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지리산 조망공원에 서면 지리산 주능선이 일렬 횡대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왼쪽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에서 오른쪽 반야봉까지 확인된다.


C 형!
얼마 전 '세상사가 왜 이리 무미건조하고 재미가 없을까'라는 저의 신세타령에 형은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이렇게 말씀하셨죠. "지리산엘 한 번 다녀와 봐. 달포 전 잠시 다녀왔는데 한결 나아졌어. 옛말 틀린 게 없더라고. 좋은 약, 좋은 음식 다 필요없어." 그러면서 형은 이렇게 덧붙였죠. "웬만하면 단풍철은 피해. 만산홍엽의 열병을 앓고 있는 지리의 풍광은 천하일색이지만 단풍철 행락객들의 분별없는 행동이 더 스트레스를 받게 하지."

지난 9월 말부터 설악을 한껏 물들이고 하루 25㎞의 속도로 숨 가쁘게 남하한 단풍이 이제 지리에서 종말을 고하고 남쪽 바다를 향해 치닫고 있더군요. 단풍이 끝난 지리는 비교적 한산했습니다. 참 잘 왔다는 생각이, 아니 형의 말을 그대로 믿고 잘 따랐다는 생각이 뼈에 사무치도록 느껴지더군요. 아마도 눈꽃 산행이 본격 시작되는 내달 초순까지는 이런 분위기가 지속될 것 같습니다.

 지리산은 과연 크고 깊고 넓고 길었습니다. 장중하며 초연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늘이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라는 남명 선생의 시구가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시인 정호승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조계산) 선암사로 가라'고 했지만 저는 지리산으로 가보라고 감히 권하고 싶습니다.

C 형! 
저는 이번에 함양 땅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시다시피 백두대간의 남쪽 관문인 지리산은 경남 함양 산청 하동, 전북 남원, 전남 구례 등 3도 5개 시·군에 걸쳐 있습니다. 5개 지자체 중 굳이 함양을 택한 이유는 지리산을 가장 잘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이어지는 25.5㎞의 유장한 흐름의 주능선이 '한 일(一)' 자로 한눈에 펼쳐지는 곳이 바로 이곳뿐이기 때문입니다. 곁들여 함양(咸陽)은 글자 그대로 볕을 머금은 듯 포근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초겨울이라 시기적으로 딱 맞지 않습니까.

우선 금대산 금대암과 삼정산 상무주암을 찾았습니다. 서쪽으론 백두대간 마루금이 긴 병풍을 치고 있고, 남북으로 각각 지리와 덕유가 첩첩이 벽을 두르고 있는 함양 땅에서 사실 금대산과 삼정산은 명함 내놓기가 좀 쑥스럽지요. 하지만 지리산 조망과 관련해선 최고의 '지리산 전망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흔히 하늘이 열리는 전망대로 불리지요. 1시간 채 안 되는 산행으로 암자를 찾아 사색에 잠기면서 지리를 품 안에 넣을 수 있는 이 기분, 안 가본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희열이지요. 이동 중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역시 지리산을 조망할 수 있는 벽송사와 서암정사도 들렀습니다. 두 암자만큼은 못 하지만 역시 지리의 넓은 품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성과도 있었습니다. 최치원의 애민사상이 담긴 함양의 대표적 숲인 상림과 함양군청에서도 뜻밖에 지리 주능선이 보였습니다. 결국 함양은 발길 닿는 곳이 대부분 지리산 전망대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리산보다 함양 땅에 대해 엉뚱한 이야기만 지껄였네요.
때마침 얼마 전 겨울을 재촉하는 단비가 내려 이번 주말이면 낙엽융단길을 밟고 지리산 언저리를 걸으며 지리를 맘껏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앙상한 가지는 너무 을씨년스럽지 않을까요. 약간의 낙엽비는 한 번 맞아봐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C 형!
내년에는 부디 이 길을 함께 걸으며 예전의 그 기분을 다시 느끼도록 해봅시다. 그땐 흑돼지와 소주도 꼭 함께 합시다.

지리산 굽어보던 수도승의 깨달음 "산이 곧 부처로다"

예부터 지리산 천왕봉은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라 불렸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25.5㎞의 주능선에는 해발 1500m 이상의 고봉만 10개나 되고 1000m 이상급은 20여 개 그리고 85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어깨를 견주며 하늘금을 가르고 있다. 그 모습은 과히 상상을 초월한다.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히말라야 칼라파트라에서 바라보는 에베레스트나 카라코람 히말라야 콩코르디아에서 조망되는 K2의 그것과 감흥은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손에 잡힐 듯 일렬횡대로 펼쳐지는 지리의 모습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따사롭다.

지리산이 앞마당, 삼정산 상무주암



  상무주암까지는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 넉넉잡아 40, 50분 정도는 걸어야 한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이다.

들머리는 영원사 인근. 함양 땅 최남단 마천면에서 백무동 방향으로 가다 보면 지리산 자연휴양림 또는 영원사로 가는 길이 도중에 열려 있다. 삼정산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됐다는 산 아래 양정, 음정, 하정마을 사이로 울퉁불퉁한 급경사 포장로를 힘겹게 오르면 곡각 지점에 샘터가 눈에 띈다.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 보이는 자리다.

영원사는 여기서 1.5㎞ 정도 더 가야 된다. 방법은 두 가지. 영원사까지 가서 해우소 뒤로 능선을 타고 상무주로 가는 방법이 하나요, 샘터 우측 전봇대 옆으로 열린 지름길로 치고 오르는 방법이 다른 하나다. 후자는 약간 경사가 심해 땀깨나 흘려야 된다. 그렇다고 악명 높은 된비알은 결코 아니다.

초겨울 암자를 향해 나홀로 걷는 산길은 사바세계에서 느껴보지 못한 묘한 매력이 있다. 타인을 배려할 필요도 없고, 기댈 언덕도 없기 때문에 가식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저 벅찬 호흡과 흘리는 땀 그리고 물 한 모금이면 족하다. 무엇보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 무한대로 열려 있어 자유롭다.

물 마른 샘터도 지나고 지그재그 흙길도 요리조리 오른다. 간혹 나무에 걸려 있는 앙증맞은 '상무주길' 안내판은 무작정 오르는 나그네를 안심시켜 준다.   
 
