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 전시장 같은 산세 '야', 확 트인 아름다운 조망 '호'

기암괴석 사이 가파른 오르막 진땀
산기슭 화마의 흔적에 무거운 발길
전망대 서면 사방은 명산 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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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풍광 보신적 있나요. 구름과 수직절벽 그리고 산그리메의 황홀한 조화가
              일품이다.바위와 산그리메와 뭉개구름이 절경인 가운데 이창우 산행대장이 영취산
              정상 직전 바위벽 아래 전망대에서 창녕 지역의 산세를 살피고 있다.

 
경남 북부에 위치한 창녕의 지형은 전형적인 동고서저(東高西低). 영남의 젖줄 낙동강이 서에서 남으로 굽이치는 탓에 서쪽에는 광활한 평야지대가, 동쪽에는 진산인 화왕산을 중심으로 관룡산 구현산 영취산(嶺鷲山)과 또 다른 영취산(靈鷲山) 병봉 종암산 덕암산 함박산이 능선으로 연결돼 있다.

군(郡) 전체로 봐선 산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평야지대를 제외한 동쪽 일부 지역으로 한정한다면 그래도 산의 밀집도가 꽤 높은 편이다.

창녕을 대표하는 배바우산악회 성창식씨는 "창녕지역에 산이 많은데도 전국의 많은 산꾼들이 진달래와 억새로 유명한 화왕산만을 기억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창녕 남쪽인 영산쪽의 산들 또한 화왕산에 버금가는 산세와 조망을 간직한 보석같은 산길이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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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머리에서 1시간 거리인 전망대 바위에 서면 향후 밟게 될 등로가 확인된다. 정면 맨 왼쪽 암봉이  
   영취산 정상, 그 뒤 능선 오른쪽 뾰족한 봉우리가 병봉(고깔봉), 제일 뒤 능선 우측 짤록이가
   보름고개, 그 오른쪽으로 종암 덕암 함박산이 펼쳐진다.


이번 주 산행지는 영산에서 출발, 부곡온천으로 하산하는 보석같은 영취산(靈鷲山)~병봉~종암산 코스.

전반부는 수석전시관을 방불케 하는 근육질의 기암괴석이 시종일관 장관을 이루고, 후반부는 언제 그랬냐는듯 부드러운 능선길이 기다린다. 낙동강의 도도한 물줄기와 주변 산들을 조망하는 확 트인 시야는 이번 산행의 보너스. 하산길에는 예부터 물좋기로 소문난 부곡온천에 들러 피로를 말끔히 씻을 수 있다.

아쉬운 점도 있다.

창녕은 지금 송이버섯이 한창이다. 울진 봉화 등 송이로 유명한 고장에 비해 맛과 향은 단연코 전국 최고라는 것이 미식가들의 평.

창녕에서 송이의 주산지는 화왕산과 관룡산 그리고 이번에 오를 영취산. 하지만 지금 영취산은 5년전 화마(火魔)가 할퀴고간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산꾼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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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전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흔적. 얼핏 고사목처럼 보이지만 불에 타 죽어가고 있다. 667봉
        주변이다.


산행 중 만난 한 군민은 "송이로 유명한 이 산이 결국 송이 때문에 이렇게 불에 탔다"고 전했다. 송이 재배지 입찰에 탈락한 농민이 홧김에 방화를 했다는 것.

끝없는 인간의 욕망이 아름다운 영취산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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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취산 정상에서 본 주변 산세. 맨 앞 능선 왼쪽 제일 높은 봉이 632봉이고 바로 뒤 봉우리가
     함박산이다.


산행은 영산면 보덕사 주차장~전망대 바위(632봉)~영취산~고 김한출 추모비~병봉(고깔봉)~임도~보름고개~잇단 철탑~종암산~함박산 갈림길~덕암산·부곡온천 갈림길~큰재~(약수터)~창녕광역상수도 저장시설~부곡온천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6시간 안팎. 만만찮은 된비알에 굴곡이 심한 암릉, 여기에다 산불 후 잡풀이 웃자라 예상보다 발걸음이 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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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보덕사 주차장. 30m쯤 오르면 길 왼쪽에 조그만 등산안내도가 서 있다. 들머리다. 곧 갈림길. 오른쪽은 보덕사 산령각. 결국 보덕사를 거쳐 올라도 등산로와 만나는 셈. 식수 보충도 가능하다.

