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매화가 봄길 틔우고, 벚꽃·유채가 절정 피운다
-섬진강 매화마을 뒤덮고 구례는 산우유 샛노란 물결
-부산 근교 양산 원동도 내일부터 토종매화축제
-4월이면 벚꽃 향연…하동·진해·삼랑진 등 장관
-창녕 남지읍 낙동강 둔치 유채꽃도 색다른 유혹
-4월 진달래·5월 철쭉 산꾼들 어디갈까 고민중

창녕군 남지읍 낙동강변 유채꽃 단지.

산꾼 시인 이성부는 '봄'을 이렇게 읊었다죠.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중략)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지쳐 나자빠져 있다가/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흔들어 깨우면/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중략)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애타게 기다린 봄이 쉬이 오지 않음을 안타까이 여기다 마침내 도래한 봄의 숨결에 안도하는 심정을 노래한 듯합니다.

이성부는 봄을 한량처럼 나자빠져 있는 등 느려터졌다고 노래했지만 실상 올 봄은 조물주의 시샘인지 동장군의 용심인지 하여튼 '이성주의 봄' 보다 더 더디게 온 것 같습니다. 이달 들어서도 찬 기운을 동반한 비가 간헐적으로 을씨년스럽게 내리더니 지난주에는 전국에 때아닌 폭설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죽어라고 눈을 볼 수 없던 부산에도 5㎝가량 내렸으니 그야말로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겠죠.

꽃샘추위가 이제 아련한 옛 추억이 돼버린 완연한 봄. 봄 햇살에 연못가 버들개지도 눈을 뜨고 시골 들녘에는 한가롭게 나물 캐는 아낙들이 눈에 띕니다. 도심에는 봄처녀의 옷빛깔도 화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봄의 전령은 뭐니뭐니해도 꽃이지요. 사계절 어디건 꽃이 끊이질 않지만 한겨울 모진 혹한을 이겨낸 후 살포시 고개를 내미는 봄꽃이야말로 봄나물에 냉잇국처럼 상큼하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우리땅 봄꽃의 개화시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동백 매화 산수유 개나리 벚꽃 배꽃 복사꽃 유채꽃 사과꽃 진달래 철쭉 순. 오래전엔 시차를 두고 순서대로 고개를 내밀었지만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인지 엘리뇨 탓인지 일부 꽃의 개화시기가 빨라지고 있더군요. 6, 7년 전만 하더라도 섬진강변에는 청매실농원의 매화가 빛을 잃으면 구례 산동면 산수유가 꽃봉오리를 내밀었지만 지금은 거의 같은 시기에 피고 있더군요. 상춘객의 입장에서는 한 걸음에 매화와 산수유의 꽃잔치를 볼 수 있으니 이런 호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전국 각지의 봄꽃 기상도를 살펴봤습니다. 우리땅 발 닿는 곳 어느 구석에도 봄꽃이 없겠냐마는 이왕이면 지명도가 있는 전국 유명 봄꽃 여행지와 산행지로 떠나면 더욱더 호사를 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봄은 지금 이 순간도 남녘에서 살금살금 북상하고 있습니다. 봄바람은 처녀 겨드랑이를 타고 온다 했던가요. 봄 햇살은 제 새끼 챙기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라 했던가요. 이성주의 '봄'에서처럼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오고 있는 봄을 이번 주말 마중 나가보지 않으시렵니까.


남도의 봄은 섬진강에 먼저 온다

봄의 여신이 맨 처음 발을 디디는 곳은 섬진강변. 이곳에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각종 봄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해서 이번 주말부터 4월 초까지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를 잇는 19번 국도는 국내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떠오른다.

                 청매실농원과 섬진강. 매실액과 매실장아찌가 익어가는 2500개의 항아리가 눈길
                 을 끈다. 

섬진강변에 봄을 제일 먼저 밝히는 전령은 매화.