해발 1100m쯤에 위치한 상무주는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이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창건해 애오라지 공부에만 매진해 대오한 곳이다. 경치가 그윽하고 조용하기가 천하제일이라 참선하기 좋은 곳이다

전각 하나 딸랑 있는 상무주는 저 멀리 지리산 주능선을 품고 있다. 지리산을 앞마당으로 가진 몇 안 되는 암자일 듯싶다. 독특한 이름의 상무주(上無住). 상(上)은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이고, 무주(無住)는 머무름이 없다는 뜻이란다.

하지만 지금 산속의 상무주는 산문을 닫고 있다. 입구에는 '사진 촬영금지' 안내판도 보인다. 우연히 만난 노보살은 "등산객들이 너무 많은 민폐를 끼쳐 이럴 수밖에 없었다"며 이해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씁쓸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래도 지리산 조망은 놓칠 수 없는 화두가 아닌가. 영원사 방향으로 약간 가다 보면 소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있는 전망대가 기다린다. 하늘이 열리며 지리산 주능이 끝 간데 없이 뻗어 있다. 아뿔싸! 주봉인 천왕봉만 잿빛 구름을 두르고 있다. 기다리다 지쳐 삼정산으로 오른다. 더 넓게 보기 위해서다. 삼정산은 여기서 300m. 10여 분이면 올라선다. 정상 옆 전망대에서도 하봉 중봉에서 반야봉 노고단까지 시원하게 펼쳐지지만 유독 천왕봉만 구름에 가려 끝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천왕봉은 이후 하산하면서 결국 봤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상무주암의 들머리가 되는 샘터에서 바라본 지리산. 왼쪽부터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 그리고 푹 꺼진 장터목이 확인된다.

샘터. 곡각지점에 위치해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상무주암 가는 들머리.


상무주암을 알리는 조그만 이정표가 걸려 있다.

산죽과 낙엽이 깔린 오르막길도 오르고.


상무주암 인근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상무주암 돌담길.

상무주암.


삼정산 상무주암 인근 소나무 고사목 한 그루가 쓰러져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삼정산 정상. 정상석 뒤로 지리산 주능선이 보인다. 상무주암에서 15분이면 올라선다. 
상무주암. 수행도량으로 최고인 듯싶다.
상무주암에서 하산 도중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 금대산 금대암  

금대암 입구 주차장 한 켠에는 지리산 조망 안내판이 서 있다. 실제 모습과 안내판의 산을 맞춰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부처님에게도 지리산을 보여드리기 위해 법당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실제로 부처님도 보고 계실까.
법당 앞에서 본 지리산 주능선. 키 큰 전나무는 500년 된 천년기념물이 아니다. 
금대산 정상에서 본 지리산 주능선. 너무 가까워 산사태 흔적까지 보인다. 금대암에서 30~40분이면 올라선다.
   
마천면에서 남원 실상사 방면으로 60번 지방도를 타고 2㎞ 남짓 가다 보면 우측으로 금대암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다. '지리방장 제일금대(智異方丈 第一金臺)'. 천하제일의 명당임을 알리는 표시이다. 이곳에서 금대암까지는 2.5㎞. 가파르지만 포장로라 차로 이동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구도자들에겐 최고의 수행처지만 산꾼들에게 금대산 금대암은 오도재 '지리산 제일문' 옆 산신각에서 출발, 삼봉산 백운산을 거쳐 도달하는 등산코스의 날머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금대암으로 가는 도중 놓쳐선 안 될 볼거리가 하나 있다. 안국사 못 미쳐 산모롱이를 돌면 좌측으로 보이는 일명 다랭이논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천면 일대는 가파른 지형으로 인해 다랭이논이 곳곳에 펼쳐져 있지만 이곳에서 보는 군자리 도마마을의 다랭이논이 가장 아름답다. 매년 가을 황금들녘으로 변할 때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대표적 출사지이기도 하다. 다랭이논 뒤로 보이는 세 개의 봉우리가 보이는 산은 상무주암을 품은 삼정산이다. 

군자리 다랭이논과 그 뒤로 상무주암을 품은 삼정산이 보인다.
 
흔히 다랭이논 하면 혹자들은 남해 가천마을을 떠올리지만 도마마을의 다랭이논 또한 이에 버금간다. 몇 해 전 이곳 군자리 도마마을 다랭이논도 가천마을의 그것과 함께 국가지정 명승지 후보로 올랐지만, 만일 지정되면 건축행위 등이 제한된다며 주민들이 극구 반대해 제외됐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다.

신라 태종무열왕 3년인 656년 행우조사가 창건한 금대암은 이후 고려 때는 보조국사 지눌, 조선시대에는 서산대사가 정진했다고 전해온다. 지금은 해인사의 말사이며 금대선원이 있다. 조선 성종 20년(1489년)에는 선비 정여창과 김일손도 지리산으로 유람을 떠나기 전 이곳 금대암에 들렀다고 전해온다.

금대암의 백미는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라는 점. 이를 입증해 보이기라도 하듯 주차장 입구 지리산이 가장 잘 보이는 지점에는 사진과 함께 '금대암 조망안내판'이 서 있다. 좌측 하봉에서 우측으로 중봉 천왕봉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 영신봉 칠선봉 덕평봉 형제봉까지 확인된다. 너무나 가깝다 보니 큰 소리를 지르면 곧장 메아리로 되돌아올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내친 김에 금대산까지 갈 수도 있다. 0.6㎞로 30~40분이면 충분하다. 감동이 두 배로 다가온다.

흔히 금대암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경남기념물로 지정된 금대암 전나무다. 안내판도 있어 장삼이사들은 법당 앞 키 큰 전나무를 그 나무로 알고 있다. 안내판에는 500년 된 전나무로 현존하는 전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적혀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 나무는 없다. 10년 전 낙뢰를 맞아 쓰러져 지금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키 큰 전나무 아래 그대로 방치돼 있다.

그 밖의 지리산 전망대-벽송사와 서암정사

벽송사 미인송(키 큰 소나무)과 도인송(미인송 뒤) 그리고 삼층석탑.
미인송과 도인송 사이 저 멀리 지리산 주능선이 보인다.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으로 바로 이어지는 칠선계곡 초입의 산 중턱에는 벽송사와 서암정사가 마주 보고 있다. 두 사찰은 상무주암이나 금대암처럼 지리 주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지는 않지만 지리산 천왕봉을 조망할 수 있다.

