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 주민들은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예상과 달리 처음에는 환영 일색이 아니었다. 절반 정도는 시큰둥했다. 사생활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 직접적인 이유. 회재 이언적 선생의 17대손이자 양동마을 문화유산해설사 이지휴 씨는 "관람객들이 빈집으로 착각하고 살림집으로 들어오는 것은 한 발 양보해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헛기침 한 번 없이 방문을 불쑥 여는 경우가 잦아 주민들이 질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람객들이 주민들의 사생활 보호에 각별한 배려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들 두 마을의 관람객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많이 알려진 하회마을의 경우 평소보다 1.5배 늘었지만, 대학생이나 전문가 중심의 답사객들이 주로 찾던 양동마을은 평소보다 주말은 10배, 평일은 5배 정도 급증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 가급적 문화유산해설사와 함께 둘러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떠나기 전 아무리 예습을 해도 해당 지역의 '전문가들'만큼 꼼꼼하게 살펴볼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마을 입구에는 문화유산해설사 사무실과 부스가 각각 있다.

안동 하회마을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꼭 보고가요"

- 류성룡 등 풍산 류씨, 600여 년 역사의 집성촌
- 추석연휴·24일~10월3일,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벌
- 매주 수·토·일 오후 2~3시, 탈놀이 공연 꼭 챙겨볼 것
   
하회마을은 서애 류성룡으로 대표되는 풍산 류씨가 600여 년 전 새 정주지를 찾아 정착한 집성촌으로, 개척입향(開拓入鄕)의 대표적 사례. 지금도 125세대 주민 중 67%가 풍산 류씨다.

마을은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길지. 주산인 화산과 S자로 마을을 휘휘 돌며 굽이치는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그래서 명명된 이름이 글자 그대로 '하회'(河回). 이처럼 앉은 터가 절묘하다 보니 여태 외침 한 번 받지 않아 한옥들이 잘 보존돼 있다. 이를 한눈에 확인하려면 마을과 마주한 강 건너 병풍처럼 우뚝 선 전망대인 부용대에 오르면 된다.   

부용대엔 최근 안내판이 새로 생겼다.

하회마을 항공사진. 문화재청 제공.


 부산서 하회마을을 찾는다면 요일 선택과 시간 배정을 잘해야 한다. 매주 수, 토, 일요일 오후 2~3시 하회마을 탈춤 전수회관에서 열리는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 때문이다.

하회마을을 찾아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보지 않았다면 이는 '팥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다. 하회마을 신영희 문화유산해설사도 "전국의 탈춤 중 가장 재밌는 공연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상민들이 지배계층을 비판하고…" 하는 내용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것도,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보지 못한 사람은 죽어서 좋은 데 못 간다'는 말이 이 지방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탈을 벗으니 부네(가운데 기생 역할)는 남자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아 혼비백산했다고 한다.


공연 도중 외국인을 불러내 어깨춤 한번 덩실. 관광공사 제공

이 공연은 시종일관 관람객과 함께 한다.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본래 무동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등 10개 마당으로 구성돼 있으나 상설공연은 5~6개 마당으로 축약해 보여준다. 처음부터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고 웃음보를 자극한다. 공연 도중에는 내외국인을 자연스럽게 불러내 어깨춤을 추게 만들고 하회탈을 선물한다.

그런데 말도 안 통하면서도 입소문을 듣고 찾는 외국인을 위해 공연장 한 쪽에 대형 모니터를 설치해 재담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영어 일어 중국어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하회마을 관람은 크게 ▷부용대와 주변의 서원과 정사(精舍)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 ▷병산서원 ▷낙동강변의 송림 만송정을 포함한 하회마을 그 자체로 이뤄진다. 3시간쯤 걸리는 부산서 출발할 경우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이 시작되는 오후 2시까지 부용대와 병산서원 그리고 점심식사까지 마쳐야 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마을 입구의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 기념관, 세계탈박물관은 공연 관람 후 둘러봐도 늦지 않다. 이런 일정이라면 늦어도 오전 8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이번 추석 연휴와 오는 24일~10월 3일 열리는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벌 기간에도 예외없이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일정대로 진행된다. 축제 기간에는 수, 토, 일요일 이외 나머지 요일에도 하루 1회씩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이 열린다. 공연 시간과 장소는 축제조직위의 결정에 따른다.

하회마을 충효당.

충효당 내부에서 본 모습. 관광공사 제공.


