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최치원, 어머니 위해 건립한 상연대(上蓮臺)도 품고 있어

산행 도중 저 멀리 맨 뒤 능선, 천왕봉(왼쪽)에서 반야봉(우측)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이 일직선 상으로 하늘금을 그으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흰구름 산'이라 불리는 백운산(白雲山).
현재 우리나라에 백운봉까지 포함, `백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부산 기장의 백운산, 광양의 백운산 등 열댓 개. 20개를 넘는다는 천황봉(天皇峯)에 이어 두 번째다.
천황봉이라는 이름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황국사관을 이 땅에 심기 위해 편찬한 지도책에 적힌 이름을 근거로 한다. 해서, 산꾼들에 의해 하루빨리 옛 산이름 찾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지기를 바란다. 반면 백운산은 산이 높아 구름을 걸치고 있다는 자연발생적인 이름이어서 친근감이 더하다.

경남 함양군 백전면과 서상면, 전북 장수군 번암면에 걸쳐 있는 백운산은 우선 그 이름만큼이나 높고 험하다. 고로쇠약수로 유명한 광양 백운산이나 원주 백운산도 산높이가 1000m 이상 되지만 그 중 으뜸이 경남 함양의 백운산(1279m)이다.

해발고도뿐 아니라 조망도 빼어나다. 주변의 이름깨나 알려진 내로라하는 명산들이 사방팔방으로 거칠 것 없이 펼쳐져 있어 이를 확인하는데만 한참이 걸릴 정도이다.
하산길에 만나는 골짜기인 큰골의 기암괴석은 높이가 30m쯤 돼 협곡에 가까운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데다 주변 아름드리 홍송 또한 일품이다.

산행은 대방마을 매표소~묵계암~상연대~주능선~전망대~하봉~중봉~백운산 정상~화과원 갈림길~용소폭포~헬기장~백운암을 거쳐 매표소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 5시간~5간30분 걸린다.


매표소를 지나면 정면에 `등산로 종합안내도'가 서 있다. 왼쪽 `상연대 묵계암', 오른쪽은 `백운암 화과원' 방향. 원점산행이라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 없으나 하산할 때 콧노래를 부르며 쉽게 내려올 수 있게 왼쪽으로 오른다. 정면 뾰족한 봉우리인 하봉과 조그만 암자인 상연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산행 초기는 예상외로 따분하다. 묵계암을 거쳐 상연대까지 가는 50여 분 거리가 시멘트길이기 때문이다. 암자 두 채를 위해 왜 이토록 산골짜기까지 차가 다닐 수 있게 포장해 놓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하기까지 하다.

묵계암까지는 30분. 관음전 삼성각 등 전각 두 채가 아담하다. 비구니승 두 분이 수행하고 있으며, 이들은 지나가는 길손에게 차를 대접한다.
만일 시멘트길이 지루하다면 묵계암을 지나 우측으로 열린 산길로 오르면 묘지가 있는 주능선에서 만난다. 이럴 경우 상연대를 못본다.

 

상연대 전경.


20분 뒤 상연대(上蓮臺). 고운 최치원 선생이 어머니의 기도처로 지은 암자이다. 여기서 최치원은 여기서 관음 기도를 하던 중 관세음 보살이 나타나 상연(上蓮)이라는 이름이 불러 이후 암자의 이름을 '상연대'라 불리게 됐다 한다.
 15m쯤 되는 벼랑 위에 사뿐히 앉아 있는 모습이 연꽃처럼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말에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선문이 이곳으로 옮겨와 선문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고 전해온다. 무엇보다 왼쪽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일직선으로 하늘금을 긋는 지리산 파노라마가 압권이다.
상연대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왼쪽에 천왕봉이 우뚝 서 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어머니의 기도처로 건립한 상연대를 지켜주는 수호목. 
함양 백운산에 오르면 내로라하는 명산들이 사방팔방으 로 거침없이 펼쳐진다. 사진 가장 뒤쪽 능선이 지리산 주능선으로 주봉인 천왕봉(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제석봉 영신봉 토끼봉 반야봉 노고단 고리봉 등이 일직선 상 으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상연대에서 백운산 정상까지는 1.8㎞. 이정표를 따라 계단을 오르면 본격 산길로 접어든다. 엄청나게 급한 오르막길이 기다린다. 밧줄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20여분 뒤 제법 넓은 주능선. 묘지가 가운데 있고 묵계암쪽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만난다. 그 옆에 벤치가 있다.
계속되는 오르막, 이어지는 밧줄. 15분간 한바탕 또 힘을 소진하면 전망대. 방금 올라온 시멘트길과 능선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곧 무덤이 있는 봉우리에 닿는다. 하봉이다. 잡목 사이로 정상이 얼핏 모습을 드러낸다. 조금만 더 가면 중봉과 정상이 나란히 보인다.