한때는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국내 선불교의 최고 종가의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사찰이 불타 사세가 기울었지만 최근 월암스님을 주지 겸 선원장으로 맞이해 전통을 되살리고 있다.

천왕봉과 중봉이 보이는 법당인 보광전 뒤편에는 도인송과 미인송이 천 년의 세월 동안 묵묵히 서 있다. 도인송에 빌면 소원이 이뤄지고, 미인송에 기도하면 미인이 된다는 전설이 내려와 변강쇠와 옹녀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목장승과 함께 방문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한국전쟁 때 지리산에서 죽어간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난 1989년 원응스님이 창건한 서암정사는 기존의 절에 대한 생각을 일시에 바꿔버릴 만큼 소공원처럼 아름답다. 한국 현대 불교의 결정판이라 불릴 만큼 빼어난 석굴법당이 눈길을 끈다. 법당 맞은편 너른 터인 망월대에선 천왕봉을 정점으로 중봉 하봉 두류봉 제석봉이 좌우로 펼쳐진다.

서암정사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서암정사는 마치 소공원에 온 듯 아름답기 그지없다.

지리산 조망공원도 빼놓을 수 없는 지리산 전망대. 하봉에서 여자의 엉덩이를 닮았다는 반야봉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팔각정자인 지득정(智得亭)에는 망원경까지 설치돼 산사면의 사태 등 봉우리의 면면을 죄다 확인 가능하다.

지리산 조망공원의 정자 지득정(智得亭)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지리산 조망공원에 최근 설치된 천왕봉 마고할미상. 그 뒤로 지리산 주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지리산 제일문이 서 있는 오도재(오도령).

함양읍과 휴천면 월평리를 잇는 지안재. 흔히 오도재와 혼용되지만 엄연히 지안재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또 한 가지. 함양 상림에서도 천왕봉이 보인다. 흔히 단풍과 낙엽으로만 기억되는 상림에선 연꽃밭 쪽으로 나오면 천왕봉과 중봉 및 하봉이 겹쳐져 시야에 들어온다. 이 같은 모습은 함양군청 옥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발견이다.

상림에서 본 지리산. 가운데 맨 뒤 두 개의 봉우리 중 우측이 천왕봉이고, 좌측은 하봉과 중봉이 겹쳐져 있기 때문에 하나로 보일 뿐이다.
위 사진을 줌으로 당겨 본 모습.
함양군청 옥상에서 본 지리산. 역시 상림에서 본 모습과 동일하다.
위 사진을 줌으로 당겨 본 모습.



 

미답의 늘푸른 산죽능선, 좀처럼 못보는 볼거리
하산길엔 소설 '토지'의 무대 회남재 옛길도 만나

눈덮인 히말라야 연봉에 비견되는 지리산 천왕봉. 대개 처음 보는 순간 발걸음이 멈춰진다.
 

 민족의 명산 지리산 천왕봉을 향해 중산리 코스를 힘겹게 오르다보면 우측 건너편의 마루금 전체가 추수를 앞둔 황금들녘을 연상시킨다. 바로 천왕봉에서 동남쪽으로 길게 뻗은 황금능선이다. 써리봉에서 국사봉을 거쳐 구곡산에 이르는 장장 20㎞의 이 능선에는 산죽이 지천이다. 이 산죽이 햇빛을 받아 반사되면 황금빛으로 물든다고 해서 명명됐다. 지금은 비법정 탐방로라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올 첫 산행지 하동 깃대봉에도 황금능선에는 비할 바 못되지만 아주 인상적인 산죽길이 펼쳐진다.

조릿대라 불리는 늘푸른 산죽은 사실 봄 여름 가을엔 있는 듯 없는 듯 철저히 조연에 불과하다가 낙엽이 지고 숲이 앙상해지면 예의 초록빛을 발하며 숲의 주인공으로 단연 부각된다. 특히 눈 온 뒤 그 자태는 옛 선비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깃대봉은 영신봉에서 갈라져 나와 삼신봉 내삼신봉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지리산 남부능선에서 동남쪽으로 한 번 더 뻗은 지리산 호위봉 중의 하나. 베테랑 산꾼들도 금시초문이라 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도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무명의 산이다.
 

좀 더 피부에 와닿게 설명하자면 묵계와 악양을 잇는 회남재 동쪽에 위치해 있다. 참고로 회남재를 정점으로 서쪽으론 시루봉~원강재~성제봉(형제봉)이 이어진다.

익히 알려진 대로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는 천왕봉을 기준으로 북쪽인 함양 마천면 금대산과 남쪽의 하동 삼신봉. 깃대봉은 이들 두 봉우리만큼은 못하지만 산행 도중 히말라야를 연상케하는 눈덮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펼쳐진 주능선의 웅장함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산행에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하산길의 회남재. 악양 벌판과 함께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됐던 이곳은 하동서 청학동을 거쳐 지리산으로 곧장 연결된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의 물자보급로 역할을 했다. 다시말해 악양에서 곡식과 가축 등을 수집한 빨치산이 이곳을 거쳐 아지트인 지리산으로 넘어갔기에 국군 토벌대와 빨치산의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것.

회남재는 또 청학동 인근의 묵계사람들이 하동장(場)으로 오는 길이자, 악양에서 청학동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우리 할머니 세대의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한동안 문경새재길 등과 함께 추억의 옛길로 분류됐으나 최근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동군이 도로개설을 추진, 논란이 일고 있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

 산행은 악양 중대리 상중대마을회관~임도개설비~계곡수 건너~옛 집터흔적~능선~임도~무명봉~깃대봉 갈림길~산죽능선~회남재~사랑의 집~등촌리 덕기마을(버스정류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10분 안팎이며 들머리에서 능선까지의 일부 구간에서 길찾기가 애매모호할 뿐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일사천리로 내달릴 수 있다. 들머리 상중대마을회관 앞에서 먼저 주변 산세를 살펴보자.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두 암봉 사이에 걸린 구름다리가 보이는 신선봉과 그 우측으로 성제봉 시루봉이 조망된다. 참고하길.


마을회관에서 포장로를 따라 오르면 이내 갈림길. 왼쪽 상중대교 대신 우측으로 간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지나면 또 갈림길. 이번엔 개울따라 왼쪽으로 간다. 11시 방향으로 저 멀리 보이는 V자 잘록이가 회남재로, 산행팀은 이곳으로 하산한다.

