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의 한봉농가들이 반달가슴곰(이하 반달곰) 때문에 수난을 당하고 있답니다. 벌꿀을 먹으러 온 반달가슴곰이 정성껏 가꾼 벌통을 덮쳐 한해 토봉농사를 망쳐놓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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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경남 하동군 목통마을의 한 토봉농민이 반달가슴곰에 의해 파손된 벌통을 수습하고 있다. 김세주 기자 sjkim0@kookje.co.kr 

 어제(7일자) 국제신문에 따르면 지난 6일에도 하동군 화개면 목통마을의 벌통을 30~40통이나 먹어치웠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국립공원 멸종위기종복원센타 직원들이 양봉농가 피해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을 때도 멀리서 벌통을 찾아헤매는 반달곰이 목격됐답니다.
 문제의 반달곰들은 복원센터가 지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러시아 연해주와 북한에서 들여와 방사한 것들입니다. 총 27마리 중 증식용으로 사육 중인 4마리와 폐사 또는 실종된 7마리를 제외한 16마리가 현재 지리산에서 야생하고 있습니다. 몸무게가 30~80㎏에 달하는 반달곰은 먹이감이 부족해 마을 주변으로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하동군 토봉협회에 따르면 반달곰들이 지금까지 먹어치운 벌꿀이 2000여만 원어치에 이른다며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근원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종복원센타는 이 같은 피해가 빈발하자 벌통 주변에 전기울타리를 설치하는 등 대책을 마련했으나 꿀맛에 빠진 곰에게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나무에 기어올라가 전기울타리를 뛰어넘거나 땅을 파고 들어와 노리던 벌꿀을 손에 넣고야 만다는 게 종복원센터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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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면에 들어간 반달곰(사진 위 왼쪽). 방사되는 반달곰(사진 아래 오른쪽).

 산행을 담당하는 기자는 지리산에서 직접 반달곰을 보지는 못했지만 목격했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많이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산꾼들로부터 이런 경험담도 들었습니다. 요즘 반달곰들은 머리가 좋아 등산로 주변에 머물다 산꾼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잽싸게 나타나 먹을 것이 들어 있는 베낭을 빼앗아 달아난다구.

 기자는 반달곰 벌꿀 탈취 사건의 7일자 신문 보도를 보면서 일전에 들었던 베낭 얘기가 일순간 머릿속에 오버랩 됐습니다. 해서, 국립공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로 직접 문의를 해보았습니다. 과연 베낭을 갖고 도망가는 것이 사실인지도 확인해볼 겸해서 말입니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직원은 7일자 국제신문을 비롯한 일부 언론에 반달곰의 토봉 탈취 소식이 보도되자 아침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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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되는 지리산 반달곰(왼쪽)과 지난해 회수된 반달곰 천왕.

 신문 보도와 관련,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직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익명을 전제로 그는 현재 지리산자락에서 토봉을 하는 곳이 대략 400군데 정도 된답니다. 대개 산속에 있기 때문에 이번뿐 아니라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보다 후각이 12배 정도 뛰어난 개보다 후각이 7~8배 발달한 반달곰이 산속에 위치한 벌꿀 통에 든 꿀을 먹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라고도 했습니다.
 문제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어떻게 보상을 해야될 지 그게 막막하답니다.

 그리곤 이런 말도 했습니다. 러시아나 중국처럼 땅이 넓은 곳에서 서식하는 반달곰들은 사람과의 접촉이 없으니까 인간이나 곰에게 아무 문제가 없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곰이 활동하기에는 지리산이 너무 좁아 발생하는 필연적인 문제라고 합니다.
 만일 등산객들이 반달곰을 만날 경우 그냥 모른체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사진을 찍기 위해 김밥이나 초코릿, 사탕 등으로 유인했기 때문에 반달곰이 점차 야생성을 잃어 토봉을 탈취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결국 반달곰의 토봉 탈취는 부주의한 인간에서 비롯된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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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에 실패한 천왕이를 과자로 유인한 후(사진 위) 마취를 시켜 결국 회수하는 국립관리공단 직원들. 사진제공=환경부, 국립공원관리공단, 연합뉴스, 김인수 기자 iskim@kookje.co.kr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직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반달곰이 베낭을 탈취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언제냐고. 작년쯤인 것 같다고 답하니까 그는 그 반달곰이 지난해 5월 회수돼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 놈의 이름은 '천왕'이라 했습니다. 지난 2004년 방사된 천왕이는 처음부터 적응을 잘 하지 못해 탐방로 주변을 맴돌더니 결국 야생성을 잃었다고 합니다. 얻어 먹다 잘 안 주니 빼앗게 되고 그것마저 잘 안 되니 산속의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게 돼 결국 적응 실패로 판명돼 지난해 5월 회수돼 현재 구례 인근 인공생태학습장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산꾼들의 베낭 탈취 상습범이었던 천왕이가 체포돼 구속수감(?) 중이어서 지리산에서 베낭 뺏길 일은 지난해 5월 이후 사라진 셈이랍니다. 그러면서 지난해 5월 이후 베낭을 반달곰에게 빼앗긴 사람이 있습니까 라고 자신있게 반문했다.

