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벌 새하얀 억새 승무처럼 나빌레라
고산 습지보호구역, 울타리내 출입 제한
발아래 펼쳐진 양산천·낙동강 조망 일품
하산길 원효암서 저멀리 고당봉 감상도

천성산 정상이 저멀리 보이는 가운데 부부로 보이는 등산객 두 사람이 억새가 군무를 펼치는 화엄벌 습지보호구역 울타리를 따라 걷고 있다. 






 
 부산과 지척인 양산에는 산이 지천이다. 낙동강과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곳곳에 병풍처럼 솟아있다. 실제로 지도를 펴놓고 훑어 보면 동서남북 발길 닿는 곳이 능선이요 계곡이요 봉우리다.

가지산에서 시작된 영남알프스의 기운이 간월산 신불산을 거쳐 양산의 영축산에서 숨을 고른 뒤 함박등 투구봉 시살등 오룡산 염수봉 채바우골만당 천마산을 거쳐 토곡산에서 낙동강으로 이어지고, 또 한 줄기는 어곡산에서 낙동강의 최고 전망대라 불리는 오봉산으로 산줄기가 내려와 역시 낙동강과 만난다.

낙동정맥의 산줄기도 거쳐간다. 강원도 태백 매봉산에서 남하, 영축산으로 맥을 이은 산줄기는 경부고속도로를 건너 뛰어 노상산 정족산 천성산제2봉(옛 천성산) 천성산(옛 원효산) 계명봉을 거쳐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 고당봉으로 연결된다.

양산 서부지역에는 영남알프스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격인 향로봉과 낙동강의 낙조가 가장 아름답다는 천태산이 밀양과 경계를 이루고, 동부지역에는 원효대사가 마지막으로 수도한 대운산(옛 불광산)이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울산과 이웃하고 있다.

양산을 집중 조망하는 이번주 '주말엔', 산행팀은 별 고민없이 천성산(922m)을 택했다. 단풍과 함께 가을산행의 최대 화두인 억새풍광을 이맘때 화엄벌에서 맘껏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산 천성산(千聖山)은 신라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건너온 1000명의 스님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여 모두 성인이 되게 한데서 붙여진 이름. 당시 화엄경을 설법한 장소가 지금의 억새물결이 장관을 이루는 화엄벌이고, 한때 89개나 존재했던 암자와 사찰이 당나라에서 온 제자들의 숙소였다. 지금은 내원사 홍룡사 원효암 법수원 미타암 안적암 성불암 노전암 조계암 익성암 등이 남아 있다.

이후 화엄벌은 오랫동안 방치되다 지난 1999년 고산습지라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고 3년 후인 2002년 환경부로부터 '화엄늪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울타리로 출입이 제한돼 있다.

산행은 경남 양산시 상북면 석계~임도~원적산 봉수대~(차량)차단기~화엄벌~'군사시설보호구역' 팻말 이정표~원효암 갈림길~원효암~대형 주차장~작전도로~낙동정맥 산길~전망대~철탑~양산 웅상읍 평산리 장흥부락 순. 6시간 정도 걸린다.



석계정류장에서 내려 50m쯤 진행방향과 반대로 가면 양주중학교 안내 표지판이 서 있다. 거기서 왼쪽으로 돌아 경부고속도로 밑을 통과해 직진한다. 상북면민 복지회관을 지나 10분쯤 더 가면 '천성산' 이정표. 이때부터 임도를 따라 걷는다. 단조롭지만 발아래 펼쳐지는 양산천과 합류되는 낙동강, 그리고 양산의 이웃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면 눈앞의 천마산을 비롯, 왼쪽으로 채바우골만당 염수봉 오룡산 어곡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35분 뒤 원적산(천성산의 옛 이름) 봉수대에 닿는다. 계속 임도를 따라 걷든, 도중에 임도 왼쪽 산길로 오르든 결국 봉수대에서 만난다. 전국의 수많은 봉수대 중 봉수지 고사지 건물지 등의 기초 흔적이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는 유일한 봉수대로 경남기념물 제118호.

원적산(천성산의 옛 이름) 봉수대.

봉수대에서 바로 보이는 차 진입 차단기를 지나 10m쯤 뒤 오른쪽에 열려있는 산길로 오른다. 본격 산행에 앞서 군계일학처럼 능선에 우뚝선 소나무 그늘 아래서 쉬어가자. 자연석으로 쉼터가 조성돼 있는데다 조망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낙동강을 기준으로 왼쪽에 금정산 고당봉과 계명봉이, 오른쪽엔 백두산과 동신어산이 선명하게 구분된다.

계속되는 산길은 오르막길. 묵었지만 길 흔적은 나 있다. 싸리나무 등 잡목이 길을 막고 있고 벌개미취 쑥부쟁이 짚신나물 등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20분쯤 지나 억새가 모습을 드러내면 갈림길. 왼쪽 억새숲으로 몸을 맡긴다. 인적이 드물어 억새가 길을 가로막고 있지만 그리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두 차례 임도를 건너 산길로 오른다. 철없는 철쭉이 벌써 보인다. 그 유명한 화엄벌은 정면의 봉우리를 넘어야 만날 수 있지만 마치 벌써 도달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억새가 넘실거린다. 올 봄에 난 산불 흔적을 지나면 마침내 화엄벌, 3만8000평. 장관이다. 답답했던 가슴이 확 뚫린다.