7분 뒤 조망이 탁월한 중봉. 정상을 보고 오른쪽(동쪽)으로 남덕유산과 남령 월봉산이 이어지다 월봉산에서 능선이 갈라져 앞엔 거망산 황석산이, 뒤엔 금원산 기백산이 나란히 달리는 모습이 확인된다.
이어지는 산길. 정상 100m쯤 못가 무덤 2기가 있다. 왼쪽은 중고개를 거쳐 지리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다. 오른쪽으로 가면 바로 정상이다. 중봉에서 10분.

정상에서 지금까지 쭉 봐 온 주변 봉우리를 총정리할 수 있다. 정상석 앞에 `백운산 전망안내도'가 서 있지만 너무 낡아 아무 것도 확인할 수 없다. 주변 봉우리들의 이름을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쳐 아쉬움이 남는다.

남쪽의 지리산은 시야가 더 넓어져 이번엔 웅석봉에서 천왕봉~반야봉~노고단~만복대~바래봉~덕두산까지 펼쳐지고 동쪽 코 앞에는 괘관산이 의좋게 마주보고 있다.

하산은 오른쪽(동쪽) `백운암 원통재 화과원' 방향. 북사면이라 아직도 눈이 제법 남아 있다. 하나,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내리막이어서 조심을 요한다.
백운산 북사면에 아직 남아있는 잔설. 통상 11월부터 이듬해 3월말까지는 스패츠와 아이젠을 갖고 다녀야 한다.
         하산길에는 부드러운 산죽길이 기다린다.
백운암 대웅전.

영은사지 석장승.

영은사지 석장승과 안내판.



미개척 산길의 이정표 갈림길과 만나면 왼쪽으로 내려선다. 산죽길 너덜길 오솔길과 헬기장을 연이어 지나면 또 다시 밧줄을 잡고 내려와야 하는 급경사길. 15분 정도만 힘겹게 내려오면 계곡과 만난다. 지금부터 계곡과 나란히 걷는 그야말로 호젓한 산길. 20분 뒤엔 집수통에 연결되는 고로쇠파이프가 보인다. 울진의 응봉산 온천수 파이프가 연상된다.

이내 화과원 갈림길. 화과원은 기미독립선언서에 한용운과 함께 서명한 용성스님이 선농일치를 주장하며 손수 농사를 짓던 곳이다. 10여 분 걸린다. 계곡을 건너 화과원을 둘러보고 직진, 백운암으로 내려서자.

화과원 갈림길 아래에는 동시에 용소폭포가 자리잡고 있다. 15m 높이의 벼랑에서 떨어지는 폭포수 밑에는 용소가 있다. 폭포 옆에는 아름드리 노송이 주변 풍경을 더욱 운치있게 해준다. 백운산 최고의 비경지대라 할만하다. 이후부턴 협곡과 아름드리 홍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계곡길을 만끽하며 걷는다. 날머리인 백운암 인근에는 화강암 암반 위로 흐르는 옥수가 인상적이다. 백운암에서 매표소까지는 10분 걸린다.

