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 금성산~비봉산 원점회귀 코스
들판에 우뚝선 두 봉우리 말발굽형 능선
천년고찰 고이 품은 신라 삼국통일 보루
짜릿한 암벽타기·확 트인 정상 조망 일품
 
 만일 조물주가 기자에게 우리나라 산꾼들을 위해 산을 하나 만들라고 제안한다면 경북 의성군의 너른 벌판 위에 마주보고 우뚝 선 금성산(金城山·530m)과 비봉산(飛鳳山·671m)을 벤치마킹하겠다.

 우선 산 높이와 산행시간은 초보자가 선뜻 나서도 될 만큼 부담이 없다.
두 봉우리의 해발고도는 산꾼들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으면서 늠름함을 잃지 않는 500~600m대에, 산행시간은 길어봐야 대여섯 시간 정도. 들머리에서 보면 두 봉우리는 얼핏 독립 봉우리로 보이지만 막상 능선길은 연이어 내달릴 수 있는데다 두 봉우리의 경계인 안부에선 천년고찰 수정사로 내려서는 길이 열려있다. 따라서 어느 봉우리에서 올라도 체력이 부칠 경우 두 세 시간 정도만 산을 탄 뒤 수정사로 하산할 수 있다. 무엇보다 두 봉우리의 전체 형태는 말발굽 모양으로 원점회귀 코스가 가능하다.
            비룡산 하산길의 남근석과 소나무. 천길 낭떠러지 우측 끝단에 절묘하게 걸쳐져있다.

 산세도 고려의 대상. 수정사를 중심으로 서로 쌍립한 두 봉우리의 산세는 완연히 다르다. 의성을 대표하는 금성산은 무엇이든 품에 안을 것 같은 넉넉함을 갖춘 반면 봉황이 날아가는 듯한 형상인 비봉산의 능선은 아스라한 절벽을 이룬 암릉길로 멋도 있고 타는 재미도 있다.

무작정 산만 오르내리면 지루할 것 같아 역사와 전설이라는 콘텐츠도 필요하다. 사화산(死火山)인 금성산에는 옛 삼한시대때 세운 산성 등의 흔적이 뚜렷한데다 영남에서 가장 그럴싸한 풍수 일화를 간직하고 있다. 산 정상에 무덤을 쓰면 석 달 동안 이 지역에 가뭄이 드는 반면 묘를 쓴 후손은 운수대통해 부자가 된다는 것. 실제로 너른 상봉에는 움푹파인 곳이 여럿 보이는데 묘를 쓴 자리로 알려져 있다.

볼거리와 즐길거리도 빠져선 안될 약방의 감초. 금성산엔 금성산성 흔들바위 봉수대가, 비봉산엔 남근석과 빼어난 조망이 그것이다. 특히 금성산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 빙혈 풍혈로 유명한 빙계계곡에는 빙계온천도 있어 산행 후 피로를 풀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처럼 금성산~비봉산은 근교산으로 갖출 건 모두 갖춰 까다로운 산꾼들의 취향을 대부분 만족시켜줄 듯하다.

산행은 금성면 수정리 정자골 금성산 등산로 입구~금성산성~관망대~병마훈련장~금성산 정상~건들바위~용문정 갈림길~봉수대~노적봉 갈림길~수정사 갈림길(능선안부)~비봉산 정상~암벽(15m)~남근석~암릉~산불초소~비봉산 입구~금성산 등산로 입구.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 정도. 샛길이 거의 없는 외길인데다 의성산악회가 이정표 정비를 잘 해놓아 초행자도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들머리의 아름드리 소나무 대여섯 그루가 우선 눈길을 끈다. 한 눈에 봐도 위엄이 있다. 100m쯤 걸으면 왼편으로 급경사 오르막길. 이 길은 상봉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15분쯤 뒤 금성산성. 삼한시대 부족국가 조문국이 세워 조문산성으로도 불리는 이 성은 신라 문무왕때 보수, 당군을 물리치고 삼국통일을 하는데 큰 몫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성 높이가 1m도 채 안돼 초라하기 그지 없다. 다만 인근에 널부러진 돌들로 과거 성의 형태와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을 뿐이다.

