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백두대간~지리 영신봉 거쳐 김해까지
김해 백두산 최근 낙남정맥 종착지로 급부상 

지역 산꾼 이재수, 최근 산서 등에서 주장
아직 설에 불과, 여론 조성되면 바꿔야 할 듯

 이재수. 국제신문 근교산 홈페이지 산행기 코너에 자주 접속한 산꾼이라면 '아! 그 사람' 하고 기억을 할 것이다. 그는 지난 2003년 개설된 근교산 홈페이지 산행기 코너를 주도했다. 취재팀이 연재한 산행지를 주말에 다녀온 뒤 어떤 점이 미비하고 잘못됐는 지를 냉철하게 비판해 취재팀의 관행적 나태함에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등 차츰 뭇 산꾼들의 주목을 받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팬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그는 낙남정맥에 이어 지난해 여름 백두대간 종주를 끝낸 뒤 예의 국제신문 산행기 란에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백두산에서 끝난다'라는 200자 원고지 50여 장 분량의 장문을 올렸다. 이 글은 아마추어 산꾼이 쓴 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논리적이고 학술적인 데다 필자의 주장까지 담겨 있어 기자를 비롯한 지역 산꾼들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뜬금없이 그를 떠올린 것은 그가 낙남정맥의 종착지라고 주장한 김해 백두산을 산행팀이 이번 주 소개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그가 올린 글에서 낙남정맥의 종착지는 지금까지 정설로 내려오는 김해 동신어산이 아니라 이웃한 백두산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뻗어내려온 백두대간이 지리산 영신봉에서 낙남정맥으로 갈아탄 후 김해 백두산에서 그 산줄기가 끝난다는 것. 물론 중간에 개발에 의한 산줄기가 많이 훼손됐겠지만 원론적으론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출발하면 산을 한번도 내려오지 않고 능선만을 타고 김해 백두산까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동신어산이 낙남정맥의 종착지로 알려져 온 이유는 강에서 산줄기가 끝나면 대간이고 정맥이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는 것이 이 씨의 지적이다. 우리나라 산줄기의 흐름과 위치 등을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해놓은 조선시대 지리서인 산경표에 따르면 모든 산줄기의 맥은 바다와 강이 만나는 하구에서 끝이 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이런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

 이 씨에 따르면 원래 낙동강 본류와 서낙동강으로 갈리는 지금의 낙동강 물줄기는 일제강점기 때 대규모 토목공사에 의해 형성된 것. 당시 낙동강 하구는 현재 낙동강과 서낙동강이 나뉘는 대동수문 근처이며, 그 하류는 홍수가 날 때마다 물길이 바뀌는 대규모 뻘이었다. 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면 김해 백두산 아래 지금의 대동수문 인근이 바다로 표시돼 있다. 이를 근거로 볼 때 낙남정맥의 끝은 백두산이 분명하다는 것이 이 씨의 주장이다.

김해 백두산 정상에 서면 부산의 진산 금정산과 태백에서 1300리를 쉼없이 내려온 낙동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번주 소개하는 코스는 김해 까치산~장척산~백두산. 시종일관 영남의 젖줄 낙동강과 금정산 백양산 등 부산의 거의 모든 산들을 감상할 수 있다.

산행은 김해 대동면 예안리 장시마을 버스정류장~까치산(342m)~낙남정맥 갈림길~임도~장척산·백두산 갈림길~장척산(531m)~매리(소감마을) 갈림길(481봉)~사거리 안부~동신어산 갈림길~벤치~352봉(삼각점)~원명사 갈림길~백두산(354m)~공동묘지~대형 축사(대동면 초정리)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20분 정도. 시종일관 오르락내리락하지만 해발고도가 높지 않아 그리 힘은 들지 않으며 길찾기 또한 어렵지 않다.


