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밖에서 보는 지리산 절경
오도재 위치한 지리산 제1문 들머리로
산행시간 4시간30분… 외길 이어져

너무 가까워 지리산 천왕봉의 사태난 부분까지 보인다.

금대산 정상에서 본 지리산 주능선. 가운데 제일 높은 봉우리가 천왕봉이며 주능선 앞 우측 봉우리가 창암산이다.

 북녘의 백두산과 금강산을 제외하면 지리산은 대부분의 산꾼들이 모산으로 여기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동경의 대상이라 하면 너무 거창한 듯 하지만 하여튼 늘 가고 싶은 대상임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평소 뜸하던 산꾼들도 지리산이라 하면 배낭을 챙겨 슬그머니 버스에 몸을 싣는 것이 산악회의 일상사다. 이런 단적인 사례 하나만 보더라도 지리산의 무게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번 주 산행팀은 지리산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다. 코끼리를 타고 코끼리 전체를 자세히 볼 수 없듯 지리산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지리산 인근의 봉우리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바로 함양의 삼봉산과 금대산이다.

서쪽에는 백두대간이 길고 긴 병풍을 치고 있고, 남북으로 각각 지리와 덕유가 첩첩이 벽을 두르고 있는 산의 고장 함양땅에서 삼봉산과 금대산은 사실 명함 내놓기가 좀 쑥스럽다.

산세로 봐서 거망이나 황석에 비할까, 해발고도로 남덕유에 갖다 붙일까. 어디 하나 뚜렷하게 내세울 것 없는 삼봉산과 금대산이 전국 산꾼들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까닭은 바로 조망의 산, 다시 말해 ‘지리산 전망대'로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삼봉산과 금대산보다 지리산 주능선에 더 가까이 위치한 삼정산도 지리산 전망대라 할 수 있다. 하나, 너무 턱 밑에 있어 일부 봉우리가 인근 봉우리에 가려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창우 산행대장은 “삼봉산과 금대산에 서면 서쪽 끝단의 노고단을 제외한 지리산 주능선의 모든 봉우리들과 거미줄처럼 얽힌 주요 계곡들을 일일이 식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번 코스의 들머리이자 함양에서 지리산으로 가는 오도령 정상에는 볼거리인 ‘지리산 제1문'이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오도재의 지리산 제1문.

산행은 오도령(773m)~관음정~촉동 갈림길~헬기장~삼봉산(1187m)~헬기장~창원마을 갈림길~등구재~백운산(927m)~금대산(847m)~금대암 순. 삼봉산에서 남쪽으로 백운산을 거쳐 금대산으로 내달리며 동서로 장대하게 뻗은 지리산 주능선을 클로즈업하는 형식이다. 걷는 시간만 4시간30분 안팎이며 거의 외길이라 길찾기는 아주 쉽다.


오도령(悟道領)은 서산 대사의 제자인 인오 조사가 이 고개를 오르내리며 득도했다고 붙인 이름이자 가루지기전의 변강쇠와 옹녀가 전국을 떠돌다 마지막에 정착한 등구마을 인근으로 역사와 전설이 서린 곳이다.

주차장 입구의 ‘오도령'이라 적힌 이정석과 ‘지리산 제1문' 그리고 산신각을 지나면 ‘삼봉산'이라 적힌 나무팻말이 걸려 있다. 목장승길 대신 산신각 왼쪽 낙엽길로 오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오른쪽 저 멀리 함양읍이 보인다.

산행 초입 전망대인 관음정에서 본 지리산 주능선.

80m쯤 급경사길로 오르면 전망대인 관음정. 지리산 조망을 우선 맛보기 해보라는 의미인 듯하다. 한눈에 봐도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시원하게 펼쳐지고, 이후 스쳐갈 금대산과 백운산 등구재는 보이지만 우측의 삼봉산은 숨어 있다. 결국 산세로 봐서 오도령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크게 도는 셈이다.

등로는 간혹 기복은 있지만 그리 심하지는 않다. 우리네 삶처럼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기다리고, 편안한 낙엽길도 이어진다.