등산로는 산성을 따라 이어진다. 경사도가 극에 달할 즈음 석축이 정면을 막고 있다. 조문국 망루가 있던 곳으로, 적의 침입을 감시하던 관망대다. 이름 그대로 건너편 비봉산 일대와 골짜기 안쪽 수정사, 그리고 의성벌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때부터 바위길. 10여 분 바짝 땀을 내고 오르면 산 중턱은 뜻밖의 평지. 과거 조문국이 성안에 갇혀 있을 동안 병마를 훈련시키던 곳이다. 송림이 좋아 잠시 쉬어가기 적합하다.

이후 경사가 심해 밧줄을 타고 오르면 곧 정상. 헬기장이 조성된 이곳에는 과거 묘를 쓴 흔적이 보이는 웅덩이가 몇 군데 보인다. 이웃 비봉산은 물론 동쪽 저 멀리 보현산 천문대도 확인 가능하다.

                세 개의 바위가 포개져 있는 걸들바위. 실제로 밀어보면 약간 흔들리는 기분이 든다.

산길은 정상석 뒤 송림길로 이어진다. 솔향기에 취해 걷다보면 건들바위 갈림길. 비탈길로 90m쯤 내려가야 만난다. 왕복 10분 거리. 3개의 바위가 포개져 있다. 실제 밀어보면 약간 흔들리는 기분이 든다. 그 보다는 흔들바위 너머로 펼쳐지는 배나무골을 포함한 금성면 일대가 한 폭의 그림같다.

부드러운 능선을 40분 정도 오르락내리락하면 봉수대 유지(遺址)에 닿는다. 해발 445m에 위치한 봉수대 유지에는 `영니산 봉수대'라 적혀 있다. 영니산은 금성산의 또 다른 이름. 양지 발라 대개 여기서 점심을 한다.

봉수대 유지에서 1시간쯤 뒤엔 능선안부 삼거리. 우측으로 25분 내려서면 수정사, 산행팀은 직진한다. 20분이면 비봉산 정상에 닿는다. 헬기장인 이곳은 조망이 탁월하다. 남서쪽에 군위 인각사를 품은 옥녀봉이 보인다.

하산길에선 비봉산이 금성산과 확연히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간 안보이던 부드러운 낙엽길이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내리꽂히는 수직절벽과 기암괴석들은 장관을 이룬다.
비봉산 산해의 하이라이트인 암릉길. 좌우 절벽을 이룬 이 암릉길은 한동안 계속된다.
비봉산 암릉길 도중에는 오금이 저리는 전망대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올망졸망한 묏부리를 힘겹게 오르면 돌연 뚝 떨어지는 15m의 수직절벽. 밧줄에 의지에 암벽타기로 내려온다. 여기서 놓쳐선 안될 것이 바로 남근석이다. 암벽에서 내려온 후 산길로 가지말고 왼쪽 정면의 전망대로 향하자. 여기서 고개를 돌려 방금 내려온 암벽의 맨 우측 끝단 소나무 아래에 남근석이 걸려있다. 절묘한 위치다.
                   밧줄에 의지해 비봉산 암릉을 내려오는 이창우 산행대장.

이후 수정사 갈림길을 지나면 이번 산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암릉길을 만난다. 우측의 금성산 능선과 좌측의 천길 단애와 벼랑에 뿌리내린 소나무가 감탄사를 자아낸다. 하지만 굴곡이 심한 눈 앞의 크고 작은 봉우리가 그냥 두질 않는다. 산불초소가 위치한 마지막 봉우리까지 오면 사실상 산행은 끝. 수직절벽에서 50분. 여기서 들머리까지는 줄곧 내리막길로 20분 정도 소요된다. 날머리에서 들머리까지는 250m 떨어져 있다.

◇ 떠나기전에 - 비봉산 형상은 머리 풀어헤친 여인 모습

금성~비봉산 코스를 종주하면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산행 중 천년고찰 수정사를 볼 수 없다는 점. 이 절은 1300여년전 신라 신문왕 때 의상대사가 지금의 금성면 탑리 인근을 지나다가 숲 속에서 새가 노래하고 나비가 춤추는 곳을 발견, 성지라 점하고 창건했다. 수정사(水淨寺)란 이름은 주변 계곡물이 워낙 깨끗해 붙여진 이름.