작은 다리를 건너 황토집을 지나 임도개설비 앞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간다. 우편함이 걸린 아름드리 소나무를 지나 포장로를 따라 오르면 우측에 널따란 개울이 흐른다. 이 개울을 건너면서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마을회관에서 25분.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주능선을 향해 무작정 오르는 산꾼들.

앙상한 가지의 활엽수림 대신 산기슭에는 푸른 소나무가 지천이다. 등로는 지그재그 오르막길. 잘 빠진 미끈한 청자보다 다소 투박해 보이는 분청을 닮은 고풍스럽고 정감이 가는 옛길이다. 빛바랜 솔가리와 카키색 낙엽의 조화 또한 운치있다. 양지 바른 터에 위치한 두 기의 묘지를 지나면 옛 집터. 푹신푹신한 낙엽융단길이 열려 있는 왼쪽으로 향한다. 일순간 냉기가 느껴진다.

물마른 계곡을 건너면 산죽길. 고개 들면 낙엽송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너덜 오름길이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무척 괴롭다. 음지엔 잔설도 남아 점입가경이다. 이렇게 10여 분. 비로소 산허리를 돌아 제대로 된 산길을 조우한다.

20분 뒤 마침내 능선에 닿는다. 정면으로 보이는 마을은 해발 500m쯤의 논골.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이 출몰할 때 한 명의 주민도 다치지 않은 오지 마을이다. 정면 깃대봉을 바라보며 왼쪽으로 내달린다. 약간의 오름길과 내리막이 반복되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17분 뒤 임도. 왼쪽 5m 지점 대각선 방향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이때부터 된비알의 연속. 무명봉을 넘어 5분 뒤 산죽길. 정글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깃대봉을 내려서면 만나는 산죽능선. 산죽은 회남재까지 이어진다. 여성들은 특히 피부 손상에 유의해야 할 정도로 빽빽하다.
           산죽능선은 한동안 계속된다.

산세로 봐서 능선을 갈아타는 지점이다. 깃대봉 정상은 2만5000분의 1 지형도상 우측으로 얼마 안되는 거리이다. 하지만 빽빽이 들어선 키 큰 산죽길을 도저히 뚫을 수 없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왼쪽으로 간다. 산죽능선의 연속이다. 헤집고 150m쯤 가면 첫 전망대. 눈덮인 천왕봉을 비롯 써리봉 중봉 제석봉 장터목 촛대봉 영신봉과 그 앞 내삼신봉 삼신봉 외삼신봉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그 유명한 청학동도 보인다.

깃대봉 산죽능선을 내려서면 만나는 전망대 뒤로 저 멀리 형제봉(성제봉)이 보인다.

7분 뒤 두 번째 전망대. 주변 조망은 더 넓다. 삼신봉 왼쪽으로 시루봉 원강재 성제봉 신선봉, 악양 벌판 뒤 섬진강 건너 둥그스런 또아리봉 도솔봉 백운산 억불봉이, 다시 왼쪽으로 칠성봉 구제봉 금오산과 저 멀리 광양제철소도 확인된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 토벌대와 빨치산의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회남재.

전망대 바위를 내려서면 또다시 산죽. 미로같은 죽림의 길이라 오랜 추억거리로 남을 듯하다. 회남재는 여기서 15분. 청학동(6.4㎞) 묵계(4.3㎞) 악양(10.6㎞)으로 각각 열려 있는 세 개의 임도와 시루봉, 그 왼쪽으로 열린 하산길, 방금 산행팀이 내려온 길 등 모두 여섯 개의 길이 만나는 고개이다. 회남재의 역사를 알리는 안내 그림판이 두 개 서 있고, 또 다른 두 개는 하산길 옆에 쓰러져 있다.

하산길은 무지 심한 급경사 내리막길. 태풍으로 계곡 골짜기가 망가져 있다. 급비탈에선 큰 돌이 굴러 조심해야 한다. 50분이면 도로를 만나고, 여기서 요양시설 ‘사랑의 집'을 지나 버스정류장이 위치한 등촌리 덕기마을까지는 15분 걸린다.

# 떠나기전에 -
키 훌쩍 넘는 산죽이 이중삼중… 정상 난공불락

고백컨대 정상을 밟지 못한 산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흔히 남 탓 하지말라고 하지만 이번만은 산죽 탓 좀 해야겠다. 어른보다 키가 큰데다 이중 삼중으로 너무 촘촘하게 자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산행대장과 함께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산행팀 말고도 다른 산꾼들이 수차례 길을 뚫으려고 시도한 흔적이 입구에 역력하다. 여하튼 난공불락의 요새다. 설령 뚫고 들어가더라도 산죽의 연속이라 정상 확인은 힘들 성싶다. 지도와 현장은 또 다른 법이란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회남(回南)재'란 이름은 남명 조식 선생이 명명했다. 그는 이 터를 보고 골이 좁고 물이 섬진강으로 곧장 빠져 길지(吉地)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발길을 남으로 돌렸다고 전해온다. 청학동이 위치한 청암면의 '묵계(默溪)' 또한 그 이름이 흥미롭다. 이곳은 해마다 큰 폭우가 쏟아져 다 휩쓸려 내려가 냇물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해서 붙여졌다 한다.

 재밌는 얘기 하나. 악양주민들은 악양면 시루봉 아래 청학이골을 '진짜' 청학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라 믿고 있으며 지금의 청암면 삼신봉 밑의 청학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새해, 아무도 밟지 않은 처녀지 깃대봉을 적극 추천한다.

# 교통편 -
하동터미널서 악양행 버스나 택시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하동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 첫 차를 시작으로 1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2시간30분 걸린다. 하동터미널에서 들머리인 악양면 중대리 상중대마을회관(노전 버스정류장)으로 가기 위한 연계버스는 시간이 맞지 않아 악양면소재지로 가서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하동터미널에서 악양행 버스는 오전 8시 첫 차를 시작으로 40~5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이곳에서 악양개인택시(055-883-3009)를 이용한다.

