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우시죠. 인파로 몸살을 앓는 유명 해수욕장 대신 한적한 계곡으로 떠나보시는 것은 어떨런지요.

 
현기증이 일 정도로 쏟아지는 폭포수와 허리춤까지 푸욱 빠지는 소와 담은 사실 작열하는 태양이 부담스러운 해변이나 강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청량감을 안겨주지 않습니까.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智者樂水)'란 말도 있듯 여름 휴가만은 고전적인 우리 조상들의 방법이 정답인가 싶기도 합니다.

 가볼 만한 부산 경남 울산 지역 계곡을 꼽아 보니 대략 30여 개나 됐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폭포 하나 달랑 있는 곳도 있고, 지명도는 낮지만 우리땅 어느 계곡보다 알찬 곳도 있습니다.

 미답의 골짝도 있고, 아이들과 맘껏 수영할 수 있는 너른 소와 폭포를 품은 계곡도 찾아보면 숨어 있습니다. 암반 사이로 계류가 포말을 일으켜 마치 놀이공원의 미끄럼틀을 떠오르게 하는 곳도 있답니다. 손이 시려울 정도의 얼음골도 빼놓을 수 없지요.

 혹 이런 분들도 계실줄 압니다. 여름에는 계곡 또한 바닷가와 마찬가지로 인파로 몸살을 앓는다고.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실.
 계곡 하류에서 적어도 30분 정도 발품을 팔면 아무도 없는 한적한 나만의 공간이 기다립니다.

계곡을 테마 별로 한번 분류해 봤습니다. 딱히 무 자르듯 구분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편의상  나눠봤으니 생각이 다르더라도 비난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평온하고 한적한 계곡

 가인계곡. 이 계곡과 만나는 곳이 봉의저수지이다.

봉의저수지와 구만산.

가인계곡에서 만난 무당개구리.


  
최근 수몰 위기에 처한 밀양 산내면 가인리 인곡마을 뒤 가인계곡이 우선 떠오른다. 봉의저수지 옆으로 난 길로 10분 정도만 발품을 팔면 만난다. 산꾼들은 흔히 구만산장에서 출발, 구만폭포를 거쳐 구만산을 찍고 가인계곡으로 하산한다. 계곡에 박힌 바위들은 오랜 세월 동안 물에 패인 흔적이 역력하고 계곡을 감싸고 있는 주변 숲은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성인 가슴까지 찰 정도의 깊은 소와 담이 널려 있다. 층층이 이어지는 계곡 라인은 휘어져 있어 잠시 벗고 들어가도 서로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연 은신처가 된다. 


     인골산장 오리고이. 스테인리스판을 중심으로 목욕탕 플라스틱 의자에 빙 둘러앉아 먹는다. 주말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인계곡의 물이 유입되는 봉의저수지 바로 아래 인골산장(055-353-6531)은 산꾼들에게 아주 유명한 집이다. 스테인리스판에 구워먹는 오리고기는 일품이다. 주말엔 예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지산 쇠점골도 잘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계곡. 필부들은 그 유명한 호박소와 다리 건너 1㎞ 지점에 위치한 오천평반석 정도까지만 오르지만 여기서 30~40분 정도 발품을 더 팔면 형제폭포와 호박소의 축소판쯤으로 보이는 애기호박소 등 수영도 가능한 넓고 깊은 소를 여럿 만난다. 오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 신선놀음을 즐길 수 있다.
발품이 부담스러우면 석남터널 인근 옛 24번 국도 곡각 지점에 위치한 포장마차 '이모집' 앞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만난다. 최근 밀양시에서 덱을 조성해 놓았다.

가지산 쇠점골.
호박소.

오천평반석 인근에서 만난 두꺼비.

오천평반석. 넓긴 넓지만 오천평이라 명명될 만큼 어마어마하진 않다.


9개의 영남알프스 산군 중 지명도가 가장 낮아 상대적으로 한산한 문복산 계살피계곡 조용한 한때를 보낼 수 있는 명당. 청도 운문면 삼계리에서 출발하는 계살피계곡의 하류는 상수도 보호구역이라 접근할 수 없지만 넉넉잡아 40~50분 정도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소와 담 그리고 앙증맞은 폭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문복산 계살피계곡.

폭포 하나는 끝내줘요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의 간월재 기슭에서 발원한 파래소폭포는 폭포만으로 볼 때 영남권 최고로 꼽힐 정도로 그 자태가 빼어나다.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 내 위치한 이 폭포는 넓고 웅장한 암벽을 타고 쏟아지는 자태가 신비롭고 황홀할 정도. 원래 이곳은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바라던 대로 이뤄진다고 하여 바래소라 불렸으나 지금은 그 이름에서 파생돼 파래소로 굳어졌다. 물놀이는 불가능하다. 굳이 하고 싶다면 인근의 철구소에서 하면 좋을 듯싶다.

파래소폭포.

함양 용추계곡 입구에 위치한 용추폭포 또한 한여름 더위를 잊게 해주는 명소. 언제나 유량이 풍부해 폭포 아래 단 몇 분만 앉아 있어도 옷이 흠뻑 젖을 만큼 물방울의 분무가 아주 세다.

용추폭포.
 
흔히 포항 보경사계곡으로 더 잘 알려진 천령산 청하골은 4㎞에 걸쳐 무려 12개의 폭포가 있어 일명 '12폭포골'로 불린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넓은 소와 병풍처럼 둘러싸인 기암괴석, 그리고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소나무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 중 연산폭포는 그야말로 군계일학이다. 높이 30m쯤 되는 이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고 있노라면 대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포항 청하골(일명 보경사계곡) 연산폭포.

자녀와 함께 가볼 만한 계곡

함양이 자랑하는 용추계곡 화림동계곡과 달리 함양 이외의 사람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계곡이 바로 부전계곡이다. 군은 이 계곡만은 개발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포장도 하지 않은 채 알리지도 않고 있다. 백두대간 영취산이 품고 있는 이 계곡은 암반 사이로 옥류같은 계류가 포말을 일으키며 용소에 이르는 모습이 마치 놀이공원의 구불구불한 슬라이드를 떠오르게 한다. 이곳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놀기에 적합하다.

             함양 부전계곡.

울산 대운산 상대계곡과 도통골도 한여름 자녀와 함께 가면 좋을 계곡이다. 양산 웅상읍과의 경계에 솟은 대운산은 사계절 산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여름이면 단연 돋보인다. 관리사무소를 지나 만나는 첫 갈림길에서 우측 내원암 방향 대신 좌측 애기소농장 방향으로 향하면 옥류같은 맑은 물이 흰 포말을 일으키는 애기소와 구유소를 만난다. 여기서 대피소가 위치한 도통골로 30분쯤 임도를 따라 걸으면 삼단폭포와 너른 소가 기다린다. 수영도 가능하다.

대운산 도통골.

배내골 주암계곡의 철구소 또한 온가족이 가볼 만한 계곡이다. 영남알프스 재약산에서 발원한 주암계곡에서 배내골로 내려오는 지류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는 찾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지자체가 다리와 덱을 조성해놓아 찾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배내골서 양산과 울산의 경계를 지나 울산 쪽 강촌가든 옆 다리만 찾으면 쉽게 만난다. 시퍼런 물이 한눈에 봐도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데다 웬만한 수영장만큼 넓다. 깊은 곳은 어른 키를 능가한다. 중고등학생 자녀라면 놀기에 안성마춤이다. 튜브 필수.

배내골 철구소.

간월산에서 발원한 작괘천도 여름이면 단골 물놀이 명소로 소문이 자자하다. 작천정 앞을 흘러 일명 '작천정 계곡'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세월에 깍인 수백평이나 되는 너른 암반이 품은 유량이 웬만한 풀장에 버금간다.
울산 작괘천, 일명 작천정계곡이라고 불린다.

손발이 시려운 신비한 얼음골도 있어요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재약산 기슭 해발 600~750m에 위치한 골짜기인 밀양 얼음골 정식 명칭은 시례빙곡(詩禮氷谷)으로 천연기념물 224호. 주차장에서 넉넉잡아 25분 정도 걸어야 만난다.

