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장면들을 간혹 봅니다.
 독특한 형상의 나무나 날짐승 들이 대부분이죠. 흐뭇할 때도 있지만 속된 말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지리산 산행 때 만난 다람쥐와 한라산에서 본 까마귀가 바로 좋은 예인듯 합니다. 백무동과 장터목을 잇는 소위 하동바위 코스 중간쯤에는 참샘(1197m)이 있습니다. 하산을 기준으로 할 경우 소지봉(1312m) 바로 아래 위치해 있습니다.










 참고로 함양사람들은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이 지리산으로 가기 위해선 오도재를 넘어 이곳 백무동에서 지리산 천왕봉으로 올랐다고 합니다.
 지리산은 영남 사림의 정신적 고향으로 숭앙돼 사림파의 시조이자 정신적 지주인 점필재 김종직은 두류산 기행기인 '유두류록(遊頭流錄)'을, 그의 제자 김일손은 '속두류록(續頭流錄)'을 썼다고 합니다. 두류산(頭流山)은 지리산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후세에 함양사람들은 점필재와 김일손이 나귀를 타고 머슴과 함께 오른 곳이 백무동, 다시 말해 하동바위 코스로 추정합니다.
 하여튼 함양사람들은 조선시대 때 양반들은 함양땅에서 오도재를 넘어 백무동으로 올랐고, 아랫것들은 함양을 제외한 나머지땅에서 지리산에 올랐다고 농담삼아 자랑합니다.

 다람쥐 소개하는데 무슨 사림이 어떻고 점필재가 어떻고 등등 서두가 길었네요.
 다시 참샘으로 돌아와서, 예부터 물맛이 특히 좋기로 소문난 참샘은 산꾼들의 휴식처였죠. 그러다보니 간식으로 과자와 빵 등을 먹었죠. 이때 부스러기가 조금씩 떨어지자 근처의 다람쥐들이 와서 먹었죠. 그동안 자연식을 하다가 단맛이 적당히 부무려진 과자류에 푹 빠진 다람쥐들은 산꾼들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이 과정이 차츰 반복되다 보니 다람쥐들은 아예 대놓고 사람들 앞에 와서 과자를 달라고 쳐다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들쥐까지 한몫 거들기도 합니다.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론 이 놈들이 야성을 잃고 순치되지는 않나 하고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저 놈들이 정상적으로 생활을 해야 생태계도 제궤도로 돌아가는 데 말입니다.

 선배 산꾼들이 다람쥐의 버릇을 잘못 들여놓았지만 지금이라도 조금씩 다람쥐가 야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후배 산꾼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문산 자연휴양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의 다람쥐들은 사람들이 지나가면 갑자기 숲속에서 나와 에스코트하듯 주변을 멤돕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치 자기 구역이 있는 듯 여기저기서 튀어 나옵니다. 모두 인간이 던져주는 과자 때문이겠죠.


그래서 그런지 입구에는 아예 다람쥐를 본 떠 만든 토피어리 다람쥐가 상징물처럼 있습니다. 휴양림 내 다람쥐가 많다는 것을 자랑이나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째 뭐가 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리산 참샘 인근 다람쥐는 그대로 귀엽기라도 하지, 한라산 윗세오름대피소 인근의 까마귀는 정말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 덩치가 제법 큰 이 놈들은 지네들이 무슨 매나 독수리라고 생각하는지 속된 말로 무게를 잡고 근엄하게 앉아 있습니다. 실제로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음식물을 기다리는 주제에.

       윗세오름대피소에서 본 한라산 서북능. 자세히 보면 사태가 발생해 능선이 허물어진 모습이 그대로
      목격된다.





 이 역시 인간들이 자꾸 음식물을 던져 주면서 생긴 버릇인 듯 합니다. 스스로 먹이활동을 하지 않고 인간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기다리는 독수리들을 볼 때 행여나 야성을 잃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수리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에게 음식물을 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자연의 동식물 심지어 미생물들은 원래 있는 그대로 두어야 생태계가 유지되지 않습니까.