 까치산은 오래 전 산행팀이 들머리로 개척한 성고개를 기점으로 현재 산행이 많이 이뤄지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들머리로 출발했다. 예안리 장시마을 정류장에서 내려 50m쯤 시례마을 방향으로 가면 왼쪽에 '까치산 1.8㎞'라 적힌 이정표와 함께 들머리가 열려 있다. 공동묘지를 지나면서 줄곧 오르막길. 10분 뒤 묘지 앞. 우측 손에 닿을 듯한 봉우리가 백두산이다. 10여 분 뒤 안내리본이 많이 걸려 있다. 왼쪽 성고개 쪽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산행 중 내려다본 김해평야와 서낙동강. 이곳에 서면 김해평야가 델타 즉 삼각주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산행 중 보이는 부산의 진산 금정산. 김해 쪽에서 보면 뾰족하게 보이는 고당봉을 두고 김해사람들은 붓을 빼닮았다고 해 문필봉이라 부른단다.   
첫 기착지인 까치산.
산행 곳곳에는 전망대가 있어 쉬어갈 수 있다.

한 굽이 오르면 시계가 넓어져 금정 백양 엄광 구덕 승학산과 낙동강 건너 봉화 보배, 그 뒤로 가덕도 연대봉 팔판산 화산 장유봉이, 정면으로 까치산이, 우측으로 금정산 고당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뾰족한 고당봉은 붓을 빼닮아 왜 김해 쪽에서 문필봉으로 부르는지 알 수 있다.   
 
까치산까지는 크게 내려섰다 올라선다. 10분 뒤 전망바위에 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처럼 김해평야가 낙동강에 의해 형성된 삼각주인 사실이 한눈에 확인된다. 까치산 정상은 전망바위에서 8분 뒤. 금정산 좌측 뒤 천성산이 흰눈을 이고 위엄있게 서 있다.

하산은 직진하며 내려선다. 금정산과 나란히 북으로 내달린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크고 작은 봉우리. 그야말로 산 너머 산이다. 10시 방향 나목 사이로 신어산 동봉이 보인다. 이렇게 1시간. 등로 좌측으로 도로가 보인다. 생명고개로 이어지는 길이다. 15분 뒤 일순간 안 보이던 안내리본이 치렁치렁 걸려 있다. 낙남정맥 갈림길로 왼쪽은 생명고개 신어산 돛대산, 오른쪽은 장척산 동신어산 백두산 가는 길이다. 산행팀은 우측으로 내려선다. 3분 뒤 임도. 길 건너 바로 백두산 방향으로 올라선다.

          장척산 정상은 메인 등산로에서 15m쯤 떨어져 있다.

 때묻지 않은 낙엽길을 한동안 오르내린다. 20여 분 뒤 장척산 갈림길. 이정표에서 왼쪽으로 15m 올라서면 대동면과 상동면의 경계인 장척산 정상이다. 벤치가 둘 있고, 정상석 대신 이정표엔 '장척산'이라 적혀 있다. 직진하면 상동면 대감리로 2007년 10월말 준공된 롯데자이언츠 상동전용구장과 만난다. 이제 백두산(5.8㎞) 방향으로 향한다. 진달래터널을 통과하면 정면으로 두 개의 봉우리가 보인다. 15분 뒤 갈림길. 이정표엔 두 방향 모두 '백두산'이라 적혀있다. 좌측은 앞서 본 두 개의 봉우리를 거쳐가는 낙남정맥의 정규코스이고, 우측은 두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우회하는 길이다. 좌측으로 오른다. 쓰러진 나무와 그간 안 보이던 농짝만한 바위를 잇따라 지나면 멋진 전망대. 까치산과 돛대산 그리고 저수지 뒤로 저멀리 백두산을 확인한 뒤 발걸음을 떼면 이내 소나무 아래 안내리본이 많이 보인다. 좌측 매리(소감마을) 하산길 대신 우측으로 내려선다. 9분 뒤 안부 사거리. 왼쪽 동신어산 우회길, 산행팀은 직진한다. 10분 뒤 동신어산 갈림길(475봉)로 문제의 낙남정맥의 종착지가 결정되는 의미있는 지점이다. 왼쪽 동신어산, 직진하면 백두산. 이정표를 등지고 서면 10시 방향의 쌍봉 중 왼쪽이 동신어산, 그 우측 뒤 물금 오봉산, 그 왼쪽 선암산 토곡산이 보인다. 산행팀은 직진한다. 20m 뒤 벤치. 좌측으로 낙동강과 내달리는 금정산이 한눈에 펼쳐진다. 20분 뒤 안부갈림길. 좌측 대감리 감내마을 방향 대신 직진한다. 이때부터 크고 작은 봉우리의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삼각점을 지나 13분 뒤 갈림길. 좌측 멋진 전망대에서 잠시 쉬고 다시 송림길을 내달린다. 능선길이 차츰 우측으로 휘어진다.