산길은 좁다랗고 뚜렷한 외길이지만 아주 가팔라 땀깨나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30분쯤 뒤 시야가 트이면서 영산면과 중부내륙고속도로(옛 구마고속도로), 번개호 장척늪이 보인다.


다시 숲으로. 과거 산불의 흔적이 시작된다. 멀리서 보면 고사목 같지만 다가가면 몸뚱이만 화마에 그을린 채 초라하게 서 있다.

전망대 바위는 보덕사에서 1시간 뒤. 향후 밟게 될 봉우리가 거짓말처럼 모두 확인된다. 정면 암봉 중 맨 왼쪽이 영취산 상봉, 그 오른쪽 뒤 뾰족 봉우리가 병봉, 제일 뒤 능선 우측 짤록이가 보름고개, 그 오른쪽으로 종암 덕암 함박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전망대 끄트머리에 서면 영산지구전적비 영산만년교도 보인다. 반대쪽으론 화왕산과 배바위 관룡산, 그 우측 앞 또 다른 영취산이, 그 앞 능선으로 삼성산 구현산이 보인다.

본격 영취산으로 향한다. 이른 억새와 닭의장풀 오이풀이 눈에 띄는 가운데 산불 후 수반되는 잡풀을 힘겹게 헤치고 암릉을 오르내린다. 일렬로 늘어선 발밑의 돌무더기는 가야때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영축산성 흔적. 발길을 옮길 때마다 영취 종암 덕암산이 가까워짐을 느낀다. 그 뒤로 밀양 종남 덕대산도 확인된다. 영취산에 앞서 만나는 암봉은 에돌아간다. 멀리서 봤을 때 하나였지만 막상 품안에 들어서니 여러 개다. 중간에 잡풀숲도 지난다.

영취산 상봉(681.5m)은 전망대 바위에서 대략 1시간. 창녕읍쪽의 화왕산성과 함안으로 이어지는 낙동강 남지교, 함박산, 그 뒤로 마산 쪽의 천주산 작대산 등 원거리의 아름다운 산하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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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취산 정상(왼쪽)과 고 김한출 추모비. 13년 전 부산시의사회 소속 산악회 회원이었던 그가 불의의 사고로 이곳에서 유명을 달리하자 그의 부인이 세웠다.
   
 
하산은 왔던 길로 내려가 왼쪽 암릉으로 내려선다. 정면에 보이는 고깔 모양의 병봉으로 향한다. 화마의 상처가 더 크다. 30분 뒤 안타까운 사연의 '고 김한출 영전에'라고 적힌 비석을 만난다. 부산시의사회 산악회 회원인 그가 10년전 이곳에서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해 그의 부인이 세웠다. 험난한 암릉, 이곳에서 밧줄을 잡고 내려선다.

정상이 의외로 평평한 병봉은 추모비에서 50분 거리. 병봉 안부로 내려서는 길찾기가 애매모호하고 오르막 암릉길이 만만찮다. 유의하길.

하산길은 예상과 달리 수수하고 편안하다. 10분 정도면 화마의 흔적에서 벗어난다. 잇단 송이채취 가건물을 지나면 임도. 이후 갈 길은 두 가지. 임도 왼쪽에 바로 보이는 산길로 올라 능선을 타고 가는 방법이 하나요, 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걷다 보름고개에서 종암산으로 가는 길이 두 번째. 체력에 맞게 결정하자.

산행팀은 임도 오른쪽으로 25분쯤 간 뒤 왼쪽 산길로 올랐다. 길찾기 유의!

곧 보름고개. 첫 이정표다. 이때부터 전형적인 육산의 능선길. 외길인데다 '부곡온천 가는 길'이라 적힌 팻말이 있어 산행은 누워서 떡먹기. 대신 조망은 없다.

잇단 철탑을 지나면 종암산. '부곡온천 2.9㎞' 팻말이 적힌 지점에서 정면에 보이는 암봉이다. 정상석이 없어 그냥 스쳐 지나기 쉽다. 4분 뒤 갈림길. 왼쪽 부곡온천 덕암산 방향, 오른쪽 함박산 가는 길. 왼쪽으로 간다. 정면에 둥그스름한 덕암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이후 오른쪽에 온천단지가 숲 사이로 희끗희끗 보인다.