매화 꽃잔치의 절정은 청매실농원이다. 행정구역상으로 전남 광양시 다압면. 고로쇠 약수로 유명한 백운산 자락에 위치한 이곳의 원래 이름은 섬진마을이지만 주민 대부분이 매실농사를 짓고 있어 매화마을로 불린다. 경상도 할매 홍쌍리(68) 씨가 회장으로 있는 이곳은 섬진강변 매화의 원조. 6만여 평의 산자락이 온통 백매·홍매·청매로 넘쳐난다. 혹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면 흩날리는 오편화 꽃잎에 꽃멀미가 날 정도다.

농원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풍광은 장관이며 매실액이 익어가는 2500개의 장독대도 볼거리다. 문학동산에는 최근 입적한 법정 스님의 문구가 잠시 발걸음을 붙잡는다. 매화축제는 오는 21일까지. 하지만 25일까지 절정이 유지되며, 아쉽지만 4월 초까지도 매화를 볼 수 있다.

                    영남의 젖줄 낙동강, 경부선 열차 그리고 매화가 어우러진 모습은 한 폭의
                         그림같다.


 부산 근교에도 매화단지가 있다. 토종 청매실 단지로 유명한 양산 원동면 일대에서는 20, 21일 원동매화축제가 열린다. 주행사장은 영포마을 매실농장이지만 차로 7, 8분 거리인 원동역 주변에도 매향이 진동한다. 영남의 젖줄 낙동강과 경부선 열차 그리고 꽃비가 휘날리는 매화를 한 화면에 잡으면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된다.

수백 년 된 토종 매화를 즐기려면 방문 시기를 좀 늦춰야 한다. 옛 선비들이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은은히 풍기던 매향을 쫓아 탐매(探梅)하던 토종 매화는 대개 산속 절집 외딴 곳에 숨어 있어 개량종보다 보름 정도 늦게 핀다. 시기는 이달 말에서 4월 초쯤. 선암사 선암매, 화엄사 흑매, 산청 단속사지 정당매와 덕산서원 산천재 남명매 등이 유명하다. 이 중 홍매인 선암매는 거구에 기품까지 갖춰 최고로 친다.

                    샛노랗게 물든 구례 산동면 상위마을, 일명 산수유마을.

산수유 꽃물결를 만끽하려면 지리산 만복대 기슭의 구례 산동면 상위마을을 찾아야 한다. 지리산온천단지 위쪽이다. 혹 산꾼들은 만복대 산행 후 상위마을로 하산할 계획을 세울 수 있겠지만 이는 절대 불가. 이 길은 현재 영구 폐쇄된 상태다. 청매실농원에선 좌회전, 861번 지방도를 타보자.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19번 국도와 마주 보는 이 길은 매화꽃길로 소박한 시골아낙의 포근함이 느껴진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매화꽃길 861 지방도.

상위마을을 포함한 산동면은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청정 계곡과 돌담 주변 등 마을 전체가 노란 파스텔톤의 옷을 입고 있어 전국의 사진동호인들이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다. 축제는 절정을 맞는 오는 21일까지. 산수유꽃은 한 달 정도 지속돼 4월 초까지 볼 수 있다.

벚꽃 터널, 전국에 꽃비를 내리다
  

                   벚꽃이 만개한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를 잇는 19번 국도.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벚꽃길. 이 길을 걸으면 없던 사랑도 생겨 혼인에 이르게 된다 하여 일명 '혼인길'로 불린다.

섬진강변 매화가 생명을 다하면 19번 국도와 쌍계사 가는 길엔 벚꽃 터널이 만들어진다. 섬진강을 끼고 내달리는 19번 국도는 눈부시고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가는 십오리길은 황홀하다. 오죽했으면 이 길이 청춘남녀들이 혼인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하여 '혼인길'로 불리게 됐을까. 화개장터 벚꽃축제는 4월 2~4일 열린다. 벚꽃은 매화나 산수유와 달리 4, 5일이면 꽃잎이 흩날려 시기를 특히 잘 맞춰야 한다.

