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고성 운흥사 충견 

  삽살개 먹쇠 이야기

"세상이 아무리 타락하고
 비뚤어져도 이놈은 한결같아"



운흥사 주지 경담 스님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삽살개 먹쇠. 스님은 "먹쇠가 최근 기력이 쇠해져 마음이 무척 아리다"고 전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주지 스님이 빗질을 한 번 했지만 워낙 털북숭이라 코밖에 보이지 않는다.  

경남 고성 땅 와룡산 향로봉 중턱에는 운흥사라는 절집이 있습니다.
중생대 '공룡의 무도장'이라 불리는 상족암 군립공원이 차로 15분 거리에 있지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 절은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승병을 지휘했으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수륙 양면 작전을 꾀하기 위해 세 번이나 다녀간 곳이라고 합니다.
운흥사는 매년 음력 3월 3일 임진왜란 때 산화한 승병의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선 숙종 때부터 영산재를 지냅니다.
예부터 이 재를 세 번만 보면 죽어서 극락 간다는 말이 전해오는 데다 조선시대 불화의 대가 의겸 스님이 조성한 대형 괘불(가로 8.18, 세로 12.72m·보물 제1317호)이 걸려 있어 전국에서 불교 신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옵니다.
이 괘불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자국으로 가져가려고 세 번이나 사천 앞바다로 옮겨 배에 실었으나 심한 풍랑으로 번번이 좌절됐다 합니다.

운흥사의 아담한 장독대도 꽤나 유명하답니다. 낮은 흙돌담을 동그랗게 쌓아 기와를 얹어 운치가 그만입니다. 흔히 장독대는 외진 곳에 두지만 이곳에서는 그 예쁨을 뽐내려는지 경내 한가운데 두고 있습니다. 장독대 뒤로는 영산전으로 이어지는 투박한 돌계단이 있습니다.
이 돌계단은 장독대와 어우러져 우리 고유의 토속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절을 찾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사시사철 줄을 잇지요.
이들 작가들은 하나같이 풍경을 무명의 도공이 일궈낸 막사발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흙돌담에 기와를 얹은 운흥사 장독대. 흔히 장독대는 외진 곳에 두지만 이곳에는 경내 한가운데 있다.

운흥사에는 세간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명물이 있습니다.
이 절집의 지킴이 삽살개 먹쇠입니다.
절집의 마스코트이기도 합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냥 절을 찾으면 지나치기 쉬운 견공이지요.
주지 경담 스님은 "전생에 부처님이나 스님과의 인연이 있었는지 먹쇠는 어려서부터 절간에서 수도승처럼 생활해 내세에는 인간으로 환생해 좋은 삶을 영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지 스님을 세 분이나 모시며 고성 땅 산골짝에서 절밥을 먹은 지 16년 정도로 추정되는 먹쇠.  사람 나이로 치자면 80세쯤 되는 노인인 먹쇠는 평소에는 순하고 영리한 데다 그날그날 주지 스님의 심기까지 챙깁니다.
손댈 데 하나 없는 충견이랍니다.

 먹쇠는 최근 눈에 띄게 기력이 쇠해졌습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옛말이 견공에게도 적용되는가 봅니다. 스님을 보필하며 지금까지의 '천직'인 절집 지킴이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절집 식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지요. 그래도 나태하지 않은 강직한 모습은 변함없습니다.
이번 주 테마를 충견으로 잡았습니다. 주인을 위해 자기 한 몸을 기꺼이 바치고 있는 견공들의 이야기입니다.

배신과 변절, 회유 등 온갖 구태가 판을 치는 속세에서 오롯이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수행하는 충성스러운 견공의 우직함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시금석이 될 것 같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그들을 찾아봤습니다.
휴가철이 다가왔습니다. 아직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고성군 바다와 산을 찾아 잠시 먹쇠가 살고 있는 운흥사를 한번 방문해 보시면 어떨까요.

 운흥사 먹쇠 이야기 후속편( "저승에선 제가 먹쇠를 위한 삶을 살아야죠")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hung.kookje.co.kr/486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그의 명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에서 강진 월출산 동남쪽 자락의 무위사를 소개하면서 '변함없는 것은 무위사의 늙은 개 누렁이뿐'이라고 적고 있다. 능력있는(?) 스님들이 새로 불사를 하면서 고색창연한 옛 것들이 사라진데 대한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 게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송아지 만한 그 누렁이는 답사객이 와도 꿈쩍도 하지 않고 양지 바른 벽쪽에 길게 엎드려 고개를 앞발에 푹 묻고는 눈꺼풀만 잠시 들었다가 이내 감아버려 답사객들의 웃음을 사곤 했다.
 흔히 답사나 산행을 하면서 덤으로 갖게 되는 기쁨이 이 처럼 그 곳의 명물이 돼 버린 견공들을 만나는 것이다.

 #초행산꾼 안내하는 '흰둥이'-고흥 팔영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늠름한 흰둥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산행팀이 쉴 때도 다소곳이 기다리는 흰둥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쇠줄이 걸려 있는 암봉으로 오르는 지점까지 안내한 후 하산하는 흰둥이.