◇ 떠나기전에 - 지리산 주능선과 북덕유 및 남덕유 잇는 덕유산 조망 '황홀'

 흔히 백운산하면 광양의 백운산을 먼저 생각한다. 광양 백운산의 유명세에 가려 있지만 함양의 백운산이 백운산으로서는 진산이다. 그래서 산꾼들에게는 동경의 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리산과 덕유산의 연결 고리인 백두대간 상의 함양 백운산. 남으로는 지리산 웅석봉에서 천왕봉 노고단에 이르는 지리주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북으로는 남덕유산 북덕유산을 잇는 조망권이 여타 산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리산과 덕유산을 연결하는 고리가 함양 백운산이기 때문이다.

이번 산행의 하산길인 큰골은 백운산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골짜기로 용소의 푸름이 절경을 연출하고 하봉에서 시작된 미끼골은 묵계암 상연대 등 급한 골짜기에 터를 잡은 절집이 위태롭게 걸려 있어 많은 시인묵객이 들러 머무르곤 했다.

백운산의 산길은 여럿 있다. 취재팀이 이번에 답사한 대방마을에서 출발, 미끼골을 거쳐 큰골로 하산한 코스가 최근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미끼골의 서쪽편에 있는 중고개에서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이어지는 오르막 산길은 산행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다.

백운산 바로 옆 괘관산에서 이어지는 원통재(일명 빼빼재)는 한적한 산길로, 화과원 뒷능선을 거쳐 서래봉 상봉을 연결하는 종주코스로도 시도할 만하다. 또 다른 길은 호남정맥의 무령고개에서 영취산을 거쳐 백운산으로 오르는 산길이 최근 산꾼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이 길은 백두대간을 맛보기할 수 있는 독특한 산길이다.

이번 주말에는 함양 백운산에 올라 지리산과 덕유산, 그리고 백두대간의 정기를 한 몸에 받아보자.

3월은 산행시기중 가장 어정쩡한 계절이다. 백운산은 봄 기운은 물론 아직 북사면에 잔설이 남아 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겨울장비를 챙겨가는 것도 잊지말자.

백운산으로 향하는 도중 천연기념물 154호 상림숲을 지나므로 시간이 날 경우 빠뜨리지 말자.

 
◇ 교통편 - 88고속도로 함양IC로 나와 상림 방향

부산 서부버스터미널(051-322-8306)에서 함양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40분, 6시20분, 6시59분 등 8~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만600원. 3시간 정도 걸린다.

함양시외버스터미널(055-963-3281~2)에서 들머리인 대방마을에 닿기 위해선 군내버스터미널(간판은 (주)함양지리산고속)에서 백전·신촌행 군내버스를 타 종점인 신촌에서 내리면 된다. 오전 7시40분, 8시, 9시30분, 10시20분, 11시20분 출발. 1600원. 군내버스터미널은 시외버스터미널 뒷문으로 나오면 길 건너편에 보인다.

날머리인 신촌 대방마을에서 함양시외버스터미널행 군내버스는 오후 4시, 5시, 6시10분, 8시20분(막차)에 있다. 함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5시10분, 6시, 6시45분, 7시5분, 7시28분(막차)에 출발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진고속도로~88고속도로 광주방향~함양IC~백운산 상림공원 우회전~함양시외버스 주차장사거리서 직진 백전 함양 방향~상림숲~월암삼거리 백전 서하 방향 좌회전~백전면~대방마을 순.






 

 무주에 위치한 나제통문(羅濟通門)은 흔히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웠다. 우리나라 정규 교육과정을 배운 장삼이사라면 모두 그렇게 알고 있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는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신이나 관료들이 오가는 관로였기 때문에 민초들은 엄격히 통제됐다.
 그렇다면 민초들은 어디를 경유해 신라에서 백제로 국경을 넘었을까.
 필자는 무주 석기봉~민주지산을 산행하면서 우연히 알게 됐다.
 흔히 민주지산은 무주보다 북쪽인 영동 물한계곡에서 산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국제신문 산행팀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산 너머 무주 설천면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5만분의 1 지형도를 준비해 가지만 들머리 찾기는 마을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산행팀은 물어 물어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하지만 산행 중 계속 의문이 가는 점이 있었다. 바로 지도상의 지명인 중고개였다. 그것도 윗중고개, 아랫중고개가 있는 것이었다.
 흔히 고개의 사전적 의미는 능선상에서 가장 낮은 지점으로, 산 너머 마을을 쉬이 넘나드는 지점을 의미하지만 이번 산행에서 중고개는 이런 사전적 의미의 고개와는 딴판이었다.
 운좋게도 산행팀은 이러한 의문에 명쾌하게 답을 준 스님 한 분을 만났다. 바로 아랫중고개 인근에 위치한, 단군을 모시는 신불사에서20여 년간 수도한 한산 스님이 바로 그분이다.