백두산 가는 도중. 
이제 우측으로 보이는 백두산을 향한다.

백두산을 가리키는 이정표.

백두산 정상.


17분 뒤 만나는 월성 이씨묘에선 백두산이 손에 잡히지만 꽤 높아 보인다. 곧 원명사 갈림길. 여기서 백두산까진 12분이면 올라선다. 산불초소가 있는 백두산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은 가히 일품이다. 양산 다방동에서 백양산까지 이어지는 금정산 대종주능선이 낙동강과 나란히 내달리고, 동쪽으론 까치산(그 뒤 돛대산)에서 시계방향으로 돈 산행팀의 궤적이 한눈에 펼쳐진다. 강 본류와 서낙동강으로 갈리는 대동수문도 보인다. 한마디로 장관이다.

하산은 초소 뒤쪽으로 내려선다. 6분 뒤 갈림길. 뚜렷한 직진길 대신 들머리에 최대한 근접하기 위해 고사목이 보이는 우측으로 발길을 옮긴다. 과거 산불 흔적이 역력하다. 이장한 묘 좌측으로 내려서면 다시 묘지를 만나고 여기서 우측으로 가면 대숲을 지난다. 8분 뒤 갈림길에선 왼쪽으로 가면 공동묘지. 여기서 묘지 사이 뚜렷한 길로 내려서면 파란 지붕의 초정리 대형 축사와 만난다.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가면 도로 확포장 사무실. 왼쪽으로 꺾으면 예안리 고분군 앞 도로를 만나고 여기서 우측으로 가면 들머리 예안리 장시마을 정류장에 닿는다. 축사에서 15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낙동강 칠백리' 대나무 통구이 일품
    
산경표 백두대간 편의 낙남정맥은 분산(지금의 분성산)에서 끝을 맺는다고 돼 있다. 김해천문대가 위치한 분성산 아래의 김해시 구산동 일대는 거리상으로 낙동강과 꽤 떨어져 있다. 이곳은 금관가야 도읍지로 인근에는 해반천을 중심으로 왕릉과 고분군이 산재해 있어 산경표의 주 뼈대인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 200여 년간 제자리를 못 찾고 방황하던 낙남정맥이 1980년대 후반이 돼서야 비로소 산꾼들이 산줄기를 잇고 이어 낙남정맥을 연결하는 종주가 시도돼 지금에 이르런 것이다.

아마추어 산꾼 이재수가 주장한 '낙남정맥의 종착지는 김해 백두산이다'라는 대명제는 아직 악계(岳界)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하나의 설이다. 하지만 최근 발행된 '태백산맥은 없다'(조석필 지음) 등의 산서에서도 이런 주장이 제기돼 차츰 힘을 얻고 있다.

또 한 가지. 일각에선 낙남정맥의 끝이 부산 강서구 봉화산이라는 주장도 들린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김해 용지봉에서 불모산 보배산을 거쳐 봉화산 산줄기가 서낙동강 하구 녹산수문에서 끝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도권 산꾼들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1900년대 초반까지 서낙동강의 하구인 녹산이 바다라는 사실을 간과한 무지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낙동강 칠백리'(051-972-0702). 들머리로 가는 도중 큰 간판이 보여 찾기는 어렵지 않다. 돼지 오리 대나무 통구이(사진) 전문점이다. 말그대로 고기를 대나무통 안에 넣고 장작불에 1시간 정도 굽기 때문에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하다. 돼지 1인분 8000원, 오리 1마리 3만 원. 이 집은 100년 된 일본식 가옥. 내부 다다미만 걷어내고 온돌로 교체했을 뿐 원형 그대로라 건축학적으로 의미있는 곳이다.


