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난코스 공략하기 <4> 울산 보라CC

클럽 챔피언 최진호 "윌리엄 9, 5번 어려워"
영남권에선 드문 유러피언 스타일 골프장
윌리엄 4번홀, 주변 풍광 아름다워 '황홀'
주말 점심 뷔페 선보여 골퍼들에게 인기
 

정면 영축산을 위시한 영남알프스 남동부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 가운데 강대성 프로가 윌리엄 4번홀에서 티샷을 날리고 있다. 작은 산이 막고 있는 티잉그라운드에선 바람이 미미하지만 그린 상공에선 바람 때문에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자고로 골프장은 인공미를 가하지 않고선 존재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 골프장은 대부분 산을 깎아 조성하기 때문에 도그레그형 코스가 필연적이다. 하지만 보라CC는 인공미를 최대한 억제하면서도 기암괴석과 절벽 등 고원 지형을 그대로 살린 유러피언 스타일이어서 대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아름다움을 남겨 놓았다. 해서, 산에 온 느낌이 아니라 스코틀랜드 대저택의 우아한 정원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상당히 이국적이다.

홀과 홀 사이를 구분짓는 설계 또한 독특하다. 대부분의 골프장은 숲을 조성해 홀과 홀을 구분하는데 반해 이곳은 기존 산자락의 마운드를 그대로 살려 운치 있는 나무 몇 그루만으로 멋도 내면서 홀을 구분해 놓았다. 조선시대 선비 양산보가 담자락 하나 세우면서 계곡의 일부를 자신의 정원으로 끌어들여 소쇄원을 만들었듯이.

이 때문에 슬라이스나 훅 등 미스샷이 발생한 경우 볼을 쉽게 찾을 수 있어 OB 발생 빈도가 낮다. 초보자의 스코어가 잘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이 클럽 최진호 챔프는 "각 홀마다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전략성이 숨어 있어 싱글 핸디캐퍼들에겐 설계 의도대로 까다롭게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총 27홀인 보라CC의 대표적 코스는 윌리엄 코스와 헨리 코스. 두 코스의 총 길이는 6590m(7207야드). 국내 최장을 자랑하는 통도 파인이스트 남코스(6735m)보단 약간 짧지만 에덴밸리(6552m) 등 전장이 길기로 소문난 여타 골프장에 비해선 길다. 가마솥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어서 예부터 솥발산으로 불리는 정족산을 따라 도는 헨리 코스는 아기자기한 데다 계곡에서 찬바람이 불어 여름에 특히 시원하고, 이 클럽에서 전장이 가장 긴 윌리엄 코스는 다이나믹해 골퍼들로부터 기피와 사랑을 동시에 받는다.

이번 라운드는 이 클럽 챔피언 최진호 씨와 울산서 활동하고 있는 강대성 프로가 함께 했다. 장타자인 강 프로와 정확한 샷을 구사하는 최 챔프와의 라운드는 보는 것도 연습하는 것만큼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이날 강 프로는 우측 도그레그홀인 헨리 6번홀(파5, 502m)에서 우측 암벽과 숲을 넘기는 340m 드라이버 샷을 선보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우측 도그레그홀인 헨리 6번. 강대성 프로는 백티에서 우측의 숲을 넘기는 340미터 드라이버 샷을 날렸다. 바로 이 장면이다.
클럽 챔피언의 카트에는 챔피언임을 알리는 기(旗)가 걸려 있다. 뒤에 타고 있는 사람이 최진호 보라CC 챔피언이고 앞에 탄 사람은 강대성 프로.

■"드라이브 샷 날리는 것 자체가 부담"

최진호 챔프와 강대성 프로에게 각각 가장 부담스러운 홀을 두 개씩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돌아온 대답은 윌리엄 9, 5번홀이었다. 순서도 똑같았다.

레귤러티에서 본 윌리엄 9번홀.
백티 티잉 그라운드에서 티샷을 날리는 보라CC 최진호 챔피언.

우선 윌리엄 9번홀. 핸디캡1, 파4홀로 챔피언티 431m, 레귤러티 382~403m, 레이디스티 356m로 맞바람이 자주 부는 긴 홀이다. 까다로운 데다 마지막 홀이어서 어느 대회건 승부홀로 항상 긴장감이 감돈다.