 스님에 따르면 이 중고개는 신라의 승려들이 중국을 오갈 때 넘어다닌 곳이란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제통문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신이나 관료들이 다녔고, 스님이나 민초들은 모두 이곳을 지났다는 것.
 구체적인 경로를 보면, 당으로 공부하러 가기 위한 신라의 스님들은 김천 직지사에 모여 뒷산인 황악산에 오른 후 백두대간길을 따라 전라 충정 경상도를 가르는 삼도봉에서 민주지산 쪽으로 능선을 갈아탄 후 석기봉을 거쳐 이곳 중고개로 하산, 이웃한 나제통문 대신 무주땅, 다시말해 당시로는 백제땅에 들어왔다.(아래 지도 참조) 이들은 이후 금산 논산을 거쳐 부여 백마강에서 배편으로 당으로 건너 갔다고 전해온다.

 이 때문에 중고개는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쉼터 역할을 한 사실에 연유돼 마을사람들이 명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지금도 사용되는 있는 설천면 내 법정리인 대불리(大佛里)나 그 아래 행정리인 불대(佛垈)마을은 모두 이곳을 스쳐간 스님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한산 스님의 설명이다. 스님은 또 석기봉 아래의 삼두마애불이나 지리서 '동국여지지'에 나오는 백운산(민주지산의 옛 이름) 기슭의 불두사(佛頭寺)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신라 때 중국으로 공부하러 갔던 원효나 의상 심지어 김유신에게 버림받아 장흥 천관산으로 귀의했던 천관녀도 모두 이 길을 밟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이 대략적인 설명이다. 아래는 산행팀이 석기봉~민주지산을 산행하고 정리한 산행기사이다. 이맘 때 석기봉은 산 중턱까지 온통 단풍나무로 가득차 황홀하다.
모처럼 역사공부도 할 겸, 단풍도 구경할 겸 석기봉~민주지산을 올라보시는 게 어떠할지... 



원효도 천관녀도 단풍 보며 쉬었을까

공부위해 중국 간 신라 스님 모두 이 길로 통행
이웃한 나제통문, 공적업무 수행 관료들만 이용
들머리 '중고개', 산 벗어난 스님들 쉬어간 곳
대불리 불대마을 등 불교지명, 여기서 유래
산 중턱까지 온통 단풍나무 군락, 이번 주말 절정
 
 

 전북 무주군과 충북 영동군을 가로지르며 중부 내륙 깊숙이 자리한 석기봉~민주지산. 노련한 산꾼들은 민주지산 하면 대개 영동 물한계곡을 떠올린다. 계곡미와 편리한 접근성 그리고 편안한 오르막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존 등산로 답습보다 새로운 루트 개척을 중히 여기는 산행팀은 영동 대신 산 너머 무주를 들머리로 길을 뚫었다.   
  
무주땅 북동쪽 설천면 대불리 중고개가 들머리. 통상 고개라 하면 산이나 언덕을 쉬이 넘나드는 지점을 말하지만 이곳 중고개는 이런 사전적 의미의 고개와는 전혀 딴판이다.

알고 보니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었다. 중고개 골짝의 단군을 모시는 신불사에서 20여 년간 수도한 한산 스님에 따르면 이곳은 신라의 승려들이 중국을 오갈 때 넘어다닌 곳이라 한다. 당시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인 나제통문(羅濟通門)이 있었지만 이는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관료들만 오가는 관로였기 때문에 민초들은 엄격히 통제됐다.

