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하면서 바라본 설악의 단풍과 주변 기암괴석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뭐니뭐니해도 단풍은 10월 산행의 영원한 제1 화두.

이 달은 전국 산꾼들의 산행 패턴이 일년 중 유일하게 통일되는 시점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소개되는 등산가이드의 산행지 대부분이 단풍의 남하 속도와 일치되는 점도 재미있는 풍경이라면 풍경. 이번 주 국제신문 산행팀도 이에 뒤질세라 단풍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강원도 설악산을 찾았다.

한반도의 남쪽 산하에서 단풍이 제일 먼저 시작된다는 상징성과 예부터 단풍이 곱기로 소문나, 단풍과 절경이 가장 잘 어우러진 명산으로 칭송되기 때문이다.

산행 관련 한 인터넷 사이트의 경우 지리산이 연중 접속자 수 1위를 차지하지만 단풍이 화려한 치장을 하는 10월만은 그 자리를 설악산에 내어줄 정도로 설악은 가을에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국립공원 설악산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올 설악 단풍은 12일을 전후해 절정을 이루겠다고 한다. 이번 주말 설악을 찾으면 해발 500m대인 천불동 수렴동 십이선녀탕계곡 등까지 단풍이 남하해 불타는 거대한 화염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것.

막상 산행지를 설악으로 정했지만 그 많은 코스 중 과연 어디로 오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앞을 가로막았다. 고민끝에 산행팀은 한계령을 시작으로 끝청~중청대피소~대청봉~소청~희운각대피소~무너미고개~천불동계곡~비선대~소공원 코스를 택했다. △내설악과 외설악을 두루 맛보고 △능선길을 걸으며 곱게 물든 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으며 △계곡 따라 길게 이어지는 단풍터널을 걸을 수 있고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많아 체력 소모를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에 그나마 가장 근접한 코스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10시간에서 길게는 12시간을 잡아야 한다.


 
부산서는 통상 무박2일 산행으로 이뤄지지만, 여유가 있다면 하루 전에 도착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새벽 산행을 권하고 싶다.

들머리는 한계령. 한계령은 설악산 남쪽에서 내설악과 외설악의 경계가 되는 지점으로 예부터 교통의 요로였다. 송강 정철의 대표적 가사문학 ‘관동별곡’의 배경이기도 하다. 가파른 철계단으로 시작되는 산행은 처음부터 오르막의 연속. 새벽이라 제법 찬 기운이 느껴지지만 이내 땀으로 젖는다. 머리 위로 별과 달만 또렷하게 보일 뿐 사방은 칠흑같은 어둠이다. 의지할 것은 손전등이나 헤드램프. 1시간50분 정도 무작정 걸으면 첫 갈림길. 귀때기청봉과 끝청 가는 길로 갈린다. 오른쪽 끝청 방향으로 간다.

지금부터는 장쾌한 서북능선길. 붉게 탄 단풍의 제모습은 아직도 어둠에 가려 희미하지만 주변 봉우리와 기암괴석은 본색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어 내·외설악의 진면모를 눈과 마음에 모두 담을 수 있다. 왼쪽 저 멀리 용의 치아 모양 같이 험준한 연봉(連峰)인 용아장성릉과 험난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공룡능선이 잇따라 보이고 그뒤로 황철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다듬어진 수려함이 금강산이라면 설악은 자연 그대로의 장엄함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산행 시작 후 4시간 정도면 일차 목적지인 끝청에 닿는다. 왼쪽에는 백운동 구곡담계곡 등이 자리해 있고 오른쪽엔 백두대간의 한 점 점봉산이 솟아 있다. 뒤로는 귀때기청봉과 가리봉 삼형제봉 주걱봉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끝청에서 중청대피소까지는 1시간 정도. 중청 정상은 군사시설로, 철조망으로 막혀 있다. 대피소 앞에는 이 곳에서 펼쳐지는 모든 봉우리와 능선을 그림과 함께 알려주고 있다. 소청봉 황철봉 마등령 울산바위 권금성 화채봉 공룡능선…. 봉우리명과 실제 위치를 맞춰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중청대피소에서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까지는 20분 정도. 사방에 펼쳐진 봉우리를 구름이 에워싸고 있고, 그 구름 위에 또 다른 구름이 겹쳐 있다. 산인지 구름바다인지 도통 구분이 가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백두대간 구간.    

대청봉의 아름다운 모습을 뒤로하고 중청을 지나 소청에 도착해 곧 희운각대피소로 발길을 옮긴다. 대피소까지 거리가 1.3㎞에 불과하지만 해발고도 차가 500m나 날 정도로 급경사의 연속이라 철계단과 철난간이 기다랗게 이어져 있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울긋불긋 단풍이 불기둥처럼 타오르고 있는데다 공룡능선이 눈앞에 성큼 다가와 눈이 여간 즐겁지 않다.