등로 왼쪽 첫 탈출로가 열려 있다. 함양서 지리산 가는 첫 동네인 촉동마을 가는 길이다. 인공 조림을 했는지 주변이 온통 잣나무 군락지다. 다시 오름길. 옛 헬기장을 지나 25분쯤 뒤 암봉 전망대. 거칠 것 없는 조망이 펼쳐진다. 천왕봉을 정면으로 보고 3시 삼봉산, 1시 금대산, 10시 방향으로 법화산이 보인다. 정면 발 밑으론 다랭이논과 등구마을이, 그 뒤 경사진 일자 능선이 벽송(사)능선과 광점골, 그 뒤로 두류능선과 국골, 그 다음 하봉으로 연결되는 초암능선과 그 우측으로 칠선계곡이 확인된다.

이어지는 산길. 이제 함양읍을 정면으로 보고 걷는다. 5분 뒤 능선이 휘어지면서 이정표를 만난다. 이정표 뒤로 서리산(상산) 옥녀봉 천령봉이 보인다. 여전히 부침이 심한 낙엽길을 반복하니 시나브로 두 번째 암봉 전망대에 선다. 뒤돌아 보면 읍내 쪽 상림도 확인된다.
삼봉산 정상.

10분 뒤 무명봉에 서면 앞선 전망대에서 정상이라 여기던 봉우리 뒤에 진짜 주봉이 보인다. 3분 뒤 만나는 암봉 앞에서 왼쪽으로 에돌면 이내 헬기장. 바로 직진해 밧줄을 붙잡고 오르면 집채만한 암벽. 이번엔 급경사 계단으로 내려가 완전히 떨어진 뒤 한바탕 땀을 빼면 삼봉상 정상에 올라선다. 과연 거칠 것 없는 최고의 전망대다. 주능선은 앞서 본 전망대의 그것과 큰 차이는 없고 이정표 뒤로 삼정산이 보인다. 발 아래 남원 산내면을 가로지르는 엄천강 우측으로 작은고리봉 만복대 큰고리봉 바래봉 덕두산도 희미하지만 식별된다.
산행 내내 지리산 주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백운산 정상.

함양 쪽으론 읍내 왼쪽 바위산이 백암산, 그 왼쪽 뒤로 천황봉 괘관산, 다시 왼쪽 뒤로 남덕유 서봉 할미봉 등 백두대간이 희미하게 다가온다. 그 오른쪽으로 금원 기백 거망 황석산이, 다시 우측으로 수도 가야 별유 비계 미녀 오도 감악 월려 황매 감암 정수 둔철 웅석봉도 시원하게 펼쳐진다. 지리산뿐 아니라 함양 거창의 산들도 한눈에 볼 수 있으니 가히 조망의 산이라 부를 만하다.
금대산 정상에서 본 지리산 주능선.

하산은 왼쪽 금대암(5.95㎞) 방향. 직진하면 함양과 남원의 경계인 팔령재 가는 길이다.

천왕봉을 보며 급경사 낙엽길로 내려선다. 헬기장을 지나 등로 왼쪽은 방금 지나온 능선, 오른쪽 2시 방향이 백운산 금대산. 5분 뒤 창원마을 갈림길을 지나 등로가 우측으로 휘면서 능선을 갈아탄다.

완만한 경사의 낙엽길이 30분 반복되다 이후 25분 정도는 아예 쏟아지는 급경사 낙엽길이 이어진다. 등구재 다 와서는 우점종이 낙엽송으로 변한다. 등구재는 경운기가 다닐 정도의 산길. 왼쪽은 함양 창원마을, 오른쪽은 남원 산내면 방향이다. 옛날 함양 남원 사람들이 오가던 고갯길이다.

길 건너 숲으로 오른다. 낙엽송과 잣나무 조림지역이라 등로는 푹신푹신하다. 백운산 정상까지 35분쯤 걸리지만 시종일관 된비알이라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정상석과 무덤이 있는 백운산은 사실 독립 봉우리라 하기에는 2% 부족한 느낌이 든다.

금대산은 백운산에서 30분. 역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정상에는 산불초소가 있다. 아뿔싸, 정상석이 반 토막나 누군가 윗부분을 살짝 올려놨다. 과연 최고의 전망대답게 지리산 주능선이 더욱 더 가깝게 다가온다. 자세히 보면 사태난 흔적까지 확인된다. 이정표 뒤 바위 위로 오르면 왼쪽 저 멀리 오도령과 지리산 전망대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금대산에서 유서깊은 천년고찰 금대암까지는 0.6㎞, 18분 걸린다. 금대암 입구에도 하봉 중봉 천왕봉…덕평봉 벽소령 형제봉까지의 파노라마 사진에 일일이 지명을 표시한 조망안내도가 서 있다.
금대암에서 본 지리산 주능선.
금대암 입구에는 조망이 너무 빼어난 지점이 있어 조망안내판이 서 있다.

