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레오스코프(stereoscope)라는, 입체경(立體鏡)으로 번역되는 광학기계가 있습니다. 안경처럼 생긴 이 문명의 이기(利器) 아래 동시에 찍은 항공사진 2장을 놓고 보면 처음엔 잘 보이지 않다가 초점이 맞춰지는 순간 사진 속의 마천루나 수목들이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눈앞에 나타나지요.

 그 숱한 발길로 친숙한 동네 뒷산을 오르내려도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남근석 여근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걷기만 한다면 평생 지척에 두고도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겠지만 스테레오스코프를 보듯 꼼꼼히 살펴보면 영락없는 성기(性器)의 형상을 한 '거시기'가 한눈에 쏘옥 들어오지요.

 남근석은 흔히 양근석 입석 선돌 장군석 낭군석 좆바위 불알바위 등으로 불리고, 여근석은 밑바위 여궁 처녀바위 샅바위 등의 닉네임을 갖고 있지요. 또 남근과 여근이 함께 있으면 부부암, 비슷한 남근이 그 밑에 있으면 자식바위라 칭하고 이 모든 것을 뭉뚱그려 관련 전문가들은 성석(性石)이라 표현하지요.

 성석을 닮은 바위나 폭포 구릉 등의 지형을 보면 점잖은 사람들은 애써 고개를 돌립니다. 평범한 장삼이사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냥 웃지요. 하지만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기원을 드립니다.

 예부터 성석은 숭배 대상이었습니다. 그냥 웃고 넘길 피사체가 아니라 존재의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지요.

 우선 성이 지닌 생산력이 곧 성기 숭배의 형태로 나타나 마을의 안녕과 풍년 및 풍어를 기원하는 토속신앙의 대상이 됐지요. 다랑이논으로 유명한 남해 가천마을 주민들이 매년 암수바위 앞에서 마을의 평화와 풍어를 기원하며 제를 지내는 것이 좋은 예가 되겠지요. 득남을 기원하는 성석인 기자석(祈子石)은 새끼줄에 둘린 채 곳곳에 널려 있어 두말하면 잔소리겠지요.

 풍수지리상의 음양조화를 이루기 위해 비보압승(裨補壓勝)의 대상으로도 성석이 이용됐답니다. 풍수지리상의 허한 곳이나 부정한 지형에 성석을 세워 마을의 평온을 바라는 형태지요. 혹은 애초부터 음양의 조화에 맞게 위치한 남근석과 여근석을 확인함으로써 누리게 되는 심적 평온함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숭배로 봐도 무난하지요. 경주 오봉산 여근곡이나 거제 둔덕면 산방산 남자바위와 작은 여근곡이 단적인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성석 순례를 떠났습니다. 취재 도중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제아무리 첨단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성석 숭배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소박할지라도 인간의 욕망은 영원하니까요.

 첨언 하나. 취재 대상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행여 외설로 낙인 찍히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사실 고민 아닌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성석은 낯뜨거울 것도 숨겨야 할 것도 아닙니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하고많은 소중한 문화유산 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 거제 둔덕면 애바위와 애애등

거제 둔덕면 산방산.

5,6부 능선쯤의 튀어나온 바위가 애바위다.


         거제 산방위 애바위와 마주보고 있는 애애등. 민둥산이었을 땐 선명했지만 지금은 자세히 관찰해야 
         확인할 수 있다. 산의 가운데 부분, 활엽수가 소나무를 동그랗게 감싸고 있는 곳이 애애등이다.

거가대로가 뚫리면서 한층 가까워진 거제 둔덕면에는 청마 유치환의 부부 묘와 선영 그리고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청마기념관이 있다. 이곳에는 또 고려 의종이 정중부의 난 때 파천해 3년간 머물렀다는 둔덕기성(폐왕성)도 있다. 해서 마을사람들은 왕이 살았기 때문에 이곳 둔덕 땅만을 구분해 '전하도'라고도 부른다.

 둔덕면 방하리 둔덕들 한가운데 서면 우락부락한 바위산이 양팔을 벌려 마을을 감싸고 있다. 거제 11대 명산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산방산이다. 산 5, 6부 능선쯤에 한눈에 봐도 힘이 넘치는 바위 하나가 툭 튀어나와 눈길을 끈다.