벚꽃이 눈처럼 휘날리기 시작하면 19번 국도변 만지배밭에는 순백의 배꽃이 꽃망울을 터트린다. 4월 10일쯤이면 절정이다. 화려한 벚꽃과 달리 배꽃은 깨끗하고 차분해 시골처녀를 꼭 닮았다.

                  벚꽃이 지면 19번 국도변 만지배밭에 순백의 배꽃이 피어난다. 이 또한 볼거리다.

비슷한 시기 부산 인근에도 벚꽃 천지가 펼쳐진다. 진해에는 군항제(4월 1~11일)가 열리고, 밀양 삼랑진 양수발전소 상하부댐인 천태호와 안태호의 드라이브길에도 벚꽃 터널이 만들어진다. 삼랑진은 우리나라 딸기 시배지로, 비록 끝물이지만 딸기를 맛볼 수 있다. 경주 보문단지, 합천호반, 사천 선진리성, 그리고 티벳박물관으로 유명한 전남 보성 대원사 입구 벚꽃 터널도 4월 첫째 주에 절정에 이른다.

진해 여좌천 벚꽃.
밀양 삼랑진읍 양수발전소 천태호와 안태호를 잇는 드라이브 벚꽃길.
사천 선진리성 벚꽃.

'춘마곡, 추갑사'란 옛말처럼 벚꽃이 아름다운 공주 마곡사와 부안 내소사, 해인사 홍류동계곡 벚꽃은 4월 중순에, 진안 마이산과 청풍호반 벚꽃은 전국에서 가장 늦은 4월 20일 전후로 만개한다.

유채꽃 복사꽃 사과꽃 하고초꽃 그리고 동백

창녕 남지읍 낙동경변 유채꽃 단지.
  
4월 중순으로 접어들면 유채꽃이 상춘객들을 유혹한다. 창녕군 남지읍 낙동강변 유채꽃밭이 대표적. 66만 ㎡의 전국 최대 규모로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봄바람에 가냘픈 몸이 흔들리는 샛노란 유채꽃을 보고 있으면 꽃멀미가 일 정도로 현란하다. 장관이다. 4월 17~25일 낙동강 유채축제가 열린다. 중부내륙(옛 구마)고속도로 남지IC에서 차로 5분 거리.

양산시 양산천 둔치에서도 4월 21~25일 유채꽃밭이 샛노란 빛으로 물든다. 상북면 고려제강에서 동면 호포대교까지 16㎞ 구간이다. 면적은 30만 ㎡. 경주 첨성대와 안압지, 황룡사터에서도 4월 15~30일 유채꽃이 만발한다. 야간 조명에 비친 첨성대와 안압지의 유채꽃은 몽환적이다.

팁 하나. 올해 삼천포-창선대교 인근 초양도와 늑도의 유채꽃은 기대하지 마시길. 쪽빛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단기간에 전국적 지명도를 높인 초양도·늑도 유채밭은 지주들의 사용료 요구로 사천시가 지난해 말 파종을 하지 않아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거제도 고현 해변의 유채밭도 개발로 인해 아쉽게도 올해부터 볼 수 없다.

                             영덕 복사꽃. 한 폭의 그림이다.

좀처럼 보기 드문 진홍빛의 복사꽃 천지는 4월 5~15일 경북 영덕에서 만날 수 있다. 영덕읍에서 안동 방향 34번 국도 따라 들판과 산기슭에 무릉도원을 만든다. 그 길이만 무려 12㎞. 예부터 영덕에선 복사꽃이 필 무렵 대게가 가장 맛있다고 전해져 내려와 이 봄 영덕을 방문하면 복사꽃과 대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복사꽃이 지면 4월 25~30일쯤 같은 장소에서 연분홍 사과꽃이 핀다. 수십만 평의 면적에 복숭아나무와 사과나무가 엇비슷하게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운문사 선암사와 함께 국내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영주 부석사 입구에서도 5월 초 사과꽃이 만개한다.