금대선원 앞 대숲으로 열린 산길로 내려서면 금계마을 또는 마천면 소재지인 마천중학교에 닿는다. 35분 정도 소요된다.

# 떠나기전에
- 산신각, 변강쇠와 옹녀 전설 깃든곳   
 
이번 삼봉산~금대산 코스는 흔히 경남 함양과 전북 남원의 경계인 팔령재,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흥부의 출생지 흥부마을로 널리 알려진 남원 성산마을을 들머리로 시작한다.

하지만 산행팀은 버스가 다니지 않는 오도령에서 출발했다. 새로 생긴 '지리산 제일문'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이곳 지리산 제일문 산신각은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 여섯마당 중 하나인 가루지기전의 변강쇠와 옹녀가 전국을 떠돌다가 마지막에 정착해 살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오도령은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이 지리산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했던 유랑의 고개이자 함양사람들과 남쪽 해안가의 사람들이 물물교환을 위해 지리산 장터목으로 가려면 넘어야 했던 생존의 길이었다.

속리산 말티재를 연상시키는 지안재. 최근 한국타이어 CF로 유명세를 탔지만 실은 몇 해 전 국제신문이 주최한 사진전에 출품됨으로써 세간에 알려졌다.

특히 오도령에 닿기 전 통과해야 하는 속리산 말티재를 연상시키는 꼬불꼬불한 길 지안재는 최근 한국타이어의 CF로 유명세를 탔지만 실은 몇 해 전 국제신문이 주최한 사진전에 처음으로 출품됨으로써 세간에 처음으로 알려졌음을 밝혀둔다.

첨언 하나. 흔히 삼봉산 기슭의 촉동마을에 가야 구형왕이 거주하며 무기를 만든 빈 대궐터가 있다는 등 마천 일대에 가야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오고 있지만 이는 전혀 근거없는 사실이다.

함양군 관계자는 "김일손 선생이 쓴 '속두류록'과 향토문헌 등에는 촉동마을 일대에 등구사가 있었다고 전해온다. 현재 이 터가 등구사지로 추정되고 있는데 근래에 이곳 유물이 출토되면서 호사가들이 가야와 연관시켜 대궐터라고 해 와전된 것 같다"고 말했다.

# 교통편 - 오도령 넘는 버스 없어 택시이용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전통영 고속도로~88고속도로 함양IC~함양~남원 인월 지리산 24번 국도 좌회전~지리산 백무 칠선 오도재 마천 1023번 지방도 좌회전~지리산 조망공원 지나~지안재~오도령 주차장 순. 금대암에서 오도령까지는 마천면 개인택시(055-962-5110)를 이용하면 된다. 1만5000원.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함양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40분부터 8~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3시간 걸리며 1만2400원. 오도령을 넘나드는 대중교통편은 현재 없다. 때문에 함양터미널 앞에 늘 대기 중인 택시를 이용해 들머리 오도령에 가야한다. 1만5000원.

날머리 금계마을 승강장에서 함양터미널행 군내버스는 20분 간격으로 자주 있으며 막차는 오후 8시. 함양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 6시30분에 있다. 만일 시간이 여의치 않을 경우 진주로 가서 부산행 버스를 타면 된다. 10분 간격으로 있고 막차는 밤 9시10분.

심야버스도 있다. 금대암에서 택시를 이용해 함양터미널로 곧장 갈 경우 택시비는 2만5000원 안팎이다.


