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 동쪽에 위치한 선암사의 승선교와 강선루. 승선교 밑 계곡에서 승선교의 반월형 천장 아래 강선루가 들어올 때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산은 크게 바위산과 육산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기암괴석이나 천태만상의 암봉이 도도하게 고개를 쳐든 바위산이 패기넘치는 남성적이라면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게 산꾼을 감싸주는 육산에서는 모성애를 느낀다.

설악산 월악산 월출산 천관산 등이 바위산의 전형이라면 민족의 영산 지리산과 소백산 대운산 등은 언제나 편안히 다가갈 수 있게 가슴을 활짝 열고 있다.

사실 육산 산행은 바위산에 비해 약간 무료하다. 기복이나 산세의 변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남 순천 조계산은 전형적인 육산이지만 천년고찰을 두 개나 품고 있어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성 싶다. 서쪽 자락엔 승보사찰 송광사, 동쪽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손꼽히는 선암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송광사가 한국불교 최대 종파인 조계종의 대표적 총림이라면, 선암사는 두 번째 종파인 태고종의 본산으로 유일한 총림이다.

이렇듯 조계산은 품고 있는 절집의 유명세가 산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독특한 경우이다. 도립공원에 불과한 조계산의 연간 탐방객이 웬만한 국립공원의 배 이상인 사실만 보더라도 이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그렇다고 조계산이 그저 그런 산은 결코 아니다. 아름다운 계곡과 탁 트인 조망, 그리고 산세가 험하지 않고 평탄해 가족단위 산행지로 안성맞춤이다.

산행은 선암사 매표소~삼인당~선각당(기념품 가게)~대각암 입구~대각암 갈림길~작은 쉼터(절터)~큰 쉼터(절터)~조계산 정상 장군봉~장박골 삼거리~연산봉 사거리~연산봉(헬기장)~송광 굴목재~대피소~보리밥집~선암사 굴목재(큰굴목재)~비석삼거리~삼인당 순의 원점회귀 코스.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30분. 도중 산길이 곳곳에 열려 있어 체력에 맞게 하산할 수도 있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이내 천년고찰의 위용이 드러난다. 계곡을 따라 늘어선 아름드리 수목과 늘푸른 산죽. 이 길은 전국 최고의 명상로로 알려져 있다.

                       조계산으로 이어지는 선암사 진입로. 이 길은 전국 최고의 명상로로 알려져
                       있다
부도탑.
알 모양의 길쭉한 연못 삼인당.

등산로 입구의 마애여래입상.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


 삼나무 숲에 이어 승선교와 강선루를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알 모양의 길쭉한 연못 삼인당에 닿는다. 맞은편 기념품 가게인 선각당 우측 옆길로 오른다. 곧 갈림길. 오른쪽이 정상, 왼쪽이 송광사로 가는 선암사 굴목재 방향이다.

150m쯤 가면 대각암 입구. 아름드리 삼나무가 숲을 이루며 키 자랑을 하고 있다. 계단을 오른다. 길 왼쪽 마애여래입상을 보고 오르면 앞이 탁 트인 대각암 삼거리. 정면에 대각암, 산행팀은 왼쪽 산죽길로 향한다. 100m쯤 뒤 다시 갈림길. 왼쪽은 비로암, 정상은 오른쪽 방향. 여기까지만 제대로 찾으면 이후부턴 ‘누워서 떡먹기’.
등산로는 대나무 숲을 지나 서서히 능선 사면으로 붙는다. 부드러운 흙길이며 경사가 심한 곳에는 침목계단을 조성해놨다.

20분 뒤 쉼터. 정면의 석축은 옛 절터로 추정된다. 이후 두 번의 너덜을 지나면 더 넓은 쉼터에 닿는다. 작은 돌담과 깨진 기와조각이 주변에 널려 있다. 정면 광양 백운산을 축으로 왼쪽에 지리산 천왕봉과 반야봉 노고단, 오른쪽에 억불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후 산길은 두 갈래. 왼쪽은 밧줄이 걸린 급경사길, 오른쪽은 계단길. 두 길 사이 나무 밑둥치에 작은 샘터가 눈길을 끈다. 200m쯤 뒤 두 길은 만나므로 어느 길을 택해도 상관없다.