날머리 덕기마을에서 하동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시10분, 5시20분(막차)에 출발한다. 혹 시간이 맞지 않을 경우 악양면소재지로 택시(5000원)를 이용, 악양우체국 옆 악양마트 앞에서 터미널행 버스를 타야 한다. 오후 3시35분, 4시25분, 5시15분, 5시45분, 6시35분(막차). 1100원. 하동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30분, 5시30분, 6시30분, 7시30분(막차)에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하동IC~하동 구례 쌍계사 방면 19번 국도 우회전~남원 구례 직진~구례 쌍계사 직진~악양 1003번 지방도~악양우체국 지나~상(하)중대마을 이정표 우회전~중대교 지나~상중대마을회관 순. 날머리 덕기마을에서 들머리 상중대마을회관 앞까지 택시를 이용해도 된다.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장면들을 간혹 봅니다.
 독특한 형상의 나무나 날짐승 들이 대부분이죠. 흐뭇할 때도 있지만 속된 말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지리산 산행 때 만난 다람쥐와 한라산에서 본 까마귀가 바로 좋은 예인듯 합니다. 백무동과 장터목을 잇는 소위 하동바위 코스 중간쯤에는 참샘(1197m)이 있습니다. 하산을 기준으로 할 경우 소지봉(1312m) 바로 아래 위치해 있습니다.










 참고로 함양사람들은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이 지리산으로 가기 위해선 오도재를 넘어 이곳 백무동에서 지리산 천왕봉으로 올랐다고 합니다.
 지리산은 영남 사림의 정신적 고향으로 숭앙돼 사림파의 시조이자 정신적 지주인 점필재 김종직은 두류산 기행기인 '유두류록(遊頭流錄)'을, 그의 제자 김일손은 '속두류록(續頭流錄)'을 썼다고 합니다. 두류산(頭流山)은 지리산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후세에 함양사람들은 점필재와 김일손이 나귀를 타고 머슴과 함께 오른 곳이 백무동, 다시 말해 하동바위 코스로 추정합니다.
 하여튼 함양사람들은 조선시대 때 양반들은 함양땅에서 오도재를 넘어 백무동으로 올랐고, 아랫것들은 함양을 제외한 나머지땅에서 지리산에 올랐다고 농담삼아 자랑합니다.

 다람쥐 소개하는데 무슨 사림이 어떻고 점필재가 어떻고 등등 서두가 길었네요.
 다시 참샘으로 돌아와서, 예부터 물맛이 특히 좋기로 소문난 참샘은 산꾼들의 휴식처였죠. 그러다보니 간식으로 과자와 빵 등을 먹었죠. 이때 부스러기가 조금씩 떨어지자 근처의 다람쥐들이 와서 먹었죠. 그동안 자연식을 하다가 단맛이 적당히 부무려진 과자류에 푹 빠진 다람쥐들은 산꾼들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이 과정이 차츰 반복되다 보니 다람쥐들은 아예 대놓고 사람들 앞에 와서 과자를 달라고 쳐다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들쥐까지 한몫 거들기도 합니다.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론 이 놈들이 야성을 잃고 순치되지는 않나 하고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저 놈들이 정상적으로 생활을 해야 생태계도 제궤도로 돌아가는 데 말입니다.

 선배 산꾼들이 다람쥐의 버릇을 잘못 들여놓았지만 지금이라도 조금씩 다람쥐가 야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후배 산꾼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문산 자연휴양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의 다람쥐들은 사람들이 지나가면 갑자기 숲속에서 나와 에스코트하듯 주변을 멤돕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치 자기 구역이 있는 듯 여기저기서 튀어 나옵니다. 모두 인간이 던져주는 과자 때문이겠죠.


그래서 그런지 입구에는 아예 다람쥐를 본 떠 만든 토피어리 다람쥐가 상징물처럼 있습니다. 휴양림 내 다람쥐가 많다는 것을 자랑이나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째 뭐가 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리산 참샘 인근 다람쥐는 그대로 귀엽기라도 하지, 한라산 윗세오름대피소 인근의 까마귀는 정말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 덩치가 제법 큰 이 놈들은 지네들이 무슨 매나 독수리라고 생각하는지 속된 말로 무게를 잡고 근엄하게 앉아 있습니다. 실제로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음식물을 기다리는 주제에.

       윗세오름대피소에서 본 한라산 서북능. 자세히 보면 사태가 발생해 능선이 허물어진 모습이 그대로
      목격된다.





 이 역시 인간들이 자꾸 음식물을 던져 주면서 생긴 버릇인 듯 합니다. 스스로 먹이활동을 하지 않고 인간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기다리는 독수리들을 볼 때 행여나 야성을 잃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수리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에게 음식물을 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자연의 동식물 심지어 미생물들은 원래 있는 그대로 두어야 생태계가 유지되지 않습니까.

 예외가 없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면 반드시 기념 촬영을 한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 힘들게 오른 만큼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천왕봉에서 찍은 기념 사진은 누구나 예외없이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지리산 천왕봉 1915m'이라 적힌 정상석 앞에서는 독사진 내지는 두세 사람, 많게는 네뎃 사람이 전부다. 10명 이상의 단체 사진은 찾아볼 수가 없다. 혹 있다고 하더라도 뒷면, 다시말해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힌 뒷면이 배경이다.
 왜 그럴까.
 '지리산 천왕봉 1915m'라고 적힌 정상석이 서 있는 정상부의 전체 면적이 30
㎡에 불과한 데다 정상석 앞면에서 볼 때 사진을 찍는 사람이 뒤로 물러날 수 있는 공간이 최대 3m 남짓 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물러나면 그야말로 벼랑이다. 이 때문에 정상에 오른 뒤 약간 상기된 채 사진을 찍을 경우 항상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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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으면 정상석에서 사진 찍는 위치가 3m 정도에 불과해 사진
               찍는 사람의 안전사고가 우려되고, 단체사진도 찍을 수 없어 방향을 돌려놓아야 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맨 위 사진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만일 정상석
               방향을 돌려놓으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거리적으로 여유가 있음을 보여준다.
               아래 사진은
지리산 산행 중 만난 초등학교 4년생인 쌍둥이 자매. 이들은 나중에 종주했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지리산사무소에 문의를 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이 정상석은 지난 1982년 6월 2일 경남도에서 세웠다. 지금이야 지리산을 비롯한 모든 국립공원은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관할하지만 당시에는 경남도가 맡았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그보다 한참 뒤인 1987년 설립됐다.
 당시 지리산 철쭉제 행사를 겸해 시민등반대회가 열려 전국의 많은 산꾼들이 정상석 제막식에 참여했다. 높은 분들로는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익현 민정당 사무총장과 이규효 도지사가 함께 했다.
 남명 조식 선생의 '하늘이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라는 명문이 적힌 기존의 조그만 정상석 대신 헬기로 공수돼 온 1.5m 높이의 정상석의 제막식이 진행되면서 한쪽에선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정상석 뒷면에 '경남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천왕봉은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와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의 경계에 위치해 있지만, 지리산은 함양 산청 이외에 하동 남원 구례 등 5개 시군에 걸쳐 있기 때문에 그 문구는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천왕봉이 한라산(1950
m)에 이어 남한 땅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여서 당연히 전 국민의 산으로 인식돼야 하기 때문에 '경남' 대신 '한국'이란 표현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가을쯤 어느날 정상석에는 누군지만 모르지만 '경남' 대신 '한국'으로 바꿔 놓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기자는 정상석이 어느 방향을 봐야 한다는 원칙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공단측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미 나왔다. 안전사고 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단체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상석을 돌려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좋은 생각이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민족의 영산, 남한땅 최고봉 지리산 천왕봉이라서 머뭇거리는 점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이제는 만인을 위해 정상석 방향을 되돌려도 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자만의 생각일까.