10년만에 속살 내비친 생명의 골짜기…웅장함의 절정

추성리~마폭 5시간30분, 마폭 천왕봉 1시간30분 소요
선녀탕 옥녀탕 비선담 대륙폭포 삼단폭포 마폭포 등
한순간도 끊이질 않는 골짜기 절경 암반, 소와 담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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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동(옛 두지터) 입구 담쟁이넝쿨로 둘러싸인 담배건조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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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동(옛 두지터)의 배롱나무꽃. 공기가 맑아서인지 색이 아주 붉고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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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산통제 기간 중의 출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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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동을 지나면 이내 만나는 출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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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칠선동 마을터. 자세히 보면 축대와 계단식 논의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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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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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그늘이 드리워져 운치가 그저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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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탕 바로 위에 위치한 옥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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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각도에서 본 옥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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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탕을 지나면서 덱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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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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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교와 비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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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교를 지나 덱을 따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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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 통제소를 알리는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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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 통제소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 지리산 사무소 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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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소를 지나면서 인공시설물이 없어 계곡을 직접 건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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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비경의 이름없는 소와 담이 연이어 이어져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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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끼 낀 돌길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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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의 얼굴마담격인 칠선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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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폭포. 얼핏 함양 용추계곡의 용추폭포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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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칠선폭포를 놓치고 가더라도 이처럼 길에서 우렁찬 굉음과 함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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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물길을 건너면 중봉과 하봉 사이의 골짝에서 내려오는 지계곡과 만나는 합수점에서 잠시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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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 최대 규모이자 간판급인 대륙폭포. 높이가 15m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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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폭포 앞에서 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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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폭포. 칠선계곡 최고의 비경이다.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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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단폭포. 하류는 수직폭이지만 상류의 2단은 와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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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단폭포의 하단부인 수직폭 바로 윗부분. 깊은 소의 물이 수직폭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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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나무도 힘겹게 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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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시목이 발견되면 제대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00m마다 있다. 그러니까 7.5㎞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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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나무 다리도 건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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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이어지는 이름없는 폭포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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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선계곡의 마지막 폭포라는 의미의 마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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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폭포는 천왕봉과 중봉 사이의 골짝에 걸려 있는 비경의 2단 폭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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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폭포가 가장 잘 보이는 그늘진 암반. 대개 여기서 땀을 닦으며 숨고르기를 한다.

 

가마솥 더위가 한풀 꺾인 남한땅 최후의 원시림 지대인 칠선계곡은 생명력이 넘쳐 흘렀다.

깊고 험준한 골짝은 천지를 뒤흔들 만큼 우렁찬 물소리를 토해내며 예의 빼어난 비경을 자랑했고 햇빛 한점 통과하지 못할 정도의 울울창창한 숲속의 물기 잔뜩 머금은 초록의 이끼는 널브러진 돌이나 아름드리 노거수를 감싸며 사방을 온통 초록으로 물들게 했다.

마지막 폭포인 마폭을 지나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1800m대의 헌걸찬 지리 마루금은 구궁심처 골짝에서 솟아오르는 희뿌연 구름과 한데 어울려 신선의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칠선계곡은 험하지만 분명 비경이다. 한신계곡 뱀사골 피아골 등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계곡에 비해 한 수 위다. 아니 급이 다르다.

흔히 산길이나 계곡은 풍광이 좋고 나쁨을 반복하지만 칠선계곡은 국내 여느 유명 계곡의 내로라하는 아름다운 구간만을 조물주가 부러 이어붙인 듯해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북으로 곧장 떨어져 내리는 칠선계곡은 겨울이면 북향의 깊은 골짝이라 적설량이 많고 기온이 급강하하고,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급격한 지형변화로 조난사고의 우려가 높다. 인공시설물이 거의 없는 것도 또 하나의 요인이다.

이와 관련, 이창우 산행대장은 "자연휴식년제로 지정되기 전인 1980년대 칠선계곡은 비교적 한가했지만 지금처럼 비선담까지 설치돼 있는 인공시설물이 하나도 없어 베테랑급이 아니면 산행할 엄두를 못냈을 정도로 사실 난코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음은 있지만 일반 산꾼들로선 선뜻 발걸음이 내키지 않는 그런 코스였다.

세월이 흘러 칠선계곡은 지난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자연휴식년제라는 명목하에 총 9.7㎞ 구간 중 3.8㎞ 지점인 비선담까지로 산행이 제한됐고, 올해부턴 국립공원 특별보호구로 지정됨과 동시에 산아래 추성동 주민들의 염원을 적극 수용해 지난 5월부터 국내 최초로 탐방예약 가이드제를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다. 내년까지 2년간 5~6월, 9~10월 넉달간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들과 지역 주민들의 안내로 칠선계곡 산행을 할 수 있게 된 것.

바야흐로 칠선계곡이 10년 만에 공식적으로 부분 개방된 것이다.

