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의 산치곤 덜 알려졌지만 산세·조망은 그야말로 '환상'
이장한 듯한 묘지터인 539봉을 지나 만나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용암봉(왼쪽)과 소천봉이 '한 일(一)' 자 능선을 그으며 내달리고 있다. 소천봉 아래 하산길인 음지마을이 우측 하단 소나무 뒤로 보인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도심에서 받았던 온갖 스트레스를 풀러 산을 찾았건만 왜 이리 사람들이 많은지. 한적해야 될 산이 시골 5일장처럼 북적인다. 진정한 산꾼들이라면 이심전심으로 서로 배려를 해 별 문제는 없을 터이지만 문제는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깎아지른 기암절벽과 장쾌한 조망에 반해 잔잔한 미소 같은 내적 희열로 만족해야 될 상황이 과잉 액션으로 발산돼 주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법. 그렇다고 산을 끊을 수야 없지 않은가. 하여, 애오라지 산꾼들은 또다시 오염이 덜 된 한적한 오지의 산을 갈구하며 찾아 나선다.

대간이나 정맥 종주를 끝낸 산꾼들이 여기서 한 번 더 갈래를 치고 나온, 상대적으로 덜 붐비는 기맥이나 지맥을 찾아 나서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주 산행지는 영남알프스의 서쪽 언저리에 똬리를 틀고 앉은 밀양 용암봉~소천봉.
낙동정맥 가지산에서 갈라져 나와 운문 억산 구만 중산 낙화 보두 비학산을 거쳐 밀양강으로 떨어지는 이른바 운문지맥의 중간쯤 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밀양의 산임에도 지명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굴곡과 수려한 산세 그리고 곳곳에서 펼쳐지는 환상적 조망은 겨우내 움추렸던 근교산꾼들을 다시 산으로 불러모으는 데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


산행은 상동면 신곡리 양지마을~인동장씨묘~김해김씨묘~539봉(종지봉·이장한 묘지 터)~암릉길~오치령 육화산 갈림길~신(新)오치고개~밀성박씨·경주최씨묘~통천문(침니바위)~용암봉(686m)~소천봉(632m)~잇단 무덤~신곡리 교회(음지마을)~양지마을. 걷는 시간만 4시40분 정도이며 난이도는 보통이다.

신곡리 마을회관과 ‘신곡리 양지마을' 이정석을 잇따라 지나 다리(신곡천)를 건너면 갈림길. 왼쪽으로 가면 또 갈림길. 역시 왼쪽으로 100m쯤 가면 다시 갈림길.

 이번엔 ‘산림조합현장'이라 적힌 이정표가 가르키는 우측으로 간다. 마을 당산나무를 지나자마자 다시 갈림길. 왼쪽으로 간다. 대숲을 지나면 이내 갈림길. 차량 차단기가 보이는 정면 대신 석축을 따라 왼쪽으로 가면 들머리로 향하는 능선 갈림길. 이제 본격 우측 산으로 향한다. 등로는 약간 희미하지만 그렇다고 일일이 확인하고 오를 만큼 방치돼 있지는 않다. 나아가 거의 외길이라 걱정할 염려는 전혀 없다.

산행 초입대추밭 사이를 걸어가는 산행팀. 그 뒤로 산행팀이 걸어야 할 산행지인 용암봉(왼쪽)과 소천봉이 한눈에 보인다.

처음부터 된비알. 인동 장씨묘쯤 한 번 주춤하더니 15분 정도 거의 사람의 혼을 뺄 정도로 오르막이 심하다. 이후부턴 경사가 덜할 뿐 여전히 오름길이다. 그 정점은 양지바른 곳의 김해 김씨묘.

이제 송림길이 이어진다. 우측으로 향후 오를 용암~소천봉이 보인다. 크게 봐서 시계 방향으로 걷고 있는 셈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산행팀이 걷고 있는 산길과 용암~소천봉으로 이어지며 신곡리를 감싸고 있는 산세가 여성의 성기를 빼닮아 일종의 '여근곡(女根谷)'으로 불러도 될 성싶다.

