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올 겨울 특별한 스케줄이 없으면 온 가족이 함께 태백산 눈꽃산행을 한번 떠나 보시라. 확신컨대 후회는 없으리라.
혹자들은 부산서는 아주 먼, 그것도 해발고도가 1500m급인 국내 10위 고봉을 어떻게 산행 경험의 유무도 따지지 않고 권하는지 의문이 들 터이다.
한데 가능하다. 태백산은 해발에 비해 가파르거나 험하지 않은 데다 들머리인 당골광장의 해발이 무려 800m 정도여서 다리가 크게 불편하지 않다면 누구든 산행이 가능하다.

순백의 옷으로 갈이입은 태백산 천제단을 향해 오르는 전국의 산꾼들. 태백산은 이렇다 할 오름길이 없어 시나브로 정상에 닿는다.

도립공원인 태백산은 지금 순백의 옷으로 갈아입고 겨울 등산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특히 정상 부근의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과 어우러진 설화는 동화 속의 설경에 다름아니다.
무엇보다 태백산은 설경이 수놓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역사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갖추고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태곳적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을 비롯해 한국 명수 100선 중 으뜸인 용정, 기도처로 유명한 문수봉, 정상 부근의 주목 군락지, 단종비각, 단군성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산행은 매표소~당골광장~단군성전~반재~망경사 화장실 입구 유일사 갈림길~천제단·유일사 갈림길~장군단(장군봉)~주목 군락지~천제단(영봉)~단종비각~망경사·문수봉 갈림길~문수봉~당골·소문수봉 갈림길~제당골~당골광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30분 안팎. 빼어난 설경에 감탄하며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다 보면 시간이 화살처럼 빨리 간다는 사실에 유념하길.


들머리는 당골광장. 기운이 드세기로 유명한 당골은 예부터 당집이 유달리 많았다. 물론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여파로 대부분 담벽이 허물어졌지만.

당골광장에서 우측으로 발길을 옮긴다. 등로 입구엔 단군성전. 잠시 둘러본 후 본격 산길로 향한다. 예년과 달리 올 겨울엔 눈이 무척 많이 내려 주변이 온통 하얗다. 매년 겨울에만 40만 명이 다녀간다는 태백산인지라 등로는 말끔히 다져져 있지만 등로 좌우는 지팡이로 가늠해보니 대략 어른 무릎만큼 쌓여 있다. 등로 우측 당골계곡에는 한겨울인데도 유량이 풍부해 물소리만 들으면 여름으로 착각할 정도다.

20분쯤 뒤 ‘천제단 가는 길'이라 적힌 이정표를 지날 무렵 계곡 건너편 드높은 절벽 끄트머리에 남근석을 닮은 바위가 걸려있다. 총칭해 장군바위라 불린다.
세 번째 다리 직전 ‘반재 밑' 이정표(해발 1100m) 앞에선 반드시 아이젠을 착용하자. 스패츠는 선택사항. 다리만 건너면 곧바로 오름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천제단까지는 2.7㎞.
오래 전 호환(虎患)을 당한 화전민의 무덤인 호식총(虎食塚).

다리를 건너면 돌계단길. 5분 뒤 길 우측에 호식총(虎食塚). 오래 전 호환(虎患)을 당한 화전민의 무덤이다. 100년 전만 해도 태백산은 호랑이의 서식지로 유명했다. 인근에는 옹달샘이 하나 있다.
이번엔 환상적인 잣나무 숲을 지난다.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속을 걷는 기분이다. 이내 반재. 당골과 천제단까지의 중간 지점이라 반재란다. 주변에 원형 테이블이 있어 대개 여기서 식사를 한다.

왼쪽 천제단으로 향한다. 일순간 웃음꽃이 들려 온다. 알고보니 비료 포대를 이용한 그 유명한 엉덩이 썰매를 타는 구간이다. 40, 50대의 남녀 산꾼들이 동심으로 돌아가 ‘쌩'하며 내려온다. 기자도 빌려 타 보았다. 신이 났지만 정지하기가 어려워 혼이 났다. 이제 10시 방향으로 망경사와 그 위 능선 상에 천제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내 망경사 갈림길. 장군봉으로 가기 위해 우측 망경사 방향으로 향한다. 4분 뒤 망경사 화장실 입구에서 우측 유일사 쪽으로 오른다. 어차피 망경사는 장군봉~천제단~단종비각을 보고난 후 다시 만나기 때문에 잠시 미룰 뿐이다.
산길은 이때부터 좁아진다. 북사면이라 눈이 거의 녹지 않아 눈꽃터널을 이룬 백색천국이 펼쳐진다. 이쯤에서 대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눈을 이고 있는 희귀목인 아름드리 주목의 기품이 돋보인다.
         북사면길은 눈의 거의 녹지 않아 눈꽃터널을 이룬 백색천국이 펼쳐진다.