함양 하고초꽃 군락지. 

늦은 봄인 5월 말~6월 초 경남 함양 백전면 오천리 양천마을에서는 보랏빛 하고초꽃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지난 2001년 함양군의 '1마을 1약초' 운동의 일환으로 하고초꿀을 위해 마을 언덕배기 천수답 다랭이논에 심은 하고초꽃 군락이 보랏빛 수채화의 장관을 이루자 사진동호인들이 하나둘 몰리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선운사 대웅전 뒤 동백군락지. 동백은 필 때보다 송이째 부러진 모습이 더 아름답다. 

동백도 볼 수 있다. 필 때보다 처절하게 지는 모습이 더 아름다운 동백은 사실 1월부터 꽃봉오리를 틔우는 겨울꽃. 시들며 이지러져 인생무상의 서글픔마저 느끼게 한다. 여느 꽃과 달리 송이째 부러진 모습이 아름다워 예부터 선비의 꽃으로 불리는 동백은 거제도 지심도, 여수 오동도와 거문도, 강진 백련사에서 볼 수 있다. 특히 거문도의 등대 가는 길이나 보로봉~불탄봉 등산로에선 쪽빛 물결과 단아한 기암괴석이 한데 어우러져 일품이다. 4월 초까지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전북 고창 선운사 동백도 4월 초까지 피고 진다.

산꾼들의 영원한 베아트리체 진달래와 철쭉
  
고봉준령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봄의 전령은 애이불비(哀而不悲)의 꽃 진달래. 겨우내 움츠렸던 잿빛 산야를 일순간 화사하게 변모시키는 진달래는 그래서 산꾼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거제 대금산 진달래.
대구 달성군 비슬산 진달래. 산상화원이 따로 없다.
창녕군 화왕산 진달래.

거제도 대금산 진달래축제는 오는 27일 열리며, 이원수의 동시 '고향의 봄'의 배경인 창원 천주산과 비음산은 4월 10일 즈음 각각 만개할 예정. 비음산은 특히 진달래에 이어 철쭉도 만개한다. 여수 영취산 진달래는 4월 2~4일 온 산을 불태운다. 대구 비슬산 참꽃 축제는 4월 26일~5월 3일 비슬산 자연휴양림과 정상 아래 대견사지 일원에서 열린다. 1000m 고지대에 100만 ㎡나 되는 산사면에 펼쳐져 규모 면에서 국내 최고. 산상화원이 따로 없다.

산꾼들은 철쭉을 계절의 여왕 5월의 꽃으로 여긴다. 전국 철쭉산들의 개화 시기는 대체로 장흥 제암산, 보성 일림산(5월 초순)-합천 황매산, 덕유산, 지리산 바래봉(5월 초순~중순)-소백산, 지리산 세석평전(5월 하순)-태백산(6월 초순) 순이다.

보성 일림산 철쭉.


 합천 황매산 철쭉.


동해안 최대 어업전진기지인 구룡포항을 약간만 벗어나면 과메기 덕장과 함께 아름다운 해변이 줄곧 이어진다.

춥다 춥다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던 겨울이 어느새 끝물이다. 작은 바람에도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가는 만추를 아쉬워하던 게 엊그제 같은 데 지나고 보니 정말 눈깜박할 사이다. 시골 여염집 기둥이나 대들보엔 이미 봄을 알리는 입춘첩이 붙어 있고, 대동강 물이 풀리기 시작한다는 우수 또한 턱밑에 다가와 있다.

