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조계산 도립공원 '동서횡단로', 곧장 갈까 쉬어 갈까
선암사~송광사 裸木 사이로 걷는 옛길, 일명 변두리길
가는길 '셀프' 보리밥집 손짓…곳곳에 전설·볼거리 풍성
낙엽 융단길 걷는 멋도 일품…쉬엄쉬엄 걸어도 3시간

조계산 동서횡단로 상에 위치한 전통의 보리밥집. 부엌에 가서 직접 받아와 평상에 앉아 먹는 그 맛은 꿀맛이다. 
                     유홍준 교수가 국내 최고의 명상로라고 한 조계산 진입로.
 
 벌써 3월이다. 이제 추위가 완전히 한풀 꺾였다. 가족과 함께 부담없이 나들이할 때도 됐다. 
 나는 새도 쉬어간다는 문경새재 조령이나 아흔아홉 구비 대관령도 좋겠지만 순천 조계산 동서횡단로는 어떨까. 

산 아래 동서 양쪽에 각각 태고종의 총림인 선암사와 승보사찰 송광사라는 천년고찰을 품고 있는 데다 두 사찰의 중간 즈음에 24년 전통의 보리밥집이 있다. 굴곡이 너무 없으면 싱거울까봐 넉넉한 두 개의 고갯마루가 일정 간격을 두고 있고, 황홀한 낙엽융단길이 줄곧 기다린다.

찬찬히 걷고 보리밥을 먹어도 3시간 남짓. 최근에는 길 곳곳에 구수한 전설과 역사를 담은 안내글도 걸려 있어 무료함을 달래준다. 한마디로 나라땅 최고의 옛길이 아닐까 싶다.
   

점선은 일반적인 원점회귀 등산로이고, 검은 선 부분이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동서횡단로이다.
 
그냥 갈 수 없잖아, 선암사


출발점은 태고종의 본산인 선암사. 조금만 서두르면 절간 순례도 가능하다. 으레 있을 법한 국보급 문화재 하나 없지만 단청없는 전각과 색바랜 기왓장, 고색창연한 돌계단 그리고 사시사철 꽃이 지지 않는 매력은 전문가들로부터 국내 산사 중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영화 '동승' '아제아제 바라아제'나 드라마 '상도' 등의 촬영지로 애용됐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신선이 되어 오르는 다리'인 승선교(昇仙橋) 아래로 '신선들이 내려와 노니는 누각'인 강선루(降仙樓)가 시야에 들어온다.
정호승의 시 '선암사'에도 등장하는, 그 유명한 선암사 누운 소나무. 
선암사의 400년 된 화장실인 '뒤깐'. 아마도 화장실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세계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사하촌에서 일주문까지의 1.5㎞쯤 되는 흙길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전국 최고의 명상로. 도심에서 묻혀온 온갖 번뇌와 번거로운 일상을 벗고 비로소 깨달음의 공간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줄 즈음 아름다운 무지개 다리인 승선교(昇仙橋)와 강선루(降仙樓)가 시야에 들어온다. '신선이 되어 오르는 다리'와 '신선들이 내려와 노니는 누각'. 자태만큼이나 이름에도 운치가 묻어난다. 승선교 아래 다리를 건너 잠시 계곡으로 내려서자. 승선교의 둥근 천장 아래로 보이는 강선루의 자태가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선암사도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풍수지리적 측면을 고려했다고 한다. 기가 빠져 나간다는 계곡 지점에는 강선루를 지어 막았고, 기가 가장 센 북쪽 끝 지점엔 각황전을 건립해 철불을 모셔 보완했다. 경내로 들어서기 전 작은 연못인 삼인당과 절 곳곳에는 약수가 흐른다.

 오랫동안 절에 불이 잦자 도선국사가 물길을 냈다고 전해온다. 이를 입증하듯 '호남제일선원'이란 편액이 붙은 일주문 뒤 '청량산 해천사(海川寺)'라는 옛 절 이름이 눈에 띈다. 심지어 전각 벽면에도 '물 수(水)' 자와 '바다 해(海)' 자가 조각돼 있다.