솔가리와 낙엽이 반복되는 오름길은 한동안 이어지다 첫 봉우리인 539봉에서 숨고르기를 한다. 들머리에서 65분. 이장한 묘지터인 이곳은 하산 후 마을주민들로부터 ‘종지봉'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올라온 방향으로 보면 동창천 뒤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그 뒤로 옥교산 종남산 우령산 등 밀양의 산이, 소나무 우측으로 화악산 남산 오례산성 원정산 대남바위산 용당산 비룡산 통례산 등 청도 쪽 산이 손에 잡힌다. 20m쯤 더 가면 우측 시야가 트인 곳에서 더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좌측엔 코 앞의 육화산을 비롯 그 뒤로 구만산, 그 우측으로 운문산 백운산 정승봉 천황산 재약산 향로산이 펼쳐진다. 발 아래 산기슭의 계단식 논은 마치 깊게 파인 촌로의 주름을 연상시킨다.

영남알프스 주봉과 언저리봉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제부턴 능선길. 낙엽길과 송림터널이 반복된다. 20분 뒤 암릉길에선 발길 닿는 곳이 모두 전망대다. 10여 분 뒤 집채만한 바위가 앞을 막는다. 우회하는 길도 있지만 잠시 올라보니 사방팔방 훤히 펼쳐지는 최고의 전망대가 아닌가. 그간 숨어 있던 북암산 억산 범봉 사자봉 수리봉 구천산 정각산 가지산 그리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오치령 고갯길 등 영남알프스 주봉과 언저리 봉우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창우 대장도 “이처럼 완벽한 전망대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고 한마디 거든다.

전망대를 향해 근육질의 암릉을 오르는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은 "이 전망대를 두고 영남알프스를 이처럼 완벽하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은 극히 드물다"고 평했다. 

 정면 눈앞의 봉우리는 이름없는 무명봉이지만 산세로 봐서 구만산 육화산을 거쳐 운문지맥과 만나는 의미있는 지점이다. 실제로 봉우리를 내려서면 ‘오치령 육화산'이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이를 알려주듯 주변엔 리본이 많이 걸려 있고 산길 또한 뚜렷하다. 또 하나의 낮은 봉우리(536봉)를 넘으면 등로 좌우에 임도가 눈에 띄고 이내 고개에 닿는다. 오치령과 상동면 신곡리를 잇는 임도가 생기면서 생긴 고개로 흔히 오치고개라 부르고 있지만 기존의 오치령과 구분하기 위해선 ‘신(新)오치고개'라 부르는 것이 합당할 듯 싶다.

산행 중 전망대에서 바라본 용암봉(왼쪽)과 소천봉(오른쪽). 

임도를 건너 바로 산으로 오른다. 작은 봉우리를 살짝 넘고 밀성 박씨 및 경주 최씨묘를 잇따라 지난다. 이때부터 크고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오치령으로 가는 꼬불꼬불한 임도.
산행 중엔 밀양과 이웃한 청도의 봉우리들도 시원하게 펼쳐진다. 맨 뒤 능선 좌측으로부터 대남바위산 용당산 시루봉 비룡산 효양산 통례산 학일산이 보인다.

구만산 운문산 백운산 천황산 재약산 등 영남알프스 산군과 언저리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용암봉 정상 직전 만나는 통천문. 일명 침니바위라고 불린다.
용암봉 정상. 이 팻말은 이창우 산행대장 바로 앞, 국제신문 제2대 산행대장 최남준 씨가 사비를 들여 달아 놓은 것이다.  

