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추월산보다 못 하나요"
담양호 낀 추월산에 가려 지명도만 낮을 뿐
한국의 100대 명산에 넣어도 어색하지 않아
이창우 대장 "주능 암릉은 병풍산이 한수 위"
발밑 천길 낭떠러지, 주변 기암괴석 진열장
하산길 삼인산, 조선 개국 하늘에 알린 산

산 이름 그대로 병풍산의 암릉은 헌걸차다. 

수년전 지난해 이 지면을 통해 경남 거창 좌일곡령이 신세타령을 한 적이 있다. 해발 1258m로 꽤 높은 암봉이지만 '고개 영(嶺)' 자로 끝나 고갯마루로 오해를 받곤 한다는 좌일곡령은 이웃한 펑퍼짐한 단지봉은 기억하면서 방금 지나가 놓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발하자 거창군수에게 정상석 하나 세워달라고 하소연을 토로했다.

좌일곡령 이후 산행팀에게 할 말이 있다며 지면을 할애해 달라는 또 하나의 봉우리가 나타났다. 대나무의 고장 담양 병풍산이다.

 병풍산(822m)은 알고 보니 추월산(729m)의 명성에 가려 존재조차 가물가물한 산으로 푸대접을 받고 있었다. 추월산은 기암괴석과 담양호가 어우러져 수년 전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에 포함될 정도로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한마디로 담양호를 끼고 솟은 가파른 비탈의 추월산 그림자가 담양의 다른 산 이름을 몽땅 뒤덮고 있어 담양 최고봉인 병풍산이 어디 명함 한 장 내놓을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다.

국내 200대 또는 300대 명산에도 이름을 찾을 수 없는 병풍산은 과연 어떤 산이기에 이렇게 목소리를 내면서 하소연을 하는 것일까. 병풍이란 이름을 가진 거의 모든 산이 그렇듯, 담양 병풍산도 여러 폭의 병풍이 둘러쳐진 모습을 한 헌걸찬 암봉이다.

 먼저 담양사람들이 본 병풍산. 한 산꾼은 "추월산에 비해 떨어질 것이 없는 명산"이라고 잘라 말한 뒤 "이웃한 광주시민들은 추월산보다 병풍산을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이창우 산행대장은 "주능선인 보리암 쪽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추월산이 운치있지만 주능선상으로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암릉은 아무래도 병풍산이 한 수 위인 것 같다"고 평했다. 아직 아마추어에 불과한 기자 또한 만일 담양호를 빼고 산세와 주변 조망만을 볼 때 병풍산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산행은 담양군 수북면 대방리 송정마을(대방저수지 옆 주차장)~731봉~천자봉(옥녀봉)~넙적바위(733m)~병풍산(깃대봉)~돌탑봉(806m)~투구봉 갈림길~용구샘 갈림길~용구샘~만남재~삼각점 갈림길(564봉)~삼인산~담양국제수련원 주차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40분 정도 걸리며 길 찾기는 이정표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어 그리 어렵지 않다.


산행 들머리. 좌측 대방지가 보인다.

이제 주능선에 올라선다.


이제 헌걸찬 암릉이 나목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넙적바위를 지나 가파른 철계단을 힘겹게 올라서니 정상이 아니었다. 정상은 이곳에서 10분쯤 더 걸어야 만난다. 이 처럼 병풍산의 암릉길은 한동안 이어진다.

갈림길. 홍길동우드랜드로 가면 추월산을 거쳐 호남정맥으로 이더진다.

암릉과 암릉 사이에 쉬어가라고 너른 쉼터도 있다.


 들머리는 대방지 옆 간이주차장. 입구에 '솔잎 혹파리 나무주사 놓은 곳'이라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바로 산길로 들어선다. 우측 전주 이씨묘가 보인다. 50m쯤 뒤 갈림길에선 왼쪽으로 간다. 대낮인데도 파란 하늘 한점 보이지 않는 어둠침침한 침엽수림 숲길이다. 10여 분 뒤 '갈 지(之)' 자 오름길로 변하면서 이후 쭈욱 된비알을 따라 오른다. 숲의 우점종인 키 큰 소나무의 솔잎은 제법 변색돼 있으며 그 사이사이로 키작은 활엽수들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들머리에서 50분, 병풍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농짝만한 바위 사이로 급경사 오름길로 변하고 여기서 한 굽이 더 오르면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암릉길이 기다린다.