화엄벌 억새는 키가 유달리 작다. 그래서 친근감이 더 간다. 한없이 푸른 가을하늘과 뭉게구름, 끝없이 펼쳐진 억새밭의 오묘한 조화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울타리 안 억새 주변에서 붉은빛을 내는 무리는 봄에 장관을 이루는 철쭉.

'화엄늪 습지보호지역' 안내판에서 왼쪽방향은 지프네골과 용주사, 또는 용소골로 이어지며 오른쪽으론 군사기지가 있는 천성산으로 가는 길. 울타리를 따라 우측으로 10여분 억새에 취해 걸어가면 '군사시설 보호구역' 팻말이 갈림길 정면에 붙어있다. 왼쪽은 은수고개를 지나 천성산제2봉으로, 오른쪽은 원효암 가는 길.

산허리를 돌아 내려서면 순식간에 전혀 딴 산. 억새는 오간데 없고 산죽 갈참 굴참 등 참나무류가 눈앞에 들어오고 심지어 벌써 붉게 물든 단풍도 보인다.

40분쯤 내리막과 바윗길을 번갈아 걸으면 연이어 두 번의 갈림길. 길찾기에 유의할 곳이다. 2곳 모두 오른쪽은 홍룡폭포 가는 길이므로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원효암.

종무실 옆 음각된 마애아미타삼존불.

 
10여분 뒤 마침내 원효암. 관음바위 거북바위 등이 암자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종무실 옆 마애아미타삼존불을 보고 범종루 옆으로 난 길로 간다. 게시판을 지날 무렵 우측에 고당봉이 정면으로 선명하게 보인다.

주차장을 지나 정면 산길로 내려선다. 여기서부터 낙동정맥 길이다. 곧 군 작전도로와 만난다. 여기서 100m쯤 가다 왼쪽 산길로 들어선다. 30m쯤 뒤 갈림길. 왼쪽으로 간다. 곧 전망대인 720m봉. 왼쪽부터 대운산 시명산 석은덤산 용천산 백운산 매바위 철마산 장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산행팀은 덕계로 하산하기 위해 왼쪽으로 간다. 오른쪽 길은 낙동정맥길로 금정산 고당봉으로 이어진다.

지금부턴 내달리는 일만 남았다. 억새숲을 지나고 바위봉우리를 넘는다. 50분쯤 뒤 갈림길. 우측 법기수원지 방향은 버리고 왼쪽 덕계쪽으로 간다. 다시 억새길과 오솔길이 20여분 반복된다. 철탑을 지나 내리막길을 지나면 10여분 뒤 웅상읍 평산리 장흥부락에 닿는다. 여기서 덕계시장 스파편의점 앞 버스정류장까지는 20분쯤 걸린다.


# 떠나기전에
- 원효산, 천성산으로 명칭 통일
- 산꾼들에 쓰러진 억새 신음소리

양산 천성산이 산 이름을 두고 수난을 겪고 있다.
통도사를 안고 있는 영축산이 영취산, 취서산으로 함께 불리다가 최근에야 영축산으로 결정됐는데 천성산의 두봉우리는 각각 천성산, 원효산으로 불리다가 지금은 천성산은 천성산 제2봉, 원효산은 천성산으로 정리됐다. 하지만 많은 산꾼들은 아직도 각각의 봉우리를 천성산과 원효산으로 부르고 있다.

그 천성산 산허리의 화엄벌이 지금 광명추파의 물결에 춤을 추고 있다.

국제신문 산행팀은 지난 2001년 천성산의 한적한 화엄벌을 소개한 적이 있다. 신문에 보도된 직후 다시 찾은 화엄벌은 많은 탐승객들로부터 수난을 당하고 있었다. 억새의 멋들어짐은 사라지고 화엄벌 주변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동그랗게 자리잡고 술과 음식을 곁들이며 화엄벌을 훼손하고 있었다.

화엄벌을 소개한 산행팀은 훼손 사실을 확인한 뒤 즉시 양산시청의 홈페이지에 화엄벌 보호를 위해 안전시설물의 설치가 시급하다는 글을 올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뒤 얼마 안돼 지금과 같은 시설물이 설치됐다.

코스를 달리해 이번에 다시 찾은 화엄벌 내부는 울타리로 인해 안전한 상태여서 원효와 1000명 제자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울타리 바깥의 억새밭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새를 방석삼아 무분별하게 행동하는 산꾼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쓰러진 억새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교통편
- 들머리·날머리 달라 대중교통 이용을
- 온천장서 언양행 버스타고 석계 하차

이번 산행코스는 승용차보다는 대중교통을 권하고 싶다.

들머리인 상북면 석계로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1호선 명륜동역(종점)이나 온천장역 시외버스 정류장 앞에서 언양행 12번 완행버스를 타고 석계(상북면사무소)에서 내린다. 첫 차는 오전 5시20분에 있으며 이후 7~9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100원. 1시간 정도 걸린다.

날머리 덕계에선 덕계시장 스파편의점 앞 버스정류장에서 부산행 일반버스(50, 58, 147) 및 좌석버스(247, 301, 301-1, 347, 2000, 2200)를 이용하면 된다. 일반버스는 900원이지만 부산과의 경계를 넘을 땐 300원을 더 내야하며, 좌석버스는 일괄 1500원. 울산~부산간 운행하는 1127번 버스를 타도 된다. 1300원.

※현지 사정상 대중교통편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51
 이창우 산행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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