수정사는 이후 화재로 인해 모두 불타버렸고 구담선사가 지금의 산골쪽으로 옮겨 지었다고 한다. 만일 승용차를 타고 왔다면 들머리에서 2㎞ 거리에 불과하니 잠시 들러보자.

산행중 만난 의성의 한 산꾼은 비봉산의 형상이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비봉산 정상인 헬기장이 여인의 이마, 15m 암벽이 여인의 턱, 비봉산 암릉과 단애가 여인의 가슴부위라는 것이다. 이 모습은 들머리와 탑리의 버들슈퍼 앞에서 가장 확실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또 한가지. 산불감시 초소 인근에는 박쥐떼가 서식하는 굴이 하나 있다. 탑리사람들은 박쥐의 서식지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위치 공개를 하지 말라고 부탁해 산행팀은 이에 따르기로 했다.

의성 벌판에는 소류지가 아주 많다. 산불초소에서 만난 68세의 의성 토박이 노인은 대부분의 소류지는 박정희 정권 당시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비봉산 남동쪽의 16만평 규모의 가음(양지)저수지는 이승만 대통령 때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일군 것이라고 전했다. 당시로는 전국에서 두 번째 규모라고 했다.

                의성 탑리 5층석탑(국보 제77호). 금성산 들머리로 가는 도중 만날 수 있다.

◇ 교통편 - 영천서 안동행 버스…의성 탑리 하차

영천으로 가서 안동행 버스를 타고 의성 탑리에서 하차한다.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영천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40분 첫 차를 시작으로 8시30분, 10시35분에 있다. 100분 소요. 6800원. 영천에서 안동행 시외버스는 오전 8시30분, 9시35분, 10시5분에 출발하며, 의성군 탑리정류소에서 내린다. 70분 소요. 4900원. 탑리에서 금성산 입구까지는 택시를 이용한다. 탑리콜택시(054-833-1577) 합동택시(054-833-0880).
탑리정류소에서 부산행 직행버스는 오후 2시45분, 4시45분에 출발한다. 1만1700원. 이 시간에 댈 수 없을 경우 대구 또는 경주행 버스를 타고 영천에서 내린다. 경주행 버스는 오후 3시13분, 6시30분에, 대구행 버스는 오후 6시28분, 6시58분에 있다. 영천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40분, 6시20분, 7시50분(막차)에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군위IC~대구 안동 방면 우회전 후 곧바로 안동 군위 방면 좌회전~927번 지방도 금성 군위군청 방향 직진~군위 방향~927번 지방도 금성 방면 우회전~금성 지보사 927번 지방도 우회전~탑리 8㎞ 이정표~의성군 금성면 표지판~안동 의성 좌회전~빙계계곡 8㎞ 이정표~춘산 가음·수정사 68번 국도 우회전~빙계계곡 산운마을 우회전~수정사 4.5㎞ 좌회전 이정표~대형 비닐하우스 끼고 좌회전~산운공원(옛 산운초등학교), 산운교회~금성산 등산로 입구 순.




 산행을 하다 보면 눈요기꺼리가 제법 있답니다. 만일 이런 볼거리가 없이 그냥 산만 타고 귀가한다면 아마도 절반 이상은 향후 산에 가지 않을 겁니다.
 잘 생긴 분재같은 소나무라든지, 희귀한 야생화나 좀처럼 보기드문 새, 그리고 발아래 펼쳐지는 귀똥찬 조망이 우선 떠오르는 예가 아닐까요.
 그 중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남녀 성기를 닮은 바위일겁니다. 사실 우리네 시골 마을 어귀에는 신성시되는 이러한 성기 모양의 바위가 제법 있습니다. 하지만 산속에는 드뭅니다.
 재수좋게 우연히 발견한 몇 개의 바위를 소개합니다.

#의성 금성산~비봉산 남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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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에 의지해 암릉을 내려와(왼쪽) 전망대에서 뒤돌아보면 앞서 내려온 암릉의 맨 우측 끝단 소나무 아래 남근석이 절묘하게 걸쳐져 있다.

