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2월에도 춥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대면 지금도 촌로들은 영등할매 치맛바람이 매섭다고들 합니다. 영등할매는 어업과 농사를 관장하는 일종의 바람신(神)이지요.

 영등할매는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 내려와 스무날쯤 하늘로 올라간다고 해서 예부터 민가에선 이달을 영등달 혹은 영등철이라 불렀습니다. 영등할매가 지상에 머무는 이 기간에는 바람이 드세 가정에선 정화수를 떠놓고 빌거나 마을에선 공동으로 영등제를 올리며 평안을 기원했습니다. 이러한 풍속은 1970년대 산업화가 대세를 이루면서 차츰 아련한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지요.

 필부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인 영등철 혹은 영등달. 이 추억의 단어가 여전히 일상화돼 있는 분야가 아직 몇몇 있답니다.

  건물 7층 높이인 명선교에서 바라본 울산 울주군 진하해수욕장과 명선도를 잇는 바닷길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동
   해안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이 바닷길에는 음력 2월 영등철이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물빠지기 전 가까이선 본 명선도. 신비의 바닷길을 보는 일은 기다림의 작업이다.

 우선 바다 낚시꾼들입니다. 마니아층인 이들은 음력 2월 영등철만 되면 바빠집니다. 대물과의 한 판 승부를 위해서죠. 바다 수온이 연중 최저점을 기록하는 시점이 바로 음력 2월 영등철입니다. 이때 잔챙이들은 수온이 안정적인 깊은 곳으로 내려가 움직이지 않는 반면 저수온을 이겨낼 수 있는 대물 감성돔들은 어슬렁거리며 갯바위 근처까지 배회합니다.

 일 년 중 자신의 대물 감성돔 기록을 경신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영등철이어서 낚시꾼들이 추운 날씨도 마다하지 않고 특급 포인트를 찾아 나서는 것이지요.

 신비의 바닷길을 찾는 사람들도 영등달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혹자들은 바닷길이 갈리는 이 현상을 두고 구약 출애굽기의 한 장면인 모세의 기적을 떠올리겠지요. 이집트 파라오군에게 쫓기던 모세 일행이 홍해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바닷물이 갈라지면서 모세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사히 바다를 건넜다는, 현실에선 좀 믿기 어려운 그 장면 말입니다. 이는 성탄절 단골 영화인 '십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자연과학적 관점으로 볼 때 이 신비의 바닷길 현상은 주위보다 높은 해저 지형이 바닷물이 빠질 때 드러나는 것으로, 바닷물이 갈라지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이 현상은 보름과 그믐을 주기로 갈리는 조차(潮差)에 의해 한 달에 두 번은 열려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않습니다. 일 년 중 가장 물이 많이 빠진다는 음력 7월 백중사리에는 이론적으로 가장 많은 바닷길이 열려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조차뿐 아니라 해저지형과 수심 등 변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기존 신비의 바닷길이 열린다고 알려진 곳의 경우 음력 2월 영등철엔 반드시 열립니다. 밀물·썰물 현상의 원인이 되는 지구에 대한 달의 인력이 이때 가장 크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니까 지금이 바다 갈라짐 현상의 대목인 셈이죠.

 현재 우리 땅에서 제법 알려진 '현대판 모세의 기적' 신비의 바닷길은 전남 진도, 여수 사도, 충남 보령 무창포, 변산반도(하섬) 정도입니다. 갈라지는 바닷길도 길고 폭도 넓어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습니다.

 부산 인근에도 신비의 바닷길이 열립니다. 아십니까. 울산 울주 서생면 진하해수욕장, 거제 칠천도, 옛 진해해양공원 근처가 바로 그곳입니다. 반나절이면 주변 관광지와 향토 맛집을 가볍게 다녀올 수 있습니다. 참, 언제냐고요. 사리 때인 음력 2월 보름 전후, 즉 이달 18, 19, 20, 21, 22일 즈음입니다. 이때 아니면 일부 지역은 음력 7월 백중사리까지 당분간 바닷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바다를 걷는 이 기분, 누가 알겠습니까. 봄 햇살도 이제 따사롭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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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한국판 모세의 기적' 신비의 바닷길 음력 2월 전국에서 열린다 http://hung.kookje.co.kr/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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