희운각대피소를 지나면 내설악의 수렴동계곡과 함께 단풍과 주변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는 외설악의 천불동계곡. 기암괴석이 마치 1천개의 불상을 연상케 한다는 천불동계곡은 대자연의 위대함과 신비함을 절로 느끼게 한다. 계곡 양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과 비취색 맑은 물빛, 가을 햇살에 붉고 노랗게 채색된 단풍의 절묘한 조화는 일순간 호흡이 멈춰질 만큼 환상적이다.

천당폭포

              


이곳에 오면 마치 천당에 온 것 같다하여 명명된 천당폭포를 비롯, 양폭 오련폭포 귀면암 문수담 등을 차례로 거쳐 선인 마고선이 하늘로 올라간 곳이자 설악8경 중의 하나인 비선대에 닿는다.

설악에서 이용객이 가장 많은 천불동계곡은 요즘같이 단풍 절정기가 되면 좁은 철계단과 등산로에 인파가 몰려 평소보다 산행시간이 많게는 1.5배나 걸리므로 유의해야 한다. 비선대부터는 산행로가 아니라 2.5㎞의 임도가 이어져 걷기에는 힘들지 않다. 권금성행 케이블카를 운행하는 소공원까지 50분 정도 걸린다. 시간이 허락되면 천년고찰 신흥사도 둘러보자.

# 떠나기 전에

속초시 양양군 인제군 고성군 등 4개 시·군에 걸쳐 있는 설악산은 지난 1965년 11월에 천연기념물 제171호로, 5년 뒤인 1970년에는 5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산이다. 지난 1982년에는 유네스코에서 생물권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고봉인 대청봉(大靑峰)은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남한 제3의 고봉(1,707.9m)이다. 대청봉을 정점으로 동서남북으로 뻗은 능선은 내설악 외설악 남설악으로 가른다.

대청봉은 흔히 청봉(靑峰)으로도 불린다.

창산 성해응 선생의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함께 노산 이은상 선생이 옛 신앙에 근거하여 밝고 푸른 봉우리라는 뜻으로 청봉으로 불렀다는 설이 있다.

대청봉으로 오르는 산길은 여럿이다.

그 중 오색에서 오르는 코스가 가장 짧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급한 오르막으로 많은 힘과 인내를 요구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한계령에서 오르는 코스가 각광을 받고 있다. 완만한 산길과 서북능선을 따라 걷는다는 기쁨으로 산꾼들이 많이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하산길의 천불동 계곡은 국내 3대 계곡으로 불릴 만큼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과거에는 ‘문닫이골’로 불렸다. 그만큼 험난해 철사다리가 없으면 길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지금은 철계단 등 길 안내 표시가 잘 정비돼 일반산행객이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산길로 자리 잡았다. 이 가을, 단풍 구경을 위해 천불동을 찾아보자.

# 교통편-부산서 설악산까지는 너무 먼데다 교통이 불편하다.

한계령을 들머리로 삼을 경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강릉 양양을 거쳐 한계령에 가야 한다. 강릉행 고속버스는 오전 6시58분, 8시40분 등 하루 8회 운행된다. 2만5천5백원. 강릉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양양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오전 5시50분 차를 첫 차로 20분 간격으로 있다. 막차는 밤 10시. 3천9백원. 양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한계령 정상까지는 오전 7시5분부터 30분 간격으로 오후 7시20분까지 차가 있다. 2천3백원.

날머리인 설악동에서 시내버스 7번을 타고 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부산행 고속버스를 탄다. 오전 6시40분, 8시25분 등 하루 6회 운행된다. 막차는 오후 1시40분. 3만8백원. 심야버스는 밤 9시, 9시50분, 10시40분, 11시10분에 있다. 3만3천9백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경부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홍천IC~인제~한계령 순으로 가면 되고 내려올 땐 설악동~주문진~강릉~영동고속도로~원주~중앙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 순으로 타면 된다. 아니면 양양~동해~삼척 울진~영덕~포항을 거치는 7번 국도를 타고 경주IC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도 된다.

무박2일 산행을 하려면 지역 산악회에서 밤 10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된다. 참고할 점 한 가지. 이 버스를 타고 설악산에 도착하더라도 반드시 산행할 필요는 없다. 가까운 울산바위나 비선대까지만 올라 단풍구경 등 별도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다 출발시간에만 닿으면 별 문제는 없다.

글 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산행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