삼복더위에 그 이름 그대로 얼음이 얼고, 겨울엔 얼음이 녹아 더운 김이 올라와 예부터 부·울·경 지역의 단골 피서명소로 자리매김해왔다. 천황사에서 다리를 건너면 순식간에 오싹해질 정도로 냉기가 온몸을 감싼다.

밀양 얼음골.

천황사 입구에서 우측은 얼음골 결빙지(130m), 좌측은 암·수 가마볼폭포가 위치한 가마볼협곡(180m). 대개 결빙지를 돌아 가마볼폭포를 보고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나오면 원점회귀가 된다. 얼음이 어는 지역을 철망으로 막아놓아 실망스럽지만 냉기 하나만은 끝내준다. 여기서 240m쯤 떨어진 암·수 가마볼폭포 또한 유량이 풍부해 더위를 날려준다.

수가마볼폭포.

암가마볼폭포.


얼음골로 가기 위한 다리 위해서 본 모습. 이곳은 얼음골 하류 계곡인 셈이다. 
쇠점골 입구 계곡.

의성 빙계계곡 빙혈(氷穴)과 풍혈(風穴)로 유명하다. 계류가 기암절벽을 굽이쳐 멋스런 풍광을 연출, 경북8승 중 하나로 꼽히지만 도로에서 접근하기가 어려워 발담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참고하길. 
  
오르는 길 옆 바위 사이에도 찬바람이 나오지만 바위굴을 벽돌과 유리문으로 막은 빙혈에선 한기를 느낄 정도로 차다. 빙혈 바로 위에 위치한 풍혈은 바위와 바위 사이의 작은 굴. 어른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공간이다. 빙혈에 비하면 냉기는 약하지만 한여름 더위를 쫓기에는 그저 그만이다.
의셩 빙계계곡의 풍혈.

청송 얼음골 밀양 얼음골이나 의성 빙계계곡에 비해 지명도는 떨어지지만 경북 내륙에선 꽤 유명한 여름철 명소이다. 차가운 얼음물이 솟는 지점에 굴을 조성, 돌 틈 사이로 나오는 찬바람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겨울이면 빙벽대회가 열리는 높이 62m의 인공폭포 또한 볼거리다.

청송 얼음골. 찬바람과 함께 시원한 석간수가 일품이다.

계곡산행의 진수 셋

 평소에는 잘 찾지 않다가도 여름철만 되면 성지순례하듯 전국의 산꾼들이 모여드는 곳이 밀양 구만산이다. 해발 758m로 영남알프스 산군 중 높지 않은 데다 전망 또한 신통치 않지만 빼어난 계곡 덕분에 여름이면 북새통을 이룬다. 그 절정은 구만폭포. 40m 높이의 폭포수가 멋있지만 물이 떨어지는 시퍼런 물빛의 너른 소는 어른들의 거대한 물놀이장으로 변한다. 남녀 구분없이 나이를 잊고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그럴까. 아무튼 한여름 구만폭포는 어른들에 의해 점령된다. 들머리에서 1시간.

                 구만산 구만폭포.

금오산 하면 흔히 구미가 떠오르지만 여름철 금오산칠곡 금오동천을 품은 남릉으로 올라야 제맛이다. 들머리에서 7분이면 연이은 폭포가 나그네를 기다린다. 제4, 3, 2, 1폭포와 벅시소 용시소 구유소 선녀탕이 연이어 나타난다. 금오산은 계곡뿐 아니라 산릉에서도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8부 능선쯤 산속에 축구장 면적의 절반쯤 되는 평지가 있고, 정상 바로 아래 절벽 사이에는 약사암이 있다. 낙동강과 구미시가 한눈에 펼쳐지고, 구름다리로 연결해놓은 범종각은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하산길의 부처바위 석굴법당 등도 여느 산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볼거리다.
 

               칠곡 금오산 금오동천 선녀탕.

포항 내연산 삼지봉이 품은 마실골~덕골은 산꾼들로부터
'원시계곡의 백미'라고 불리는 계곡산행의 히든카드. 옥계37경으로 유명한 영덕 옥계계곡의 상류인 하옥리계곡의 지류인 마실골~덕골기기묘묘한 암벽과 단애, 이름모들 무수한 폭포와 소·담, 하늘을 가릴듯한 울창한 숲은 곳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등산로가 제대로 없어 초보자나 나홀로 산행은 결단코 말리고 싶다. 최소 서너 명은 함께 하길 권한다.
                       '원시 계곡의 백미'로 불리는 포항 내연산 삼지봉이 품은 덕골 하산길.

서부 내륙 거창의 산들은 부드러우면서 힘이 넘친다. 금원산에서 바라본 건너편의 현성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에 걸쳐 있는 금원산(1353m)은 지리산 대성골과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분단의 아픈 현실을 간직한 현대사 비운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중 국군 토벌대와 파르티잔 양측의 최후 격전지가 지리산 대성골이라면 덕유산에 집결한 500여 명의 남부군이 지리산으로 가는 길에 들러 계곡에서 목욕을 한 곳이 바로 금원산이다.

 물론 차이는 분명히 있다. 대성골이 피비린내 나는 전장(戰場)이었다면 그래도 금원산은 분명 파르티잔의 일시적 휴식공간이었던 셈. 바로 그곳이 금원산이 자랑하는 유안청계곡. 유안청폭포를 비롯, 소와 담이 주변 숲과 어우러져 `거창 제1의 계곡'으로 손꼽힌다.

 영화 `남부군'에서 수백 명의 파르티잔이 남녀 구분없이 알몸으로 목욕하던 장면이 바로 유안청계곡이라고 하면 `아!'하며 새삼 그 장면을 떠올리는 산꾼들이 많을 것이다.

40여 년이 지난 1993년 금원산에는 자연휴양림이 들어섰다. 그리고 유안청계곡은 등산로의 일부로 새롭게 정비돼 만인에게 개방됐다. 비록 파르티잔의 흔적은 오간데 없지만 산꾼들은 계곡을 보며 현대사의 아픔을 되새긴다.

흔히 자연휴양림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산행팀도 가섭사지 마애삼존불 등 볼거리가 많은 지재미골로 올라 ‘역사의 현장' 유안청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했다.

 물론 함양의 용추폭포에서 기백산을 거쳐 금원산을 오르는 짧은 코스도 있지만, 이 코스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볼거리가 없어 `금원·기백`을 올랐다는 기록만 안겨줄 뿐이다.

산행은 금원산 자연휴양림 안내도(매점)~문바위~가섭암지 마애삼존불~지재마을(민가)~임도~지능선~주능선~전망대~금원산 정상~헬기장~돌탑봉우리(1315m봉)~전망대~임도~유안청폭포~자운폭포~복합산막 입구~매점 순. 5시간 정도 걸린다. 산길이 평탄한데다 이정표도 잘 정비돼 있다.


매점 앞 휴양림 안내도 앞에서 `마애삼존불상 문바위'라 적힌 팻말이 가리키는 우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수정같이 맑은 계곡을 지나면 곧 문바위 갈림길. 정면에 문바위가 보이고 `금원산 6.5㎞, 마애삼존불, 현성산'은 오른쪽 방향.
등산로 초입 계곡을 건넌다.

잠시 문바위를 보고 가자. 지재미골 입구에 서 있어 문바위라 명명됐다. 높이 20m, 너비 15m, 규모로 국내에서 단일바위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저 보기만 해도 입이 쩍 벌어진다.

국내에서 단일바위로는 가장 크다는 문바위.

가섭사지 마애삼존불상.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 마애삼존불 방향으로 간다. 이제야 본격 산길이다. 산죽길을 에돌면 아름드리 이상의 엄청 큰 소나무가 기다린다. 왼쪽엔 문바위 뒷모습이 보인다. 저 높은 곳에 누군가 올라가 돌탑을 세워놨다. 올라가는 것은 차치하고 돌은 어떻게 운반했을까.

이내 가섭암 터. 마애삼존불상 관리건물 뒤쪽으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바위굴이 있고, 그 중 안쪽 남향 바위에 삼존불이 새겨져 있다. 보물 제530호.