산행기점에서 70분이면 너른 터에 운치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731봉에 선다. 비로소 힘든 구간은 끝난다. 조망은 기가 막히다. 정면 천자봉, 우측으로 용구산과 투구봉이, 투구봉 뒤로 추월산과 산성산 강천산 그리고 담양읍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또 10시 방향으로 병풍산, 그 좌측으로 제2병풍산이라 불리는 이웃한 장성의 뾰족봉인 불다산, 다시 왼쪽으로 삼인산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들머리를 기점으로 산행팀은 병풍산줄기를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셈이다.

5분이면 천자봉(옥녀봉)에 선다. 조그만 정상석과 돌탑이 서 있다. 왼쪽 병풍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때부터 눈앞에 펼쳐지는 크고 작은 암릉과 암봉을 오르내린다.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로 발길 닿는 곳이 모두 전망대다. 그렇다고 바윗길만은 아니다. 낙엽길도, 금빛 억새길도, 늘푸른 산죽길도 잇따라 통과한다.

당연히 정상인 줄 알았던 암봉을 우회해 오르니 아뿔싸, 정면의 두 개의 봉우리가 어서 오라 손짓한다. 대방지와 삼인산이 시원하게 보이는 넙적바위를 지나 가파른 철계단을 힘겹게 올라서니 이번에도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발밑은 천길 낭떠러지인 데다 주변이 기암괴석 진열장이고 주변 조망은 환상적이어서 그렇게 기분이 나쁘진 않다. 병풍산 정상은 10분 뒤. 정상석이 서 있고 가장 높을 뿐 사실 감흥은 별 차이가 없다. 정상 직전 우측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하나 있다. 물론 이정표가 있다. 송대봉, 홍길동우드랜드 가는 호남정맥길로, 이 길은 추월산을 거쳐 내장산으로 이어진다.

병풍산 정상.

이제 돌탑봉을 향한다. 주변 풍광이 그림같다.



이어지는 암릉길. 돌탑봉과 또 다른 암봉을 지나 그림같은 억새군락지를 지나면 투구봉(신선대) 갈림길. 병풍산에서 15분. 직진해서 투구봉을 넘어서는 방법이 하나요, 왼쪽 마운대미로 내려서서 용구샘을 보고 가는 길이 또 하나다. 이 두 길은 결국 만남재(만남의 광장)에서 만난다. 산행팀은 용구샘으로 갔지만 또 다른 팀은 투구봉으로 올랐기에 두 길 모두 국제신문 노란 안내 리본을 달아놨다. 참고하길.

용구샘 가는 길은 급내리막길로 침목계단을 덧대놨다. 5분 뒤 용구샘 갈림길. 왼쪽으로 3분쯤 가면 입구가 1.5m쯤 되는 굴 안에 두 평 남짓한 깊은 샘이 보인다. 용구샘이다. 병풍산 낭떠러지 아래쯤 된다. 오래 전엔 등산객들의 귀중한 식수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음용수로는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입구엔 바가지와 양동이가 놓여 있다.

병풍산 낭떠러지 아래에 위치한 용구샘.

만남재.


 이어지는 침목계단. 10분이면 급내리막 침목계단이 끝나고 이후 우측 산허리길로 걷는다. 8분이면 만남재에 닿는다. 오거리다. 좌측 철망문 못가 열린 산길은 수련원(야영장), 직진하면 장성군, 우측은 투구봉에서 내려오는 길, 산행팀은 10시 방향 좌측 무덤 쪽 삼인산 방향으로 향한다. 처음부터 된비알의 연속이다. 10분 정도 혼을 쏙 빼놓는다. 이후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우측으로 불다산, 뒤돌아보면 투구봉이 우람하게 솟아 있다. 약간 거칠지만 외길이라 23분 뒤 삼각점 갈림길. 잠시 고개들어 방금 지나온 산줄기를 바라본다. 영락없는 병풍(屛風) 그 자체다. 역시 산 이름은 산 아래 마을이나 산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서 봐야 제 모습이 드러난다.   

삼인산으로 가는 도중 방금 지나온 병풍산이 보인다.

이성계가 조선 개국을 하늘에 알렸다는 삼인산 정상.


삼인산 하산길.

한국전쟁참전유공자비를 지난다.


 

산행 날머리.

등산 안내도. 여기서 들머리까지는 300m.


