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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산' K2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웅장한 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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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 베이스캠프(왼쪽)와 베이스캠프에서 본 수시로 일어나는 작은 사태.


 일반인들에게 세계 최고봉은 에베레스트(8848m)이지만 산악인들에게 세계 최고봉은 K2(8611m)라는 말이 있다. 해발고도는 낮지만 거대한 피라미드 꼴의 날카로운 이 산의 등반이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히말라야 8000m급 거봉들 중 K2의 등정률이 가장 낮은 30%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 1985년의 경우 등정을 시도한 26개의 원정대 중 겨우 9팀만이 성공했을 뿐이다.

 K2는 산세가 험한 것 이외에 상습적인 돌풍을 위시한 기상이변이 잦다. 히말라야의 대부분 8000m급 거봉들은 서로가 서로의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지만 K2는 파키스탄 북부지역의 카라코람 산군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비교적 떨어져 있어 사실상 독립봉우리로 간주된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불어오는 강풍이 K2와 직접 부딪히면서 일종의 소용돌이가 자주 발생해 산악인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산 자체가 험한 데다 기상이변까지 상습적으로 일어나기에 산악인들로서는 난공불락인 셈이다.

 지난 1986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등정한 오스트리아의 살아 있는 전설 라인홀트 매스너가 "K2의 어느 루트라도 다른 산의 어려운 루트보다 힘들다"고 말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국내 산악인들의 경우 지난 1986년 장봉완 등 3명이 올랐지만 같은 해 함께 등반한 9개 원정대 대원 중 18명이 목숨을 잃어 '죽음의 산'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14년만인 2000년에 와서야 영호남 합동대(박정헌 등 8명)를 시작으로 한국산악회 황기용, 엄홍길 14좌 추진위(엄홍길 한왕용 등 5명) 등에서 14명의 대원이 잇따라 등정, 한 시즌 등정국가 기록을 세우는 기염을 토했다. 이듬해인 2001년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위해 박영석이 동국대 산악부를 이끌고 올랐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이야 사실 '히말라야 14좌 등정'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 위해 K2에 도전장을 던졌겠지만, 큰 기록을 의식하지 않고 있는 여타 산악인들은 K2에 도전하는 것이 어쩌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죽음으로의 여정에 다름 아니다. 해서, 박영석의 K2 등정 이후 6년간 국내 어느 원정대도 감히 넘보지 못했다. 워낙 등반 자체가 힘들다 보니 도전조차 두려운 것이 K2의 현실임을 잘 보여준다.

 그러다 지난해 '2007 다이나믹 K2-브로드피크 부산 원정대'의 김진태 김창호 대원과 여성원정대의 오은선 대원이 잇따라 등정에 성공했다. 국내 원정대로서는 각각 6, 7번째였고, 개인으로선 21, 22, 23번째의 영광이었다.

 하지만 지난 1일 K2 등반에 나섰던 경남 울산지역 산악인인 황동진(45) 등반대장, 김효경(33) 박경효(29) 대원 등 3명이 등정 후 하산하다 실종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원정대는 곧바로 시신 수습에 나섰지만 불가항력적임을 깨닫곤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리곤 지난 14~16일 경남 김해 조은금강병원에서 경남산악연맹장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안타깝게도 시신없는 상태로 진행되는 장례여서 빈소가 아닌 분향소 형태로 치러졌다.

 지난해 K2 부산원정대의 지원조와 함께 K2 트래킹을 떠나 K2 베이스캠프에서 원정대원들과 이틀밤을 함께 하며 취재를 다녀온 기자는 이번 원정대의 비보를 듣고는 한동안 잊었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새삼 떠올랐다.

 곧바로 기자는 지난해 K2 부산원정대의 홍보성 대장과 통화를 했다. 그는 착찹한 심정으로 "조금 전 조형규 경남산악연맹 회장과 통화를 하며 현지 소식을 듣고 위로의 말을 건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 대장은 산악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히말라야 8000m 거봉은 산신의 허락의 없으면 절대로 등정할 수 없다'는 경구가 이토록 가슴에 와닿은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K2로 가는 길은 사실 죽음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나 사상자를 많이 냈으면 유럽의 산악인들은 K2를 두고 '죽음을 부르는 산'이라고 불렀을까.

 K2 등반이나 K2 트래킹을 위해선 스카르두라는 곳에서 일정상 1박을 한다. 대개 전통의 K2모텔에 묵는다. 파키스탄 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인더스강을 굽어보는 전망좋은 이곳은 K2 브로드피크 가셔브롬 등 카라코람 히말라야의 발토르 빙하 일대를 등반하는 산악인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이를 대변하듯 기나 긴 복도에는 지난 수십년간 각국 원정대들의 등반을 알리는 사진이나 그림엽서, 지역 신문기사들이 전시돼 있다. 한국인으로 세 번째 히말라야 14좌에 오른 한왕용의 마지막 남은 가셔브롬 2와 브로드피크 등반 계획을 알리는 커다란 포스터도 걸려 있다.
 하지만 한 켠에는 지난 1996년 3명의 한국인이 브로드피크를 등정한 후 하산길에 불귀의 객이 됐다는 현지 파키스탄의 신문이 눈에 띈다. K2와 브로드피크 베이스캠프는 도보로 1시간30분밖에 걸리지 않아 통상 원정길에 오르면 두 봉우리를 함께 등반한다.

