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라고 부르기엔 유난히 덩치가 큰 지리산. 지리산은 경남 하동 함양 산청, 전남 구례, 전북 남원에 걸쳐 있는 거대한 산괴다. 함양 산청 남원은 동서로 뻗은 지리산 주릉의 북쪽 땅에, 구례와 하동은 남쪽 땅에 위치해 있다.

 피아골은 전남 구례, 불일폭포는 구례와 인접한 화개장터로 유명한 경남 하동에 위치해 있다. 남해고속도로 하동IC로 나와 섬진강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19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이정표가 친절하게 안내한다. 피아골 입구 연곡사와 불일폭포의 들머리인 쌍계사는 차로 10분 거리.


6.25 당시 치열한 격전지 '三紅' 피아골
핏빛 단풍으로 불릴 정도로 아주 고와
피아골 대피소까지 도보로 1시간30분
 
'삼홍' 피아골 단풍

 피아골 단풍을 두고 남명 조식 선생은 '산이 붉게 타니 산홍(山紅)이요, 단풍에 비친 맑은 소(沼)가 붉으니 수홍(水紅)이요, 골짝에 들어선 사람도 단풍에 취하니 인홍(人紅)이라' 노래했다. 그 유명한 삼홍시(三紅詩)다.

만추 피아골은 환상 그 자체.

피아골 하산길의 만산홍엽.


 피아골 단풍 트레킹은 천년 고찰 연곡사에서 시작된다.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화엄사와 함께 세운 연곡사는 신라 사찰의 지리산 입산 1호 사찰.

 이 절을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동부도(국보 제53호)와 북부도(〃 제54호)가 있기 때문이다. 선홍빛 단풍과 동부도의 환상적인 조화는 사진 작가들의 단골 출사지로 손꼽힌다.

 연곡사에서 직전마을 피아골 입구까지는 2㎞. 피아골 입구엔 공용주차장이 없어 차는 대개 연곡사 인근 대형 주차장에 세운다. 굳이 차를 고집하겠다면 식당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물론 산행 전후 식사는 필수.

  피아골의 어원이 되는 '직전(稷田)마을'은 오곡 중 하나인 피(기장)를 가꾸는 밭 즉 피밭이 있던 마을이다. 해서 처음에는 피밭곡(稷田谷)으로 불리다 자연스럽게 피아골로 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직전마을 주민들 중 피 농사를 짓는 가구는 없다. 그 유명한 피아골 다랑이논의 위치를 묻는 질문에 한 주민은 경남 남해에 가면 볼 수 있다고 했다. 격세지감이다.


 피아골 단풍은 알록달록한 티가 없이 그냥 붉다. 그래서 핏빛 단풍이라 불린다. 피아골이 6·25 전쟁 때 빨치산과 국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여서 당시 망자들이 흘린 피 때문이라고 한다. 함태식 선생은 "1984년 피아골 대피소 건립 때 이곳에서 인골 한 트럭분이 나왔다"고 말했다.

 단풍이 목적이라면 피아골 대피소(4㎞)까지만 가면 된다. 1시간30분쯤 걸리지만 선유교 삼홍교 구계포교 선녀교 등 4개의 다리를 왔다갔다하며 계곡의 비경과 선홍빛 단풍을 렌즈에 담다 보면 훨씬 더 걸릴 수도 있다. 고개를 들면 핏빛 단풍이 물들어 있고, 머리를 숙이면 맑은 계곡물이 수줍은 듯 단풍빛을 토해내는 절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흔들다리인 구계포교.

 피아골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삼홍교까지 35분, 흔들다리인 구계포교까지 17분, 대피소 입구 선녀교까지 43분 정도 잡으면 된다. 산꾼들은 노고단~임걸령~피아골의 4시간30분 코스나 반선~뱀사골~화개재~임걸령~피아골의 8시간 코스로 등산할 수도 있다.