 400년 된 뒷간도 놓쳐선 안 될 볼거리. 국내 화장실 중 가장 깊고 아름다워 지방문화재로 지정됐다. 아마도 화장실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이 해우소는 지금도 건축 전공 대학생들이 찾아와 사진촬영과 함께 짜임새를 조사하는 등 연구대상으로 인기가 높다.

정호승의 시 '선암사'에도 등장하는 누운 소나무의 자태도 빠뜨리지 말자.

최근에는 볼거리가 또 하나 늘었다. 44억 원을 들여 지난달 4일 문을 연 야생차체험관(061-749-4202)이 바로 그것이다. 한옥 8개동에 야생차 전시관, 강당, 차 만들기 체험실, 산방 체험동, 시음 및 판매실 등을 갖춰 순천 야생차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조계산 동서횡단로와 보리밥집

조계산은 전형적인 육산. 그 만큼 산길이 부드럽다. 일년 탐방객은 연간 55만 명으로 웬만한 국립공원에 버금간다. 선암사나 송광사를 들머리로 해서 정상인 장군봉(884m)을 거쳐 한 바퀴 돌면 적어도 5시간은 걸어야 한다. 한데 조계산에는 나이 지긋한,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추지 않은 소위 '헐렁한' 산꾼들이 자주 눈에 띈다.

바로 조계산을 동서로 횡단하는 일명 변두리 코스라 불리는 동서횡단로 때문이다. 북쪽에 위치한 장군봉을 거치지 않고 선암사~송광사를 오가는 옛길이다.

 원래 1000여 년 전부터 선암사 및 송광사 스님들과 절 아래 사하촌 민초들이 오가던 길로 총 길이는 6.8㎞. 찬찬히 담소하며 보리밥 한 그릇을 비우고 쉬엄쉬엄 산보하듯 걸어도 3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굴곡없는 편평한 문경새재길을 연상하면 곤란하다. 선암굴목재와 송광굴목재라는 두 개의 고갯마루를 슬쩍 넘어야 한다. 위치 또한 출발점에서 각각 2㎞ 남짓한 지점에 있고, 그 사이에 보리밥집이 자리잡고 있어 평일에도 나그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선암굴목재까지는 대체로 완만한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보리밥집부터 송광굴목재를 거쳐 송광사까지는 그리 힘들지 않은 낙엽융단길이어서 콧노래를 부르며 거닐 수 있다.

들머리는 삼인당 인근 기념품 가게인 선각당 우측으로 길이 열려 있다. 물론 이정표가 친절하게 서 있다. '송광사 또는 선암굴목재'라 적힌 이정표만 따라 가면 된다. 생태체험 야외학습장과 편백숲, 야생화단지를 지난다. 사바세계에는 이제 봄이 왔건만 산속에는 앙상한 가지의 나목이 아직 겨울산의 한가운데 서 있음을 깨닫는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어가는 변두리길인 동서횡단로에는 여수해경에 근무하는 일명 인오라는 경찰관 한 분이 사진에서처럼 한 여러 바위에 얽힌 전설과 송광사나 선암사 순례를 위한 도움말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 놓았다.  

               동서횡단로인 이 길은 편평하지 않고 적당하게 오르내리는 굴곡이 있다.
조계산 등로 중 산꾼들의 발길이 가장 잦은 선암사 굴목재다리.

 그래도 길동무는 곳곳에 숨어 있다. 여수해경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이 친절하게 등로 곳곳에 위치한 여러 바위에 얽힌 전설과 송광사나 선암사 순례를 위한 도움말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 놓았다.

 제천바위 전설, 조계산 이름의 내력, 숯가마터, 호랑이 턱걸이 바위 전설, 소설 '태백산맥'과 조계산, 산꾼들을 위한 맥으로 본 조계산, 배도사 대피소의 내력, 걸친바위 전설 등이 그것이다.
   
 
넉넉잡아 1시간이면 (조계산) 보리밥집(061-754-3756)에 도착한다. 이 원조 보리밥집이 유명해지면서 언제부턴가 인근에 짝퉁인 '아래 보리밥집'과 '면산골 보리밥집'이 생겼다. 그래도 대다수의 나그네들은 원조집만 고집한다.

