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내륙 거창의 산들은 부드러우면서 힘이 넘친다. 금원산에서 바라본 건너편의 현성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에 걸쳐 있는 금원산(1353m)은 지리산 대성골과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분단의 아픈 현실을 간직한 현대사 비운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중 국군 토벌대와 파르티잔 양측의 최후 격전지가 지리산 대성골이라면 덕유산에 집결한 500여 명의 남부군이 지리산으로 가는 길에 들러 계곡에서 목욕을 한 곳이 바로 금원산이다.

 물론 차이는 분명히 있다. 대성골이 피비린내 나는 전장(戰場)이었다면 그래도 금원산은 분명 파르티잔의 일시적 휴식공간이었던 셈. 바로 그곳이 금원산이 자랑하는 유안청계곡. 유안청폭포를 비롯, 소와 담이 주변 숲과 어우러져 `거창 제1의 계곡'으로 손꼽힌다.

 영화 `남부군'에서 수백 명의 파르티잔이 남녀 구분없이 알몸으로 목욕하던 장면이 바로 유안청계곡이라고 하면 `아!'하며 새삼 그 장면을 떠올리는 산꾼들이 많을 것이다.

40여 년이 지난 1993년 금원산에는 자연휴양림이 들어섰다. 그리고 유안청계곡은 등산로의 일부로 새롭게 정비돼 만인에게 개방됐다. 비록 파르티잔의 흔적은 오간데 없지만 산꾼들은 계곡을 보며 현대사의 아픔을 되새긴다.

흔히 자연휴양림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산행팀도 가섭사지 마애삼존불 등 볼거리가 많은 지재미골로 올라 ‘역사의 현장' 유안청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했다.

 물론 함양의 용추폭포에서 기백산을 거쳐 금원산을 오르는 짧은 코스도 있지만, 이 코스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볼거리가 없어 `금원·기백`을 올랐다는 기록만 안겨줄 뿐이다.

산행은 금원산 자연휴양림 안내도(매점)~문바위~가섭암지 마애삼존불~지재마을(민가)~임도~지능선~주능선~전망대~금원산 정상~헬기장~돌탑봉우리(1315m봉)~전망대~임도~유안청폭포~자운폭포~복합산막 입구~매점 순. 5시간 정도 걸린다. 산길이 평탄한데다 이정표도 잘 정비돼 있다.


매점 앞 휴양림 안내도 앞에서 `마애삼존불상 문바위'라 적힌 팻말이 가리키는 우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수정같이 맑은 계곡을 지나면 곧 문바위 갈림길. 정면에 문바위가 보이고 `금원산 6.5㎞, 마애삼존불, 현성산'은 오른쪽 방향.
등산로 초입 계곡을 건넌다.

잠시 문바위를 보고 가자. 지재미골 입구에 서 있어 문바위라 명명됐다. 높이 20m, 너비 15m, 규모로 국내에서 단일바위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저 보기만 해도 입이 쩍 벌어진다.

국내에서 단일바위로는 가장 크다는 문바위.

가섭사지 마애삼존불상.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 마애삼존불 방향으로 간다. 이제야 본격 산길이다. 산죽길을 에돌면 아름드리 이상의 엄청 큰 소나무가 기다린다. 왼쪽엔 문바위 뒷모습이 보인다. 저 높은 곳에 누군가 올라가 돌탑을 세워놨다. 올라가는 것은 차치하고 돌은 어떻게 운반했을까.

이내 가섭암 터. 마애삼존불상 관리건물 뒤쪽으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바위굴이 있고, 그 중 안쪽 남향 바위에 삼존불이 새겨져 있다. 보물 제530호.

이제 편안하게 오솔길을 걷는다. 나무다리를 건너면 민가를 만난다. 지재마을이다. 밭이 잘 일궈져 있고 양지바른 곳에 진돗개가 졸고 있다. 10분 뒤 삼거리. 직진한다. 비로소 정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정상까지는 3.2㎞. 잇단 무덤을 지나면 임도. 오른쪽으로 50m,쯤 가다 다시 산길로 올라선다.

8분 뒤 지능선에 닿는다. 정면엔 현성산 정상(955m). 멀리서 봐도 단번에 화강암산임을 알 수 있다. 정상 왼쪽으로 서문가바위와 필봉이 이어진다. 이름이 재밌다 서문가바위. 흔히 임진왜란때 한 여인과 서(徐) 씨, 문(文) 씨가 피란을 왔다가 아이를 이곳 바위 옆에서 출산했다. 아이 아빠가 누군인지 정확히 몰라 이렇게 명명됐다는 설이 있지만 실은 고려말 공민왕때 노국대장공주와 함께 온 원나온 시종의 성이 서문(西門) 씨였다. 그 시종이 당시 이곳 안의땅을 식읍으로 받았다. 그러다 1914년 안의가 거창으로 편입됐다. 하지만 이후 호사가들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엉뚱하게 와전되면서 전혀 근거없는 `서문가바위'로 돼버린 것이다.

지능선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낙엽과 솔가리가 한데 얽힌 푹신푹신한 양탄자길과 바윗길을 번갈아 20분 정도 오르면 주능선. 정상까지 2.7㎞. 이정표 뒤로 남덕유산 삿갓봉 무룡산 백암봉 등 백두대간 능선이 펼쳐진다.