신불사 한산 스님.

산행들머리인 아랫중고개.

해서, 당으로 공부하러 가기 위한 신라의 스님들은 김천 직지사에 모여 황악산에 오른 후 백두대간길을 따라 삼도봉에서 민주지산 쪽으로 능선을 갈아탄 후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이곳 중고개로 하산, 이웃한 나제통문 대신 백제땅인 무주로 들어왔다. 이후 금산 논산을 거쳐 부여 백마강에서 배편으로 당으로 중국으로 건너 갔다. 의효나 의상 심지어 김유신에게 버림받은 천관녀도 모두 이 길을 밟았으리라.

이 때문에 중고개는 사전적 의미의 고개가 아니라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쉼터 역할을 한 사실에 연유돼 명명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설천면 내 법정리인 대불리(大佛里)나 그 아래 행정리인 불대(佛垈)마을 그리고 석기봉 바로 아래의 삼두마애불 모두 이곳을 스쳐간 스님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한산 스님의 설명이다.

무주 쪽에서 오른 석기봉과 민주지산은 알고 보니 단풍 산이었다. 기존의 단풍 명산과 견줘도 하등 손색이 없다. 산 아래만 단풍이 아름다운 유명 단풍 산에 비해 이곳은 해발 800m대까지 울긋불긋한 단풍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온통 단풍 천지였다. 단풍 명산 목록에 새로 추가해도 될 듯하다.

 산행은 대불리 아랫중고개~삼도봉 민주지산 갈림길~삼두마애불~석기봉(1180m)~물한계곡(속새골) 갈림길~민주지산(1242m)~윗중고개~아랫중고개 순. 걷는 시간만 4시20분 정도지만 절정의 단풍을 감상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외길이라 길 찾기는 쉽지만 거칠고 험한 하산길은 고생을 좀 해야 한다. 하여, 노란 안내 리본을 촘촘하게 묶어놨다.

아랫중고개 입구의 깔끔한 흰색 민가 옆엔 예쁜 무지개 다리 두 개가 눈에 띈다. 다리를 건너면 신불사. 산행 후 잠시 둘러보기로 하고 다리 쪽으로 직진한다. '상수도 유원지 차량 출입 엄금'이라 적힌 팻말을 지나면서 정면 저 멀리 정상부가 쌀겨처럼 엉겨 있는 봉우리가 보인다. 곧 오를 석기봉이다.

5분 뒤 '석기봉 1.5㎞'라 적힌 이정표를 따라 산으로 들어선다. 곧 창고인 듯한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을 지난다. 길은 약간 거칠지만 반듯해 정감이 간다. 10분 뒤 계류를 건넌다. 알고 보니 바로 옆 또 다른 계류와 만나는 합수점이다. 붉은 단풍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붙잡는다. 수정같이 맑은 계류에 비치는 붉은 빛과 고색창연한 초록 이끼. 이는 화려한 단풍 산의 서막에 불과하다.

계류를 건너면 이내 갈림길. 우측으로 7, 8m쯤 가면 세 갈래길. 가운데길로 발길을 옮긴다. 길섶엔 쑥부쟁이 구절초 용담 꽃향유 등 야생화와 억새가 나 좀 보라 손짓한다.



석기봉은 해발 800m대의 산 중턱 이상까지 단풍나무 군락지여서 단풍 명산 목록에 새로 추가해도 될 듯하다.

10분 뒤 아름드리 낙엽송도 대자연의 법칙에 머리를 조아리고 황갈색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다시 10분 뒤 일순간 산길이 왼쪽으로 90도 꺾이면서 된비알로 변하지만 그것도 잠시. 산죽과 더불어 완경사 오르막이 이어진다.

크고 작은 돌들이 널브러진 지계곡을 지나면서 주변이 온통 단풍 천국으로 변한다. 계곡을 중심으로 양측 산사면까지 포함하면 폭이 족히 30m쯤 되는 산 속이 온통 단풍나무 천국이다. 온 산이 불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다. 이러한 형국이 수 백m 이어진다.