천왕이를 회수해 신체검사를 해 본 결과 놀라운 점은 42개의 이빨 중 20개가 썩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천왕이와 함께 방사한 반달곰 중에는 지리산에 완전히 적응해 등산로 주변에는 일절 나타나지 않는 반달곰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종류가 천차만별이듯 곰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현재 지리산 종주길에는 반달곰 주의를 알리는 노란색 현수막이 10여 개 걸려 있습니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 관계자는 진정으로 반달곰을 생각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음식물을 절대 주지 말고, 지정 등산로 이외에는 절대 다녀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반달곰뿐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아!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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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문봉에서 철벽봉을 지나 가파른 화구벽으로 내려서는 국제신문 근교산 산행팀. 화구벽을 지나면 등산화를 벗고 승사하를 건너 천지물가인 달문에 닿는다. 사진 우측 상단에는 녹명봉 백운봉 청석봉 줄기가 차례로 보이며 왼쪽 상단 구름 사이로 쑥 들어간 부분이 5호 경계비가 있는 곳이다.



부산에서 심양, 심양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연길까지
연길에서 백두산 서파 입구까지 또다시 버스로 8시간
주차장에 내려 2200개의 계단을 올라 다다른 5호 경계비

불과 1m 높이의 초라한 표지석이지만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이다
얼마전까지 경비초소와 녹슨 철사줄 한가닥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사라져 국경같은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중국쪽은 빨간 글씨로 '中國'
북한쪽은 파란 글씨로 '조선'이라 적혀 있다

한발 건너면 북한 땅, 한발 당기면 중국 땅
감격도 감격이지만 왠지 서글픈 마음이 앞선다

내 땅을 지척에 두고
중국 관광객의 자격으로 올라야 하는 서글픈 현실
전후세대가 이토록 회한이 뒤섞여 눈물이 날 정도인데
이북 출신으로 한국전쟁을 겪은 어르신들의 감회는 어떠랴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천지
단순 비교하면 각각 전라북도의 면적과 여의도의 크기
한라산과 백록담을 상상했다면 상상의 나래를 더 펼치자
노란만병초 애기금매화 큰오이풀 왕자붓꽃 두메양귀비…
고산화원 천상화원으로 불리는 세계 최대의 야생화 군락지

1980년 유네스코 자연보호구로 지정된 인류 공동의 자연유산
6월까지 잔설이 있고 7, 8월에는 야생화가 수를 놓지만
9월이면 첫 눈이 내려 산행 가능 기간은 1년 겨우 3개월 남짓
최고 수심 384m, 평균 수심 213m, 해발 2257m의 천지

세계 최대 산정호수로
2500m급 이상 16개 연봉의 호위를 받는다
물은 맑고 차가워 맨발을 1분 이상 담그기 힘들고
시시각각 변하는 괴팍한 날씨로 베일 속에 자주 가린다
조선족 산행가이드가 들려주는 우스갯소리 하나
'천지에 올라 천지를 못보는 사람이 천지라서 천지'란다

뭐니뭐니해도 백두산 탐승의 하이라이트는 서파(西坡) 종주
한 산꾼은 서파종주 후 이렇게 말했다
"통일이 될 때까지 다신 백두산 산행을 하지 않으리라"고
5호 경계비에서 천지 물가인 달문에 이르는 13㎞의 종주길은
통일 이후 북녘땅을 통해 새로운 코스가 열리기 전까지
이보다 더 황홀한 코스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그랬다
휘몰아치는 비바람과 뿌연 안개 탓으로
눈 앞의 천지와 수백종의 야생화를 눈여겨 살펴보지 못했지만
한걸음씩 옮기면서 펼쳐지는 푸른 대평원과 능선길만으로
백두의 비범함을 온 몸으로 느꼈다
장엄하면서도 수려하고, 투박하면서도 곱디고운
그 자태에 그만 넋을 잃은 것이 여러 차례
꿈엔들 잊힐리야 백두산 천지