최진호 챔프는 "백티에서 보면 한마디로 까마득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맘놓고 칠 상황은 절대 아니다"고 설명했다. 좌측으로 카트 길 OB, 우측으로 큰 해저드가 떡 버티고 있어 드라이버 샷을 날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것. 이는 400m가 넘는 레귤러티에서도 마찬가지. 드라이버 샷 거리가 짧은 주말골퍼들은 2온보다 보기를 목표로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최 챔프는 "티샷이 불안한 주말골퍼들은 카트 길 보다는 해저드가 있는 우측으로 공략하는 것이 그나마 스코어를 지키는 요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파를 잡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일깨워주는 홀이다.

파4, 핸디캡3인 윌리엄5번도 주목해야 할 홀. 챔피언티 404m, 레귤러티 372~387m, 레이디스티 318m. 윌리엄 9번홀도 그렇지만 윌리엄 코스의 파4홀은 전장이 긴 것으로 악명높다. 이럴 경우 세컨 샷도 티샷의 캐리에 크게 좌우돼 변수가 많이 발생할 수 있다.

레귤러티에서 본 윌리엄 5번홀.
윌리엄 5번홀의 백티에서 드라이버 샷을 날리는 강대성 프로.

이 홀도 시각적으로 OB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작용한다. 실제로 좌우측 모두 OB가 쉽게 발생한다. 티샷 또한 최소 190m 정도는 돼야 눈앞에 보이는 벙커를 넘길 수 있다. 여기에 포대그린 주변에 여유 공간이 적어 우측 핀일 경우 버디를 위해 과감하게 공략할 경우 30㎝ 정도만 짧게 쳐도 경사가 있어 카트 길을 타고 흘러내릴 수 있다. 해서, 주말골퍼들은 무조건 그린 가운데를 보고 공략하는 것이 유리하다.
    
4년 전 이곳에서 열린 국내 PGA 랭킹 40위 안에 든 선수들이 참가한 반도보라CC 투어 챔피언십에서 가장 힘든 코스는 윌리엄 5번홀이었다. 이 대회에서 참가 선수들의 드라이버 샷의 그린 적중률 평균이 74%인데 반해 이곳은 45%에 불과했고, 평균 퍼팅 수도 2타를 넘어선 2.01이었다. 평균 타수 또한 파4홀 중 가장 높은 4.37로 나타나 국내 최고의 남자 프로선수들도 윌리엄 5번홀에서 고전했음을 보여준다.

윌리엄 2번홀도 쉽게 접근해선 안 될 까다로운 홀이다. 챔피언티 414m, 레귤러티 383~393m, 레이디스티 372m로 파4 미들홀 중 윌리엄 9번에 이어 두 번째로 길지만 뒷핀일 경우 오르막홀인 점을 감안하면 총 거리에서 윌리엄 9번홀과 거의 비슷해진다. 이 홀은 거리뿐 아니라 그린 또한 어렵다. 겉으로 봐선 심하지 않으나 볼이 홀까지 가기도 전에 꺾이는 등 라이의 변화가 심해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 핀 위치에 따라 3퍼트는 기본이다. 그린 앞 벙커 또한 눈엣가시다.

윌리엄 2번홀 백티에서 드라이버 샷을 날리는 최진호 챔피언(위)과 강대성 프로.
윌리엄 1번홀 백티.
윌리엄 3번홀 백티.
윌리엄 6번홀 백티.

헨리 코스도 절대 쉬운건 아냐

파5, 핸디캡3인 헨리2번홀은 보라CC에서 가장 길다. 챔피언티 567m, 레귤러티 523~546m, 레이디스티 484m. 오르막까지 고려한다면 거의 600m에 달한다. 이렇다 보니 단타자일 경우 4온, 5온도 부지기수로 나온다.

헨리 2번홀 백티.
레귤러티에서 본 헨리 2번홀.

파4, 핸디캡4의 헨리 5번홀은 좌우 모두 OB가 있어 정교한 티샷을 요하는 홀이다. 챔피언티 377m, 레귤러티 322~349m, 레이디스티 300m. 오르막인 이 홀은 티샷이 우측 경사면 절개지에 빠지면 세컨 샷 때 그린이 보이지 않으며, 좌측은 카트 길과 벙커가 놓여 있다. 해서, 벙커 우측으로 공략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린 또는 만만찮아 3퍼트도 자주 나온다.
헨리 5번홀 백티에서 티샷을 날리는 강대성 프로(위)와 최진호 챔피언.
헨리 1번홀 백티.
헨리 3번홀 백티.
파3홀인 헨리4번 레귤러티.
좀 더 가까이서 본 헨리 4번홀 그린.
헨리 9번홀 백티.
레귤러티에서 본 헨리 9번홀.