 10분쯤 뒤 뜸하던 바위군. 처음엔 농짝 크기에서 점차 집채만한 바위로 변모한다. 한 전망대에선 산내면소재지 송백과 앞서 봤던 밀양 쪽 봉우리 외에 승학산 금오산 구천산과 원동 토곡산도 확인된다. 잇단 암릉과 암봉을 지나 일명 통천문이라 불리는 바위틈새길을 통과하면 이내 용암봉 정상. 오래 전엔 헬기장이었지만 지금은 송림에 막혀 조망이 없다. 발 아래 보도블록만이 이를 확인해줄 뿐이다.
직진하면 백암봉 중산 낙화 보두 비학산으로 이어지는 운문지맥길, 산행팀은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정면 바로 보이는 봉우리가 소천봉이다. 40분 걸린다. 조그만 돌탑 이외에는 정상이라고 인식할 어떠한 지형지물이 없다. 조망 역시 없다.
하산길은 좁다란 비탈길. 오랫동안 간벌을 하지 않은 죽음의 송림길이다. 이를 대변하듯 소나무마다 무수히 많은 솔방울이 매달려 있다.
뚜렷한 길은 없지만 크게 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서자. 국제신문 리본을 촘촘히 묶어놨다. 40분 뒤 길다운 길이 비로소 눈에 띄고, 여기서 5분이면 산을 벗어나 신곡리교회가 위치한 음지마을에 닿는다. 저 멀리 건너편이 들머리 양지마을이다. 두 마을은 10분 거리이다. 산행대장=이창우.

# 떠나기 전에 - 정상 안내판, 노장 산꾼의 열정

용암봉 정상에는 정상석 대신 '운문지맥/용암봉 686m/준·희'라고 적힌 조그만 스테인리스판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명산이건 근교산이건 산깨나 탄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겠지만 이처럼 고마운 일을 한 주인공은 국제신문 제2대 산행대장을 역임한 최남준(68) 씨. 그는 '그대와 가고 싶은 산, 준·희'라는 오렌지색 리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최 대장은 한창 땐 건건산악회를 이끌고 1대간 9정맥을 주파하며 지역 산악계에 종주 산행의 붐을 불러 일으켰고 최근 타개한 후배 산악인과 함께 사비를 들여 금정산과 백두대간길의 조령산 깃대봉 등 10여 곳에 약수터를 조성한 산사나이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는 법. 그도 오랜 산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무릎이 안좋아져 장시간 산행을 할 수 없다. 대신 3, 4시간 걸리는 정상석이 없는 근교산을 찾아 이정석 대신 이처럼 조그만 팻말형 안내판을 걸어두고 있다.

현재 600여 개 달았으며 이 작업은 다리에 힘이 소진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맛집 하나 소개한다. 22년 전통의 아랑장어구이(055-355-3895). 밀양IC에서 들머리로 가는 도중 국도변에 위치해 있다. 밀양IC에서 정확히 3.7㎞ 떨어져 있다. 주메뉴는 장어정식. 수수전 게장 등 무려 28가지의 반찬에 놀라고 입안에서 살살 녹는 장어맛에 감탄한다. 초벌구이로 기름을 뺀 후 양념을 무려 4번이나 발라 특유의 맛을 낸다. 김해 마산 양산 대구 청도 등의 단골들만 주로 찾으며 주말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을 정도다.


# 교통편 - 밀양터미널에서 신곡리행 버스 이용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IC~밀양 청도 24번~긴늪사거리에서 대구 청도 25번 우회전~상동면 안내판~상동면사무소 지나~신곡 고정 1077번 직진~매화 신곡 1077번 직진~신곡리 마을회관 지나자마자~신곡리 양지마을 이정석 순. 마을회관이나 다리 근처에 주차가능.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밀양행 버스는 오전 7시부터 매시 정각에 출발한다. 55분 소요. 3800원. 밀양터미널에서 신곡리행 버스는 오전 8시50분, 10시50분에 있다. 부산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상동역(옛 유천역)에서 내린다. 오전 7시50분 단 한 차례 있다. 상동역 도착 시각은 8시47분. 4200원. 상동역 건너편 상동파출소 앞에서 신곡리행 버스는 오전 9시5분, 10시55분에 출발한다.

신곡리에서 밀양행 시내버스는 오후 4시, 5시40분, 7시20분에 있다. 이 버스는 도중 상동역 앞에서도 정차한다. 상동역에서 부산행 열차는 오후 4시53분, 7시57분에 있다. 밀양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매시 정각 출발하며 막차는 오후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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