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호암초등 김선혜 교사의 추억의 도시락 반찬만들기

자투리 야채 정리할 좋은 기회
달걀물 이용하면 소화 잘 돼
도시락 싸며 부모 은혜 되새겨

 
지금이야 학교에서 급식이 되기에 도시락 싸는 일이 사라졌지만 예전의 도시락은 매일매일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존재였다. 반찬 때문에 벌였던 어머니와의 적지 않았던 투쟁과 도시락 반찬을 나눠먹으며 친구들과 나눈 우정은 이제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부산 호암초등학교 김선혜(34) 교사는 요즘도 이따금 도시락을 싼다. 7살과 백일이 갓 지난 두 아들의 엄마인 김 교사의 남편이 종합병원 레지던트여서 업무상 외박이 잦아 얼굴도 볼 겸 해서 도시락을 준비해 찾는다는 것.
 딸 셋 중 첫째인 김 교사는 "남편 도시락을 준비하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동생들 것까지 매일 도시락 5개를 정성스럽게 싸면서 저녁 반찬과 겹치지 않도록 신경을 써 주신 친정어머니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고 회상했다. 당시 친정어머니가 자주 해주시고, 지금은 자신이 남편에게 즐겨 싸주는 야채전과 돼지고기 강정을 김 교사를 따라 만들어보자.

야채전

<재료> 버섯 맛살 달걀 소금과 갖은 야채


제철 야채도 좋지만 냉장고 속에 굴러다니는 자투리 야채들을 한번에 처리할 수 있는, 도랑 치고 가재 잡을 좋은 기회이다. 김 교사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피망과 깻잎을 넣으면 향이 좋고, 당근을 곁들이면 색깔이 예쁘다고 말한다.
 이날 김 교사는 표고버섯 팽이버섯 호박고구마 잔파 호박 당근 등 냉장고에 있는 야채와 맛살을 준비했다. 먼저 이 야채들을 가늘게 채 썰어 모아둔다. 채 쓴 야채를 충분히 적실 수 있을 정도의 달걀물을 푼다. 보통 전이라고 하면 밀가루를 사용하지만 이 야채전은 달걀물로만 부쳐낸다. 훨씬 부드럽고 소화가 잘 되는 데다 맛 또한 더 좋기 때문이다.
 달군 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른 후 부침개를 만들 듯이 어른 손바닥 반 정도 되는 크기로 구워낸다.

돼지고기 강정

<재료> 돼지목살 양파 소금 후추 생강즙 고춧가루 고추장 케첩 간장 물엿 밀가루 설탕 깨소금


 신선하고 두툼한 돼지고기 목살에 우선 약간의 생강즙과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한다. 밑간을 돼지목살에 밀가루를 얇게 입힌다. 밀가루 대신 전분을 사용하면 약간 더 바삭바삭해진다. 약간의 식용유를 두르고 밀가루를 입힌 돼지목살을 노릇하게 구워낸다. 이때 가위로 돼지목살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구운 고기가 식을 동안 양파를 잘게 다진다. 양파는 돼지고기와 궁합이 잘 맞기 때문이란다.
 새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른 후 다진 마늘을 볶아 향을 낸 다음 잘게 다진 양파가 투명해지도록 다시 볶는다. 여기에 준비한 고춧가루 고추장 케첩 간장 물엿과 맛술(청주도 가능) 등으로 갖은 양념을 한 다음 구워낸 돼지목살에 양념이 잘 배도록 한다.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매운맛을 좋아하면 고추장을 약간 더 넣어도 상관없다. 양념이 골고루 배었으면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마무리한다.
 김 교사는 "남편과 아이도 그냥 튀긴 것 보다는 약간 양념이 된 음식을 좋아한다"며 "그래도 친정어머니의 그 맛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성과 양념의 미세한 차이인듯한데 아무리 달리 해봐도 그 맛을 찾을 수 없는 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 산악인 엄홍길의 전시관은 전국에 3곳

 산악인 엄홍길(48)의 전시관은 셋.

하나는 46년간 살았던 의정부시에 있고, 또 하나는 지난해 10월 그의 고향인 경남 고성에 문을 열었다. 나머지 하나는 원도봉산 기슭에 위치한 그의 모교인 호암초등학교에 있다.
 