 아빠 졸라 지리산 종주한 씩씩한 4학년생 쌍둥이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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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와 함께 한 쌍둥이 자매. 백무동에서 장터목 가는 하동바위 코스 중간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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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쌍둥이 자매. 사실 누가 지영인지 지선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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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나서 아빠를 내버려둔 채 다시 속도를 내는 쌍둥이 자매(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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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장으로 봐선 영락없는 산꾼인 쌍둥이 자매. 아빠보다 앞서 있다. 하동바위 코스 오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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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아저씨와 인사하는 쌍둥이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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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석대피소 가기 전 아빠와 함께 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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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풀리며 덩달아 표정이 밝아지는 쌍둥이 자매. 해맑은 표정이 왠지 정이 간다. 벽소령에서
     연하천으로 가는 도중 전망이 트이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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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석대피소를 배경으로 촬칵.


 지난달 22일 오전 10시30분께 지리산 하동바위 코스의 중간쯤인 소지봉과 참샘 사이 돌계단길.

 전날 기자는 국립공원 관리공단 지리산사무소의 취재 허가를 얻어 칠선계곡을 통해 천왕봉에 올라 장터목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하산하는 길이었다. 전날 오전 5시에 부산에서 출발, 2시간 30분 동안 운전한 데다 마폭포에서 천왕봉까지의 '마의 코스'를 포함 장장 9시간쯤 강행군을 한 기자는 장터목에서 세상 모르고 모처럼 단잠을 잤지만 피로가 가시진 않았다.
 전날 천왕봉에서 하산할 무렵부턴 비가 부슬부슬 내리드니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보니 바람을 동반한 장대같은 폭우까지 내리고 있지 않은가. 듣기로는 천왕산 입산 금지가 내려졌단다.
 다행히 시간적 여유가 있어 비가 좀 그칠 때까지 기다리다 오전 9시께 빗줄기가 약해지자 백무동을 향해 하산하기 시작했다.

 하동바위 코스는 중산리 코스와 같이 천왕봉으로 오르는 최단 코스일 뿐 특별히 볼거리가 없는 지루한 돌길의 연속이다.
 하염없이 반복되는 돌길을 내려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이의 씩씩한 구령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무료하던 차에 기자는 누굴까 하고 관심을 보이며 기다렸다. 근데 안경 쓴 여자 아이였다. 그것도 둘씩이나.
 알고보니 쌍둥이였고, 그들이 구령소리를 씩씩하게 붙인 건 뒤쳐지는 아빠를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대전 한밭초등학교 4학년 김지영 김지선이라고 했다. 체구는 나이에 비해 작았지만 한마디로 야무지고 옹골찼다.
 뒤따라오던 아빠 김영환(48) 씨는 쑥쓰러우면서도 싫지 않은 듯 "저 놈들이 왜 이리 빨리 가지, 어휴 힘들어 죽겠네"라며 끌끌 웃었다.
 김씨 모녀 3인은 지리산 종주를 시작하는 길이라고 했다. 종주를 시작하게 된 사연이 재미있었다.
 아빠가 안갈려는 쌍둥이들을 데리고 간 게 아니라 쌍둥이들이 갈 생각이 별로 없는 아빠를 마구 졸라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입을 잠시 빌리자면 애들이 다니는 한밭초등학교는 방학 전에 과제로 어떤 체험학습을 할 것인지 미리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문제는 쌍둥이들이 아빠와 상의도 하지 않고 대뜸 지리산 종주 계획을 제출한 것이었다.
 산행 출발 전 아침 일찍부터 비가 제법 내리자 머뭇거리는 아빠에게 어서 출발하자고 재촉한 것도 쌍둥이였다.
 복장도 제법 알차게 갖추고 있었다. 등산화에 두건 그리고 배낭에 커버를 씌운, 제대로 된 산꾼의 모습 그대로였다.
 기자가 본 잠깐 동안의 이들 부녀는 쌍둥이가 앞서 가며 뒤따라오는 아빠를 독려하는 식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모두 재미있다며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는 것이 아닌가.
 하산하는 기자와 오르는 쌍둥이 부녀는 이렇게 잠깐 동안의 만남을 갖고 연락처를 교환한 후 헤어졌다.

 본업으로 돌아온 기자는 취재 후 산행기와 다른 잡무를 보느라 잠시 쌍둥이를 잊다 어제 쌍둥이 아빠와 통화를 했다.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고 했다. 당초 1박 2일로 예정했지만 연하천 대피소에서 하루 더 1박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아무런 사고 없이 다녀와 첫 종주치고는 100% 성공이었다고 덧붙였다.
 개인적인 질문도 빠뜨리지 않았다. 쌍둥이 아빠는 20대부터 40대 초반까지 산을 엄청 많이 다녔고 지리산 종주도 20여 차례나 한 베테랑 산꾼이었다.

 "종주 첫날은 날씨가 계속 안좋아 천왕봉까지 겨우 다녀왔지만 그 다음날부터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애들이 너무 신나게 산행을 했습니다. 남해바다가 보일 땐 다함께 만세도 불렀죠."

 지리산을 찾은 많은 등산객들도 쌍둥이를 볼 때마다 힘내라며 격려도 아끼지 않았단다. 2박 3일 종주 동안 '지리산의 스타'는 단연 쌍둥이였다는 것이었다. 이런 말을 기자에게 전하는 아빠도 전화기 넘어로 표정은 보이진 않지만 분명 신이 났을 것으로 확신한다.