보리밥집은 선암사와 송광사의 중간쯤 지점에 위치해 있다.
손님들은 비닐하우스에서, 또는 야외 편상에 앉아 식사를 한다.
산에서 보리밥을 먹으면 누구나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 그릇 뚝딱 비운다. 
보리밥집에선 음식을 직접 받아와야 하는 '셀프' 스타일이다.
보리밥집 바로 아래에는 조그만 물레방아가 하나 있다. 8, 9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보리밥집을 밝혀주던 유일한 발전 수단이었다.


 식탁도 밥상도 없이 나무 아래 평상만 10여 개가 있으며 지금은 찬바람을 막기 위해 커다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놨다. 일손이 적어 부엌에 가서 밥값을 치르고 커다란 쟁반에 직접 받아와야 하며, 가마솥에 끓는 숭늉 또한 직접 떠마셔야 한다. 모든 게 '셀프'다.

 원래 산에선 신 김치 쪼가리에 맨밥을 먹어도 맛있는 법. 하물며 고소한 참기름과 고추장 양념이 담긴 대접에 보리밥과 갖은 야채를 담은 후 쓱쓱 비벼먹는 그 맛이란 진수성찬의 그것에 다름아니다.

 허기진 배를 채웠으면 아래 물가 쪽으로 내려가보자. 조그만 물레방아가 하나 있다. 8, 9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보리밥집을 밝혀주던 유일한 발전 수단이었단다.

 주인장 최석두(57) 씨는 "이 물레방아로 불을 밝혀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공부도 하고 TV도 봤다"고 말했다. 계곡 옆 나무 위엔 산꾼들이 뭔가를 따고 있다. 다래였다. 인심도 후덕해 한두 알씩 맛보라며 건넨다. 속은 영판 키위와 닮았지만 맛은 한 수 위다. 보리밥집에서 송광사까지는 경사가 완만하다. 산길을 빠져나오면 우측에 송광사가 비로소 시야에 들어온다.

숯가마터도 만난다.
송광사에 가까워오면 대피소가 하나 있다.
사거리인 송광굴목재. 해발 720미터로 웬만한 산 정상 높이와 맞먹는다. 우로 오르면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 좌로 향하면 쌍향수로 유명한 천자암으로 이어진다. 직진하면 송광사.

16국사 배출한 승보사찰 송광사

신라말 혜린선사가 창건한 송광사는 고려부터 조선까지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한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이다. 16국사의 진영을 모신 국사전(국보 제56호)의 내벽은 흥미롭게도 18칸. 앞으로 두 분의 큰 스님이 배출되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란다.   

마침내 송광사. 아래 사진은 송광사의 세 가지 명물 중 하나인 비사리구시. 쌀 7가마 분량을 저장할 수 있는 배모양의 나무밥통이다.
 
 송광사에는 세 가지 명물이 있다. 비사리구시, 능견난사, 쌍향수가 바로 그것. 승보전 옆에 놓인 비사리구시는 쌀 7가마 분량을 저장할 수 있는 배모양의 나무밥통이다. 성보박물관에 있는 능견난사(能見難思)는 문자 그대로 '능히 보기는 해도 그 이치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뜻을 가진 그릇. 어느 순서로 포개어도 포개지는 그릇을 두고 조선 숙종이 장인에게 만들어보라고 하자 어느 누구도 똑같이 만들 수 없었다는 후문이 전해온다.

곱향나무인 일명 쌍향수는 송광사 산내암자인 천자암에 있다. 송광굴목재에서 1.7㎞, 걸어선 대략 30분 걸린다. 두 그루의 향나무가 같은 모습을 한 쌍향수는 나무 전체가 엿가락처럼 꼬여 있고 가지가 모두 땅을 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동서횡단로에서 쌍향수를 보고 다시 오려면 1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천자암에서 동서횡단로로 오지 않고 곧바로 송광사로 넘어 가더라도 역시 1시간 가량 더 걸린다.

경내로 들어가는 우화각 인근에는 뼈대만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다. 일명 '고향수'다. 보조국사 지눌이 지팡이를 꼽았다는 이 전설의 나무는 무려 800년이 지나도 쓰러지지 않아 불가사의로 손꼽힌다.