하회마을 양진당.

하회마을 화경당(북촌댁).


류시원의 안동 집 담연재 문틈 사이로 한 일본인이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류시원의 문패가 보인다.


마을에선 풍산 류씨의 대종택인 양진당과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 화경당이라 불리는 북촌댁 그리고 마을의 중심이자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600년 된 삼신당이라는 불리는 느티나무는 빠뜨리지 말자. 화경당은 얼마 전 '욘사마' 배용준이 하룻밤 묵어간 뒤부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류시원의 집인 담연재는 현재 사람이 살지 않아 닫혀 있다. 대신 그의 문패가 형의 것과 함께 나란히 걸려 있다. 일본 사람들은 그래도 이곳에 오면 반드시 찾는다고 한다.

600년 된 삼신당이라 불리는 느티나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이곳은 소원을 적은 쪽지가 아주 많이 보인다.


마을과 부용대를 잇는 나룻배. 실은 모터로 움직이며 왕복 2000원을 받는다.

마을 옆 솔숲인 만송정.


주차장 앞 팻말.

주차장 앞 화천서원.


류성룡의 형 류운룡을 배향한 서원인 겸암정사.

옥서애 류성룡이 낙향해 기거하던 연정사.


병산서원 만대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풍광이 일품이다. 관광공사 제공.

병산서원 만대루.


부용대는 하회마을 만송정 강변에서 나룻배를 타고 다녀오거나 하회마을 입구에서 차로 '부용대·옥연정사·겸암정사'라 적힌 이정표를 보고 5분 정도를 달려야 한다. 주차장 앞 고건축물은 화천서원. 서애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룡을 배향한 서원이다. 관람은 화천서원~서애가 낙향해 기거하던 옥연정사~ 부용대~ 서애의 형 겸암이 제자를 가르치던 겸암정사~부용대~주차장 순으로 걸으면 된다. 겸암정사는 부용대에서 7~8분 걸린다. 병산서원에선 초대형 누각인 만대루를 유심히 보자. 7칸이나 되는 만대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병산과 낙동강 풍광은 마치 7폭의 동양화 병풍을 보는 듯하다.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로 나와 '풍산' '지보'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하회마을' 이정표를 만난다.


경주 양동마을

서백당의 마지막 현인 언제 태어날까

- 월성 손씨·여강 이씨 750여 년 된 처가입향
- '물(勿)'자형의 독특한 산골마을
- 취화선·혈의 누·음란서생 등 영화 속 숨은 촬영지로 유명
 
  
양동마을은 혼인을 통해 처가에 들어와 살면서 자리 잡은 처가입향(妻家入鄕)의 대표적 마을로 하회마을보다 150년 정도 앞선다. 조선 초 월성 손씨의 입향조인 손소가 장가왔다 재산을 물려받아 눌러앉고, 그 뒤 여강 이씨 이번이 손소의 딸에게 장가와 가문의 뿌리를 내렸다. 이 때문에 외손(外孫)이 복 받은 마을로 통한다. 이후 월성 손씨는 우재 손중돈이라는 청백리를 낳았고, 여강 이씨는 '동방 5현' 회재 이언적을 배출했다. 지금은 140여 세대 중 80가구가 여강 이씨, 18가구가 월성 손씨이며 나머지는 타성이다.

이곳 또한 하회마을과 함께 풍수에 따른 길지에 터를 잡았다. 실제로 두 마을은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길지로 언급됐고, 일제시대 일본 학자인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풍수'에도 '삼남의 4대 길지'에 포함됐다.   
 
하회마을이 연꽃이 물에 떠 있는 연화부수형 강마을이라면 이곳 양동마을은 주산인 설창산 문장봉에서 네 줄기의 골짜기가 뻗어내린 '물(勿)'자형의 산골마을이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특이한 지형인 것이다.

관가정을 찾은 어린이들.

양동마을 항공사진. 경주시 제공.


시 말해 마을 입구에서 보면 비교적 작은 마을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고 높아지는 전협후광(前狹後廣) 전저후고(前低後高) 형태의 지형임을 알 수 있다. 평지의 하회마을의 경우 강 건너 부용대(해발 64m)만 올라서면 훤히 볼 수 있지만 양동마을은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봐야 온전히 볼 수 있다.