정상은 쉼터에서 25분 뒤. 매끄러운 차돌에 `장군봉 884m'라고 음각된 정상석이 서 있다. 작지만 위엄있다. 상사호가 보이고 그 뒤로 연봉들이 펼쳐진 가운데 순천만이 구름 속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하다. 북으로는 호남고속도로가 한 일 자로 내달린다.

하산은 오른쪽 장박골 방향으로 내려선다. 크게 보면 반시계 방향으로 능선길을 따라가는 셈이다. 왼쪽은 조계산의 유일한 바위인 배바위를 거쳐 작은 굴목재로 가는 길이다.

속세는 이제 봄이 왔지만 산중에는 아직도 잿빛. 주변 곳곳에 군락을 이룬 늘푸른 산죽이 없다면 영락없는 봄 속의 삭막한 산이다. 산죽이 만들어 놓은 미로같은 길을 걷는 재미가 일품이다.

산아래 사바세계엔 봄이 왔지만 산중은 아직 겨울이다.

조계산은 바위 하나 찾아보기 힘든 전형적인 육산이다.


부드러운 능선의 조계산.

부드러운 산길은 산행 내내 이어진다.

 
이렇게 50분쯤 걸으면 장박골 삼거리. 이제 등로는 반시계 방향으로 완전히 돌아 왼쪽으로 장군봉과 상사호, 그리고 방금 지나온 능선길이 선명하게 확인된다.


직진한다. 35분 뒤 연산봉 사거리를 지나면 이내 연산봉(851m). 정상이 헬기장이다. 조망은 주봉인 장군봉보다 더 장쾌하다. 헬기장 반대편인 남서쪽으로 내려선다.

이번엔 완전한 낙엽길. 봄 속의 가을이다. 산꾼들이 많이 다녀 등로만 매끄러울 뿐 주변엔 온통 낙엽 천지다.

25분 뒤 송광 굴목재. 오른쪽 송광사 2.5㎞, 직진하면 천연기념물 쌍향수가 있는 천자암 1.7㎞, 왼쪽 4㎞ 지점에 선암사가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선암사 방향으로 간다. 주변에 노란 생강나무꽃이 시선을 붙잡는다.

 계곡물을 건너 대피소를 지나면 10분 뒤 그 유명한 보리밥집.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고 나무 그늘 아래 10여 개의 평상이 놓여 있다.

보리밥집을 지나면 만나는 굴목다리. 이 다리를 건너면 조계산 등로 중 산꾼들의 발길이 가장 잦은 선암산 굴목재를 만난다.

 이제 산행은 막바지. 계곡을 가로지르는 굴목다리를 건너면 선암사 굴목재. 20분 정도의 계단 오르막길이라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선암사 굴목재는 조계산 등산로 중 산꾼들의 발길이 가장 잦은 곳이다. 송광사로 가는 길목이자 장군봉으로 단 번에 오르는 갈림길이기 때문이다.

이후 쭉쭉 뻗은 편백 숲과 야생화 단지, 그리고 비석삼거리를 잇따라 지나면 산행 출발지인 삼인당 앞에 다다른다. 선암사 굴목재에서 25분 걸린다.

그 유명한 선암사 누운 소나무. 너무나 유명해 정호승의 시 '선암사'에도 등장한다.
산아래 선암사 경내에는 매화가 만개해 있지만 조계산 산속은 아직 겨울이다.

◇ 떠나기전에 - 사계절 꽃있는 예쁜 절 선암사 빼먹지 말아야

 선암사는 국내 1000여개의 산사 중 아름답기로 손가락 안에 드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으레 있을 법한 국보급 문화재는 하나도 없지만 단청없는 전각과 색바랜 기왓장, 닳고 닳은 돌계단이 산사다운 고즈늑함을 대변한다. 또 1년 365일 꽃이 지지 않아 동백 토종매화 개나리 목련 벚꽃 영산홍 자산홍 등이 연중 꽃대궐을 이룬다. 선암사에 따르면 크고 작은 꽃밭에 80여 종의 조경식물이 자라고 있단다.

 이러니 선암사는 오래전부터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촬영지로 애용됐다.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와 '동승' 등 불교영화와 드라마 '상도' 등의 주옥같은 배경이 바로 선암사였던 것이다. 촬영지 선택에 까다롭기로 소문난 업계 관계자들의 안목을 만족시켰으니 보증수표임엔 틀림없을 듯하다.