 봄소식은 화신(花信)이다. 통상 이맘 때면 신문 방송 등 언론매체에선 앞다투어 봄소식의 선두격인 매향(梅香)을 전하기 위해 남으로 남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단골 명소는 구례 화엄사, 순천 선암사 금둔사, 산청 단속사지 등. 이곳에는 나라땅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수백년 된 운치있는 매화나무가 탐매객을 유혹한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일 년을 학수고대한 마니아들이야 감탄에 또 감탄을 하겠지만, 뚜렷한 목적없이 그저 신문이나 방송에서 소개된 한 장면을 보기 위해 운전대를 잡은 장삼이사들은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고 발길을 돌리며 혼잣말을 할 게다. "만개한 것도 아니고 겨우 매화 꽃잎 몇 개를 보려고 몇 시간씩 구불구불한 길을 내달려 왔단 말인가."

 2월은 여행 기자들에게 고민의 계절이다. 어정쩡한 봄과 휘청거리는 겨울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동장군은 시나브로 꼬리를 내리려고 하고 있고,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글자 그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그것이다. 겨울과 봄, 무엇보다 딱히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섣불리 떠나기도, 소개하기도 조심스럽다. 고심 끝에 주말레저팀은 결정했다. 어정쩡한 봄보다는 떠나려는 겨울을 붙잡아 보기로.

 흔히 2월 하고도 중순이면 스키장은 일반인의 뇌리에서 사라진다. 해발 1000m에 육박하는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보니 눈이 늦게까지 내린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도심에 비가 오면 산엔 눈이 온다는 지극히 평범한 대자연의 원리를 잊고 있는 것.    
   
 지난 시즌의 경우 양산 에덴밸리는 3월 9일, 무주리조트는 3월 17일까지 영업을 했다. 스키장 측에 따르면 2월 스키장을 찾으면 숙박 리프트 렌털 등을 묶은 패키지 상품이 아주 저렴한 데다 무엇보다 북적이는 1월보다 사람들이 훨씬 적어 맘껏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예기치 않은 눈까지 내린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과메기로 유명한 포항 구룡포와 국내 최대 대구 집산지인 거제도 외포항은 겨울 식도락 여행지로 제격이다. 이곳 또한 삭풍이 몰아치는 12월과 1월 두 달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2월 말까지 싱싱한 그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원래 축제가 한창 때는 별 대접을 받지 못하지만 사람들이 뜸해지는 끝물 즈음에 찾으면 적당히 대접을 받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사실 아니겠는가.

주5일제와 여행문화의 발달로 우리나라 관광지의 경우 사실 알려지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지만 구룡포는 예외인 것 같다. 일본인 집단 거주촌이 남아 있는 데다 원조 어선인 목선을 만드는 장인들이 아직도 뱃공장을 지키고 있다. 자, 선택은 이제 독자들의 몫. 주말이나 아니면 모처럼 주중에 휴가를 내고 가족들과 연인들과 함께 떠나보자.

■ 동해안 최대 어업전진기지 포항 구룡포

과메기 오징어 대게 골라먹는 재미 쏠쏠
겨울 낭만보단 뱃고동 울리는 
고깃배 모습 더 인상적
대게·활오징어·트롤오징어 등 대형 위판장 무려 세 곳 

동해안 최대 어업전지기지인 구룡포항 전경.

장삼이사들은 구룡포 하면 우선 과메기를 떠올린다. 일출 명소로 유명한 호미곶이 위치한 북쪽의 대보면 등과 함께 과메기 특구로 지정된 이곳은 국내 전체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구룡포항에는 식당가 말고는 과메기 덕장을 구경할 수 없다. 구룡포항을 벗어나야 된다. 호미곶으로 이어지는 31번 해안국도변에 '과메기'라고 적힌 커다란 입간판을 따라 가면 과메기 덕장을 만날 수 있다.

과메기는 쉽게 풀어쓰면 꽁치 숙성회. 원래 과메기의 재료는 청어였다. 하지만 청어가 구룡포에서 잡히지 않자 연안 꽁치로 대체됐고, 이후 꽁치조차 자취를 감추자 러시아 쿠릴열도 부근의 원양꽁치가 쓰였다. 재밌는 점은 원양 꽁치가 연안 꽁치보다 불포화지방산 등 영양학적 측면에서 앞선다는 점이다.