3 0~31일 피아골 일원에서는 '삼홍(三紅)과 함께하는 오색단풍 여행'이란 주제로 제34회 피아골 단풍축제가 열린다. 지난 23일 피아골 삼홍교와 구계포교 중간쯤까지 내려와 물들고 있을 단풍은 오는 31일쯤 절정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까지 2.4㎞, 1시간 걸려
60m 높이 불일폭포 주변은 화엄 세계 방불케 해
단풍은 이번 주 보다 다음 주에 더 좋을 듯

 
화엄 세계 따로 없는 불일폭포

 겸재가 그려 더욱 유명해진 불일폭포도 피아골 단풍과 마찬가지로 '지리산 10경' 중 하나. 60m  높이에서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 때문에 여름철에 주로 찾는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도 그의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에서'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려면,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라고 표현했을 정도.

하지만 만추의 불일폭포도 폭포의 장엄함과 함께 폭포 옆 기암절벽을 울긋불긋 뒤덮는 화려함이 어우러져 마치 화엄의 세계를 방불케 한다. 

불일폭포에서 불일평전으로 하산하는 등산객들.

 불일폭포 가는 길의 들머리는 화엄사와 함께 지리산에서 가장 관람객이 많은 쌍계사. 최치원이 짓고 친필로 쓴 것으로 알려진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 제47호)를 잠시 둘러보고 9층 석탑 좌측 계단으로 올라선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옆 사진)까지는 2.4㎞. 처음 300m는 가파른 돌계단이라 힘들다. 이후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이면 닿는다. 도중 쌍계사의 유일한 산내 암자인 국사암 갈림길도 만난다. 200m 정도 거리여서 잠시 다녀오자. 문 앞을 지키는 1200년 된 느티나무를 놓치지 말자. 가지가 사방 네 갈래로 뻗은 이 거목은 일명 사천왕수(四天王樹)로 불린다.

 최치원이 지리산에 은거하면서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환학대를 지나면 뜻밖에도 너른 평지가 기다린다. 세석평전 돼지평전처럼 지리산에서 몇 안 되는 평전이다. 불일평전이다. 3년 전 작고한 변규화 선생이 30여 년간 머문 '봉명산방'이라는 작은 휴게소가 있다. 마당에는 변규화 선생이 만든 한반도를 닮은 작은 연못과 소망탑이 보인다.

 불일폭포는 휴게소에서 10분 거리. 가파른 오르막 끝에 불일암이 있고 그 아래로 내려서면 폭포가 보인다. 피아골보다 해발이 낮아서인지 폭포 주변에만 단풍이 약간 물들어 있을 뿐 아직은 초록이 우세하다.

불일암에서 본 풍광. 담을 낮춘 운치가 엿보인다.

화개골에 살며 이곳을 가끔씩 찾는 여성 산악인 남난희 씨는 "지리산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했다. 피아골은 이번 주말, 불일폭포는 그 다음 주말까지 기다려야 단풍을 볼 수 있을 듯하다.

■ 지리산 능선을 닮은 함태식·남난희

 함태식 선생(아래 사진)은 현재 환경부 촉탁직을 맡아 연곡사 입구 작은 통나무집을 사무실로 쓰고 있다. 소임은 '지리산 지킴이'로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오후 6시에 퇴근한다. 피아골 탐방지원센터 한 쪽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


 피아골 산행에 동행할 수 없느냐는 요청에 "난 이제 국가의 녹을 먹고 있어 근무해야 하며, 지금은 젊은이들과 보조를 못 맞춘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대한산악연맹 부산연맹이 주최한 '부산산악문화축제'에서 지리산 보존과 한국 산악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정대상을 받았다. 뒤늦게 소감을 묻자 "산에서 쫓겨난 늙은이 위로할려고 준 거야. 그래도 막상 받고 나니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고. 큰 상도 받았는데 남은 삶을 지리산을 위해 바쳐야지."


 산에서 내려온 그는 요즘 무척 기운이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체중도 3㎏나 쪄 63㎏, 허리도 2인치 늘어 36인치라고 했다. 평지를 걸으면 중심이 약간 흔들린다고도 했다. "여기도 산이잖아요"라는 농담을 던지자 "피아골 대피소가 있는 해발 900m는 돼야 산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뜸 케이블카 얘기를 꺼냈다. "비록 난 환경부 직원이지만 지리산 케이블카는 절대 반대야. 몸이 불편한 사람도 산에 오를 권리가 있지 않느냐고 하는데 난 대를 위해선 소를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해."