 가족 관계를 여쭤봤다. 쌍둥이 자매 위에 6학년 딸아이가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밝힐 순 없지만 첫째에게 중요한 일이 없었다면 부인과 함께 온 가족이 종주를 했을텐데 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부인도 무척 산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지리산 종주 후 쌍둥이들은 이제 산의 맛을 조금 알았는지 다음 산행지는 가까운 계룡산으로 벌써 정해 며칠전 발표했다고 전했다.

 당시 그 말을 듣고는 엄마가 한마디 했다고 한다.
 "한동안 열심히 산에 다니던 아빠가 잠잠해지니까 조그만 딸들이 이제 산에 갈려고 하네, 어휴 내 팔자야."

 아래 글은 쌍둥이들이 지리산을 다녀와 제출한 보고서 내용이랍니다. 사진과 함께 메일로 보내왔습니다.


자연체험학습 보고서

장소:지리산
때:2008년8월22일(금)~2008년8월24일(일)
목적: 종주, 지리산에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연의 소중함과 필요함 그리고 자신이 높은 산을 올랐다는 성취감을 느끼기 위하여.

   ** 지리산 종주 일정 **
         8월22일
           08:00 백무교 출발
           09:30 하동바위 도착(1.8km)
           10:05 참샘 도착(0.8km)
           10:30 소지봉 도착
           12:30 장터목 도착(5.8km)
           14:00 장터목 대피소 출발(천왕봉go)
           15:10 지리산 정상 도착(천왕봉1915m)            
           16:00 장터목대피소 도착
         8월23일
           07:00 장터목 출발
           09:00 세석 대피소 도착(3.4km)
           11:30 선비샘 도착
           12:20 벽소령 입구 도착
           13:00 벽소령 대피소 도착(6.3km)
           14:30 벽소령 대피소 출발
           16:50 연하천 대피소 도착(3.6km)
         8월24일
           09:00 연하천 대피소 출발
           10:40 토끼봉 출발(2.4km)
           11:13 화개재 도착
           11:40 삼도봉 도착
           12:13 노루목 도착
           12:50 임걸령 도착
           14:40 노고단 도착(천왕봉~노고단25.5km)

근교산&그너머 <432> 산청 석대산

분재같은 홍송·기암괴석 산꾼 화가 영감에 빠지다


본지 근교산 애독자인 진주 조규한 화백 동행
하늘 찌르는 상투바위·가파른 암릉, 숨은 명산
상봉 내려오면 멀리 지리산 천왕봉 살짝 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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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바위에 오른 산꾼화가 조규한씨. 발밑에는 지리산 주변에만 자생하는 희귀식물인 히어리꽃이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이번 산행에는 진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산꾼화가 조규한(54) 씨가 동행했다. 근교산 시리즈의 애독자이자 화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산행팀과 꼭 한 번 산행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는 30여 년 동안 산에서 작품을 구상해온 ‘지독한’ 산꾼화가였다. 지리산 종주 23회, 천왕봉 등정 120여 회 등 그가 섭렵한 봉우리만 500여 곳. 지금도 한달에 대여섯 번은 산에 올라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산행은 그의 생활의 일부분이다.
“평생 산과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화가로서의 고된 작업에서 오는 고독감과 쓸쓸함을 산을 오르면서 털어버립니다. 산이 제 그림의 원천이자 고향인 셈이죠."
그는 지난해 합천 황매산 산골에 위치한 `바람흔적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주제도 산을 통한 자신의 삶의 궤적을 그린 `나의 삶·나의 산=산울림'. 산꾼화가다운 발상이었다.
주변의 우려와 달리 괜찮은 반응에 한층 고무된 그는 또 한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산 속 전시회가 바로 그것. 시기는 딱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철쭉이 들불처럼 타오르는 내년 이맘때쯤 지리산 세석산장에서 열 계획이다.
그날 그는 스케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산에 오르면서 끊임없이 그림에 대한 영감을 얻고 있었다. 그의 그림은 반추상이다. 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산에서 받은 심성과 느낌을 체화해 화폭에 담는다.
선배 산꾼답게 그는 오랜 세월 산행을 하면서 터득한 경험을 이렇게 요약했다.
“자주 산행을 하다보니까 산의 높낮이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나 자신이 지금 산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미협회원인 조 화백과 함께 오른 산은 산청의 석대산(石岱山·534m). 이웃한 진주에서 작업하고 있는 베테랑 산꾼 조 화백도 금시초문이란다.
웅석봉 가는 길목, 다시말해 단속사지 동·서 3층석탑으로 가는 길과 나란히 달리는 나즈막한 산이다. 도심에 있었다면 적당히 대접받았을 법한 괜찮은 산인데 지리산 자락에서, 그것도 한 귀퉁이에 숨어 있으니 웬만한 산꾼도 알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 한마디로 작지만 위엄있는 산이다.
`돌 석(石), 태산 대(岱)' 자에서 알 수 있듯 능선 상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상투바위가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다.
조 화백도 한마디 거들었다. “기암괴석과 홍송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암릉길의 풍광은 이른바 명산에 필적할 만큼 아름다운데요."
산행은 윗진자마을 경로당~개울 건너 낮은 절개지 올라~40여분 암릉길~헬기장~석대산 정상~삼각점 봉우리~밤나무밭~철탑~권씨가족묘~석대산 남가람봉~삼각점~상투바위~도로~청계리휴게소 앞 버스정류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30분 정도이며 들머리 부분만 잘 찾으면 길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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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한씨가 산행후 그린 산행팀에 보내온 '석대산=산울림'. (10호).


