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산 통도사 인근 경기식당

산채정식 더덕백반, 강산 두번 반 변해도 맛과 인심은 그대로

 

안주인 홍철수 할머니가 산채정식에 더덕구이가 추가된 상차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기식당과 통도사와의 중간쯤에서 본 경기식당. 허름했지만 지난해 새로 지었다.

같은 지점에서 고개만 돌리면 영축총림 통도사 산문이 보인다.


음식맛의 비결인 고추장.

손수 담근 된장 고추장이 담겨 있는 항아리들.

손수 담근 된장.


겨울잠을 깬 곰이 좋아하는 나물이라 해서 일명 곰취라고도 불리는 곤달비를 다듬는 홍철수(맨우측) 할머니와 일하는 아주머니들.

곤달비.


곰취=곤달비.

곤달비 장아찌는 이 집의 최고 인기 반찬이다.


깔끔한 부엌.

건조시켜 저장하고 있는 나물들.


더덕구이.

먹음직스러운 산채정식과 더덕구이.

손수 더덕구이를 만들고 있는 홍철수 할머니.

완성된 더덕구이.




이 정도라면 정말 인연이라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삼신할매가 점지했을까 아니면 전생의 업보를 풀라는 것이었을까.

영축총림 통도사 산문에서도 빤히 보이는 산채정식 전문 경기식당.

첫 인연을 맺게 해준 이는 통도사 강주 혜남 스님. 스님은 일본 다이쇼대 박사과정을 마친 조계종의 대표적 학승. 수년 전 기획취재 때문에 절을 찾은 기자를 두고 스님은 그래도 멀리서 찾아온 손님이라며 손수 기자를 데리고 절 앞 조그만 식당을 찾았다. 당시 스님은 "집은 허름해도 더덕구이가 정말 맛있어"라고 말씀하시며 산채정식 대신 좀 더 비싼 더덕백반을 시켜주셨다.

두 번째 인연은 통도사에서 근무하는 양산시 문화유산해설사 아지매들 덕분에 이뤄졌다. 동행 취재 중 배꼽시계가 울리자 절 근처 산채비빔밥 잘하는 집이 있다며 기자를 안내한 곳이 바로 이곳 경기식당이다.

마지막 인연은 약간 뜻밖이었다. 통도 파인이스트CC에서 라운드 후 골프장 직원들에게 괜찮은 맛집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이구동성으로 이곳을 추천하는 것이 아닌가. '골프 후 비싼 고깃집'이라는 공식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쯤 되면 명불허전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집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엔 허름했는데 지난해 새로 지어 깔끔하고 산뜻하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식당을 크게 넓히면 인심이 그만큼 사라져 맛도 인심도 예전만치 못해 결국 손님이 줄어든다고.

그러한 걱정은 기우였다.  

나물을 손보던 안주인 홍철수(68) 할머니가 반갑게 맞이했다. 무슨 나물이냐고 물어보니 반찬으로 나갈테니 그때 가르쳐 주겠다며 활짝 웃었다.

경기식당의 대표 메뉴 산채정식. 찹쌀파전과 된장찌개를 중심으로 나물 등 반찬이 일순간 상을 가득 채운다. 얼핏 봐도 열댓 개는 넘는다. 도심에선 족히 5000원 이상은 받아야 될 두툼한 찹쌀파전은 서비스란다. 이렇게 고마울수가. 이 집을 찾는 모든 손님에게도 마찬가지란다.

새 집을 지으면 맛과 인심이 덜해진다는 말은 경기식당에는 해당되지 않는 듯했다.

더덕구이는 홍 할머니가 직접 갖고 들어왔다. 이제 뒷전에 물러날 때도 됐건만 더덕구이만은 아직도 홍 할머니 전담이다. 다른 사람이 더덕을 양념에 주무르면 제 맛이 나지 않아서란다. 석쇠에 올려 연탄불에 구웠다는 더덕구이는 음식이 입안에서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나물도 고유의 향을 잃지 않고 모두 입맛을 사로 잡는다. 젓가락을 어디다 둬야 할지 고민하자 홍 할머니가 이것 한번 먹어보라며 권한다.

 영판 깻잎을 닮았지만 맛은 쌉쌀하면서도 여운이 길게 남는다. 곤달비 장아찌라고 했다. 겨울잠을 깬 곰이 좋아하는 나물이라 해서 일명 곰취라고도 불리는 곤달비 장아찌는 산초 장아찌와 함께 이 집의 최고 명품 반찬. 손님들이 팔라고 아우성이지만 양이 적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추장아찌 마늘장아찌 취나물 도라지 죽순 언양미나리무침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찬이다. 대부분의 나물들은 20년 이상 대주는 곳이 있어 나라땅 최고의 재료라고 자부한단다.

국과 찌개 또한 일품이다. 된장 고추장 심지어 젓갈까지 직접 담그기 때문에 옛맛 그대로다. 특히 연로하신 분들이 좋아한다. 실제로 가게 옆 빈터에는 크고 작은 된장 고추장 간장이 가득 담긴 독이 모여 있다. 호박을 듬뿍 넣은 된장찌개는 어릴 적 먹던 어머니의 맛이었고, 국은 쌀뜨물에 된장을 푼 다음 무청시래기와 지난 봄 삶아 얼려 놓은 쑥을 넣어 향이 그윽하다.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았다.

경기도에서 시집을 와 정확히 27년째 산채정식을 만들고 있다는 홍 할머니는 요즘 무릎이 좋지 않다. 아들 부부가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직은 영 시원찮다며 더덕을 구우러 다시 주방으로 달려간다. 산채정식 7000원, 더덕백반 1만 원. (055)382-7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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