17분 뒤 갈림길. 우측 유일사 대신 좌측 천제단으로 향한다. 여기서부터 백두대간길. 태백산은 백두대간의 축인 금강산 설악산이 동해와 나란히 내달리다 국토의 중심부인 서남쪽으로 방향을 트는, 산세로 봐선 의미있는 지점이다.
여기서 장군봉까지의 구간이 태백산 주목의 백미이다. 영하의 날씨에 강풍과 폭설 속에서 견뎌야 하는 주목의 강인한 생명력은 생김새를 떠나 그 자체가 우리네 삶의 표본이다. 어린 주목의 보호를 위해 세운 대나무발도 폭설과 강풍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10여 분이면 최고봉인 장군봉(1567m)에 닿는다. 작은 천제단인 장군단이 있다. 여기서 다시 10여 분이면 마침내 영봉(1561m)인 천제단에 선다. 둘레 27m, 폭 8m, 높이 3m의 자연석으로 쌓은 20평 가량의 원형 돌제단이다. 신년이나 개천절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이를 위해서인지 천제단 인근은 엄청나게 넓고, 정상석 또한 기자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크다.
이제 망경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이내 단종비각. 영월로 유배와서 세상을 뜬 단종을 기리기 위해 망경사 박묵암 스님이 건립했다.
자장 율사가 창건한 신라 천년고찰 망경사 문수보살 석상이 저 멀리 맞은편 문수봉을 바라보고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본 문수봉.

자장 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망경사는 바로 코 앞. 입구에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지점(1470m)에서 물이 샘솟는다는 용정(龍井)이 있으며 주변에는 주목들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대웅전 앞에 서면 정면 저 멀리 둥그스름한 문수봉이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다.
망경사 입구의 용정. 해발 1470m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샘이다.

 망경사 박묵암 스님이 건립했다는 단종비각. 영월로 유배와서 세상을 뜬 단종의 혼이 백마를 타고 이곳에 와서 태백산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태백산 천제단. 신년이나 개천절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태백산 영봉인 천제단 옆에는 대형 정상석이 서 있다.

이제 문수봉으로 향한다. 원래 문수봉은 천제단에서 백두대간길로 부쇠봉을 거쳐가는 것이 정식 코스이지만 시간 제약으로 단종비각 바로 밑 갈림길에서 산허리를 타고 간다. 부침이 거의 없는 부드러운 눈길이다. 중간에 부쇠봉에서 문수봉으로 내려오는 길과 당골광장으로 내려서는 길을 잇따라 만나지만 오로지 문수봉 팻말만 보고 직진한다. 문수봉에 근접할수록 껍질이 수평으로 벗겨져 있는 자작나무를 많이 만난다.
정상 일대의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눈덮인 고사목의 자태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문수머리'로 불리는 문수봉 정상.

마침내 문수봉. 망경사 입구에서 넉넉잡아 40분 걸린다. ‘문수머리'로 불리는 정상에는 신심 깊은 한 처사가 세웠다는 2기의 대형 돌탑과 밀양 만어사 인근 종석너덜을 연상시키는 너덜 사이에 나무를 깎아 만든 정상목이 서 있다.
본격 하산길. 직진한다. 5분 뒤 소문수봉 갈림길. 왼쪽 당골광장 방향으로 내려선다. 40m쯤 길게 늘어선 병풍바위와 샘터를 지나 제당골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10분 뒤 당골광장에 닿는다. 문수산 정상에서 1시간쯤 걸린다.

# 떠나기전에 - 명물 '오궁썰매'용 비료포대, 성수기 외엔 당골서 준비를

통상 태백산 눈꽃산행의 풀코스는 유일사~망경사~장군봉~천제단~문수봉 코스가 일반적. 산행팀은 부산서 당일치기로 떠났기 때문에 당군성전 쪽 당골광장에서 문수봉을 거쳐 당골광장으로 하산했음을 밝혀둔다.

