라쿠니다케까지 1시간, 하산하는 데 1시간 등 모두 5시50분쯤 걸립니다. 

  가라쿠니다케에서 기리시마 산군에서 가장 큰 칼데라호(지름 1 ㎞)인 오나미이케(大浪池)로 가는 길이 무척 아름답다.
  한자 표기로 봐선 큰 파도가 일렁이는 못이라는 의미의, 지름이 1 ㎞인 오나미이케(大浪池).

 미야자키 고바야시 출신으로 평생 이곳을 떠나지 않고 고향을 지켜온 토박이인 후루조노(오른쪽 사진) 씨는 "가라쿠니다케는 아마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눈을 감고도 오를 수 있을 정도랍니다.


그는 이번 주도 5일을 올랐다고 합니다. 하산 후 헤어지기 전 우연히 본 그의 차 트렁크에는 텐트부터 코펠 등 온갖 등산용품이 가득했습니다. 전형적인 산꾼이었습니다.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보이자 그는 웃으면서 마누라에게 오늘 밤 당장 쫒겨나도 견디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예의 사람 좋은 표정으로 농담을 던지더군요.

 가라쿠니다케만 오르려면 차가 올라가는 에비노고원(1200m)에서 왕복 4.2㎞만 걸으면 가볍게 다녀올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의 보통 걸음으로 통상 오를 땐 1시간20분, 정상에서 20분, 하산 때 1시간 정도 잡으면 됩니다. 화산 폭발에 의해 생성된 이 산 정상부에는 온통 붉은빛의 화산암과 흙이 눈길을 끕니다.

 가라쿠니다케 정상에선 기리시마 연봉이 한눈에 보이는 데다 날이 맑을 땐 이웃한 가고시마현의 대표적 활화산인 사쿠라지마가 뿜어내는 하얀 연기까지 보입니다. '韓國岳'이라 적힌 정상 이정표 너머에는 300m쯤 되는 낭떠러지 아래 한라산 백록담의 5배쯤 되는 거대한 분화구가 등산객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먼발치에는 기리시마 산군에서 가장 큰 칼데라호인 지름 1㎞가 넘는 오나미노이케(大浪池)도 시야에 들어온다.

 후루조노 씨는 "5~6월이면 키 작은 산철쭉인 미야마 기리시마가 온 산을 불태워 한국에서도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고 말했다.

 참 한 가지 더 소개할 것이 있습니다. 후루노조 씨는 가라쿠니다케에만 있는 한국 나무가 있답니다. '탐라나무'가 바로 그것입니다. 일본어로는 사외후다기(받아 적긴 적었는데 바로 적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합디다. 다른 산에는 보이지 않고 유독 가라쿠니다케에만 발견된다고 합니다. 매년 8월이면 하얀 꽃을 피운답니다.

탐라나무.

당겨서 찍어봤다.


  전체적으로 생각해볼 때 후루노조 씨의 설명은 앞뒤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상머리에 앉아 10년쯤 된 강의노트 한 권 달랑 들고 강의하는, 공부 안 하는 학자보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사람들이 더 정확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 내용은 발로 뛰며 제대로 공부하는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 두겠습니다. 행여나 이 글을 읽는 분 중 자세한 내용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설명을 좀 해주세요.

처음엔 가파른 길이 계속된다.

무엇일까요. 무인 사람 수 측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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