이제 편안하게 오솔길을 걷는다. 나무다리를 건너면 민가를 만난다. 지재마을이다. 밭이 잘 일궈져 있고 양지바른 곳에 진돗개가 졸고 있다. 10분 뒤 삼거리. 직진한다. 비로소 정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정상까지는 3.2㎞. 잇단 무덤을 지나면 임도. 오른쪽으로 50m,쯤 가다 다시 산길로 올라선다.

8분 뒤 지능선에 닿는다. 정면엔 현성산 정상(955m). 멀리서 봐도 단번에 화강암산임을 알 수 있다. 정상 왼쪽으로 서문가바위와 필봉이 이어진다. 이름이 재밌다 서문가바위. 흔히 임진왜란때 한 여인과 서(徐) 씨, 문(文) 씨가 피란을 왔다가 아이를 이곳 바위 옆에서 출산했다. 아이 아빠가 누군인지 정확히 몰라 이렇게 명명됐다는 설이 있지만 실은 고려말 공민왕때 노국대장공주와 함께 온 원나온 시종의 성이 서문(西門) 씨였다. 그 시종이 당시 이곳 안의땅을 식읍으로 받았다. 그러다 1914년 안의가 거창으로 편입됐다. 하지만 이후 호사가들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엉뚱하게 와전되면서 전혀 근거없는 `서문가바위'로 돼버린 것이다.

지능선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낙엽과 솔가리가 한데 얽힌 푹신푹신한 양탄자길과 바윗길을 번갈아 20분 정도 오르면 주능선. 정상까지 2.7㎞. 이정표 뒤로 남덕유산 삿갓봉 무룡산 백암봉 등 백두대간 능선이 펼쳐진다.

이제 정상을 보며 능선길을 달린다. 10분 뒤 전망대. 왼쪽에 현성산과 오도산 비계산 별유산, 그 뒤로 가야산 단지봉 수도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에는 눈이 쌓여 있다.
              금원산 정상.

점점 경사가 급해지면서 곳곳에 밧줄이 매여져 있다. 능선마루에서의 경관은 빼어나지만 다소 무료하다. 이렇게 1시간30분 정도 걸으면 마침내 금원산 정상.

거창에서 출발했지만 정상은 함양군 땅이다. 정면에 돌탑 봉우리가 보이고 그 오른쪽 봉우리가 기백산이다. 기백산으로 뻗어나가는 산줄기를 보니 육중한 산세가 주는 장쾌함과 호방함이 뼈속까지 스며든다. 그 뒤로 거망산과 황석산이 이어지고 괘관산 백운산은 저 멀리 시야에 들어온다.
하산길에서 본 현성산.

하산은 왼쪽으로 내려선다. 헬기장을 지나 8분 뒤 돌탑 봉우리(1315봉)에 닿는다. 여기서 유안청폭포 방향으로 직진한다. 15분 뒤 전망대. 방금 올라왔던 왼쪽 능선길이 훤히 보인다. 좀 더 내려가면 오른쪽에 기백산 책바위가 또렷하다.
             유안청계곡의 와폭.
           
         유안청계곡 제1폭포.

다시 40여 분 내려오면 임도. 대각선으로 길을 건너 산길로 내려선다. 이제 `유안청폭포, 휴양림' 이정표를 보고 걷는다. 숲그늘 짙은 계곡을 따라 20분쯤 내려오면 유안청폭포. 90m, 정도의 비스듬한 일종의 와폭인 유안청폭포와 주변 경관을 보노라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폭포 끝단 쯤 폭포 감상을 위한 일종의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 자운폭포와 복합산막을 지나 20분이면 들머리인 매점 앞에 닿는다.

#떠나기전에 - 금원산 자연휴양림 통나무집 인상적

산꾼들 사이에서 금원산은 항상 기백산과 짝을 이뤄 언급된다. 같은 능선으로 연결돼 한번 산행으로 두 산을 함께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금원·기백'으로 불린다.

금원·기백에 비해 지명도는 떨어지지만 이웃 함양군에도 항상 붙어 다니는 산군이 있다. 바로 거망산(1245m)과 황석산(1235m)이다. 역시 한 능선으로 이어져 '거망·황석'으로 지칭된다.

이들 4개 산의 모산(母山)은 경남 거창 함양군과 전북 장수군에 걸쳐있는 남덕유산(1507m). 남덕유산에서 남동쪽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월봉산(1279m)을 거쳐 두개의 능선으로 나란히 갈린다. 거창쪽으로 금원산~기백산, 함양쪽으론 거망산~황석산이다. 결국 크게 보면 금원~기백~거망~황석산이 말발굽처럼 하나의 능선으로 연결돼 있는 셈. 이들 산은 모두 1000m가 넘는 고봉이어서 조망이 탁월한데다 산세 또한 하나같이 빼어나 부산을 비롯한 전국 산꾼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고 있다.

거창군의 금원산 자연휴양림과 함양군의 용추 자연휴양림이 이들 봉우리 사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각각 위치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아침 일찍 부산을 출발하면 금원산 기백산을 하루에 종주할 수 있다. 원점회귀 코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한걸음에 내달아야 한다.

금원산 자연휴양림을 찾아 동화에나 나옴직한 통나무집과 주변 경관을 보았을 때 모두들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날 출발해 아름다운 대자연을 만끽한 후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했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다.


TV 냉장고 가스레인지 등을 갖춘 콘도식 복합산막(사진)과 낭만적인 산꾼들을 위한 방갈로식 산막, 그리고 숲속수련장과 숲속야영장을 갖춰 입맛대로 선택할 수 있다. 산행을 하지 않더라도 하루 이틀 이 곳을 찾아 도심 속의 때를 말끔히 씻어내기에 최적의 장소로 추천하고 싶다. 콘도식 산막의 경우 5명이 하룻밤을 묵을 경우 사용료는 5만원. (055)943-0340

# 교통편 - 대전통영 고속도로 지곡 안의IC로 나와야

부산에서 거창 금원산 자연휴양림까지는 시외버스를 탄 후 거창읍에서 군내버스를 갈아타고 위천면에서 택시를 타는 방법이 가장 편리하다.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거창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부터 20~40분마다 있다. 1만1800원. 2시간40분 정도 걸린다.

거창시외버스터미널에서 위천면 방면으로 가는 군내버스(서흥여객)는 3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150원. 군내버스정류장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나와 왼쪽으로 가다 다리(중앙교)를 건너면 만나는 중앙시장 안에 있다. 10분 정도 걸린다.

위천면에서 휴양림까지는 택시(055-943-0300)가 편리하다. 거창읍에서 휴양림까지 바로 가는 택시(055-942-2080)도 있다..

위천면에서 거창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는 군내버스 막차는 오후 7시40분에 있다.

거창에서 부산 서부버스터미널행 시외버스는 30~4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막차는 오후 6시40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서진주 분기점~대전통영 고속도로~지곡·안의IC~좌회전 안의 거창 방면~마리삼거리 좌회전~위천 무주 방면~위천면 좌회전~금원산 자연휴양림 순. 수승대에서 5㎞ 정도 거리.
※교통편은 현지 사정상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산림청은 지난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맞아 전국의 100대 명산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와 관련, 이창우 산행대장은 "100% 공감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그렇듯 수도권의 산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부각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평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국가대표 선수 선발 때 항상 나오는 말처럼 '실력 보다는 이름 위주로 뽑았다는 것'.

이번 주 산행팀이 찾은 문경 대야산은 산꾼들 사이에서 이견의 여지가 없는 명산 중 명산이다.

문경은 100대 명산 중 전국에서 가장 많은 4개의 산을 보유하고 있다. 문경의 진산 주흘산(1106m)과 황장산(1077m) 희양산(999m) 대야산(931m)이 바로 그것이다.

지명도 면에선 문경새재를 품고 있는 주흘산이 가장 앞서지만 산꾼들에게 물어보면 십중팔구 대야산을 으뜸으로 친다.

최고 수심이 3m쯤 되는 무당소는 100여 년 전 물동이를 지고 가다 빠져 죽은 새댁을 위해 굿하던 무당이 다시 빠져 죽었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대야산 제1 비경이자 문경8경 중 하나인 용추폭포. 움푹 팬 하트 모양의 용소가 인상적이다. 실제로 수정맥인 공룡알 화석에서 비롯됐다.