엉덩이를 대고 썰매타듯 내려오는 일명 '오궁썰매'용 비료포대는 눈축제 기간 등 성수기에는 산 속에서 팔지만 그 외 기간에는 당골 인근 가게에서 사야 한다.

아이젠은 태백산 눈꽃산행의 필수품. 스패츠는 선택사항. 가까운 등산용품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1만원부터 천차만별이다. 유의사항 하나. 아이젠을 차고 '오궁썰매'는 금물. 다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태백산 정상부의 천제단은 천왕단 장군단 하단으로 구성돼 있다. 흔히 천제단이라 불리는 곳은 정상석이 있는 영봉의 천왕단이고, 장군단은 북쪽의 장군봉에, 하단은 영봉에서 부쇠봉 가는 길 200m 쯤 되는 능선 상에 있다.

망경사에는 유독 살찐 고양이들이 많다. 한눈에 봐도 6~7마리는 돼 보인다. 겉모양은 집고양이지만 실제로는 야생 고양이다. 기도하러 온 신도들이 두고 간 음식을 훔쳐 먹어 살이 쪘단다. 망경사 한쪽 켠에는 매점이 있어 커피나 컵라면도 판매한다.

맛집 하나 소개한다. 당골광장 바로 아래 식당가 제일 안쪽에 위치한 성원식당(033-553-3579). 상황오리가 주메뉴이다.


태백산 약수에 유황오리와 상황버섯 황기 감초 등 한약재, 그리고 찹쌀 밤 대추 은행 등을 각목 보자기에 싸 압력솥에 각각 넣어 1시간 동안 찐 보양식이다. 최소 1시간 전에 전화로 주문해야 맛볼 수 있다. 4인용이며 3만5000원. 이곳은 특히 태백으로 전지훈련 오는 프로축구 농구 펜싱 육상 레슬링 핸드볼 선수들의 단골 식당이기도 하다.

#교통편 - 부산서 열차 이용 무박 2일 가능

열차를 이용, 무박 2일로 다녀올 수 있다. 부산역에서 금, 토요일 이틀만 밤 10시10분 출발, 태백시 통리역에 다음날 오전 4시31분에 도착한다. 2만4400원. 10명 이상 단체 10% 할인. 열차 도착시간에 맞춰 개인택시(033-552(553)-4747)가 대기 중이다. 당골까지 1만원 조금 넘는다.

통리역에선 다음날 오후 3시9분 출발, 부산역에는 밤 9시55분 도착한다. 오후 2시29분 출발 기차는 부전역에 오후 8시52분 도착한다. 2만2700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영주IC~봉화 영주 직진~영주 경북전문대 직진~단양 봉화~경찰서 봉화 이정표 지나자마자 가흥교 건너~봉화경찰서 시의회(로타리 좌회전)~가흥로~풍기 봉화~철길(굴다리) 지나~봉화~울진 봉화~울진 태백 봉화~울진 현동~울진 태백 봉화~울진 현동~울진 봉화 이정표 보고 자동차 전용도로 내려와 좌회전~현동 춘양 우회전~울진 현동~(옥류관 미니동물원)~태백 현동~울진 현동~울진 태백 현동~태백 울진~노루재터널~동해 태백 좌회전~넛재~태백~동해 태백 좌회전~강원도 태백시 구문소호~동점역 지나~태백산도립공원 석탄박물관~장성터널~영월 동해~태백산 도립공원 순.

글 사진=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산행대장=이창우


 

상주해수욕장 바캉스 겸하면 이색 산행 제격

8부 능선 주변 기암·암봉, 수석 전시장 방불
상사바위선 한려수도, 하산길엔 보리암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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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에서 바라본 초승달 모양의 상주해수욕장. 산행 들머리인 금산주차장에서 상주해수욕장까지는 정확히 2㎞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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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인 금산주차장에서 올려다본 금산의 주능선. 가운데 가장 높은 암봉이 상사바위이다.

