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꾼 발길잡는 변화무쌍한 암봉 퍼레이드
거친 듯하며 부드럽고 작은 듯하면서 큰 산세
끝 단풍에 채색된 자연성릉~삼불봉 자태 뽐내


세 개의 암봉 형상이 마치 세 부처가 앉아 있는 것 같다 하여 명명된 삼불봉. 관음봉쪽에서 봤다. 


 
계룡산 아래 동학사 입구의 단풍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국립공원 계룡산은 옹골차면서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의 핵심은 암봉미다.
무엇이라도 단 번에 벨 듯 날카로운 바위능선이 말 달리듯 펼쳐져 있다. 실제로 주봉인 천황봉에서 쌀개봉 관음봉을 거쳐 삼불봉에 이르는 암릉은 마치 닭 벼슬을 한 용을 닮아 계룡산(鷄龍山)이라 명명됐다.

거친 듯 하면서도 부드럽고, 작은 듯 하면서 큰 산인 계룡산. 사실 계룡산은 아주 작다. 총면적이 65㎢로 16개 육상국립공원 가운데 꼴찌에서 두 번째. 참고로 꼴찌는 56㎢의 월출산이며, 부산의 진산 금정산은 23㎢.

이 처럼 작은 덩치에도 지난 1968년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밀실행정이 아니었다면 분명 거기에 준하는 뭔가가 있다는 방증이다. 산세만 빼어난 족보없는 산이 아니라는 것.

우선 역사의 산이다. 신라때 오악(嶽) 중 서악으로 제례가 올려진 이래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사직의 안녕을 비는 제를 올리던 장소였다. 풍수지리학상으로 정감록에서 말하는 소위 십승지(十勝地) 중 으뜸이고 동학사 갑사 신원사 등 천년고찰과 숙모전 삼은각 동계사 등 충절을 기리는 사당도 품고 있다.

산세는 두 말하면 잔소리. 변화무쌍한 암봉과 기암절벽,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성곽과도 같은 자연 암릉에 오묘한 자연의 섭리로 빚어낸 단풍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선사한다.    

산행은 동학사 주차장~매표소~홍살문(갈림길)~숙모전 동계사 삼은각~동학사~(은선폭포)전망대~은선폭포~관음봉 고개~관음봉(정자)~자연성릉~삼불봉~삼불봉 고개~남매탑~삼불봉 고개~금잔디고개~용문폭포~갑사~매표소~오리숲~주차장 순. 걷는 시간은 4시간30분 안팎. 이정표가 아주 잘 정비돼 있어 길찾기는 전혀 고민할 필요는 없다.

사실 아무리 이름있는 명산이라도 산행 중 무료한 구간이 있기 마련. 하나 계룡산은 예외다. 내장산이나 청량산처럼 주요 암봉이 오밀조밀 모여 있고 하나같이 독특한데다 주요 볼거리가 마치 인위적으로 조절된 듯 적당한 간격을 두고 위치한 때문이다. 초보 산꾼일 경우 놓치기 일쑤인 암봉이나 주요 포인트에서 만나는 자연경관해설 등이 그 좋은 본보기다.

주차장에서 매표소까지는 대략 9분. 매표소를 지나 동학사 계곡길을 오른다. 끝물 단풍이 낙엽과 공존한다. 흔히 '봄 동학사 벚꽃터널, 가을 갑사 오리숲 단풍'이라 하지만 만추의 이 길도 여느 내로라하는 단풍길 못잖게 아름답다. 동학사 계곡길이 이럴진대 갑사계곡은 어느 정도일까 하는 행복한 상상도 해본다. 15분 뒤 뜻밖의 홍살문. 동학사 옆에 사당이 있기 때문이다. 동학사 원점회귀코스 갈림길이다. 직진하면 은선폭포 관음봉, 오른쪽은 남매탑 삼불봉 가는 길이다. 직진한다. 비구니 스님들의 세심한 손길이 곳곳에 미쳐 정갈하기 그지없는 동학사를 지나면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돌계단 오르막이다. 하산때까지 온전한 흙길을 거의 밟기 어렵다는 사실을 미리 일러둔다.  

동학사 대웅전.

25분 뒤 디딜방아를 고정시키는 V자형 걸개를 닮은 쌀개봉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서 있다. 여기서 커브길을 돌아 30m쯤 오르면 은선(隱仙)폭포 전망대. 신선들이 숨어서 놀았을 만큼 아름다운데다 46m 낙차의 폭포 물줄기가 떨어질 때 피어나는 운무는 계룡팔경 중 7경에 속할 정도로 비경이라 하지만 아뿔싸 물이 말랐다. 대신 주변 기암절벽과 정면 관음봉에서 내려오는 철계단이 아스라이 보인다. 다시 오르막길. 너른 터에 닿는다. 옛 은선대피소터다. 여기서부터 관음봉 하단 너덜지대를 알리는 '낙석주의' 팻말이 서 있다. 하나 그리 힘든 구간은 아니다.

20여분 뒤 관음봉 고개 삼거리. 이제 관음봉은 불과 200m. 후덕하고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관음봉 정상석 바로 아래에는 관음정이란 정자가 있다. 정상석 뒤로는 문필봉과 연천봉이 솟아 있고, 반대편 전망대에선 삼불봉 장군봉, 대전 유성, 황적봉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공룡능선을 방불케하는 자연성릉과 삼불봉이 한눈에 보인다.