 아빠 졸라 지리산 종주한 씩씩한 4학년생 쌍둥이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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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와 함께 한 쌍둥이 자매. 백무동에서 장터목 가는 하동바위 코스 중간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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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쌍둥이 자매. 사실 누가 지영인지 지선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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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나서 아빠를 내버려둔 채 다시 속도를 내는 쌍둥이 자매(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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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장으로 봐선 영락없는 산꾼인 쌍둥이 자매. 아빠보다 앞서 있다. 하동바위 코스 오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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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아저씨와 인사하는 쌍둥이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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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석대피소 가기 전 아빠와 함께 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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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풀리며 덩달아 표정이 밝아지는 쌍둥이 자매. 해맑은 표정이 왠지 정이 간다. 벽소령에서
     연하천으로 가는 도중 전망이 트이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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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석대피소를 배경으로 촬칵.


 지난달 22일 오전 10시30분께 지리산 하동바위 코스의 중간쯤인 소지봉과 참샘 사이 돌계단길.

 전날 기자는 국립공원 관리공단 지리산사무소의 취재 허가를 얻어 칠선계곡을 통해 천왕봉에 올라 장터목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하산하는 길이었다. 전날 오전 5시에 부산에서 출발, 2시간 30분 동안 운전한 데다 마폭포에서 천왕봉까지의 '마의 코스'를 포함 장장 9시간쯤 강행군을 한 기자는 장터목에서 세상 모르고 모처럼 단잠을 잤지만 피로가 가시진 않았다.
 전날 천왕봉에서 하산할 무렵부턴 비가 부슬부슬 내리드니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보니 바람을 동반한 장대같은 폭우까지 내리고 있지 않은가. 듣기로는 천왕산 입산 금지가 내려졌단다.
 다행히 시간적 여유가 있어 비가 좀 그칠 때까지 기다리다 오전 9시께 빗줄기가 약해지자 백무동을 향해 하산하기 시작했다.

 하동바위 코스는 중산리 코스와 같이 천왕봉으로 오르는 최단 코스일 뿐 특별히 볼거리가 없는 지루한 돌길의 연속이다.
 하염없이 반복되는 돌길을 내려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이의 씩씩한 구령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무료하던 차에 기자는 누굴까 하고 관심을 보이며 기다렸다. 근데 안경 쓴 여자 아이였다. 그것도 둘씩이나.
 알고보니 쌍둥이였고, 그들이 구령소리를 씩씩하게 붙인 건 뒤쳐지는 아빠를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대전 한밭초등학교 4학년 김지영 김지선이라고 했다. 체구는 나이에 비해 작았지만 한마디로 야무지고 옹골찼다.
 뒤따라오던 아빠 김영환(48) 씨는 쑥쓰러우면서도 싫지 않은 듯 "저 놈들이 왜 이리 빨리 가지, 어휴 힘들어 죽겠네"라며 끌끌 웃었다.
 김씨 모녀 3인은 지리산 종주를 시작하는 길이라고 했다. 종주를 시작하게 된 사연이 재미있었다.
 아빠가 안갈려는 쌍둥이들을 데리고 간 게 아니라 쌍둥이들이 갈 생각이 별로 없는 아빠를 마구 졸라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입을 잠시 빌리자면 애들이 다니는 한밭초등학교는 방학 전에 과제로 어떤 체험학습을 할 것인지 미리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문제는 쌍둥이들이 아빠와 상의도 하지 않고 대뜸 지리산 종주 계획을 제출한 것이었다.
 산행 출발 전 아침 일찍부터 비가 제법 내리자 머뭇거리는 아빠에게 어서 출발하자고 재촉한 것도 쌍둥이였다.
 복장도 제법 알차게 갖추고 있었다. 등산화에 두건 그리고 배낭에 커버를 씌운, 제대로 된 산꾼의 모습 그대로였다.
 기자가 본 잠깐 동안의 이들 부녀는 쌍둥이가 앞서 가며 뒤따라오는 아빠를 독려하는 식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모두 재미있다며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는 것이 아닌가.
 하산하는 기자와 오르는 쌍둥이 부녀는 이렇게 잠깐 동안의 만남을 갖고 연락처를 교환한 후 헤어졌다.