그린 상공에 부는 바람 못 읽은 정준 프로의 패착
   
지난 2005년 반도보라CC 투어챔피언십에서 3R까지 선두를 달리던 정준 프로는 윌리엄 4번홀 150m 파3에서 티샷이 물에 빠지는 실수를 범했다. 이 홀의 실수가 결국 머릿속에 남아 마지막 날 76타라는 참담한 결과로 이어져 시즌 2승의 꿈을 날려 버렸다.

왜 그랬을까. 바람 탓이었다. 그린이 호수에 둘러싸여져 있어 일명 아일랜드홀로 불리는, 보라CC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홀의 티잉그라운드 앞에는 작은 산이 막고 있어 바람의 영향이 미미하지만 같은 시각 150m 정도 떨어진 그린 상공에 부는 바람을 정준 프로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파3홀로 일명 아일랜드홀이라 불리는 윌리엄 4번홀 백티.  
윌리엄 4번홀의 레귤러티에서 티샷을 날리는 기자. 왠지 폼이 어색하지만 최진호 챔피언과 강대성 프로보다 훨씬 더 가까이 홀컵 근처에 온그린 시켰다.
윌리엄 4번홀 그린. 해저드에 둘러싸여 아일랜드홀임을 알 수 있다.

레저시설부문 토목건축 최우수상 수상

권홍사 반도종합건설 회장의 딸 이름을 본 따 명명됐다는 보라CC는 안개가 끼더라도 30분 이상 머문적이 없고 비 또한 인근 골프장보다 적게 내려 기상 악화에 따른 휴장이 적다. 또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으면서 각 코스에 따른 고저차가 30~40m에 불과해, 티박스에서 홀 전체를 파악할 수 있어 2005년 레저시설부문 토목건축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지난 5월부턴 영남권에서 처음으로 주말 점심 뷔페(1인 1만8000원)를 선보여 골퍼 동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보라CC 안영호 대표는 "올해 5주년을 맞는 후발 주자이지만 예약부터 라운드에 이르기까지 회원 및 주말골퍼들에 대해 최상의 서비스를 다할 계획"이라며 "앞으로도 부·울·경 골퍼들이 많이 사랑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052)255-1000

       돌배나무가 많아 배내골이라 명명됐다는 설이 나올 정도로 배내골에는 돌배나무가 많았지만 지금은
       마을길을 넓히기 위해 수변의 돌배나무가 대부분 사라져 산기슭에만 일부 남아 있다. 하얀꽃이 돌배
       나무, 분홍빛은 산벚나무.
      배내산장 김성달 산장지기. 뒤로 보이는 느티나무가 바로 김 씨가 21년 전에 심은 것이다.
    벚꽃이 계곡 주변에 만개한 가운데 원동면 장선리의 송림이 한 폭의 한국화처럼 아름답게 다가온다.

배내골은 어떤 곳

배내골은 울산시 울주군에서 발원, 양산 원동면을 거쳐 밀양호(댐)로 흘러들어가는 계곡을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수려한 경관 덕분에 울산 밀양 양산에선 각각 울산 배내골, 밀양 배내골, 양산 배내골로 부르지만, 흔히 말하는 배내골은 양산지역에 가장 많이 걸쳐 있어 대체로 양산 배내골로 보면 된다. 실제로 배내골은 '양산 8경'에만 포함돼 있을 뿐 '울산 12경'이나 밀양의 주요 관광지에는 언급조차 없다.

 산꾼들의 관점에서 보면 배내골은 천황 재약산으로 대표되는 영남알프스 남서부 능선과 간월 신불 영축산 등 영남알프스 남동부 능선을 잇는 고갯마루인 배내고개에서 밀양 금오산과 양산 안전 축천산을 잇는 배태고개까지의 70리(약 28㎞) 계곡을 의미한다. 

 
 좀 더 피부에 와닿게 설명하면 언양에서 석남사를 거쳐 밀양으로 넘어가는 옛 24번 국도를 타고 오다 만나는 갈림길에서 69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배내고개를 넘어도 되고, 원동역에서 원동휴양림과 신흥사를 잇따라 지나 상수도 보호구역임을 알리는 대형 이정석이 서 있는 배태고개를 지나면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경부고속도로 양산IC로 나와 어곡터널과 신불산 공원묘지나 에덴밸리스키장을 지나면 손쉽게 접근이 가능해 부산 쪽에선 대부분 이 길을 이용한다.