김씨묘를 지나면 또 갈림길. 직진하면 부곡온천, 왼쪽 덕암산(1.6㎞) 방향. 산행팀은 왼쪽 덕암산 방향으로 간 후 큰재에서 덕암산길을 버리고 오른쪽 부곡온천(1.2㎞), 약수터 방향으로 간다. 약수터는 주등산로에서 왼쪽으로 100m 거리에 위치해 있어 선택사항.

쉼터에 닿으면 산행은 사실상 끝. 창녕광역상수도 저장시설을 지나 힐튼모텔 간판이 보이는 사거리까지는 쉼터에서 18분 걸린다.

# 떠나기전에-날머리 부곡온천… 산행 피로 '싹'

산행 후 목욕은 필수. 해서, 날머리에 곧바로 온천이 기다리고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이번 영취산~병봉~종암산 코스는 하산하자마자 그 유명한 부곡온천이 기다린다.
메인 기사 말미에 덧붙이자면, 창녕광역상수도 저장시설에서 내려오면 사거리. 힐튼모텔과 동원장이 위치한 왼쪽으로 200m 정도 가면 우측에 고운호텔이 보인다. 부곡온천 원탕이다. 지난 1973년 이곳에서 처음 온천이 발견돼 지금의 대형 부곡온천단지가 형성됐다. 현재의 건물은 지난 96년 새로 지었다.

창녕에는 영취산이라는 이름이 둘 있다. 하나는 이번에 소개하는, ‘신령 영(靈)’ 자를 쓰는 영취산(靈鷲山·682m)이고 또 하나는 송이집산지인 옥천을 들머리로, ‘고개 영(嶺)’ 자를 쓰는 영취산(嶺鷲山·740m)이다.

후자는 큰고개를 넘지 않으면 접근이 불가능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자는 암봉, 후자는 육산이다. 후자인 영취산은 옥천저수지로 향할 때 정면에 보이는 봉우리 둘 중 오른쪽 봉우리다. 왼쪽은 관룡산이다.

창녕 영산면은 임진왜란 땐 의병운동이, 일제 강점기 땐 영남 최초의 독립운동 발생지였으며 한국전쟁 땐 낙동강 최후의 격전지로 우리나라 근현대 저항운동의 메카.

남산호국공원의 영산지구 전적비, 3·1운동 기념비, 임진왜란 호국충혼탑 등에서 그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호국공원 옆에는 홍예교로 아름다운 옛 다리로 손꼽히는 영산만년교(보물 제564호)가 있다. 옛날 남지나 칠원에서 영산으로 들어오던 관문이다.

만년교 인근에는 영산 연지가 있다. 영취산 주봉과 함박산이 보이는 연지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화재를 막기 위해 조성됐으며 조선 고종 때 지금의 크기로 확장됐다. 못내 5개의 인공섬이 있으며 그 중 한 섬에는 향미정이란 정자가 있다. 지금 연지 주변엔 목재덱이 설치돼 휴식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만년교에서 길을 따라 오르면 함박산약수터. 전국 약수터중 가장 역사가 오래됐으며 관광공사가 선정한 7대 약수 중 으뜸으로 손꼽힌다.
또 한 가지. 영산사람들 특히 연세가 많은 분들은 아직도 창녕 대신 영산사람임을 강조한다. 사연은 이렇다.

조선 태조 때만 해도 이곳은 창녕현, 영산현으로 각각 존재하다 인조 때 창녕현이 영산현으로 병합돼 이때부터 영산사람들은 영산이 창녕보다 큰 고을이라고 자부심을 가졌다. 하지만 지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번엔 영산이 창녕으로 통합돼 영산면으로 격하됐다. 경북 용궁군이 예천군으로 병합돼 지금은 용궁면으로 격하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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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편- 부산서 영산행 버스 1시간 간격 운행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영산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 8시10분, 9시20분, 10시20분에 출발한다. 5200원. 창녕시외버스 영산정류소에서 들머리 보덕사 주차장까지는 1.5㎞. 정류소 앞 택시(상시 대기)를 이용하면 4000원. 보덕사로 걸어서 갈 경우 승용차 경로를 참조하자.