산행팀은 사실 지난 4월말과 5월초 두 번이나 취재산행을 계획했지만 공교롭게 두 번 모두 장대 같은 비가 내려 발길을 돌렸다. 결국 삼세번만에 칠선계곡 품에 안긴 셈이다.

산행 코스는 함양 마천면 추성리 주차장~칠선계곡~마폭포~천왕봉~제석봉~장터목 대피소(1박)~백무동 순. 순수하게 걸은 시간은 10시간45분. 구간별로 보면 추성리~마폭 5시간30분, 마폭~천왕봉 1시간30분, 천왕봉~장터목 55분, 장터목~백무동 2시간50분. 걷는 시간만 그렇다는 뜻이며, 여기에 휴식 및 식사시간은 별도로 더해야 총 산행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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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마천면 추성리~마폭포

주차장에서 추성리 마을을 지나 포장로를 따라 오른다.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움푹 파인 국골이 초암능선과 두류능선을 좌우로 갈라놓고 있다. 추성리에서 25분이면 두지동(일명 두지터). 오래전 화전민들이 기거했던 산골마을이지만 지금은 6가구가 농사와 민박을 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다. 담쟁이넝쿨로 에워싸인 담배건조막과 유난히 붉은 배롱나무꽃만 옛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바로 옆에는 최근 펜션이 들어서 있다. 두지터는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이웃 국골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 식량창고로 사용했다는 설과 지형 자체가 쌀 뒤주를 닮았다는 설이 내려온다.

두지교와 입산통제 기간 중 출입문, 울창한 대숲 그리고 쇠줄로 만든 출렁다리를 잇따라 지나면 가파른 오름길. 칠선계곡은 출렁다리에서 잠시 맛만 볼 뿐 선녀탕까지의 40여 분은 물소리만 들릴 뿐이다. 도중 뜻밖에도 평탄한 길을 만난다. '칠시'라고 불렸던 옛 칠선동 마을터다. 자세히 보면 오래된 축대와 계단식 논의 흔적이 보이고 바닥에는 비닐장판 조각이 보인다.

지계곡을 건너 마당바위로 불리는 전망 좋은 너른 암반를 지난다. 이제 선녀탕까지는 1㎞. 진한 숲 향기를 음미하며 27분쯤 오르내리면 선녀탕을 알리는 이정표와 아치형 구름다리를 만난다. 일곱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했다고 전해오는 선녀탕(620m)은 다리에서 보면 숲 그늘이 드리워져 운치가 그저 그만이다.

이때부터 칠선계곡의 진면목을 감상하며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선녀탕 바로 위에는 선녀탕보다 더 넓고 깊은 옥녀탕(650m)이 기다린다. 유난히 맑고 푸른 탕도 탕이지만 옥녀탕으로 쏟아내는 와폭 또한 일품이다.

옥녀탕부터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조성한 덱을 따라 걷는다. 10여 분이면 흔들다리인 비선교에 올라선다. 이 대장은 비선교 입구 쪽 암벽을 가리키며 예전에는 이곳으로 밧줄을 잡고 올랐다고 옛 기억을 더듬었다. 자세히 보니 밧줄의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띈다. 목욕한 선녀들이 하늘로 올랐다는 다리 아래 비선담(710m)은 옥녀탕과 규모는 비슷하다. 비선교를 지나면 잠시 호젓한 숲길. 5분 뒤 다시 목재 덱을 만나면서 비경이 이어진다. 소와 와폭의 연속이다. 떨어지기 직전 소용돌이를 치는 폭포, 두 갈래로 유유히 떨어지는 쌍폭 등과 선녀탕이나 옥녀탕에 견줘도 하등 손색없는 소가 굽이굽이마다 시선을 빼앗지만 아쉽게도 이름이 없다. 칠선계곡을 두고 흔히 '7폭 33소와 담'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10분 뒤 다시 덱을 만난다. 공단 직원 두 사람이 근무를 서고 있다. 알고 보니 칠선계곡에 설치된 마지막 덱으로 비선담 통제소다. 위쪽 산길과 이어진 출입문에는 육중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여기서부터 천왕봉까지 5.4㎞ 구간이 특별보호구로 지정된 곳이다. 통제소를 지나면 숲이 확연히 달라진다. 더욱 짙어지고 길은 좁아지며 발밑에는 물기 머금은 싱싱한 이끼가 널브러진 돌과 나무 밑둥치를 감싸고 있다. 산죽 군락은 이에 뒤질세라 길마저 막고 있다. 원시 그대로의 비경 그 자체다.