배태고개.

배내고개. 보이는 산은 능동산.



■배내골이라는 이름의 기원
배내산장지기 김성달 씨는 배내골이라는 이름의 기원을 여러 방면으로 나름대로 분석했다.
우선 땅의 생김새로 본 측면. 풍수지리학적으로 보면 배내골은 배가 바다에 떠 있는 형상인, 전형적인 행주형(行舟形)의 지세다.

김 씨는 이를 주변 지세를 근거로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배내골을 하나의 배로 가정할 때 골짝의 두 진입로 중 해발고도가 낮은 배태고개를 뱃머리로, 약간 더 높은 배내고개를 배의 뒷부분인 선미로 분석했다. 또 배내골을 감싸고 있는 영남알프스 남서부, 남동부 능선은 각각 밀양 얼음골이나 양산 통도사에서 보면 거의 직벽이라 양쪽 산줄기를 배의 측면으로 간주했다. 덧붙이자면 예부터 행주형 지세에서 배가 떠나면 흉하다 하여 비보(裨補) 차원에서 인근에 지명으로나마 포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배태고개 아래의 원동면 영포리 내포리 등이 그 예에 해당된다고 한다.

배내골의 배내는 또 갓난아이의 저고리인 배냇저고리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산으로 옴폭 둘러싸인 배내골이 어머니의 자궁(뱃속)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땅으로 풀이된다는 것. 배내산장이 위치한 양산 원동면 선리의 태봉(胎峰)이라는 마을 이름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또 하나는 예부터 냇가에 돌배나무가 즐비하다 하여 '배 리(梨)' 자와 '내 천(川)' 자의 뜻만 차용해 배내골로 불리게 됐다는 설이다.  가장 널리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설이다. 이천리(梨川里)라는 지명 또한 실제로 울산 쪽 배내골의 명소인 철구소 인근에 존재한다. 아쉽게도 지금의 배내골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도로를 넓히고 펜션을 지으면서 냇가의 돌배나무는 거의 잘려나가 일부 산기슭에 명맥만 유지돼 매년 5월이면 겨우 하얀 배꽃을 볼 수 있을 정도다. 해서, 그 흔하디 흔한 돌배주 맛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게 됐다.

지워지지 않는 질곡의 삶 터전, 배내골
세상의 모든 만물이 음양의 조화에서 벗어날 수 없듯 사람 사는 땅도 예외가 아니다. 배내골은 수려한 산세와 빼어난 계곡미가 아름다워 천혜의 자연경관이라고는 하지만 돌이켜보면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거칠고 척박한 오지 중 오지였다는 것이 김성달 씨의 설명이다. 험준한 산줄기로 둘러싸여 외부와 단절돼 있고 사람의 왕래 또한 드문, 풍수적으로 음양의 균형이 깨진 전형적인 음(陰)의 땅이라는 것.

나그네에겐 눈앞의 풍광이 전부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거친 땅에서 억센 삶을 살다 간 민초들의 이야기가 계류에 실려 끊임없이 흘러내린 곳이다.

21년간 배내골을 지킨 김 씨는 "배내골 사람들은 도회지의 많은 무리 속에서 부대끼며 살기에 어딘가 모가 난, 속된 말로 '내 팔 내가 흔들며 자유분방하게 살겠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마을을 이룬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 또한 크게 보면 그런 부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종가의 장손으로 태어난 그는 넉넉지 못한 살림이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며 땀의 대가로 사는 것을 천직으로 여겼다. 하지만 매터도가 판치는 세상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내골행을 결정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봐도 선택의 폭이 적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배내골행을 과감하게 실행한 것이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결정에 말없이 따라준 사랑하는 부인과 두 아들이 없었다면 힘들었겠지만."

배내골에는 비단 김 씨뿐 아니라 가슴 아픈 사연의 민초들이 살다간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난다. 우선 떠오르는 분이 인근 죽전마을 당상나무집 욕쟁이 할매란다. 서른도 안 돼 청상과부로 배내골에 들어와 한 많은 삶을 살면서 북받쳐 오르는 한을 속으로 삭이다 못해 뱉어 놓은 것이 욕이었다. 산판일을 하는 일꾼들을 대상으로 주막을 했는데 그래도 오며가며 정 준 사람이 있어 성이 다른 딸을 셋 둔 욕쟁이 할매는 장대비 쏟아지는 7년 전 어느날 이승의 질긴 끈을 싹둑 자르고 팔순의 노구를 배내골에 묻었다.
 백련마을 어귀 최 보살과 마을에 버스가 들어와 잔치를 할 당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던 임 노인도 파란만장한 삶을 끝내고 이제 하늘나라로 되돌아갔다.