구룡포가 과메기 최대 집산지로 자리매김하게 된 데는 지정학적 위치 덕분. 포항은 낙동정맥이 고도를 낮추는 지점이라 북서풍과 염분을 머금은 영일만의 해풍이 뒤섞이며 과메기를 숙성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과메기는 바람뿐 아니라 적당한 햇빛과 습도 온도 등 네박자를 갖춰야 하는 까다로운 먹을거리였다. 기자가 찾은 진강수산 덕장의 건조실에는 습도 조절을 위해 많은 창문이 뚫려 있는 데다 선풍기 연탄난로 등을 비치, 시간대별로 온도와 습도를 체크하면서 ON-OFF를 반복하는 복잡한 작업이 계속됐다. 바람이 잘 통하는 햇빛에 그냥 말리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대나무 꽂이에 걸려 있는 과메기 덕장의 모습은 한폭이 그림같이 아름답고 한편으로 탐스럽다.

구룡포 과메기 덕장.

구룡포는 동해안 최대 어항답게 대게 및 오징어의 국내 최대 집산지이다. 겨울바다의 낭만 보다는 갈매기의 호위를 받아 뱃고동을 울리며 드나드는 비릿한 고깃배의 모습이 더 살갑게 다가오는 어항이다. 그렇다 보니 경매가 이뤄지는 위판장도 대게, 오징어활어, 트롤 오징어 및 잡어 위판장 등 세 곳이나 된다. 새벽 잠깐 떠들썩한 다른 어항 보다 거의 온종일 시끌벅적하다.
과메기와 함께 구룡포 해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반건조 오징어인 피데기.

구룡포는 전국 대게 위판량의 60%를 차지한다. 이곳 대게의 상당량이 영덕으로 올라가 영덕대게로 옷을 갈아 입는다. 
 
구룡포수협에 따르면 대게는 국내 생산의 60%가 위판되며, 오징어는 국내 생산의 절반 가까이 모여든다. 브랜드에서 밀릴 뿐 이곳 대게가 상당 부분 영덕으로 올라간단다. 오징어도 울릉도 보다 더 많이 잡힌다. 소문만 나지 않았을 뿐 이곳 구룡포에 오면 싱싱하면서도 저렴한 대게와 오징어 과메기를 맘껏 맛볼 수 있다.

구룡포에선 놓쳐선 안 될 알려지지 않은 볼거리가 몇 곳 있다. 우선 일본인 집단 거주촌인 적산가옥. 화려한 구룡포항 도로 바로 뒤편, 장안동 골목이 바로 그곳이다. 한일합방 이듬해인 1911년 일본은 동력선을 앞세워 어자원이 풍부한 구룡포에 어민들을 집단 이주시켰다. 믿기 힘들겠지만 100년 전 일본 가옥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당시에는 지금의 항구와 도로가 모두 바다여서 이 적산가옥이 바다와 인접했다고 한다.

꼬불꼬불한 골목길 사이로 일본식 대문과 이층 가옥을 걷다 보면 불현듯 이층 창문이 열리면서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곤니치와'하며 인사를 건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빈 집에 들어가보면 다다미가 그대로 남아 있고 문에는 후지산과 천지못 등 고향을 그리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곳은 오래전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일본거리 촬영지로 활용됐다.
 
동행한 구룡포 미래사회연구소 서인만 부소장은 "50호 정도가 일본가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중 20호 정도는 근대문화재로 등록이 가능할 정도로 잘 보존돼 있다"고 설명했다.