 아름다움의 절정은 승선교(昇仙橋·보물 400호)와 강선루(降仙樓). '신선이 되어 오르는 다리'와 '신선들이 내려와 노니는 누각'. 승선교 아래 계곡에서 승선교의 반월형 천장 아래 강선루가 들어올 때의 그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라 해도 될 만큼 아름답기 그지없다.

'뒤깐'이라고 적힌 경내의 해우소도 눈길을 끈다. 400년 된 화장실로 지방문화재다. 화장실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아마 세계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400년 된 화장실인 '뒤깐'. 아마도 화장실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세계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유홍준 교수는 한 신문의 기고에서 "선암사에 유독 조선건축의 진면목이 많이 남아있는 것은 20세기 후반 전국의 모든 사찰들이 화려하게 중창될 때 선암사만은 조계종과 태고종의 소유권 분쟁과 적당한 가난으로 손을 대지 못했다. 한편으론 참으로 불행중 다행"이라고 적고 있다.

◇ 교통편 - 순천 시외·고속터미널서 시내버스 이용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순천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30분, 7시10분, 8시10분, 8시30분, 9시10분에 출발한다.  2시간40분 걸린다. 순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순천교통 1번 시내버스를 타면 선암사에 닿는다.

선암사에서 시외버스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4시45분, 5시20분, 5시35분, 6시30분, 7시, 7시30분, 8시에 출발한다.

순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행 버스는 오후 5시10분, 25분, 45분, 6시25분, 7시, 8시30분(막차)에 있다.

 만일 선암사에서 출발, 송광사로 하산했다면 택시(061-754-2000)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비싸다. 3만~3만5000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승주IC~우회전 승주 낙안민속마을 선암사 방향~낙안온천 낙안민속마을~삼거리~857번 지방도~선암사. 이정표는 잘 정비돼 있어 길 찾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태안사 기점 원점회귀-걷는 시간만 4시간
봉두산은 봉황머리, 앉은터 기가 막혀
발밑엔 낙엽, 머리위엔 단풍, 만추서정
산행 후 태안사 절구경만 해도 바쁘다 바빠

 

지금 봉두산을 찾으면 수북한 낙엽길과 함께 아직도 울긋불긋한 끝물 단풍을 볼 수 있다.


명산(名山)에 大刹(대찰)이라 했던가.

우리땅에는 대개 이름난 산의 명당 자리에 큰 절집이 자리잡고 있다. 비근한 예가 한국 불교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른바 5대 총림인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영축산 통도사, 덕숭산 수덕사, 백암산 백양사다. 가야산 백암산이 국립공원이고 조계산 덕숭산이 도립공원 그리고 영남알프스 산군 영축산도 두 말 하면 잔소리인 명산이 아니던가.

두륜산 대흥사, 모악산 금산사, 내변산 내소사, 속리산 법주사, 팔공산 동화사, 토함산 불국사, 오대산 월정사, 금정산 범어사 등도 예외가 아니다. 공주 계룡산은 동학사와 갑사를 양쪽에 품고 있다.    
   
그러나 명산대찰이란 요건을 갖추고 있는 데도 장삼이사들에게 한 곳만 알려져 있는 곳도 제법 있다. 원주 치악산 구룡사와 곡성 봉두산 태안사가 우선 떠오르는 바로 그곳이다. 전자는 절집이 치악산의 유명세에 묻혀 있고, 후자는 산이 아름다운 태안사에 가려 있다. 그렇다고 구룡사와 봉두산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는 절집과 산은 결코 아니다.

구룡사는 당나라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의상 대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펴기 위해 아홉 마리의 용을 몰아내고 지은 천년 고찰이며, 봉두산은 산세로 봐서 봉황의 머리에 해당되는 작지만 옹골찬 봉우리다.

이미 3년 전 치악산을 소개한 산행팀은 이번에는 전남 곡성으로 발걸음을 옮겨 봉두산을 찾았다.

곡성 죽곡면과 순천 황전면을 가르는 봉두산은 팔공산 기슭에 자리한 동화사와 마찬가지로 봉황과 오동나무의 전설이 내려온다. 풍수지리상으로 팔공산 동화사(桐華寺)는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대웅전이 봉황의 머리이며 절에서 맨 먼저 만나는 봉서루(鳳棲樓)가 꼬리, 봉서루 앞 커다란 바위 위 세 개의 둥근 돌이 봉황의 알을 의미한다.