6분 뒤 산죽길을 벗어나면 계곡과 만난다. 직진하기도, 좌측 산사면으로 치고 오르기도 마땅치 않다. 처음으로 물길을 바로 건넌다. 반복되는 이끼 수북한 산죽 숲길. 길 안내를 위해 돌 위에 뿌린 붉은 스프레이 표시도 이끼에 가려 그 흔적이 가물가물하다. 놓쳐선 안 될 볼거리가 하나 있다. 일명 청춘홀이다. 물길을 건너 100m쯤 거리에 위치한 표지목 지점쯤에서 좌측으로 바로 보면 보인다. 큰 바위와 작은 바위가 한데 어울려 생긴 너른 공간이다. 청춘 남녀가 비를 피해 들어섰다가 사랑에 빠졌다는 설도 있고, 오래전 목기를 다듬는 젊은 청년들이 청춘 흘러가는 것을 한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엔 바닥도 편평해 텐트 하나 정도는 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계곡 범람으로 인해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지계곡을 건너 우렁찬 굉음에 이끌려 물가로 내려선다. 칠선폭포를 보기 위해서다. 첫 인상은 함양 용추계곡의 용추폭포. 높이가 5m 안팎에 불과하지만 그 당당함은 이름 그대로 칠선계곡의 얼굴마담으로 손색이 없다. 통제소에서 30분. 혹 폭포 쪽으로 내려서는 길을 놓쳤더라도 길에서 보이기 때문에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이끼 낀 돌길의 연속. 7분 뒤 자연스럽게 두 번째 물길을 건넌다. 이 지점은 중봉과 하봉 사이의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지계곡과의 합수점이다. 이 지계곡을 거슬러가면 40m쯤에 우측으로 열린 길이 향후 진행방향이며, 여기서 60m 더 가면 칠선계곡에서 최대 규모인 대륙폭포를 만난다. 지난 1964년 칠선계곡을 탐사하던 부산의 대륙산악회가 명명한 이 폭포는 약 15m 높이에서 하얀 물줄기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진다. 아름답고 우아하며 장엄하며 고색창연하다.

대륙폭포 이후 산길은 험하면서 동시에 가팔라진다. 무명봉 하나 넘는다고 생각하고 살짝 올라서면 계곡과 만나지만 건너지 않고 물길 좌측으로 발길을 옮긴다. 25분쯤 뒤 또 한 줄기의 폭포가 눈과 귀를 자극한다. 자일산악회가 명명한 (자일)삼단폭포다. 상류 쪽 두 개의 와폭에 이어 수직폭이 시원하게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다. 폭포 좌측으로 오르면 가운데 와폭은 쌍폭이며 그 아래는 좁지만 깊이를 가늠키 힘든 아주 깊은 소가 소용돌이 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삼단폭포에서 마폭포를 만나기까지 80분 정도 또한 녹록지 않다. 이쯤 되면 계곡 폭이 좁아지고 유량은 줄어듬직한데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되레 무명폭과 크고 작은 소가 줄을 잇고 또 잇는다. 칠선계곡의 저력을 실감케 하는 시점이다.

이끼 낀 크고 작은 돌길과 쓰러진 아름드리 나무들도 넘어야 하고 외나무다리도 건너고 때론 유일한 인공시설물이라 할 수 있는 얇은 밧줄에 의지해 암벽을 올라야 한다.

천왕봉으로 오르면서 마지막으로 만난다는 의미의 마폭포는 천왕봉과 중봉 사이의 골짜기에 걸려 있는 비경의 2단 폭포. 상단은 수직폭이고 하단은 와폭이면서 쌍폭이다.

마폭포와 관련된 여담 한 가지. 지난 1964년 부산의 산악인들로 구성된 개척단에 참여한 곽수웅 씨는 "밑에서부터 이름을 붙이며 올라오던 중 소와 폭포가 끊임없이 나타나 이름짓기를 중단하고 마지막 폭포에 와서 명명한 것이 마폭포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웃한 바위 쉼터가 좋아 대개 여기서 폭포를 감상하며 물통을 채운다.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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