임연주 문화유산해설사는 "입구에서 보이는 가옥들은 마을 전체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며, 마을 전체를 샅샅이 둘러보는 데는 골짜기와 산등성이를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최고 6시간까지 걸린다"고 설명했다. 골짜기 사이 경사진 곳에 가옥들이 보석처럼 띄엄띄엄 박혀 있어 전체 규모는 하회마을의 배쯤 된다고 보면 된다.

 양동마을은 예부터 유난히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마을 동쪽의 안산인 성주봉이 뾰족한 문필봉을 닮은 때문이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월성 손씨, 여강 이씨 두 집안에서 낸 과거급제자가 116명이나 되며, 이 중 문과 급제자가 26명으로 경주 전체 지역 59명의 절반에 약간 못 미친다.

이 마을에서 눈여겨 봐야 될 가옥은 서백당(書百堂). 서백당은 하루에 참을 인(忍)자를 백 번 쓴다는 의미. 이 마을 입향조인 손소가 세조 2년에 지은 월성 손씨의 종택이다. 마당의 600년 된 향나무에서 바로 보이는 문필봉인 성주봉의 자태 또한 인상적이다.

이 서백당의 터가 마을 주산인 설창산의 혈맥이 집중된 곳이어서 예부터 3명의 위대한 인물이 태어난다는 삼현지지(三賢之地)로 불렸다. 청백리 우재 손중돈과 그의 생질 회재 이언적 선생이 여기서 태어났으며, 나머지 한 명의 현인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손씨 문중에서는 나머지 한 명의 현인은 반드시 손씨여야 한다며 며느리 출산 때는 산실을 내줘도 딸에게는 허락치 않는다고 한다. 그 산실은 마당 내 조그만 담인 내외담 안쪽의 방이지만 아쉽게도 잠겨 있다.

서백당. 조그만 담인 내외담 안쪽의 방이 산실이다.

서백당 마당의 600년 된 향나무.


양동마을 무첨당.

양동마을 향단. 이 마을서 가장 규모가 크다.


누마루에 서면 안강들녘이 보이는, 우재 손중돈이 살던 관가정(觀稼亭), 여강 이씨의 종택인 무첨당(無添堂), 경상도관찰사였던 이언적의 모친 병간호를 위해 중종이 지어 준 향단(香壇)도 놓쳐선 안 될 이 마을의 자랑이다. 마을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향단은 한때 99칸이었지만 보수 때 줄여 지금은 56칸이다. 서백당과 무첨당은 골짜기 안쪽에 위치해 있어 발품을 약간 팔아야 한다.

양동마을은 알고 보니 숨은 영화 촬영지였다. '취화선' '혈의 누' '음란서생' '방자전' '가문의 영광' '내 마음의 풍경' 등이 주요 작품이다.

양동마을을 찾았다면 여기서 차로 10여 분 걸리는 안강읍의 옥산서원과 독락당도 찾아보자.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 선생을 봉향하는 곳이며, 독락당은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말년에 책을 벗 삼아 보낸 곳이다. 옥산서원은 아직 팻말이 없어 초행이라면 찾기에 유의해야 한다.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의 전편(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발 그리고 하회, 양동마을)을 보시려면 여기(http://hung.kookje.co.kr/500)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추석 연휴 하회·양동마을 가볼까

-마을 전체가 살아있는 문화재
-유유자적 거니니 선비가 따로 없네

-아는 만큼 보이는 '살아있는 문화유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1999년 4월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다. 가장 한국적인 곳을 보고 싶다는 여왕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 여왕은 서애 류성룡의 13대손인 한류스타 류시원의 안동 하회마을 집 담연재에서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관람한 후 47가지의 궁중음식으로 장만된 73번째 생일상(아래 사진)을 받았다.

류시원의 안동 집 담연재에서 73번째 생일상을 받고 있다. 하회마을 입구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 기념관에 있는 사진을 찍은 것이다. 맨 우측이 류시원인 것 같다. 근데 지금 류시원은 39세란다. 깜짝 놀랐다.