봉두산의 경우 태안사를 품은 주변 산세가 오동나무 줄기 속처럼 아늑해서 예부터 '오동나무 동(桐)' 자를 써 '동리산(桐裏山)'이라 불렸다고 전해온다. 실제로 태안사 일주문 현판에는 '동리산 태안사'로 적혀 있다.    

일주문 현판에는 봉두산 대신 동리산 태안사라고 적혀 있다.
  
 봉두산(鳳頭山)은 봉황의 머리로 여겨진다. 그만큼 주변 산세와 앉은 터가 빼어나다는 것이다.

산행은 곡성 죽곡면 원달리 태안사 능파각~성기암 갈림길~외사리재~사거리(태안사갈림길)~외동골삼거리~전망대~봉두산(753m)~폐헬기장~북봉~폐헬기장~묘지~고치계곡·상한마을 갈림길~임도(고개)~등산안내판(컨테이너)~절재~태안사 순. 절 입구 등산안내도에 따라 한 바퀴 돌면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지만 산행팀은 봉두산 뒤 북봉을 돌아 크게 원점회귀를 하다보니 4시간 정도 걸렸다. 순천 쪽에선 북봉으로 다닌 흔적이 역력하지만 북봉에서 태안사로 가는 길은 묵어 길찾기가 힘들었다.



태안사로 이어지는 1.5㎞의 진입로는 아직 흙먼지 풀풀 날리는 옛길. 절 아래 주차하고 여유있게 걷고 싶었지만 시각은 이미 오전 11시30분을 향해 치닫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능파각 아래 화장실 옆 간이주차장에 주차하고 등산화를 조여맨다.

태안사로 이어지는 1.5㎞의 진입로는 아직 흙먼지 풀풀 날리는 옛길이라 운치있다.

산행은 태안사에서 풍광이 가장 빼어난 능파각(凌坡閣)을 지나며 시작된다. 능파각은 물이 흐르는 개울 위에 자연석으로 석축을 쌓고 지붕을 얹은 다리이자 누각. 동시에 속세를 벗어나 도량으로 들어서는 산문 역할도 한다.

능파각 주변은 곡성 태안사에서 가장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다른 각도에서 본 능파각.

 능파각을 건너면 수백년 된 아름드리 전나무와 소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숲길. 이 길을 따라 200m쯤 가면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이끼 낀 돌계단이 울창한 숲사이로 열려 있다. 입구엔 '봉두산 등산로'라 적힌 조그만 팻말이 보인다. 우측 너른길은 봉서암 가는 길이다.
산행 들머리. 돌계단으로 시작된다.

발밑엔 낙엽, 머리 위론 끝물 단풍이 마지막 빛을 발하며 만추의 서정을 느끼게 해주는 오솔길로 5분쯤 오르면 임도와 만난다. 잠시 후 길 좌측 바위 위에 흰색 페인트로 '←태안사' '봉두산 등산로·성기암'이라 적힌 기와 한 장이 놓여 있다. 그러고 보니 일주문을 통과해 경내에서 절집을 둘러보고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도 있는가 보다.

50m쯤 더 가면 곡각지점에서 산으로 올라서는 본격 들머리가 보이고, 임도를 계속 따라가면 성기암을 만난다.

산죽과 낙엽이 뒤엉킨 완경사 낙엽융단길을 10분쯤 오르면 사거리인 외사리재. 우측 곡성 죽곡면 원달리, 직진하면 순천 월등면 월룡리, 산행팀은 좌측 봉두산 방향으로 향한다.

곡성과 순천의 시군 경계인 이 길은 수북한 낙엽에 이따금씩 만나는 끝물 단풍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산죽길의 연속이다. 실제로 외사리재에서 27분 뒤에야 농짝만한 바위를 처음 만날 정도로 지형지물이 거의 없다. 여기에 정상까지 거의 외길이라 길찾기도 전혀 문제없다.

봉두산 산행은 거의 시종일간 낙엽융단길이 이어진다.