 ※산행 순서를 시간대별로 편집. 기사는 그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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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주능선까지의 등로는 끊임없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왼쪽은 오르막의 끝. 쌍홍문이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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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홍문에 오르기 전 왼쪽의 사선대(四仙臺). 동서남북에 흩어져 있던 네 신선이 모여 놀았다는 뾰족 암봉이다. 자세히 보면 네 조각의 기암이 하나의 암봉을 이루고 있다. 우측은 늘 푸른 덩굴식물인 이끼 낀 송악의 자태가 장관인 장군암. 금산의 첫 관문인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이라 하여 일명 수문장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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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거대한 자연조각품인 쌍굴. 흡사 해골 형상이지만 그래도 이름은 고상하게 지어야 하는 법. 무지개 형상의 홍예문이 두 개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국내외에서도 보기 드문 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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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홍문 안쪽에서 본 한려해상 국립공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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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홍문 안쪽에서 본 다른 풍광(왼쪽). 우측은 쌍홍문 입구의 작은 구멍에 돈이나 동전을 던지고 즐겨워하는 관광객들. 돈이나 동전이 구멍에 들어가면 소원성취한다는 설이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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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의상대사 등 고승대덕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던 하트 모양의 흔적이 남아있는 좌선대. 실제로 확인 가능하다. 그 뒤로 펼쳐지는 한려해상 국립공원 내의 섬들의 풍광이 기가 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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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각도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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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석봉에서 바라본 초승달 모양의 상주해수욕장과 상사바위(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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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이서 본 남해안 최대 규모인 상주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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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도중 바라본 금산 보리암(왼쪽). 앉은 터가 절묘하다. 우측은 금산 내 위치한 금산산장과 산장 우측 뒤 돼지바위(일명 저두암). 멀리서 보면 짝짓기를 하는 형상이다. 그 우측엔 코의 윤곽이 뚜렷한 코끼리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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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부터 봉수대였던 정상. 봉수대가 복원돼 있다. 조망이 넓고 아름다워 망대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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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대를 내려오면 정면에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이란 글이 음각된 버선모양의 바위가 보인다. 문장암이다. 조선시대 대학자 주세붕의 솜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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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최고의 전망대인 상사바위에서 내려다본 상주해수욕장. 상사바위는 주인마님과 머슴의 애틋한 사연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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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보문암, 양양 낙산사, 여수 향일암과 함께 국내 4대 관음성지로 알려진 금산 보리암 내 해수관음상. 뒤로 보이는 암봉은 대장봉이다.



"여름철이라 계곡에만 집착하지 말고 산행 후 아주 손쉽게 해수욕도 겸할 수 있는 산은 어디 없나요. 뒤풀이로 백사장에서 젊음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그런 산행지 말이에요. 가끔씩은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젊은 독자의 애정어린 전화였다. 물론 듣는 순간 적당한 산이 떠올랐다. 바로 남해 금산이다. 기실 금산은 평소대로라면 '근교산 시리즈'에 싣기에는 약간은 머뭇거려지는 산이다. '금산 38경'이라 불리는 각양각색의 기암괴석이 8부 능선부터 절경을 이루고 있고 한려수도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조망을 지닌 훌륭한 산이긴 하다. 하지만 무미건조한 오름길과 그 길을 다시 내려와야 하는 지형적 취약성 때문에 산행이라는 측면에서 정통 산꾼들의 눈길을 끌기에는 2% 부족하다. 올 여름엔 상황이 좀 달라졌다. 튀는 독자의 전화로 이른바 '바다와 함께 하는 산'이라는 테마로 당당하게 거듭난 것이다.


사실 금산은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지대로 산 자체가 도 기념물로 지정된 귀하신 몸이다.

해발은 701m. 위압감을 느낄 수 없는 고만고만한 높이지만 해발 제로에서 시작되는 섬의 산이 그렇듯 외형은 훨씬 웅장해 보인다.

원래 이름은 보타산. 그 뒤 신라 고승 원효대사가 찾았을 때 갑자기 서광이 비쳐 보광산이라 불렀다. 금산으로 바꿔 부른 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장군이다. 고려말 창업의 뜻을 품고 전국 명산을 찾아 다니며 백일기도를 드리던 그는 금산에서 산신의 영험을 받았다. 그때 이성계는 자신이 왕이 되면 온 산을 비단으로 감싸주겠다고 맹세했다. 이후 왕이 된 그는 현실적으로 비단으로 온 산을 덮을 수 없음을 알고는 고민 끝에 산 이름에 '비단 금(錦)'자를 써서 금산(錦山)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전설이지만 적어도 오래전부터 금산 일대가 기도 효험이 있는 기도처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금산은 강화 보문암, 양양 낙산사, 여수 향일암과 함께 국내 4대 관음성지로 알려진 보리암을 품고 있다.