윗진자마을 경로당을 지나 오른쪽으로 계단식 논밭을 따라 산으로 향한다. 7분 뒤 갈림길. 우측 계곡물이 열목어가 보일 만큼 맑다.
좌측 너른 밤나무길로 간다. 10분 뒤 실계곡을 건너 낮은 절개지로 오른다. 길이 묵어 희미하지만 그런 대로 갈 만하다. 묘지를 지나면 사거리 안부. 석대산으로 가기 위해 왼쪽으로 치고 오른다. 150m쯤 뒤 `석대산 가는 길'이라 적힌 빨간 리본이 보이면서 점차 경사가 심해진다. 이내 암릉길. 기암괴석과 어울리는 홍송 서너 그루가 인위적으로 만든 분재처럼 독특한 자태로 눈길을 붙잡는다. 고개를 돌리면 옥산 백운산 금오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점차 경사가 심해져 두 세 차례 밧줄을 잡고 오른다. 15분 뒤 우측 전망대에 서면 좌측으로 진양호와 집현산, 그 뒤로 의령 자굴산 한우산 산성산이, 정면엔 경호강과 월아산 방어산이 확인된다. 명당인 진양 강씨묘를 지나면 사실상 암릉길은 끝. 숲길로 들어선다. 곧 길 왼편에 작은 전망대. 지리산 남부능선과 중봉이 보인다. 오른쪽 임도가 보이는 산은 웅석봉. 그 앞 낮은 봉우리가 석대산 정상이다.
헬기장을 지나 10분 뒤 다시 암릉길. 여기서 5분 뒤면 석대산 상봉. 정상석은 없고 누군가 돌탑을 쌓아놨다. 곧 길 왼쪽에 전망대. 지리산 천왕봉이 초승달만큼 보이고, 그 우측에 중봉도 시야에 들어온다. 이내 삼각점 봉우리.
하산길은 억새길. 꿩과 노루 두 마리가 연이어 정적을 깬다. 20여 분 뒤 시야가 트이면서 청계저수지와 웅석봉이 가까이 와 있다. 주변은 밤나무밭. 왼쪽 발밑에는 고산습지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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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도중 바라본 경호강과 대전통영 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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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조규한 씨와 이창우 산행대장(오른쪽).

이 즈음 길이 보이지 않아 능선을 타기 위해 위로 치고 오른다. 사실상 개척산행이다. 일순간 시야가 다시 트이며 근처 암봉에 선다. 둔철산과 철탑 뒤로 정수산, 대성산이 펼쳐지고 우측에는 경호강 물줄기가 한눈에 보인다.
송림을 헤치고 암봉 넘기를 수 차례.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난다. 계속 직진하면 철탑과 권씨가족묘를 지난다. 왼쪽 숲길로 가지만 뚜렷한 길은 없다.
100m 정도 치고 오르면 다시 마을에서 올라오는 좁은 길과 만난다. 직진하면 곧 남가람봉. 정상석 뒤에는 해발 700m라 적혀 있지만 산행팀이 지형도를 확인한 결과 568m임을 밝혀둔다. 정상석 옆 삼각점 봉우리에 서면 대전통영 고속도로와 3번 국도, 그리고 경호강이 나란히 달린다.
다시 암릉길. 경호강을 중심으로 저 멀리 `좌 웅석봉, 우 둔철산'이, 왼쪽 발아래는 청계저수지가 펼쳐진다.
곧 눈앞에 아슬아슬한 암봉이 나타난다. 이번 산행에서 전망이 가장 빼어나고 스릴있는 지점으로 반드시 이를 통과해야 한다. 산행 후 만난 어르신은 상투바위라고 했다.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지금까지 부분적으로 봐왔던 장면들을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다. 상투바위를 넘어서면 지리산 주변에만 자생하는 희귀식물인 히어리꽃이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이후 암릉을 벗어나 산길로 20여 분 가면 갈림길. 왼쪽으로 내려선다. 하산길이다. 10분 뒤 갈림길에서 다시 왼쪽으로 내려선다. 5분 뒤 도로와 만난다. 여기서 청계리휴게소 앞 버스정류장까지는 15분 걸린다. (2005. 5)


# 떠나기전에 - 산행 내내 진달래가 방긋. 단속사지·겁외사 등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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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대산은 진달래산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산행 내내 진달래가 도열해 산꾼들을 반겨준다.


무명의 석대산은 정보가 거의 없어 산행팀은 무작정 떠났다. 전형적인 진달래산이었다. 비슬산이나 비음산마냥 능선 전체가 진홍빛으로 물드는 그런 산이 아니라 4시간 이상 걸리는 산행 내내 진달래가 산꾼들을 줄곧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온라인 상에 자료가 없었기에 산행팀만 예상치 못한 호사를 누린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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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대산 능선을 배경으로 한 단속사지 동·서 3층 석탑.


승용차를 갖고 온 경우 단성IC로 가기 전에 짧은 코스지만 문화유산답사를 할 수 있다.
날머리 청계리휴게소 앞에는 청계약수가 사시사철 솟는다. 부근에선 꽤 이름이 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조금 내려가면 길 우측, 다시말해 석대산 서쪽에 보물 제72, 73호인 단속사지 동·서 3층석탑을 볼 수 있다. 절은 간데 없고 두 탑만이 남아 절터를 지키고 있다. 높이가 5.3m인 이 두 석탑은 신라계 양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다소의 생략을 보이는 9세기 석탑의 전형을 보여준다. 균형미가 빼어나고 아름답다. 석탑에서 30~40m 떨어진 지점에는 당간지주가 동강난 채 서 있다.

남사고가마을도 빼놓을 수 없다. 밀양 박씨, 성주 이씨, 진양 하씨 등의 수 백년에 걸쳐 내려온 전통가옥들을 구경할 수 있다.

목화시배유지 못가 우측으로 2㎞ 정도 떨어진 곳에선 한국 근대불교의 대표 선승인 성철 스님 생가터에 위치한 기념관과 겁외사를 만난다. 스님의 유품전시관인 포영당에선 스님의 체취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단성IC 입구의 문익점 선생이 최초로 면화를 재배한 목화시배유지도 놓치지 말자.


# 교통편 - 진주서 청계행 버스 윗진자마을 하차

부산 서부버스터미널(051-322-8306)에서 진주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40분부터 8~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6700원. 1시간30분 소요. 진주시외버스터미널(055-741-6039)에서 청계행 버스를 타고 윗진자마을에서 내린다. 오전 8시30분, 11시. 날머리 청계리휴게소 앞에서 진주행 버스는 오후 3시20분, 6시10분에 있다. 진주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10~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서부터미널행 버스의 막차는 밤 9시10분. 6700원. 노포동종합터미널행은 막차 오후 8시. 7700원. 이 버스는 지하철 1호선 동래역 앞에서 한번 정차한다. 6900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전통영 고속도로 단성IC서 지리산 방향 우회전~목화시배유지 지나~소남리 버리고 지리산 방향~남사고가마을 지나~청계 입석 1001번 지방도 우회전(단속사지 동·서 3층석탑)~호암교 다리 건너~산청 청계 3번 직진~윗진자마을(경로당) 순으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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