하산은 왼쪽으로 내려선다. 14분이면 임도 겸 삼인산 쉼터. 벤치가 있으니 잠시 쉬어가자. 이곳은 만남재에서 좌측 임도로 오면 만난다. 때문에 체력이 약간 부칠 경우 방금 지나온 작은 봉우리를 넘지 말고 임도로 바로 와도 된다. 우측 보이는 고봉이 무등산이다.

삼인산은 왼쪽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 열린 산길로 오른다. 27분쯤 뒤 만나는 전망대에 서면 병풍산 전체와 대방지 옆 들머리와 전주 이 씨묘 그리고 수련원 등이 한눈에 확인된다. 전망대에서 3분이면 삼인산 정상. 조그만 정상석이 서 있고 그 옆에는 돌탑이 조성 중이다.

하산은 직진 방향. 40m쯤 뒤 갈림길. 직진하면 능선을 따라 심방골 방향, 산행팀은 원점회귀를 위해 왼쪽 수련원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쏟아지는 급경사 낙엽길이다. 30분 뒤 무덤을 지나면서 경사가 한풀 꺾이고, 여기서 14분이면 산을 벗어난다. 한국전쟁참전유공자비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수련원 주차장에 닿는다. 여기서 300m쯤 저수지를 따라 걸으면 들머리 주차장에서 도착한다.

◆떠나기 전에 - 대나무에 넣고 삶은 대통 암뽕순대 별미

전남 담양 수북면과 전북 장성 북하면을 가로지르는 병풍산은 경북 봉화 청량산을 연상시키는 암릉 종주 산행의 백미이다. 산행 중 이정표 상의 봉우리 명칭이 통일이 안돼 있다. 천자봉이 옥녀봉이며, 병풍산 상봉이 깃대봉이다. 둘 모두 정상석에는 그러한 명칭이 없지만 정상 직전 호남정맥 갈림길 앞 이정표에는 천자봉, 병풍산 대신 각각 옥녀봉, 깃대봉이라 표기돼 있다.

사실 병풍산만 타면 산행시간이 3시간30분 남짓한 데다 임도를 오랫동안 걸어야 돼 산행팀은 삼인산(三人山)을 이어 붙였다. 알고보니 삼인산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개국을 하늘에 알렸던 의미있는 산이다.

다시 말해 이성계는 자신의 등극을 위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하던 중 '삼인산을 찾아라'는 성몽을 꾼 끝에 찾아낸 산이다. 제를 올리고 신성시 했다고 전해온다. 정작 삼인산이란 명칭은 산의 형태가 '사람 인(人)' 자를 겹쳐 놓은 형국이라 한다. 실제로 정상 부분이 약간 펑퍼짐하다.

삼인산은 또 산청 필봉산, 영양 주실마을 앞 봉우리, 임실 문필봉 등과 함께 유명한 문필봉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필봉이 바라다 보이는 동네는 한결같이 한가락 하는 인물들이 배출됐다고 전해온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담양시장(담양5일장) 내에 위치한 옛날 순대집(061-381-1622)이다. 주 메뉴는 '대통 암뽕순대'(사진). 식용 비닐에 당면 들어간 순대와는 천양지차다. 돼지 창자 속에 선지 우거지 깻잎 파 시금치 (간)고기 찹쌀 녹두 참기름 들기름과 갖은 양념을 넣고 찐다. 여기까지는 여느 순대집과 대동소이하다. 비결은 1m 길이의 대나무에 넣어 1시간 정도 삶는 것. 비린 냄새 제거는 물론이고 물에 삶을 때와 달리 양념이 빠져나가지 않아 맛이 훨씬 뛰어나다. 대통 암뽕순대 (대) 1만 원, (소)5000원, 순대국밥 4000원. 장날에는 인산인해여서 한참 기다려야 한다.

◆교통편 - 호남고속도로 옥과IC로 나와 15번 국토 타야

대중교통편은 당일치기로 불가능하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옥과(화순 오산)IC~옥과 방면 15번 국도 좌회전~정읍 담양 15번 좌회전~담양군 무정면~정읍 담양 대나무박물관 죽녹원 우회전~정읍 담양~장성 백양사 직진~광주 장성 13, 24번 국도 좌회전~광주 13번 국도~광주 장성 13, 24번~수북 방향 우회전~수북중 지나~청소년야영장(수련원)~대방저수지 옆 간이주차장 순. 주차장이 좁을 경우 300m 더 가서 수련원 입구 주차장에 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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