 여성산악인 남난희 씨는 얼마 전 17세 아들과 단둘이 백두대간 종주를 끝냈다. 그는 지리산 자락에서 자연을 무대로 뛰놀던 아들이 대간 종주를 통해 어른이 돼 가고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한때 국내 산악계를 호령하던 그가 지금은 비록 산을 내려왔지만 아들만은 산과 소통하며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 산악인 남난희.

뭐랄까, 함태식 선생은 부드러우면서 꼿꼿함이, 남난희는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분위기가 풍겨나왔다. 아마 지리산 덕분일 게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지리산의 능선을 빼닮았다.

■ 가볼 만한 단풍 축제

단풍이 남쪽으로 그 세력을 떨치고 있다. 단풍이 특히 고운 산을 끼고 있는 전국 각 지자체들은 축제를 마련해 산꾼들을 유혹하고 있다.
 
 전남 장성군 백암산 기슭에 위치한 고불총림 백양사에서는 11월 5~6일 백양단풍축제가 열린다. 대한8경 중 하나인 백암산 백양사 단풍은 전국에서 가장 선명하고 빛깔이 고운 애기단풍으로 유명하다. 쌍계루의 단아한 자태와 백암산 중턱의 백학봉의 멋진 조화가 일품이다.
 
 이웃한 내장산에서는 31일 내장산단풍 부부사랑축제가 열린다. 내장산 단풍은 금산사의 벚꽃, 변산반도의 녹음, 백암산 설경과 함께 호남4경으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걸출한 산세 또한 일품이라 산꾼들이 즐겨 찾는다.

피아골과 쌍벽을 이루는 지리산 뱀사골은 지난 24일 '단풍이 없는 단풍제'를 개최했다. 하지만 단풍은 피아골과 마찬가지로 이번 주말부터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서 가장 단풍이 늦게 물드는 전남 해남 두륜사 대흥사(아래 사진)에서는 올해부터 축제는 없지만 11월 6~14일 아름다운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다.

전남 해남 두륜산 대흥사 부도전.

지리산 핏빛 단풍 소식 (1)편은 여길(http://hung.kookje.co.kr/508)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미답의 늘푸른 산죽능선, 좀처럼 못보는 볼거리
하산길엔 소설 '토지'의 무대 회남재 옛길도 만나

눈덮인 히말라야 연봉에 비견되는 지리산 천왕봉. 대개 처음 보는 순간 발걸음이 멈춰진다.
 

 민족의 명산 지리산 천왕봉을 향해 중산리 코스를 힘겹게 오르다보면 우측 건너편의 마루금 전체가 추수를 앞둔 황금들녘을 연상시킨다. 바로 천왕봉에서 동남쪽으로 길게 뻗은 황금능선이다. 써리봉에서 국사봉을 거쳐 구곡산에 이르는 장장 20㎞의 이 능선에는 산죽이 지천이다. 이 산죽이 햇빛을 받아 반사되면 황금빛으로 물든다고 해서 명명됐다. 지금은 비법정 탐방로라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올 첫 산행지 하동 깃대봉에도 황금능선에는 비할 바 못되지만 아주 인상적인 산죽길이 펼쳐진다.

조릿대라 불리는 늘푸른 산죽은 사실 봄 여름 가을엔 있는 듯 없는 듯 철저히 조연에 불과하다가 낙엽이 지고 숲이 앙상해지면 예의 초록빛을 발하며 숲의 주인공으로 단연 부각된다. 특히 눈 온 뒤 그 자태는 옛 선비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깃대봉은 영신봉에서 갈라져 나와 삼신봉 내삼신봉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지리산 남부능선에서 동남쪽으로 한 번 더 뻗은 지리산 호위봉 중의 하나. 베테랑 산꾼들도 금시초문이라 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도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무명의 산이다.
 

좀 더 피부에 와닿게 설명하자면 묵계와 악양을 잇는 회남재 동쪽에 위치해 있다. 참고로 회남재를 정점으로 서쪽으론 시루봉~원강재~성제봉(형제봉)이 이어진다.