근교산 산꾼들은 한 몸되어 기원했다
통일되어 우리 땅에서 백두산 천지를 보는 날이 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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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봉에서 철벽봉쪽으로 가는 지점에서 그간 가려져 있던 천지의 자태와 주변 봉우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이 걷히면서 16연봉중 하나인 용문봉(2596m 가운데 상단 뾰족한 봉우리)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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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 전경. '천지에 올라 천지를 못보는 사람이 천지라서 천지'란다. 최근 '강호동의 1박2일'에서 천지를 볼 수 있는 날이 일년이 10일 정도라고 하는데 이는 약간 과장된 것이다. 북한땅과 중국의 경계인 5호경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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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땅과 중국의 경계인 5호경계비.


민족의 영산 백두산 서파 종주 산행기

발아래 우뚝 솟은 북녘땅, 광활한 만주벌판 호령
고행의 계단 지나 5호경계비서 시작, 6시간 소요
안개·구름 걷히니 16연봉 호위속 신천지가 활짝
천상화원 야생화에 '야~' 장백폭포 위용에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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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쪽 화구벽으로 내려가기 전 철벽봉 안부에서 바라본 백두산의 또다른 산줄기. 오른쪽 능선은 흑풍구에서 이어지는 고래등 능선이며 왼쪽 줄기는 소천지로 내려서는 능선이다.
 
 
시인 고은은 백두산 천지를 본 순간 아무 말없이 천지를 향해 큰 절을 올렸다고 한다.

한국인이라면 북받쳐 끓어 오르는 감정의 표현 방법만 다를 뿐 누구나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우리 민족의 영산이자 태(胎)자리인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굽어보는 이 순간을.

사실 천지는 애초부터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정면은 온통 뿌연 회색천국이었다. 동행한 조선족 가이드 조남철씨의 설명에 따르면 천지를 확연히 볼 수 있는 날은 한달 중 많아야 4, 5일 정도.

발만 동동 굴리며 무작정 기다리기를 30여 분.

'이야, 아!' 정말 한순간이었다. 흥분과 감탄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퍼런 천지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다 삼키고도 남을 만한 자태로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동시에 천지를 둘러싼 16연봉의 웅장한 모습도 손짓을 하며 다가온다. 왼쪽 북한쪽으론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2749m)을 위시해 비류봉(2580m) 쌍무지개봉(2626m) 등이, 오른쪽 중국쪽으로 백운봉(2691m)을 비롯한 마천우(2459m) 청석봉(2662m) 녹명봉(2603m) 차일봉(2595m)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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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백운봉으로 향하는 산행팀.  
 
하지만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딛고 있는 땅이 바로 중국의 영역이라는 점. 조선족이 대다수 살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연길이라지만 그래도 엄연한 중국땅이 아닌가.

국제신문 산행팀이 근교산 시리즈 400회를 맞아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찾았다. 이번 산행에는 부산경남지역의 마니아 산꾼 70여 명도 동행했다.

첫날 쏟아지는 비 때문에 서파 종주산행 내내 천지를 보지 못한 산꾼들은 다음날 북파코스 철벽봉 안부 부근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천지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평했다. 전율이 느껴질 만큼 감동 그 자체라고.

산 정상 부분에 흰 부석이 덮여 있어 이름 붙여진 백두산(白頭山)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가른다. 서쪽과 북쪽은 중국 길림성, 동쪽과 남쪽은 북한의 양강도에 속한다. 서쪽의 5호 경계비와 동쪽의 6호 경계비가 국경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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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서 승사하를 거쳐 장백폭포로 내려가는 도중 전망대에서 바라본 산줄기와 대평원.

현재 백두산 등정길은 크게 네가지. 서파 북파 동파 남파가 그것. 파(坡)는 중국말로 언덕이란 뜻으로 가령 서파 코스는 백두산 서쪽에서 오르는 길을 의미한다.