 둔덕골 출신이자 청마기념관 명예관장 겸 자원봉사자인 김화순(63) 씨는 "어릴 때 할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어르신들이 '사랑 애(愛)' 자를 써 애바위라 불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주보는 우두봉 자락의 작은 둔덕을 가리키며 "저곳은 여성의 음부를 닮아 '사랑 애' 자 두 개를 붙여 애애등이라 했다"고 덧붙였다. 쉽게 말해 남근석과 여근곡이 마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습은 청마기념관 2층 전망대에서 보면 대략 확인된다.

 동행한 산경표연구소 박의석(57) 소장은 "남성을 상징하는 정동쪽 좌청룡 자리에 애바위가 있고, 반대쪽 우백호 자리에 여근곡인 애애등이 마주 보고 있으며, '흙 토(土)'를 상징하는 그 사이 너른 둔덕 들녘이 비옥해 음양오행에 따른 풍수지리가 이보다 좋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애애등이 애바위보다 미미한 데다 방향 또한 약간 틀어져 있어 아쉽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명예관장은 "수십 년 전엔 민둥산이어서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여근 그 자체였지만 지금은 숲이 울창해 그 흔적이 미미할 뿐이며, 음부를 닮은 애애등에는 예부터 물이 끊이질 않아 어릴 때 소먹이던 일종의 우마장 역할을 했지만 이후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지금은 산길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자세히 보려면 애애등 아래 비닐하우스 인근으로 다가가야 된다. 잎을 떨군 활엽수가 여근 부분을 동그랗게 비보하며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다. 마을사람들은 음양오행에 따른 풍수지리가 좋아 마을 전체가 지금까지 평온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경주 여근곡

   경주 오봉산 여근곡 겨울. 가운데 부분이다.
   가을엔 여근곡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여근곡 여름.

경부고속도로서 본 여근곡.

고속도로에서 당겨서 본 모습.


우리 땅 대부분의 여근이 쪼개진 바위나 폭포이지만 경주 건천읍 여근곡은 산 전체를 통째로 여근이라 봐도 무난할 정도로 우선 크다. 오봉산이라는 멀쩡한 산 이름이 있지만 생긴 모습이 워낙 여성의 성기와 닮아 여근곡이 대표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성(性) 관련 민간신앙 대상물인 여근곡은 삼국유사 지기삼사(知幾三事) 편에서 신라 선덕여왕의 뛰어난 예지력을 보여주는 대목에 언급될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드라마 '선덕여왕' 마지막회 때 여왕이 깎아지른 너른 절벽 위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여근곡이 위치한 오봉산 정상 바로 밑의 마당바위(지맥석)이다.

'선덕여왕' 마지막회 때 나온 마당바위.

드라마 '동이' 때도 마당바위가 나왔단다.



 건천읍 신평2리에 위치한 여근곡은 경부고속도로 건천나들목과 경주터널 사이, 상행선일 경우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로 보인다. 위압감을 주지는 않지만 병풍처럼 남북으로 길게 뻗은 오봉산 한가운데 위치한 여근곡은 둥근 모양의 두둑과 골이 절묘하게 조합돼 누가 보더라도 음문 형상임을 알 수 있다. 그 음문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까지 고려한다면 벌거숭이 여인의 하체를 적나라하게 보고 있는 듯해 민망할 정도다. 이 모습은 신평2리 마을회관 옆 여근곡 성 테마 박물관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가장 뚜렷하게 확인된다. 사계절 만추의 여근곡(오른쪽 사진)이 제일 선명하다.


 여근곡과 관련된 구전도 재밌다. 옛날 새로 부임하는 경주 부윤은 그 음탕한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건천보다 먼 길인 동쪽의 안강 땅을 통해 경주로 들어왔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은 애써 고개를 돌려 지나갔다고 한다. 한국전쟁 땐 이동하던 미군들이 여근곡을 보며 탄성과 야유를 질렀다고 한다.

 숲(오봉산)을 봤으면 이제 나무(여근곡)를 볼 차례. 오봉산 여근곡 등산로의 들머리는 유학사. 절에서 300m만 걸으면 여근곡 샘터를 만난다. 바로 옆엔 '옥문지'라는 팻말이 서 있다. 호스를 묻어 대웅전 옆 샘터로 뽑아 쓰고 있지만 샘터 주변은 늘 축축하게 젖어 있다.15년 전 오봉산에 불이 나 산이 홀랑 다 탔을 때도 샘터가 위치한 음부 주위는 화마를 피했다고 한다.

