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같은 억새군락·수직 기암괴석 암봉
뜻밖의 눈꽃 터트린 너! 더욱 새롭구나
겉으론 부드러운 육산, 정상부는 암릉의 연속
쭉쭉 뻗은 낙엽송·수려한 계곡의 보석같은 산
주능선 오르면 뒤로 백운·남덕유산 동시 조망


 세간에 덜 알려진 길로 걷다보면 뜻밖의 결과와 맞닥뜨릴 경우가 왕왕 있다. 일종의 파격인 셈. 각본대로 움직이는 잰걸음보다 훨씬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만면에 미소를 띠며 호사를 누릴 때가 있는 반면 잔뜩 기대치를 높여 한달음에 올랐건만 초라한 행색으로 나그네를 맞는 경우도 없지 않다.

 산청 석대산과 하동 깃대봉이 전자에 해당된다면 거제 대금산과 지리산 만복대가 후자에 속한다고 감히 적고 싶다. 이들 산은 공통점이 있다. 은둔의 산이었거나 오랫동안 산꾼들로부터 잊혀져 있었거나, 아니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자료가 충분치 않은 경우이다.

 산청 산꾼들조차도 금시초문이라던 석대산은 알고보니 전형적인 진달래산이었다. 산사면 전체가 진홍빛으로 물드는 그런 산이 아니라 산행 내내 진달래가 방긋 웃으며 길손을 맞는다. 깃대봉에선 늘푸른 산죽과 눈덮인 지리산 천왕봉이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반면 진달래산으로 유명한 거제 대금산은 7, 8부 능선까지 차가 올라와 쓴웃음을 짓게 했고, 지리산 유일의 억새산행지로 알려졌던 만복대는 키 작은 관목들이 웃자라 `억새산행'이란 용어가 무색해질 정도였다.

 인적드문 새 길로 오른 함양 괘관산은 억새군락이 뜻밖의 기쁨을 안겨준다. 흩날리는 가녀린 몸부림은 가히 겨울산행의 덤이다. 겨울산도 이럴진대 절정의 만추에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운치있는 낙엽길에 이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낙엽송을 배경으로 자리매김한 억새평원은 한 폭의 한국화에 다름아니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육산인 일명 갓거리산인 괘관산(掛冠山·1252m)은 정상부의 수 십길 단애로 이어지는 암릉과 하산길의 수려한 계곡, 호젓한 낙엽길, 그리고 억새군락이 숨은 보석이다.

 산세로 보자면 지명도에서 한 수 위인 백두대간 백운산에서 동쪽으로 갈라져 나와 원통재(일명 빼빼재)에서 잠시 고도를 낮췄다가 불쑥 솟은 능선상의 최고봉이자 함양읍 북쪽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암봉이다.

 산행은 병곡면 지소마을~원산목장(잇단 2개의 문 통과)~쓰러진 막사~억새군락지~낙엽송 숲길~경주김씨묘~주능선~잇단 헬기장(4개)~태양열 안테나~괘관산·천황봉 갈림길~괘관산~괘관산·천황봉 갈림길~안부사거리~돌탑~천황봉~안부사거리~하산길(산죽길 계곡길)~지소마을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20분 안팎. 이정표 정비는 양호해 길찾기는 어렵지 않다.



 지소마을 입구의 지소교를 건너 직진하면 우측에 `괘관산 등산안내도'. 이 길은 하산길로 남겨두고 직진한다. 흑염소를 키우는 원산목장이 길을 막는다. 잇단 2개의 문을 통과한다. 시건장치는 반드시 잠글 것.

 흑염소는 오간데 없고 카키색 낙엽길이 그림같다. 20분 뒤 첫 갈림길에선 왼쪽으로 간다. 억새군락이 기다린다. 이름깨나 알려진 억새 산에 버금간다. 다 쓰러져 가는 막사를 지나면 이후 오를 마루금이 확연히 드러난다. 생각보다 온유하고 가깝다. 눈 앞의 억새와 붉은빛의 낙엽송, 그리고 부드러운 마루금의 조화가 장관이다.

산행 초입엔 무릎까지 빠지는 낙엽길. 
낙엽길에 이번엔 억새길. 마른 억새밭이 이럴진대 만추에 오면 황홀경에 빠질듯하다.


 인공조림을 한 듯한 낙엽송 숲길로 접어든다. 솔가리보다 작은 붉은 톤의 침엽(針葉)이 이국적으로 다가온다. 15분이면 낙엽송 숲길을 벗어나 다시 낙엽길로 이어진다. 5분 뒤 경주김씨묘. 정면으로 치고 오르면 바로 주능선. 들머리에서 70분.
1000m 이상의 고지라 아직 눈이 남아있다. 심한 곳은 무릎이 빠질 정도다. 오른쪽으로 향한다. 왼쪽은 원통재 방향. 외길 능선이라 길찾기 염려는 붙들어 매시길.

 이때부터 4개의 헬기장을 잇따라 지나면서 주변 조망을 감상한다. 등로는 선율처럼 부드러운데다 암팡진 비탈도 거의 없다. 5분 뒤 만나는 헬기장은 흔적만 있을 뿐 그냥 지나치기 쉽고 10분 뒤의 헬기장은 조망이 빼어나다. 뒤돌아 보면 정면에 백운산(白雲山)이 이름 그대로 흰 구름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하고 그 오른쪽으로 영취산 깃대봉 할미봉 서봉 남덕유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희미하게 확인된다. 왼쪽(남)으론 월경산 중재도 보인다. 정면 왼쪽의 괘관산도 구름에 가려있다.
백색천국 괘관산 정상으로 향하는 이창우 산행대장. 사진 왼쪽 눈길능선이 그 길이며 오른쪽 도로는 원통재로 오르는 37번 국도. 그 뒤로 백두대간 상의 희미한 월경산 능선이 보인다.