북파는 가장 일찍 열린 길이요 가장 널리 알려진 길. 흔히 어르신들이 떠나는 백두산 관광의 99%가 이 코스다. 지프를 타고 천문봉 턱밑까지 오른 다음 5분 정도 오르면 천문봉 정상. 여기서 천지를 감상한다. 산행이 아니라 그야말로 관광이다.

서파는 지난 1990년대 후반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코스로 산꾼들이 주로 찾는다. 천지를 오른쪽에 끼고 백두산의 장대한 고원지대를 걷는다. 수백여종의 야생화가 만발한 천상화원이 바로 이 길을 따라 펼쳐진다. 동파와 남파는 북한에서 오르는 코스로 현재로선 그림의 떡.

이번에 산행팀이 완주한 코스는 서파. 산행은 조중경계선인 5호 경계비에서 시작되지만 주차장에서 5호 경계비까지 2200개의 '고행'의 계단을 우선 올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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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 산행은 5호 경계비에서 마천우로 향하면서 시작된다. 반대방향은 북한땅. 출발전부터 비와 안개, 그리고 강풍이 만만찮다. 굵은 빗줄기는 몰아치는 칼바람을 타고 연신 뺨을 후려친다. 제대로 갖춘 복장과 장비도 무력감을 느낄 정도. 확 트인 능선길에서 강풍을 만나면 몸이 날려갈까봐 모두들 움츠린다. 이런 악천후가 하산 때까지 지속됐다.

암봉 마천우는 험해 봉우리 왼쪽길로 에돌아 내려선다. 청석봉까지는 천지를 우측에 두고 비교적 평탄한 능선길로 가지만 천지는 안개에 가려 부옇기만 하다. 대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연상케 하는 눈앞의 푸른 대평원과 뾰족한 암봉, 그리고 낭떠러지는 백두산의 넉넉함과 위엄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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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문봉에서 운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천지가 철벽봉으로 가는 도중에 그 모습을 드러내자 산행팀이 천지를 향해 만세를 부르고 있다.

 
화산암 너덜지대를 지나면 평평한 청석봉 정상. 이곳에서 능선길로 1시간쯤 가면 송강하. 천지물이 화산암 계열의 바위틈새로 나와 형성된 물줄기로 주변은 야생화가 만발하는 고산화원. 대개 여기서 밥을 먹고 쉬지만 산행팀은 악천후로 인해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어 그냥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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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구벽을 내려와 승사하를 건너는 산행팀.


백운봉 가는 길은 서파코스 중 가장 힘든 길. 오르막의 연속. 노란 두메양귀비 등 방긋 웃는 야생화가 그래도 힘을 덜어준다. 8부 능선쯤 가면 두 갈래길. 직진하면 정상, 왼쪽 길은 에돌아 가는 길. 평원인 능선길로 사슴이 많다는 녹명봉으로 이어진다. 녹명봉 정상에선 바위길인 일부 하산구간을 제외하고는 평원길의 연속. 차일봉을 지나면 두 갈래길. 말그대로 작은 천지인 소천지로 가는 길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가파른 하구벽을 내려와 천지물가인 달문을 보고 장백폭포를 구경하는 방법이 있다.

여기선 대개 서파산행 시간을 고려해 결정한다. 백두산의 날씨는 1시간 뒤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남을 경우 달문~승사하~장백폭포 코스를, 예상보다 지연됐을 경우 장백폭포 코스는 다음날로 미루고 소천지로 하산한다. 산행팀도 곧장 소천지로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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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68m의 장엄한 장백폭포(비룡폭포). 겨울에도 얼지 않는 어마어마한 수량이 뿜어내는 굉음은 휴화산인 백두산의 살아있는 숨소리라 불린다. 천지로 향하는 우측 상단의 터널은 마치 유럽의 옛 성벽을 닮았다.
 
 
장백폭포(비룡폭포)는 백두산에서 가장 웅장하면서도 아름답다. 높이 68m인 폭포는 여름은 물론이고 겨울에도 얼음과 눈 속에서 얼지 않고 있는 모습이 장관 그 자체다. 어마어마한 수량과 굉음은 백두산의 숨소리라 불리운다. 장백폭포를 돌아 천지로 오르내리는 계단은 멀리서 볼 경우 유럽의 옛 성벽을 보는 것처럼 운치가 있다.