 본업으로 돌아온 기자는 취재 후 산행기와 다른 잡무를 보느라 잠시 쌍둥이를 잊다 어제 쌍둥이 아빠와 통화를 했다.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고 했다. 당초 1박 2일로 예정했지만 연하천 대피소에서 하루 더 1박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아무런 사고 없이 다녀와 첫 종주치고는 100% 성공이었다고 덧붙였다.
 개인적인 질문도 빠뜨리지 않았다. 쌍둥이 아빠는 20대부터 40대 초반까지 산을 엄청 많이 다녔고 지리산 종주도 20여 차례나 한 베테랑 산꾼이었다.

 "종주 첫날은 날씨가 계속 안좋아 천왕봉까지 겨우 다녀왔지만 그 다음날부터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애들이 너무 신나게 산행을 했습니다. 남해바다가 보일 땐 다함께 만세도 불렀죠."

 지리산을 찾은 많은 등산객들도 쌍둥이를 볼 때마다 힘내라며 격려도 아끼지 않았단다. 2박 3일 종주 동안 '지리산의 스타'는 단연 쌍둥이였다는 것이었다. 이런 말을 기자에게 전하는 아빠도 전화기 넘어로 표정은 보이진 않지만 분명 신이 났을 것으로 확신한다.

 가족 관계를 여쭤봤다. 쌍둥이 자매 위에 6학년 딸아이가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밝힐 순 없지만 첫째에게 중요한 일이 없었다면 부인과 함께 온 가족이 종주를 했을텐데 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부인도 무척 산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지리산 종주 후 쌍둥이들은 이제 산의 맛을 조금 알았는지 다음 산행지는 가까운 계룡산으로 벌써 정해 며칠전 발표했다고 전했다.

 당시 그 말을 듣고는 엄마가 한마디 했다고 한다.
 "한동안 열심히 산에 다니던 아빠가 잠잠해지니까 조그만 딸들이 이제 산에 갈려고 하네, 어휴 내 팔자야."

 아래 글은 쌍둥이들이 지리산을 다녀와 제출한 보고서 내용이랍니다. 사진과 함께 메일로 보내왔습니다.


자연체험학습 보고서

장소:지리산
때:2008년8월22일(금)~2008년8월24일(일)
목적: 종주, 지리산에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연의 소중함과 필요함 그리고 자신이 높은 산을 올랐다는 성취감을 느끼기 위하여.

   ** 지리산 종주 일정 **
         8월22일
           08:00 백무교 출발
           09:30 하동바위 도착(1.8km)
           10:05 참샘 도착(0.8km)
           10:30 소지봉 도착
           12:30 장터목 도착(5.8km)
           14:00 장터목 대피소 출발(천왕봉go)
           15:10 지리산 정상 도착(천왕봉1915m)            
           16:00 장터목대피소 도착
         8월23일
           07:00 장터목 출발
           09:00 세석 대피소 도착(3.4km)
           11:30 선비샘 도착
           12:20 벽소령 입구 도착
           13:00 벽소령 대피소 도착(6.3km)
           14:30 벽소령 대피소 출발
           16:50 연하천 대피소 도착(3.6km)
         8월24일
           09:00 연하천 대피소 출발
           10:40 토끼봉 출발(2.4km)
           11:13 화개재 도착
           11:40 삼도봉 도착
           12:13 노루목 도착
           12:50 임걸령 도착
           14:40 노고단 도착(천왕봉~노고단25.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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