시간을 더 거슬러 조선시대에는 사림의 거봉 점필재 김종직을 비롯해 많은 유생들이 세상을 등지고 산수를 벗하며 세월을 보냈고, 조선 후기 천주교 탄압 땐 많은 신도들이 배내골로 들어와 질그릇을 구워 한피기고개를 넘어 통도사 인근 언양 신평장이나 표충사 인근 밀양 단장장에 내다팔아 의식주를 해결했다. 실제로 상북면 이천리 간월재 가는 도중 만나는 죽림굴은 기해박해 당시 잔혹했던 관아의 손길을 피해 모였던 피난처로 여기서 토기와 목기를 만들거나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했다. 입구는 좁지만 안쪽이 넓어 150명까지 지낼 수 있는 천연석굴 죽림굴은 현재 천주교 성지로 신도들의 발길이 끊일 줄 모른다.

죽림굴. 입구는 작지만 내부가 넓어 150명도 수용 가능하다.

죽림굴 올라가는 계단길.


죽림굴 안내판.

죽림굴 안내석.


아직 세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태봉마을 산자락 옹기골에도 적지 않은 질그릇 파편과 함께 대작 가마까지 출토돼 이 또한 천주교인들의 흔적으로 추정된다고 김 씨는 설명했다.

한국전쟁 땐 빨치산들이 덕유 지리를 거쳐 이곳 배내골로 내려와 지금의 원동면 장선리에 교육도당을 설치, 골육상잔의 비극의 현장으로 변했다. 이와 관련, 신불산 서릉의 955봉에는 '공비지휘소가 있던 곳'이라 적힌 비석이 서 있다. 비석 뒷면에는 한국전쟁 중 남부군 제5지대장이 이곳에 머물면서 신불산 일대의 부하들을 총지휘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실제로 이곳에 서면 비석 내용 그대로 주변 능선 계곡의 지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김 씨는 "밤엔 인민군이, 낮엔 우리나라 50사단 병력이 점령하는 등 당시 밤낮으로 배내골의 주인이 바뀌면서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며 "이후 다시 돌아온 원주민이나 앞서 언급한 세상을 등진 사람들 그리고 최근 펜션 등 민박이나 식당을 운영하기 위해 이방인이 하나 둘 찾아들면서 지금의 배내골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여전히 몸살 앓는 배내골
1990년대 후반부터 배내골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중장비의 굉음소리와 레미콘차가 쉴새없이 넘나들며 망나니 칼춤 추듯 지축을 흔들기 시작했다. 새마을운동 노래 가사처럼 수변의 돌배나무를 벤 후 마을길도 넓히고 산골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휘황찬란한 펜션과 식당 전원주택 연수원 등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인간의 더러운 손길이 미치자 배내골은 서서히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배내산장 식당건물 한 쪽 벽에는 눈길 끄는 글이 하나 붙어 있다. 올해 서울의 일류대학 법학부에 입학한 산장지기 김 씨의 둘째 아들 종현이가 초등학교 때 쓴 '배내골'이란 생활문이다. 종현이는 5살 때 배내골로 들어왔다. '버스를 탔는데 아저씨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지금이야 깨끗하지. 한 10년 뒤엔 아주 더러워져 '배내똥'이라 불릴걸.(중략) 여름엔 피서객들이 음식을 다 먹지도 않고 반은 버리고 간다. 그것이 비가 오면 강에 흘러들어 오염이 되는 것이다. (중략) 음식물을 되가져 가는 것이 환경을 보호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생의 눈에 이렇게 보였으면 더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김 씨도 이렇게 회상했다. "식수로 길러 먹던 계곡물이 하도 맑아 하늘이 통째로 담긴 모습에 넋을 놓고 온종일 보내기도 했고, 매미 여치는 한낮의 무료함을 달래줬고, 두견새는 초저녁부터 새벽녘까지 창가를 떠나지 않았어요. 어느날 아침 문득 잠에서 깨어나 들꽃 위에 실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면 마치 신선의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어요."