익히 알려진 대로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는 천왕봉을 기준으로 북쪽인 함양 마천면 금대산과 남쪽의 하동 삼신봉. 깃대봉은 이들 두 봉우리만큼은 못하지만 산행 도중 히말라야를 연상케하는 눈덮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펼쳐진 주능선의 웅장함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산행에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하산길의 회남재. 악양 벌판과 함께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됐던 이곳은 하동서 청학동을 거쳐 지리산으로 곧장 연결된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의 물자보급로 역할을 했다. 다시말해 악양에서 곡식과 가축 등을 수집한 빨치산이 이곳을 거쳐 아지트인 지리산으로 넘어갔기에 국군 토벌대와 빨치산의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것.

회남재는 또 청학동 인근의 묵계사람들이 하동장(場)으로 오는 길이자, 악양에서 청학동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우리 할머니 세대의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한동안 문경새재길 등과 함께 추억의 옛길로 분류됐으나 최근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동군이 도로개설을 추진, 논란이 일고 있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

 산행은 악양 중대리 상중대마을회관~임도개설비~계곡수 건너~옛 집터흔적~능선~임도~무명봉~깃대봉 갈림길~산죽능선~회남재~사랑의 집~등촌리 덕기마을(버스정류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10분 안팎이며 들머리에서 능선까지의 일부 구간에서 길찾기가 애매모호할 뿐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일사천리로 내달릴 수 있다. 들머리 상중대마을회관 앞에서 먼저 주변 산세를 살펴보자.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두 암봉 사이에 걸린 구름다리가 보이는 신선봉과 그 우측으로 성제봉 시루봉이 조망된다. 참고하길.


마을회관에서 포장로를 따라 오르면 이내 갈림길. 왼쪽 상중대교 대신 우측으로 간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지나면 또 갈림길. 이번엔 개울따라 왼쪽으로 간다. 11시 방향으로 저 멀리 보이는 V자 잘록이가 회남재로, 산행팀은 이곳으로 하산한다.

작은 다리를 건너 황토집을 지나 임도개설비 앞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간다. 우편함이 걸린 아름드리 소나무를 지나 포장로를 따라 오르면 우측에 널따란 개울이 흐른다. 이 개울을 건너면서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마을회관에서 25분.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주능선을 향해 무작정 오르는 산꾼들.

앙상한 가지의 활엽수림 대신 산기슭에는 푸른 소나무가 지천이다. 등로는 지그재그 오르막길. 잘 빠진 미끈한 청자보다 다소 투박해 보이는 분청을 닮은 고풍스럽고 정감이 가는 옛길이다. 빛바랜 솔가리와 카키색 낙엽의 조화 또한 운치있다. 양지 바른 터에 위치한 두 기의 묘지를 지나면 옛 집터. 푹신푹신한 낙엽융단길이 열려 있는 왼쪽으로 향한다. 일순간 냉기가 느껴진다.

물마른 계곡을 건너면 산죽길. 고개 들면 낙엽송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너덜 오름길이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무척 괴롭다. 음지엔 잔설도 남아 점입가경이다. 이렇게 10여 분. 비로소 산허리를 돌아 제대로 된 산길을 조우한다.

20분 뒤 마침내 능선에 닿는다. 정면으로 보이는 마을은 해발 500m쯤의 논골.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이 출몰할 때 한 명의 주민도 다치지 않은 오지 마을이다. 정면 깃대봉을 바라보며 왼쪽으로 내달린다. 약간의 오름길과 내리막이 반복되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17분 뒤 임도. 왼쪽 5m 지점 대각선 방향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이때부터 된비알의 연속. 무명봉을 넘어 5분 뒤 산죽길. 정글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깃대봉을 내려서면 만나는 산죽능선. 산죽은 회남재까지 이어진다. 여성들은 특히 피부 손상에 유의해야 할 정도로 빽빽하다.
           산죽능선은 한동안 계속된다.

산세로 봐서 능선을 갈아타는 지점이다. 깃대봉 정상은 2만5000분의 1 지형도상 우측으로 얼마 안되는 거리이다. 하지만 빽빽이 들어선 키 큰 산죽길을 도저히 뚫을 수 없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왼쪽으로 간다. 산죽능선의 연속이다. 헤집고 150m쯤 가면 첫 전망대. 눈덮인 천왕봉을 비롯 써리봉 중봉 제석봉 장터목 촛대봉 영신봉과 그 앞 내삼신봉 삼신봉 외삼신봉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그 유명한 청학동도 보인다.