이창우 대장도 "단풍 명산은 보통 산 아래나 계곡 주변에 한 두 그루씩 화려하게 빛을 발하지만 이처럼 단풍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곳은 아주 드문 경우"라고 연신 셔터를 눌렀다.

산길은 급경사길로 돌변한다. 단풍은 다소 뜸하지만 계곡 쪽 먼 발치엔 여전히 눈에 띈다. 25분쯤 길 좌측으로 집채만한 바위가 보일 무렵 단풍은 이제 거의 빛이 바랬다. 곧 갈림길. 왼쪽 민주지산 대신 우측 삼도봉 방향으로 간다. 곧 50m 암벽에 높이 6m의 머리가 셋인 삼두(三頭)마애불을 만난다. 좀처럼 보기 드문 형상이다. 마애불 아래에는 너른 터와 약수물탕이 있어 오래 전부터 기도처로 이용돼 온 것으로 보인다.

50m 암벽에 높이 6m의 머리가 셋인 삼두(三頭)마애불.


석기봉 정상.

삼두마애불에서 50m쯤 바위 사이로 오르면 석기봉. 정상석이 없는 이곳에 서면 우측 정면으로 정상 부분에 삼도 대화합기념탑이 약간 보이는 삼도봉과 그 우측으로 웅장한 백두대간 산줄기가 용틀임하며 내달린다. 삼도봉 우측 뒤로 저 멀리 대덕산과 초점산이 희미하게 확인된다. 뒤돌아 서면 정면 뾰족한 봉우리가 민주지산이고 그 우측 뒤 V자 홈이 난 봉우리가 각호산과 배걸이봉이다.

                     석기봉에서 민주지산 가는 길.

왼쪽 민주지산 쪽으로 내려선다. 밧줄에 연이어 의지해 내려오길 세 차례. 이어지는 산길에도 없어도 될 지점에 유달리 밧줄이 매어져 있다. 적설량이 특히 많은 이곳은 겨울 내내 빙판길이라 안전을 위해서라고 이 대장은 말한다.

석기봉에서 민주지산까지는 외길로 대략 1시간10분 걸린다. 산길 왼쪽은 무주, 오른쪽은 영동이다. 돌길 또는 침목계단길을 오르내리고 산죽길로 내달린다. 무명 봉우리를 하나 넘는데 이곳이 대략 중간 지점이다. 또 물한계곡으로 빠지는 탈출로가 셋 있지만 벤치가 둘 있는 정상 직전 탈출로(속새골 갈림길) 외에는 등반 통제구역이란 안내판이 서 있다.

민주지산 정상 직전 영동 물한계곡으로 내려서는 갈림길

영동군이 세운 정상석과 삼각점 앞에 서면 방금 지나온 석기봉과 삼도봉이 보이고, 정북으로 뿔 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각호산과 배걸이봉, 그 왼쪽 뒤 푹 꺼진 도마령 뒤로 천마산 천마령이 손에 잡힌다. 이 대장은 "날이 맑을 경우 가야 황악 금오 덕유산과 무주리조트의 슬로프도 보인다"고 말했다.

    
하산은 15m쯤 되내려가 방금 온 좌측 대신 직진 오름길로 향한다. 우측으로 길게 뻗은 능선을 타고 원점회귀하기 위해서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럭저럭 막힘없이 열려 있다. 이곳은 앞선 등로와 달리 겨울산. 바람이 차거니와 낙엽이 수북이 깔여 있다. 대신 바싹 마른 낙엽 밟는 소리가 정겹다.

민주지산 정상.

민주지사에서 본 석기봉(가운데 뾰족한 봉)과 그 왼쪽이 삼도봉이다.