망속대(忘俗臺). 속세와 단절된 듯 주변 숲이 우거지고 아름다워 세상만사 근심걱정 모두 잊는다는 곳이다.

계곡이면 계곡, 조망이면 조망, 산세면 산세가 넘치면 넘쳤지 어느 한 구석 모자람이 없는 대야산은 입소문을 탄 지 아직 10년도 채 안 돼 한적하다. 무엇보다 요즘 대야산은 단풍이 용추계곡과 변화무상한 기암괴석을 휘감아 한층 더 멋을 부리고 있다.

계곡 조망 산세 그리고 한적함, 여기에 단풍까지 가세했으니 어찌 나라땅 최고의 산행지라 부르지 않으리오. 이 가을 대야산을 찾지 않으면 목놓아 후회하리라 확신한다.

산행은 가은읍 완장리 대야산 간이주차장~(돌마당식당)~(무당소)~용추폭포~망속대~월영대~다래골~떡바위~삼거리 이정표~밀재~거북바위~코끼리바위~대문바위~농바위~버섯바위~중대봉 갈림길~대야산~피아골~건폭~월영대~간이주차장 순. 걷는 시간만 4시간50분. 길은 반듯하고 이정표 정비도 잘돼 있지만 인상적인 볼거리가 너무 많아 예상외로 시간이 지체될 수 있으니 유의하길.


산행 기점은 대야산 등산안내판이 서 있는 간이주차장. 안내판 좌측 뒤 큰 바위가 마당바위이다. '돌마당식당' 좌측으로 용추계곡을 거슬러 올라간다. '화장실'이라 적힌 이정표 방향은 내년 3월 완공예정인 '대야산 자연휴양림' 가는 길이다.
   
 5분 뒤 식당촌을 벗어나면 나무계단으로 시작되는 등산로 입구. 바로 오르지 말고 계곡으로 잠시 눈길을 돌려보자. 너른 소가 보인다. 무당소다. 얼핏 봐선 어른 무릎 정도의 깊이로 보이지만 최고 수심이 3m쯤 된단다. 100여 년 전 물동이를 지고 가다 빠져 죽은 새댁을 위해 굿하던 무당이 다시 빠져 죽었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계단을 올라 너른 암반을 지나 잠시 숲으로 접어든다. 지금은 등산로가 아니지만 우측은 촛대봉 방향, 산행팀은 직진한다. 첫 번째 덱이 끝나자마자 길 우측에 구멍을 막아놓은 듯한 큰 바위 두 개가 눈에 띈다. 60여 년 전 텅스텐 채굴을 위해 뚫은 굴이지만 한국전쟁 이후 빨치산의 은신처로 사용될 소지가 있어 막아놓은 것이다.

잠시 후 덱 좌측이 열려 있다. 알고 보니 대야산 제1의 비경이자 문경8경 중 하나인 그 유명한 용추폭포 진입로인 셈이다. 너른 화강암반을 타고 흐르는 와폭 아래 하트 모양의 독특한 형상의 움푹 팬 용소가 탄성을 자아낸다. 암수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오른 곳이라는 전설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용소 양쪽 화강암반 위에는 용비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용소와 바로 아래의 시퍼런 물빛의 아랫소를 연결하는 길게 팬 홈통형 통로는 여름철 어린이들이 미끄럼을 타는 곳으로 인기가 높다. 아랫용소 인근 타원형으로 살짝 팬 곳은 용이 승천하기 전 사랑을 나눈 다음 암룡이 알을 품었던 자리로 전해온다.


용추폭포 인근은 워낙 비경이라 수년 전 방영된 드라마 '태조 왕건'의 촬영지였으며,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는 일이 없어 기우제를 올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덱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폭포 위에서 물길을 건너 산길로 올라서면 임도와 만난다. 홍수 대비 자동경보기를 지나면 이내 이정표. 직진하면 둔덕산, 산행팀은 대야산 방향으로 가기 위해 물길을 건너 숲으로 들어간다. 앞서 덱으로 올라오던 길과 다시 만난다.

산길 주변에는 뜻밖에도 사기 파편이 널려 있다. 50, 60년 전에는 서민 밥그릇이 제법 돈벌이가 돼 이곳 주변에서 그릇을 많이 구웠다고 한다.

숲길을 벗어나 다시 계곡을 가로지른다. 너른 반석이 높이가 달라 쉼터 역할을 한다. 망속대(忘俗臺)다. 속세와 단절된 듯 주변 숲이 우거지고 아름다워 세상만사 근심걱정 모두 잊는다는 곳이다. 망속대를 건너기 전 직진하는 길도 있지만 계곡을 질러가는 것이 원등산로이다.

계곡물에 비친 달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월영대. 사람이 보이는 곳이 술상바위이다.
 
이번엔 계곡을 우측으로 끼고 걷는다. 울창한 숲 아래 산죽길이 펼쳐진다. 잠시 후 계곡합수점에 닿는다. 정면으로 이끼 낀 둥그스름한 큰 바위가 눈에 띈다. 계곡 물에 비친 달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월영대(月影臺)다. 이름도 운치있고 주변 풍광도 수려해 명불허전이라 할 만하다.

거북바위.   
코끼리바위.
                        대문바위.

산행도중 전망대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우측 상단의 회백색 산은 희양산.
렌즈로 당겨 본 백두대간 희양산 모습.

 물을 건너면 이정표가 서 있다. 여기서 길은 두 갈래. 입구에 억새가 도열한 왼쪽 다래골은 밀재를 거쳐 대야산으로 이어지고, 오른쪽 피아골은 정상으로 곧장 오르는 길이다. 완만한 다래골로 올라 남릉을 타고 대야산 정상으로 올라 급경사인 피아골로 내려오는 코스가 보편적이다.

덩굴인 다래나무가 많다 해서 다래골로 불리는 좌측으로 발길을 옮긴다. 산길보단 암반으로 오르면 더 운치있다. 암반 위로 어른 허리 높이에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평평한 바위가 보인다. 일명 술상바위라고 한다.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3분 뒤 숲 속 한 귀퉁이엔 앞에는 '내무부' 뒤에는 '국립공원'이라 적힌 조그만 이정석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속리산 국립공원이라는 표시이다. 이후 만나는 이정석엔 쭈욱 '건설부'라 적혀 있다.

10분 뒤 숲 사이로 집채만 한 바위가 떡 버티고 있다. 떡바위다. 재밌게도 이곳 사람들은 떡바위를 이웃한 백두대간에서 둔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의 마귀할멈통시바위에서 떨어진 똥이라고 부른다. 울긋불긋한 단풍나무 아래를 통과할 땐 발걸음도 더뎌진다. 발밑에 옅은 보랏빛 가지버섯이 보인다. 대야산에는 이외에도 능이 싸리 가지 송이 망태 등 다양한 버섯이 서식한다고 한다.

떡바위에서 25분이면 삼거리에 닿는다. 우측은 정상 가는 지름길, 산행팀은 좌측 밀재로 향한다. 키 큰 산죽길로 14분쯤이면 백두대간인 밀재에 도착한다. 괴산 청천면과 문경 가은읍을 잇는 고갯길이다. 좌측은 마귀할멈통시바위 속리산 둔덕산, 직진하면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농바위, 산행팀은 우측 대야산으로 향한다.

이때부턴 백두대간길. 우측 급경사 오름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길 왼쪽은 괴산, 오른쪽은 문경땅이다. 밧줄을 잡고 한 굽이 올라서면 거북바위가 서 있다. 밀재에서 10분. 여기서 6분이면 대문바위와 코끼리바위가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다. 생긴 모양이 이름과 똑같아 누구나 식별이 가능하다. 안내판도 나무에 걸려 있다.

코가 축 늘어진 코끼리 머리 좌측으로 반듯하게 서 있는 대문바위를 통과해 코끼리바위에 올라서면 약속이나 한 듯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대야산 일원의 헌걸찬 백두대간 산줄기와 주변의 봉우리들이 한눈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1시 방향으로 저 멀리 뾰족봉의 연속인 속리산, 정면으로 조항산, 10시 방향으로 한때 스키장이 검토됐던 둔덕산과 그 우측으로 마귀할멈통시바위가 약간 보인다.