 
 이번 팔영산 산행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굴이 역삼각형이고 꼬리가 등쪽으로 말려 올라가 있어 진돗개로 추정되는 이 흰둥이를 처음 본 곳은 산행 들머리인 능가사(楞伽寺) 입구.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지만 7~8분 지나면서 이 개가 어쩌면 우리를 안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산행팀이 도중에 멈춰 산세를 얘기하고 있으면 흰둥이도 앞서 기다리고, 다시 출발하면 그도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그러다 말겠지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제법 경사진 곳을 오를 때도 역시 같은 간격으로 앞서 가고 속도를 일부러 늦춰봐도 역시 같은 간격을 유지한다. 능가사에서 출발한 지 어언 50분. 마침내 주능선에 올라 휴식을 취할 땐 다가와 바로 옆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 먹을 것을 주면 그것만 다소곳이 받아 먹을 뿐 여느 개처럼 더 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비범함 그 자체였다. 너무 오래 쉬니까 산행을 계속 하자고 몸짓을 보낸다.
 뒤늦게 올라온 한 산꾼은 이 "이 개가 이젠 다른 팀을 안내하고 있네"라고 말한다. 그는 팔영산이 좋아 수차례나 찾은 적이 있으며 그 때마다 이 개를 봤다고 말했다.
 알고보니 그는 팔영산의 '자원 봉사 안내견'이었다. 다시 산길을 재촉, 흰둥이가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쇠줄이 걸려 있는 암봉에 다다르자 그 놈은 임무를 완성한 듯 아쉬움을 표하며 재빨리 내려갔다.
 하산 후 능가사 주변을 둘러보며 흰둥이를 찾았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또 다른 팀을 안내하러 산으로 올라 갔을까.


 #승복 입어야 짖지 않아요-고성 와룡산 향로봉 운흥사 '먹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약간은 심술궂게 생긴 먹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즈늑한 분위기의 운흥사 전경(왼쪽)과 경내 위치한 운치있는 장독대.

 경남 고성 와룡산 향로봉 기슭에 위치한 운흥사(雲興寺). 공룡발자국 화석이 즐비한 '공룡의 무도장'인 상족암과 그리 멀지 않다. 임진왜란 땐 사명 대사가 승병을 지휘했고 이순신 장군은 수륙양면 작전을 꾀하기 위해 세 번이나 다녀간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는 화원양성소로 유명해 영조 때 불화의 대가였던 김의겸 스님을 배출한 곳도 바로 이 운흥사이다. 지금 이 절에는 김의겸 스님이 대표가 돼 제작된 대형 괘불이 보존돼 있다. 운흥사는 괘불재가 열리는 날이면 전국의 신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온다. 살아 생전 괘불재를 세 번만 보면 죽어서 극락에 간다는 말이 전해오기 때문이다.
 이 운흥사를 찾으면 주의 깊게 봐야 할 견공이 세 마리나 된다.
 우선 16살로 추정되는 삽살개 '먹쇠'. 이름 그대로 식성이 아주 빼어나다. 주지인 경담 스님은 "먹쇠는 주지 스님을 세 분이나 모셨을 정도로 워낙 연로(?)하다 보니 정확한 나이를 알지 못하지만 주지 스님이 계시다가 떠난 햇수를 역으로 꼽아보면 대략 그렇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 나이로 치자면 아마도 80살쯤은 되지 않았나 싶다.
 숫컷으로 100% 삽살개 순혈인 '먹쇠'는 오랫 동안 절밥을 먹다 보니 승복을 입지 않으면 일단 경계를 한다. 특히 모자를 쓰고 화려한 등산복을 입고 있으면 예의주시하다 이상한 행동을 할 경우 짖는다. 아주 순하고 영리한 데다 그날그날 주인의 심기까지 살피는 노련함마저 갖춰 손될 데 하나 없는, 절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한다. 가끔 짖으며 물려고도 하지만 절대 물지 않아 유일하게 자유로운 몸이다.
 주지 스님도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옷매무새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암컷으로 네 살인 삽살개 '혜순'이도 있다. 지혜롭고 순해라는 의미로 명명된 '혜순'이는 이름 그대로 잘 안 짖는다. '먹쇠'와 달리 혜순이는 순혈 삽살개가 아니라고 한다.
 
 역시 암컷으로 세 살인 막내 '운수'는 갈색의 진돗개다. 낯선 사람들이 오면 특히 신경이 날카로와져 많이 짖는단다. 해서 이름도 '운흥사 운, 지킬 수'를 가져와 '운수'라고 지었단다.

'혜순'이와 '운수'는 아직 어려 사람들을 물 수도 있어 묶여 있다.


 #앞 발 하나 없어도 집은 잘 지켜요-영천 작은보현산 거동사 '진돌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왠지 우수에 젖어 있는 듯한 진돌이와 거동사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초입.

 평균 연령 70세인 경북 영천군 자양면 보현골 주민들이 등산로를 개척해 유명세를 탄 작은보현산~갈미봉 코스의 들머리는 거동사(巨洞寺). 이 절집에는 '진돌이'라는 하얀 진돗개가 한 마리 있다. 안타깝게도 왼쪽 앞 발이 하나 없다. 마을 뒷산에 멧돼지가 너무 많아 이를 잡기 위해 설치한 올무에 진돌이가 걸렸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당시 진돌이의 울음 소리에 달려가 보니 올무에 걸려 빠져나오기 위해 발악을 하다가 거의 발이 잘린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는 것.
 이후 진돌이는 주위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몸조리를 잘 해 비록 지금은 움직이는 데 불편하지만 본연의 임무인 절 지키기는 완벽하다고 한다. 원래부터 아주 온순한 진돌이는 절집에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도 짖지 않고 그냥 물끄러미 보다가 엉뚱한 행동을 할 경우에만 짖는 현명한 지킴이라고 한다.
 작은보현산과 관련 참고 하나. 작은보현산은 글자 그대로 천문대가 위치한 보현산과 이웃해 있다. 하지만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나 잘못된 등산지도에는 같은 산으로 표기해 혼선을 빚고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