이처럼 원시에 가까운 풍요로움이 가득한 배내골은 사바세계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온 한 맺힌 이방인들을 포근히 감싸 안아 주었다. 김 씨는 이를 배내골의 묘한 마력이라고 표현했다. 거친 삶을 살아온 필부들도 이 배내골에 들어오면 아픔조차도 충분히 삭여 아름다움을 아름다움 그 자체로 보도록 도와주는 그 힘 말이다.

김 씨는 이런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원시에 가까운 풍요로움은 비록 사라진 돌배꽃 전설처럼 서서히 묻혀버리고 있지만 그래도 배내골은 여전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하지만 이 아름다움의 이면에 묻혀 있는 배내골의 정서를 조금이라도 알아야 진정 바위 틈에 핀 들풀 한 포기도 소중히 다가올 것이라고.

<떠나기 전에>-죽림굴 파래소폭포 철구소 등 볼거리 및 먹을거리 무궁무진

         
배내골 전경.

도심에선 이미 벚꽃이 난분분 꽃비를 뿌린 후 아기 손톱 크기의 새순이 돋고 있지만 산골마을이라 봄이 늦게 찾아오는 배내골은 이제서야 산벚꽃과 몇 안 되는 하얀 돌배꽃이 나그네를 맞이한다.

하지만 지금 배내골은 의외로 한산하다. 벚꽃이 한창일 때 사람들은 벚꽃이 유명한 쌍계사나 경주 등지로 떠나 찾는 이가 거의 없다가 벚꽃놀이철이 끝나야 사람들이 찾는단다. 가을에도 마찬가지다. 각 지자체의 축제가 몰린 9월말부터 10월 중순까지 역시 일순간 발길이 끊긴 후 억새나 단풍이 모습이 보이면 또 다시 몰린다고 한다.

사전 정보없이 배내골을 찾으면 밋밋하고 심심하다. 그래도 볼거리는 꽤 있다. 천주교 성지인 죽림굴은 간월재 아래 위치해 있고, 배내산장 맞은편 신불산폭포 자연휴양림에는 파래소폭포가 유명하다. 만추 단풍이 황홀한 주암계곡에는 여름철 최고의 명소 철구소가 있다. 시퍼런 물이 한눈에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어 밀양 호박소, 신불산 파래소폭포와 함께 영남알프스 3대 소(沼)로 손꼽힌다. 또 통도골에는 영화 '달마야 놀자'에서 조폭들이 물속에서 누가 오래 있나 내기를 했던 곳으로 유명한 선녀탕이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5분에서 많게는 30분 정도의 발품을 팔아야 한다.

밀양호(댐)로 가는 멋진 드라이브길도 달려보자. 도중 휴게소에서 바라본 밀양호의 풍광은 일품이다. 정자 앞에는 망향비가 서 있다. 1990년 밀양댐이 조성되면서 수몰된 단장면 고점리의 덕달 사희동 죽촌 고점 등 4개 마을의 안타까운 사연이 적혀 있다. 배내골 하류에 해당되는 이곳에는 농짝같은 암장이 치솟아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농암대다. 사림의 거두 점필재 김종직이 말년에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다.

밀양호 휴게소. 망향비와 농암정이 보인다.

점필재 김종식이 말년이 머물렀던 농암대. 농암정 정자 안에 사진이 걸려 있다.


배내산장의 특미 '흑염소 숯불구이'.

'흑염소 숯불구이' 상차림.


배내골 맛집을 소개한다. 음식보다 배내골의 정서와 문화를 팔고 싶다는 김성달 씨가 운영하는 배내산장(055-387-3292)은 흑염소 숯불구이와 버섯전골이 유명하다. 영축산 산행의 들머리인 청수골산장(052-254-0875)은 흑돼지구이를 잘 하고, 수림가든(055-387-1016)은 꿩탕과 순두부, 대추나무집(055-387-5312)은 오리불고기와 메기매운탕 전문이다. 경부고속도로 양산IC로 나와 에덴밸리 쪽으로 올 경우 만나는 세검정(055-388-5757)은 생갈비와 돼지갈비로 유명하다. 원동면 장선리에는 50년 전통의 선리양조장(055-363-8933)이 있다. 

(1)편은 여기 클릭해 주세요.
'굴러온 돌' 21년 산장지기에게 듣는 배내골 이야기 http://hung.kookje.co.kr/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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