날머리 창녕시외버스 부곡온천정류소(055-536-5008)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30분부터 1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막차는 오후 8시30분. 6000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영산·부곡IC~영산 5번 국도 좌회전~대구 창녕 방향 직진~영산정류소 방향 크게(135도) 우회전~우회전 하자마자 바로 영산정류소 뒷길로 진입~농협하나로마트 지나~'77문구 완구' '새싹어린이집' 간판 보이면 좌회전~영산초등 앞 우회전~KT 영산고객서비스 지나자마자 좌회전~달나라어린이집 방향 직진~영축사 지나~보덕사 주차장 순.

날머리 부곡온천에서 들머리 보덕사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선 부곡온천 정류소에서 30분마다 출발하는 영산행 버스를 타면 된다. 8분 걸리며 850원. 이곳에서 보덕사 주차장까지는 택시를 타면 된다. 4000원.

※대중교통편은 현지 사정상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청송 얼음골, 밀양 얼음골 못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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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봉에서 하산 도중 만나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송 얼음골 전경. 해발 62m의 거대한 인공폭포와 태극방향을 이루는 얼음골계곡 물길이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왼쪽 뒤 저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영덕 팔각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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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얼음골 약수터. 청송 얼음골 약수터. 여름철엔 온종일 물을 뜨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마시면 입안이 얼 정도로 아주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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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얼음골 약수터의 비밀이 숨겨진 너덜겅. 얼음골 약수터의 상류에 위치해 있다. 밀양 얼음골 위쪽에도 이같이 대규모의 너덜겅이 있다.


※다음은 시간대별로 편집한 시간임. 기사는 아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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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유원지 주차장에서 길을 건너 포장로 쪽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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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절벽 쪽으로 내려선다. 도중 만나는 하늘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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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도중 바라본 풍경. 들머리 팔각산장 주차장과 산행팀이 걸어온 길, 그리고 저 멀리 팔각산이 한 화면에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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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또 오르고. 땀이 비오듯, 등산복이 비에 젖은 것처럼 축축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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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에서 거의 탈진. 한참동안 쉬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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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봉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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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가 있는 해월봉 정상(왼쪽). 우측은 하산 도중 전망대에서 본 얼음골 인공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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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암릉길을 지나면(왼쪽) 얼음골계곡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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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봉 등산로 팻말을 지나(왼쪽) 만나는 얼음골 약수터에는 사시사철 유량이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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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얼음골 인공폭포. 겨울철 빙벽대회가 열리는 인공폭포. 같은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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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얼음골 약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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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얼음골 약수터의 비밀이 숨겨진 너덜겅. 얼음골 약수터의 상류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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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에서 군경계를 지나 영덕에 접어들면 옥계계곡(왼쪽)과 침수정(오른쪽)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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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계곡. 여름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룬다.



 열대야가 본격 시작된 여름. 가만히 앉아 있어도 쉴 새 없이 흐르는 땀방울. 찬물로 샤워를 해도 잠시뿐.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의 연속이다. 이쯤 되면 머릿속엔 찬바람이 쌩쌩 불어대는 한겨울이 그리워진다. 에어컨 바람 말고 대자연속의 시원한 찬바람이 부는 곳이 어디 없을까. 한여름속 겨울, 이한치열(以寒治熱)이 실제로 존재하는 그런 곳 말이다.

부울경 장삼이사들이야 대번 밀양 얼음골을 떠올릴 것이다. 산내면 남명리 천황산 기슭 해발 700m쯤에 위치한 신비의 골짜기 밀양 얼음골은 복더위에 얼음이 얼고 겨울에는 더운 김이 솟는다. 얼음골 입구에서 불과 1.2㎞ 지점에는 뭣이라도 삼킬 듯한 호박소와 오천평반석까지 위치해 있어 얼음골은 이래저래 여름철 최고의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경남 밀양에 얼음골이 있다면 경북 청송에도 얼음골이 있다. 주당들이야 '청송 얼음골 막걸리'를 본거지라며 익히 알고 있겠지만 일반인들에겐 사실 새로운 사실일 게다. 밀양 얼음골이 시례빙곡(詩禮氷谷)이라는 정식 이름을 갖고 천연기념물 제224호로 지정돼 있지만 청송 얼음골은 그 흔한 지방기념물로도 지정돼 있지 않아 어쩌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청송군 부동면 내룡리에 위치한 청송 얼음골은 해월봉 2부 능선 돌무더기 사이에서 찬바람과 함께 얼음이 맺히는 곳이다.

