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초단체장과 지역 인재와의 관계를 곱씹어보는 자리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절친한 선배와의 조우가 계기였다. 그 선배의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그의 맏딸은 지난 입시 때 숙명여대에 진학했다. 입학사정관 전형의 하나인 지역핵심인재 전형이었다. 입시철이 꽤 지났건만 그는 입시전문가처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나 딸아이의 입시에 몰입했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지역핵심인재 전형은 입학정원의 10%가량을 말 그대로 지역핵심인재로 선발하는 전형. 2010년 전국에서 첫 시행된 이 전형은 당시만 하더라도 언론과 각 대학의 주목을 받았다. 이 전형의 선발 요지는 국내 각지의 숨은 인재를 발굴, 대학 구성원의 다양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이다. 먼저 학교장의 추천을 받고 이어 기초단체장의 추천을 받으면 최종적으로 대학에서 선발하는 3단계 전형으로 구성된다. 숙대는 이 전형에 앞서 총장이 전국 기초단체와 협약을 체결했다. 지난해엔 234명의 지역핵심인재들이 합격됐고, 그 중 부산은 16명으로 일곱 번째였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들을 만했다. 문제는 기초단체장의 행태였다.

 선배는 딸아이의 숙대 진학을 위해 지난해 봄 전국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참여하는 설명회에 참석했다. 이곳에서 들은 숙대 입학사정관의 설명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전했다.

 기초단체장들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학교장 추천을 받고 올라온 모든 학생들의 서류를 꼼꼼히 검토했다. 몇 시간에 걸쳐 서류를 모두 검토하고 추천대상자를 선정하고 나니 결재를 받으려 수십 명의 공무원들이 복도 끝까지 줄 서 있더라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의 입장에서는 감동할 만한 일이다. 서울에 위치한 남의 대학을 위해 기초단체장이 열 일을 제쳐놓고 자기 일처럼 해주었으니 말이다.

 이 대목에서 잠깐 관점을 달리해 보자. 우리는 구청장과 군수를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하라고 뽑았다. 자기 지역의 인재를 눈뜨고 뺏기는 것도 대책을 세워야 할 판에 지역 현안이 담긴 결재판을 들고 몇 시간씩 공무원들을 기다리게 하면서도 지역의 핵심인재들을 수도권 대학에 보내기 위해 손수 서류를 검토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숙대에 가든 부산대에 오든 유학을 떠나든 그것은 전적으로 학생 개인의 선택이다. 졸업 후 출신 지역에 되돌아온다는 확약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기초단체장이 손수 지역핵심인재를 뽑아 인재유출에 협조하는 것은 본분을 벗어난 일이다. 그것은 직무위배다. 맞벌이와 육아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사는 젊은 여성들에게는 각종 혜택을 주며 출산을 강요하면서 잘 교육시킨 인재는 왜 그토록 역외 유출에 동조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승자독식의 세상, 전국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숙대를 비난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기초단체장은 우수인재를 자기 지역으로 유치해 지역발전에 기여토록 할 임무가 있다. 굳이 기초단체장이 앞장서지 않아도 지금 서울공화국은 학생유치는 물론 뭐든 공룡처럼 삼키고 있다.

 발상의 전환이 없으면 내년에도 부산의 기초단체장과 지역 대학이 또 한번 '숙명'의 대결을 벌여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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