◆ 교통편 - 구포역 인근서 버스 타 예안리 장시마을 하차

구포역에서 나와 우측으로 100m쯤 가면 만나는 재활용센터 앞 시외버스정류장에서 김해여객 대동행 버스를 타고 대동면 예안리 장시마을에서 내린다. 오전 7시30분, 8시40분. 1000원. 구포역은 지하철 2호선 구명역에서 내려 '구포역' 방향으로 올라와 골목길(입구에 이정표 있음)로 10분 걸어가면 된다. 이 버스는 구포시장 앞에서도 정차한다. 날머리 장시마을 정류장에서 구포행 버스는 오후 4시10분, 7시5분에 출발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강서구청 지나 좌회전~대동수문~경남 김해시 대동면~상동 대동 IC 좌회전~대동농협 지나~굴다리~시청 불암동 좌회전~대동면사무소 지나~예안리 장시마을 버스정류장 순.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 500회 특집
-국제신문 홈페이지 '산행기' 게시판 스타 산꾼 좌담

"山에 대한 신문의 애정 계속 이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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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대에서 만난 산꾼들. 좌로부터 박수연 이재수 공남신 박경희 씨.


국제신문 홈페이지 초기 화면 하단에 위치한 '근교산&그 너머' 창을 클릭하면 왼쪽 아래에 '산행기' 게시판이 있다. 이곳은 일반 산꾼들이 산행기를 올리는 코너이다.

근교산 취재팀이 연재한 산행지를 다녀와서 냉철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모처럼 떠난 해외 산행지를 폼나게 소개하기도 한다. 달빛 따라 산행하는 올빼미족이 있는가 하면 대간이나 정맥꾼들의 연재도 신바람나게 읽힌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보석 같은 숨은 길을 동료 산꾼들에게 알려주는 넉넉함도 묻어난다.

최근에는 글 위주의 무미건조할 수도 있는 산행기에 상세한 지도와 시원한 사진이 첨부돼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산행기를 올리는 산꾼들과 접속지역은 이제 부산·경남을 넘어 전국을 대상으로 한다.

2003년 1월 문을 연 산행기 게시판은 월 평균 50건 정도가 올라오며 접속 건수는 편당 수백 건에서 많게는 수천 건에 이른다. 이렇다 보니 얼굴은 모르지만 서로의 산행기를 읽으며 정보 교환을 하는 이른바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을 정도다.

이재수(51·KT 동래지사) 공남신(52·부산시청) 박경희(45·필명 오월에) 박수연(45·교사·필명 박시). 이들은 국제신문에만 산행기를 올리는 열렬 산꾼으로 사실상 산행기 게시판을 주도하고 있다.

근교산 취재팀은 이들을 국제신문 편집국 회의실에서 만나 매주 연재되고 있는 '근교산 시리즈'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이재수 씨는 국제신문 산행기 게시판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최고의 스타 산꾼이며, 공남신 씨는 야생화 사진과 한층 세련된 편집으로 최근 들어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오월에'라는 필명의 홍일점 박경희 씨는 화려한 글솜씨로 산행기의 새 지평을 열고 있으며, '박시'라는 필명을 쓰는 박수연 씨는 간결한 산행기에다 거의 모든 산행기를 읽고 댓글을 다는 부지런함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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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국제신문 산행기 게시판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이재수=그 전부터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를 계속 애독한 독자였어요. 하지만 산행기 중에 간혹 잘못된 점이 발견됐죠. 때마침 2003년부터 게시판이 오픈돼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지적하다 보니 지금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면을 많이 올려 타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이에 아랑곳않고 뚝심을 가지고 임한 결과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알아봐 상당히 부담스럽기까지 합니다. 낙남정맥과 현재 하고 있는 백두대간 종주 등 지금까지 260편 정도 산행기를 올렸어요.

▲공남신=산행 경력은 20년 정도 됐지만 그 전까진 산행기는 쓰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6월 지리산 종주를 해보고 싶은 직장 동료들이 많아 그들을 위해 종주 후 시청 홈피 게시판에 올렸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죠. 이후 산행 부문은 당연히 국제신문이 앞선다는 사실을 알고 게시판에 우연히 한 번 들어가봤는데 예상 외로 수준이 높았어요. 이재수 씨가 선도자 역할을 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글 위주여서 제가 야생화 등의 사진을 추가해 산행기를 작성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더군요.