하회별신굿 관람 때 흥에 겨운 여왕의 발장단 맞추는 장면이 영국 BBC 카메라에 포착돼 전 세계에 방영됐다. 여왕은 류성룡의 종택 충효당에서 김치와 고추장 담그는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본 후 안방으로 신을 벗고 들어섰다. 처음에는 신을 신고 마루에 올라섰다 누군가의 귀띔으로 신발을 벗었다고 한다. 여왕이 한국의 관습에 따른 것이다. 영국 왕실에서는 맨발을 보이는 게 금기시돼 있어 공개석상에서 드러난 여왕의 첫 맨발은 앞서 장단 맞추던 신발 속의 발과 함께 대비되며 또다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덩달아 하회마을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후 2005년 아버지 부시, 지난해에는 아들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각각 이곳을 찾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일정상 여유가 있었다면 그 다음 방문지는 경북 경주 양동마을이었을 터. 양동마을도 하회마을 못지않게 한국의 전통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적 관람객이 경1000만 명을 넘어섰고, 입장료 주차비를 받아 이미 관광지화 돼 버린 하회마을보다 상대적으로 더 한적한 양동마을이 더 한국적이다." 양동마을도 수년 전부터 일본은 물론 중국 캐나다 등 여러 나라 방송에서 영상 취재를 올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한국의 역사인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지난 8월 1일 이 두 마을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수백 년 전부터 모여 사는 일종의 씨족마을. 각 성씨를 대표하는 서애 류성룡, 우재 손중돈, 회재 이언적 선생을 봉향하는 병산서원, 동강서원, 옥산서원(독락당 포함)도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항공사진으로 본 하회마을. 사진 중앙 가운데 약간 위 절벽이 부용대이며, 역S자 상단 뒷산 너머에 병산서원이 있다. 사진제공=문화재청

하늘에서 본 양동마을. 맨 우측 가운데 빨간색이 보이는 지점이 마을 입구이다. 마을 뒤 댐은 안계댐.
다른 각도에서 본 양동마을 항공사진사진. 우측 상단 쪽이 마을 입구. 사진제공=경주시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가 다가왔다. 올해는 사실상 17일 오후부터 연휴가 시작돼 길게는 9일까지 쉴 수 있다. 꿀맛 같은 여름 휴가를 한 번 더 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차례와 성묘를 다녀온 후 '길고 긴' 이번 한가위 연휴에는 가족이나 친구들, 아니면 연인과 함께 유네스코가 인정한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을 다녀오는 것이 어떨까.

"한옥만 많이 있다고 해서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은 아닐 겁니다.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전통 관습이 살아 있고, 올곧은 유교 정신이 지금까지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지휴(62) 경주 양동마을 문화유산해설사의 이 말 속에는 전통마을을 찾아 무엇을 느끼고 배워야 하는지가 잘 함축돼 있다. 그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세계문화유산이 일등 관광지로 가는 첩경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며 "이는 지금껏 지켜온 전통을 그대로 유지해 달라는 전 세계인의 공식적 부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후 주변에 흉물스러운 다리가 건설되면서 5년 만인 지난해 세계문화유산 목록에서 삭재된 독일 엘베계곡의 교훈이 떠오른다.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의 후속편(유유자적 거니니 선비가 따로 없네)을 보시려면 여기(http://hung.kookje.co.kr/501)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독락당 옥산서원 등 회재 선생의 흔적과 해후


호젓한 산길따라 수줍은 야생화 널렸네
원점회귀 코스 … 6시간 내외 걸려
정상 봉좌암 오르면 시원한 조망
독락당·옥산서원 등 문화재 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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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좌산 초입에 만나는 소나무는 마치 공들인 분재를 연상케할 정도로 운치가 있다.


산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잠시 짬을 내 한번쯤 들러봄직한 소중한 문화재가 곁에 있어도 애오라지 이들의 짝사랑은 오직 산뿐. 산 자체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옆에서 말없이 지켜본 이들은 산세와 주변 조망, 수종 및 야생화, 명당 자리 등 그야말로 산에 대한 모든 것을 파헤친다. 피곤에 지친 하산길에도 복귀까지 하며 아쉬웠던 점을 토론한다. 진정 산꾼인 이들의 수첩엔 대개 향후 오를 전국의 산이 빼곡히 적혀있고, 짧게나마 반드시 산행기를 쓴다.

산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더 많다.

언제 이곳에 또 오겠느냐며 온 김에 주변의 모든 곳을 샅샅이 훑고 가야 된다는 것이 이들의 지론. 심지어 산행구간을 줄이기도 한다. 임도 보고 뽕도 따고, 산도 좋고 문화재 답사는 더 흥미로운 그들이다. 혹 근처에 기가 막힌 맛집이나 유명 온천이 있다면 발품을 팔아 오붓한 시간을 보낸 후 고속도로를 씽씽 달리자고 주장한다.