30여 분 뒤 만나는 갈림길에선 우로 내려선다. 상행길만큼은 못 하지만 길 주변의 단풍이 한 번 더 시선을 끈다. 갈림길에서 15분이면 사거리 안부에 선다. 오른쪽은 불대마을, 왼쪽으로 내려선다. 급경사길로 변하면서 일순간 길이 사라지지만 왼쪽 계곡 쪽 싸리나무에 가려진 산길이 숨어 있다. 산행팀은 입구의 싸리나무를 꺾고 길을 연 다음 노란 안내리본을 촘촘하게 매달아 놓았다. 5분쯤 뒤 물 마른 계곡에 닿고, 여기서 15분이면 산을 벗어난다. 입구에 '민주지산 1.8㎞'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여기서 윗중고개마을을 거쳐 아랫중고개까지는 5분 걸린다.


# 떠나기전에 - 일제 때 왜곡된 민주지산 한자 여태 통일 안돼

민주지산이라는 이름은 수수께끼다. 반계 유형원이 쓴 지리서 '동국여지지'에는 이곳이 백운산으로 표기돼 있지만 이후 일제에 의해 왜곡됐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일제가 어떤 근거로 이름지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지금도 민주지산의 한자 표기는 통일되지 못하고 여러 가지로 혼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먼저 국립정보지리원 발행 지형도에는 '잘 면(眠)' 자를 써서 眠周之山(면주지산)이라 표기돼 있다. 혹자는 '면'자를 '민' 자로 읽기도 한다는 데 옥편을 찾아보면 근거없는 얘기다. 한 발 양보해 만일 '민' 자로 읽기도 한다면 '둘레 주(周)' 자와 곁들여 '주변이 함께 졸고 있다'는 뜻으로 백두대간을 넘보며 용틀임하는 이 산줄기가 졸고 있으니 일제의 의도와 대략 일치한다. 또 '둘레 주' 자 대신 '주인 주(主)'를 조합해 眠主之山이라 하면 '주인이 잠들다'는 뜻이 돼 역시 일제의 의도가 엿보인다.

'옥돌 민(珉)' 자를 쓴 珉周之山은 '주변에 옥에 버금가는 돌만 두루 깔렸다'는 의미겠으나 일제에 의해 개명됐다기 보다 호사가들이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또 '옥돌 민(珉)'를 따로 빼 '왕과 백성이 두루 살펴본다'는 의미로도 해석하기도 한다. 어떤 백과사전에는 '산 이름 민(岷)' 자도 보인다. 흠 잡을 데 없는 무난한 이름 같지만 왠지 2% 부족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백컨대 기자는 민주지산이라 해서 처음엔 무슨 민주화의 성지쯤 되는 산인 줄 알았다.

출처가 불분명한 민주지산 대신 원래의 이름인 백운산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이 시점에서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첨언 하나. 충청 경상 전라도 등 세 도를 가른다고 해서 명명된 백두대간 삼도봉과 석기봉은 모두 민주지산에 속하는 봉우리다. 혹자는 민주지산의 북쪽에 위치한 각호산까지 포함시키는 데 산세로 봐서 별개의 봉우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첨언 둘. 들머리 아랫중고개에서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 신불사 봉황대. 한산 스님은 지세로 봐서 봉황이 터를 잡은 곳이란다. 지도 상에는 진벌로 표기된 이곳은 백제시대 병사들의 진지가 있었다고 전해온다. 송림을 배경으로 인공연못과 정자를 조성해 놓아 경관이 빼어나다.

# 교통편 - 대중교통 당일치기 불가, 승용차 이용해야

대중교통편은 당일치기로 불가능하다. 부산서 무주로 바로 가는 시외버스는 없다. 굳이 적어 본다면 열차를 이용해 대전역~대전터미널로~무주시외버스터미널~설천면 소재 공용터미널. 여기서 택시를 이용해 들머리로 이동해야 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전통영 고속도로 무주IC~무주(무주리조트 구천동) 방면 우회전~영동 무주 안국사~싸리재터널~영동 상주~구천동 무주리조트 안국사~성주 설천 반디랜드 30번 국도~성주 설천 반디랜드 우회전~남대천과 나란히~설천면~반디랜드 지나~GS구천동주유소 지나~삼도봉 장터 방향 좌회전(훼미리마트)~삼도봉 민주지산~내북마을(대불리 신불사) 방향 좌회전~석기봉 안내판~아랫중고개(무지개다리) 순.

글 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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