▲오월에=조금만 가게를 15년쯤 하다보니 살림, 가게, 교회에 매여 정말 뒷산 약수터에도 못가 봤었죠. 어느 순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가게를 접고 산을 타보라는 지인의 권유를 받았죠. 첫 산행이 2003년 5월 계룡산이었어요. 5월에 산을 처음 갔기에 필명이 '오월에'입니다. 가고 싶은 산을 온라인 상에서 검색하다 보니 국제신문이 안 나오는 데가 없었어요. 해서 홈피에 들어가보니 역시나 산행기 게시판이 활성화돼 있더군요. 80여 차례 산행기를 올렸는데 반응이 좋아 기분이 좋습니다. 이에 자신감을 얻어 지금은 포항의 모교에도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박시=오랫동안 개인 홈피에 산행기를 올렸지만 대외적으로는 글을 남기지 않았어요. 물론 오래 전부터 국제신문 산행기 게시판은 열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꾸준히 올라오는 이재수 씨의 열정적인 산행기를 보고 감동을 받았죠. 나도 이재수 씨처럼 다른 산꾼들에게 미력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 산행기를 올리게 됐죠.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국제신문에 올린 첫 산행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재수 씨의 산행기에 감명을 받아 올린다고.

▲기자=500회를 맞은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에 대해서 한 마디씩 해주시죠.

▲이재수=10년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산꾼들을 위해 지면을 할애한 신문은 없었습니다. 간혹 산 소개 기사가 등장했지만 그건 개략적이거나 단편적인 내용일 뿐 실제로 산행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국제신문의 산에 대한 애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산깨나 탄다는 산꾼들이라면 100%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취재팀에게 한 가지 주문을 하려고 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1995년에서 2001년까지 소개한 산을 다시 한 번 리바이벌해 소개했으면 합니다. 당시 소개한 산들은 밀양 청도 경주 등의 보석 같은 곳이었죠. 이제는 들머리 날머리만 맞을 뿐 길이 거의 없습니다. 해서 저는 겨울에만 그 산들을 찾는 실정입니다. 그때 국제신문이 소개한 산들을 최근 타 언론에서 기사화해 히트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공남신=사실 부산에서 산 좀 탄다는 사람들이 국제신문을 구독하지 않으면 간첩이죠. 누가 뭐래도 근교산 시리즈가 국제신문의 간판입니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산행기의 눈높이는 중간쯤 되는 지금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산행지도를 좀 더 상세히 하고 계절적 부분을 좀 더 강조했으면 합니다.

▲오월에=최근 등산 인구가 부쩍 는 사실을 몸으로 느낍니다. 저는 사무실 동생이나 교회 동지, 그리고 군에 간 아들의 여자친구 등 산에 문외한인 주변사람들을 주로 꼬드겨 산엘 갑니다. 그러다 보니 초보자들을 배려해, 지금도 잘 하고 있지만 가급적이면 원점회귀 코스를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박시=왕초보 때 국제신문에서 소개한 일광산을 보고 가족과 함께 산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당시엔 5분 가다 스크랩한 신문 한 번 보고, 다시 또 한 번 보고, 그러다 여의치 않으면 되돌아가보기도 하고 하여튼 불안감 속에서 산행을 했습니다. 산행기가 얼마나 정확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 강조되는 대목이죠. 지금도 초보자들이 교과서 같이 여기는 국제신문의 산행기가 한 자의 오·탈자도 없는 완벽함을 추구했으면 합니다.

▲기자=서로의 산행기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나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재수=오월에 씨가 처음 산행기를 올렸을 때부터 글이 워낙 빼어나 쭉 눈여겨 봤습니다. 저와 함께 산행을 하는 현인두 씨는 오월에 씨의 완전한 팬입니다. 그는 산행 내내 오월에 씨의 감동적인 문장을 외고 또 외웁니다. 그는 국제신문 산행기 게시판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칭찬을 합니다.

▲오월에=말씀드리기 뭣 하지만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글을 써 상깨나 받았습니다. 중학교 땐 글이 너무 좋아 모르는 선배 오빠가 교실로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결혼도 제가 남편에게 무려 16장의 장문의 편지를 쓴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죠.(웃음) 사실 전 산꾼이 아니라 어설픈 글쟁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재수 씨의 산행기는 한 마디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그런 글 속에는 자기 과신이 은연 중에 내포돼 있지만 이재수 씨의 산행기에는 희생과 겸손, 그리고 성실함이 묻어납니다. 덕분에 국제신문의 산행기가 더욱 빛을 발합니다.