밀양 얼음골이 주차장에서 도보로 25분 정도 걸리고 정작 얼음이 어는 지점은 햇볕이 내리쬐는 데다 울타리를 쳐서 접근을 막고 있는 반면 청송 얼음골은 주차장에서 폭 20m의 계곡을 징검다리로 건너면 곧바로 만난다. 이곳에는 약수터 조성을 위해 굴을 만들어 찬바람이 쌩쌩 부는 가운데 약수를 뜰 수 있어 한여름이면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이 굴 위쪽에도 찬바람이 나와 많은 사람들이 한여름 피서지로 애용하고 있다.

청송 얼음골에서 930번 지방도를 타고 영덕과의 경계를 지나 5㎞쯤 떨어진 지점에는 옥계계곡이 있다. 영덕군 달산면 옥계리에 위치한 옥계계곡은 병풍처럼 둘러쳐진 기암괴석 아래로 이름 그대로 옥같이 맑고 투명한 계류가 흐르는 절승지. 청송 얼음골 물과 포항 죽장면 하옥리계곡수가 합류하는 이곳은 특히 주변 경관이 빼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 광해군 때 선비 손성을이 이처럼 빼어난 절경에 반해 옥계계곡에서 경관이 으뜸인 자리에 침수정이란 정자를 세워 '옥계37경'을 명명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온다.

이번 주 산행지는 청송 구리봉(595m)~해월봉(610m). 앞서 뜬금없이 옥계계곡과 청송 얼음골을 장황하게 늘어 놓은 이유는 들머리가 옥계계곡 인근이고 날머리가 청송 얼음골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두 봉우리는 인근에 우뚝 솟은 국립공원 주왕산과 팔각산 동대산 바데산의 명성에 가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이 점이 되레 때묻지 않은 청정 산길임을 뒷받침하는 보증수표이지 않을까.

산행은 영덕군 달산면 도전리 옥계유원지 팔각산장 주차장~옥계유원지 매표소(선경옥계 표지석)~송이채취 안내판~전망대~송이채취 움막~안부 사거리~김녕 김씨묘~541봉~잣나무숲~임도~경주 이씨묘~원구리 갈림길~구리봉~해월봉~돌탑봉~얼음골 전망대~목책~돌다리~얼음골 약수터. 걷는 시간만 3시간20분 정도 걸린다. 들머리와 날머리는 계곡이지만 산길은 샘터 하나 없는 전형적 육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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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산장 주차장에서 나와 도로를 바로 건너 포장로를 따라 간다. 입구 좌측엔 옥계유원지 매표소, 우측은 '선경옥계(仙境玉溪)'라 적힌 대형 표지석이 서 있다. 잠시 뒤돌아보자. 상어이빨처럼 솟은 봉우리가 팔각산이다.

120m쯤 뒤 좌측 계곡 쪽으로 내려선다. 계곡과 나란히 50m 정도 걷다 물을 건너 잡풀숲을 뚫으려고 했지만 불가능해 좌측 병풍바위 쪽으로 붙어 나아간다. 살짝 오르면 비닐하우스를 지나고 곧 이어 좌측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본격 들머리다.

비록 묵었지만 의외로 길이 있다. 8분 뒤 갈림길. 얇은 판자가 걸려 있는 우측으로 향한다. 간벌 후 뒷정리를 하지 않아 나뭇가지가 길을 막고 있다. 뚫고 오르면 무덤과 만난다. 무덤 좌측으로 오른다. 역시 나뭇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지만 60m쯤 올라서면 나아진다. 숲사이로 우측 바데산, 좌측으로 팔각산 능선이 보인다.