 샘터를 중심으로 한 수목 대비도 뚜렷하다. 샘터 주위에는 잎을 떨어낸 활엽수가 있지만 그 경계에는 소나무가 동그랗게 감싸고 있다. 멀리서 봤을 때 음부가 식별되는 이유이다.                      
   

여근곡 옥문지.

오봉산 여근곡 산행 들머리.

          
 신평2리 촌로들에 따르면 예부터 여근곡 샘을 작대기로 휘저으면 마을 여자들이 바람이 나기 때문에 마을에선 청년들이 샘을 지키기도 했다. 이런 차원에서 지난 1970년대 초까지 마을에선 여근곡을 신성시하며 동제를 지냈다고 전해온다.

 여성이 있으면 남성이 있기 마련. 여근곡 쪽에서 맞은편 신평리 쪽 너른 들판을 바라본다. 신평리 원신마을을 기점으로 앞으론 경부고속도로, 뒤론 중앙선 철로와 영천과 포항을 잇는 4번 국도가 횡으로 나란히 내달린다.

 여근곡 성 테마 박물관 박용(76) 관장은 "옛날에는 여근곡 맞은편 봉우리가 남근 모양을 하며 여근곡을 향하는 형상이었지만 철도와 국도가 뚫리면서 그 모습이 사라져 지금은 흉물스런 산사면이 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곳 또한 우백호(서쪽) 자리에 여근곡이, 비록 잘려나갔지만 좌청룡(동쪽) 자리에 남근 형상, 그리고 그 사이 '흙 土'를 상징하는 신평리엔 너른 벌판이 있어 음양오행에 따른 풍수지리가 완벽하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여근곡 자리에 지화곡(只火谷), 맞은편 남근 형상 봉우리엔 접포산(蝶布山)이라 표기돼 있다. 지화곡과 접포산은 각각 꿀과 나비를 의미하므로 음양의 조화가 딱 맞음을 보여준다.

어휴! 망측해라, 곳곳의 남근석 여근석

  경북 의성 비봉산의 암릉 우측 끝단 소나무 아래 절묘한 위치에 숨어 있는 남근석. 남근 그 자체다.

경북 의성 비봉산의 암릉 끝자락에 남근석이 숨어 있다. 산꾼들은 흔히 금성산~비봉산 코스를 산행한다. 금성산과 비봉산 정상을 잇따라 지나 급경사 사면을 밧줄에 의지해 내려와 고개를 돌리면 암릉 맨 우측 끝단 소나무 아래 절묘한 위치에 남근석이 숨어 있다. 선명한 귀두 모양이 영락없는 남근 그 자체다.

 억새로 유명한 장흥 천관산에는 양근석과 금수굴이 마주보고 있다. 높이 4m쯤 되는 양근석은 발기한 모습이며 그 아래에는 불알 모양의 동그란 바위 두 개가 붙어 있다. 자연석이 이처럼 비례에 맞춰 완벽한 형상을 갖춘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와 마주 보는 능선에는 여성의 음부를 닮은 금수굴이 있어 자연의 오묘한 조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천관산 금수굴.

천관산 양근석. 둘은 마주본다.


 문경 주흘산의 여궁폭포는 여근을 떠오르게 한다. 제1관문인 주흘관을 지나 우측 곡충골 방면으로 1㎞쯤 오르면 만난다. 높이 20m인 이 폭포는 옛날 하늘에서 내려온 일곱 선녀가 노닐었다고 전해온다.

 기암괴석이 지천이라 '천구만별'(千龜萬鼈·천 마리의 거북이와 만 마리의 자라)이라 불리는 금정산에도 최근 남근바위와 여근바위가 발견됐다. 남근석은 금샘 동쪽 아래, 여근석은 상계봉 아래 수박샘 바로 위에 숨어 있다. 둘 다 등산로를 벗어나 있어 찾기는 쉽지 않다.

부산 금정산 남근바위.

부산 금정산 여근바위.


 음양의 조화를 위한 남근석도 있다. 거창 미녀봉은 임신한 여인이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누워있는 형상. 산아래 가조면 사병리 생초마을 벌판에는 선돌인 남근석이 마주 보고 서 있다. 마을사람들은 과도한 음기를 벌충하기 위한 비보 성격의 남근으로 풀이하고 있다.
   임신한 여인이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누워있는 형상인 미녀봉과 남근석이 마주보고 있다. 거창군청 제공

 월악산에도 남근석이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이 산은 음기가 왕성한 산이다. 덕주사 뒤편인 제천시 덕산면에서 보면 월악산은 누워있는 여인의 얼굴을 닮았다. 선조들은 월악의 음(陰)의 지기(地氣)를 누르고 음양의 조화를 위해 덕주산 입구에 남근석을 세웠다.
           월악산 남근석.