 도중 인상적인 지점은 외사리재에서 47분쯤 뒤 아주 너른 묘지와 여기서 6분 뒤 한 굽이 오르면 만나는 외동골 삼거리 정도다. 외동골 삼거리에는 어른 손바닥 크기의 코팅된 표지기가 걸려 있다. 산너머 순천 한울산악회 소속의 황전면장이 달아놓은 것이다. 봉두산은 태안사에서 오르기도 하지만 산너머 순천 황전면에서도 많이 올라오는가 보다. 입장료 1500원을 우선 절약할 수 있으니까.

이제 봉두산은 불과 400m 남았다. 3분쯤 길 좌측 전망대에서 서면 태안사와 방금 올라온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부담없이 올라왔지만 위에서 보니 능선의 굴곡이 꽤나 심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태안사 전경.
  
  정상 직전 전망대다운 전망대를 하나 만난다. 앞선 전망대는 태안사 쪽이지만 이번에 만나는 전망대는 순천 황전면이 내려다 보인다. 순천 쪽 들머리인 봉성마을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오는 도로와 광산으로 파헤쳐진 흉물스러운 모습도 보인다.

삼각점과 작은 정상석이 나란히 서 있는 정상은 앞선 전망대와 큰 차이가 없지만 향후 오를 북봉이 보인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


하산은 두 갈래길. 커다란 안내판엔 좌측 '태안사(3.2㎞) 상한', 우측 '태안사(3.5㎞) 원달'이라 적혀 있다. 좌측은 절재를 거쳐 작게 한 바퀴 도는 코스이며, 우측은 북봉을 거쳐 크게 원점회귀하는 여정이다. 산행팀은 우측 북봉을 향해 내려선다. 150m쯤은 급내리막길이지만 이후 완만해져 황홀한 낙엽길로 변한다. 정면으로 북봉이 보일 무렵, 대략 13분쯤 뒤 바위 두 개가 엉켜붙은 전망대를 만난다. 좌측으론 하산할 능선이, 우측 낮은 산줄기는 순천땅 봉성 가는 능선이다. 주변엔 그간 안 보이던 키작은 산죽도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빛바랜 노란 단풍 또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하산길의 황홀한 단풍 낙엽길.

 곧 갈림길. 봉성 가는 반듯한 우측길 대신 좁은 좌측길로 향하면 잡풀 우거진 폐헬기장에 닿는다. 맨 왼쪽 비교적 반듯한 길은 산허리를 타는 무덤 가는 길, 산행팀은 무덤 가는 길 바로 옆 풀섶을 헤치고 능선길을 개척한다.

7분쯤 뒤 둥그스름한 지점에 닿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제일 높아 북봉인 듯싶다. 지도에 표기돼 있지 않은 데다 봉두산의 북쪽에 위치해 산행팀이 그냥 북봉이라 명명한 것이다. 동시에 길찾기에 유의할 지점이다. 직진하면 상한봉(상한마을), 산행팀은 좌측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하산길 좌측으로 보이는 능선은 봉두산에서 절재 쪽으로 내려서는 산줄기다.

의외로 화려한 단풍이 발길을 붙잡는다. 하지만 여기서 절재까지는 길찾기에 상당히 유의해야 할 구간이어서 산행팀은 노란 안내리본을 촘촘하게 매어 놓았다.

폐헬기장을 지나 봉분이 약간 파헤쳐진 무덤 좌측으로 향한다. 100m쯤 뒤 갈림길. 우측으로 내려선다. 갑자기 급경사길로 돌변, 능선길이 아닌 것으로 보이나 서서히 낙엽 수북한 산죽길이 기다린다. 이후 상석이 없는 묘지를 지나자마자 사거리를 만난다. 좌측 고치리, 우측 상한마을, 산행팀은 직진한다. 5분이면 임도에 닿는다. 왼쪽으로 5분쯤 가면 등산안내판이 보인다.

목적지는 정면으로 보이는 능선의 고갯마루인 절재(1㎞)지만 오랫동안 산꾼들이 다니지 않아 길 흔적이 전혀 없다. 안내판 옆 물길, 다시말해 고치리계곡을 건너 우측으로 간다. 좌측으론 컨테이너가 보인다. 촘촘히 달아 놓은 노란 리본을 확인하자. 움푹 팬 길로 40m쯤 가면 또 움푹 팬 지계곡. 건너면 산죽밭 사이로 산길이 열려 있다. 입구를 찾기 어려워서 그렇지 이 길만 찾으면 30분이면 절재에 올라선다. 등산안내판도 서 있다.