교통편 - 순천서 부산 막차 오후 8시30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승주IC~승주·야생화체험관 방향 우회전~선암사 방향 우회전~낙안온천·낙안민속마을~삼거리서 857번 지방도 선암사 방향 우회전~선암사.

 만일 차를 선암사에 두고 동서횡단로를 거쳐 송광사로 갔다면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송광사 앞에서 111번 시내버스를 타고 승주읍(쌍암)에 내린 후 선암사행 1번 버스를 타면 된다. 두 버스 모두 배차 간격은 30분. 시간이 여의치 않을 경우 택시(061-754-2000)를 이용하면 편리하지만 요금이 꽤 비싸다. 3만 원.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순천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30분, 7시10분, 8시10분, 8시50분, 9시10분에 출발한다. 1만1200원. 2시간40분 소요. 터미널 앞에서 순천교통 1번 시내버스를 타고 선암사에서 내린다. 송광사에서 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0~40분 간격으로 있으며 막차는 밤 10시. 순천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20분, 5시10분, 5시20분, 6시25분, 7시, 8시30분(막차)에 있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진일 기사식당(061-754-5320). 호남고속도로 승주IC에서 나와 선암사 방향으로 가는 857번 지방도 입구에 위치해 있다. 간판도 아주 커 찾기 쉽다. 메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단 하나, 김치찌개. 냄비가 아닌 프라이팬에 끓여내 우선 독특하다. 맛의 비결은 별도로 담근 찌개용 김치에 큰 솥에 미리 볶아놓은 시골 돼지고기를 넣어 한 번 더 끓이기 때문이다. 반찬은 15가지 정도. 혼자 와도 독상을 받을 수 있다. 5000원.


억산 깨진바위 거참 희한하게 생겼네
-영남알프스 청도 범봉 대비골~천문지골 산행

산행 시종점 각각 대비사 운문사 볼거리 무궁무진
오를 때 대비골, 하산 때 천문지골 큰골 모두 계곡산행
걷는시간만 4시간5분 산행 답사 두 마리 토끼 가능
억산 정각산 개물방산 호거대 지룡산 등 모두 조망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구니 사찰인 대비사 대웅전 좌측 처마 위로 쩌억 갈라진 모양의 바위가 억산 깨진바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팔풍재를 지나 범봉으로 가는 도중 만난 전망대에서 본 억산 깨진바위. 우측 산아래 위치한 대비사에선 깨진바위가 선명하게 확인됐지만 이곳 전망대는 보는 각도가 달라 사진상으로 깨진바위의 형상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깨진 틈이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깨진바위 능선 우측 끝 봉우리는 개물방산(왼쪽). 개물방산 우측 저수지는 들머리의 대비지(박곡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범봉과 바로 이웃한 억산에서 본 깨진바위. 억산 정상에서 수리봉 쪽으로 약간만 내려서면 만나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억산 깨진바위. 대비사에서 본 깨진바위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억산은 그 자체가 영남알프스 전망대다. 억산 정상에서 바라본 경관으로, 건너편 맨 왼쪽이 깨진바위의 일부분이고, 정면이 범봉, 그 오른쪽 둥그스름한 봉우리가 운문산, 맨 뒤 능선 중 한 가운데 뾰족봉이 영남알프스 맏형 가지산, 그 왼쪽 끝이 상운산이다.



 천년고찰 운문사는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영주 부석사 등과 함께 전국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사찰 중 하나이다. 절로 향하는 길 주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빠알간 늦사과와 노오란 은행잎이 환상적인 영주 부석사만 만추에 유독 두드러질 뿐 나머지 사찰은 사시사철 꾸준하게 발길이 이어진다.

 명산에 명찰이라 했던가. 선암사는 전형적 육산인 조계산이, 대흥사는 다도해 국립공원을 굽어보는 암봉인 두륜산이, 소백산 국립공원에 포함돼 있는 부석사는 백두대간인 소백산 줄기가 품고 있다.