차츰 경사가 심해진다. 무덤에서 8분 뒤 부처손이 널려 있는 전망대에 서면 들머리 팔각산장 주차장과 팔각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20m쯤 올라서면 이곳이 송이가 나는 산임을 알리는 얇은 판자가 걸려 있다. 이후부터 10분 정도는 살인적 경사의 된비알. 낙엽까지 수북해 체력 소모가 심하다. 우측 전망대가 하나 보이지만 앞서 본 풍경과 큰 차이는 없다.

이어지는 된비알. 가마솥 더위에 거의 쓰러질 정도로 힘들다. 6분 뒤 송이 채취 움막을 지나면서 경사는 누그러지고 솔가리길이 기다린다. 영덕에서 청송으로 가는 길이다.

잠시 후 안부 사거리. 좌측은 영덕군 달산면 도전리 옥녀암 방향, 우측은 옥계유원지 쪽, 산행팀은 직진한다. 역시 오름길의 연속이다. 20분 뒤 김녕 김씨묘를 지나면서 잠시 오르막은 주춤한다.


좌측으로 발길을 옮긴다. 햇볕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청정 산길이 한동안 이어지다 잠시 내려갔다 정면에 보이는 봉우리로 올라서면 541봉에 닿는다. 김녕 김씨묘에서 19분. 이때부터 그간 안 보이던 안내 리본이 보이기 시작한다. 541봉은 청송 영덕 포항의 경계 지점이다.

직진하며 내려선다. 이 길은 '좌 포항, 우 청송'으로 이어지는 시군 경계길. 그러니까 이 길 좌측으로 포항 하옥리계곡, 우측으로 청송 얼음골계곡이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즉,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르는 고개가 된다는 산경표의 주 이론이 딱 들어맞는 셈이다.

곧 좌측으로 잣나무숲이 펼쳐진다. 이후 산길이 우로 휘더니 시원한 바람이 부는 안부를 지나면 이내 임도에 내려선다. 우측 청송군 부동면 진흥사, 좌측은 포항시 죽장면 하옥리 방향. 잠시 땀을 식히며 아름드리 소나무들을 감상한 후 임도를 건너 바로 산으로 올라선다. 경주 이씨묘를 지나며 오름길이 이어지고 이후 우측으로 잠시 평편한 길이 지속되다 3분쯤 오르면 무명봉. 돌과 나뭇가지가 널려 있는 거친 길로 내려서다 급경사길로 치고오르면 갈림길. 우측은 원구리로 가는 탈출로. 체력이 부치면 이 길로 하산해도 된다.

이어지는 완경사 오르막. 도중 1시 방향으로 저 멀리 해월봉이 보인다. 이후 산길은 능선으로 올라가지 않고 8부 능선쯤에서 우측으로 돈다. 운동장 트랙으로 비유하자면 안쪽으로 도는 셈이다. 길은 반듯하지만 잡풀이 웃자라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도중 길 왼쪽으로 시야가 트여 주변 산의 조망이 가능하다. 맨 왼쪽부터 숲사이로 일부만 보이지만 팔각산과 그 우측으로 바데산 동대산 내연산 삼지봉이 확인되고, 동대산 좌우로 경방골과 마실골의 위치가 가늠된다.

다시 직진한다. 완만한 오름길이다. 좌측으로 잣나무가 또 보인다.서서히 경사가 가팔라져 지그재그 오름길로 변한다. 5분이면 구리봉 에 올라선다. 숲에 가려 조망은 없다. 정상석도 없고 '구리봉'이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한가운데에는 밀양 박씨묘가 자리잡고 있다.

날머리인 얼음골까지는 2㎞. 이제 해월봉을 향한다. 두 번의 내리락오르락을 반복하면 해월봉. 6분쯤 걸린다. 역시 조망은 없다. 이정표 옆에는 나무를 베어 만든 조그만 벤치가 여러 개 있어 쉬어갈 수 있다. 벤치 좌측에 보이는 '등산로 아님'이라 적힌 팻말이 보인다. 사실은 등산로다. 이 길로 가면 낙동정맥 통점령과 만난다. 이 능선 우측 계곡 건너 보이는 산줄기인 팔각산도 양설령을 거쳐 주산재로 이어져 결국 낙동정맥과 합치므로 결국 두 능선이 일정 거리를 두고 낙동정맥과 만나는 셈이다.