이제부턴 일사천리로 하산한다. 태안사까지는 1.7㎞. 간혹 돌길이지만 유난히 울긋불긋한 끝물 단풍 덕에 발걸음이 가볍다. 25분이면 산을 벗어나고, 10분이면 능파각 아래 간이주차장에 닿는다.

 일주문을 지나면 만나는 태안사 부도밭.

태안산 삼층석탑. 작은 못 한가운데 있어 특히 눈길을 끈다.


◆ 떠나기 전에 - 석곡IC 인근 석곡면 소재지 돌실회관 uㅐ돼지숯불구이 일품   
 
태안사는 장삼이사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여행깨나 다녔다 하는 사람들의 뇌리에는 아름다운 사찰로 각인돼 있다. 매표소에서 능파각으로 이어지는 진입로는 여태 포장을 하지 않은 숲길이라 정감이 간다. 신라 경덕왕 때 당나라에서 공부한 혜철 선사가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문을 열면서 한때 송광사와 화엄사를 말사로 거느닐 정도로 사세가 컸다. 풍수지리의 원조 도선 국사도 이 절에서 혜철 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조선시대에는 세종의 둘째인 효령대군이 이곳 태안사를 원당으로 삼았다.

고려 때부턴 송광사의 위세에 눌려 위축됐으며 조선시대엔 쇠락의 길을 걷다 정유재란으로 일부 전각이 소실된 후 한국전쟁 때 일주문과 능파각을 제외하고 모두 불에 탔다. 그러다 제법 절다운 규모를 갖춘 것은 근래의 일이다.

능파각은 태안사의 얼굴이다. 능파란 계곡의 물굽이가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는 의미. 다리이자 누각인 능파각에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게 해 여름이면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 만추엔 단풍과 떨어지는 낙엽을 감상하는 명소로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능파각 인근에는 뜻밖에도 경찰충혼탑이 있다. 한국전쟁 때 곡성경찰들이 태안사에 임시본부를 설치, 인민군과 전투를 하다 48명이 전사했는데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매표소 인근에는 곡성이 고향인 민족시인 조태일시문학기념관도 있으니 들러보자. 조태일 시인은 태안사 대처승의 아들로 생전에 그는 '나의 시는 태안사에서 비롯됐고 태안사에서 끝이 난다'고 말했다 한다.

연탄불에 초벌구이한 후 숯불에 한번 더 굽는 것이 맛의 비결인 돼지숯불구이.
3년 숙성시킨 묵은지와 갓김치. 일품이다.
 
 맛집 한 곳 추천한다. 석곡면 소재지에 위치한 돌실회관(061-363-1457). 돼지숯불구이전문점이다. 호남고속도로 석곡IC에서 차로 2, 3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석곡은 광주로 가는 길의 중간기착지로, 이곳 식당 인근 석곡터미널 부근에서 드럼통 위에 돼지고기를 구워먹으며 허기를 채웠다고 전해온다. 석곡면에 유난히 숯불구이점이 많은 이유다. 그 중에서 가장 전통있고 맛있는 집이 돌실회관이다. 연탄 위에 초벌로 한 번 굽고 나서 숯불에 한 번 더 굽는 것이 맛의 비결. 3년 묵은 김치와 갓김치 등 밑반찬도 한결같이 맛깔스럽다. 1인분 150g 8000원. 석곡면에는 대중탕도 있어 목욕 후 식사를 하면 안성맞춤이다.


◆ 교통편 - 호남고속도로 석곡IC서 내려 구례 석곡 태안사 방향

부산에서 곡성행 시외버스는 없다. 인접한 순천으로 가서 곡성행 버스를 타야 하지만 이럴 경우 당일 치기는 불가능하다. 참고로 순천행 첫 차는 오전 6시30분이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석곡(구례)IC~구례 석곡 태안사(19㎞) 좌회전~구례 순창 옥과 좌회전~구례 압록~태안사 압록유원지 직진~죽곡면~구례 압록 18번~(태평삼거리에서)구례 압록 우회전~태안사 840번 지방도 우회전~순천 태안사 방향 좌회전~태안사 순.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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