 청도 운문사는 차고 앉은 형세가 다른 사찰과 사뭇 다르다. 통상 사찰은 산을 등지고 있는데 반해 운문사는 운문산과 마주보고 있다. 실제로 옛 비로전인 대웅보전 앞에 서면 운문산 정상이 올려다보인다.

 한데, 절집 앞 현판에는 '호거산(虎踞山) 운문사(雲門寺)'라 적혀 있다. 호거산은 절 북서쪽에 위치한 호랑이가 의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한 암봉으로 일명 등심바위. 통상 절이름 앞의 산이름은 가장 근접한 곳의 봉우리 이름을 붙인다는 관습에 따라 호거대라 불리는 암봉을 호거산으로 바꿔 붙였지 않나 싶다.

 뜬금없이 운문사를 화두로 꺼낸 까닭은 독자들의 전화 때문. 그들은 한결같이 하산 지점이 운문사인 코스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운문사로 하산 가능한 봉우리는 운문사 북동쪽의 지룡산, 북서쪽의 호거대(등심바위)와 딱밭재에서 떨어지는 천문지골, 아랫재에서 시작되는 심심이골 그리고 상운산이나 가지산에서 출발하는 학심이골 정도.

 지룡산 호거대 심심이골 학심이골 등은 최근 소개했거나 코스가 너무 길어 고민 끝에 산행팀은 청도 대비사에서 출발하는 범봉 코스를 택했다. 한적한 천년고찰 대비사에서 대비골로 올라 적당히 능선길을 걷다가 천문지골로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점이라면 원점회귀가 아니라 대중교통편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

 구체적 경로는 청도군 금천면 대비사~대비골~팔풍재~전망대~등심바위(호거대) 갈림길~범봉~딱밭재~천문지골~큰골(운문천)~운문사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5분 정도. 들머리와 날머리의 천년고찰 대비사와 운문사를 구경하고, 오르내릴 때의 대비골과 천문지골에서 발을 담그며 땀을 식히노라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들머리는 대비사. 이 코스는 산 너머 밀양 석골사와 함께 억산으로 오르는 유이(唯二)한 산길이지만 오지여서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이 점이 되레 한적한 산행을 가능케 해주는 순기능 역할을 하고 있다.

 호거대 아래 첩첩산중에 터를 잡은 비구니사찰 대비사 주차장 입구 '등산로'라고 적힌 조그만 이정표를 따라가며 산행은 시작된다. 절로 가는 길이 우측에 열려 있고 좌측 다리 건너에는 절벽 아래 부도전이 눈에 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비사 들머리 좌측에 위치한 부도전.

 들머리에서 4분이면 산으로 들어선다. 굴참 신갈 등 활엽수들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곧 갈림길을 만나지만 좌측 계곡(대비골) 쪽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출입을 막고 있어 우측으로 오른다. 계곡과 나란히 걷지만 아직은 산길에서 접근이 어려워 무작정 오른다. 20분쯤 올라야 비로소 계곡으로 가는 소로가 열려 있지만 무시하자. 5분 뒤 계류를 건너기 때문이다. 바닥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유난히 물이 맑은 데다 아주 차다. 조금 더 오르면 나홀로 '알탕'을 하기에 제격인 작은 소가 여럿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비사에서 주능선인 팔풍재로 가는 도중의 대비골.

 이어지는 산길. 농짝 내지 집채만한 바위가 정면에 병풍처럼 떡 버티고 있는 가운데 이끼 낀 작은 바위 사이로 산죽길이 기다린다. 이어 만나는 지계곡 물길을 건너면 산길은 지그재그로 바뀌며 상당히 가파른 된비알로 돌변한다. 여기에 바닥은 너덜길이 한동안 이어져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특히 주능선인 해발 770m대의 팔풍재로 오르기 전 300~400m 구간은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GPS 단말기로 얼핏 봐도 45도의 경사는 될 법하다. 들머리에서 팔풍재는 2.6㎞로 1시간35분 걸린다.