깃대봉 산죽능선을 내려서면 만나는 전망대 뒤로 저 멀리 형제봉(성제봉)이 보인다.

7분 뒤 두 번째 전망대. 주변 조망은 더 넓다. 삼신봉 왼쪽으로 시루봉 원강재 성제봉 신선봉, 악양 벌판 뒤 섬진강 건너 둥그스런 또아리봉 도솔봉 백운산 억불봉이, 다시 왼쪽으로 칠성봉 구제봉 금오산과 저 멀리 광양제철소도 확인된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 토벌대와 빨치산의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회남재.

전망대 바위를 내려서면 또다시 산죽. 미로같은 죽림의 길이라 오랜 추억거리로 남을 듯하다. 회남재는 여기서 15분. 청학동(6.4㎞) 묵계(4.3㎞) 악양(10.6㎞)으로 각각 열려 있는 세 개의 임도와 시루봉, 그 왼쪽으로 열린 하산길, 방금 산행팀이 내려온 길 등 모두 여섯 개의 길이 만나는 고개이다. 회남재의 역사를 알리는 안내 그림판이 두 개 서 있고, 또 다른 두 개는 하산길 옆에 쓰러져 있다.

하산길은 무지 심한 급경사 내리막길. 태풍으로 계곡 골짜기가 망가져 있다. 급비탈에선 큰 돌이 굴러 조심해야 한다. 50분이면 도로를 만나고, 여기서 요양시설 ‘사랑의 집'을 지나 버스정류장이 위치한 등촌리 덕기마을까지는 15분 걸린다.

# 떠나기전에 -
키 훌쩍 넘는 산죽이 이중삼중… 정상 난공불락

고백컨대 정상을 밟지 못한 산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흔히 남 탓 하지말라고 하지만 이번만은 산죽 탓 좀 해야겠다. 어른보다 키가 큰데다 이중 삼중으로 너무 촘촘하게 자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산행대장과 함께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산행팀 말고도 다른 산꾼들이 수차례 길을 뚫으려고 시도한 흔적이 입구에 역력하다. 여하튼 난공불락의 요새다. 설령 뚫고 들어가더라도 산죽의 연속이라 정상 확인은 힘들 성싶다. 지도와 현장은 또 다른 법이란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회남(回南)재'란 이름은 남명 조식 선생이 명명했다. 그는 이 터를 보고 골이 좁고 물이 섬진강으로 곧장 빠져 길지(吉地)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발길을 남으로 돌렸다고 전해온다. 청학동이 위치한 청암면의 '묵계(默溪)' 또한 그 이름이 흥미롭다. 이곳은 해마다 큰 폭우가 쏟아져 다 휩쓸려 내려가 냇물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해서 붙여졌다 한다.

 재밌는 얘기 하나. 악양주민들은 악양면 시루봉 아래 청학이골을 '진짜' 청학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라 믿고 있으며 지금의 청암면 삼신봉 밑의 청학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새해, 아무도 밟지 않은 처녀지 깃대봉을 적극 추천한다.

# 교통편 -
하동터미널서 악양행 버스나 택시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하동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 첫 차를 시작으로 1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2시간30분 걸린다. 하동터미널에서 들머리인 악양면 중대리 상중대마을회관(노전 버스정류장)으로 가기 위한 연계버스는 시간이 맞지 않아 악양면소재지로 가서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하동터미널에서 악양행 버스는 오전 8시 첫 차를 시작으로 40~5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이곳에서 악양개인택시(055-883-3009)를 이용한다.

날머리 덕기마을에서 하동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시10분, 5시20분(막차)에 출발한다. 혹 시간이 맞지 않을 경우 악양면소재지로 택시(5000원)를 이용, 악양우체국 옆 악양마트 앞에서 터미널행 버스를 타야 한다. 오후 3시35분, 4시25분, 5시15분, 5시45분, 6시35분(막차). 1100원. 하동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30분, 5시30분, 6시30분, 7시30분(막차)에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하동IC~하동 구례 쌍계사 방면 19번 국도 우회전~남원 구례 직진~구례 쌍계사 직진~악양 1003번 지방도~악양우체국 지나~상(하)중대마을 이정표 우회전~중대교 지나~상중대마을회관 순. 날머리 덕기마을에서 들머리 상중대마을회관 앞까지 택시를 이용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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