 제주도에도 성석이 발견된다.
 산방산 중턱 산방굴사 우측 벼랑에 남근석이 서 있으며, 라온GC 클럽하우스 입구의 자연동굴에도 남근석과 여근석이 마주 보고 있다. 타이거 우즈도 이곳을 방문했을 때 남근석과 여근석을 만지고 갔다 한다.

제주 라온골프클럽의 동굴 속 남근.

동굴 속 여근.둘은 마주보고 있다.


        제주 산방산 중턱 산방굴사 우측 벼랑에 서 있는 남근석.

"경주 오봉산 여근곡 성(性) 테마박물관 놓치면 후회"
-개인 수집가 박용(사진 오른쪽) 관장 370여 점 전시


경주 건천읍 신평2리 오봉산 여근곡 입구 원신마을에는 빠뜨려선 안 될 명소가 한 곳 있다. '여근곡 성 테마 박물관'(054-751-2229)이 바로 그것이다. 박용(76) 관장이 40여 년 동안 발품을 팔아 모은 남근과 여근을 닮은 희귀 수석 등을 비롯하여 전 세계 어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다양한
문양석이 370여 점 전시돼 있다.

 고향이 경주인 박 관장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여근곡을 본 후 이곳이 세계적으로 드문 자연예술품이라는 사실을 인식, 지난 2004년 여근곡이 가장 잘 보이는 지금의 터를 사들여 건물을 짓고 이듬해 4월 문을 열었다. 여근곡과 여근곡 성 테마 박물관이 세트로 입소문을 타면서 명소화돼 지금은 경주시가 적극 나서 마을 진입로를 넓히고 있으며, 주차장도 이후 건립할 계획이다.

 박 관장은 "개인적으로 석복(石福)이 있어 적지 않은 희귀 성석(性石)을 많이 모았다"며 "수석에 관심이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무료로 개방하던 여근곡 성 테마 박물관은 내달부터 입장료를 받는다. 대인 3000원, 학생(초중고) 및 단체(20인 이상) 2000원.
           여근곡 성(性) 테마 박물관 내 성석(性石).

박물관 내


박물관 내 성석(性石)들.

문경 주흘산 여궁폭포.



맛집 둘
금강산도 식후경. 맛집 두 곳 소개한다.
여근곡이 위치한 건천읍에는 흑염소 불고기(아래 사진)가 아주 유명하다. 23년 전통의 '당나무식당'(054-751-0975)이 잘한다. 흔히 여성을 위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농본초경과 동의보감에 따르면 흑염소 수놈은 남성강화 식품이다. 1인분 1만 3000원. 육개장이 아주 맛있다. 건천IC에서 차로 1분 거리.


 거제 둔덕면에선 '88횟집'(055-634-1626)을 권한다. 겨울철 별미인 밀치(참숭어긿 3만, 4만, 5만 원)를 주문하면 뼈째 썬 것과 포를 뜬 것으로 나눠 올라온다. 주인장의 칼 솜씨가 빼어나 밀치의 진면목을 알게 해준다. 국물이 시원한 물메기탕(7000원)도 별미이다.


뜰 앞 조그마한 연못에 오래도록 키우던 버들치가 밤새 하얀 배를 드러내며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상수도물 소독을 하라는 면사무소의 지침에 따라 재약산 내려오는 원수에 소독약을 넣었기 때문이다. 미물이지만 오랫동안 정이 들었는데.
달빛 가득한 빈 연못을 보고 있으니 콧등이 찡 해지며 무지함과 우매함이 뒤섞여 자책으로 다가온다. 소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무소유가 아름답다는것을 새삼 느낀다(중략).