▲박시=전 이재수 씨의 열정을 한번 더 강조할까 합니다. 그와는 가이드 산악회에서 한 번 만났습니다. 아니, 제가 이재수 씨의 이름을 참가자 명단에서 우연히 발견해 인사를 했죠. 그날 저는 이재수 씨를 근거리에서 지켜봤습니다. 메모를 거의 하지 않던데 산행기에서는 그야말로 완벽한 글이 올라옵니다. 비결이 있나요.

▲이재수=간단한 메모는 합니다. 전 하루에 제가 찾아놓은 '즐겨찾기'의 사이트에서 산행기를 평균 대여섯 편 정도 봅니다. 일주일이면 30편쯤 됩니다. 산행 전에 준비를 많이 하면 메모가 적어도 많이 보고 꼼꼼하게 적을 수 있습니다.

▲공남신=이재수 씨가 화제로 떠오르니 이재수 씨의 산행기에 대해 한 마디 할까 합니다. 지금도 완벽합니다만 사진을 좀 더 추가하면 더욱 더 관심을 끌지 않을까 합니다. 사진도 용량을 크게 하면 속도가 느려져 네티즌들이 짜증을 냅니다. 이럴 경우 용량을 줄여 편집하면 그야말로 100점짜리 산행기가 될 것 같습니다.

오후 5시30분 시작한 좌담회는 어느덧 8시가 돼서야 끝을 맺었다. 못다한 말이 남았는지 그들은 저녁식사를 하면서도, 몇 순배 술잔이 돌면서도 계속 산행 이야기를 계속했다. 밤 10시40분. 그냥 두면 밤을 샐 것 같아 기자가 냉정하게 '쫑'을 냈다.


정리=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사진=강덕철 기자
dckang@kookje.co.kr
 
 

국제신문 근교산 홈페이지 열렬 마니아 이재수씨

-촌철살인 산행기로 홈페이지 산행기란 주도


 
 
 
주말 늦은 밤이면 기자는 반드시 국제신문 근교산 홈페이지에 들어간다. 산행기 기사에 대한 냉엄한 평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근교산 홈페이지 산행기 코너에는 그 주 소개된 산을 다녀온 후 반드시 산행기를 올리는 '열렬' 마니아가 있기 때문이다.

KT 동래지사에 근무하는 이재수(49)씨가 그 주인공.

그는 기자의 산행기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를 경우 촌철살인과 같은 지적으로 기자의 간담을 서늘케 해 어느새 기자를 비롯한 많은 산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산행기에는 국제신문에 소개된 기사를 본 후 주말에 어느 정도의 산꾼들이 찾아왔는지, 산꾼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기자의 산행기가 제대로 됐는지 등이 냉정하게 적혀있다. 검색 건수는 날로 늘어 200여건에 달하며 지금은 그의 고정 팬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한때 부인의 병간호로 한달간 산행기를 올리지 못하다가 그간의 사정을 적으면서 다시 글을 올리자 그 밑에는 많은 댓글이 올라와 인기를 실감케 했다.

'한동안 글이 안올라와 궁금했는데 부인께서 큰 수술을 하셨다니…. 앞으로 좋은 산행기를 기대합니다' '늘 존경하는 맘으로 글을 보고 있습니다' 등이 댓글의 주 내용.

지난 6월 388회 '오룡산~시살등' 코스를 다녀온 후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지난해 1월 319회 도덕산~천장산 코스를 시작으로 이번에 100번째 산행기를 올리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신문에 소개된 388편 중 250회 이상을 다녀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략) 최근 신문에 소개된 코스에는 많은 산꾼들이 찾아 마치 금정산 산행에 나선 듯한 착각을 하게 됩니다. 시살등에서 50대팀을 만났는데 그분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국제신문 기사 스크랩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신동대굴에서 곧장 하산하면 통도골이며 선리마을과 가깝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신문기사를 암기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이씨는 "산꾼의 한 사람으로 국제신문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멋진 기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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