차츰 고도를 높이며 한 굽이를 더 오르면 10시 방향의 V자 바위 뒤로, 이후에 만나게 될 우뚝 선 농바위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제 정상으로 다가갈수록 숲 속에서 독특한 형상의 기암괴석들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도중 날등 전망대에선 우측으로 회백색 화강암 덩어리 모양의 희양산이 보이고, 또 한 굽이 살짝 올라서면 큰바위 앞 그늘진 너른터에 닿는다. 앞서 본 농바위다. 자세히 보면 농바위는 바위 위에 얹힌 부처님 머리를 닮은 경주 남산 부석처럼 조그만 바위 위에 얹혀 약간 거리를 두고 보면 붕 떠 있는 듯하다.

농바위. 가까이서 보면 경주 남산 부석처럼 붕 떠 있는 듯하다.

일명 버섯(삿갓)바위. 차라리 철모바위라고 부르고 싶다.

농바위 틈새를 가로질러 암릉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정면으로 세 개의 암봉이 나란히 있고, 정상은 맨 우측 암봉이다. 도중 일명 버섯(삿갓)바위라는 이름의 조그만 바위를 지나지만 산행팀은 차라리 철모바위라고 부르고 싶다.

이어 만나는 암릉구간은 좌측으로 에돌아 숲으로 오른다. 슬랩 정도의 암반이지만 겨울철 눈산행을 대비해 밧줄이 매여져 있다.

산줄기는 우측으로 휘며 고도를 차츰 높인다. 첫 번째 암봉에 오르면 앞서 봤을 때 세 개였던 암봉이 중간에 두어 개 더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암봉은 동시에 중대봉 갈림길이다. 참고하길.

마침내 대야산 정상. 간단하게 정상주 한 잔씩을 마셨다.

이후 밧줄을 잡고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면 마침내 암봉인 대야산 정상에 올라선다. 북으로 발아래 촛대봉에서 장성봉 악희봉 구왕봉 희양산 시루봉이, 남으로 조항산 청화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옹골찬 산줄기가 한눈에 펼쳐진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정상석과 마주보는 중대봉도, 희양산 우측 앞 석재공장과 인삼밭, 들머리 쪽인 벌바위마을도 시야에 들어온다.


이름에 걸맞게 대야산 하산길인 피아골은 지금 단풍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시종일관 급경사 내리막길이지만 단풍 구경을 하다 보면 어느새 산행기점에 닿는다.

하산은 정상석 뒤로 가 우측으로 바로 내려선다. 피아골 하산길이다. 여기서 바로 계곡 암릉을 타면 백두대간 중 가장 어렵다는 거의 직벽에 가까운 100m 암벽이 기다린다. 참고하길.

워낙 급경사라 밧줄이 묶여 있다. 10분 뒤 갈림길. 우측은 건폭으로 가는 급경사길이지만 폐쇄돼 좌측으로 내려선다. 피아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뜻밖에도 단풍이 한창이다. 해발 700m대 산속의 단풍은 산 아래보다 훨씬 더 곱고 핏빛에 가깝다. 15분 뒤 물마른 건폭의 직벽을 만나면 숫제 단풍나무숲이라 불러도 될 만큼 온 산이 불타오른다. 유명무실한 단풍 산보다 한 수 위다. 이렇게 산행은 단풍구경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정상에서 월영대까지는 70분 걸리며, 들머리까진 35분쯤 소요된다.


◆ 떠나기 전에 - 대야산 살아있는 전설 심만섭 씨 이달말 하산, 아쉬움…  
 

돌마당 식당 심만섭 씨.

돌마당식당의 별미 버섯전골. 자연석이라 향부터 다르다.


 이번 산행에선 용추계곡 입구의 '돌마당식당'(054-571-6542) 주인 심만섭(65) 씨가 동행했다. 그는 용추계곡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백두대간 종주꾼들에겐 자원봉사자로 알려져 있다. 악천후로 인해 길을 잃고 헤매는 대간꾼들이 무사히 하산하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구간 종주에 나선 산꾼들을 산행기점까지 태워주기도 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대야산'을 클릭해보면 약방의 감초처럼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심 씨로부터 도움을 받은 산꾼들이 올린 감사의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대야산 부근의 밀재나 버리미기재에서 심 씨에게 연락하면 기꺼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글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산꾼 시인 이성부의 시집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창비刊)에도 '돌마당식당 심만섭 씨'라는 시가 있을 정도이다.

심 씨가 대야산 용추계곡 입구에 '돌마당식당'을 연 것은 지난 1995년 7월. 문경 가은읍 출신인 그는 대한석탄공사 은성광업소에서 25년간 근무하다가 광산이 문을 닫을 무렵 퇴직하고 적막강산인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수석이 취미인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대야산 용추계곡을 보고선 퇴직 후 이곳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 재산을 털어 이곳에 식당 겸 민박을 지어놓고 무려 2년 반 동안 산새, 들짐승과 함께 지냈단다. 때론 가족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고갯마루에 올라 홀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무를 자르고 산죽을 베며 등산로를 만든 것도 그였고, 망속대 거북바위 대문바위 코끼리바위 등의 명칭도 모두 그가 명명했다. 우연한 기회에 그와 함께 길동무를 한 산행팀은 정말 행운이었다.

그런 그가 산행팀과 헤어질 때 이달말을 끝으로 대야산을 떠난다고 했다. 이제 정말 쉬고 싶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주방에서 여태껏 고생을 한 부인도 이제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자격이 있지 않느냐고도 했다. 문경시 모전동에 이미 새 아파트를 구입했다는 그는 그동안 신세를 졌던 지인들을 찾아보고 색소폰도 배우며 글도 써 책도 낼 계획이라며 활짝 웃었다. 바야흐로 제3의 인생을 벌써 시작하고 있었다.

돌마당식당의 버섯전골을 추천한다. 능이 싸리 솔 가지버섯 등 대야산에서 자생하는 버섯 7가지를 넣어 요리했다. 향부터 벌써 다르다. 3만5000원.


◆ 교통편

남해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 서울 김천 방향~문경새재IC~상주 문경(점촌) 3번~가은 마성 901번~가은('연개소문' 촬영장) 석탄박물관 대야산 용추계곡~가은읍~장연 '연개소문' 촬영장 대야산 용추계곡~석탄박물관~대야산 용추계곡 봉암사 우회전~괴산 장연~선유동계곡 입구~대야산 용추계곡 좌회전~용추계곡 간이주차장 순. 대중교통편으로 당일치기는 불가능하다.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전국을 대상으로 산행을 하다 보면 폭포나 바위가 빼닮은 모습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지리산 칠선계곡과 대성골의 이름 모를 쌍바위입니다.
 두 계곡은 우선 공통점이 있습니다. 국국토벌대와 빨치산(파르티잔) 사이의 격전지로, 분단의 아픈 현실을 간직한 현대사 비운의 현장이지요. 50여 년이 흐른 지금은 당시 흔적은 오간 데 없고 물은 물대로, 바위는 바위 대로 수천 수만년을 내려오면서 그래왔듯 묵묵히 인간이 하는 일을 그저 무관심한 듯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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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선계곡. 비선담 통제소를 지나 처음으로 계곡을 건너다가 본 쌍바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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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골의 쌍바위입니다. 사진상으로 전체 모습이 다 나오지 않았지만 칠선계곡의 그것과
           거의 닮은 꼴입니다. 크기는 대성골의 쌍바위가 더 큽니다.
 


 또 있습니다. 칠선계곡의 칠선폭포와 용추계곡의 용추폭포입니다. 아, 또 공통점이 있네요. 모두 함양땅에 있습니다. 칠선계곡은 함양땅 최남단 마천면에, 용추계곡은 함양땅 북동쪽 안의면에 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물줄기가 시원해 보기만 해도 통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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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선계곡의 얼굴마담으로 손색이 없는 칠선폭포. 높이는 5m 안팎에 불과하지만 그 당당함은
        이름 그대로 칠선계곡의 얼굴마담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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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모나 높이는 칠선폭포에 비해 약간 뒤지나 전체적으로 모습은 칠선계곡의 당당함에 견줄만 하다.