예전에 고을 원님이 치세를 잘하면 송덕비 하나 겨우 세워주는 것이 고작이었던 데 비하면 엄 대장으로선 사실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관광객 유치 등 지자체의 편의에 따라 건립되는 것이지만 그 자체가 바로 엄홍길이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척도임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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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의정부시 옛 호원동사무소에 당시 1억7000만 원을 들여 마련한 엄홍길 전시관 외형과 내부.

가장 먼저 문을 연 곳은 의정부시. 지난 2003년 3월 엄홍길의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기념, 옛 호원동사무소에 당시 1억7000만 원을 들여 만들었다. 전시관에는 히말라야 14좌 완등 당시의 사진과 그간 히말라야에서 사용한 그의 등산용품들이 시대별로 진열돼 있다. 하지만 이곳은 최근 도로 부지에 편입돼 원도봉산 쪽으로 확장, 이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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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의 엄홍길 전시관과 그 내부. 티베트의 불경이 적힌 오색 룽다가 걸려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그가 2세 때까지 살았던 고향인 경남 고성군은 33억 원을 들여 고성의 진산 거류산 기슭 1만7000여 ㎡에 기념관을 세우기로 하고 지난 2004년 착공, 3년여의 공사 끝에 지난해 10월 개관했다. 전시관에는 그가 히말라야 8000m급 거봉 등정 당시 사용했던 등산텐트와 피켈 산소마스크 등 각종 장비와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엄홍길 전시관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고성군은 매년 엄홍길을 초청, '엄홍길과 함께 하는 1박2일 등산축제'를 열기로 하고 지난 5월 첫 행사를 상황리에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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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도봉산 기슭에 위치한 엄 대장의 모교인 호암초등에도 지난 2005년 조그만 전시관을 개관해 어린 학생들에게 그의 진취적인 도전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전시관에는 엄 대장이 사용하는 배낭과 등산용품과 등반 당시의 각종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 산악인 엄홍길은 알고 보니 장애인(?)

뒤틀린 다리, 잘려나간 발가락
정상을 탐한 산악인의 혹독한 대가


'엄홍길 대장은 장애인(?)'.
인터뷰 도중 엄홍길은 "고백컨대 저는 장애인 등급 판정을 받지 않았을 뿐 장애인"이라고 말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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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의 다친 오른쪽 다리는 왼쪽보다 한눈에 봐도 가늘다.  

그는 지난 1998년 안나푸르나 등반 때 추락하는 셰르파 두 명을 구하려다 떨어져 오른쪽 발목이 180도 돌아가는 중상을 당했다. 발목뼈는 물론 종아리뼈와 쇄골이 부러지고 인대 또한 끊어졌다. 이후 수술을 받고 끊임없는 훈련으로 등반이 가능해졌지만 그래도 후유증이 만만찮다는 것이다.

그는 즉석에서 일어나 바지를 걷어 두 다리를 보여줬다. 히말라야 8000m 거봉을 제 집 드나들 듯해 두 다리는 커다란 알통으로 단단했지만 다친 오른쪽 다리는 왼쪽 다리보다 한눈에 봐도 가늘었다.

기능 또한 상당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오른쪽 다리는 산사면을 오를 때 그 후유증으로 발바닥 전체를 바닥에 대지 못해 사실상 앞꿈치로 걷는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오른쪽 엉덩이와 허리살도 왼쪽과 비교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런 불편한, 아니 등반을 하기에는 치명적인 다리로 이후 낭가파르바트 칸첸중가 K2 얄룽캉 로체샤르를 등정했다니 그저 존경심이 우러날 뿐이다.

엄 대장은 당시 목숨을 걸고 네팔 셰르파를 구한 자신의 이야기가 네팔의 유력 일간지에 사진과 함께 실렸다고 말했다.

"당시 네팔에선 외국인 근로자 자격으로 한국에 갔다가 임금체불, 사기 등을 당해 본국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는데 제 미담 기사가 실리면서 여론의 흐름이 단번에 바뀌었다더군요. 한마디로 이 한 몸 바쳐 애국했죠."

엄 대장은 앞서 1992년 낭가파르바트 원정 때 동상에 걸려 오른쪽 엄지발가락 한 마디와 두 번째 발가락 일부를 잘랐지만 산행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글 사진=이흥곤 hung@kookje.co.kr
일부 사진=해당 지자체 및 호암초등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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