산행은 상주면 금산 매표소~샘터~쌍홍문~일월봉~금산산장~좌선대~상사바위~헬기장~단군성전~문장암~정상(망대·봉수대·701m)~보리암 보광전~해수관음상~쌍홍문~금산 매표소 순. 3시간 정도 걸리지만 '금산 38경'을 찬찬히 둘러보려면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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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은 아주 간단하다. 매표소부터 쌍홍문까지는 줄곧 외길 오르막 돌길 내지 돌계단길이다. 쌍홍문은 대략 8부 능선. 55분 남짓 걸린다. 다행히 숲이 울창해 땡볕은 피할 수 있다. 여기서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산재한 기암괴석과 한려수도의 그림 같은 조망을 감상한 후 보리암을 지나 다시 쌍홍문을 거쳐 왔던 길로 하산한다.

매표소에서 8, 9분 뒤 수정같이 맑고 시원한 지계곡을 한 번 건너고, 정상까지 딱 절반인 1.15㎞ 지점에 샘터와 화장실이 있다. 샘터를 지나면서 쌍홍문까지 산길은 점차 가팔라진다.

15분 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거대한 자연조각품인 쌍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쌍홍문이다. 흡사 해골 형상이지만 그래도 이름은 고상하게 지어야 하는 법. 무지개 형상의 홍예문이 두 개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국내외에서도 보기 드문 절경이다.

이때부터 '금산 38경'의 기암괴석을 찾아다니는 이른바 기암 기행이 시작된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사무소는 접근 가능하거나 등로에서 손쉽게 조망되는 대부분의 기암이나 암봉 앞에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쌍홍문에 오르기 전 왼쪽의 사선대(四仙臺). 동서남북에 흩어져 있던 네 신선이 모여 놀았다는 뾰족 암봉이다. 자세히 보면 네 조각의 기암이 하나의 암봉을 이루고 있다. 이는 약간 위 난간이 세워진 계단 입구에서 보면 더 확실하다. 쌍홍문 입구 왼쪽에는 늘 푸른 덩굴식물인 이끼 낀 송악의 자태가 장관인 장군암이 있다. 금산의 첫 관문인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이라 하여 일명 수문장이라고도 한다. 이곳에 서면 비로소 한려수도의 올망조망 모여있는 다도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제 사바세계를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일명 해탈문이라 불리는 쌍홍문을 통과한다. 굴 안에서 보는 비단결과 같은 숲과 바다와 하늘이 한 편의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곧 갈림길. 왼쪽 단군성전, 오른쪽은 보리암. 어느 곳으로 가도 상관 없으나 산행팀은 단군성전 방향으로 가 보리암을 마지막으로 보고 다시 이곳으로 원점회귀한다.

두 개의 바위가 층암 절벽을 이뤄 가까이서 보면 '날 일(日)' 자, 멀리서 보면 '달 월(月)' 자로 보인다는 일월봉을 지나 왼쪽 제석봉에 들렀다 나온다. 제석봉에 서면 방금 지나온 기암과 주변 형상을 크게 가늠할 수 있다. 왼쪽 보리암과 일월봉, 정면 초승달 모양의 상주해수욕장, 우측 뒤로 금산산장이 보인다.

이번엔 좌선대를 찾아 금산산장을 지난다. 산장 뒤로 짝짓기를 하는 형상인 돼지바위(일명 저두암)와 코의 윤곽이 뚜렷한 코끼리바위를 놓치지 말자. 좌선대는 등로 왼쪽에 있다. 원효, 의상대사 등 고승대덕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던 하트 모양의 흔적이 남아있다. 실제로 확인 가능하다.

다시 갈림길. 왼쪽 상사바위로 간다. 침목계단 직전 '추락주의'라 적힌 팻말 앞에 서면 서포 김만중의 유허지인 노도와 앵강만 건너 설흘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상사바위는 금산 최대의 전망대이자 규모나 면적에서도 최고를 자랑한다. 주인마님과 머슴의 애틋한 사연이 깃들어 있는 이곳에 서면 방금 지나온 좌선대 돼지바위 코끼리바위 제석봉 일월봉 사선대 보리암 금산 정상과 초승달 모양의 상주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단군성전으로 향한다. 헬기장을 지나면 사거리. 단군 할아버지를 모신 왼쪽의 단군성전을 잠시 둘러본 후 정상으로 오른다. 산죽길을 잠시 지나면 고려때부터 봉수대였던 정상. 봉수대가 복원돼 있다. 조망이 넓고 아름다워 망대라고도 부른다. 오를 땐 못봤지만 망대를 내려오면 정면에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이란 글이 음각된 버선모양의 바위가 보인다. 문장암이다. 조선시대 대학자 주세붕의 솜씨라고 한다. 주변에는 연보라 산수국이 지천이다.