 경북 청도에서 비슷한 모양의 폭포가 있습니다.
 상운산의 용미폭포와 지룡산의 나선폭포입니다.
 용미폭포는 운문산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에서 30분 정도만 오르면 만날 수 있습니다. 천년 묵은 백룡이 힘에 겨운 나머지 꼬리를 바위에 걸쳐 놓은 채 몸통만 승천, 남은 용꼬리가 폭포로 변했다는 전설의 이 용미폭포는 높이나 거무튀튀한 암벽 색 등 첫 인상이 지룡산 배넘이골 인근에 위치한 나선폭포를 쏙 빼닮았습니다.

둘 두 높이는 40m쯤 돼 보이는 오버행 폭포로 비온 뒤에는 천둥소리가 날 정도로 우렁차지만 아쉽게도 평소에는 물이 거의 말라 있다. 특히 나선폭포는 겨울철 빙벽등반지로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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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문산 자연휴양림 내 숨은 용미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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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룡산 나선폭포.








10년만에 속살 내비친 생명의 골짜기…웅장함의 절정

추성리~마폭 5시간30분, 마폭 천왕봉 1시간30분 소요
선녀탕 옥녀탕 비선담 대륙폭포 삼단폭포 마폭포 등
한순간도 끊이질 않는 골짜기 절경 암반, 소와 담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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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동(옛 두지터) 입구 담쟁이넝쿨로 둘러싸인 담배건조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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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동(옛 두지터)의 배롱나무꽃. 공기가 맑아서인지 색이 아주 붉고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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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산통제 기간 중의 출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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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동을 지나면 이내 만나는 출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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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칠선동 마을터. 자세히 보면 축대와 계단식 논의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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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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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그늘이 드리워져 운치가 그저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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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탕 바로 위에 위치한 옥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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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각도에서 본 옥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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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탕을 지나면서 덱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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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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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교와 비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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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교를 지나 덱을 따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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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 통제소를 알리는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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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 통제소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 지리산 사무소 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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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소를 지나면서 인공시설물이 없어 계곡을 직접 건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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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비경의 이름없는 소와 담이 연이어 이어져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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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끼 낀 돌길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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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의 얼굴마담격인 칠선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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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폭포. 얼핏 함양 용추계곡의 용추폭포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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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칠선폭포를 놓치고 가더라도 이처럼 길에서 우렁찬 굉음과 함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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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물길을 건너면 중봉과 하봉 사이의 골짝에서 내려오는 지계곡과 만나는 합수점에서 잠시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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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 최대 규모이자 간판급인 대륙폭포. 높이가 15m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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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폭포 앞에서 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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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폭포. 칠선계곡 최고의 비경이다.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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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단폭포. 하류는 수직폭이지만 상류의 2단은 와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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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단폭포의 하단부인 수직폭 바로 윗부분. 깊은 소의 물이 수직폭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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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나무도 힘겹게 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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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시목이 발견되면 제대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00m마다 있다. 그러니까 7.5㎞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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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나무 다리도 건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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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이어지는 이름없는 폭포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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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선계곡의 마지막 폭포라는 의미의 마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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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폭포는 천왕봉과 중봉 사이의 골짝에 걸려 있는 비경의 2단 폭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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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폭포가 가장 잘 보이는 그늘진 암반. 대개 여기서 땀을 닦으며 숨고르기를 한다.

 

가마솥 더위가 한풀 꺾인 남한땅 최후의 원시림 지대인 칠선계곡은 생명력이 넘쳐 흘렀다.

깊고 험준한 골짝은 천지를 뒤흔들 만큼 우렁찬 물소리를 토해내며 예의 빼어난 비경을 자랑했고 햇빛 한점 통과하지 못할 정도의 울울창창한 숲속의 물기 잔뜩 머금은 초록의 이끼는 널브러진 돌이나 아름드리 노거수를 감싸며 사방을 온통 초록으로 물들게 했다.

마지막 폭포인 마폭을 지나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1800m대의 헌걸찬 지리 마루금은 구궁심처 골짝에서 솟아오르는 희뿌연 구름과 한데 어울려 신선의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칠선계곡은 험하지만 분명 비경이다. 한신계곡 뱀사골 피아골 등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계곡에 비해 한 수 위다. 아니 급이 다르다.

흔히 산길이나 계곡은 풍광이 좋고 나쁨을 반복하지만 칠선계곡은 국내 여느 유명 계곡의 내로라하는 아름다운 구간만을 조물주가 부러 이어붙인 듯해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북으로 곧장 떨어져 내리는 칠선계곡은 겨울이면 북향의 깊은 골짝이라 적설량이 많고 기온이 급강하하고,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급격한 지형변화로 조난사고의 우려가 높다. 인공시설물이 거의 없는 것도 또 하나의 요인이다.

이와 관련, 이창우 산행대장은 "자연휴식년제로 지정되기 전인 1980년대 칠선계곡은 비교적 한가했지만 지금처럼 비선담까지 설치돼 있는 인공시설물이 하나도 없어 베테랑급이 아니면 산행할 엄두를 못냈을 정도로 사실 난코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음은 있지만 일반 산꾼들로선 선뜻 발걸음이 내키지 않는 그런 코스였다.

세월이 흘러 칠선계곡은 지난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자연휴식년제라는 명목하에 총 9.7㎞ 구간 중 3.8㎞ 지점인 비선담까지로 산행이 제한됐고, 올해부턴 국립공원 특별보호구로 지정됨과 동시에 산아래 추성동 주민들의 염원을 적극 수용해 지난 5월부터 국내 최초로 탐방예약 가이드제를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다. 내년까지 2년간 5~6월, 9~10월 넉달간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들과 지역 주민들의 안내로 칠선계곡 산행을 할 수 있게 된 것.

바야흐로 칠선계곡이 10년 만에 공식적으로 부분 개방된 것이다.

산행팀은 사실 지난 4월말과 5월초 두 번이나 취재산행을 계획했지만 공교롭게 두 번 모두 장대 같은 비가 내려 발길을 돌렸다. 결국 삼세번만에 칠선계곡 품에 안긴 셈이다.

산행 코스는 함양 마천면 추성리 주차장~칠선계곡~마폭포~천왕봉~제석봉~장터목 대피소(1박)~백무동 순. 순수하게 걸은 시간은 10시간45분. 구간별로 보면 추성리~마폭 5시간30분, 마폭~천왕봉 1시간30분, 천왕봉~장터목 55분, 장터목~백무동 2시간50분. 걷는 시간만 그렇다는 뜻이며, 여기에 휴식 및 식사시간은 별도로 더해야 총 산행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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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마천면 추성리~마폭포

주차장에서 추성리 마을을 지나 포장로를 따라 오른다.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움푹 파인 국골이 초암능선과 두류능선을 좌우로 갈라놓고 있다. 추성리에서 25분이면 두지동(일명 두지터). 오래전 화전민들이 기거했던 산골마을이지만 지금은 6가구가 농사와 민박을 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다. 담쟁이넝쿨로 에워싸인 담배건조막과 유난히 붉은 배롱나무꽃만 옛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바로 옆에는 최근 펜션이 들어서 있다. 두지터는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이웃 국골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 식량창고로 사용했다는 설과 지형 자체가 쌀 뒤주를 닮았다는 설이 내려온다.

두지교와 입산통제 기간 중 출입문, 울창한 대숲 그리고 쇠줄로 만든 출렁다리를 잇따라 지나면 가파른 오름길. 칠선계곡은 출렁다리에서 잠시 맛만 볼 뿐 선녀탕까지의 40여 분은 물소리만 들릴 뿐이다. 도중 뜻밖에도 평탄한 길을 만난다. '칠시'라고 불렸던 옛 칠선동 마을터다. 자세히 보면 오래된 축대와 계단식 논의 흔적이 보이고 바닥에는 비닐장판 조각이 보인다.