적산가옥 거리 중간쯤엔 돌계단이 조성돼 있다. 예전엔 신사가 모셔져 있었지만 지금은 구룡포공원으로 변모, 충혼탑과 용왕당이 들어서 있다. 구룡포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곳 주변에는 여전히 신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구룡포 입구에는 뱃공장이 있다. 목선 조선소였던 이곳 대성조선소는 1980년대 FRP선이 나오면서 침체에 빠지지 시작, 지금은 생계를 위해 철선과 FRP선 수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속으로는 언제나 목선 주문이 들어오기를 학수고대하는 이 시대 마지막 목선 장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구룡포를 찾으면 역시 꼭 맛보고 가야 될 먹을거리가 있다. 50년 전통의 '철규분식'(054-276-2298). 구룡포초등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연탄불에 팥을 밤새 삶은 단팥죽(2000원), 감자가루를 적절히 섞어 만든 쫀득쫀득한 찐빵(3개 1000원), 양은냄비에 담아 주는 국수(2000원)는 어딜 내놔도 별미 중의 별미로 꼽힌다.

'철규분식'의 단팥죽과 찐빵. 이렇게 2000원.

'까꾸네'의 모리국수.


 이름이 다소 독특한 모리국수집인 40년 된 '까꾸네'(054-276-2298). 구룡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모리국수(5000원)는 원래 어부들이 배에서 내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갖은 생선을 넣고 끓인 뒤 국수를 말아먹던 음식. 경상도 말로 생선을 '모디(모아)' 넣고 '모디가(모여서)' 먹는다는 의미로 처음엔 '모디국수'로 불리다 어느날 자연스럽게 '모리국수'로 정착됐단다. 삶은 육수에 아구와 대게를 넣고 콩나물 파 고춧가루 마늘 등을 넣어 시원하다.

경부고속도로 경주IC~보문단지~감은사지~문무대왕릉~감포~구룡포 순으로 가도 되고,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해운대~대변~임랑~고리~서생~울산~정자해변~감포~구룡포 순으로 해변 드라이브를 하며 내달려도 된다. 구룡포에서 등대박물관과 상생의 손이 반가이 맞이하는 호미곶까지는 대략 30㎞. 도중에는 우리나라 최동단 땅끝(등끝)마을도 만날 수 있다. 안내판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 거제도 장목면 외포항

왕처럼 대구찜 한번 먹어볼까, 임금님 진상품 대구 아직도 잡혀
근처 YS생가도 한번 둘러볼만,
카페리 이용하면 훨씬 더 편리

                   대구 요리 25년을 자랑하는 외포식당 곽송주 씨가 대구를 받쳐들고 있다.

먹음직스러운 '대구찜'.

시원한 대구탕.


겨울철 남해안을 대표하는 대구의 최대 집산지는 YS의 고향인 거제도 장목면 외포리 외포항. 예부터 임금님 진상품으로 올랐다는 거제산 대구는 누구나 한번쯤 먹고 싶어했던 바다의 귀족. 1m에 달하는 쭉 뻗은 몸매와 탱탱한 피부는 수입산 냉동 대구는 명함을 못낼 정도.

한때 대구잡이 어민들도 시련이 있었다.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거의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혹 1~2마리 잡히면 최고 위판가가 60만 원에 달할 정도여서 '금대구'로 불리었다. '잃어버린 10년'이었던 셈이다. 다행히 꾸준한 대구알 방류사업으로 2000년대부터 다시 잡히기 시작해 지금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성수기 때와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2월의 외포항은 대구와 물메기 등으로 아침이면 부산하다. 외포위판장 관계자는 "지금이야 대구가 넘쳐나지만 한참 귀할 땐 미식가들 4명이 돈을 나눠 30만~40만 원하던 대구를 직접 사러 왔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외포리 농협 맞은편에서 '외포식당'(055-636-7205) 곽송주 씨는 "이곳의 대구탕은 다른 양념은 필요없고 소금 간만 약간 한다"고 말했다. 곽 씨는 시어머니로부터 대구요리를 전수받아 25년째 고수하고 있다. 전통이 있다 보니 이 집은 거제도의 정관계 및 교육계 인사,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고위층이 단골 고객이다.