이번 주 산행팀이 찾은 경주 안강의 봉좌산~어래산은 후자의 산꾼들이 선호하는 산행지다. 들머리는 정확히 말해 안강읍 옥산리 세심마을. 성리학의 기초를 마련한 영남학파의 태두인 회재 이언적 선생이 말년에 세상과 발길을 끊고 책을 벗삼아 보낸 독락당(獨樂堂)과 그의 사후 후학들이 선생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옥산서원이 있는 곳이다. 도덕산 자옥산 봉좌산 어래산 삼성산 등 500~700m급 고만고만한 산들이 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다. 이곳에서 차로 10분 거리에는 국내 최대 양반마을인 양동마을이 있다.

또 들머리로 향하는 길엔 국보 제40호인 정혜사지 13층석탑이 똬리를 틀고 있어 이래저래 일거다득(一擧多得)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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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로 가는 길에 도덕산을 배경으로 홀로 서 있는 국보 제40호인 정혜사지 13층석탑을 만난다.
 
산행은 독락당 주차장~옥산저수지~월성 이씨묘(들머리)~경주 이씨묘~낙동정맥길 삼거리~낙동정맥 갈림길~봉좌산 이정표~봉좌산(600m) 정상~임도~잇단 묘지 넷~어래산(563m) 정상~옥산서원~독락당 주차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6시간 내외. 멧돼지를 조우할 만큼 인적이 드물지만 길은 대체로 또렷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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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 옆 도로로 오른다. 이 길은 옥산저수지를 지나 봉좌산 아래 민내마을까지 이어진다. 왼쪽에 자옥산 도덕산이 저 멀리 확인된다.

도덕산 등산안내도와 세심마을 농사체험장, 그리고 정혜사지 13층석탑, 도덕산 영광사를 잇따라 지나 우측 관음사 방향으로 향하면 옥산저수지. 길 옆에는 노란 달맞이꽃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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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좌산 정상 봉좌암에 선 이창우 산행대장이 주변 조망을 살피고 있다.


저수지를 반쯤 돌면 소나무가 거의 분재 수준. 곡각지점 볼록거울 맞은 편 월성 이씨묘가 보인다. 묘지 옆 산길이 들머리다. 처음부터 땀깨나 흘릴 각오를 하고 오르자.

껍질이 거북등짝 모양인 소나무가 아주 운치있으며 경주 이씨묘 주변에서 절정이다. 이때부터 숲속에 파묻힌다. 하늘도 보이지 않는 세상과의 단절이다.

계속되는 된비알. 1시간40분 정도 이어진다. 물론 내리막도 평평한 오솔길도 반복되지만 큰 흐름은 오르막이다. 인적이 드물어 낙엽이 고스란히 제모양을 한 채 쌓여있고 비비추 원추리 술패랭이도 볼 수 있다.

산허리를 크게 돌면 한 순간 우측 산사면이 벌거숭이로 보이는 지점에 닿는다. 상봉은 우측 건너편. 당연히 등로는 우로 크게 휘어지는 시계방향. 잠깐의 내리막 뒤 갈림길. 이때부터 낙동정맥길로 뚜렷하다. 왼쪽 도덕산 자옥산, 우측 봉좌산 방향. 우로 간다. 여기서 20분 뒤 낙동정맥 갈림길. 왼쪽 이리재를 거쳐 포항 운주산, 오른쪽 봉좌산 어래산 방향.

  
 
7분 뒤 '봉좌산'이라 적힌 첫 이정표를 만나고 여기서 9분 뒤 상봉에 닿는다. 암봉이다. 봉황 모양을 한 봉좌암이다. 조망은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정상석을 보고 서면 왼쪽에서부터 도덕산 자옥산 천장산 기룡산 운주산 침곡산 비학산 내연산 향로봉이 시야에 들어오고 어래산은 오른쪽 저 멀리 세번째 봉우리. 두번째가 암봉이니 참조하길.

정상에서 20m정도 내려오면 갈림길. 왼쪽은 기도원으로 내려서는 길. 20분 뒤 안부에 닿고 길은 산허리를 돌아나간다. 송림을 지나면서 멧돼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러고보니 산길이 온통 멧돼지가 다닌 흔적이 역력하다.