배내골은 예부터 모기가 없는 청정 지역이다. 계곡이 깊고 물이 맑으며 여름에도 서늘해서 그런 것 같다. 하나, 배내골이 바깥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면서 모기가 제법 생기기 시작했다. 당연히 면사무소에서 방역을 하라며 연막소독기를 할부 구매하라고 해서 큰 맘 먹고 구입했다. 휘발유와 경유 살충제를 썩어 운전을 해보니 굉음과 함게 뽀얀 연기가 안개처럼 피어 올랐다. 어릴적 동네 한복판을 가로 지르며 연기를 뿜던 연막차 생각이 났다.
다음날 신기하게도 모기와 밤벌래가 거의 없어져 역시 기계값을 하는구나 하며 생각했는데 아뿔사 이게 웬일인가.
초저녁 하늘을 비행물체처럼 날아다니던 반디불이가 보이지 않지 않는가. 풀섶에서 한여름을 여유로이 노래하던 여치도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렇다. 나의 무지함속에 많은 곤충과 풀벌레들이 질식사 내지 중독사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래! 여태껏 그랬듯이 그냥 공생하며 살아야 겠다고(중략).

21년 전 배내골로 들어와 배내산장을 운영하는 '굴러온 돌' 김성달(55) 씨. 그가 도시인들이 소위 말하는 전원생활 내지 산골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종의 작은 에피소드이자 시행착오이다. 얼핏 그냥 읽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시골에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은 예이다.

황토집에 군불을 지피는 배내산장 산장지기 김성달 씨는 "전원생활을 도회지에서 생각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으니 여유있게 살펴보고 들어오라"고 말했다.
배내산장 마당의 김성달 씨. 등뒤로 보이는 느티나무는 김 씨가 21년 전 심은 것이다.
전원생활을김성달 씨가 직접 깎은 솟대.
김성달 산장지기 부부.


전원생활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충동적인 사람도 있지만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하나, 실제로 성공한 경우가 드물다. 아마도 꿈과 현실의 괴리와 컸던 데다 시골 생활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리라.

전원생활. 마냥 낭만적이고 멋있을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녀 교육문제나 시골의 쓸쓸함 때문에 망설이다가 포기하기 일쑤다. 김성달 씨로부터 전원생활을 잘 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둬야할 다섯 가지 필수 사항을 들어봤다.
참고로 김 씨는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배내골 원주민 어른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신임을 얻어 4년 전에는 '굴러온 돌' 중 처음으로 마을 당상제의 제주로 임명돼 당상나무 앞에서 지극 정성으로 넙죽 절하며 축원을 읽었다. 한마디로 시골에 들어와 정착에 성공한 도시인이다.


첫째 시골에 들어오기 전에 도회지에서 해보고 싶은 것은 빠른 시일 내에 다 해봐야 미련이 남지 않는단다.
돈이나 명예에도 저돌적으로 도전해보고 가무를 곁들인 술도 마셔보라는 것. 그래야 산골에 들어와도 딴 생각이 들지 않는다.

100m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도중에 그만 두면 또 뛰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등수에 상관없이 혼신의 질주를 했다면 미련은 별로 없을 것이다
출가한 스님도 어릴 적 아무것도 모르고 타의에 의해 머리를 깎고 동자승부터 시작할 경우 세월이 가면서 점점 바깥세상이 궁금해진다. 색이며 재물에 끌리는 것은 당연지사. 환속하는 스님들의 대부분이 이런 경우이다.
그러나 바깥에서 이것저것 해보고 난 후 어떤 계기로 입산한 스님은 최소한 득도를 하고 안 하고에 관계없이 승복을 벗지 않고 중노릇을 평생 한다는 것이다
 