본격 하산은 벤치 우측으로 내려선다. 6분 뒤 만나는 돌탑봉에선 왼쪽으로 내려선다. 방향이 잘못되지 않았나 싶지만 능선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돌아나간다. 돌탑봉에서 8분 뒤 만나는 전망대에선 발아래 거대한 폭포와 태극 방향을 이루는 얼음골계곡 물길이 눈길을 끈다. 비록 인공폭포지만 보기만 해도 더위가 가신다.

산행은 막바지. 수차례 밧줄에 의지해 내려서면 숲사이로 얼음골 유원지가 보인다. 돌길이 끝나면 목책을 따라 동선이 안내된다. 도중 얼음골의 원리가 숨어 있는 대형 너덜을 본 후 돌다리를 건너면 '해월봉 등산로 입구 1.5㎞'라 적힌 안내판을 지난다. 얼음골 약수터는 주차장을 가로질러 또 다른 돌다리를 건너면 바로 만난다.


# 떠나기 전에- 1억3000만 원 들인 높이 62m 얼음골 인공폭포 장관

청송 얼음골은 밀양 얼음골에 비해 지명도는 한참 떨어지지만 경북 내륙지방에선 꽤 유명한 여름철 관광지이다. 청송은 울타리를 쳐서 접근을 막고 있는 밀양 얼음골과 달리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얼음물이 나오는 지점에 굴을 조성해 찬바람을 돌 틈 사이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약수터의 유량도 많아 여름철이면 항상 물을 뜨려는 사람들로 북적된다.

얼음골의 명물 폭포는 청송군이 지난 1999년 밀레니엄 기념사업으로 1억3000여만 원을 들여 천연 암벽에 계곡수를 끌어올려 만든 인공폭포. 처음보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귀띔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높이 62m로 국내 최대 규모인 이곳에서는 매년 1월이면 폭 100m의 얼음벽을 조성해 청송 주왕산 빙벽대회를 개최한다.

폭포에서 약 150m쯤 영덕방향으로 가면 곡각지점에 인공폭포만큼은 못 돼도 제법 큰 규모의 절벽이 하나 보인다. 원구리다. 이번 산행 중 탈출로의 날머리이기도 한 이곳은 옛날 원님이 말을 타고 순시차 절벽을 넘다가 말과 함께 절벽 밑으로 떨어져 명명됐다고 전해온다. 즉 원님이 떨어진 굴이라는 의미란다.

구리봉과 해월봉은 왜 이렇게 불리게 됐을까.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풀이했다. 구리봉은 산아래 굴이 있는 봉우리라, 해월봉은 정상에 오르면 달(月)과 등불을 밝힌 고깃배가 떠다니는 동해바다를 잘 볼 수 있다고 해서 명명됐다고 한다.


# 교통편- 갈 땐 영덕에서 들어가고, 올 땐 청송에서 부산와야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경주IC~울산 포항 경주 7번~포항 위덕대학교~포항 안강 7번~포항 울진 7번~울진 영덕 7번~위덕대학교 지나~울진 영덕~삼사해상공원 지나~팔각산 청송 달산 914번 지방도 좌회전(대금기사식당)~달산면 안내판~부남(팔각산 옥계유원지 주왕산) 좌회전~옥계2교 지나자마자 팔각산 등산로 입구 주차장(팔각산장 간판) 순.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영덕행 시외버스(포항 경유)는 오전 7시5분, 7시52분, 9시41분에 있다. 3시간 걸리며 1만1600원. 영덕터미널에서 옥계유원지행 버스는 오전 9시50분, 11시40분에 있다. 30여 분 걸리며 3260원. 날머리 청송 얼음골 휴게소 앞에선 청송터미널행 버스를 탄다. 오후 3시30분, 6시30분. 청송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2시30분, 6시에 출발한다. 3시간 걸리며 1만6100원. 또 얼음골 휴게소에서 오후 3시20분 영덕과 청송의 경계까지 가는 버스가 한 차례 있다. 여기서 영덕터미널행 버스가 연계된다. 영덕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3시5분, 5시32분, 7시5분(막차)에 있다.

글·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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