 발토르 빙하에서 풀이 있는 마지막 야영지인 우르드까스에선 박영석이 동료 산악인 2명을 추모하는 동판이 암벽에 걸려 있다. 그리고 야영지 끝자락에는 작은 비석들이 서 있는 묘지군이 눈에 띈다. 원정대나 트래커들의 짐을 나르는 현지 포터들의 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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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영지 우르드까스에서 본 현지 포터들의 묘지(왼쪽). 우측은 박영석 씨가 동료 산악인 두 명을 추모하기 위해 제작한 추모동판. 역시 우르드까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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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드까스에서 본 오스트리아인들의 추모동판(왼쪽)과 우르드까스 전경.

 K2 베이스캠프 입구 쪽 둔덕에는 '메모리얼 힐'이라는 추모공간이 있다. 작은 돌탑 주변에는 여러 개의 동판이 눈에 띈다. K2에서 희생된 전 세계 산악인들을 애도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이곳에는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책 '엄마의 마지막 산 K2'의 당사자인 알리슨 하그리브스의 동판도 눈에 띈다. 여성 산악인으로 지난 1995년 에베레스트를 무반소로 단독 등정한 그는 두 달간의 휴식 후 K2도 역시 무산소로 단독 등정에 성공했지만 하산길에 생을 마감했다. 네살, 여섯살 두 아이를 두고서.
 당시 여섯 살난 아이가 공식회견장에서 아빠에게 엄마가 죽은 곳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아이와 아빠의 K2 트래킹은 현실화됐고, 이 트래킹 기록이 바로 '엄마의 마지막 산 K2'의 내용이다. 당시 파키스탄은 정부 차원에서 이들의 트래킹을 지원했고, BBC는 이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K2가 죽음의 산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전 세계인들에게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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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2 베이스캠프 입구 쪽 둔덕에 위치한 '메모리얼 힐' 작은 돌탑에는 여러 개의 동판이 걸려
           있다. 돌탑 가운데 밤색 동판이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엄마의 마지막 산 K2'의 당사자인
           알리슨 하그리브스의 것이다.

 K2에서의 죽음의 흔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K2 베이스캠프에서 이틀밤을 보낸 기자는 시도때도 없이 들려오는 산사태의 굉음에 괜시리 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리속에 맴돌았다. 고소 캠프 구축을 위해 베이스캠프를 오가던 한 대원은 작은 산사태가 일어나 국적 불명의 시신 한 구가 떠내려오는 걸 봤다고도 했다.

 그리곤 귀국 후 부산원정대와 함께 K2 등반을 하던 세르파 니마 누루부가 캠프4에서 출발한 지 3시간만인 해발 8200m 지점에서 일순간 미끄러져 3000m 추락해 실종됐다는 사고 소식을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고 지점은 이번 경남 울산 원정대원들이 실종된 바로 그 지점이다. 세르파 니마 누루부는 1년 전인 2006년 부산원정대와 함께 에베레스트를 함께 등정한 친구이자 동생같은 존재였다.

 부산원정대에 따르면 2007년 에베레스트 등정 후 카트만두에 집이 있는 세르파 니마 누루부가 대원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식사 후 디저트를 먹으며 대원들은 "앞으로 부산원정대가 도전할 나머지 8000m급 거봉들도 함께 하자"고 제의하자 옆에 있던 부인이 "K2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는데 운명의 신이 결국 그의 남편인 니마를 K2에서 앗아갔다는 것.

 이 처럼 죽음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오가고 그 흔적이 곳곳에 베어 있는 K2로의 여정.
 그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K2는 세계 등반사에 자신의 이름을 확고히 새긴 기라성 같은 산악인들의 목숨을 가뭇없이 삼켜버린 '죽음의 산' 답게 인간의 의지만으론 결코 등정할 수 없는, 산신이 허락해야 오를 수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위엄이 넘쳐 흘렀다.

 K2 트래킹으로 인해 거의 7월 한달을 그곳에서 보낸 2007년 여름의 죽음에 대한 기억이 경남산악연맹 악우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오버랩되면서 다시 머리속을 맴돈다.

 그 험한 곳을 왜 갔어요. 갔다면 반드시 살아서 돌아와야지.
 
 슬프다. 안타깝다.
 애오라지 산이 좋아 산에 살았던 그래서 산에 묻힌 산사나이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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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2 등정 후 하산하다 불의의 사고로 희생된 황동진 원정대장과 박경효 김효경 대원의 분향소가
       지난 14~16일 김해 조은금강병원에 차려졌다. K2 원정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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