 경북 의성군 너른 벌판 위에 마주보고 우뚝 선 두 산은 흔히 종주 코스로 애용됩니다. 걷는 시간만 5시간 정도.
 신라 천년고찰 수정사를 경계로 마주보고 있는 두 산의 산세는 확연히 다릅니다. 금성산(530m)이 무엇이든 품에 안을 것 같은 넉넉함을 갖춘 반면 봉황이 날아가는 듯한 형상인 비봉산(671m)의 능선은 아스라한 절벽을 이룬 암릉길로 멋도 있고 타는 재미가 있지요.
 남근석은 비봉산에 있지요. 금성산과 비봉산을 정상을 지나 하산길에 있지요. 수직절벽과 기암괴석을 오르내리다 약 15m쯤 되는 수직절벽을 밧줄에 의지해 내려간 후 바로 산길로 가지말고 왼쪽의 전망대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여기서 고개를 돌려 방금 내려온 암벽의 맨 우측 끝단 소나무 아래를 보면 남근석이 기암절벽에 걸려 있죠. 그야말로 절묘한 위치입니다. 이 남근석은 이 산을 찾았다고 해서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놓치기 십상입니다.

#장흥 천관산 양근석과 금수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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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성기를 닮은 바위와 굴인 양근석(왼쪽)과 금수굴. 신기하게도 마주보고 있다.

 천관산(723m)은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입니다. 웬만한 산꾼이라면 벌써 다녀왔거나 아니면 한번쯤 가봤으면 하고 벼르고 있을 꽤 이름있는 산이랍니다.
 천관산은 한마디로 기암괴석의 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상상도 못할 만큼 오묘한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합니다. 천재 조각가들의 불후의 명작을 산 전체에 골고루 진열해놓은 듯합니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천관사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오똑한 것, 숙인 것, 우묵한 것, 입벌린 것, 울퉁불퉁한 것 등 기이한 암석이 많다'는 대목은 이를 잘 대변해주고도 남습니다.
 천관산은 또 억새 명산입니다. 가을이면 산사면이 온통 누른 억새의 물결로 넘쳐납니다. 여기에 막힘없는 다도해 국립공원의 조망은 그 어느 명산이 흉내낼 수 없는 자랑이기도 합니다.
 이 천관산에는 남녀의 성기를 닮은 바위와 굴이 있습니다. 바로 양근석과 금수굴입니다.
 양근석은 천관산 등산을 하면 놓칠 수가 없습니다. 등로 바로 옆에 있으며 커다란 안내판과 친절한 설명이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힘차게 뻗은 모양이 발기한 남자 성기를 그대로 빼닮았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넘치는 모양새 그대로입니다. 높이는 4m 내외. 귀두를 감싼 고리는 일부로 조각해 놓은 것처럼 선명하게 파여 있죠. 또 바위의 뿌리에는 불알 모양으로 둥근 바위 두 개가 붙어 있습니다. 자연석이 이처럼 비례에 맞추어 완벽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이 바위가 유일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천관산에는 여성 성기의 모양을 한 굴도 있습니다. 양근석이 위치한 능선과 마주보는 능선상에 여성의 성기를 빼닮은 금수굴이 있어 자연의 오묘한 조화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제천 월악산 남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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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사 입구의 남근석과 월악산 정상인 영봉.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비운의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는 월악산에도 남근석이 있답니다.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월악산은 음기가 왕성한 산. 여기에 덕주사 뒷편인 제천시 수산면 수산리 쪽에서 바라보이는 월악산은 영락없는 누워있는 여인의 얼굴모습을 빼닮았습니다.
 해서, 옛 선조들은 월악산의 음(陰)의 지기(地氣)를 누르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남근석을 세웠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월악산의 음기를 중화시키고자 세운 남근석이 아들을 바라는 여인들의 소망을 기원하는 대상으로 변해 윗부분이 잘려나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남자 성기를 닮은 버섯도 덤으로 소개합니다.
 표충사에서 보이는 다섯 봉우리 다시 말해 '재약5봉' 중 하나인 필봉을 오르면서 조우한 성기를 닮은 버섯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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