장백폭포 아래에는 온천지대가 형성돼 있다. 장백폭포에서 주차장으로 오는 도중 온천수에 계란이나 옥수수를 삶아 판매하고 있고, 여기서 좀더 내려오면 호텔에서 유황온천욕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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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온천수에 삶아 파는 계란과 옥수수.

◆산행 뒷이야기

 부산 산꾼 38명 악천후속 완주
 산행 속도에 현지 가이드·중국인 감탄
 저체온증으로 탈진 우황청심환 먹기도

"이처럼 대부대가 이런 최악의 날씨 속에서 10~12시간 걸리는 백두산 서파종주를 6시간 만에 끝낸 것은 아마 오랫동안 기록에 남을 겁니다."

백두산 서파종주 현지가이드 조남철 씨는 산행을 마친 후 "지난해 한국의 한 팀이 5시간30분 만에 완주했지만 그들은 젊은 장정 5명인데다 날씨마저 쾌청해 오늘의 이 기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초 백두산 서파 종주에는 50여명이 도전했다.

  
하지만 산행기점인 5호 경계비 앞에서 휘몰아치는 비바람 때문에 10여 명이 돌연 기권, 기자를 포함한 38명이 참여했다. 연령층도 남녀노소 다양했고 평균 연령 또한 40대 중반 이상으로 봐도 무난한 노인군단(?)이었다. 이들은 국제신문 '근교산' 기사를 보면서 매주 산행을 다닌 마니아들이어서 하나같이 자신있다고 말했다. 부부 4팀도 포함됐다.

산행은 날씨 등 최악의 조건 속에서 진행됐다.

38명의 대부대임에도 불구하고 현지 가이드는 우여곡절 끝에 한명밖에 동행하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서파 종주에 도전키로 한 산꾼 한명이 출발전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또다른 현지 가이드가 사라진 그 산꾼을 수소문하느라 결국 대오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

결국 선두는 조선족 현지가이드인 조남철 씨, 후미는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이 맡았다.

출발시간은 지난달 28일 오전 10시45분. 통상 서파종주는 새벽 5시께 5호 경계비에 올라 일출을 본후 출발하지만 빡빡한 일정에 비행기마저 연착돼 예정보다 5시간 이상 지연됐다.

이날 5호 경계비까지는 중국인들을 포함한 많은 산꾼들이 올랐지만 산행도전팀은 국제신문팀이 유일했다.

앞서 출발한 중국인 젊은이 3명은 산행 중간쯤인 청석봉 부근에서 되돌아가며 산행팀에게 대단하다는듯 엄지손가락을 내보이기도 했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50대 중반의 한 여성이 저체온증으로 탈진하자 동료가 배낭에서 우황청심환을 꺼내 먹였다. 이창우 대장은 이 여성의 배낭을 대신 멨고 동료들이 번갈아가며 부축했다.

워낙 비바람이 거세 밥먹을 엄두도 못냈다.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벌어져 본의 아니게 휴식을 취할 땐 하나같이 사시나무 떨듯 추위와 싸워야만 했다.

천지라도 잠시 얼굴을 내밀면 힘이 날텐데 이날따라 천지는 심통을 부렸다.

산행 후 가이드 조씨는 "어릴 때부터 300년 묵은 장뇌삼을 깍두기로 먹은 30살의 저도 몹시 춥고 힘들었다"며 "이런 악조건 속에서 사고없이 완주한 대원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에 맞장구를 치기라도 하듯 종주를 마친 이상득(46)씨는 "좌우가 확 트인 능선길에서 일순간 거센 비바람이 몰아칠 땐 몸이 날려가는 줄 알았다"며 "그래도 지금은 큰 일을 해낸 것처럼 뿌듯하다"고 밝혔다.

백두산 서파종주는 이렇게 끝났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산행팀은 그 다음날 북파코스에서 천지와 그 주변의 16연봉, 그리고 아름다운 장백폭포를 원없이 보고 또 봤다.

부산서 출발하는 백두산 산행상품은 대개 4박5일. 하지만 국제신문 산행팀은 백두산 등정을 원하는 산꾼들을 위해 산행을 위주로 한 3박4일 코스를 명문여행사와 공동으로 마련, 이번 산행이 이뤄졌다.


글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사진 = 박수현기자 parksh@kookje.co.kr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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