첫번째 봉우리를 넘고 두번째 암봉까지는 정상에서 대략 1시간. 짧지만 땡볕 속 암릉을 내려서면 다시 안부에 닿고 여기서 10여분 뒤 임도 사거리와 만난다. 왼쪽 포항 기계면, 오른쪽 민내마을 방향. 갈림길 사이 산으로 바로 올라선다. 10분 뒤 잇단 묘지 4기를 지나면 다시 7분 뒤 권씨묘. 세번째 봉우리다. 봉좌산 정상에서 보면 세번째 봉우리가 어래산이었는데 막상 다가가니 봉우리가 하나 숨어있었던 셈.

5분 정도 내려서면 안부에 닿고 이때부터 본격 어래산으로 향한다. 안 보이던 기암괴석이 연이어 나타나는 급경사 된비알이다. 5분 뒤 밧줄을 잡고 통과해야 하는 바위틈을 지나면 사실상 오르막길은 끝. 10분 정도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걸으면 헬기장. 어래산 상봉은 여기서 10분 뒤. 정상석은 없고 녹슨 철제망루가 외로이 서 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나무를 베어놓아 왼쪽 안강 방면으로 시원한 조망을 제공한다. 특히 예부터 곡창지대인 광활한 안강들녘의 푸름이 인상적이다. 하산길은 쉬엄쉬엄 내려서면 된다. 50분이면 옥산서원에 닿는다. 사실상 산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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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재 이언적 선생이 말년에 세상과 발길을 끊고 책을 벗삼아 보낸 독락당.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도 무사히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였던 옥산서원은 만개한 분홍빛 백일홍이 옛 고가와 무척 잘 어울린다. 서원 옆을 흐르는 자계천변 세심대 반석을 지나 외나무 다리를 건너면 옥산식당 앞. 여기서 독락당 주차장까지는 6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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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 옆을 흐르는 계류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 교통편-경주서 안강 독락당행 203번 시내버스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경주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30분 첫 차를 시작으로 15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000원.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들머리인 독락당 앞 종점까지 가는 제일교통 203번 시내버스는 오전 8시50, 11시50분에 있다. 1100원. 참고로 옥산서원 입구까지 가는 버스는 202 205 206 207 208번이 있다. 대신 20~30분 정도 걸어야 한다.

독락당 앞 버스정류장에서 경주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시20, 5시35, 7시50분(막차)에 있다. 경주터미널에서 노포동터미널행 시외버스는 15분 간격으로 막차는 밤 9시50분에 출발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경주IC~보문단지 입구 지나~포항 울진 7번 국도~포항 안강 방면~7번 포항~영천 안강 28번 국도~28번 안강 방면~대구 영천~양동마을 입구 지나~옥산서원 방향 우회전~옥산서원 지나 독락당 주차장 앞 순.

# 떠나기전에-식수 충분히 준비하고 긴 옷 입어야

정상에 봉좌암이라는 봉황모양의 바위가 있는 봉좌산(鳳座山)과 옛날 해일이 닥쳐 바닷고기가 산까지 올라왔다 해서 명명된 어래산(魚來山)은 경주 안강읍과 포항 기계면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봉좌산을 지나 어래산으로 가는 산길에는 '(경주·포항)시경계종주'라고 적힌 리본을 볼 수 있다. 봉좌산은 낙동정맥이 운주산을 지나 이리재로 내려선 후 도덕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상에서 0.7㎞ 정도 벗어나 어래산으로 이어진다.

산행팀은 과거 옥산서원 인근 산장식당 앞에서 출발, 자옥산~도덕산~봉좌산~포항 치동마을, 안강읍 하곡~삼성산~도덕산~정혜사지 13층석탑, 도덕산 도덕암~천장산 코스 등을 소개했다.

이번에 소개한 봉좌산~어래산 코스는 독락당 및 옥산서원 인근에서 출발하는 산행코스의 결정판인 셈. 체력에 자신있다면 더위가 한풀 꺾일 때쯤 자옥산~도덕산~봉좌산~어래산 원점회귀 코스에 도전해볼 것을 권한다.

아쉬운 점 하나. 옥산서원 옆을 흐르는 자계천 계류를 가로지르는 외나무 다리가 최근 교체됐다. 하지만 폭이 아주 넓은데다 밝은 목재 색깔이 그대로 드러나 영 운치가 없다. 자고로 외나무 다리는 좁고 고색창연하면서 아슬아슬해야 되는데 말이다.

고백컨대 여름산행지로 약간 적합하지 않다. 식수는 충분히 준비하고 긴옷을 입어야 한다.

※대중교통편은 현지 사정상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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