 네댓 명이 먹을 수 있는 '대구찜'을 주문하면 대구탕 물메기회 아구수육 등 거제에서 맛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메뉴를 만날 수 있다. 대구찜은 생대구를 대나무 소쿠리에 얹어 묵은지 콩나물 등과 갖은 양념을 곁들여 별미로 손꼽힌다. 9만 원. 반드시 전날 예약 필수.

외포식당이 위치한 외포마을에서 고개를 하나 살짝 넘으면 대계마을. YS 생가가 위치해 있다. 생가에는 눈길을 끄는 것들이 있다. 1960년 5월 공비가 쏜 총탄에 절명한 YS의 모친 박부련 여사의 사진과 그 아래 놓인 장농이다. 그 장농에는 당시 공비가 쏜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진해 안골에서 카페리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성우카페리(055-636-5676), 풍양카페리(1688-4808).


■ 스키타기 지금이 오히려 적기 

사람 붐비던 지난해12월, 올 1월보다 한적, 맘껏 즐길 수 있어
지난해 무주스키장 3월9일, 양산 에덴밸리 3월16일까지 영업
가격 또한 성수기의 50% 수준으로 대폭 할인

2월에 스키장을 찾으면 한적하게 맘껏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진은 무주리조트.

지난 14일 무주스키장 만선베이스에서 만난 직장인 김 모 씨는 "지금까지 왜 인파가 넘치는 1월 그것도 주말에 찾아 몇 번 타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렸는지 억울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찾은 김 씨는 2월에 와도 1월 못지 않게 설질이 좋아 스키 타기에는 그저 그만이라고 활짝 웃었다.

황삼원 홍보 담당은 "2월에 오면 저렴한 가격으로 알차게 스키나 보드를 탈 수 있다"고 전했다. 우선 22개 전 슬로프를 개방하는 데다 하프파이프 보드파크 모글코스 등 마니아들의 공간까지 완벽하게 오픈해 1월보다 오히려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

무주의 경우 이웃한 진안 장수와 함께 원래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인 데다 국내 5위봉인 덕유산 향적봉에 위치해 있어 슬로프 자체가 1200~1300m에서 시작돼 2월말까지도 쾌적하게 스키를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숙박 리프트 렌털이 묶인 가족호텔 주중 패키지가 1인당 6, 7만 원대로 무려 성수기의 50%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3인 기준으로 22만6000원, 5인 기준 34만 원에 판매한다. 국민호텔의 경우 주중 패키지는 2인 기준 11만 원, 5인 기준 26만2000원에 내놓아 알뜰족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 가격대는 버스를 이용, 리프트 렌털을 할 수 있는 여행사 패키지 상품이 7만5000원(강습 제외)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해고속도로에서 대전통영 고속도로 덕유산IC에서 빠지면 된다.

부산서 가까운 양산 에덴밸리스키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조용호 홍보팀장은 "영남알프스 자락에 위치한 이곳 에덴밸리는 슬로프가 해발 800m대로 무주에 비해 낮지만 베이스 전면이 정북향이어서 하루 종일 해가 들지 않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보강 제설한 눈의 보전성이 높아 좋은 설질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2월말까지 눈까지 자주 내려 스키 타기에는 제격이라는 것.

가격 또한 저렴해졌다. 성수기 때 숙박비용만 19만 원(16평), 28만 원(23평)이던 것이 2월부터는 숙박뿐 아니라 조식 사우나&찜질방 리프트(50%) 렌털(50%) 강습(50%)을 포함해 16평형의 경우 2인 기준 22만1000원, 3인 28만4000원, 4인 34만7000원, 23평형은 4인 39만2000원, 5인 45만5000원, 6인 51만8000원이라는 파격가로 내놓았다. 경부고속도로 양산IC~어곡양산지방공단 배내골 방향.

부산과 인접한 양산 에덴밸리스키장.

에덴밸리의 보더.

에덴밸리의 스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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