 하산은 철계단으로 내려선다. 계룡산에서 가장 환상적인 코스라는 자연성릉과 삼불봉으로 이어진다. 설악의 공룡능선을 방불케하는 1.6㎞의 자연성릉은 능선길이 아기자기하고 변화무쌍, 말그대로 자연성곽 위를 거니는 느낌을 받는다. 삼불봉까지는 대략 1시간. 멀리서 보면 세 개의 암봉 형상이 마치 세 부처가 앉아 있는 것 같다 하여 명명된 삼불봉에 서면 주봉인 안테나가 서 있는 천황봉을 비롯 쌀개봉 관음봉 문필봉 연천봉 계룡저수지가 한 눈에 펼쳐진다. 흔히 계룡산에선 수치상의 주봉은 천황봉(845m), 등산대상지로서의 중심이 관음봉(816m)이라면 풍수상의 주봉은 삼불봉(775m)이라 불린다. 참고하길.

이제 산행은 막바지. 10분 뒤 삼불봉 고개. 갈림길이다. 여기선 동학사로 원점회귀할지, 단풍으로 유명한 계룡산 6경인 갑사로 향할 지 결정해야 한다. 산행팀은 동학사쪽 300m 급경사 내리막길 상에 위치한 남매탑을 보고 다시 올라와 갑사로 향했다. 체력에 맞게 결정하자.

애틋한 사연의 남매탑. 오뉘탑이라고도 불린다.

 한 수도승과 그를 사모했던 처녀의 애틋한 전설을 간직한 남매탑(오뉘탑)은 각각 7층, 5층탑으로 보물로 지정돼 있으며 청량사지쌍탑으로도 불린다. 삼불봉 고개에서 억새가 무성한 금잔디 고개까지는 8분 거리. 이전과는 달리 평탄한 숲길이다. 40여년전 큰 산불로 인해 억새가 돋아 가을이면 억새가 노랗게 말라 있는 것이 마치 금잔디를 닮아 붙여진 금잔디 고개 주변에는 샘터와 두서너 곳의 쉼터가 있다.

갑사로 내려서는 길은 예부터 '추(秋) 갑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곧바로 입증된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은근히 매력적인 한국의 미 그 자체다. 곳곳에서 연신 추억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예부터 계룡산 단풍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갑사계곡의 단풍. 그냥 지나치기에
                  아까운듯 
대부분의 산꾼들이 추억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갑사로 가는 하산길.

용문폭포.

35분쯤 뒤 만나는 용문폭포 주변에선 거의 압권이다. 폭포에서 갑사까지는 대략 10분. 사실상 산행 끝!

백제때 아도화상이 창건, 한때 화엄종 10대 종찰로 번성했던 갑사 경내에는 국보 삼신불괘불탱을 비롯 철당간 및 지주 등 귀중한 문화재가 산재해 있으니 잠시 둘러보자.

갑사 경내 대웅전.


갑사 진입로이자 단풍길로 특히 유명한 오리숲을 거쳐 주차장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떠나기전에 - 동학사 입구 충신 사당 셋 자리잡아

동학사 직전 범종루 옆에는 우리 민족사에 빛나는 충의절신을 모신 사당이 셋 나란히 붙어있다. 시대별로 보면 동계사는 고려 태조때 신라 충신 박제상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고, 삼은각은 조선초 고려의 세 충신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를 모시기 위해 지었으며, 초혼각은 조선 세조때 김시습이 단종을 비롯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충신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세웠다. 초혼각은 영조때 소실되었다가 후에 재건, 숙모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절 입구에 붉게 색칠한 창살을 세운 나무문인 홍살문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들 사당이 있기 때문이다.
계룡산은 행정구역상으로 공주시 대전시 계룡시 논산군에 속해 있다. 과거에는 공주 대전 논산에 포함돼 있었지만 2년전 논산시 계룡출장소가 '계룡시'로 승격됨에 따라 네개의 시군에 속하게 됐다. 면적 비율은 대전 11%, 공주 69%, 논산 2%, 계룡 18%. 때문에 계룡산은 흔히 알려진대로 '대전 계룡산'이 아니라 '공주 계룡산'이다.


#교통편 - KTX 타고 대전역 내려 들머리까지 102번 버스

경부고속철도(KTX)를 이용하면 힘들이지 않고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오전 5시를 시작으로 20~30분 간격으로 열차가 출발한다. 대전서도 마찬가지. 2만4000원(순방향 기준). 1시간50분 걸린다.

대전역에선 지하도로 내려 건너편에서 좌석버스 102번을 타고 종점(동학사)에서 내리면 된다. 1300원. 55분 걸린다.

날머리 갑사 주차장에선 유성행 공주 시민교통 2번 버스를 탄다. 오후 3시50, 4시50, 6시10, 7시10분(막차)에 있다. 2200원. 공주 박정자삼거리 또는 대전 유성 국립현충원에서 내려 대전역 가는 좌석버스 102번을 타면 된다. 결국 동학사 대신 갑사로 하산하면 1시간쯤 더 걸린다고 보면 된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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