지계곡을 건너 마당바위로 불리는 전망 좋은 너른 암반를 지난다. 이제 선녀탕까지는 1㎞. 진한 숲 향기를 음미하며 27분쯤 오르내리면 선녀탕을 알리는 이정표와 아치형 구름다리를 만난다. 일곱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했다고 전해오는 선녀탕(620m)은 다리에서 보면 숲 그늘이 드리워져 운치가 그저 그만이다.

이때부터 칠선계곡의 진면목을 감상하며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선녀탕 바로 위에는 선녀탕보다 더 넓고 깊은 옥녀탕(650m)이 기다린다. 유난히 맑고 푸른 탕도 탕이지만 옥녀탕으로 쏟아내는 와폭 또한 일품이다.

옥녀탕부터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조성한 덱을 따라 걷는다. 10여 분이면 흔들다리인 비선교에 올라선다. 이 대장은 비선교 입구 쪽 암벽을 가리키며 예전에는 이곳으로 밧줄을 잡고 올랐다고 옛 기억을 더듬었다. 자세히 보니 밧줄의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띈다. 목욕한 선녀들이 하늘로 올랐다는 다리 아래 비선담(710m)은 옥녀탕과 규모는 비슷하다. 비선교를 지나면 잠시 호젓한 숲길. 5분 뒤 다시 목재 덱을 만나면서 비경이 이어진다. 소와 와폭의 연속이다. 떨어지기 직전 소용돌이를 치는 폭포, 두 갈래로 유유히 떨어지는 쌍폭 등과 선녀탕이나 옥녀탕에 견줘도 하등 손색없는 소가 굽이굽이마다 시선을 빼앗지만 아쉽게도 이름이 없다. 칠선계곡을 두고 흔히 '7폭 33소와 담'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10분 뒤 다시 덱을 만난다. 공단 직원 두 사람이 근무를 서고 있다. 알고 보니 칠선계곡에 설치된 마지막 덱으로 비선담 통제소다. 위쪽 산길과 이어진 출입문에는 육중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여기서부터 천왕봉까지 5.4㎞ 구간이 특별보호구로 지정된 곳이다. 통제소를 지나면 숲이 확연히 달라진다. 더욱 짙어지고 길은 좁아지며 발밑에는 물기 머금은 싱싱한 이끼가 널브러진 돌과 나무 밑둥치를 감싸고 있다. 산죽 군락은 이에 뒤질세라 길마저 막고 있다. 원시 그대로의 비경 그 자체다.

6분 뒤 산죽길을 벗어나면 계곡과 만난다. 직진하기도, 좌측 산사면으로 치고 오르기도 마땅치 않다. 처음으로 물길을 바로 건넌다. 반복되는 이끼 수북한 산죽 숲길. 길 안내를 위해 돌 위에 뿌린 붉은 스프레이 표시도 이끼에 가려 그 흔적이 가물가물하다. 놓쳐선 안 될 볼거리가 하나 있다. 일명 청춘홀이다. 물길을 건너 100m쯤 거리에 위치한 표지목 지점쯤에서 좌측으로 바로 보면 보인다. 큰 바위와 작은 바위가 한데 어울려 생긴 너른 공간이다. 청춘 남녀가 비를 피해 들어섰다가 사랑에 빠졌다는 설도 있고, 오래전 목기를 다듬는 젊은 청년들이 청춘 흘러가는 것을 한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엔 바닥도 편평해 텐트 하나 정도는 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계곡 범람으로 인해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지계곡을 건너 우렁찬 굉음에 이끌려 물가로 내려선다. 칠선폭포를 보기 위해서다. 첫 인상은 함양 용추계곡의 용추폭포. 높이가 5m 안팎에 불과하지만 그 당당함은 이름 그대로 칠선계곡의 얼굴마담으로 손색이 없다. 통제소에서 30분. 혹 폭포 쪽으로 내려서는 길을 놓쳤더라도 길에서 보이기 때문에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이끼 낀 돌길의 연속. 7분 뒤 자연스럽게 두 번째 물길을 건넌다. 이 지점은 중봉과 하봉 사이의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지계곡과의 합수점이다. 이 지계곡을 거슬러가면 40m쯤에 우측으로 열린 길이 향후 진행방향이며, 여기서 60m 더 가면 칠선계곡에서 최대 규모인 대륙폭포를 만난다. 지난 1964년 칠선계곡을 탐사하던 부산의 대륙산악회가 명명한 이 폭포는 약 15m 높이에서 하얀 물줄기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진다. 아름답고 우아하며 장엄하며 고색창연하다.

대륙폭포 이후 산길은 험하면서 동시에 가팔라진다. 무명봉 하나 넘는다고 생각하고 살짝 올라서면 계곡과 만나지만 건너지 않고 물길 좌측으로 발길을 옮긴다. 25분쯤 뒤 또 한 줄기의 폭포가 눈과 귀를 자극한다. 자일산악회가 명명한 (자일)삼단폭포다. 상류 쪽 두 개의 와폭에 이어 수직폭이 시원하게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다. 폭포 좌측으로 오르면 가운데 와폭은 쌍폭이며 그 아래는 좁지만 깊이를 가늠키 힘든 아주 깊은 소가 소용돌이 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삼단폭포에서 마폭포를 만나기까지 80분 정도 또한 녹록지 않다. 이쯤 되면 계곡 폭이 좁아지고 유량은 줄어듬직한데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되레 무명폭과 크고 작은 소가 줄을 잇고 또 잇는다. 칠선계곡의 저력을 실감케 하는 시점이다.

이끼 낀 크고 작은 돌길과 쓰러진 아름드리 나무들도 넘어야 하고 외나무다리도 건너고 때론 유일한 인공시설물이라 할 수 있는 얇은 밧줄에 의지해 암벽을 올라야 한다.

천왕봉으로 오르면서 마지막으로 만난다는 의미의 마폭포는 천왕봉과 중봉 사이의 골짜기에 걸려 있는 비경의 2단 폭포. 상단은 수직폭이고 하단은 와폭이면서 쌍폭이다.

마폭포와 관련된 여담 한 가지. 지난 1964년 부산의 산악인들로 구성된 개척단에 참여한 곽수웅 씨는 "밑에서부터 이름을 붙이며 올라오던 중 소와 폭포가 끊임없이 나타나 이름짓기를 중단하고 마지막 폭포에 와서 명명한 것이 마폭포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웃한 바위 쉼터가 좋아 대개 여기서 폭포를 감상하며 물통을 채운다.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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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산-함양 기백산(446)

책바위 넘고 용추폭포수에 땀씻고

경남 함양의 용추계곡과 경북 문경새재. 머나먼 두 계곡을 화두로 끄집어낸 까닭은 앉은 형세가 여러모로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산이 깊으면 골이 깊다는 정설을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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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폭포. 10m 높이에서 내리꽂히는 엄청난 물소리와 물보라에 입이 벌어질 정도다.

예부터 거창·함양의 유서깊은 3대 계곡 중 하나인 용추계곡은 금원 기백 거망 황석산 등 1000m급 이상의 고봉준령에 의해 말발굽 모양으로 에워싸져 있는 깊은 골짜기다. 북쪽의 남덕유가 넘치는 기운을 감당못해 남동쪽으로 가지 하나를 더 뻗어내려 솟구친 이들 산은 용추계곡 좌우로 개별 산행이 가능한데다 무박2일 종주산행까지 겸할 수 있어 많은 산꾼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나는 새도 쉬어간다는 문경새재 또한 깊기로는 한 수 위. 그 유명한 주흘산과 부봉 그리고 백두대간 산줄기인 마패봉 조령산으로 둘러쳐져 마치 자궁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깊은 협곡이다. 새재길 좌우의 웅장한 산들은 그 자체만으로 멋진 산행코스가 열려 있는데다 1박2일 정도면 종주산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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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추폭포 하류의 시원한 계류(왼쪽)와 다른 각도에서 본 용추폭포.