 팔풍재는 사거리. 우측은 왕복 40분쯤 걸리는 억산(0.6㎞), 직진하면 석골사(2.7㎞), 산행팀은 좌측 운문산(3.7㎞) 딱밭재(1.9㎞) 방향으로 향한다. 약간의 굴곡이 있어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전체적으로 내리막길로 수월한 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꿀맛같은 점심. 윤옥 씨, 다음 산행 때도 꼭 참석하세요. 산해진미가 따로 없다.

 오르막은 8분쯤 뒤부터 시작된다. 12분쯤 지그재그길을 힘겹게 오르면 전망대에 닿는다. 억산을 비롯한 주변 산들이 한눈에 파악된다. 약간 정면이지만 쩍 갈라진 깨진바위의 확인이 가능하다. 우측으로 들머리 쪽인 대비지가 보이고 발아래 골짜기가 방금 산행팀이 올라온 곳이다.

 억산 좌측 밀양 쪽에는 수리봉 실혜산 정각산 승학산 용암봉 종남산 덕대산이, 억산 바로 우측 저멀리 비슬산이 확인된다. 대비지 좌측 솟은 산이 개물방산, 그 뒤로 선의산 용각산 대왕산 통례산 학일산, 대비지 우측으로는 호거대, 그 뒤로 도롱굴산 서지산 옹강산 지룡산 서담골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3분쯤 급경사길로 오르면 등심바위(호거대) 갈림길. 좌측은 대비사 쪽으로 원점회귀가 가능한 능선길, 산행팀은 우측으로 오르다 다시 내려선다. 이제 정면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범봉이다.

 집채만한 바위를 우측으로 우회해 '좌 청도, 우 밀양' 산길을 걸으면 숲에 가려 조망이 하나도 없는 좁다란 공터에 닿는다. 범봉(969m)이다. 이정표와 119 구조 표지목이 나란히 서 있지만 범봉이라 적힌 정상석은 없다. 대신 누군가가 이정표 상에 검은 매직펜으로 '범봉'이라 적어 놓았다.

 우측은 상운암계곡 또는 대비골 방향, 산행팀은 좌측으로 내려선다. 4분 뒤 좌측으로 시야가 트인다. 맨 앞 회백색 바위들이 보석처럼 박힌 능선이 지룡산줄기이며 정상은 10시 방향 쪽 봉우리다. 그 아래 북대암이, 산행팀이 선 곳에서 정면에는 사리암이 보인다. 그 사이 둥그스름한 봉우리가 옹강산이며, 그 뒤 맨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사룡산 단석산 문복산이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내리막길의 종착지는 딱밭재. 전망대에서 10분. 옛날 이 주변에 닥나무가 많아 명명됐다고 전해온다. '글월 문(文)' 자가 들어가는 천문지골이란 이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다.

 딱밭재 역시 팔풍재와 마찬가지로 사거리. 직진하면 운문산(2㎞) 우측은 석골사(2.9㎞), 산행팀은 좌측 천문지골을 거쳐 운문사(4.5㎞)로 향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딱밭재에서 운문사로 내려서는 도중의 천문지골.


 30분 동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칠고 순한 지그재그 너덜길을 내려오면 비로소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후 산허리길을 돌며 천문지골이 빚어낸 운치있는 풍광을 감상한다. 와류가 흐르는 제법 미끄러운 암반을 지나면 일순간 편하고 너른 길을 만난다. 3분 뒤 계곡과 만난다. 유량도 적절하고 주변 풍광도 빼어나 잠시 쉬어가기에 적합하다. 이 계곡을 지나면 사실상 산책로 수준의 산길. 10분 뒤 운문산 자연생태 조사를 위한 일종의 텐트인 트랩도 지난다.

 산행은 이제 막바지. 계곡과 나란히 걷는다. 여유가 있으면 맘에 드는 계곡의 한 지점에 내려가 쉬어가면 어떠하리. 짧게는 3분, 길게는 9분 간격으로 네 번의 계곡을 지나 150m쯤 걸으면 갈림길. 딱밭재에서 1시간25분 소요. 좌측은 운문사 승가대학 학장인 법계 명성 스님의 처소인 죽림헌 방향, 산행팀은 직진형 우측으로 향한다. 잠시 후 다시 큰골을 건너면 사리암에서 운문사로 이어지는 포장로에 올라서고 여기서 입산통제 초소를 지나면 운문사에 닿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번 산행의 날머리인 청도 운문사 전경.