이제 정상을 보며 능선길을 달린다. 10분 뒤 전망대. 왼쪽에 현성산과 오도산 비계산 별유산, 그 뒤로 가야산 단지봉 수도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에는 눈이 쌓여 있다.
              금원산 정상.

점점 경사가 급해지면서 곳곳에 밧줄이 매여져 있다. 능선마루에서의 경관은 빼어나지만 다소 무료하다. 이렇게 1시간30분 정도 걸으면 마침내 금원산 정상.

거창에서 출발했지만 정상은 함양군 땅이다. 정면에 돌탑 봉우리가 보이고 그 오른쪽 봉우리가 기백산이다. 기백산으로 뻗어나가는 산줄기를 보니 육중한 산세가 주는 장쾌함과 호방함이 뼈속까지 스며든다. 그 뒤로 거망산과 황석산이 이어지고 괘관산 백운산은 저 멀리 시야에 들어온다.
하산길에서 본 현성산.

하산은 왼쪽으로 내려선다. 헬기장을 지나 8분 뒤 돌탑 봉우리(1315봉)에 닿는다. 여기서 유안청폭포 방향으로 직진한다. 15분 뒤 전망대. 방금 올라왔던 왼쪽 능선길이 훤히 보인다. 좀 더 내려가면 오른쪽에 기백산 책바위가 또렷하다.
             유안청계곡의 와폭.
           
         유안청계곡 제1폭포.

다시 40여 분 내려오면 임도. 대각선으로 길을 건너 산길로 내려선다. 이제 `유안청폭포, 휴양림' 이정표를 보고 걷는다. 숲그늘 짙은 계곡을 따라 20분쯤 내려오면 유안청폭포. 90m, 정도의 비스듬한 일종의 와폭인 유안청폭포와 주변 경관을 보노라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폭포 끝단 쯤 폭포 감상을 위한 일종의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 자운폭포와 복합산막을 지나 20분이면 들머리인 매점 앞에 닿는다.

#떠나기전에 - 금원산 자연휴양림 통나무집 인상적

산꾼들 사이에서 금원산은 항상 기백산과 짝을 이뤄 언급된다. 같은 능선으로 연결돼 한번 산행으로 두 산을 함께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금원·기백'으로 불린다.

금원·기백에 비해 지명도는 떨어지지만 이웃 함양군에도 항상 붙어 다니는 산군이 있다. 바로 거망산(1245m)과 황석산(1235m)이다. 역시 한 능선으로 이어져 '거망·황석'으로 지칭된다.

이들 4개 산의 모산(母山)은 경남 거창 함양군과 전북 장수군에 걸쳐있는 남덕유산(1507m). 남덕유산에서 남동쪽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월봉산(1279m)을 거쳐 두개의 능선으로 나란히 갈린다. 거창쪽으로 금원산~기백산, 함양쪽으론 거망산~황석산이다. 결국 크게 보면 금원~기백~거망~황석산이 말발굽처럼 하나의 능선으로 연결돼 있는 셈. 이들 산은 모두 1000m가 넘는 고봉이어서 조망이 탁월한데다 산세 또한 하나같이 빼어나 부산을 비롯한 전국 산꾼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고 있다.

거창군의 금원산 자연휴양림과 함양군의 용추 자연휴양림이 이들 봉우리 사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각각 위치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아침 일찍 부산을 출발하면 금원산 기백산을 하루에 종주할 수 있다. 원점회귀 코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한걸음에 내달아야 한다.

금원산 자연휴양림을 찾아 동화에나 나옴직한 통나무집과 주변 경관을 보았을 때 모두들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날 출발해 아름다운 대자연을 만끽한 후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했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다.


TV 냉장고 가스레인지 등을 갖춘 콘도식 복합산막(사진)과 낭만적인 산꾼들을 위한 방갈로식 산막, 그리고 숲속수련장과 숲속야영장을 갖춰 입맛대로 선택할 수 있다. 산행을 하지 않더라도 하루 이틀 이 곳을 찾아 도심 속의 때를 말끔히 씻어내기에 최적의 장소로 추천하고 싶다. 콘도식 산막의 경우 5명이 하룻밤을 묵을 경우 사용료는 5만원. (055)943-0340

# 교통편 - 대전통영 고속도로 지곡 안의IC로 나와야

부산에서 거창 금원산 자연휴양림까지는 시외버스를 탄 후 거창읍에서 군내버스를 갈아타고 위천면에서 택시를 타는 방법이 가장 편리하다.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거창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부터 20~40분마다 있다. 1만1800원. 2시간40분 정도 걸린다.

거창시외버스터미널에서 위천면 방면으로 가는 군내버스(서흥여객)는 3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150원. 군내버스정류장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나와 왼쪽으로 가다 다리(중앙교)를 건너면 만나는 중앙시장 안에 있다. 10분 정도 걸린다.

위천면에서 휴양림까지는 택시(055-943-0300)가 편리하다. 거창읍에서 휴양림까지 바로 가는 택시(055-942-2080)도 있다..

위천면에서 거창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는 군내버스 막차는 오후 7시40분에 있다.

거창에서 부산 서부버스터미널행 시외버스는 30~4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막차는 오후 6시40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서진주 분기점~대전통영 고속도로~지곡·안의IC~좌회전 안의 거창 방면~마리삼거리 좌회전~위천 무주 방면~위천면 좌회전~금원산 자연휴양림 순. 수승대에서 5㎞ 정도 거리.
※교통편은 현지 사정상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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