계곡과 나란히 내달리는 계류 또한 절경이다.
용추계곡 지우천에는 10m높이에서 내리꽂히는 엄청난 굉음의 용추폭포를 비롯 용소 꺾지소 등 볼거리가 다양하고, 영남의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넘은 새재길 계곡에도 제2관문 아래 45m의 3단폭포인 조곡폭포를 비롯 용추 꾸구리바위 등이 나그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현재 문경새재는 도립공원이고, 용추계곡은 기백산 군립공원에 포함돼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 1970년대 개발을 진두지휘했던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독 문경새재만은 ‘포장하지 말라'고 지시해 흙길로 남아 있다는 점. 그는 사관학교 입학 전 잠시 문경초등에서 교편을 잡아 누구보다 문경새재를 아꼈다고 전해온다. 반면 용추계곡은 용추폭포 위 용추자연휴양림까지 포장돼 있어 편리하지만 고즈넉한 맛이 덜하다.

만일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이 함양이거나 용추계곡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문경새재처럼 포장이 안된 채 체계적 보존이 이뤄졌더라면 용추계곡 또한 도립공원 이상의 관광지로 각광받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용추계곡이 필요 이상으로 개발됐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분명한건 용추계곡을 둘러싼 금원 기백 거망 황석산이 지금도 전국의 산꾼들로부터 애정 공세를 듬뿍 받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특정 지점이 4개나 되는 1000m급 명산의 들머리가 되는 곳은 이곳밖에 없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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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사에서 바라본 피바위. 만개한 백일홍과 색조화가 일품이다.

이번 주 산행지는 기백산(箕白山·1331m). 함양과 거창의 경계에 위치해 예부터 두 지역의 날씨변화를 제일 먼저 알려줘 `비의 징조를 안다'는 의미의 지우산(智雨山)으로 불렸다.
장쾌한 능선길에선 1000m급 고봉준령이 조망되고 특히 정상 부근의 누룩덤이라 불리는 암봉은 기백산만의 자랑이다.

산행은 함양 안의면 용추사 주차장~기백산 등산로 안내판~(도수골)~지능선~전망대 바위~기백산 정상~잇단 누룩덤(책바위)~시흥골·금원산 갈림길~시흥폭포~황석산장~거망산 들머리(지장골) 지나~용추사~용추폭포~용추사 주차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40분 안팎, 등산로와 이정표는 정비가 잘 돼 있어 길찾기는 전혀 문제없다.

주차장에서 길은 두 갈래. 용추사 및 용추자연휴양림 가는 길이 그것이다. 휴양림 방향으로 간다. 5분 뒤 우측에 기백산 등산로 안내판. 정상까지 4.2㎞. 용추계곡의 지계곡인 도수골 등산로의 시점이다.
돌이 유난히 많은 이 길은 처음엔 숲터널이고 이후엔 계곡산행으로 이어진다. 20분 뒤 800고지 쉼터를 지나면 계류와 접하고 일순간 서늘한 바람이 피부에 와닿는다. 힘찬 물소리와 매미울음, 그리고 명산에서 느껴지는 그윽한 분위기가 산행의 맛을 더해준다.
계곡을 건너 950고지의 119안내판에서 급경사 산죽길을 헤치고 오르면 지능선. 들머리에서 1시간10분. 정상까지 1.3㎞ 남았다.
이제 된비알이 기다린다. 땀깨나 흘릴 각오를 하자. 발밑에는 며느리밥풀꽃 흰여로 긴산꼬리풀 청여로가 눈에 띈다. `정상 0.2㎞'라 적힌 팻말 앞에 서면 시야가 확 트인다. 왼쪽엔 황석 거망산이, 오른쪽엔 남덕유에서 출발, 월봉 금원 기백(평전) 황매 자굴산을 거쳐 진양호에 잠기는 도상거리 160㎞의 진양기맥의 장쾌한 능선이 펼쳐진다.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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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백산 주능선에는 누룩덤 등 암봉이 산재해 능선의 밋밋함을 보완해준다. 왼쪽 암봉인 1279봉 뒤로 금 원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15분쯤 뒤 마침내 정상. 조망안내판에는 황석 거망산만 표기돼 아쉽다. 좀 더 넓게 살펴보면 거망산 우측으로 은신치, 그 아래 무학대사가 수도했다는 은신암, 그 뒤로 월봉산 남덕유 삿갓봉이 보이고, 안내판 왼쪽으로 기백평전이 시야에 들어온다.
하산은 왼쪽, 누룩을 포갠듯 켜를 이룬 누룩덤이 가까이 보이는 금원산 방향으로 간다.
누룩덤이 없으면 기백산은 아주 심심한 산이 될 뻔했다. 밑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누룩덤은 금원산까지 이어지는 장쾌하지만 밋밋한 능선에 일종의 매듭과 같은 역할을 해 한마디로 산의 품격을 높여준다. 누룩덤에 올라서면 정면의 금원산과 금원암, 우측으로 흰 암봉이 뚜렷한 현성산도 확인된다. 누룩덤에 오를 자신이 없으면 왼쪽으로 에돌아가도 상관없다.
작은 누룩덤을 지나 20여 분 숲터널을 내달리면 갈림길. 직진하면 금원산, 왼쪽길로 내려선다. 시흥골로 접어드는 본격 하산길이다. 다소 거칠고 험하다. 도수골로 올라 시흥골로 하산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숲은 원시림을 방불케 하고 모싯대 자주꿩의다리 등 야생화도 다양하다. 바위를 덮고 있는 이끼도 인상적이다. 1㎞쯤 남았다는 팻말 인근의 와폭인 시흥폭포도 볼 만하다. 폭포에서 숲을 벗어나는, 사실상 산행종점인 사평마을 황석산장까지는 15분 걸리고, 여기서 철제 구름다리를 건너 용추사 용추폭포를 둘러본 뒤 주차장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된다. (2005. 8)

#떠나기전에

 용추사 주차장 앞 일주문 현판에는 뜻밖에도 '덕유산 장수사 일주문'이라고 적혀있다. 487년 신라 소지왕때 창건됐지만 한국전쟁때 지금의 일주문만 남고 불에 탔다. 지금의 용추사는 원래 장수사에 딸린 암자였지만 장수사가 일주문만 남고 소질되자
지난 59년 중건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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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용추사엔 백일홍이 한창이다. 용추사 입구 우측의 백일홍은 단연 돋보인다. 백일홍과 그 뒤로 보이는 경사진 피바위의 조화도 일품이다. 사진을 찍으면 한 화면에 들어온다. 구렁이와 처녀의 애절한 사연이 전해오는 피바위는 바로 아래 용추폭포와도 한 화면에 잡힌다. 유량이 풍부한 폭포 아래에선 잠시만 머물러도 옷이 젖을 만큼 물방울이 분무된다. 흠이라면 숲에 싸여 있어 무지개는 볼 수 있다.
 함양은 물레방아의 원조 고을. 연암 박지원이 함양군 안의현감으로 부임, 용추계곡 입구 안심마을에 우리나라 최초로 물레방아를 설치해 실용화됐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용추계곡 입구에 '물레방아 공원'(사진)을 조성, 실제로 대형 물레방아를 돌리고 있다.


 #교통편

 용추계곡은 함양에 속하지만 버스는 거창에서 오간다.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거창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 7시50분, 8시30분에 출발한다. 2시간40분 걸리고 1만1900원. 들머리인 용추사행 군내버스는 1시간 간격으로 매시 50분에 출발한다. 50분 걸리고 2000원. 주의할 점은 군내버스 정류장 찾기. 터미널에서 나와 왼쪽으로 가다 두번째 사거리에서 중앙교를 건너 시장 입구 맞은 편에 위치해 있다. 터미널에서 10분 거리.
 날머리 용추사에서 거창행 버스는 역시 1시간 간격으로 매시 50분 출발하며 막차는 오후 6시50분. 거창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4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막차는 오후 6시40분. 만일 거창서 막차를 놓치면 서대구로 가서 지하철을 이용, 동대구역으로 이동한 후 부산행 열차를 이용하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진고속도로 지곡긿안의IC~거창 안의 24번 좌회전(용추계곡 기백산 방향)~김천 거창 24번 직진~용추계곡 7.3㎞~용추주유소서 좌회전(용추자연휴양림, 기백산)~용추사 주차장 순.

※대중교통편은 현지 여건상 차이가 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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