#떠나기 전에-2만5000분의 1 지형도, 범봉 자리에 억산 표기 오류

 이번 산행의 들머리와 날머리는 각각 천년고찰 대비사와 운문사. 모두 비구니 사찰이다. 신라 진흥왕 557년 한 선승이 청도 호거산(지금의 호거대)에 들어와 3년 동안 수도를 한 후 절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 스님은 현 운문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산허리 갑(岬)' 자가 들어가는 '오갑사(五岬寺)'를 7년 만에 완성했다. 동쪽의 가슬갑사, 서쪽의 대비갑사, 남쪽의 천문갑사, 북쪽의 소보갑사 그리고 중앙의 대작갑사가 바로 그것. 대작갑사와 대비갑사는 각각 지금의 운문사, 대비사이며 나머지 세 갑사는 폐사돼 찾을 길이 없다.

 그 흔한 일주문이나 천왕문조차 없는 대비사는 그야말로 심산유곡 깊은 산골에 위치한 절집. 단청이 모두 벗겨져 고풍스러운 맛이 물씬 풍기는 맞배지붕의 보물 제834호 대웅전이 우선 눈길을 끈다. 이곳에선 깨진바위로 불리는 독특한 형상의 억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종점인 박곡(리) 도로변에 위치한 보물 제203호인 박곡리 석가여래좌상도 챙겨보자. 석굴암과 시기와 양식이 비슷한 이 불상은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날머리 운문사는 설명이 필요없는 아름다운 사찰. 노송들의 빼어난 각선미는 언제 봐도 가슴을 뛰게 하고 천년기념물인 500년 된 처진소나무는 언제봐도 정감이 간다. 경내에선 남쪽으로 운문산이 포근하게 다가오고, 북동쪽으로 운문사보다 먼저 창건된 북대암을 품은 지룡산의 암봉이, 북서쪽으로는 호랑이가 의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한 호거대(등심바위)가 손에 잡힌다. 수줍게 총총걸음을 옮기는 비구니들도 정겹다. 불전사물도 놓치지 말자. 법고 목어 운판 범종 순으로 시방세계에 어둠을 알리는 일종의 의식이다. 불전사물을 두드리는 이가 모두 이승이며, 50여 명의 동료 학인스님들도 예를 갖추고 함께 동참해 눈길을 끈다. 또 한 가지. 국토지리정보원이 발행하는 2만5000분의 1 지형도에는 범봉의 자리에 억산이라 표기돼 있고, 억산 자리에는 그냥 깨진바위라고 적혀 있다. 첨언 하나 더. 천문지골 학심이계곡 등 운문사를 끼고 있는 계곡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므로 하산길에 물가로 내려 몸을 씻는 행위는 삼가주시기 바란다.

#교통편-운문사에선 사리암 오가는 직행버스 이용하면 편리

열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부산역에서 청도행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는 오전 6시45분, 7시55분, 9시10분, 10시30분에 출발한다. 1시간 걸리며 4800원(주말 5000원). 청도역에서 길을 건너 인근에 위치한 청도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운문사행 버스를 타고 동곡에서 내린다. 오전 9시20분, 10시10분, 10시50분에 있다. 1시간 걸리며 3500원. 동곡정류장에서 들머리 대비사에 가기 위해선 박곡(리)에서 내려 3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오전 9시45분, 11시30분. 1000원.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동곡정류장 입구에 있는 개인택시(054-372-3066)를 이용하면 된다. 9000원.

 날머리 운문사에선 부산역에서 사리암을 오가는 직행버스(011-507-8801)를 타면 된다. 오후 4시30분(토요일만 오후 4시) 출발. 7000원. 이 버스를 놓쳤을 경우 청도로 가서 열차를 타야 한다. 청도행 버스는 오후 3시50분, 4시50분, 5시40분, 7시15분(막차). 3500원. 청도역에서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는 오후 1시54분, 5시51분, 6시15분, 6시40분, 7시52분, 9시40분에 있다.


글 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