 한 차례 내려섰다 올라서면 세 번째 헬기장. 조망이 더 넓다. 신기하게도 들머리와 정상이 좌우에 각각 포진해 있다. 10여 분 뒤 네 번째 헬기장. 지도상으로 대략 1100m. 괘관산(1.6㎞)은 왼쪽, 천황봉(2.3㎞)은 오른쪽, 그 사이 잘록이가 하산길이다. 이때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눈꽃산행이 시작된다. 이렇게 35분. 이번엔 억새 위에 눈꽃이 만발했다. 태양열 안테나를 지나면 이내 갈림길. 불과 300m 거리의 왼쪽 괘관산을 다녀온 후 다시 오른쪽 천황봉으로 간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좌우 발밑이 모두 낭떠러지라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

 산죽에 이은 암릉길로 제법 만만찮다. 눈이 얼어 있는데다 좌우 발밑이 낭떠러지이기 때문이다. 정상석 앞에선 쾌청한 날일 경우 남덕유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과 용추계곡 쪽의 황석 거망 금원 기백산이 훤히 보인다지만 뿌연 운무 탓에 실체조차 확인못해 안타깝다.
천황봉 정상 직전.
천황봉 정상. 주변에는 10여 기의 공덕탑이 세워져 있다.

 다시 원점인 갈림길. 이번에 천황봉(1228m)으로 향한다. 내리막 빙판길이다. 10여 분 뒤 안부사거리. 직진하면 천황봉(0.5㎞), 오른쪽은 들머리 지소마을. 천황봉을 다녀온 후 하산한다. 15분이면 천황봉에 닿는다. 정상석 주변에는 10여 기의 신비스런 대형 돌탑이 서 있다. 바로 옆 흉물스런 산불초소가 경관을 망치고 있다.

이제 본격 하산. 13분 뒤 `식수 준비하는 곳'이라 적힌 팻말이 있지만 샘터는 없고 졸졸 흐르는 계류만 있을 뿐이다. 지소마을까진 1.75㎞. 조금 더 내려서면 계류와 나란히 달린다. 계류를 건널 즈음이면 유량이 제법 늘어 연이어 소(沼)가 나타난다. 숲까지 울창해 여름 계곡산행지로도 손색이 없겠다.

산행은 이제 막바지. 낙엽송 숲길과 사방댐을 잇따라 지나면 `괘관산 등산안내도'가 서 있는 지소마을에 닿는다. 안부사거리에서 55분 걸린다.

# 떠나기전에
- 취재팀 지소마을서 원점회귀코스 개척   
 
산의 고장 함양에서 괘관산은 명함조차 내기 힘들다. 워낙 내로라하는 산들이 지천으로 터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북쪽 맨 끝단 남덕유에서 남으로 장수군과의 경계를 따라 서봉 할미봉 깃대봉 백운산 월경산 등 백두대간의 봉우리가 이어지고, 남쪽에는 천왕봉을 중심으로 영신봉 촛대봉 연하봉 제석봉 중봉 하봉 등 지리산 주능선이 내달린다. 거창군과 인접한 북동쪽에는 월봉산을 거쳐 용추계곡을 따라 황석 거망, 금원 기백이 말발굽 모양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밖에 지리산 주능선이 가장 잘 조망된다는 금대산과 삼봉산 삼정산에도 산꾼들의 발걸음이 비교적 잦다.

 함양군의 가운데에 위치한 괘관산 산행은 지금까지 백전면과 서하면의 경계인, 1001번 지방도 상의 원통재에서 시작해 거연정이 위치한 화림동계곡으로 하산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가이드산악회가 주로 애용한 코스였다. 취재팀은 워낙 오지라 군내버스도 없는 들머리 지소마을로 접근,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게 원점회귀 코스를 만들었다.

괘관산 정보 하나. 함양군은 병곡면 광평리 괘관산 일대 184㏊ 면적에 생태숲 조성을 추진키로 했다 한다. 수 년 후면 또 하나의 볼거리로 자리매김할 듯하다. 산행시 유의점 하나. 원산목장 출입문을 통과한 경우 반드시 문을 잠그자. 흑염소 탈출을 막기 위함이라고 주인이 신신당부했다.

맛집 하나 소개한다. 흑돼지 삼겹살로 유명한 읍민각(055-963-6262). 함양읍 함양시장 내에 위치해 있다. 함양군청에서 차로 2~3분 거리. 일제강점기땐 공회당, 극장으로 이용된 자리다.

일교차가 심한 함양서 키운 흑돼지 생고기라 육질이 단단하고 한 눈에 봐도 선홍색으로 싱싱하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럽다. 돼지고기와 궁합이 맞다는 초피(경상도말로 제피)장아찌와 말린 파래를 막장에 버무린 신기장아치 등 밑반찬이 독특하고, 된장찌개 대신 들깨를 특히 많이 갈아넣은 시래깃국도 일품이다. 그릇 또한 공방에서 주문한 분청이라 운치도 있다.


# 교통편 - 부산서 대중교통 이용땐 당일치기 불가능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전·통영 고속도로~88고속도로 함양IC~함양~백전 함양 직진~함양군청 지나~백전 병곡 상림 우회전~서하 병곡 백전 좌회전~원산마을 방향 우회전~옥계저수지 지나~원산마을 지나~원산교~지소교~병곡면 지소마을 민재여울목 산장 옆 공터에 주차하면 된다. 100% 원점회귀. 함양의 자랑 상림을 경유하기 때문에 시간이 날 경우 잠시 들러봐도 좋을 듯하다.
 대중교통편은 하루 세차례 있지만 부산서 출발할 경우 시간이 맞지 않아 당일치기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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