촌집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촌집은 평수가 작고 또 여러 가구가 한데 모여 있기 때문에 그 속에 산다는 것은 시골 생리를 모르면 매우 힘들다.
시골 사람들은 순박하기는 하지만 단순하여 이해하기가 힘든 부분이 상당히 많다. 도회지사람과 달리 남의 일에 관심이 많아 어디서 무엇을 했던 사람이고 성은 무엇이고 나이는 몇이고 학벌 자식 등등 모든 것을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족속이다.
평소에는 별 말이 없는데 약주만 한 잔 하면 거의 매일같이 찾아와 했던 말을 또 하고 했던 얘기를 또 한다. 옛날에 자기 땅이 어디에 있었고, 자기 선친은 이 동네서 무엇을 했고, 굴러들어 온 너보다 우월하다는 등 녹음기를 틀듯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한다. 만일 안들어 주면 '박힌 돌'의 텃새가 아주 고약하기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
결국 시골로 오는 사람들은 자연에 가까워지고자 오는 것인데 자연과 가까워지기 전에 시골사람들한테 염즘이 나버리면 버틸 수가 없다. 시골 사람들과 좀 떨어져 작지만 나만의 세계를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집이 크면 절대로 안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회지에서의 소외감을 느껴 시골에 오기 때문에 일종의 보상 심리 같은 것이 작용해 일단 큰 집이나 독특한 집을 짓기를 원한다. 하지만 집이 크면 관리가 힘들다.
풀을 뽑고 도색을 하고 청소를 하고 정리하는 일에 매여 내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나를 소유해 버린다. 집 관리인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정원은 하루에 20~30분 정도 관리만 하면 족하게 해라. 대신 산과 들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고매한 학자들에 따르면 한 사람이 땅의 기운을 다스릴 수 있는 면적이 4평이다. 개개인의 근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4명이 살 집은 결국 20평이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손님이 올 경우를 대비해 10평 정도의 별채를 지어 두는 것이 이상적이다. 구조는 황토로 군불 때는 방 하나와 스위치만 넣으면 되는 방 하나 정도에 나머지는 거실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전원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지리산 자락 어느 지인 집에 갔더니 300~400평 되는 정원에 고래등 같은 집을 지어 놓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우선 눈으로 봐서 볼거리는 충분하지만 고래등 같은 집의 기운이 사람의 기운을 다 잠식, 아침에 자고 나면 얼굴이 창백해진 모습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 근기에 맞는 집에서 자고 나면 얼굴이 도화꽃처럼 불그스레해 지고 눈동자가 희고 검은 부분이 명확해 진다. 경험이다.

풍수지리학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땅은 그냥 보면 땅이지만 자세히 보면 살기 좋은 땅과 살아서 손해를 보는 땅이 있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풍수이다.
풍수에서 사람이 죽어 묻히는 땅은 음택이라 하며 산 사람이 집을 짓고 사는 땅은 양택이라 한다. 음택은 땅의 기운이 중화돼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습하지도 않고 건조하지도 않는 땅이다. 시신이 묻히면 탈골할 부분은 깨끗이 탈골하고, 남아야 할 부분은 오래도록 남아 그 기가 후손에게 뻗쳐 발복한다고 한다.
양택은 배산임수에 좌청룡 우백호가 살아 있어야 하고 안산 또한 조화롭게 있어야 한다. 양택을 내 방식대로 표현하면 편안한 의자에 앉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의자에 편히 앉으려면 등받이가 튼튼해야하고 등받이 뒤에 여백이 없이 의자가 벽쪽에 놓여 있어야 한다. 이때 벽은 조산이고 등받이는 주산에 해당된다. 그리고 팔을 올릴 수 있는 팔받이는 좌청룡 우백호에 해당된다. 내 앞에서 조금 떨어져 내 모습을 바라보거나 내 얘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을 안산이라 한다. 방향은 동향이나 남향을 보고 앉아 있으면 이상적이다.
이런 자리는 좌우가 허하지 않아 삭풍이 들어 올 리가 없고 동남의 생기가 뻗쳐 생활하는데 가장 쾌적하다. 반대로 서북으로 앉는다면 면벽을 하고 앉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내 얘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 학식이나 재물 명예 등이 나보다 높을 경우 내가 주눅이 들어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안산이 지나치게 높은 것과 같다.
집 뒤에 여백이 많아서 도로가 있다든가 천이 흐른다면 내가 앉아 쉬고 있는 의자 뒤에 위험한 물건들이 왕래를 하고 있어 눈이 없는 뒤쪽에서 항상 불의의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것과 같다. 또한 좌우가 무너진다는 것은 의자에 앉아 팔을 얹을 팔받이가 없다는 것에 해당되므로 심신이 고달프다. 유념해야 한다.

마지막 다섯 번재. 자연이 아무리 좋아도 하루 이틀이지 한 두 달 지속적으로 감흥을 줄 수는 없다. 어떤 이는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나 새소리가 그렇게 좋다고 극찬을 하더니 어느 순간 지겨워 죽겠다, 시끄러워 죽겠다고 야단이다.
자연은 좋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려 즐길 수 있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그림이나 야생화 키우기, 자연염색 아니면 조그만 찻집을 하든지 해야 자연 속에서 자연을 매개로 동질성을 가진 사람과 어울릴 수 있다.

 김성달 씨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인연과 연결되듯 좋은 환경, 아름다운 사람과 어울리는 것도 인연이다. 급히 서두러지 말고 앞서 거론한 다섯 가지 사항들을 가슴에 담고 두루 살펴보면 반드시 원하는 땅에서 아름다운 전원생활이 이루어 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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