보리암은 정상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7, 8분이면 닿는다. 보광전과 해수관음상, 가락국 허 왕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비보(裨補) 성격의 삼층석탑, 그리고 법당 뒤 층암절벽을 이룬 거대한 암봉인 대장봉을 감상한 후 쌍홍문을 거쳐 매표소로 향한다. 45분이면 주차장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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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면이나 풍광면에서 남해안 최고를 자랑하는 남해 상주해수욕장.

# 떠나기전에

들머리금산주차장서 백사장까지 불과 2㎞
도보로 20분…인근 미조항 갈치무침회 별미

금산매표소에서 상주해수욕장까지는 정확히 2㎞. 차로 달리면 불과 5분이면 닿고 걸어서도 내리막길이라 20분 정도면 충분하다.
동해안에 경포대, 부산에 해운대가 있다면 남해안에는 상주해수욕장을 대표 해수욕장으로 꼽는다. 활처럼 굽어진 2㎞ 정도의 해안선과 한없이 보드라운 모래, 그리고 울창한 송림이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호수같이 잔잔한 물결과 한참을 나가도 어른 허리춤도 안되는 얕은 수심은 자녀를 동반한 가족들이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수영복 대여점과 샤워실도 갖추고 있다. 해수욕장에서 출발하는 유람선도 있다.

금산 8, 9부 능선쯤 되는 지점에 금산산장이 있다. 좌선대 인근이다. 신라시대 비구니 절터였던 이곳에 7년 전 작고한 고 김월신 할머니가 50여 년 전부터 등산객을 맞았다. 지금은 친손자가 운영하고 있다. 금산은 남해에선 드물게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어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다. 보리암 기도객들도 자주 묵는다. 새벽 산행으로 배가 출출해진 사람들을 위해 산채 정식도 준비한다. 시래기 된장국이 일품이다. 6000원. 전통 쌀막걸리와 파전도 있다. 1박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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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항에 위치한 30년 전통의 공주식당의 별미 멸치회. 많은 식당 중 원조집이다.

상주해수욕장까지 왔다면 이웃한 남해의 어업 전진기지이자 아름다운 어항인 미조항을 찾아 갈치무침회를 맛보자. 30년 전통의 공주식당(055-867-4489)이 유명하다. 갈치회의 원조집이다. 남해수협 뒤편에 위치한 조그만 집이지만 남해를 찾는 전국의 관광객들이 유독 이 집만을 고집하는 것은 독특한 맛 때문이다. 2만 원(2인 기준). 갈치구이 갈치조림도 맛있다. 각각 2만 원(〃).

초행길에 '금산 38경'을 모두 찾아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요 등로에만 이정표와 안내판이 있을 뿐 모두를 알려주는 친절한 배려가 없기 때문이다. 가급적 사전에 인터넷 등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떠나면 도움이 될 듯하다.


# 교통편

터미널서 금산 주차장행 버스
승용차 이용땐 진교IC서 빠져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남해공용터미널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20분, 7시10분, 8시, 8시40분, 9시15분, 9시40분에 출발한다. 2시간20분 걸리고 1만100원. 터미널에서 금산 산행 들머리인 금산주차장행 버스는 오전 8시55분부터 50분~1시간 간격으로 있다. 1800원. 요즘과 같은 피서철에는 배차시간이 20~30분으로 준다고 한다.

금산주차장에서 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시45분, 4시55분, 5시45분, 6시15분에 있다. 남해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15분, 5시5분, 5시30분, 6시15분, 7시5분(막차)에 출발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진교IC~남해 서포 좌회전~남해 금남~남해 노량 좌회전~남해 19번 국도 좌회전~남해대교~상주 남해~미조 상주~(중간에 만나는 '금산 보리암' 이정표는 복곡저수지 매표소이므로 통과)~상주면~금산 주차장 순.

※대중교통편은 현지 사정상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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